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들의 시조평론(잡지)

강현수 (장백산 외)- 박성민 평론(시조시학 2011 겨울호)

가산바위 2017. 5. 6. 14:50

 

6. 강현수(장백산외 1)-박성민 평론(시조시학 2011 겨울호).hwp

 

 

장백산

 

강현수

 

장백산이면 어떻고 백두산이면 또 어떤가

그것이 고집이라면 그대로 불러주마

산 아래 금단의 마을, 휘파람에 묻어난다.

 

이쯤에서 바라보면 남도 북도 남녘이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다 말라야 할 것인가

젖 달라, 젖 달래 해서 강은 저리 흐르는 거다

 

하나 된 반도라면 내 가슴도 물리고 싶다.

말 달리듯 달려온 장백폭포 돌아들면

하늘 못, 북녘 사투리, 달맞이꽃 피어난다.

 

 

 

 

내 사랑

 

 

고스란히 천년을

눈 비 바람 맞았습니다

 

한라산 주목처럼

그렇게 견뎠습니다.

 

농다리,

살은 다 녹아

뼈만 남은 내 사랑

 

 

시조시학(2011겨울호) 88쪽 및 92쪽.

 

 

 

<자전적 시론>에서

 

새의 내장을 통과한 씨앗처럼

 

1. 섬에서 육지로

 

서귀포여고를 다니던 시절, 육지로 향한 나의 꿈은 신앙과도 같았다.

(중략)

90% 포기 했을 때 내 안의 10%를 움직인 건 남동생 때문이었다. 『모스부포』라는 작품에도 나오지만 남동생은 태어날 때부터 지적장애와 언어장애 게다가 지금은 시각장애까지 골고루(?) 가진 중증 장애인이다. 그 동생이 나를 육지로 밀었다. 그래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이제 사회복지공무원이 되었다. 청각장애인 곁의 수화통역사처럼 동생이 부르는 노래를 내가 살살 버무려 작품에 담아 보고 싶은 마음은 시조를 배우면서부터 있었고 아직은 진행형이다. “눈나∼”하고 부르면 내 가슴에 비가 내린다. 누가 볼까 누가 알까 꽁꽁 싸뒀던 그것들을 이제는 시조를 통해 곱게 풀어 흘려보내고 싶다.(93∼94쪽)

 

 

2. 퇴근길

 

오승철 선생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고, 시조를 처음 만났고, 지금은 선생님과 정드리회원들과 시조의 길을 함께 가고 있다.

 

 

3. 내장을 삼킨 씨앗

 

새의 내장을 묵묵히 통과하며 고통의 시간을 인내한 씨앗만이 가질 수 있는, 오름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그 씨앗처럼 지극히 평범하고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는 것들이 나를 통해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 때까지 쓰고 또 쓰리라 오늘도 주문을 걸어본다. (95쪽)

 

강현수

2008년 영주일보 신춘문예 당선, 《연린시학》봄호 신인상 수상. 정드리문학회 회장. 서귀포시청근무

 

 

 

 

순수와 진실을 갈망하는 인간회복의 꿈

 

박성민

 

1.(생략)

 

 

2.

 

장백산이면 어떻고 백두산이면 또 어떤가

그것이 고집이라면 그대로 불러주마

산 아래 금단의 마을, 휘파람에 묻어난다.

 

이쯤에서 바라보면 남도 북도 남녘이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다 말라야 할 것인가

젖 달라, 젖 달래 해서 강은 저리 흐르는 거다

 

하나 된 반도라면 내 가슴도 물리고 싶다.

말 달리듯 달려온 장백폭포 돌아들면

하늘 못, 북녘 사투리, 달맞이꽃 피어난다.

                                                 -「장백산」전문

 

 

백두산은 6.25 전쟁에 중공군이 참전해준 대가로 전쟁이 끝난 후 북한이 백두산의 일부를 중국에 넘겨주었다는 설과 6.25 이후 북한과 중국 간의 국경문제에 대한 협의(1962년 조·중 변계조약)에서 중국이 백두산의 약 40%를 가져가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현재의 국경은 북한, 중국 간의 협의에 따른 것인데, 직경 500km에 달하는 백두산 영유권 문제는 바로 북간도와 길림성 남부 전체에 대한 영유권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이 시에서 시인은 통일 지향의 모성적 사랑을 보여준다. 백두산은 중국에서는 장백산이라고 부른다. 분단의 아픔으로 인해 중국을 통해 올라간 백두산은 천지 건너편에 “금단의 마을”인 북녘 땅이 있다. 중국 사람들은 장백산을 백두산으로 부르면 화를 낸다고 한다. “그것이 고집이라면 그대로 불러주마”하는 부분은 중국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한다는 측면이 아니라 일종의 거부반응에 가까운, 반어적 표현이며 남북분단으로 인해 “휘파람에 묻어”나는 쓸쓸함의 표현인 것이다.

백두산 천지에서 “바라보면 남도 북도 남녘이다”에서는 이 땅의 비극이 근본적으로 분단현실에 기인한다는 역사적 실존에 도달해 있음을 보여준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다 마를 까지 통일의 날을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 탄식하는 시인의 눈에는 한반도에 흐르는 강물 줄기들이 “젖 달라, 젖 달라 해서” 흐르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제3수의 초장에서 “하나된 반도라면” 화자의 “가슴도 물리고 싶다”는 표현으로 확산되어 국토 분단의 비극, 그 아픔을 감싸는 모성적 사랑으로 승화된다. “말 달리듯 달려온 장백폭포”에서의 장백폭포는 백두산 북서부에 있는 비룡폭포로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는 폭포인데, 이 역시 중국 측에서는 장백폭포라고 부른다. 백두대간의 비룡폭포에는 백두산 비룡폭포, 금강산 비룡폭포, 그리고 설악산 비룡폭포가 있다. 백두산 천지의 저 너머에는 북녘 마을이 있건만, “하늘 못, 북녘 사투리, 달맞이꽃 피어난다”를 통해 시인은 분단에 대한 아픔과 갈라진 국토에 대한 그리움, 통일에 대한 열망과 의지를 형상화하고 있다.(97∼98쪽)

(중략)

 

 

 

고스란히 천년을

눈 비 바람 맞았습니다.

 

한라산 주목처럼

그렇게 견뎠습니다.

 

농다리,

살은 다 녹아

뼈만 남은 내 사랑

     -「내 사랑」전문

 

 

충북 진천에 있는 ‘농다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천 년 역사를 자랑한다. “고스란히 천년을 눈 비 바람 맞”은 이 다리는 고려시대에 축조한 돌다리인데, 큰 돌을 마치 물고기 비늘처럼 안으로 차곡차곡 들여쌓기 해서 교각을 만들고, 크기가 다른 돌을 서로 단단하게 맞물려 쌓아서 홍수에도 “한라산 주목처럼” 천 년이나 견뎌온 다리다. 얼마나 많은 물살들과 시간들이 농다리를 다녀갔을까. 화자는 이 광경 앞에서 숙연해진다. 이윽고 화자는 이 농다리를 보며 “살은 다 녹아/ 뼈만 남은 내 사랑”을 떠올린다. 시체가 살이 다 썩어도 뼈는 남아 있듯이 ‘뼈’는 파괴되지 않는 신체의 일부이며, 훼손되지 않는 인간의 마지막 존재가치, 더 이상 파괴할 수 없는 생명의 씨앗이다. 역설적이지만, 이러한 의미에서 뼈는 소생에 대한 신념을 상징하기도 한다. 만해의 시, 「나룻배와 행인」에서의 나룻배처럼 수많은 행인들의 흙발을 묵묵히 견디며 그들의 물을 건네준 농다리. 천년 후 박제로 남은 사랑, 뼈가 다 드러나도록 견뎌온 사랑의 풍경이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다.(103쪽)

6. 강현수(장백산외 1)-박성민 평론(시조시학 2011 겨울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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