김우연의 시조 평론(해설, 논문)

시조는 3단 구성

가산바위 2014. 2. 9. 21:21

 

 

 

 

 

 

 

 

 

 

 

시조의 의미 구조

 

김우연

  1. 서언

 

모든 정형시는 3행이면 3단 구성, 4행이면 4단 구성으로 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고시조는 조선시대에 4행의 절구 형식으로 한역을 하기도 하였다. 한시가 시로 대접받던 시절이라 4행으로 번역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한시의 정형에도 없는 3행으로 번역한다면 기형이기 때문이다. 한시의 절구는 당연히 기승전결의 4단 구성으로 되어 있다. 3행의 시조는 기서결의 3단으로 되어있다. 그런데도 한시의 영향으로 4단으로 되었을 것이란 전제하에서 시조의 의미구조를 4단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조를 4단으로 되었다는 사람들은 두루뭉실하게 전과 결을 설명하고 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4단으로 파악하는 사람들은 시조의 종장 전구를 전, 후구를 결로 보는 것이다.

시조의 의미구성을 3단으로 보는 견해를 살펴보기로 하자.

김제현은 “비록 시조가 려말(麗末) 사대부들에 의하여 성립된 오성적 형식이지만 그 구성원리를 한시와 일치시키는 데는 논리적인 모순이 없지 않다. 그것은 4단이면 4장이라야 할 것이며 3장이면 3단인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시조의 3장 구성이 갖는 구조적 의미를 3단논법의 구성으로 파악하고 있는 정혜원은 논리적으로 앞뒤 관계를 분석하고, 시조이 의미를 유형화하여 동의적 전개형, 반의적 전개형, 종합적 전개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시조의 예를 들면서 의미 구조를 확인해 보자.

 

 

 

2.

 

 

1.

푸른 옷감 짜내어

드르륵 드르륵

 

순식간에 기워내는

짙푸른 저 들판

 

제비꽃

애기똥풀꽃

각시붓꽃 수놓는다

 

2

엎지른 거야 그분이

저 푸른 물감을

 

두레판 위 꽃잔치도

저리 차려놓은 것야

 

유채꽃

너도 바람꽃

진달래꽃 산수유

-심인자,「봄을 수놓다」전문

 

위의 작품 <1>의 종장에 “제비꽃/ 애기똥풀꽃/ 각시붓꽃 수놓는다”에서 전구와 후구 첫음보까지는 꽃이름을 열거하고 있다. 종장의 전구는 전(轉)이라는 것은 맞지 않는다. 결국 종장은 전체가 하나의 결(結)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러 가지 꽃들을 수놓다는 뜻이다. 시조는 3장으로 되어 있고, 의미구조도 3단으로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는 “유채꽃/ 너도 바람꽃/ 진달래꽃 산수유”으로 전체가 열거 되고 있다. 시조가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시조는 3장으로 되어 있고, 의미가 3단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을 예로 들었다.

 

 

 

뻐꾸기 울음소리에 산이 점점 높아가고

 

뻐구기 울음소리에 골이 점점 깊어가고

 

뻐꾸기 울음소리에 마을이 온통 숨죽입니다.

-정완영,「뻐꾸기 울음소리에」

 

이 작품은 “뻐꾸기 울음소리에”가 초, 중, 종장에 반복되고 있다. 초장과 중장에서는 뻐꾸기 울음소리에 자연이 반응하는 것이라면 종장에서는 인간 세계도 마찬가지로 숨죽인다는 것이다. 의미상으로는 자연에서 인간으로 점층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초장에서 중장으로 발전하다가 종장에서 인간 세계로 확대하면서 끝을 맺는 것이다. 여기에 무슨 기승전결 4단이 있단 말인가. 시조는 원래 3장으로 되어 있으며 구성은 3단인 것이다. 그래도 시조가 4단으로 되었다는 사람들은 종장의 첫음보가 전(轉)에 해당된다고 하면, 초장과 중장의 “뻐꾸기 울음소리”가 어떻게 시상이 전환되었는지 설명해야 할 것이다. 설명할 길이 없는 것이다.

 

 

  

3. 열린 형식의 시조들

 

시조의 현대성을 위해서 내용이나 형식에서 많은 노력들이 이루어져 왔다. 유성호 교수는 “시조에서 요청되는 ‘현대성’ 역시, 그동안 시조가 축적해온 양식적 구심으로부터의 일탈이나 확장보다는, 시인의 복합적 시선과 사물 해석의 새로움 그리고 언어의 세련됨에서 찾아져야 한다.” 며 내용의 현대성을 강조하며 시조의 ‘정격(正格)’을 강조하며, “시조 양식의 가능성은, 율격 해체나 이완에 있지 않다. 양식적 구심점을 지키면서, 우리가 정작 현대시조에 물어야 할 것은 우리 사회의 복합성과 시조의 양식적 특성이 어떻게 결합되고 있을까 하는 것이다.”며 형식의 해체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시조시인들 중에는 시조가 시가 되어야 한다면서 시조의 고유한 율격을 해체하고 자유시를 닮고자 하는 일군의 시인들이 있다. ‘열린시조’라는 기치를 높이 들고서 시조를 해체하는데 앞장서 왔다. 그 결과 일반 독자들은 자유시와 시조의 차이가 무엇인지 혼란해 하고 있는 것이다. 시조를 살리고자 하는 실험들이 시조의 고유한 양식의 특징을 잃게 하는 면이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상 중의 하나이다.

 

 

 

저 가뭇한 하늘가에 발을 오그린 채 숨을 멈춘 한순간에 비상은 완성된다 그재사 새가 새로서 현현하는 것이다

 

 

가장 높이 나는 찰나의 절정을 위해 새는 쉬임없이 부리를 닦아내고 바람에 죽지를 씻으며 솟구쳐오르는 것이다

 

 

솟구쳐오를 적마다 새의 눈은 깊어져 텅 빈 고요 속에 세속의 뼈를 묻고 에굽은 그 하늘길을 바스라져 가는 것이다

-박기섭,「새」전문

 

 

 

첫째 수는 장을 해체하고 있다.

 

“저 가뭇한/ 하늘가에/ 발을/ 오그린 채/ 숨을 멈춘/ 한순간에// 비상은 완성된다// 그재사/ 새가 새로서/ 현현하는/ 것이다”

 

 

위의 시가 시조라면 초장은 “저 가뭇한/ 하늘가에/ 발을/ 오그린 채/”까지라고 썼을 것이다. 그러나 의미상 “발을/ 오그린 채/ 숨을 멈춘/”은 장을 구별하여 떨어질 수 없는 말들이다. 시조의 장은 하나의 완성된 의미 단위여야 한다. 장을 해체하여 쓴 것이다. 시조의 형식에서 구나 장을 해체하는 것은 자유시와의 변별성을 없애는 것은 시가 될 수는 있어도 시조로서는 바람직하지 않는 것이다. 시조가 3장 형식이라는 것은 고시조의 가창의 창사에서도 줄글로 표기하면서도 분명히 분리하고 있다. 유성호 교수도 내용의 현대성을 긍정적인 것으로 보면서도 “율격의 해체나 이완에 있지 않다”는 말을 하면서도 형식에 대해서는 침묵을 하고 있어 결론에 모순을 보이고 있다.

 

 

 

언제였나 간이역 앞 삐걱대는 목조 이층

찻잔에 잠긴 침묵 들었다 다시 놓고

조용히 바라본 창밖 속절없이 흔들리던

 

 

멀리서 바라보면 는개 속 등불 같은

청음도 탁음도 아닌 수더분한 목소리로

해질녘 삭은 바람결 불러 앉힌 보랏빛

 

 

누구 삶이 저리 모가 나지 않았던가

자름한 고, 어깨를 툭 치며 울먹일 듯

오디새 울다간 자리 등 돌리고 피는 꽃

-유재영,「오동꽃」

 

 

이 시에 대해서는 “달관된 어법이 오롯하게 전해져 오는 그렇게 맑고 투명하게 다듬어진 이 시가 그윽하게 비밀스러움을 깊이 간직할 수도 있고 그 화려함을 감추고도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시조의 형식으로서는 흔들리고 있는 작품이다. 시조의 장은 하나의 의미 단위이면서 한 수는 하나의 완결된 의미 단위여야 한다. 그것이 연시조일 경우에는 전체적인 주제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그래서 시조의 종장은 열린 형식이 아니라 한 작품을 갈무리 하는 닫힌 구조여야 한다. 그런데 첫째 수에서는 종장에서 “속절없이 흔들리던”이라 하여 완결되지 못하고 둘째 수 종장의 “보랏빛”을 수식하고 있다. 그래서 연시조처럼 보이지만 한 수 한 수 완결되어 전체적으로 유기적인 결합을 이루어야 하는 시조 형식에서 이탈한 것이다. 이런 것이 ‘열린 시조’라고 하며 시조의 현대성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시조의 정형을 포기하는 것이다. 오늘날 필자가 나름대로 시조의 의미구조를 파악한 결과 ‘음수율(자수율)’의 변격이니 탈격이니 하는 것보다 시조의 형식을 파괴하여 자유시와의 변별성이 흔들리게 되는 것으로 시조의 형식을 해체하는 문제점이 있다.

 

이 작품을 의미 구조를 좀더 살펴보면 중장의 종장에 있는 “보랏빛”을 수식하는 어구는 3개이다.

 

 

① (수식어)속절없이 흔들리던

② (수식어)머리서 바라보면 는개 속 등불 같은

③ (수식어)청음도 탁음도 아닌 수더분한 목소리로/ 해질녘 삭은 바람결 불러 앉힌 + (피수식어)보랏빛

 

 

수식어와 피수식어를 볼 때 시조의 한 수의 개념이 파괴되어 있으며, 둘째 수 중장은 중장의 역할을 하지 않고 단순한 수식어 차원에만 머물고 있어 장의 개념이 해체되어 있다.

그리하여 일반 독자들은 의미 전달도 잘 안 될뿐더러, 3장 6구라고 주문처럼 외던 정형 형식을 해체하여 정형성을 흔들리게 하였다. 문학 작품이라 하여 문법 구조를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시조가 시(자유시)가 되려고 하다가 시조를 잃게 되는 것은 시조의 발전을 위해서 피해야 할 일들이다.

시조가 문학의 주변부라고 자책할 것이 아니라 시조가 시조다울 때 문학의 중심부에 들 수 있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알뜰한 정성과 숙련된 기능의 합작

원단 나오기까진 일당 오천 원에도

미칠까

말까 한 길쌈

끝내 버리지 않는다.

-류희걸,「안동포 마을」네 수 중 셋째 수

 

 

이 작품은 겉으로 보면 3장으로 되어 있고, 각 장마다 4음보로 되어 있어 시조처럼 보인다. 그리고 음수율에서 중장에서 음수율이 “2·5·2·5”이 되어 있으나 정격시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리고 시조에서 제일 강조하는 종장의 첫째 음보와 둘째 음보는 3·5로 되어 있어 문제가 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은 글자수만 시조처럼 맞춘 것이지 시조의 율격에는 벗어난 작품으로 시조라고 볼 수는 없다. 글자를 맞춘다고 시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문제점은

 

 

① 종장의 첫 음보와 둘째 음보는 “미칠까/ 말까 한 길쌈”으로 행을 바꾸어 처리하여 종장의 첫 음보가 3자처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미칠까 말까”은 통사적으로 분리될 수 없는 말이다. 그래서 종장 첫 음보와 둘째 음보는 “미칠까 말까 한/ 길쌈”으로음수율은 5·2 분석되어 시조에서 거리가 멀다.

 

 

② 종장의 첫 음보의 파격도 문제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장이 파괴된 것이다.

중장은 “원단/ 나오기까진/ 일당/ 오천 원에도/ 미칠가 말까 한/ 길쌈//”까지가 의미 구조상으로 하나가 된다.

즉 중장이 장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종장의 둘째 음보까지 한 덩어리가 되어 시조의 형식을 이탈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조는 3장 6구라는 기본적인 약속을 어긴 것이다.

의미상으로 보면 “길쌈은 원단이 나오기까진 일당 오천 원에도 미칠까 말까 한(하다)”는 것이다. 시조의 정형률을 잃어버린 것이다.

시조는 정형시이다. 구나 장을 파괴하고 심지어 수까지 파괴한 것은 시조의 정형을 잃게 하는 것이다. 음수율(자수율)의 파괴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이다. 이런 문제를 임종찬 교수가 지적한 바도 있다. 반드시 명심해야 할 일이다.

 

 

타오르던

불꽃 연기

잠 속에서 깨어나다

 

 

비바람에

흘린 몸체

이제사 모습 찾은

 

 

한세월

잊은 이야기

속삭이고 있는가.

-이재곤,「영덕 대소산 봉수대(大所山 烽燧臺

 

 

임종찬은 “시조의 장은 의미상으로나 문법상으로 한 문장 구실을 하고 있음”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 작품은 중장에서 “비바람에/ 흘린 몸체// 이제사 모습 찾은”은 종장의 “한세월”을 수식해 주고 있다. “찾은”은 관형사형 어미로 끝맺어 중장을 한 문장의 구실을 하고 있지 못하게 만든다.

의미상으로 보면 중장은 봉수대가 비바람에 흘려 있었는데 보수하여 옛 모습을 찾았다는 것이기 때문에 “이제사 모습 찾아”라고 해야 한 문장 구실을 하는 것이다.

전체적인 내용으로는 중장에서는 봉수대의 옛 모습을 찾았다는 것이고, 종장에서는 그래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봉수대와 관련한 “한세월/ 잊은 이야기”를 속삭인다고 한 것이다.

원작처럼 “이제사 모습 찾은// 한세월/ 잊은 이야기”라며 봉수대 자체를 한세월 잊고 지내다가 찾은 것을 노래했다고 한다면 중장과 종장을 합쳐야 의미상 한 장을 이루게 되니 시조의 형식에서는 더욱 멀어진다고 하겠다.

 

 

 

 

4.

 

시는 말장난이어서는 안 된다. 특히 시조는 시조형식이 주는 음악성에 얹어서 읽혀져야 하기 때문에 들어서 쉽게 이해되어야 한다. 이해가 쉽다는 말이 의미의 단순성을 뜻하지는 않는다.

 

15) 따끈한 찻잔 감싸 쥐고 지금은 비가 와서//

부르르 온기에 떨며 그대 여기 없으니//

백매화 저 꽃잎 지듯 바람 불어 날이 차다

홍성란 ‘바람 불어 그리운 날’ 전문

 

이 작품은 앞서와 같은 수사의 남용이 없고 일견 보기엔 시조의 정도를 걷는 작품 같아 보인다. 그러나 읽다 보면 이게 과연 시조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문장을 시조 형식에 맞추기 위해 억지를 부린 때문이다.

 

15)-1 (나는) 따끈한 찻잔 감싸 쥐고(있다)

지금은 비가 와서 부르르 온기에 떨며 (있다)

그대 여기 없으니 백매화 저 꽃잎 지듯 바람 불어 날이 차다.

 

고시조는 말할 것 없고 60년대 이전의 시조, 나아가 중국동포 시조에서 보면, 시조의 각 장은 의미상으로나 문법상으로 한 문장구실을 하고 있음을 보아왔을 터다. 물론 15)-1은 세 문장으로 되어 3장 형태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15)-1을 시조라 한다면 초장도 그렇지만 종장이 음보율을 위반하고 있다. 결국 15)는 15)-1을 음보율로 맞추기 위한 표기라고 하겠는데 시조가 아닌 것을 시조처럼 표기했다고 해서 시조로 둔갑되지는 않는다.

비가 와서 부르르 온기에 떨며 있다는 말도 신통스럽지 못하다. 주의미를 따진다면 찻잔을 쥐고 온기에 떨며 그대 여기 없으니 날이 차다는 내용이다. 이런 표현을 시적 표현이라 하기는 곤란하다. 그런데 이 작품이 다름 아닌 2005중앙일보 대상 작품이라고 하니 어찌 된 일인가. 시적인 표현성, 의미의 충만성, 이미지의 선명성, 주제의 참신선 이런 것들이 제대로 갖추어야 훌륭한 작품이라 하겠는데, 이런 것들을 두고서라도 시조가 아닌 것을 시조대상작품이라니 이게 보통일은 아닌 것 같다.

 

 

 

5. 시조인가 자유시인가

 

 

1)

형려병자가 죽어

영안실로 외로이 누워 있다

 

 

그 흔한 꽃 한 송이 없이

창백한 형광등 하나

그를 지킨다

 

 

어차피

홀로 피고 지는 꽃

너무 허탈해

내가 맥없이 울었다

 

 

맥없이 울었다

-홍경임,「맥없이 울었다」전문

 

 

 

 

 

2)

 

 

나 정말 가벼웠으면

딱새의 고운 깃털처럼

모든 길 위를 소리 없이 날아다녔으면

내 안에 뭐가 있길래 이렇게 무거운지

버릴 것 다 버리고

잊을 것 다 잊고 나면 가벼워질까

내가 한 걸음 내딛으면 세상은 두 걸음 달아나려 한다

부지런히 달려가도 따라잡지 못하는

내가 무겁기 때문

 

 

바람의 낮은 초래처럼 가벼워져

길 위의 나뭇가지에 앉고 싶다.

-김은하,「그저」전문

 

 

 

 

3)

 

 

바람도 낙엽 지고 있다

땅바닥을 걸어가는 바람소리

스산한 걸음걸이 속

그대의 가슴앓이가 시작되는지

꼭 잡아 주는 손 뿌리치며

헐렁한 주머니 속 더 아리게 하고

가슴 속 흐르는 강물 건너려

작심한 지 오래다는 걸 진즉 알고는 있었지만

말릴 수 없는 마음 내보이지 못했다

웃고 싶을 때 웃고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응어리

후벼파는 상처에 피가 흐르고 딱지가 앉아도

다시 딱지를 떼어내는 아픔을

도저히 감내할 수 없다고

나뭇잎 하나 둘 바람 손잡고 걷기 시작하면

눈 시리게 파란 하늘 풍덩하고픈

가을앓이가

물안개 피듯 저어만치서

먼저 오고 있다고.

                                              -양숙영,「가을앓이」전문

 

 

 

위의 작품은 시조인가 자유시인가? 물론 자유시이다.

위의 세 작품은 모두 『월간문학 538호』(2013년 12월호)에 자유시로 발표한 작품이다. 자유시 10편이 실렸는데 그 중 5편은 이와 같이 시조와 유사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현대시조를 쓰는 사람들이 시조가 자유시를 닮고자 형식을 해체하고 자유시처럼 보이고자 하는 시인들이 있다. 형식을 해체하거나 배행방법이 지나치거나 세 편 이상의 연시조를 연 구별 없이 자유시처럼 보이고자 하는 것은 시조가 정형시의 장점을 스스로 없애는 결과를 초래한다.

위의 1) 2) 3)을 시조지에 발표했다면 시조라고 할까 자유시라고 할까 의문이 든다.

 

 

 

 

 

6. 결언

 

 

시조는 3장 6구로서 의미상으로는 3단 구조를 가진다. 두 음보가 모여서 한 구가 되고, 두 구가 모여서 한 장을 이룬다.

시조의 장은 의미상으로나 문법상으로 한 문장 구실을 하고 있어야 하며, 한 수는 의미상으로 하나의 완결성을 띠어야 한다. 연시조인 경우는 각 수들은 주제에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시조는 정형시이다. 그 형식을 해체하고 현대성을 확보하려고 하기보다는 표현이나 내용에서 현대성을 확보해야 한다.

 

 

 

 

 

 

 

 

시조의 의미 구조(김우연).hwp
0.03MB
시조의 의미 구조(김우연).hwp
0.04MB
시조의 의미 구조(김우연).hwp
0.04MB
시조의 의미 구조(김우연).hwp
0.05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