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형식의 절주와 종장 운용의 방향」에서
시조가 갖는 형식규율과 정형률의 미학은 자수율이냐 음보율이냐의 시비를 거친 끝에 다름과 같이 음량률로 설명되면서 확고히 규정되기에 이르렀다.
초장 4 4 ∥ 4 4 ...........앞구와 뒷구의 ‘균형’의 미학
중장 4 4 ∥ 4 4 ...........앞장의 ‘반복’의 미학
종장 3 4+4 ∥ 4 4 ............앞구에 변화를 주는 ‘전환’의 미학
............3장으로 시상을 완결하는 ‘절제’의 미학과 4음 4보격에 의한 ‘유장’의 미학
※표에서 4는 음절수가 아니라 음량의 크기(mora수)임
시조는 아무리 복잡다단한 생각이나 감정의 덩어리를 표현한다 하더라도 이처럼 극히 짧은 3장으로 전체 시상을 압축하여 완결하는 고도의 서술 억제에 의한 미학을 핵심으로 한다. 거기다 각 장은 4모라의 음지속량을 갖는 등가적 음보를 4개의 음보에 실어 규칙적으로 반복하는(이를 4음 4보격이라 함) 정형률을 가지되, 초장의 4음 4보격을 중장에서 완전 동일하게 되풀이함으로써 반복의 미학을 구현하도록 함과 동시에 앞 장과의 서술의 연속성을 갖도록 뒷받침해준다. 그리고 앞의 두 음보(앞구 혹은 안쪽구라 함)와 뒤의 두 음보(뒷구 혹은 바깥구라 함)를 2음보 : 2음보로 대등한 평형을 이루도록 하여 크기와 질에서 완전히 같은 비중을 갖게 함으로써 감정을 가지런히 정돈하고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의 미학을 구현하도록 한다. 또한 각 장은 앞구 다음에 중간 휴지가 오고 뒷구 다음에 행말 휴지가 옴으로써 2음보격 두 개가 서로 호응하면서 결합된, 길고 유연한 유장의 미학을 갖도록 한다.
그리고 시상을 마무리 하는 종장에서는 앞장의 운율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고 운율에 변화를 주어(4음 4보격이 아닌 변형 4보격으로) 전환의 미학을 실현하도록 한다. 그 방법은 종장의 첫마디를 음량률의 규율에서 벗어나 반드시 3음절로 고정하여 자수율을 따르는 운율적 전환을 보이고, 둘째 마디에서는 2음보의 결합 형태를 띠는 과음보로 실현함으로써 초-중장의 등가적 반복에 이어 종장으로까지 연속하려는 운율적 과습을 일거에 차단해보림으로써 시상의 마무리가 가능하도록 하는 완결의 미학을 아울러 구현한다. 따라서 시조 형식에 운용되는 운율상의 규칙성은 종장의 첫 음보에만 ‘글자수의 정형성’이 적용되고, 나머니 모든 음보는 ‘음보 크기(음지속량)의 정형성’이 적용됨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종장의 둘째 음보만은 심층에 두 개의 음보가 결합된 형태를 띠므로 글자 수는 최소 5음절에서 8음절까지 올 수 있는 과음보로 실현되며 그것을 넘어서면 ‘파격’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머지 모든 음보는 4모라로 실현되는 것이 표준이지만 5모라(5음절 크기)까지는 정격으로 간주할 수 있다. 우리 국어의 적절한 발화 범위로서 음보의 양식화 범위는 2모라에서 5모라까지 한정되어 수행되므로 한 음보를 형성하는 음절량의 범위는 5음까지로 보면 된다. 따라서 시조의 일반 음보인 4음격에서 1음이나 혹은 6음에서 9음까지는 한 음보를 구성하기에는 너무 큰 무리가 오므로 파격으로 보아야 한다.(93~95쪽)
시조 작품에서 앞구와 뒷구, 앞절과 뒷절, 장과 장 사이에 굴곡적이고 선회적인 독특한 의미구조나 미적구조를 이루도록 해야 역동적인 운율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96쪽)
따라서 이러한 율격장치의 절주를 따라 읽는 것이 율독이므로 시조의 음보 단위를 어떻게 구분짓느냐의 비중은 율격 단위가 최우선이고, 그 다음이 의미단위이고, 일상어에 바탕한 통사단위는 마지막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즉, 음보 구분에서 율격단위>의미단위>통사단위 순으로 기준이 설정되는 것이다. 시란 “일상어에 가해진 조적직 폭력”이라 정의할 정도로 통사단위를 무시한 말부림을 하는 것이 허용되고, 율격이 일상어의 언어질서를 뛰어넘어 율격 자체의 자족적 질서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통사단위나 의미단위를 의도적으로 뛰어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형률을 따라야 할 경우 엄격한 율격규칙이나 통사(문법)규칙에 따를수록 더욱 더 졸렬한 시로 전락하고 마는 경우가 많아 썩은 냄새가 나는 늙은 옹관으로 전락하기 쉬우며, 그런 규칙을 어김으로써 오히려 더 생생한 미적 효과를 산출할 수 있고 생동감 있는 리듬을 조성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율격 규율을 따르면서 통사단위나 의미단위의 질서를 넘어설 때는 정격으로 볼 수 있지만, 율격 규칙의 질서마저 넘어설 때는 파격으로 간주되며, 시조의 경우 작은 파격이 이루어질 때 엇시조 형태가 되고, 큰 파격이 이루어질 때 사설시조가 되는 것이다.(102쪽)
‘의미의 확장’이 연시조라는 시적 형식을 필연적으로 요청하게 된다면 단호하게 제어하지 못하는 ‘감정의 확장’은 이 작품처럼 사설시조라는 파격의 형식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109쪽)
사설시조는 미처 제어하지 못한 감정을 실타래처럼 풀어나가는 사설 엮음의 맛에 그 진가가 드러난다.(109쪽)
김학성, 『현대시조의 이론과 비평』, 보고사, 2015,
김학성, 『현대시조의 이론과 비평』, 보고사, 2015, 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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