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조 읽기 14. 문수영, 『뭍으로 굽은 길』(2021)
잃어버린 몇 날은 길가 풀섶에서 졸고
또 몇 날은 갈대되어 이리저리 흔들리고
여기선 용서할 수 없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구름이 된 이야기 늪 속에 가득 담고
떠나지 못하는 철새 울음소리 듣는다
단 한번 입맞춤으로 들국화 피어난다
-문수영, 「우포늪」전문
드넓은 서해 갯벌 꿈들이 익어간다
바다가 길을 열어 우리를 부르는 곳
저녁 해 할 말 많은 듯 수평선에 걸려있다
손톱 적신 봉숭아만큼 오래 머물진 못해도
한없이 빛을 발한다, 다시 올 수 없기에
너와 나, 뒷모습 저리 아름다울 수 있다면…
-문수영, 「무창포 노을」전문
<김우연 해설>
문수영 시인은 2003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자유시로 등단하였으며, 2005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시조로 당선하였다. 시조집으로는 『푸른 그늘』『먼지의 행로『화음』현대시조 100인선 『눈뜨는 봄』을 발간한 바 있다.
「우포늪」에서는 첫째 수 종장에서 “여기선 용서할 수 없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라고 깨달음을 노래하고 있다. 늪이란 청정한 물이든 탁한 물이든 받아들이되 다른 곳으로 배출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 물을 정화하여 새로운 생명들을 탄생시키고 있으니 경이로운 곳이다. 대만 정엄스님께서 주창하신 보천삼무(普天三無)를 연상시킨다. ‘온 천하에 내가 사랑하지 못할 사람이 없다. 온 천하에 내가 믿지 못할 사람이 없다. 온 천하에 내가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세상에 잘 알려져 있다. 누가복음에서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고 하였다.
화자는 「우포늪」에서 ‘구름이 된 이야기’, ‘떠나지 못하는 철새 울음소리’ 등으로 상징되는 인간사의 갈등의 이야기들을 돌이켜본다. 그리하여 스스로 모든 것을 용서하게 된다. 그것은 집착에서 풀려나는 것이요 해방이요 해탈이다. 내면에서 축복이 가득하게 되면 세상은 온통 천국이요 불국토가 된다. 그래서 “단 한번 입맞춤으로 들국화가 피어난다”고 하였다. 주위가 온통 꽃이요, 산도 나무도 사람도 모두가 꽃임을 ‘우포늪’에 자각한 깨달음의 노래이다.
「무창포 노을」은 화자가 바닷길이 열리는 신비한 서해 갯벌을 바라보면서, 잠깐의 시간이지만 황홀한 저녁노을에 젖는다. 자연은 매일 이루어지는 자연현상이지만 체험하면 특별한 인식으로 내 마음에 저장이 된다. 그리하여 저 저녁노을처럼 “너와 나, 뒷모습 저리 아름다울 수 있다면…”이라고 자각하고 다짐하게 된다. 평소에 이런 생각들이 있었기에 저녁노을을 보는 순간 이렇게 노래하게 되는 것이다. 저녁노을이 매일 생겼다가 사라지듯이, 그 노을의 감동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한 저녁노을을 닮아가는 걸음을 걸어가리라. 이 시조를 읽는 독자들에게도 저녁노을이 깃들게 하는 감동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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