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자료

조선의 명문장가들-연암 박지원-큰누님을 보내고

가산바위 2016. 12. 20. 17:18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은 근대 이전 산문의 역사에거 가장 큰 명성과 높은 위상을 차지한 산문가다. 본관은 반남(潘南)이고, 자는 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이다.

 

 

 

큰누님을 보내고

伯姉贈貞夫人朴氏墓誌銘

 

유인(孺人)1)의 이름은 아무개로 반남(潘南) 박씨(朴氏). 그 동생 박지원 중미(仲美)2)가 묘지명을 지엇으니 다음과 같다.

 

유인은 나이 열여섯에 덕수(德水) 이택모(李宅模) 백규(伯揆)3)에게 시집을 가서 딸 하나 아들 둘을 두었다. 신묘년(1771) 91일에 돌아가 마흔세 살을 살았다. 남편의 선산이 아곡(鴉谷)이라 그곳의 경좌(庚坐) 방향 자리에 자사를 지낼 예정이었다.

그런데 백규가 어진 아내를 잃은 데다 가난하여 생계를 꾸릴 방도가 없는지라, 아예 어린 자식들과 계집종 하나를 데리고 솥과 그릇가지, 옷상자와 짐 보따리를 챙겨서 배를 타고 그 골짜기로 들어가버렸다. 상여와 함께 일제히 떠나는 새벽, 나는 두모포(豆毛浦)4)에서 배를 타고 떠나는 그들을 배웅하고 통곡하고서 돌아섰다.

아아! 누님이 시집가던 날 새벽에 몸단장하던 모습이 흡사 어제일만 같구나! 나는 그때 겨우 여덟 살이라, 벌렁 드러누워 발머둥을 치면서 말을 더듬으며 점잔 빼는 새신랑의 말투를 흉내 냈다. 누님은 부끄러워하다가 그만 빗을 떨어뜨려 내 이마를 때렸다. 나는 화가 나서 울음을 터뜨리고 분가루에 먹을 뒤섞고 거울에 침을 뱉어 문질러댔다. 그러자 누님은 옥으로 만든 오리와 금으로 만들 벌 노리개를 꺼내주면서 울음을 그치라고 나를 달랬다. 지금으로부터 28년 전 일이다.

강가에 말을 세우고 저 멀리 바라보니, 붉은 명정(銘旌)은 바람에 펄럭이고 돛대는 비스듬히 미끄러지는데, 강굽이에 이르러 나무를 돌고 난 뒤에는 모습을 감추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때 강가에 멀리 나앉은 산은 시집가던 날 누님의 쪽진 머리처럼 검푸르고, 강물 빛은 그날의 거울처럼 보이며, 새벽달은 누님의 눈썹처럼 보였다. 빗을 떨어뜨리던 그날의 일을 눈물 속에서 생각하니 유독 어릴 때 적 일만이 또렷또렷하게 떠오른다. 그때는 또 그렇게도 즐거운 일이 많았고, 세월도 길게만 느껴졌다.

그사이에는 늘 이별과 환난에 시달려야 했고, 빈궁에 시름 겨워 했다. 그런 일들이 꿈속인 양 황홀하게 스쳐 지나간다. 형제로 지낸 날들은 어찌도 그렇게 짧았단 말인가?

 

떠나는 이 간곡하게 뒷기약을 남기기에

보내는 이 도리어 눈물로 옷깃을 적시네.

조각배는 이제 가면 언제나 돌아올까?

보내는 이 쓸쓸히 강 길 따라 돌아서네.

 

 

<해설>

연암이 큰누님을 잃고 쑨 제문이다. 이 제문은 두어 차례 개작되어,(중략)

이 글은 평범한 묘지명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일반적인 격식을 무시하고, 묘지의 주인공과 사적으로 맺은 사연, 그리고 시신을 보내고 난 뒤에 드는 느낌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중략)

이 글은 300자도 채 되지 않을 만큼 짧다. 글에 담긴 내용은 간단한 사실의 설명에 이어진 사연 한두 가지에 불과하다. 그러나 필설(筆舌)로 표현하지 못할 하고많은 사연이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덕무가 문장이 300자도 채 되지 않건마는 감정의 실타래가 솟구쳐 나와 문득 수천 글자 문장의 기세가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겨자씨에 수미산을 집어넣은 형국이라.”고 찬찬한 이유다.

한편, 이 글을 읽고 이덕무가동북소선에서 다음과 같은 감상문을 남겼다. 또한 걸작이다.

 

친가의 집안일을 알려면 고모에게 물어보면 되고, 외가의 집안일을 알려면 이모에게 물어보면 된다. 그렇다면 고모나 이모가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사람에게 만일 누님이 있다면 친가나 외가의 집안일을 모두 알 수 있다.

게다가 만약 늦둥이라서 할머니와 외할머니를 모실 기회가 없었고, 또 불행히도 어려서 어머니를 여윈 사람이라면, 어쩔 도리 없이 누님을 찾아가서 집안의 물어볼 수밖에 없다. 그러면 누님은 눈물을 흘리면서 가르쳐줄 것이고, 또 슬픔에 잠겨서 말해줄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리라.

아무 동생 눈매는 할머니 눈매를 닮았고, 아무 동생 목소리는 외할머니 음성을 닮았지. 우리 어머니의 웃는 모습은 네가 꼭 빼닮았다.”

한편으로 내가 어렸을 때 내 머리를 빗겨준 이도 우리 누님이고, 내 세수를 시켜준 이도 우리 누님이다. 나를 업어준 이도, 나를 안아준 이도 역시 우리 누님이다. 내가 장가를 갔을 때 내 아내를 이끌고 간 이도 우리 누님이다. 누님이 시집을 갔을 때 나는 자형(姊兄)이 된 새신랑에게 절을 했다. 내가 누님을 뵈러 가면, 누님은 반드시 반갑게 맞아서는 배고프겟다고 하면서 밥을 자꾸 퍼주고, 춥겠다고 하면서 술을 데워 내오리라. 이름은 누님이라고 하나 실은 우리 어머니를 뵙는 듯했다.

나는 본래 누님도 없고, 할머니도 외할머니도 뵌 적이 없다. 더군다나 어러니를 어려서 여윈 사람이다. 그래서 일부러 누님이 있는 사람은 그리했으리라 상상하면서 서슬펴하곤 했다. 박지원 선생의 큰누님을 위한 묘지명을 읽고 나자 하마터면 통곡이 나올 뻔 했다.5)

 

 

이 감상문은 박지원의 이 글이 지닌 내면을 자신의 체험에 연결하여 매우 잘 소화했다. 읽는 사람의 처지와 체험에 따라 제각각 다르지만 눈물을 빼게 하는 명문임이 분명하다. (112115)

 

1) 남편이 벼슬하지 않은, 죽은 여자를 부르는 명칭이다.

2) 중미는 연암 박지원의 자().


3) 이택모(17271812)는 연암희 자형으로 백규는 그의 자다. 저명한 학자인 택당(澤堂) 이식(李植, 15841647)의 현손이다. (현손(玄孫): 손자의 손자)


4) 중랑천이 한강과 마나는 지점에 있었던 나루터로, 두뭇개라고 불렀다.


5) 이덕무, <미평(眉評)> 앞의 책(이덕무 평선(評選), 종북소선).






안대희 지음, 조선의 명문장가들, Humanist, 2016(개정판 ), 109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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