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연의 시조 평론(해설, 논문)

맥.30호 작품 해설

가산바위 2013. 11. 12. 16:21

 

2011년 맥시조문학회 정기총회 연수자료

 

 

 

『맥․30호』에 나타난

주제 의식

 

 

 

 

 

 

 

연수 일시 : 2011.1.8(토)~9(일)

   연수 장소 : 심산서옥(포항시 효자동)

 

 

 

 

 

 

 

 

 

 

 

 

 

맥 시 조 문 학 회

 

 

<차례>

 

 

 Ⅰ.『맥․30호』에 나타난 주제 의식/ 김우연 1

 

 

Ⅱ. 나의 문학관

 

   1. 가장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 김우연 70

 

   2. 피 묻은 시, 흰 뼈의 시/ 서숙희 72

 

 

 

Ⅲ. 나의 시조 산책/ 김진혁 74

 

 

Ⅳ. 시조 낭송(『맥․30호』)- 회원 각 1편씩 78

 

 

 

 

 

 

 

Ⅰ.『맥․30호』에 나타난 주제 의식

 

 

김우연

 

1. 들어가며

 

2010년에 출간된 맥시조동인지『맥․30호-음표로 돋는 새싹』에는 회원 16명의 작품 76편이 실려 있다. 1년에 한 권씩 발행된 동인지라서 30호라면 한 세대의 세월을 거쳐 온 시조 동인지이다. 30호에 발표된 작품들을 살펴보는 것은 나무의 단면을 들여다보는 것 같이 그 나이테처럼 선명한 어떤 특징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작품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시조는 정형시이다. 그래서 먼저 형식면에서 먼저 일별해 보았다. 이번 호에서 단형시조만 발표한 시인은 4명, 연시조만 발표한 시인은 5명, 단형시조와 연시조를 함께 발표한 시인은 7명이다. 사설시조는 2명이 각 한 편씩 2편이 있다. 형식의 구체적인 분석은 자칫 시간 낭비가 될 것 같아서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약간의 변격이나 실험적인 작품들도 눈에 띄기는 했지만 대체로 정형시의 율격을 대체로 잘 지키고 있었다.

시는 시인 자신이 살아온 삶의 발자취를 표현하는 것이다.『맥․30』에 실린 작품들이 과연 어떠한 특징이 있을까 기대하면서 작품들을 분석해 보았다.

그 결과 1) 자아 성찰 2) 순수 서정   3) 일상 생활  4) 그리움  5) ‘역사 의식’  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 밖에도 현실 비판, 예찬, 생태에 관한 것 등이 있었다. 구체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작품 번호는 맥․30호에 발표된 작품 76편을 작품 분포도를 알기 위해서 첫 작품부터 편의상 붙인 번호이다.

 

 작품 번호

편수

자아 성찰(깨달음)

1) 생활에서(삶): 35, 36,37, 38, 39,42,60,76

2)사유의 시:13,14,15,16,17,18,19,41,48,59,64

3) 여행에서 24, 53

23

순수 서정

1, 2, 5, 8, 20, 22, 28, 29, 31, 44,54, 55, 56, 57, 72, 75, 76

16

생활시

 25,26,27,32,34,40,43,50,51,52,58,63,66,67 71

15

그리움

4, 9, 49,62, 65, 68, 69, 70, 73, 74

10

역사의식

 3, 6, 7, 10, 11, 12, 46, 47,

8

현실비판

23,33, 45 61

4

예찬

21

1

환경(생태시)

30

1

합계

78

 

Ⅱ. 주제별로 살펴보기

 

1. 자아 성찰

 

자아를 성찰한다는 것을 자신에 대한 반성이며, 자신에 대한 깨달음이기도 하다. 때로는 자신에 대한 각오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자아 성찰은 생활에서, 깊은 사유에서, 자연을 관찰 등에서 얻기도 한다.

 

1) 생활에서 얻은 깨달음

 

  먼저 이경옥 시인의 작품을 살펴본다.

 

  잘 익은 묵은지 맛

  새싹처럼 파릇하다

 

  버무려지고 곰삭아서

  보시기에 담긴 말씀

 

  화엄이 따로 있는가

  입안에 고이는 경(憬)  

                    -이경옥, <묵은지>

 

이경옥 시인은  ‘묵은지’를 먹다가 곰삭은 그 맛 그 자체가 화엄 그 자체임을 깨닫고 있다. 마치 선시와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묵은지’가 되기까지는 김치의 여러 가지 재료가 다른 재료들과 한 덩이가 되고 또 시간이 흘러서 새로운 맛으로 변한 것이다. 화엄의 세계란 조화의 세계이다. 불국사 기단석처럼 크고 작고 네모지고 둥근 돌들이 모여 하나의 기단으로 존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도 불혹, 지천명의 나이가 되면 젊었을 때와 다른 눈과 가슴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린다.

이경옥 시인은 평소 성품이 원만하고 포용성이 강하지만 근래 들어서는 더욱 그 성품이 무르익어감을 느낄 수 있었는데, 위의 시에서도 그의 성품이 잘 나타나고 있다.

위 시의 표현을 살펴보면 ‘묵은지 맛’이 ‘새싹처럼 파릇하기도 하’기도 하고 ‘보시기에 담김 말씀’이 되기도 하며 결국은 ‘입안에 고이는 경(憬)’이 되기도 하는 등 공감각적 표현을 자유자재로 쓰고 있다.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 하루 세 끼 먹는 것은 나날이 반복되는 일이다. 이처럼 평범한 삶 속에서 그윽한 ‘화엄의 경지(境地)’에 다다른 것은 이미 이 시인의 삶 자체가 시요, 화엄의 경지일 것이다.  좋은 시는 두고 두고 다시 읽어도 새로운 맛이 난다고 한다. ‘묵은지 맛’처럼 위 시도 오랜 세월이 흘러서 다시 읽어도 항상 새로운 맛을 낼 뛰어난 시조라 할 수 있다.

이경옥 이 시 외에도 <물맛을 알다>에서도 “튀어야 사는 세상/ 무색(無色) 무취(無臭) 무미(無味)에” 참된 물맛이 있음을 노래하였다. 순수 그 자체가 최상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생각나는 게 없네”라고 노래하였다. 순수하지 못한 사람들은 항상 무엇인가 목적이 있다. 이 시는 시인의 천지무구한 마음을 표현한 것 같다. 이 밖에도 <바늘귀는 꿰다가>에서는 “등 굽은 내 안의 낙타가/ 바늘귀를 뚫고 있다.”라고 하여 자신이 하는 일이 어려운 일이지만 한 가지 일에 매진하고 있음을 노래한다. 불가능할 것 같은 어려운 일도 능히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정진하는 모습을 보인다. 좋은 시 한편을 얻기 위에서 속에서 나오는 울음 소리를 듣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경옥 시인이 이번에 발표한 다섯 편 중에서 세 편이 삶 속에서 자아성찰을 하며 깨달음을 얻고 있음을 노래하였다.

이제 이경옥 시인은 한국 시조단에서  ‘묵은지 맛’처럼 개성 있는 시조를 발표하는 시인으로 기억될 것이라 믿는다.

 

다음은 조영두 시인도 자아 성찰을 노래하고 있다.

 

작은 것에 목매지 말고

사는 것 같이 살아보자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의 눈빛을 가져보자

 

해지는 삶의 저녁엔

허허로웠다 이를 수 있게.

             -조영두, <어른이 되어서도> 전문

 

우리는 매일 생활 속에서 사소한 것 때문에 성을 내거나 욕심내거나 눈이 멀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조영두 시인은 그런 삶에서 벗어나서  “사는 것 같이 살아보자”고 외치고 있다. 그 길은 “아이의 눈빛”과 같은 순수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럴 때 늙어서 후회 없이 ‘허허로운 삶’에 도달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워즈워드의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란 말을 연상하는 이 말은 남들에게 권하는 청유형 형식이지만 사실은 자신에 대한 반성과 각오를 말하는 것이리라. 결국 세속적 명예와 부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물거품과 같은 것임을 깨달은 자가 아니고는 이런 시를 쓸 수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좋은 시를 쓰겠다는 마음, 좋은 시를 쓰기 이전에 삶 그 자체를 순수하게 진실하게 살겠다는 다짐일 것이다. 좋은 시는 남에게 감동을 준다. 그것은 진실에서 나오는 것이다.

‘허허로웠다’는 말은 순수한 삶으로 사는 사람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를 말하고 있다. 조영두 시인은 순수한 마음, 진실한 마음을 추구하고 노래하는 시인이리라. 맑은 호수가 연상되는 시인이다.

 

평소 생각은 깊게 하되 별말이 없이 항상 남의 말을 많이 경청하는 조영두 시인의 모습을 눈에 보는 것 같다. 시인은 글과 말과 행동이 일치될 때 더욱 가치가 있을 것이다. 조영두 시인의 시에서 세속적 명예나 부귀보다 시에 대한 사랑이 갈수록 깊어짐을 <시를 쓴다>는 작품에서도 잘 나타난다.

 

사람의 욕심이란 끝없는 것이어서

눈앞의 일상에 허위허위 가다보면

영혼이 무미해짐을

뛰는 감동이 쓰러짐을

                  -조영두, <시를 쓴다>에서

 

욕심을 내며 사는 세상은 감동이 사라지게 됨을 말하고 있다.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가슴을 뛰누나”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감동이 없이 산다면 우리 삶이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요즘은 하늘에 있는 달도 제대로 쳐다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하여 조영두 시인은 자신의 예민한 감성이 메마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나날이 행복한 가슴으로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 “무디어 바랜 열정의 날 곧추세워// 묵은 밭 떼를 벗겨/ 옥토를 만들고자// 차가운/ 별빛 맞으며/ 쟁기줄 조여 본다.”로 시작에 대한 각오를 새롭게 하고 있는 것이다. 훌륭한 시인이라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지 않는다면 감성이 무디어 질 것이다. 옛 성현들도 하루에 세 번씩 자신을 돌아보았듯이.

밤이 깊도록 시를 쓰는 상황을 “쟁기줄 조여 본다”는 은유적 표현이 뛰어난 표현이다.  농부가 논갈이 할 때 쟁기를 다루는 기술은 고난도의 기술에 속한다. 소가 논갈이를 잘하기 위해서는 쟁기줄을 적절히 조여야 하듯이 조영두 시인은 시에 대해서 한 작품 한 작품 땀을 흘리며 쓰는 모습도 눈에 선하고 시작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더욱 매섭게 가질 각오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조영두 시인의 <길>에서도 “태초에 불을 밝힌 자/ 그 누구인가”를 묻고 있다. 가슴이 뛰는 감동이 있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시일 것이다. 항상 그 마음을 간직하고 작품을 쓴다면 다른 사람에게 항상 신선한 감동을 안겨 줄 것이라 믿는다.

조영두 시인의 또다른 작품 <세월>은 네 수의 연시조이다. “내가 너를 아는 순간 슬픔이 시작되고// 네가 나를 아는 순간 쌓이는 번뇌들”이란 표현들을 볼 땐 존재론적인 사유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넷째 수에서 “가면 보내고 오면 맞이하며// 한 가슴 저 밑바닥에 우리어 남길 것은// 풋풋한/ 그날의 눈빛/ 진정만 둘 것이다.//고 노래하고 있듯이 조영두 시인에게 삶이든 시든 우리의 정신 세계이든 무엇이나 진정, 진심, 순수한 마음을 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순수한 가슴을 품고 있는 것이리라. 시는 서정 갈래이며 서정이 시의 본령일 것이다. 지금 우리 나라엔 거짓이 참인 양 위장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사이비 민주주의자들이 민주주의자인 양 떠들고 있다. 연평도 사건에서 보면 평소와 말을 바꾸어 안보에 관심을 가진 듯이 떠드는 정치인들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복무 단축이나 서해 5도군 감축을 주장할 때는 잊은 듯이.

시도 마찬가지다. 시는 서정이 시의 본령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조영두 시인은 진정한 시인이며 표현에서도 현대적인 감각과 내용과 표현으로 뛰어난 시를 쓰고 있는 시인이다.

 

다음은 강성태 시인의 <꿈- 기적의 꽃>에서도 자아 성찰이 잘 나타난다.

 

평범한 노력은 보통만 나타날 뿐

남모르게 흘리는 땀이 비범을 낳으리라

처절한 몸부림만이 경이를 보이리라

 

막연한 꿈은 부질없는 바램이다

 

활시위의 긴장과

 

눈물 같은 땀으로

 

무진장

 

뒤척거리는 고독

 

기적의 꽃이 피리라

                 -강성태, <꿈-기적의 꽃> 전문

 

강성태 시인은 시인이자 서예가이다. 바쁜 직장 생활 속에서 시를 쓰면서도 서예에 대한 애착은 남모를 노력을 하게 하여 대한민국서예대전 초대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가 서예인으로서 훌륭한 것은 서예가로서 남들이 가는 길을 그대로 걸어가는 서예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느라 그가 흘린 피땀을 위의 시에서 느껴진다. 서예의 길은 저 산악인이 세계에서 최고봉에 오르는 노력보다 더한 피땀을 흘려야 하는 길이다. 결국 강성태 시인은 기적을 꽃 피운 것이다.

위 작품이 평범하게 “남모르게 흘리는 땀이 비범을 낳으리라”고 진술하고 있다. 결국 ‘땀’이 ‘기적의 꽃’을 피운 것이다.

좋은 시는 감동을 주는 법이다. 비유로써 살아 있는 표현으로써 적절할 때가 있고 진솔하게 진술함으로써 감동을 주는 경우가 있다. 위 시는 후자에 속한다.

“막연한 꿈은 부질없는 바램이다”고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막연한 꿈을 꿀 뿐 피땀을 흘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학교 교실에서도 잠자는 학생들이 있고, 매로써는 절대 학생들을 지도하지 말라고 하는 현실 속에서 수도권 학생들은 잠자는 학생들을 지도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한다. 위 시는 젊은 학생들에게도 교훈을 줄 수 있는 좋은 작품일 것이다. 시를 가르쳐보면 어렵다고 한다. 시조 중에는 이미지만 강조한 나머지 주문처럼 쓴 시들이 보인다. 그런 시들은 음풍농월적인 시조가 거의 사라진 시조단에서 나르시시즘에 빠진 작품일 것이다. 독자가 없는 시가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이 작품은 교훈을 주는 시이다.

 

다음은 이문균 시인의 ‘살다보면 가끔씩’에서 자아 성찰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살다 보면 가끔씩 산으로 가고 싶다

 

가문비나무 회화나무 후박나무 굴참나무 배롱나무 소태나무 물푸레나무 너도밤나무 떨갈나무 물오리나무 은사시나무 섬댕강나무

 

저마다 아름다운 이름

지닌 게 부러워서

 

살다 보면 가끔씩 들꽃이 되고 싶다

 

바람꽃 구절초 노루귀 끈끈이주걱 벌깨덩굴 솜다리 마름쑥부쟁이 처녀치마 홀아비꽃대 제비동자꽃 자주꽃방망이 산괴불나무

 

저마다 목숨을 딛고

사는 게 부러워서

                -이문균, <살다 보면 가끔씩> 전문

 

그런데 이문균 시인의 ‘살다 보면 가끔씩’은 “살다 보면 가끔씩은 산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그 이유는 “저마다 아름다운 이름 지닌 게 부러워서”라고 했다.

앞으로만 무작정 달려가기도 바쁜 삶이 현실이다. 교통, 통신이 발달하고 빨라질수록 더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이럴 때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자신의 삶을 진실하고 가치 있게 살고자하는 반성이요 각오일 것이다.

“살다 보면 가끔씩 들꽃이 되고 싶다”

“저마다 목숨을 딛고 /사는 게 부러워서”

둘째 수에는 “저마다 목숨을 딛고 /사는 게 부러워서”는 자신도 온몸으로 자신의 생명을 돌보고 꽃피우는 들꽃처럼 치열한 삶을 살겠다는 강한 의지를 겸손하게 ‘부럽다’고 표현한 것이리라.

평소 이문균 시인은 도시 생활에서 치열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주말엔 포항 가까이 그의 농장으로 달려가 자연과 동화된 삶을 살고 있다. 그의 삶이 이 작품에 오롯이 담겨 있다.

이문균 시인은 시인이자 사진작가이다. 사진작가는 사물을 바라보는 눈이 날카롭다. 작은 것에도 그냥 놓치지 않는다. 위 시를 읽어 보면 이 시인이 철 따라 수없이  찍었던 사진들이 연상된다. 포항시 기계면 인비리에 있는 이문균 시인의 농장에서 꽃이 철철이 피고 지고 열매 맺고 익는 것도 연상 된다. 생활 속에서 자연을 닮고 자연 속에서 생활을 닮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이 보인다.

『맥․27호』에서  <詩가 된, 인비리>에서 “갈 때마다 무딘 나를/ 댓잎으로 채짹하며// 솔바람 산새소리/ 가슴팎에 안기더니// 기어코/ 다가와서는/ 詩가 된, 인비리//라고 노래한 바 있다. 이문균 시인에게 있어서 ‘인비리’에 있는 농장은 그의 무릉도원이요 시심(詩心)을 일구는 밭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이문균 시인에게 있어서 자연은 그의 마음을 맑히는 스승이요 깨달음을 주는 스승이기도 하며 시를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착한 시인들 모두 여기 모여 사네

 

말채나무, 팔손이나무, 졸참나무,노린재나무, 배롱나무, 편백, 정금나무, 서어나무, 종가시나무, 은목서, 층층나무, 작살나무, 비목나무, 측백나무, 전나무, 감태나무, 삼나무…

 

선암사 찾아가는 길에 처음 만난 서정시인들.

                                -정일근, <선암사 가는 길에> 전문

 

이 시는 정일근 시인이 아주 간명한 구조로써 나무들을 시인에 비유한 작품이다. 나무는 착한 시인이요, 서정 시인이라고 말했다. 어느 절이나 일주문을 지나면 경내가 시작되며 부처를 만나러 가는 도중에 나무들을 보면서 가장 순수한 시인들이 모여 산다고 보았으니 발상이 참신한 작품이다. 위 작품은 선암사 가는 길의 나무들을 보면서 찬탄하고 있다.

 

위의 두 시인의 작품은 나무 이름이 열거되며 사설시조라는 점에서 유사한 면이 있다. 그러나 이문균 시인의 현재 살면서 평소에 보았던 나무 숲을 상상하면서 자아 성찰을 하고 있다면, 정일근 시인의 작품은 눈 앞에 보는 나무에 대한 찬탄을 하면서 서정 시인들로 비유한 점이 다르다. 그러나 많이 다르면서도 공통점이 있는 점이 재미가 있다.

 

 2) 깊은 사유에서 오는 깨달음

 

 서숙희 시인은 이번 호에 실린 ‘민들레 스님’, ‘어머니의 등뼈’, ‘새벽 우물’, ‘중심에 닿는다는 것은’ 깊은 사유를 통한 자아 성찰을 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네 작품의 제재는 ‘민들레’, ‘활’, ‘새벽우물’, ‘과녁에 박힌 화살’들이다. 이 시들에서는 제재들을 설명하는 차원이 아니라 깊은 사유를 거쳐 그것들이 새로운 차원으로 태어나게 만들었다. “시란 말하기가 아니라 보여주기다.”라는 말이 있다. 객관적 상관물을 자신의 눈으로 해석하여 새로운 세계를 만든 것이다. 서정시가 서정시답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며 시의 생명력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게 만드는 방법인 것이다.

이러한 안목과 솜씨를 얻기까지는 수많은 고통을 감수하면서 시작에 매진하여 온 결과일 것이다. 아무리 보석이라도 가공하지 않으면 그냥 돌에 지나지 않듯이 평범한 소재일지라도 서숙희 시인의 가슴과 사유를 거치면 새로운 보석으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서숙희 시인의 시작에 대한 노력은 우리 맥시조의 귀감이 아닐까 생각한다. 서숙희 시인은 시를 쓰는 내공은 그냥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금년에 펴낸 시집『손이 작은 그 여자』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 시집에는 <다시 연필을 깎으며>, <시작(詩作)>, <해바라기, 고흐-런던  내셔널갤러리에서>, <고등어를 굽다>, <불온한, 시> 등에서 시작(詩作)에 대한 태도가 잘 나타나 있다. 이 밖에도 <독(毒), 내 안의>, <불온한, 시>, <그, 곰팡이> 등에도 시에 대한 각고의 노력으로 좋은 시를 얻고자 하는 의지가 보인다.

 

“도를 위해 팔을 자른/혜가(慧可)를 떠올렸다//그때 싯누런 꽃잎들이/ 비수처럼 협박했다 // 말하라, 시를 위하여 너는/ 무얼 잘라 바칠 거냐고//-서숙희,<해바라기, 고흐-런던 내셔널갤러리에서>둘째 수

 

위 시에서 서숙희 시인은 고흐가 자신의 예술을 위해 귀를 자르는 고통을 감수한 것을 보면서 불도를 구하고자 달마에게 찾아간 혜가가 팔을 잘라서 자신의 의지를 보인 것을 연상했다. 그냥 생각하는 차원이 아니라 자신은 그림을 위한 고흐의 행동이나 불도를 구하기 위한 혜가의 각오처럼, 서숙희 시인은 시작(詩作)을 위해 목숨을 던지겠다는 각오가 아니면 이런 시를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고등어를 굽다>에서는 “제 온몸 태워 얻는 저 소신공양의 시 앞에서/ 쉽게 쓴 내 결핍의 시가 오늘은 부끄럽다”고 간담이 서늘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서숙희 시인으로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노력을 하도록 자신을 돌아보면 가혹한 채찍을 해 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다시 연필을 깎으며>에서는 “뼈처럼 뾰족하게 깎아 낸 곧은 연필로/ 저 극점 한 방울 피를 찍어/ 쓰리라, 나의 시를//”이라고 하였듯이 그냥 쉽게 쓰는 시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뾰족하게 자신의 영혼이 아프도록 써 왔으며, 온 몸을 던져서 시를 쓰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표현이 나올 수가 있으랴.

 시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서숙희 시인은 허튼 소리 하는 시인이 아니다. 어떤 어려움도 참고 견뎌 나가는 시인이다. 서숙희 시인은 시 이전에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 이미 눈부신 탑으로 존재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하나의 탑으로 솟기까지는 내면에 시퍼런 칼날을 품지 않고서야 어찌 저절로 솟아나겠는가. <독(毒), 내 안의>에서 “정신의 시린 칼날에 박힌/ 내 안의, 푸른 독(毒)>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 곰팡이>에서도 “최선을 다해 살아 낸 사과의 사리다”고 했다. 곰팡이도 최선을 다 하듯이, 하물며 시인은 온몸을 태워서 ‘사리’를 얻고자 하는 각오를 보인 것이리라. <불온한, 시>에서도 “뼈보다 희고 단단한 한 줄 시 일어서 오네”라고 하였으니 일관되게 시를 향한 서숙희 시인의 각오와 노력은 서늘한 기운마저 느껴지며, 오늘이 있기까지 목숨을 건 노력이 있었음을 바라보면서 타산지석으로 삼고자 한다.

서숙희 시인의 소원은 <시작(詩作)>에서 “눈부신 말의 사원 한 채, 나 짓고 싶어라”라고 노래한 바 있는데, 이미 사원의 본 건물뿐만 아니라 요사채, 주변 경관까지 아담하면서도 우람하게 꾸몄고 앞으로도 더욱 꾸며 나갈 것이라 믿으며 앞으로도 더욱 정진이 있으리라 기대한다.

『손이 작은 그 여자』에 대한 작품해설을 『맥․30호』에 소개하지 못한 아쉬움과 함께 이번 호에 실린 작품을 감상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먼저 금년에 발표한 작품 중에서 시작과 관련된 몇 작품만 살펴보았다.

이 시집에 대한 ‘작품 해설’ (손진은, 시인, 경주대 교수)에서 “ 서숙희의 두 번째 시집『손이 작은 그 여자』에는 서정성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식물적인 생명성이 도처에 흐르며 둥글게 넘쳐나는데, 여기에서 사물과 시인, 우주는 대립이 없이 서로 스며든다. 이러한 원융한 세계관 속에서 사물은 원래 가지고 있었던 각진 상채를 풀고 세계 속으로 풀어지며 화해한다. 그것의 근저에는 어느 것 하나 없이 ”세상의 모서리를 풀어내“는 ”둥근 율(律)“이라는 정서가 깔려 있다. 서숙희 시 세계를 아우르고 있는 ‘둥글음’의 정서는 앞으로 더욱 새롭게 변용되고 확장되어 한국 시조단에 뚜렷한 진폭을 거느린 둥근 울림으로 자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하였다.

 

다음 작품은 『시조21』하반기에 발표하여 금년(2010)도『열린 시학』이 주관하는 제2회 ‘열린시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는데, 수상 발표가 있기 전에『맥․30호』에도 게재하였다.

 

과녁에 박힌 화살을 뽑으며 알았네

섬뜩하도록 탱탱한 손끝에 닿는 전율은

제 몸에 깊숙이 꽂은

뜨거운 비명임을

 

중심에 닿는 다는 건

스스로를 관통하여

운명의 입속을 향해

자신을 쏘는 것

아, 그대

먼 과녁이여

내 아득한 중심이여

          -서숙희, <중심에 닿는다는 것은> 전문

 

 

심사 위원들(이승은, 오승철, 이지엽)은 “서숙희 시인의 활달한 언어 구사와 삶에 투영되는 정서적 일체감, 그리고 정제되고 압축된 시세계로 깊은 공명(共鳴)을 자아낸다.”며, “수상작 <중심에 닿는다는 것은>에도 중심이라는 한 곳을 향해 질주하는 욕망의 세계를 표출하고 있다.”며 ‘운명이 입 속을 향해/자신을 쏘는 것’처럼 현실의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진지한 삶의 태도로 귀결돼, ‘내 아득한 중심’ 즉 ‘그대’라는 ‘먼 과녁’을 향한 여정에 정형미학의 진경이 펼쳐졌다.”는 평을 하였다.

시어가 적절한 비유나 상징을 거친 함축적인 경우 독자는 독자의 눈으로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이 좋은 시의 묘미이다. ‘중심에 닿는다는 것은’ “내 아득한 중심이여”이여라고 하듯이 쉬운 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중심이 자신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제 몸 깊숙이 꽂은” 것이며, “운명의 입속을 향해/ 자신을 쏘는 것”이라고 하였다. 서숙희 시인의 여러 시편들에서 나타나듯이 자신이 ‘운명’으로 여기는 일을 향해 뼈를 깎는 각오를 넘어선 제 몸을 던지는 각오가 더욱 시적 형상화가 된 작품인 것이다. 동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 시를 바라볼 때 시작(詩作)을 향한 끊임없는 정진의 모습이 느껴진다. 늘 자신을 돌아보면서 마음을 다잡는 모습이 느껴진다. 그러나 독자의 입장에서는 목표 도달을 향한 일이 무슨 일이든지 쉬운 일이 있으랴. “내 아득한 중심이여”라고 목표가 저 멀리 느껴지는 일이지만 그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것이 유한한 인생에서 무한의 생명의 얻는 길로 나가는 방법이라 여겨진다. 멀리 목표인 만큼 그 목표가 크고 값진 것이기 때문이며 오랜 생명을 얻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숙희 시인은 앉아서만 명상만 하는 것이 아니다. <민들레 스님>에서는 동네 골목길 허름한 담벼락에서 본 노란 민들레꽃을 보면서 장좌불와 정진하는 하안거에 든 스님으로 형상화하였다. 그 꽃이 홀씨로 날아가는 것을 보면서 “신발도 바랑도 없는, 참 가벼운 만행길”이라고 표현하였으니 이 경지는 모든 욕망을 초월한 깨달음을 얻은 자의 모습이리라. 서숙희 시인 자신이 시를 쓰면서 우주를 생각하고 우주와 하나 되기를 원하고 있음이리라.

『손이 작은 그 여자』에서 <길, 삼보일배>에서는 삼보일배를 하면서 직립으로 걷는 것은 태어나면서 보통 인간이 걷는 모습이라고 깨달았다. 그래서 “무릎과 허리와 머리 그리고 마음까지/ 꺾고 굽히고 낮추고서야 알았네”라고 참된 삶의 모습의 깨달음을 노래하고 있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셔놓은 곳만이 적멸보궁이 아니라 오체투지의 참회 끝에 “꺾고 굽히는” 참된 삶을 “길은 환한 적멸보궁”이라고 깨달음의 환희를 노래하였다. 그래서 부처만이 부처가 아니라 “흙부처/ 돌멩이부처/ 자갈부처/ 풀부처”라고 하니 이미 승속을 떠난 경지가 아니고 무엇이랴. 생물 무생물 인간 동물 등의 분류는 속된 이가 철없을 때 엄마 부르는 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손이 작은 그 여자』의 시작(詩作)에서는 “오오 나, 말을 버리겠네 마침내 버리겠네”라고 하였으니 언어도단의 경지다. 서산대사의 『선가귀감(禪家龜鑑)』 첫머리에서 “古佛未生前에 凝然一圓相”(옛 부처가 나기 전에 한 상이 두렷이 밝았도다.)고 한 말과 같은 경지가 아닐까 한다.

 

<어머니의 등뼈>에서는 활을 보면서 어머니의 굽을 등뼈를 연상한 것도 참신하다. “자신이라는 화살을 / 세상에 쏘아내느라// 일평생/ 구부리고 또 구부린/ 하얗게 바랜/ 저 활”이라 하였으니, 시적 화자는 관찰자의 입장에 있지만 실제로는 활을 보면서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리라. 활을 보면서 자신의 돌아보고 있으리라.

 이 시를 읽는 독자 역시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으랴. 어머니에 대한 생각은 아무리 생각한들 끝이 없을 것이다. 그 은혜가 바다보다 넓고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보다 더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식의 입장에서는 부모가 되어 보지 않고는 알기 힘들 것이다. 더구나 물질적으로 풍부한 요즘 세대의 젊은이들이 어찌 부모의 은혜를 쉽게 느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누구나 그 은혜를 알게 되는 것이다. 돌아가시고도 항상 살아계시는 것 같이 느껴지는 것이 아버지 어머니가 아닐까 한다. 그 중에서도 태어나면서 생명을 젖줄을 주신 어머니에 대한 생각은 끝이 없을 것이다. 이 시를 읽는 이는 노소를 막론하고 시공을 초월해서 어머니를 생각하게 하는 천의무봉의 시가 아닐까 한다. 이런 시는 어릴 때 읽힐수록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새벽우물>에서 ‘우물에 밤새 새로 고인 물’을 “알 수 없는/ 깊이와/내통한/불온서적//”이라고 은유하였다. 불온서적이지만 “금기의/ 푸른 두레박/ 서늘히/드리우고픈,//”이라고 하였으니 시적 흐림이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고도의 상징과 비유로 형상화되었기 때문이다. ‘불온서적’은 어쩌면 무의식의 세계가 아닐까 한다. 프로이트가 말한 ‘이드(id)’의 세계는 의식계인 ‘에고(ego)’에 의해 억제를 받아 현실 사회 생활에서 문제가 없도록 한다. ‘초자아(super-ego)’는 무의식이 주가 되지만 의식계에서도 약간은 나타난다고 한다. 종교심이나 양심 같은 것이.『손이 작은 그 여자』의 <불온한, 시>를 연상하기도 한다. <불온한, 시>에서는 팽이가 맞을수록 곧게 서듯이 온몸을 내리치는 채찍질을 맞는 피학의 황홀 속에 “눈부신 은유는 피어”라고 하여 “늑골을 추리듯이 상처를 헤집으면/ 뼈보다 희고 단단한/ 한 줄 시 일어서 오네”라고 하였다. 피나는 정진 끝에 시를 얻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제목에서도 ‘시’를 말하고 있으며 종장에서도 은유로서 말하되 ‘단단한 시’를 얻었음을 노래하고 있는데 반해 <새벽우물>에서는 은유와 그것을 넘어선 상징으로 표현하여 더욱 다양하게 생각을 하게 한다. 맥시조 카페에서 이 시에 대한 서숙희 시인의 해설이 보인다.1) 이제 서숙희 시인은 자유자재로 하늘을 나는 봉과 같이 나름대로의 하늘을 훨훨 날고 있음이 느껴진다. 좁은 하늘에는 답답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하늘을 나는 새도 저녁이면 보금자리로 돌아온다. 날고, 앉고, 펴고, 접고, 둥글고, 때로는 송곳 같이, 물처럼, 불처럼, 바다처럼, 접시물처럼, 바위처럼, 조약돌처럼 자유자재로 살 것이라 기대한다. <민들레 스님>처럼 그 험난하고 힘든 ‘만행길’도 무겁거나 가벼움을 떠나서 훨훨 ‘만행길’에 나선 민들에 스님과 같은 모습을 기대한다. 그곳이 흙이거나 시멘트거나 벽돌틈이거나 옥상이거나 가리지 않는 민들레 스님의 모습이야 말로 화엄경에서 선재동자가 생활 속에 살아 있는 스승들을 찾아가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작품이다.

『손이 작은 그 여자』의 작품 해설에서 “서숙희 시인의 감각이나 이미지의 특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물활론적 상상력이라고 부를만한 생명성에 있다.”고 했듯이 <민들레 스님>은 ‘물활론적 상상력’이 동원된 최고 경지의 작품이 아닌가 한다.

 

박광훈 시인의 다음 작품도 깊은 사유를 거쳐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다.

 

시간이 빠져나간 사각의 묵정밭에

사유의 껍질들이 혼절한 채 나뒹굴 쯤

내 안의 신경촉들

본능처럼 눈을 뜨지

 

터진 살 오므리고 휘인 뼈 곧세우고

때론, 그냥 갈까 아니다 돌아서서

쓰윽 쓱

이쪽저쪽을

꽃망울들 눈에 밟혀

                 -박광훈, <칠판지우개> 전문

 

칠판은 수업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도구이다. 그곳에 필기한 내용이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도 수업이 끝나면 지우개 된다. 묵정밭의 잡초와 같이 쓸모 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

박광훈 시인은 시인 이전에 우리 교단을 묵묵하게 지켜온 훌륭한 교사이다. 그래서 일상 생활에서 칠판을 항상 가까이 하고 있다. 그런데 박광훈 시인에게는 이 칠판이 단순한 칠판이 아니라 시를 쓰기 위해 온통 사유로 가득찬 시인의 가슴이 또한 칠판임을 깨달은 것이다. 한 편의 시를 쓰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오가는가. 그 생각들을 닦아내고 새로운 생각을 하고, 글로 쓰고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는 사이에 새로운 생각들이 일어남을 “내 안의 신경촉들/ 본능처럼 눈을 뜨지”라고 노래하고 있다. 얼마나 시를 쓰기 위한 치열한 투쟁이 지우개의 “터진 살 오므리고 휘인 뼈 곧세우고”라고 말속에 잘 나타난다. 칠판지우개가 오래되면 살이 터지듯이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 산모의 고통보다 더한 고통으로 시작에 매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시는 ‘사각의 묵정밭’, ‘사유의 껍질들이 혼절한 채 나뒹굴 쯤’이란 표현이 빼어났다. 이미 박광훈 시인은 은유의 방법을 잘 체득해서 아주 적절히 사용하고 있다. ‘툭/ 툭/ 툭’이란 의성어도 표현도 ‘신경촉들’과 잘 어울린다. 배행법도 장별, 구별, 음보별, 자수별 등 두 수의 연시조 안에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 것도 현대시조의 특징을 잘 살리고 있다.

 

강성태 시인은 <행복자리>에서 “뜻의 기둥 세우고 믿음의 서까래 치니” 마침내 “무지개 빛 행복자리”라고 노래하였다. 학문을 하는데도 뜻을 세우는 것이 첫째라고 하였다. 벽돌 쌓듯이 차곡 차곡 쌓아올린 결과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고 행복을 찾는 과정을 잘 보여주었다. 강성태 시인의 시는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어떤 일이든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이 작품 역시 자아를 성찰하면서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리라는 각오도 엿보인다.

 

김일용 시인은 달항아리를 보면서 현대인에게 필요한 따듯한 정을 돌아보고 있다.

 

시간의 물레 잣던 조선 여인 숨결 소리

실꾸리에 감아두고 풀지 못한 날들을

들숨과 날숨을 골라 한 땀 한 땀 꿰매던 밤

 

어둠 뚫고 둥두렷이 솟아나는 달 한 채

고부간에 토닥토닥 다듬이질 하시는가

덩이로 굵어가던 정, 오롯이 담겨있다

 

하연 살결 그 품안에 어리광을 부려볼까

어깨 살짝 기대서서 온기를 느껴볼까

넉넉히 감싸 안아줄 달항아리 우리 엄마

                          -김일용, <백자 달항아리> 전문

 

 

박물관에서 ‘백자 달항아리’를 바라보면 달을 바라보는 것같이 왠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인간이 만든 작품이되 자연처럼 느껴지는 것이 ‘백자 달항아리’이다. 이 자연스러움이 서구 사람들에게는 추상적인 작품으로 느껴지면서 찬탄을 하고 있는 것이다. 피카소보다 500년 앞서서 이런 작품이 나온 것에 서구인들은 찬탄하는 것이다. 그러나 추상적인 작품을 만들 의도로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삶 자체가 달항아리와 같았기 때문에 그런 작품이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다. 우주선 발사에는 백만분의 1초만 어긋나도 궤도에서 벗어나고 마는 것이다. 초정밀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그러나 달항리를 만든 이는 보통 항아리 두 개를 합쳐서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한 쪽이 튀어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미가 탄생된다고 한다.

김일용 시인은 이 백자 달항아리에서 조선 여인의 숨결 소리를 듣고 있으며, 고부간에 다듬이질 하면서 서로 주고받은 정을 오롯이 담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그런 달항아리는 마침내 ‘우리 엄마’와 같은 정을 느끼고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 하는 마음이 나타난다. 이 시를 읽으면 마음이 포근해 진다. 그것은 세상을 따뜻이 감싸는 마음이 넘치고 있으며 세상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감싸 안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아주 분명한 것도 불신하는 정신병에 걸린 사람들을 제법 본다. 잘되면 제 탓이요 못 되면 남 탓으로 돌리는 한 이 병을 가지고 있는 한 치료하지 못할 것이다. 이시영의『세로토닌하라』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이 자신을 긍정적인 인간으로 바꾸며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하였다. 세상을 부정하고 파괴하여 자신의 행복을 찾고자 하는 자는 결국 위선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사는 자일 것이며, 욕구 불만 해소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백자 달항아리>에 나타난 따듯한 정일 것이다. 김일용 시인은 <백자 달항아리>를 보면서 많은 사유를 하였고 현대인이 나갈 길을 보여주고 있다. ‘웰빙 시대’를 넘어서서 ‘웰다잉’ 시대로 가는 요즘, 우리 젊은이들 중에는 결혼 할 때 ‘시부모’가 죽고 없었으면 좋겠다는 젊은이들도 제법 있다고 한다. 결혼하여 시어른들을 섬겨야 하는가 하는 부담감 때문이리라. 그러나 지금도 이웃을 돌아보면 현명한 이는 시부모의 사랑을 흠뻑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또한 얼마나 많은가. 자신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김일용 시인은 “고부간에 토닥토닥 다듬이질 하시는가”라고 노래하듯이 긍정적인 생각, 삭막한 현대에서 따뜻한 정을 가슴에 품어야 함을 느끼게 만든다. 우리가 사는 목적도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음은 손수성 시인은 깊은 사유를 통해 자신을 돌아본다. 그러면서 그 의식이 이웃이나 사회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번 호에 발표된 작품 세 편 모두 단형시조이다.

평소에도 말이 적으면서도 화살이 과녁을 명중하듯이 꼭 필요한 말만 하는 시인이다. 그러면서도 차가운 성품이 아니라 늘 입가에 웃음이 맴돌고 있는 따뜻한 성품을 가졌다. 교사로서도 탁월한 능력과 남다른 애정으로 학생들을 지도하여 감동을 주었으며(‘94년 경향신문에 <靑桐의 바람>으로 당선되었을 때 소감문에 “그동안 지방 명문고 3학년 담임 4년만에 내 시는 시들대로 시들었다. 시보다 진학지도에 힘을 쏟았다. 그러다 보니 제자들은 ○○대 단과대 수석을 하는 등 명성을 날렸으나”), 동료 교사뿐만 아니라 선후배 교사들 사이에서도 존경을 받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비 오는 날의 우산이 되어주며 강을 건너가게 뗏목과 같은 구실을 해왔다. 교감, 교장으로서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여 칭송이 자자하였다. 지금은 도장학관으로서 교육의 초석을 다지고 있다.

그의 성품과 신념이 시를 통해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내 안에 사는 나팔꽃

나를 밀어 올리리라

 

바람을 휘감으며

허공도 오르게 하리라

 

담장을,

넘는 환희로

내 주변을 웃게 하리라

                       -손수성, <연두빛 신앙> 전문

 

제목이 ‘연두빛 신앙’이다.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신앙의 숭고한 차원으로까지 끌어올리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 이와 같은 시는 삶을 되돌아보고 이웃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이런 시를 쓸 수가 없다. “내 안에 사는 나팔꽃”이 “담장을,/ 넘는 환희로/ 내 주변을 웃게 하리라”라고 하였다. 꽃을 바라보면서 성을 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꽃을 보면 우울했던 마음마저 활짝 펴진다. 그러한 꽃이 되겠다고 한 것이다. 요즘은 자신도 돌아보지 못하는데 남까지 돌아보는 마음이야 말로 시인이 마음이요 순수의 결정체이다. 자신의 행복은 물론이요 남들까지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 한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내 안에서 “나를 밀어 올리”는 고통을 극복한 후의 일이다. 사실 손수성 시인을 아는 사람들은 느낄 것이다. 이미 그는 한 송이 나팔꽃으로 존재해왔다고. 그와 이웃한 사람들은 나팔꽃으로 인하여 웃는 삶을 살았다고. 그러나 꽃은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피는 것이 아니다. 피고 지더라도 꽃을 피우기까지는 처음이나 끝까지 온몸으로 피우는 것이리라. 자신을 항상 돌아보면서 꽃을 피우고자 애쓰는 시인이 모습이 눈에 보인다. 한편의 아름다운 시도 한 송이 나팔꽃이 되기도 할 것이다.

이 시 외에도 “파도를 가로막고 물보라 날리던 방파제가/ 스스로 베개가 되어 파도의 머리를 받쳐들 때/ 사방의 거친 숨결을 내려놓은 저 바다//-<우리도 베개가 되면”에서도 파도를 막는 방파제가 베개로 은유한 것이 참신하다. 파도 머리를 잠재우는 베개가 되어 결국은 “거친 숨결을 내려놓은 저 바다”에서는 고도의 상징이 나타나고 있다. 이 작품도 개인의 내면에서 사회 의식으로 확대되어 나타난다.

우리 사회에는 유달리 파도와 방파제가 싸우듯이, 이분법의 논리가 판을 치고, 모든 현상에는 편 가르기가 횡횡한다. 남북 갈등도 문제이지만, 남남 갈등은 이 사회가 넘어가야 할 험난한 파도이다. 이럴 때 손수성 시인은 절망하거나 저주하거지 않고 스스로 파도를 가로막는 방파제가 아닌 파도를 잠재우는 베개가 되겠다고 한 것이니 깊은 사유를 거쳐서 사회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방파제도 인공물이지만 산에서 내려다보면 개미들이 기어가는 것처럼 조그마하게 보인다. 저 넓은 바다에서 인간이 만든 방파제는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 그래서 인공물과 자연은 결국 하나가 되고 바다는 거센 숨결을 내려놓게 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도 자신의 진정한 마음을 찾는 것을 비유한 그림 ‘십우도’가 있다. 길들여지지 않는 소는 저 험난한 파도를 일렁이는 바다와 같은 존재일 것이다.

손수성 시인의 <우리도 베개가 되면>은 자신의 내면을 먼저 다스리고 끝내 이 사회의 험난한 파도를 잠재우는 베개가 되겠다고 한 것이다.

<찌푸린 날>에서는 먹을 것이 없을 때, 제 새끼들은 위하여 내장을 뽑아 주는 거미들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있다. 자기 자식을 위해서 희생을 하는 것은 내장을 뽑아주고 거미와 다를 바가 있으랴. 하물며 마지막 운명을 하는 분들을 바라보면 자기 자식에게 모든 것을 다 주고 떠나는 삶이라 생각하며 숙연하게 만든다. 이렇게 해서 생명은 이어가고 또 이어가는 것이리라.

 

3) 여행에서 얻은 삶에 대한 깨달음

 

여행은 항상 새로운 경험을 하는 최상의 방법으로 평범한 사람들도 새로운 것에 을 보면서 찬탄을 하기도 하며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맥․30호』에는 기행 작품이 김진혁, 김우연, 김제흥 시인의 세 편 나타나며, 모두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계기를 삼고 있다.

먼저 김진혁 시인의 <차마고도>이다.

 

 ‘차마고도’에 대해서는  KBS가 6부작으로 방영한 이후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 차마고도는 실크로드보다 200여년 앞선 인류 최고의 교역로로 중국 서남부 운남성(雲南省)에서 티베트를 넘어 네팔 인도까지 3000km 넘게 이어지는 육상 무역로로 유럽까지 연결되었는데, 중국의 차(茶)와 티베트의 말(馬)을 교역하기 위해 형성되었다고 한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 그 먼 길을 생명을 무릅쓰고 개척한 것은 경이롭다 못해 기적처럼 느껴지는 길이다.

 

란찬강, 그 누런 강물

굽이치는 계곡 허리쯤

4천고도 눈썹 길

손톱만한 황토밭 일궈

꺼질 듯 꺼지지 않는

가는(細) 불빛

다.

 

하늘은 이마에 닿아 아슬한 벼랑길 어귀

안개 속 햇차 싣고 산맥 넘는 늙은 마당

천의 색 깃발을 꽂고 바람의 말도 헤아린다.

 

양 어깨 박히도록 휘청이는 두레 매고

실 같은 뚝방길로 발바닥이 다 닳도록

대대로 이어 사는 길,

하늘 닮은

참 자유인.

 

높은 설산 빙하 지나 협곡을 쓸며 끌며

온 몸으로 헛된 욕망 씻고 또 깎아내며

허무한 중생의 길을 천지간에 여는가.

 

수천 년 열린 길로 하늘 뜻만 오롯이 받아

대를 이은 땀방울과 뼈를 깎아 일군 고도

내 한갓 문명의 삶도 예 와선 한줌 바람.

                       -김진혁, <차마고도>

 

위 시는 ‘차마고도’의 먼 길처럼 5편의 긴 연시조로 이루어졌으며, 차마고도의 높은 산악 지대의 외줄기 길이 연상되도록 첫째 수에서 “외/롭/다”를 한 행씩 배열하여 시각적인 효과를 잘 살렸다.  우리들이 평소 일상에서 벗어나 교외 가까운 산에만 가더라도 산에서 만난 사람들은 왠지 반갑다. 산에 있는 동안이라도 모두 산을 닮았으며 산을 오르면서 맑은 하늘 한 자락씩 온몸에 두르고 있음을 서로가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손톱만한 황토밭 일궈” 길을 내고 살아가는 ‘차마고도’를 이용하는 인간들에겐 “발다박이 다 닳도록” 걷고 또 걸으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대를 이어 살아간다. 그들을 눈으로 바라봄에 “하늘을 닮은/ 참 자유인”임을 깨닫게 된다. 불가에서는 ‘탐진치’를 삼독이라 하였으니 하루도 욕심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그러나 이 차마고도에선 욕심을 넘어, 생명을 던진 고행과 같은 삶 너머로 김진혁 시인은 “참 자유인”의 모습을 본 것이다.

결국 인간의 부귀, 영화, 욕심은 한 찰나에 지나지 않음을 분명히 깨닫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 한갓 문명의 삶도 예 와선 한줌 바람”이라고 노래하였다. 현재 우리들의 문명된 삶이란 달도 별도 하늘도 잊고 사는 삶이다. 추위도 더위도 잊고 살아가는 삶이다. 이 편안하고 안락함이 어쩌면 우리의 정신 세계를 황폐화시키고 자신의 참모습을 잃게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김진혁 시인은 ‘차마고도’에서 우리의 진정한 삶,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깨닫고 있다. 자신에게는 물론이요 우리들에게도 “헛된 욕망을 씻고 또 깎아내라고”하고 있다. 그길만이 “참 자유인”이 되는 길이기 때문이리라.

내가 김진혁 시인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80년이다. 처음 안강 칠평천에서 평원석을 탐석하면서 만났다. 맑은 물이 흐르는 돌밭에서 하시는 말마다 돌보다 순수하고 물보다 순수한 말씀을 하셨다. 김진혁 시인을 만나서 잠시라도 대화를 하면 그의 서정을 느낄 수 있다. 가슴에서 나오는 일상의 말이 모두 풀이 되고 꽃이 되고 물이 되고 바위가 되며 시가 되었다.

또한 시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조주환 선생님께 사사하시면서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으로 시를 써 왔다. 이제 <차마고도>에서 “참 자유인”의 모습을 한번 더 확인하였으나 이미 김진혁 시인은 “참 자유인”의 삶을 추구하였으며 “차 자유인”으로 살아온 것이다.

 

다음은 김우연 시인은 <쿼바디스 도미네 성당-예수님 발자국을 보고>를 노래하였다. ‘쿼바디스 성당’은 로마시 남쪽에 있는 교외로 벗어나는 세 갈래 갈림 길에 위치해 있다. 로마 네로 황제 때 기독교 박해로 인해 베드로가 로마를 벗어나려 할 때 부활하신 예수님은 로마로 들어오시는 것을 보고 베드로가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예수님의 신발 자국을 보면서 “우리들 짧은 삶도 갈림길 연속인가”를 노래하면서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결국 “지나간 발자국이야/바람이 살짝 지우고.”라 하여 유한한 인생에서 굵은 발자국을 남기려는 것도 인간들의 욕심임을 노래하였다.

 

다음은 김제흥 시인의 <부산여행>이 있다. ‘해운대’, ‘금정산’, ‘금강공원’, ‘태종대’라는 단어만 봐도 부산이 눈에 선히 뵈는 듯이 표현하였다. “오늘도 먼 길을 나선 그림자도 데리고”라는 표현이 뛰어난 표현이다.

여행은 삶을 늘 새롭게 만든다. 혼자서 떠나는 여행이 자신과의 대화를 나누기에 더 적절하다고 한다.  김제흥 시인은 혼자서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김제흥 시인은 혼자 다니더라도 혼자가 아니다. “오늘도 먼 길을 나선 그림자도 데리고”라는 말을 보면 ‘그림자’와 함께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 그림자는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존재이며 결국 자신의 내면과 만나게 해주는 존재로 그림자가 존재하고 있다.

 

2. 순수 서정

 

앞에서 ‘자아성찰을 통한 깨달음’의 시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많이 나타난 것이 순수 서정시들이다. 시는 서정 갈래이기 때문에 뛰어난 서정시는 세월이 흘러가도 독자들에게 늘 새롭게 다가온다. 새 봄이 돌아오면 새로 피는 진달래를 보면서 새로운 감동을 느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쫑쫑 물 쫑쫑

조약돌에 떨군 울음이

 

소금쟁이 실여울에

물무늬로 가 앉다가

 

풋잠 든 아가의 눈에

방울방울 벙근다.

                -조주환, <물총새>전문

 

조주환 시인은 맥시조(비화시조문학회)를 창립하여 초대부터 3대회장까지 지내며 초창기 회를 만들고 어려운 산을 헤치고 길을 내시어 맥시조가 오늘에 이르게까지 이르도록 하셨다. 지금은 맥시조문학회의 명예회장으로서 본회의 정신적 지주이다. 본회가 주로 포항 지역에 거주하는 시인들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 왔기 때문에 타 지역 사람들이 보면활동 무대가 포항인 줄로 알고 있다. 문인들에게 지역이란 무엇인가? 전국적으로 보면 한국문인협회 산하의 지부가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포항에 거주하는 맥시조문학회 회원 중에는 포항문인협회에 가입하지 않은 이가 대부분이다. 실제는 가입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예 차단된 것이다. 문학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을 구원하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문인들 중에는 그런 목적을 망각하고 자기 삶의 도구로 이용하는 타락된 문인들도 있다. 폐쇄적인 사고를 가진 포항 지역의 일부 문인들은 바다를 위로 날마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반성해야 할 일이다. 가슴부터 여는 것이 문인을 떠나서도 참다운 인간의 길을 걷는 것이 될 것이다. 문인들이 남들보다 닫힌 가슴을 가지고 어떻게 인간 구원의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배를 채우고 명예를 채우기에 바쁜 자세를 벗어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조주환 시인은 그런 현실에 구애받지 않고 묵묵히 시인의 길을 걸어 왔다. 주로 굵은 역사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는 시를 서 왔지만, 시의 본령이 서정이라는 것을 늘 강조하였다. 주제가 역사적이든 어떤 것이든 그 밑바탕에 탄탄한 서정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감각의 표현을 강조하였다.

위 시 <물총새>를 읽어 보면 화자는 물총새의 울음이 조약돌에 떨어지고, 그것이 소금쟁이 물무늬로 앉다가 풋잠 든 아가의 눈에 방울방울 벙그는 것을 시각적 이미지를 살려 눈에 선히 보이도록 표현하였다. 순수 서정시의 전범이 될 만하다고 생각한다.

철학자 김상일 교수는 우리의 고유 사상을 ‘한 사상’이라 말한 바 있다. 동서양 문화에는 차이도 많다. ‘한 사상’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수지침을 예로 들었다. 서양 의학에서는 위가 아프면 위를 수술하든가 위 치료를 위한 약을 먹게 된다. 그러나 신체의 어느 부위가 아프든지 수지침은 그 상응점에 해당하는 손바닥이나 손등에 침을 놓는다. 신체 각 부위가 서로 다르면서도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우리 한의학에서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의상 조사께서 석옥 화상으로부터 깨달음을 인가받기 위해 쓴 ‘법성게’를 210자로 표현하되 불교의 사법인을 사각 형태로 나타내되 풍물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아가듯이 첫 구가 마지막 구에 만나도록 배열한 것도 ‘한 사상’과 관련하여 설명하였다. 깨달은 이의 눈으로 보면 삼라만상이 인과 연으로 이어져 있다고 한다. 김상일 교수는 서양의 사상의 변증법을 나뭇잎이 힘줄이 엇갈려 있는 것에 비유하였다. 서로가 적대시하여 투쟁과 투쟁으로 역사가 흘러간다고 본 것이다. 서양 사람들이 감탄하는 중국의 사상에는 음양이 짝을 이루어 조화를 이루는 것에 있다고 한다. 나뭇가지로 말하면 서로가 짝을 이루어 조화를 이룬 상태의 형상이다. 그러나 우리의 ‘한 사상’을 ‘물결’이 원을 이루면서 퍼져 가는 형상이라고 한다. ‘법성게’의 첫 글자가 마지막 글자에 이어져서 끊임없이 돌고 도는 형상과 같은 것이다. 그리하여 원에서는 어느 한 점이 시작이며 끝이요 끝이며 시작인 것과 같은 것이 ‘한 사상’이라 한 것이다. 미래 인류를 구원할 사상이라 여겨진다. 지금은 전에 없던 종교 갈등의 조짐이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조주환 시인의 <물총새>를 읽으면 우리의 ‘한 사상’이 그대로 나타나 있음을 느끼게 된다. 청각인 ‘울음’이 시각인 ‘물무늬’, ‘아가의 눈에 방울방울 벙그는’ 등의 공감각적인 표현도 잘 나타나 있다. 우리의 ‘한 사상’에서는 서로 별개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서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개별자로 존재하는 것이니 ‘울음’이 ‘물무늬’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이 당연한 이치를 시로 표현해 내는 능력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다. 아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존재이다. 아기를 바라보는 어버이의 눈은 아기에게 오히려 감사하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아가의 눈이 살짝 웃더라도 온 세상이 웃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물총새>는 우리의 ‘한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는 순수 서정시로 오래 오래 기억될 작품이라 믿는다.

 

조주환 시인은 <미소-연꽃에게>에서도 단형시조 속에 연꽃을 보며 웅장한 우주를 펴 보였다가 영혼을 밝힐 한 떨기 꽃으로 표현하였다. 연꽃이 미소를 짓고 있으며, 한 송이 연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수많은 세월과 인연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다.

“몇 억 광년이나/ 몇몇 겁을 굽이돌다// 관음의 아미(蛾眉)에 닿아 푸른 숨결로 태어난 듯// 척박한 이 땅을 밝히는/ 영혼의 꽃/ 한 떨기.//”

 

연꽃이 살아가는 땅은 맑은 물이든 탁한 물이든 가리지 않는다. 주어진 곳에서 주변을 환하게 밝힌다. 그래서 조주환 시인은 우리 인간들 중에도 저 연꽃과 같이 피어난다면 세상의 영혼을 밝히는 미소요 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단형시조에서 그 웅장함과 아울러 “관음의 아미(蛾眉)에 닿아”라고 극미한 것까지 자유자재로 표현함으로써 시적 긴장감을 살렸다. 근래 단형시조에 대한 평가가 높아지고 있다. 이 <미소-연꽃에게>는 단형시조의 한 전범이 되리라 본다.

천 길 깎아 세운

벼랑 끝 성벽(城壁)을 물고

박힌 피멍 낱낱

기름을 짜 불붙인다.

그 등뼈 짙푸른 목숨

넋을 켜는 저 힘줄.

 

굵은 못 손마디가

바위틈을 뜯고 있다.

시린 눈빛으로

모아 쥔 두 주먹에

도끼로 어둠을 빠개며

빛살 찾아 쳐든 목.

 

날빛 억샛잎이

불티로 와 떠는 길섶

돌각담 한금한금

핏자죽 짚고 올라

하늘가 몇 벌의 허물

훨훨 벗어 던진다.

               -조주환, <엉겅퀴> 전문

 

<엉겅퀴>를 읽어보면 강한 이미지가 살아 있다. ‘엉겅퀴’는 야생초 중에도 강한 모습으로 서 있다. 잎사귀에도 바늘이 있어 쉽게 만지지 못한다. ‘성벽’과 같은 악조건에도 강한 생명력으로 꽃을 피운다. 그래서 “ 그 등뼈 짙푸른 목숨/넋을 켜는 저 힘줄”이라고 노래하였다. 그러나 때가 되면 이 역시 이승의 하늘을 떠나야 하는 것은 우리네와 같은 것이다.

 조주환 시인은 광복 직후에 탄생하셨으니 부친, 조부님 세는 혹독한 일제 강점기를 헤쳐 살아오신 분들이다. 사실 일제의 혹독한 시련은 이 지구상에 일찍 없었다. 소작료만 하더라도 영국인은 인도에서 지주는 4할, 소작인은 6할을 주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9할, 한국인 소작인에게는 1할 밖에 주지 않았다. 그것을 자랑이라고 서구 사람들에게 떠들었으니 오늘날에는 그런 신문에 난 기사들이 전설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일본인들이 얼마나 악랄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고향산천을 등지고 만주로 연해주로 일본, 사할린 등지로 떠돌았으니 애처로운 목숨들이었다. 그러나 동토와 같은 일제의 혹독함 속에서도 견디어 내었고 마침내 광복을 하였으며 이제는 세계에서 어깨를 좀 펴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우리 민족이 걸어온 삶이 저 ‘엉겅퀴’를 닮은 것이 아니냐. 역사 의식에 충만한 조주환 시인에게서 꽃중에서도 유달리 ‘엉겅퀴’에 눈길이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한반도 북쪽엔 지구상 유래도 없고, 현재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독재 정치로 일관한다. 그러나 정신적 병을 앓고 잃은 일부 불신분자들과 자신의 개인적 욕심을 위해서는 이적 행위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은 북쪽의 독재엔 입을 다물고 있다. 그들은 친일청산에는 열을 올리면서도, 북쪽의 일제보다 더 혹독한 독재와 살인적인 통치에는 입을 다물고 있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 그러한 사람들을 나는 ‘사이비 민주주의자’라 부른다. ‘사이비 민주주의자’들은 ‘민족’, ‘통일’을 주문처럼 외고 있지만 진정한 민주주의자도 아니며 참다운 평화통일을 원하는 사람들도 아니다. 그들은 다른 이들을 부정했지만 그들도 더 젊은이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다. 세월은 흐르고 물도 흐른다. 그런 사람들은 아상의 불쌍한 인간들이요 선동자일 뿐이다. 진실은 드러난다. 추한 똥물로 덮힌 땅에 일시적으로 미친 눈바람이 더러운 모습을 덮어 줄 수 있을지언정 봄이 되어 눈이 녹으면 참모습을 드러나기 마련이다. 1962년에는 북한 개인 소득은 178달러, 남한은 87달러에 불과하였다. 2009년에는 북한은 개인 소득이 1118달러, 남한은 약 20000 달러가 되었다. 북한 독재정권은 경제를 망치고 북한 동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힌 쌀밥에 고깃국”이라고 1962년 김일성이 신년사에서 하던 말을 김정은이 되뇌이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다음은 조순호 시인의 작품 두 편이 순수 서정을 노래하고 있다.

 

알 낳고 새끼 키울

저 허공의 보금자리

 

몸보다 큰 가지 물고

집 단장에 바쁜 부부

 

하늘도

햇살을 지피며

까치 등을 다독인다.

                -조순호, <둥지>

 

조순호 시인은 시인 이전에 성자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간다. 항상 넓은 마음과 세상을 바라보는 예리한 식견으로 세상을 꿰뚫어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봄이면 꽃이 피고 가을에는 열매를 맺듯이, 맑은 강물이 흘러가듯이 순리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조순호 시인의 시를 읽으면 감동으로 다가 온다.

<둥지>에서도 몸보다 큰 가지 물고서 저 높은 허공에 안전한 보금자리를 만드는 까치를 보면서 생명의 외경을 다시금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그러할 것이다. 지금까지 서구 사상은 너무 인간 위주로 자연을 파괴하여 왔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파괴하다가는 인간의 생명마저 위태로워진다고 인식하게 된 것은 늦으나마 다행한 일이다.

인간이나 미물이나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고 제 새끼를 기르기 위해서는 무한의 애정과 희생이 따라야 함을 <둥지>을 읽으면 행간에 생략된 조순호 시인의 마음이 엿보인다. 쉬우면서도 감동적인 작품이다. 독자들은 일단 읽어서 이해해야 한다. 시인들이 아무리 많은 시를 쓰고, 좋은 시를 쓰더라도 독자들이 없으면 관람객 없는 운동 경기와 비슷할 것이다. 조순호 시인의 시는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서면서도 감동을 주는 매력이 있다.

 

김우연 시인의 <연꽃차를 마시며>는 2010. 1월 총회 때 김일용 시인의 집에서 강화도에서 온 연꽃을 냉동실에 잘 보관해두었다가 귀한 손님들이라고 내놓은 것을 마신 적이 있다. 연꽃잎차를 마셔 본 적은 있었지만, 연꽃잎차는 처음이었는데 연꽃이 환생하듯 따뜻한 물에서 한 잎 한 잎 펴지면서 향기가 방안에 진동할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어 쓴 것이다. “맥시조의 연못에도/ 하나 둘 연꽃이 피어”라고 노래하였다. 시인은 혼자서 시를 쓰지만 함께 책을 만들기도 하고 함께 모여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행복한 순간을 꼽는다면 맥동인과 함께 하는 순간들도 빼놓을 수 없다. 조용하면서도 연꽃잎처럼 피어나는 모습은 우리 맥시조 회원들 간에 오가는 눈빛이요 정이 아닐까 한다.

<돌 하나 내게로 왔다>는 금년 생일을 맞이하여 아침에 출근하였는데 함께 근무하는 선생님께서 주먹보다 작은 돌을 하나 내게 선물로 주는 것을 받고 쓴 것이다. 하얀 돌인데 뉴질랜드에서 가지고 온 것이라 한다. 작은 돌이지만 제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인데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주는 사람의 성의로 잘 간직하고 있다.

 

원정호 시인은 역사적인 공간을 과거의 공간이 아니라 현재의 공간으로 변용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는 시인이다. 2009년에 『현대문학』 겨울호에 발표된 다음 작품을 먼저 살펴본다.

 

선덕여왕이 바람 따라 우리 곁에 내려왔다. 아름다운 그 미소에 사람들이

몰려오고

아득한 천년의 하늘 그 하늘이 열린다.

 

장엄하고 화려한 길, 그 길을 따라가면 시대를 넘어서 온 서라벌 사람들이

안압지 연꽃으로 피어 이 거리를 달군다.

                                     -원정호, <선덕여왕의 행차>

 

원작은 배행과 달리 일부러 산문체로 써 본 글이다. 읽으면 저절로 리듬이 나오고 학교에서 시조를 배운 사람이라면 이를 바로 ‘시조’라고 할 것이다. 이처럼 정격시조는 어디에 어떤 모양으로 내어 놓아도 시조이다.이 작품의 내용 또한 가작이다. 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선덕여왕이 백성의 열광을 받으며 아름다운 미소를 띠고 나타난다. 찬란한 역사의 현장을 따라 가면 오늘날의 경주 거리와 연꽃 같은 시민들의 모습이 오버랩한다.

시는 상상과 비유의 세계이다. 현대시조는 형상화를 중시한다. 소리와 청각의 세계에서 모습과 시각의 세계로 바뀐 것이다. 많은 현대시조들이 형상화된 작품인양 내세우지만 말과는 달리 추상적이고 자기감정의 서정에 머물러 제대로 형상화된 작품을 찾아보기 힘드는데 이 작품은 동영상처럼 잘 형상화되어 있다.2)

 

입실마을 우뚝 솟은 아기봉을 올라가면

꿈을 접은 아기장수 서러운 울음소리가

한 서린 칼바람으로 귓전을 맴돕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기 장수인데

인습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사람들은

네 눈을 제가 찌르고 붉은 노을로 탑니다.

 

언젠가 우리 앞에 다시 올 아기장수

두 손을 합장하고 목메어 부르건만

세월이 바람 같아서 기약 없이 흐릅니다.

                           -원정호, <아기봉3)을 오르며>

 “인습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사람들은/ 제 눈을 제가 찌르고 붉은 노을로 탑니다.”라고 하여 아기장수의 죽음을 안타깝게 노래하고 있다. 저 일제시대 교활하고 악랄하며 야차 같은 일제와 싸우던 의병장 신돌석의 체포가 연상된다.

원정호 시인은 ‘애기봉’ 맥시조 회원들과 함께 올랐으나 평소 연약한 사람들의 아픔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꿈을 주는 삶을 살아오고 있음을 느낀다. 역사적인 소재, 전설의 소재에서도 현재에 살아 있는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놀랍다. “세월이 바람 같아서 기약없이 흐릅니다.”에서 아기장수가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안타까움이 애절하게 느껴지도록 한다. 그러나 “ 두 손을 합장하고 목메어 부르건만”에서 세상을 구원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땅의 사람들은 지구상 유일하게 분단되어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남침도 모자라서 자기 동포야 굶어죽든 말든 독재 권력 유지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이 날뛰도록 호응하는 세력이 남쪽에 있어 남남 갈등을 일으키는 근본 원인이 되며,  북쪽의 독재자에게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전쟁의 원흉이며 독재자에게 침묵하는 것이 평화통일로 가는 것이요 햇볕이라는 괴상한 논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북쪽은 희망이 없을 것이다. 원정호 시인은 ‘아기장수’가 다시 오기를 합장하고 목메어 부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 남쪽에도 인기에 영합하여 자신과 자신의 집단의 욕구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이 민족의 장래에 더욱 희망적인 ‘아기장수’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

원정호 시인의 역사적인 제재인 서원을 노래한 작품이 있다.

 

이끼 낀 바위마다

푸른 사연 묻어나고

여헌(旅軒)의 가르침이

별빛으로 내리는 밤

선바위 계곡을 따라

복사꽃 더욱 붉다.

 

노계(蘆溪)의 노랫소리

목마 타는 그 자리엔

몸 풀린 봄바람이

떼 지어 찾아들고

빛바랜 꿈 조각들이

여물물에 흩어진다.

         -원정호, <입암서원에서> 전문

 

“푸른 사연 묻어나고”, “별빛으로 내리는 밤”, “노계의 노랫소리/ 목마 타는 그 자리” 등이 표현이 잘 되었다. 원정호 시인은 역사적인 소재를 가지고도 노래하더라도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가슴 속에서 비유의 시적 형상화를 거쳐서 눈에 선하게 표현하되 순수서정의 시적형상화를 잘하고 있다. 이런 시는 시류에 의해서 흔들리지 않고 세월이 흘러도 독자들의 가슴에 잔잔한 감동과 기쁨을 줄 것이다. 입압서원은 2008년 1월 맥시조 총회 때 회원들이 함께 둘러보았다. 원정호 시인의 발길이 닿은 곳에는 시로 피어남을 알 수 있다.

 

서석찬 시인은 ‘서라벌’ 시인이다. 역사적인 소재를 줄기차게 밀고 나온 시인이다. 그런데 가을을 맞이하여 코스모를 바라보면서 아름다운 순수 서정을 펼쳐 보이고 있다.

 

잊으리라 하는 다짐 길섶에 풀어 놓고

이리저리 얽힌 인연 얼기설기 엮어서

부대껴 몸을 부대껴 정을 통해 피는 너는

 

빨갛게 때론 희게 얼굴을 붉히면서

잘록한 허리허리 내 가슴을 다 태우고

고향 길 길섶에 숨어 애간장만 살랑살랑

 

그녈 닮아 저리 고운 달빛 환한 그날 밤

코 끝으로 전해오는 야릇한 향기에 취해

밤새껏 눈을 붉히며 눈물적신 베갯머리

                            -서석찬, <코스모스 연가>전문

 

인간 세상에 사랑보다 아름다운 것이 없을 것이다. 사랑보다 가슴을 뛰게 만드는 것은 없을 것이다. 사랑이야말로 창조의 원동력이다. 연상의 과부와 사랑을 한 워즈워드도 그랬으며, 금홍이를 사랑한 이상도 사랑의 감정 속에서 창작 활동의 꽃을 피웠다. 이 시를 읽으면 서석찬 시인의 가슴은 아직도 사랑으로 가슴이 뛰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담담하게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눈물적신 베갯머리”라고 노래하고 있지만, 지천명의 나이에 사랑을 노래하는 것 자체가 젊음 그 자체일 것이다. 지천명이 아니라 눈을 감을 때까지 어찌 첫사랑의 설렘을 잊을 수 있겠는가. 아주 사소한 사랑일망정 가슴 속에는 얼마나 소중하게 자리잡고 있는가.

대구의 모 원로 시인은 80대 중반에서 갑자기 사랑을 노래한 시를 발표하였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많은 이들이 궁금하여 질문하였는데 어느 해 겨울을 넘기면서 너무 몸이 아파서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예감하고 불쑥 사랑의 시를 발표한 한 것이라고 하였다. “죽기 전에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것을 숨기고 죽으면 왠지 죄를 짓는 것 같고 남을 속이는 마음이 들어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발표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로 그 원로 시인은 건강을 회복하고 시 창작을 더욱 왕성하게 하고 있다.  사랑은 죽어가는 목숨도 살리는 것인가를 생각해보았다.

서석찬 시인의 사랑에 대한 마음은 앞으로도 “저리 고운 달빛 환한 그날 밤”처럼 은은하게 가슴 속에서 살아 숨 쉬리라 생각하니 앞으로도 더욱 왕성한 창작을 기대하게 된다.  연약한 코스모스의 모습을 ‘허리 잘록한’,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애간장만 살랑살랑’ 태우는 존재이며, 끝내는 밤새껏 그리움으로 뒤척이는 것을 ‘눈물 적신 배겟머리’라고 하면서 눈에 선하도록 이미지 형상화를 잘 하였다.

 

아쉬운 술잔을 꺾고 이슥한 밤 집에 오는데

청수집 소나무에 걸린 초승 눈썹 아가씨가

술 한 상 차려 놓았다며 발목을 잡는구나.

                             -김진혁, <초승달> 전문

 

현대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달을 쳐다본다는 것 자체가 특별한 일이 되었다. 달을 쳐다보면서 가슴 설레는 것은 김진혁 시인이 그만큼 순수하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어릴 적 달밤에 젖어본 사람이라면 그 아늑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알 것이다. ‘초승달’을 보면서 깜찍한 아가씨의 얼굴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자연과 가까이 하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달을 쳐다보는 것을 잊어버린 사람들이 많다. 밤이 와도 대낮처럼 밝은 형광들 불빛 아래 살고 있다. 자연을 떠난 인간은 불행한 것이다. 어떤 생명체도 자연 상태에 있을 때가 가장 본연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술 한 상 차려 놓았다며 발목을 잡는구나”에서 60~70년대까지 남아 있던 우리의 풍습이 떠오른다. 그러나 ‘굶주리는 북한 동포를 생각할 땐’ 너무 낭만적이라는 지적도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서정시란 자신의 가장 개인적인 감정을 노래하는 것이지만 당대 사회의 현실과도 부합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본질보다 존재가 앞선다’고 하니 개인적인 감정이 개인에게는 가장 소중한 감정일 것이다.

 

울컥 치민 욕정을

겨우 감춘 아랫도리.

 

봉긋봉긋 솟아 오른 물 맑은 샘터에서 새댁이 새벽을 긷는다.

밤새 퉁퉁 불어 못 다 여민 적삼 사이로 젖가슴 뽀얀 속살을

아침 햇살이 애무하는 사이, 안개는 끝내 참지 못하고 후다닥 옷을

벗는다.

 

한낮의 위험한 정사

흥건한 진초록 애액.

               -김진혁, <6월의 안개 숲> 전문

 

사설시조이다. 중장과 종장에서는 모두 관능적으로 표현을 하였다. 이상화의 ‘만돈나 나의 침실로’보다 관능적인 면에서는 빼어난 것 같다. 김진혁 시인의 감수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김진혁 시인의 감수성이 매우 빼어난 시인이다. 자신의 장점을 발휘하여 꾸준히 쓴다면 좋은 작품들이 계속 나올 것이라 믿는다. 시인이 자신 특유의 목소리와 걸음을 걷는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김진혁 시인은 안강 풍산 금속에서 직장을 가졌기에 맥시조와 일찍 인연이 되었다. 경북 문경에서도 근무한 바 있다. 지금은 고향  광주에서 살고 있다. 멀리서도 시조의 친정집이라는 ‘맥시조문학회’에 꾸준히 인연의 끈을 이어가는 것이 고맙다.

아침 햇살을 밭으며 안개가 걷히는 광경을 관능적인 감수성을 발휘한 빼어난 작품이라고 본다.

 

가식의 옷을 벗고 가지 위에 내려 와

해맑은 클라리넷 고운 선율을 탄다.

무수한 팔분음표로 출렁이는 이른 새벽.

 

가만 보면 방울방울 새 날의 등을 달고

멀어진 그리움이 다시 봉긋 돋아날 듯

해 묵은 가지 끝마다 연록의 길을 연다.

                         김진혁, <봄비 2> 전문

 

이 시를 읽으면 김진혁 시인의 천재적인 감수성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긴 겨울이 지나서 기다리던 봄이 오면 누구나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된다. 봄비가 내리고 식물들이 눈을 뜨는 모습을 보면 우리 인간들도 새로운 기운으로 가득 차게 된다. 이런 봄날에 ‘봄비’ 내리는 소리를 김진혁 시인은 ‘해맑은 클라리넷’ 소리로 듣고 있으며, 가지에 끝에 매달린 물방울이 ‘등’을 달고 있는 듯이 보는 것도 참신한 눈빛으로 바라본 것이다. 그 ‘등’에 의해 “멀어진 그리움이 다시 봉긋 돋아날 듯”이라 하여 봄비 내리는 것을 단순한 서경에 그치지 않고 내면화하여 아름다운 서정시의 꽃을 피운 것이다.

김진혁 시인의 다른 작품 <소설(小雪) 무렵>은 세 수의 연시조인데 첫째 수에서 “고적(孤寂)마저 내려앉은 가지 끝 빈 둥지는/ 세월이 벗어 던진 속세의 껍데기”라고 은유한 것이 참신하며, 마지막 수 “회색 빛 먼 하늘에 줄 지어가는 철새들/한번 가면 못 올 길을 대(代)를 이어 방황하나/ 길고 긴 고단한 여정 속/ 붉은 울음 하늘에 닿네.”라고 하여 철새들이 대(代)를 이어가기 위해서 ‘고단한 여정’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붉은 울음이 하늘에 닿네’라고 애절하게 노래하고 있다. 우리 인간의 삶도 돌아보면 저 철새와 다를 바가 무엇이 있으랴. 요즘은 신유목민 시대라고 한다. 고향의 터전이 남아 있는 사람은 그래도 행복하다. 갈수록 떠돌이의 삶을 살고 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오래 살아도 몇십 년일 것이며, 몇 년이면 옮겨다니는 모습이 저 철새와 다를 바가 무엇이 있으랴.

김진혁 시인의 작품 네 편에는 예민한 감수성에 바탕을 두고 감각적인 표현이 뛰어났다.

 

가만이 너의 허리를 휘감고 돌고 또 돌고

마침내 넌, 섬 아닌 섬이 되었다

이제는 등대하나 쯤 세웠으면 좋을 걸

 

용이 승천하다 그만 잠들어 버린 듯

온 몸이 녹아들어 온통 물뿐인가

물돌이, 저기 능선에 오르면 또렷한 섬 하나

                            -김두섭, <예천 회룡포를 지나며> 전문

 

김두섭 시인은 예천 하리 은산 출생이다. 자기 고향 산천을 노래하는 것은 할머니 품에 안기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단어는 쓰이지 않았지만 ‘그리움’에 바탕을 깔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유독 그리움이 많은 시인이다. 그래서인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끊임없이 발표해 오고 있다.  ‘어머니’에 대한 연작시를 36편이나 발표하였으며 앞으로도 꾸준히 발표할 것이라 기대된다. ‘회룡포’를 노래하되 그는 깨달음을 노래하지 않는다. 서경에 바탕을 두되 서경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한다. 그래서 김두섭 시인의 위와 같은 시는 세월이 흘러도 늘 새롭게 읽힐 수가 있을 것이다. 시어 언어는 특별한 효과를 살리기 위하여 문법에 어긋나는 말도 사용할 수 있다. 시적허용, 또는 시적자유라 부른다. 이 시 첫째 수 초장에서도 ‘가만히’를 현실음을 살려서 ‘가만이’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표준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한편 김두섭 시인은 기행시를 쓰되 서경적인 시도 나타난다. 그래서 김두섭 시인의 기행시를 읽으면 여행을 가지 않아도 눈에 선하게 그 모습이 연상된다. 시적 형상화가 뛰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단순하지 않다. 문학은 그래서 다양하게 표출되는 것이다. 새로운 곳에 가서 서정이든 서경이든 노래하는 자체가 서정에 바탕을 두지 않은 이가 있으랴. 일부 평자는 현실을 노래하지 않는 시는 가치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지고 우리 군인이 죽고, 다치고 집 유리창이 부서지고 불타고, 삶의 터전을 읽고 섬을 떠나서 임시 거처의 고통을 받고, 전쟁 시에도 민간인 폭격을 범죄 행위인데 민간인을 죽이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도 ‘햇볕 정책’ 운운하며 신주인양 붙잡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에 대한 해법은 전혀 없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기는 쉽다. 명분을 위한 명분도 말하기 쉽다. 애국이 반통일 세력으로 전도되고, 독재정권 지지가 북한 동포에게 고통만 줄 뿐인데도 실패한 정책을 궤변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시를 보는 관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김두섭 시인의 기행은 독자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

평론가는 자신의 눈으로만 말한다. 그러나 주말이면 저 자연을 향해서 대도시를 벗어나는 행렬을 보라. 우리 민족의 종교가 산을 숭상하는 종교라고 할 만하다. 산에 가 보라. 어느 산이고 산을 찾는 사람들로 붐빈다. 산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정화가 된다. 탁한 공기 마시고, 탁한 욕심을 내고, 탁한 가슴을 노래하는 것만이 현실의 삶은 아니다. 오히려 저 태백산을 올라보라. 삶이 무엇인가를 묻기 전에 이미 자신의 가슴은 맑고 높은 산의 정기를 받는 것이다. 이런 정화가 있기에 탁한 공기를 정화하고 탁한 세상을 맑혀 나가는 것이다.

말없이 최선을 다해서 자기의 삶의 현장을 지켜나가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은 발전해 왔고 발전해 갈 것이다. 그래서 살아가다가 지칠 때 다음의 김두섭 시인의 작품을 읽어보면 산에 가지 않은 날이라도 간접 체험을 할 수 있게 된다. 다음 작품은 이번 호에 발표된 작품은 아니며 카페에 올려둔 작품이다.

 

원색의 별들이 산마루에 떨어지는

기찻길 그 너머로

헉헉이는 첫새벽이

석탄향 온 누리 가득

태백으로 일어선다

 

초여름 철죽방울 추스리는 바람소리

주목의 기개가 죽어서도

천년은 살아

장군봉 먹구름 되어

휘휘 대는 새 아침

 

깎아 세운 태백 계곡 그 병사들 틈을 뚫고

지석을 요동치는

은빛방울 청명한데

노송은 암자에 기대어

넋을 잃고 있는가.

                김두섭, <태백산 기행> 전문

 

서경이 뛰어난 작품이다. 앞으로도 서정과 서정이 조화가 된 작품이든, 서경에 바탕을 둔 작품이든 기행에 관한 시들을 쓰면 좋은 작품을 쓰게 될 것이라 기대된다. 한강과 낙동강의 시원이 되는 태백산, 우리 민족의 정기가 서린 태백산,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의 주목이 서식하는 태백산, 단군의 정신이 살아 있는 태백산은 우리 민족의 가슴 속에 살아 숨 쉬는 산이 아닌가. 김두섭 시인의 <태백산 기행>은 읽는 이로 하여금 태백산 정상에 서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힘이 있다.

 

다음은 이문균 시인의 순수 서정에 관한 작품을 살펴본다.

 

비 오고 바람불면

양철 지붕 요란한데

 

비 그친 양철지붕

숨죽인 듯 고요하다

 

인간사 설익은 사랑

엇비슷하다 이처럼

              이문균, <설익은 사랑> 전문

 

이문균 시인은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및 현대시조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하였으며, 경상북도 사진대전 초대작가이며 영남미술대전 초대 작가이다. 아호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앞으로는 아호도 밝혔으면 부르기에 더 좋을 것 같다.

이문균 시인은 단형시조를 즐겨 써 오고 있다. 단형시조가 시조의 본 모습이다. 민족시가인 시조가 독자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단형시조가 가장 적합한 형태라고 본다. 단형시조는 어떤 배행을 하던지 약간의 소양을 갖춘 이면 시조임을 알아본다. 이호우 시인은 연시조로 등단하고, 실험적인 현대시조를 많이 썼지만 결국 후반기에는 단형시조만 썼다. 그것도 3장 6구의 구별 배행을 하여 국민시가로서 정착이 되도록 하였다. 오늘날에는 내용에 따라 적절하게 배행하는 것은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러나 3장 6구의 구별 배행은 단형시조에서 앞으로도 사랑을 받을 기본적인 형태라고 생각한다.

<설익은 사랑>에서 양철 지붕에 내리는 요란한 빗소리를 설익은 사랑에 은유한 것은 참신하다. “인간사 설익은 사랑도 엇비슷하다 이처럼”이라고 하여 소리만 시끄러운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양 사람들은 부부 사이에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달고 산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그 말을 아껴 왔다. 나도 개인적으로 아버지께서 어머니께 사랑한다는 말을 하시는 것을 단 한번 밖에 들은 적이 없다. 운명하시기 전 병석에 의식을 잃고 누워 계시는데 간호사가 시켜서 “여보 당신을 사랑해”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눈물이 나올 듯 가슴이 찡했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평생 실과 바늘처럼 함께 사셨다. 여행이든 집안 큰일이든 제사든지, 밭에 일하러 가실 때에도. 우리 선조들은 사랑이 없어서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는가? 그렇지 않다. 말없이 통하는 것이다. 말을 하면 진실한 사랑을 잃게 되는 것이다. “도를 도라고 하면 도가 아니다”라는 말과 같다.

서양인들이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만 그 말속에는 언제라도 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불안한 심리가 내부 깊숙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 ‘설익은 서양의 문화’를 배워서 ‘사랑한다’라는 말을 남발하고 있다. 심지어 존경해야 할 부모님한테도 ‘사랑합니다’라는 말이 일상화되어 가고 있다.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 하였는데 상하가 없다. 촌수를 따지는 데도 서양인들은 방향 감각이 없다. 무조건 사촌이다. 우리는 사촌이라도 (종)사촌, 외사촌, 고종사촌, 외사촌 등의 방향 감각이 있다. 상복만 해도 마찬가지다. 우리 전래의 상복은 흰 빛이었다. 저승이 어찌 캄캄한 지옥이라 생각할 수 있는가. 부모라도 죽으면 신이 되는 것이 우리 문화가 아닌가. 아낌없이 ‘내장까지 다 준’ 부모는 죽어서도 자손들을 돌보고 있고 자손들은 조상들을 생각하며 위로를 받고 힘을 얻는다.

이문균 시인은 ‘설익은 사랑’이 아닌 참된 사랑을 추구하는 시인이다. 이문균 시인은 남녀 간, 부부 간의 사랑만이 아니라 맡은 일에 대한 사랑도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일을 추진하는 시인이 아니다. 우리 맥시조의 발전에도 소리 없이 사랑해 왔다.

세상을 둘러보면 ‘천안함’이 두 동강 난 것을 보면서도, ‘연평도’에 군인과 민간인이 죽는 것을 보면서도 ‘양철 지붕에 내리는 빗소리’처럼 요란하게 떠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북한 독재 정권에 대해서는 유독 침묵을 한다. 가히 참선의 경지에 든 모습을 보여 왔다. 이 민족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정신적 종양을 앓던 세대는 아직도 ‘양철 지붕의 빗소리’로 요란하게 떠들어 되지만 불쌍하고 추한 모습이다. 우리의 20대 젊은이는 대학 입학부터 취업 준비에 매달려야 하는 현실이다. 앞날이 험난하지만 젊은이들은 국방의 의무를 위해 긍정적으로 군대를 간다. 사회를 바라보는데도 매우 긍정적이다. 그런데 사회에 공허한 목소리로 외치는 사람들은 요즘 젊은이들이 나약하다고 한다. 그렇지 않다. 이제는 남남 갈등을 조장하는 목소리를 낮추고 안보에 대해서는 힘을 합쳐야 할 것이다. 거짓된 사랑, 설익은 사랑은 물러 갈 일이다.

이문균 시인의 ‘설익은 사랑’을 읽으면 ‘요란한 빗소리’가 되지 않도록, 양철 지붕이 되지 않도록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이상으로 순수 서정에 대한 작품들을 다 살펴보았다.

 

 

3.  일상생활

 

다음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시적 형상화를 한 작품들을 살펴보겠다.

 

먼저 김제흥 시인의 작품이 눈에 뜨인다.

 

날아서 보노라면 가볍잖은 삶의 무게

저 세상 그 모두를 발 밑에 두고라도

무언지 허전해지는 하늘 높은 여기서

                         -김제흥, <연> 전문

 

김제흥 시인은 경북 봉화가 고향이다. 어릴 때부터 태백산의 웅장한 기상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겨울의 찬바람과 폭설도 보면서 자랐다. 여름의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맑은 물에 발을 담그고 살아 왔다. 그러다가 포항에 자리 잡아서 제2의 고향이 된 것이다. 산업화의 상징 항구 도시 포항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게 된 원동력은  성실한 삶의 자세가 밑바탕이 된 것이라 본다. 그래서 항상 김제흥 시인의 시를 읽으면 소박한 가운데 진실한 삶이 진하게 묻어난다. 거짓이 없다. 그래서 감동을 준다.

<연>은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가볍기 때문이다. 그러나 “날아서 보노라면 가볍잖은 삶의 무게”라고 하였다. 삶이란 가볍지 않음을 노래하고 있다. <연>이란 객관적 상관물을 통하여 우리의 삶에도 연륜이 쌓이고 또 위치가 바뀌어 하는 역할이 달라져도 가벼운 삶은 없을 것이다. 하늘을 날아가는 새들도 날개짓을 하는데 힘이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물며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현실에서 얼마나 힘든 하루 하루가 쌓여서 일 년이 가고 또 일 년이 가고 있는가.

종장의 “무언지 허전해지는 하늘 높은 여기서”라는 말은 자신의 삶을 들어다 보면서,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살았지만 왠지 가슴 한 쪽엔 허전해지는 감정을 노래하였다.

 

스스로도 숨기고 싶은 때가 왜 없겠냐

가끔은 안 보여서 그립고도 싶어라

몸 마음 따로 놀아도 그리 되게 하소서.

                        -김제흥, <샴> 전문

 

우리의 삶에는 스스로도 숨기고 싶은 일도 있다.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경우도 많다. 좋은 것이든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든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는 소중한 일이다. 그러나 ‘그리운 것’이 가끔이라도 눈앞에 나타나기를 기원하고 있다. 어떤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노력한 만큼은 가치가 있는 법이다. 인간적인 고뇌가 솔직하게 전달되는 작품이다.

 

아무리 안다 해도 부모마음 알겠냐만

쭈글쭈글 다 식은 붕어빵 한 조각에

안 좋고 싫고를 떠나 네 생각이 앞설 때

                        -김제흥, <붕어빵> 전문

 

붕어빵은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일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아주 소박한 음식이다. 이 붕어빵은 겨울철이라야 제 맛이 난다. 차가운 날씨일수록 따뜻한 ‘붕어빵’ 맛이 제 맛이다. 자식들을 위해 ‘붕어빵을 사서 돌아가는 어버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붕어빵>을 읽으면 박문하 님의 수필 <잃어버린 동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어느 날 밤 나는 호떡 상자를 어깨 위에 메고서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맛좋은 호떡 사이소. 호떡’하고 외치면서 골목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마침 길가에 있던 조그마한 초가집 들창문이 덜커덩 열리더니 거무스레한 중년 남자의 얼굴이 불쑥 나타났다.

“호떡 5전어치만 주라.”

중년 남자는 돈을 쥔 손을 쑥 내밀었다.

어스름 램프불이 졸고 있는  좁은 방안에는 나보다 나이어린 어린 두 오누이가 있었고, 그 옆에는 어머님인 듯한 중년 부인이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호떡 한 개 값은 1 전이고, 5전어치를 한꺼번에 사면 덤으로 한 개씩 더 끼워서 주던 때였다.

중년 남자는 호떡 여섯 개를 받아서는 오누이에게 각각 두 개씩을 나누어 주고는 나머지 두 개 중에서 한 개를 중년 부인에게 주었다. 그리고는 덜커덩 창문이 닫히고 말았다.

창문이 닫힌 방 안에서는 도란도란 정겨운 이야기 소리와 함께 네 식구들이 호떡 먹는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왔다.

 

김제흥 시인은 사회생활에서 성실하게 근무하는 것은 물론 가정에서도 다정다감한 사람이라 느껴진다. <붕어빵>에서는 시인이기에 앞서서 인간다움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위의 수필에서 ‘호떡’을 나누어 먹는 정겨운 가정처럼, 김제흥 시인이 시에서는 ‘붕어빵’ 하나에도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가슴 진하게 느껴진다. “안 좋고 싫고를 떠나  네 생각이 앞설 때”라고 하여 자식에 대한 부모의 무조건 적인 사랑이 전해진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자녀들을 키울 때 교육 문제가 큰 문제 중의 하나이다.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이 없다면 마음 놓고 공부를 할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아프기나 하면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아픈가. 그러나 요즘 세대의 아이들은 부모의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를 경우가 많다. 물질적으로 풍부하지 못했던 시대에 살던 때와 환경도 바뀌었다. 여러 형제들이 살던 때와 다르게 한 둘밖에 없는 환경도 변하였다. 그러니 아이들한테 무조건 실망할 수도 없다. 식탁 문화부터가 다르다. 얼마 전까지도 부모님, 조부모님의 식탁은 따로 차렸다. 요즘은 식탁을 같이 쓰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다. 그러면서도 밥 먹는 시간이 다르니 함께 먹기도 힘이 드는 세상이다. 그러니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당장 알기는 어렵지만 그 자식들이 부모가 되면 부모의 심정을 알 것이다. 우리도 돌아보면 어릴 때 부모님을 위한다고 하였지만 부모님의 마음을 얼마나 알았을까. 당신들은 먹는 것도 참으면서 자식들을 먹인 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올 듯하다.

먹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먹는 것은 매일 반복된다. 요즈음 아이들은 맛으로 먹는 경우고 많다. 너무 먹어서 살을 뺀다고 굶기도 하고 약을 먹고 살을 빼려고도 한다. 운동도 한다. 너무 먹어서 탈인 경우도 많다. 그러면서도 지구상 어린이의 1/3이 굶주리고 있고 북녘 동포들도 독재자 만나고, 사회주의 체재 잘못 만나서 굶주리는 사람이 많다. 먹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김훈의 『칼의 노래』에서 임진왜란의 전란 중에 먹는 것이 얼마나 큰일이며 어려운 일인지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끼니는 시간과도 같았다. 무수한 끼니들이 대열을 지어 다가오고 있었지만, 지나간 모든 끼니들은 단절되어 있다. 굶더라도, 다가오는 끼니를 피할 수는 없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정확하고 쉴새없이 밀어닥쳤다. 끼니를 건너뛰어 앞당길 수도 없었고 옆으로 밀쳐낼 수도 없었다. 끼니는 새로운 시간의 밀물로 달려드는 것이어서 사람이 거기에 개입할 수 없었다. 먹든 굶든 간에, 다만 속수무책의 몸을 내맡길 뿐이었다. 끼니는 칼로 베어지지 않았고 총포로 조준되지 않았다.4)

 

먹는 일은 중요하다. 먹는 일에서 정이 난다. 2차 세계 대전 때 독일군 병사가 프랑스군 진지에 침투하여 총검을 들이대었는데, 빵을 먹고 있던 프랑스 병사가 웃으면서 빵을 건너 주었더니 얼떨결에 빵을 받은 독일 병사는 그냥 돌아갔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먹는 일이란 적도 잊게 할 정도로 위력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새 중에 제일 큰 새를 ‘먹새’라는 수수께끼를 전해내려 오기도 하였다.

 김제흥 시인은 <붕어빵>은  ‘붕어빵’ 한 조각을 베어 물고서도 자식에 대한 정이 앞서는 인간 본연의 마음, 자식을 사랑하는 가장 진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정말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나도 개인적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무의식으로 어머님 생각이 먼저 나곤 하였다. 이기영의 장편 소설『고향』에서도 사랑이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생각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김제흥 시인의 <붕어빵>은 아주 사소한 소재를 아주 특별하게 만들었다. 자식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이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일상 생활을 노래한 것으로는 다양한 주제가 나타나고 있다. 다음은 ‘구설수’에 대한 이경옥 시인의 작품을 살펴본다.

 

혀끝의 도마 위에 발가벗긴 채 올려져

 

함부로 난도질당하며 신음하는 밤은 길다

 

덧 패인 상처에 둘둘

 

시간의 붕대를 감으며

                 -이경옥, <구설수에 오르다> 전문

 

단형시조의 짧은 공간 속에서, 구설수라는 추상적인 내용을 눈에 선하게 보이도록 시각적 이미지의 형상화를 뛰어나게 잘 하였다. 아주 빼어난 작품이다. ‘혀끝의 도마 위’에 ‘난도질 당하는’ 밤은 잠못 이루었을 것이다. 사실과 다른 것으로 ‘구설수’에 올라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한 마리 개가 짖어대면 온 동네개가 짖는 듯한 모습에 분하고 잠도 제대로 못 이룰 것이다. 그래서 위 시에서도 “신음하는 밤은 길다”라고 하였다.  “시간의 붕대를 감으며”는 황진이가 시간을 ‘서리서리 넣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미 이경옥 시인은 은유에 대해서는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이 뛰어난 점은 ‘구설수’를 올리는 인간들에 대해서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분노, 야속함, 배반 등의 극도의 부정적인 심정을 겉으로 한 마디도 나타내지 않고 감정을 절제한 점이다. 이럴 때 ‘시간의 붕대’를 감으면서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다. 분노를 표출하거나 억울함을 밝히려거나 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이 없을 바에야 솟아나는 샘물처럼 누가 나뭇가지로 휘저어서 혼탁한 물로 만들지라도 스스로 맑은 물로 만들 듯이 내면의 참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샘물이 솟아나게 하는 ‘시간의 붕대’를 감고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삼업(三業)5)이라하여 신(身),구(口),의(意) 세 기관에서 죄를 짓는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입으로 짓는 것을 경계하여 천수경 첫머리에서 입을 맑게 하는 진언인 정구업진언 ‘수리수리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의 진언으로부터 시작한다.

불교의 오계명에도 ‘거짓말을 하지말라’ 하였으니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말을 조심하지 않으면 남에게 상처를 주고 얼마나 큰 죄를 범하게 되는지를 알 게 된다.

 

이경옥의 <하지 날 아침에>에서는 긴 하루가 “두둑한 돈봉투였으면 좋겠다”고 노래하여 한 때 “부자 되세요”하는 인사말을 연상케 한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 날을 돈과 연관지어 표현한 것이 재미있다.

 

조영두 시인은 앞에서는 일상 생활에서 깨달음을 노래한 시 세 편을 소개한 바 있다. 다음 작품은 늦가을을 맞이한 광경과 느낌을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새벽별 찬이슬 머금은 이른 들녘

구절초 소담스레 무리지어 눈뜨고

텅 빈 논 가득한 햇살

계절이 익어간다.

 

온 여름 고단했던

삶의 흔적 걷어내고

공허로 남는 가을 저편에서 오는 소리

내일은 또 새로울 게라는

밝음을 보며

한 해를 마감하는

그루터기에 비춰 보는

질박했던 농부의 처진 어깨 너머로

꿈꾸듯 지켜 온 삶이

흰 연기로 오른다.

               -조영두, <晩秋> 전문

 

가을이 오면 이슬이 내리고 구절초가 피어난 것은 단군 이전에도 늘 그런 모습일 것이다. 가을걷이가 끝난 늦가을의 들판은 텅 비었지만 햇살은 들판 가득하다. 그래서 농부는 한 해가 저물면서 허리가 굽어지도록 일했지만 남는 것이 없더라고 “내일은 또 새로울 게라는” 희망을 가진다. 그러나 “질박했던 농부의 처진 어깨 너머로” “흰 연기만 오른다”는 회한만 남게 된다.

이 시를 실제 농사짓는 농부로 볼 수도 있고 맥시조 회원들도 이젠 어언 불혹을 넘어 지천명을 바라보거나 지천명을 넘기고 이순을 넘기고 있으니 농부가 가을 들판을 바라보듯 자신을 돌아보는 나이들이 되었다.

조영두 시인은 순수하며 매사에 정열적이며 인정이 넘치는 인물이다. 교사로서도 최선을 다했기에 “꿈꾸듯 지켜 온 삶이/ 흰 연기로 오른다.”는 것을 바라볼 수도 있다. 저 멀리 울릉도에서 가족들과 떨어져서 후진들을 가르칠 때의 삶을 돌아본다면 어찌 꿈꾸듯 살아온 삶이 아니랴. 그러나 담담하게 ‘흰 연기가 오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관조의 자세로 모든 감정을 절제하여 표현하였다.

이 시의 화자는 관찰자의 입장에 서 있다. ‘질박했던 농부의 처진 어깨너머로 흰 연기가 오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질박하다’라는 말은 ‘꾸민 데가 없이 수수하다’란 뜻이다. 이 세상에서 농부들만큼 질박한 심성을 가진 직업은 없을 것이다. 금년처럼 배추 값이 폭등 했을 때라도 어디 농부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작년과 다름이 거의 없었다. 또 ‘농자천하지대본’이라 하였지만 조선이 멸망할 때 우리 농부들은 가진 것이 무엇이 있었던가. 100여년 전에 인종 연구가인 영국인 이사벨라 비숍 여사가 조선에 처음 왔을 때 조선 사람들이 아무런 의욕도 없고 게으른 것을 보고, “진화가 덜 된 인간이 아닌가 의심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연해주를 가보니 우리 조선족 청년들이 부지런하고 다른 인종들보다 잘 살고 있는 것을 보고 자기 학설을 바로 세우기 위해 다시 찾아 왔는데 알고 보니 놋쇠 밥그릇 한 벌을 새로 구입해도 아전이 빼앗아 가버리니 사유 재산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조선인들이 의욕이 없음을 알고 조선의 탐관오리들을 질타하는 글을 썼다. 그리고 조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그 옛날에 우리 나라를 여섯 차례나 다녀갔다고 한다. 유교 예절이 있기 때문에 서울 근교 30리만 벗어나도 숲길이지만 여성 혼자 다녀도 성 폭력을 근심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 유일의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 문화를 사랑하고 극찬하게 된 것이다. 그런 조선의 절대 다수의 직업은 농민이었다. 농민들은 순박하다. 질박하다.

그런데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농민들의 희생으로 산업화를 이룩했다. 지금은 농촌의 다수는 연령이 높다. 그런데 이제는 농민에 관심을 가져야 정상적인 태도일 것인데도, 무상급식이 어쩌니 하며 인기에만 영합하고 있다. 농민들은 그런 속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 왔으니, 밟혀도 짓밟혀도 일어나는 질경이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들의 앞날에 ‘흰 연기만 오르는’ 회한에 젖게 만드는 것이 현실이다.

조영두 시인은 담담하게 늦가을을 바라보며 노래하고 있지만,  ‘가득한 햇살’처럼 희망의 새봄을 느낄 수 있는 들판이 되기를 기원하고 있는 것 같다. 한 폭의 그림 같이 표현한 속에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서석찬 시인은 생활에서 느낀 것을 노래하기도 하였다.

 

미나리와 살을 섞은 무침회 너를 본다

살짝 보인 속살은 양파로 가리우고

고소한 참깨의 냄새

나를 보고 너를 본다

 

한 점 베어 물면 노을 타듯 붉은 초장

코끝에서 혀끝으로 전해오는 새콤함에

전율을 전률을 느끼며 잘근잘근 씹어본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 온단 그 맛에는

그 무슨 비밀이 버무려져 있는지

하늘 땅 바다와 인간

하나가 되는 그 맛일까

                 -서석찬, <가을 전어>

 

가을 전어 무침회를 먹으면서 참깨와 양파 등과 초장에 회를 버무린 무침회를 먹으면서 “하늘 땅 바다와 인간/ 하나가 되는 그 맛”을 깨달은 것이다. 이경옥 시인이 <묵은지>에서 “버무려지고 곰삭아서/ 보시기에 담긴 말씀”이 ‘화엄 경’이라고 한 말과 통하는 말이다. 무침회가 단순한 무침회가 아닌 “하나가 되는 그 맛”을 느끼는 시인은 걸음 걸음이 시가 될 것이라 믿는다.

 

박광훈 시인도 생활 속에서 찾아낸 시를 쓰고 있다.

 

물고기 숨나드는

구름 동동 병암천에

 

산이랑 하늘이랑

팔 베고 누웠는데

 

여름을 한 짐 지고 선

사나이가 있었다.

 

옷을 벗고

거죽도 벗고

바위처럼

바위 되고

 

물소리 음표 따라

숨결마저 물이 될 때

 

살그래 갈겨니들이

겨드랑을 파고들데.

              -박광훈, <아버지의 음표 따라>

 

박광훈 시인은 청송군 부남면에 전원주택을 마련하였다. 퇴직하면 자연에 묻힐 준비를 한 것이다. 지금도 주말이면 그곳에서 땀을 흘려서 꽃이며 나무며 꽃들이 잘 자라고 있다. 채소도 잘 자라고 있다. 현대 조립식 건물은 새로 지었거니와 옛 초가건물이 기와로 되었지만 불 때는 아궁이는 그대로 살려 두었다. 황토 찜질방이 따로 필요 없다. 대문은 열려 있다. 그러나 벌 나비가 자유로이 드나들고 집 앞 개울물에는 보는 이 없어도 절로 물소리를 내며 흐른다. 산에는 안개가 피고 철따라 꽃이 피고 진다.

박광훈 시인은 등산을 좋아한다. 난초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지만 야생화도 사랑하고 조예가 깊다. 박광훈 시인은 자연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시인이다. 이미 ‘무릉도원’을 만들어 살아가고 있다. 진정한 삶의 목적이 무엇이며 행복이 무엇인가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음애애 음애애애

할아버지 아니시다

고삐줄 감아쥐니 곁눈질에 엉버틴다

눈마다 노란불 켜고 앞발 탁탁 뿔 세우며

                             -박광훈, <아버지의 염소>에서

 

<물소리 음표 따라>에서 “여름을 한 짐 지고 선/사나이가 있었다.”란 무릉도원에 선 자신이요,  “물소리 음표 따라/ 숨결마저 물이 될 때”란 표현에서는 물소리가 음악 소리로 들리는 경지를 넘어서서 숨결이 물이 되는 것이다. 자연과 일체가 된 경지다.

종장에서 ‘살그래’는 방언으로 ‘살그머니’의 뜻으로 보인다. ‘갈겨니’는 국어 사전에 잉엇과의 민물고기로 피라미와 비슷하나 비늘이 작고, 등이 청갈색, 배는 은백색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갈겨니들이 겨드랑을 파고들데.’란 표현을 보면 “여름을 한 짐 지고 선”이란 시원한 물속에 서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냥 혼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갈겨니’가 겨드랑에 파고드는 동적인 모습이 보인다. 동과 정이 하나가 되며,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동양의 깊은 경지를 일상 생활 속에서 평범한 모습으로 나타내 보인 것이다.

중국 조주 선사는 조주 무(無)자로 잘 알려진 분이다. 조주 선사님은 40에 도를 깨닫고, 40년을 더 점검하고 익혀서, 80부터 제자를 가르쳐서 40년을 가르친 분이라 전해진다. 어느 날 멀리서 한 분이 찾아와서 부처가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아무 말없이 툇간에서 바지를 내리고 오줌을 누시곤 들어가셨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고 멀리서 온 제자는 깨달음을 얻고 기쁨의 춤을 추고 다시 돌아갔다고 한다. 소변을 보는 사소한 일도 남이 대신할 수 없는 법인데 부처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대신 알려줄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선사들은 말을 넘어선 경지에서 깨달음을 전해주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 경지는 알 수 없지만 박광훈 선생의 <물소리 음표 따라>를 읽어보면 자연과 일체가 되었으니 자연에 완전히 파묻혀 속세를 잊고 있음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갈겨니’와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들과 어우릴 땐 인간과 화합이 되고 자연에 묻힐 땐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경지를 박광훈 시인은 머리로서 도달한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박광훈 시인은 가축과 사람이 일체가 되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짐승들도 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간다. 두 마리 염소는 해가 저물면 할아버지가 염소를 집으로 데리고 간다. 데리고 가는 것이라 해도 정확하지 않고 끌고 간다고 하면 더 거리가 멀어지는 말이 될 것이다. 늘 자기와 동행해주는 할아버지를 따라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리라. 그런데 어느 날 할아버지는 몸살이 나셨는지 사정이 있어 대신 아버지가 염소를 데려 오려고 갔다. 그런데 염소는 늘 오던 사람이 아니니 “앞발 탁탁 뿔 세우며”버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짐승들도 이러한데 어린 아이들을 떼놓고 맞벌이를 해야 하는 어머니들의 심정은 오죽 하겠는가. 조주환 시인의 <육아기>가 연상되기도 한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사랑하는 존재를 알아보는 법이다. 그런데 사람이 사람의 생명을 자신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살상하고 살상시키는 북쪽 독재자는 이미 인간임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그런 사람의 권력을 유지시켜주는 것이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거짓말을 한 사람들은 뉘우쳐야 할 것이다. 남남 갈등이야말로 북한의 독재자가 원하는 바다. 다행히 ‘연평도’ 사건 이후에 현실을 바로 보는 방향으로 변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올마다 묵은 전설 옹이 옹이 박혔건만

아직도 산에 가면 지는 해를 불러오지

둘이는 그렇게 그렇게 마주 보고 웃었다.

                       - 박광훈, <내 작은 빨간 가방>에서

 

울릉도서 구입한 빨간 배낭과 동행한 생활을 노래하였다. 액세서리 달아주니 “실허요, 어울리지 않아요/ 손 저으며 떼어낸다.”는 셋째 수 종장은 주객전도의 표현으로 인위적인 것보다는 자연적인 것이 어울림을 말한 것이다. 마지막 수에서는 “아직도 산에 가면 지는 해를 불러오지”라며 불타는 저녁놀을 바라보는 광경이 떠오른다. 어찌 떠오르는 해만 아름다우랴. 지는 해를 바라보면 인생을 생각하고 우주를 생각하게 된다. 왠지 숙연해지고, 가슴이 넓어지고, 마음이 포근해진다. 내일 아침이면 떠오르는 해일망정 지는 해를 가슴에 품고 하산하였을 때 이미 세상을 포근하게 감싸 않을 수 있는 마음으로 정화되어 내려올 것이다.

 

다음은 강성태 시인의 생활을 잘 나타내고 있는 시를 읽을 수 있어 기쁨을 준다.

 

마음의 뜨락에 서(書)의 창을 드리워

먹 갈고 붓 잡기  위안으로 삼은 나날

무채색 끝 모를 깊이에 솟아나는 빛줄기

 

순백의 설원에 그리움의 점을 찍고

마르고 거친 맥박 애환의 획을 그어

들끊듯 뿜어진 먹빛

눈부신 침묵이어라

 

잡힐 듯 멀어지는

보일 듯 사라지는

불가해(不可解)의 숨결인가 미몽(迷夢)의 필화(筆花)인가

또 한 겹 껍질 벗기며

먹빛 순수 솎는다.

             -강성태, <먹빛 솎기> 전문

 

강성태 시인은 대한민국서예대전 초대작가이며, 포스코 FINEX 연구개발추진반에 근무하고 있으며, 심산(心山)서옥을 운영하고 있다.

한 가지 일도 어려운데 몇 가지를 하고 있으니 남과 비슷한 노력으로서는 달성할 수 없는 길을 걸어온 것이다. 강성태 시인을 생각하면 세르반데스가『돈키호테』에서 ‘돈키호테’가 ‘산초’에게 “산초야, 다른 사람들보다 더 노력을 하지 않고 더 훌륭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한 말이 연상된다.

첫째 수에서는 붓을 잡고 먹을 갈면서 끝없이 정진한 결과 자신감을 얻는 과정을 노래하였다. 둘째 수에서는 하얀 종이에 정성을 다해서 한 자 한 자 쓰고 또 쓰기를 무한히 노력한 결과 “눈부신 침묵”으로 나타난 글씨에 스스로도 마음에 드는 글을 쓰고 나름대로의 혼이 담겨진 글씨를 쓰게 된 경지를 노래하고 있다. 그 경지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그 길을 달성하기 위한 ‘그리움’의 애를 태워 왔던가. ‘마르고 거친 맥박에 애환의 획’을 그어 온 과정을 상상만 애를 쓰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셋째 수에서는 큰 산에 오를수록 끝없이 이어지는 우람한 산맥을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잡힐 듯 멀어지는/ 보일 듯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학문이란 강물을 거슬러 배를 저어 나가는 것과 같아서 가만히 있으면 뒤로 물러나게 된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만 서예 또한 예외가 아니다. 우뚝 높은 봉에 솟으면 스스로를 바라보기 힘이 든다. 오르는 목표가 있을 땐 목표를 향하여 방향을 잡기 쉽지만 정상에서는 “불가해(不可解)의 숨결”로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멈출 수가 없다. 그래서 “또 한 겹 껍질 벗기며/ 먹빛 순수 솎는다.”라고 노래하였으니 강성태 시인이 서예에 대한 뼈를 깎는 고통을 엿볼 수 있다. 그러니 한 자 한 자에 온 몸의 정성이 들어가고, 한 자 한 자 피로써 쓰는 것이리라. “미몽(迷夢)의 필화(筆花)”이니 어쩌면 꿈 속 일 같이 느껴 질 것이다. 그러나 미몽의 필화가 아니라 아름다운 꽃송이를 송이 송이 피우며, 묵향은 그윽히 세상에 퍼지게 하고 있는 것이다.

서예의 삶을 노래하니 시가 되었다. 뼈를 깎는 아픔이 시의 꽃송이도 승화되고 있으니 앞으로도 더욱 좋은 서예와 시를 기대한다. 강성태 시인에게 시와 서는 둘이면서 하나요 하나면서 둘이기 때문이다.

 

김두섭 시인의 생활에 관한 시가 있다.

 

이른

새벽부터

저녁 밤까지

구슬땀이 흐른다

 

건자재

가득 실은 트럭

달리는 차 안에서 보면

 

하늘엔

파도구름이

이 지구를 돌린다.

        - 김두섭, < 0․5평의 삶> 전문

 

이 작품은 새벽부터 밤까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인다. 건자재를 옮기는 트럭 속에서의 반 평 공간 속에서 운전하면서 하루 종일 일한다는 것은 아주 고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차창 밖으로 구름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본다. “파도구름이/ 이 지구를 돌린다.”고 하여 자연의 모습에 감탄을 하고 있다.

우리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일을 한다. 그러나 힘든 일 중에도 자연을 바라보는 사람은 여유가 있다. 행복을 느낄 것이다. 인간이 자연과 떨어져 살게 되면 인간의 참모습과 멀어질 것이다. 불행이 있을 것이다.

이 시와는 상황이 좀 다르지만, 가을에 창녕 화왕산을 찾은 적이 있다. 산을 올라가는 입구들에 노점들이 있었다. 그 중에 트럭 안에 5살 정도 아이는 잠이 들었고, 사내 혼자서 ‘오뎅’ 등의 간단한 음식을 팔고 있었다. 아마 아내는 없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그 좁은 공간 속에 자는 아이를 위해서 사람이 별로 사먹지 않는 외진 곳에 터를 잡고 있었다. 힘든 일을 하지만 아이를 위해서 희망을 가지고 일을 할 것이라 느낀 바 있다. ‘0․5평’이란 말에서 연상된 것이다. 김두섭 시인은 작은 공간에 관심을 가지고 표현하였는데 앞으로도 이런 곳에 눈길을 돌린다면 김두섭 시인의 시에서도 폭이 하나 넓어질 것이다.

 

김일용 시인은 땀흘리는 노동을 하면서 그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참다운 노동시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일상 생활 중에서 노동의 보람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을 것이다. 현재 ‘노동시’라면 도시 노동자의 삶을 노래한 것으로 통하고 있다. 그것은 일제 강점기 이후 서구의 자본가와 노동자의 이분법적 구조 속에서 탄생되고 있다. 그러나 상대를 타도할 대상으로 생각하면서 상대주의적으로 생각하는 한 자기 모순에 빠진다. 사회주의 노선을 걸었던 나라의 경제가 망하지 않은 곳은 이 지구상에서 단 한 곳도 없다. 그래서 세상은 변했다. 그러나 유일하게 북쪽 독재 정권은 동포들을 굶어 죽게 만들고 있으며 깡패처럼 협박으로 생존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독재자는 영원할 수는 없다.

‘노동시’는 가진 자에게 적개심을 가지면서 자기는 더 가지려는 모순에 빠지고, 부정적인 사고에서 출발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어느 중학생의 시에서 ‘개미’를 표현하면서 부르조아에게 착취당해서 너무 굶주린 나머지 허리가 잘록하게 되었다는 표현을 보고 놀란 바 있다. 그 학교 교사가 자신의 이념을 학생들에게 불어넣었을 나중에 짐작을 한 바 있다. 위험한 일이다. 노동의 기쁨을 노래한 시는 우리들에게 포근함과 기쁨과 희망을 줄 것이다. 김일용 시인의 시를 통하여 진정한 노동의 시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봄 햇살 물꼬 틀고 논밭으로 내려오면

아버지는 겨울잠을 자는 농구들을 깨웠다

봄갈이 황소울음이 초록으로 들썩이고

 

흙살을 잘게 부숴 사랑으로 돋우시고

어머닌 우리들을 이랑마다 뿌리셨다

호미질 못이 박힌 채 해질 날이 없었으니

 

돌쩌귀 마른 울음 다독이던 불씨 하나

땀방울 송알송알 정성으로 여문 들녘

탈탈탈 농기계 소리 함성 이는 가을 약속

                   - 김일용, <약속> 전문

 

 이 작품은 제16회 한밭시조백일장 당선작이다. 첫째 수에서는 봄을 맞이하여 농기구를 가다듬고 봄갈이 하는 모습을 실감나게 그렸으며, 둘째 수에서는 해질 때까지 호미질 하는 모습을, 셋째 수에서는 드디어 가을을 맞이하여 여문 곡식을 추수 하는 광경을 노래하였다. 자연은 인간처럼 속이는 것이 없다. 그래서 때가 되면 익을 만큼 익게 되니 “가을 약속”인 것이다.

“탈탈탈” 농기계 소리는 요즈음 ‘콤바인’과 같은 장비에 비하면 이젠 추억의 소리로 들린다. 지난 날의 소리지만 현재에도 들리는 듯이 의성어를 적절히 사용하여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김일용 시인은 <손두레박>에서는 불볕 더위 속에서 김매기를 하는데 목이 말라서 손바닥으로 양수기의 물을 받아서 먹던 것을 노래하였다. “두 손을 연잎으로 펴, 하늘 섞어 마시는 물”이기에 시가 살아난 것이다. ‘물을 마시는 두 손이 연잎으로 변하고, 목마른 가운데서도 하늘을 섞어서 마시는 물’이라니 여유로운 마음씨가 아니고는 이런 시를 쓸 수 없을 것이다. 요즈음엔 물질 추구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이 많다. 만족을 모르니 불평할 수밖에 없다. 감사도 모른다. 하는 일에 비해서 보수가 적다고 한다. 욕심이 끝이 없는 인간에게는 어떤 상황이라도 불평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김일용 시인의 시를 읽으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의 순박한 마음이 나타나 있다.

 

몇 날 며칠 읽어도 못 읽는 아버지의 말

행간 같은 이랑을 책으로 만들었다

씨앗들 글자로 뿌려 띄워 쓰기도 하면서

 

은유법 쓰는 봄비 첫 페이지를 읽고 가면

음표로 돋는 새싹 악보 읽는 뻐꾸기

몰려온 풀뿌리 관객 난해 시를 써놓았다

 

뙤약볕 허리 굽혀 호미로 캐는 말씀

낱말 같은 땀방울 거름으로 뿌려두고

마침표 없는 문장을 날마다 쓰고 있다

                    -김일용, <책> 전문

 

김일용 시인의 시 <책>은  은유법이 매우 뛰어났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그대로 활짝 핀 한 송이 연꽃이다. 노동의 기쁨이나 고달픔이나 희망이나 불평 등의 관념적인 내용은 아예 찾아볼 수가 없다. 산에 왜 올라가느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무엇으로 대답할 것인가.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간다는 말이 진정으로 산을 아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김일용 시인의 <책>에는 일하는 모습 그 자체를 나타내고 있다. 이 땅의 참다운 노동시로서는 압권이라 여겨진다.

우리 맥시조 회원님들은 주말이면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 농장에서 직접 흙과 가까이 하는 회원들이 많다. 이 시는 노동의 실감이 나타난다.

첫째 수에서는 봄을 맞이하여 씨앗을 뿌리기 전에 잡초에 묻힌 땅을 일구어야 한다. 잡초에 묻힌 땅을 “몇 날 며 칠을 읽어도 못 읽는 아버지의 말”이라고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 두둑과 고랑을 만들면 한 이랑이 된다. 이 이랑을 행간으로 직유로써 표현하였다. 이랑이 만들고 밭을 다 다듬어 씨를 뿌릴 준비를 하게 된다. 씨앗을 뿌리는 것을 책에 글자 쓰는 것으로 비유하였으니 정말 무릎을 탁 치게 하는 표현이다. 씨앗을 알맞게 사이를 두고 뿌리는데 띄어쓰기에 비유하였다. 한 글자 한 글자가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

둘째 수에서는 봄비가 내리는 것을 은유법이라고 한 것도 재미있는 표현이다. 봄비가 내리면 흙속에 있는 씨앗들은 금방 눈을 뜨게 된다. 원관념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씨를 뿌려본 사람들은 씨앗들이 솟아나는 것을 볼 때 가슴엔 벅찬 감동을 느낀다. 돋아나는 새싹들을 바라보면 기쁨이 솟아난다.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지 않은 사람이 있으랴. 신기한 자연 현상이다. 조물주의 신기한 능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뿌린 만큼 돋아나니 거짓이 없다. 그래서 이 기쁜 마음을 “음표로 돋는 새싹”이라 하였다. 거기다가 뻐꾸기가 산에서 그냥 울고 있는 것이 아니다. 뻐꾸기도 그 악보를 읽으면서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짝을 찾기 위해서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기쁨과 경이로움과 뻐꾸기까지도 사랑으로 충만한 노래를 하는 밭은 김일용 시인에게 있어서 ‘책’인 것이다.

호사다마라 하였으니 아무리 기쁨에 찬 김일용 시인인들 좋은 일들만 있겠는가. 밭을 일구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인간이 씨앗을 뿌린 작물이 자라는 것보다도 잡초는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몇 배 더 생기는 것을. 잡초를 “풀뿌리 관객”이라고 의인화 한 것도 재미있지만 “난해시”란 표현은 아주 뛰어난 표현이다. 잡초가 돋아날 때 밤에 자고 아침에 가보면 어느 새 잡초가 새까맣게 돋아난다. 이 광경을 ‘난해시’라고 하였다.

셋째 수에서는 퇴약볕에 호미로 잡초를 뽑는 것을 뽑는다고 하지 않고 “캐는 말씀”이라 하였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잡초지만 지구 전체의 눈으로 보면 잡초가 어디 있으랴. 오히려 잡초가 있으므로 생명체는 존재할 것이다. 그래서 김일용 시인은 잡초라는 말을 한 번도 쓰지 않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씨앗을 뿌려 둔다고 저절로 곡식이나 채소가 자라는 것은 아니다. 잡초는 그저 두어도 잘 자라지만 인간이 먹는 것은 가꾸어야 한다. 인간이 땀을 흘려야 한다. 그래서 책에는 한 낱말 한 낱말이 모여 책이 되듯이 “낱말 같은 땀방울 거름으로 뿌려두고”라고 하였으며, 그 일은 끝이 없다. 그래서 “마침표 없는 문장을 날마다 쓰고 있다”고 하였다. 인간의 입으로 음식이 들어오기까지는 누군가 수많은 땀을 흘린다. 농작물을 가꾸기 위해서는 날마다 끝임 없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종교에서는 음식을 먹을 때 감사의 기도부터 올린다.

김일용 시인은 농업이 주업이 아니다. 직장에서 생활을 하면서도 집 앞의 논과 밭을 가꾸고 있다. 김일용 시인의 집은 경주시 외동읍 냉천 2리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집의 동남쪽에 아기봉의 바위가 춤을 추고 있다. 어릴 때 그곳을 무수히 올랐다고 한다. 아기봉에 올라보면 동쪽으로 불국사가 보였으며, 영지가 보였다. 아기장수가 공부하던 곳, 아기 장수가 죽은 곳을 김일용 시인이 설명해 준 적이 있다. 김일용 시인의 집은 대문이 항상 열려 있다. 생활에서 시를 얻고 시에서 생활을 나타내고 있다.

김일용 시인에게 ‘밭’은 인생의 ‘책’이기도 할 것이다. 흙과 멀어진 인간들이 요즈음은 흙으로 잠시나마 돌아오는 노력을 하는 것도 보인다. 주말 농장이나, 과일 따기 체험 학습 등을 동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다행한 일이라 생각한다. 참다운 인생길이 어찌 책 속에 있을 것인가. 책 속에 있는 것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김일용 시인은 <책>을 살펴봐도 시적 형상화를 시키는 능력이 원숙한 경지에 이르렀으며, 문학의 목적이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라고 할 때 어떤 구호보다 실천으로 진리에 도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현대시조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라 생각한다.

4. 그리움

 

서정시는 시적 자아의 정서를 노래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움은 서정시의 가장 근원적인 것이 아닌가 한다. 이 ‘그리움’에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두드러지게 보인다.

 

내 감성의 여울목에 푸른 불길로 타는

아직 마르지 않은 영혼의 탯줄 같은

아득한 경상도 길섶의

탱자꽃을 따 문다.

 

보현산 산그늘 따라 대추나무 뿌리로 늙은

큰댁 골기와 쪽에 그리움만 파랗게 돋고,

추억은 낙엽을 흩으며

빈 가지를 흔든다.

 

칼끝 같은 슬픔이 박혀 하늘빛은 더 푸르고

금호강 강물로 울던 내 젊은 날 상흔 위로

길게 휜 산굽이 아득히 한 생애가 저문다.

 

낡은 항아리처럼 등이 굽은 내 노모는

모진 세월로 퇴행성관절을 앓고

바람은 눈발을 날리며

갈대처럼 흔들린다.

               -조주환, <고향길>

 

이 작품은 조주환 시인께서 즐겨 쓰는 초장과 중장을 각각 1행, 종장을 2행으로 배행하는 것으로 그 특징을 밝힌 바 있다.6)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잘 나타나 있다. 누구에게나 고향은 세월이 흘러도 ‘영혼의 탯줄’과 같은 것이기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들은 끝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내 감성의 여울목에 푸른 불길로 타는”이라고 은유와 공감각적 심상으로 생생하게 이미지를 풀어냈다.

둘째 수에서는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보는 고향은 어딜 때 보던 고향의 모습과는 다름을 느낀다. 1970년대 산업화 이후로 젊은이들은 대도시로 떠나가고 농촌엔 늙은이들만 남아 있다. 우리의 삶은 무엇인가를 돌아보게 만든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이들은 단군이래로 가장 혹독한 시련을 겪은 세대가 아닌가 한다. 자식을 위해서 당신들은 모두 희생을 했지만 도시에 살아가는 노인네들 중에는 밥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거나 밥 한 그릇 먹는 것도 자식(며느리) 눈치 보여서 경로당에서 반찬 없이 80~90 노인네들이 손수 밥을 지어 먹기도 하고, 그것마저 어려운 사람들은 하루 한 끼 무료 급식하는 곳에 줄어지어 기다리는 모습에 눈물겨울 뿐이다. 경제적인 부는 기적적으로 이룩했지만 전통적인 문화 유산은 많이 파괴 되었다. 이럴 때 효는 당연히 행해져야 하는 것임에도 “누가 불효하지 않는 자가 이 사람을 돌로 쳐라”고 할 정도로 비정상적인 세상으로 변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자기 자식에 대해서는 무한 ‘리필’로 사랑을 부여하고 있는 젊은이들은 자기도 멀지 않아서 푸대접 받지 않고 살 수 있겠는가. 현대식에 맞는 효가 무엇인가 다함께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주위를 돌아보면 진지한 반성이 부족한 것으로 생각한다. 있는 자는 있는 자대로 없는 자는 없는 자대로 부모와 자식을 위로 생각하고 아래로도 생각해보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도시 노인네에 비해서 ‘농촌 노인들’은 그래도 더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화려해 보이는 도시에 비해서 자연 상태에 가까울지 모르지만, 할머니 품속 같은 고향이 있고, 함께 이야기할 사람들이 있고, 선산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조상들의 산소가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 문화와 함께 간장과 독으로 대변되는 우리 전통 음식을 만들고 담아두는 ‘독’마저 버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임을 생각할 때 고향에 계시는 분들은 불편한 환경이라도 그래도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둘째 수에서 고향의 ‘대추나무’며 ‘큰 댁 골기와’에 “그리움만 파랗게 돋고”로 표현하면서 추억에 잠긴다. 그리움을 공감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셋째 수에서는 “내 젊은 날 상흔 위로” “한 생애가 저문다”고 노래하며, 떠날 사람은 떠나가고 젊은 사람도 어버이의 모습으로 닮아가는 세월의 흐름을 노래하고 있다.

넷째 수에서는 “낡은 항아리처럼 등이 굽은 내 노모”에서 참신한 비유로서 직유법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으며, “퇴행성관절”을 앓고 계시는 노모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노인이 되어 아프지 않은 사람이 있으랴. 그러나 자식이 그 아픔을 알아주는 부모들은 그 아픔을 아픔이라 느끼지 않고, “괜찮다”라고 말하시는 음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조주환 시인은 부모님에 대한 효심이 하늘에 닿아, 가족 묘지 귀천원(歸天苑)을 만들고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으니 오늘날 사람들의 귀감(龜鑑)이 되고 있다.

 

고향 산 밑에 와 저승집 한 채 짓는다.

나와 아우들과 2세 3세로 이어 살

눈물이 반이나 섞인

긴 돌단을 쌓는다.

 

따뜻한 말 한 마디, 그 무엇도 해준 것 없이

여린 아우들 가슴에 큰 못도 박았으리

스스로 참회를 하듯

내 마음을 묻는다.

 

햇살 짱짱한 날 들꽃도 몇 옮겨 심으리

훗날 혼백들도 그 머리를 맞대고

벙그는 꽃의 말들을

가만가만 들으라고,

                조주환, <귀천원(歸天苑)> 전문(맥시조 카페에서)

 

고향과 모친에 대한 그리움과 미리 선친과 형제, 자식들이 대대로 만날 귀천원(歸天苑)은 정신적 보금자리가 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그 정신은 본받아야 할 것이다.

 

조순호 시인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시를 살펴 본다.

 

다듬이질한 비단 같은

하늘 한 폭 잡힐 듯

 

산야엔 신록이

웃으며 다가오고

 

어머님

하얀 옷자락

불현듯 피어난다.

              -조순호, <오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시들이 많지만 조순호 시인은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을 순수 서정에 바탕을 두고, 감정을 절제하여 ‘오월’의 맑은 하늘 같이 노래하였다. 초장의 “다듬질한 비단 같은 하늘”과 “어머님/ 하얀 옷자락”이 이미지가 잘 연결되고 있다. 감정을 절제하고 있지만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야 ‘불현듯’이 피어날 정도로 수시로 어머님을 그리워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오월의 화창한 날을 맞이하여 꽃이 피어 있는 곳을 어머님을 모시고 구경 시켜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는가. 어머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지 않은 이가 있을 것인가. 조순호 시인의 <오월>은 읽고 또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시이다. 작곡을 한다면 여러 사람들에게 애창이 될 작품이 될 것 같다.

 

다음은 박광훈 시인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뱃길

 아직 먼데

 석양은 그림자 묻고

 

 타향을 떠도는 별들

 하나 둘 내 곁에 내려

 

 가슴을

 쓸다가 쓸다가

 항적길을 쫍니다.

 

 고향이 파도로 일고

 추억이 뉫살로 피고

 

 오늘이, 내일이...

 물비늘로 돋는데

 

 아득히

 수평선 멀리로

 하현달이 뜹니다

         -박광훈, <석양은 그림자 묻고> 전문

 

박광훈 시인은 거제도가 고향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 등하교 길에 남녘의 가물거리는 섬들을 보면서 자랐다고 한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 섬이 ‘대마도’임은 나중에 알았다. 바닷바람을 쇠면서 오가면서 어릴 때부터 시심을 키워오다가 조주환 시인을 만나면서 시심을 꽃을 피운 것이다. 이제 남해가 아닌 동해의 포항에서 제2의 고향으로 살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남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고향이 파도로 일고/ 추억이 뉫살로 피고”란 표현을 보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파도가 끝없이 밀려오듯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끝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뉫살’이란 국어사전에서 ‘고기가 떼지어 모이는 곳에서 이는 물결’, ‘거품과 함께 물결에 주름이 잡히면서 흔들린다’는 뜻이다.  

“추억이 뉫살로 피고”란 표현은  고향에 대한 추억들이 일어나는 ‘그리움’을 물결이 이는 듯한 ‘뇟살’로 은유하되, 적절하면서도 적확한 어휘를 사용함으로써 시가 더욱 탄탄한 구조를 지니게 되었다. 놀라운 표현이다.

“물비늘도 돋는데”란 표현도 재미있으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현실은 현실이기에. 그래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늘 마음 속으로는 어릴 때부터 보아온 수평선이 보이며 하현달을 보라볼 때는 더욱 고향 생각에 젖게 되는 것이다.

 

강성태 시인도 고향 동무 또는 이성의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작품이 보인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마저 성글어져

 

강물처럼 흐르고

꽃처럼 피어나자던

 

그 언약

어울림의 정

 

낙엽으로 뒹굴다니

 

그다지 세상살이

팍팍하고 빡빡한가

 

포둔 순 줄기같은

다복솔 가지같은

 

철부지

부대낌이 정

 

새록새록 저미는데

           - 강성태, <近況․ⅸ> 전문

 

“강물처럼 흐르고/ 꽃처럼 피어나자던” 언약이 “낙엽으로 뒹굴다니”라고 은유와 공감적으로 표현한 것이 뛰어난 표현이다. 어릴 때의 약속은 어릴 때의 약속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서로 떨어져 있기 때문이요, 서로 살아가는 공간이 다르기 때무이다. 그래서 동서양의 시인들은 ‘몸이 멀어지면/ 마음마저 성글어’진다고 노래하였다.

그렇지만 강성태 시인은 “뒹굴다니”로 표현하여 언약이 언약으로 끝남을 매우 애석하게 여기고 있다. 지금이라도 그 옛날의 언약이 지켜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철부지/부대낌의 정”이란 표현을 보면 함께 놀며 웃고 울던 친구들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며, “새록새록 저미는데”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그리워하는 심정을 노래한 것이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말처럼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찌 고향 생각이 나지 않겠는가. 그러나 대부분은 바쁜 현실에 부대껴서 생각만으로 끝나고 마는 경우가 많다. 바쁜 직장 속에서도 시를 쓰고 특히 그 어려운 서예까지 하면서도 옛 정을 그리워하는 강성태 시인은 그만큼 순수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다지 세상살이 팍착하고 빡빡한가”라고 노래한 말에 주목하지 않을 없다. 바쁘다는 것도 강성태 시인의 눈으로 보면 하나의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것 같다.

 

김일용 시인도 그리움을 노래하면서 삶에 대한 깨달음을 동시에 노래하고 있다.

 

일생을 묵묵하게 살아오신 그 할머니

봄부터 가을까지 마을 아이들 돌보았다

오오냐! 이리 오너라 홍시 한 개 쥐어주시며

 

봄 늦게 겨우 싹을 내밀며 애태우더니

봄볕 스윽 빗어 넘기며 초록 그늘 깔아놓고

사람들 불러 앉히고 떫은 얘기 삭힌다

 

감꽃같이 뽀얀 얼굴 누이도 기억할까

새벽 같이 일어나 동네 한 바퀴 풋감 줍던,

해거리 고향 오는 길 어머니처럼 서 있다

 

감 떨어지는 소리에 하얗게 질린 달빛

화들짝 놀란 별들도 꼬박 밤을 새우고

나무는 알고 있었다, 잃어야 얻을 게 있다고

 

오소소 잎 떨어지고 배웅하는 가을 길목

남은 것 몇 소쿠리 발갛게 익혀놓고

누구를 기다리시나? 그 눈빛이 환하다

                        김일용, <감나무> 전문

 

이 시에서 김일용 시인은 고향에 대한 추억이 감나무와 관련된 것을 떠올리고 있다. “일생을 묵묵하게 살아오신 그 할머니”라고 ‘감나무’ 할머니로 은유하였으며, 김시인에게 할머니는 ‘감나무’와 같이 늘 넉넉한 마음이었음을 이미지를 교차시키고 있어 재미있는 표현이다. 할머니처럼 홍시를 주시던 감나무의 사랑이며, 어릴 때 누이와 감꽃 줍던 기억도 떠올린다. 또 살다보면 현실에서 남들과 일어나는 갈등이나 내적 번민들도 소금을 풀어놓은 물에 하루만 담아두면 삭아져서 떫은 맛이 없어지는 감처럼 “떫은 얘기도 삭힌다”며 아픈 추억마저도 아름답게 떠올린다. 그렇기에 감나무는 그냥 감나무가 아니라 고향 오는 길에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처럼 서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는 소리에 하얗게 질린 달빛/ 화들짝 놀란 별들도 꼬박 밤을 새우고”에서 감각적인 표현이 매우 뛰어났다. 김일용 시인은 한 작품 한 작품 땀을 흘리며 쓰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김일용 시인은 그러한 표현보다도 “나무는 알고 있었다, 잃어야 얻을게 있다고”라고 하며 삶을 관조하며 깨달음을 노래하고 있다. 움켜쥐려고만 하는 우리들의 어리석은 욕심을 깨우쳐 주고 있다. 그래서 감나무는 잎이 다 떨어지면서도 발갛게 익은 감으로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김일용 시인의 넉넉한 마음을 감나무에 이입하여 표현하고 있는 것이리라. 갈수록 삭막해져 가는 시대에 김일용 시인의 시는 목마른 자들에게 감로수가 되고, 어리석은 자에게는 깨달음을 주며, 모든 독자들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

 

다음은 김두섭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시들이다. 김두섭 시인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시를 꾸준히 써오고 있다. 그만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김두섭 시인에게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샘물이 솟아나듯이 솟아나는 원동력은 아마 지극한 효심을 가슴에 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결혼을 하기 전에 세상을 떠나신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서 연작시를 쓰게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7)

오늘날 풍족한 물질적 환경 속에서 자라라는 세대들은 감사와 은혜에 대한 마음을 잃어버리기 쉽다. 부모임에 대한 은혜를 갚은 일은 인간의 당연한 도리가 아닌가. 당연한 도리를 잃어버린 곳에는 진정한 행복의 꽃이 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김두섭 시인이 끊임없이 노래하는 ‘어머니’에 대한 연작시는 독자들에게 끊임없는 감동을 주고 있는 것이다.

 

베란다 속 단풍은 외출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창 너머 사람들 버스 타는 소리도

길 너머 칠월이면 또,

불빛축제도 본다

 

쏴아아 파도소리

조개껍질 벗는 소리도

날마다 짧은 고개

깨금발로 높이 서서

오늘도,

강강수월래 하듯 한 뼘 씩만 맴을 돈다

 

고요한 밤거리

찹쌀떡 파는 소리

문 밖으로 살며시 고개를 돌리고는

어쩌나, 난 움직일 수 없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김두섭, <분재를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 어머니.34>

 

이 작품은 아파트 베란다에 있는 ‘분재’가 화려한 ‘불빛 축제’를 비롯하여 행인들을 보고, 바다도 바라보지만, 결국 외출하지 못하는 ‘분재’에 지나지 않음을 노래한다. 어릴 때, 배가 고파질 저녁에 ‘찹쌀떡 파는 소리’에 어머니께서 사 주셨을 법도 하다. 자식에 대한 무한의 사랑을 베푸시던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나면 더욱 그리워지고 그 정을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고 가슴으로 파고 드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김두섭 시인은 ‘분재’가 외출할 수 없듯이, 어머님도 저 분재와 외출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비유하면서 어머님을 그리워하고 있다. 이 좋은 세상에 어머님이 살아계신다면 호강시켜 드리고도 싶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님이 계시지 않음에 가슴이 텅빈 것 같기도 했을 것이다. 지극한 효성을 느끼게 한다.

 

바람과 구름들도 잠시 동안

머무는 곳

바다의 푸른 햇살

한 모금씩 마시는 곳

 

국물이 쉬 식어갈 쯤 내 사랑도 식어 가고

 

 

저 파도가 선율을 타고 네게로 오는 듯

오선지에 너울파도 높은음자리로 와

 

작은 섬

품안에 안고 깜빡이며

웃는 너.

-김두섭, <등 대-어머니.35>

 

등대는 길을 잃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존재이다. 어머님도 마음속엔 등대와 같은 존재임을 노래하였다. 모든 인간들은 태어나서 어머니께 말을 배우고, 살아가는 방향을 어머니께서 잡아주셨으며, 돌아가신 후에도 등대와 같이 방향을 잡아주시는 존재가 어머니일 것이다.

 

내 유년의 내성천

버들피리, 참가재가 있었지

 

은풍골 아이들과

술래되어 놀았지

 

그곳엔

어머니도 늘

함께 물놀이 하셨지

        -김두섭,<버 들 피 리-어머니.36>

 

이 작품은 고향 예천의 ‘내성천’에서 물놀이 하는 아이들이 걱정이 되어 항상 보살펴 주던 어머니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어머님과 늘 물놀이를 함께 했다는 추억은 김두섭 시인에게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추억일 것이다. 그 추억은 일화요 일화는 개인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다른 이에게는 평범하게 보일지 몰라도 김두섭 시인에게는 세상 무슨 역사보다 소중한 것이 아닌가.

어머님을 노래한 시들은 무수히 많다. 앞으로도 무수히 노래할 것이다. 그러나 노래하는 이마다 어머니에 대한 모두 간절한 그리움이 없다면 어찌 어머니에 대한 노래가 나올 수 있겠는가. 지극한 효심이 없다면 어찌 이런 노래를 할 수 있겠는가. 한 편 한 편 감동을 주고 있다.

 

이문균 시인이 그리움에 대한 시를 언제부터인가 꾸준히 써 오고 있다. 특히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보고 싶은 친구들

생각나는 날이면

 

말려둔 깻단 털듯

툭툭툭 털어봅니다

 

숨었던 그리운 친구

깨알 되어 쏟아집니다.

      -이문균, <친구> 전문

 

이문균 시인은 단형시조를 즐겨 쓰고 있다. 그만큼 시조의 묘미를 단형시조에 있음을 알고 압축미를 최대한 추구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친구에 대한 그리움의 정을 “깻단을 털듯” 털어보는 비유가 참신하다. 깻단을 만지면 깨알이 저절로 떨어져 조심해야 한다. 이문균 시인이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툭툭툭’이란 의성어와 함께 작지만 수많은 알들이 쏟아지는 것처럼 친구에 대한 추억들이 되살아나는 것을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마음의 빈 뜰 위에

첫 눈 내리는 날

 

기러기 훌쩍 떠나니

달빛마저 서럽다

 

한 보름 지나고 나면

봄소식 들리려나

        -이문균, <봄, 그립다> 전문

 

긴 겨울이 가고, 봄의 길목에서 서설이 내리던 날 곧 봄이 오겠지 기다리는 화자의 마음이 보인다. 봄을 기다린다는 것은 또 한 해를 보내며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것이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 봄이다. 한 해를 보내면서 다 하지 못한 아쉬움을 훌훌 털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 봄이다. 그래서 봄은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준다. 이문균 시인에게 있어서 봄은 그냥 봄이 아니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립다’라는 단어를 강조하고 있다.

『맥․30호』에 발표한 16명의 시인 중, ‘그리움’을 노래한 시인으로는 조주환, 조순호, 박광훈, 강성태, 김일용, 김두섭, 이문균 시인 등 7명이 있었다. 30호의 연륜 속에서 뒤를 돌아보면서 ‘그리움’의 호수에 맑은 바람이 불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맥․30호』에 주로 나타난 주제는 ‘자아 성찰’, ‘ 순수서정’, ‘일상생활’, ‘역사의식’, ‘그리움’ 등이 중심이다. 이 밖에도  현실비판, 예찬, 환경(생태)도 일부 나타났다.

 

 

 

 

 

 

 

5. 역사의식

 

“오늘날 우리 시조는 어떤가. 역사의식이 전혀 없다. 18세기나 19세기의 방법론을 벗어나지 못한 ‘음풍농월의 시조’가 지금도 발표되고 있는 것이다. 서정시, 혹은 자연을 탐미한 시조라는 미명 아래 시조창작이라는 ‘집’을 지을 때 흙벽돌을 짓이겨 토담을 쌓고 있는 고답적이고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의 시조시인이 우리들 주변에는 너무도 많은 것이다. (중략)

노벨 문학상 수상자 T S 엘리엇은 그의 문학론에서 “시란 살아서 발전하고 있는 전통의 발견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그러나 그 전통은 과거의 죽은 유물이 아니고, 후대(後代)의 시인과 작가를 통해서 이적(異蹟)을 나타내는 살아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전통은 ‘시인의 역사의식을 통해서 활동하는 것이요, 그 역사의식은 과거를 과거로서만이 아니라 현대에 살아있는 과거로서 의식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역설했다.”8)

“거듭 강조하지만 현대에 와서 남녀의 연정, 자연을 관조하는 리리시즘이 시조의 파일(Pile)로 동원될 수 없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기생 홍랑이나 한우의 작품이 우리 문학사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가치기준, 그것은 곧 그들의 작품과 시대적인 배경을 결부시켜 고찰하기 때문이고, 당시의 첨예한 현대성을 너무나 민감하게 부각시켰다는 점을 평가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그 작품을 돋보이게 되는 것이다.(중략)

영국의 소설가 그레이엄 그린이 갈파했듯이 “작가(시인)는 시대가 요구하는 상황에 따라 변모하는 것이 자신에 대한 가장 충실”이라고 했듯, 문학이란 당대의 정서를 아우르는 예술이요, 시인이나 작가는 시대정신을 기록하는 증인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9)

김제현 경기대 교수는 “문학은 시대 반영이요 인생의 표현이다. 신라의 향가에는 신라인의 삶이, 고려가요에는 고려인의 삶이, 조선의 시조에는 조선인의 삶과 그 시대의 상황이 깃들어 있으며 또한 그 시대는 그들의 특유한 문학형식을 이루었다”며 “오늘날 한국의 시문학에는 한국인의 삶과 현실이 표현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고 밝힌 바 있다.”10)

현대시조가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주제를 확대․심화해야 한다는 주장들을 많이 해 왔다. 영탄적 정서에서 벗어나 현실의 삶을 노래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의식(역사의식)과 현실 감각이 없으면 현대시조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조주환 시인은 등단작 ‘대왕암’을 비롯하여 줄기차게 역사의식을 노래해 오고 있다. 『맥․30호』에서도 현대 우리 문학 최초의 대하서사시조집인『사할린 민들레』의 서시에 해당하는 <사할린의 민들레>을 비롯하여 역사의식을 강하게 드러낸  <독도>, <윤동주  생각-대성 중학교에서> 을 다시 게재해주셨다. 조주환 시인은 ‘역사의식’에 대한 시를 꾸준히 써오고 있다. 이것으로 보면 조주환 시인은 우리 문단에서 ‘역사의식’에 대한 시를 쓰는 가장 대표적인 시인이라 평할 수 있을 것이다.

 

1.

백두(白頭) 고을물이/하늘에 닿아 굽이 트던

그날 그 징소리가 낙화로 와 뚝뚝 질 땐

천길 늪/ 말굽을 젖히고/ 송이, 떨기 뿜더니

 

2.

동해, 한 굽이/ 피무늬로 뜨던 그날

찢겨 간 생가지가/ 탄가루에 삭아 떨다

야윈 손 허공에 담군 채/ 꽃대궁만 외로 섰다.

 

3.

오호츠크 해류에 뜬/생채기만 그냥 남아

무명, 흰 옷섶엔/ 이가 누런 사투리들

멍 박힌 씨앗은 벌어/ 갯벌 허허 날고 있다.

 

3.

누이야 네 넋이 떨/ 북간도 별 빛을 찾아

황토빛 풀씨 하나/ 죽지 떨며 헤어가다

시방도 길섶에 떨어져/ 혼꽃으로 피고 있다.

 

4.

보신각 쇠북에 깬/ 갈숲 먼 산자락엔

긴긴 밤 해류를 건너/ 성묘로 온 메아리에

도래솔 고목이 울어/ 선산(先山)을 죄 흔든다.

 

5.

북위, 오십도 밖/ 뼈에 밴 아픔을 털며

모국어로 헤어와도/ 생살이 터 목맨 강물

칠흙 길 아픔을 빠갤/ 쇠북이여 울거라.

 

엉겅퀴 한 잎 따 물고/ 삼팔, 그 강둑을 쪼다

남도, 강변에 와/ 깃을 터는 황새여

저 꽃대 동통(疼痛) 삭힐/ 불씨 몇 점 떨궈라.

                           조주환, <사할린의 민들레>

 

『사할린의 민들레』를 처음 발표할 때는 6번까지 번호가 있었다. 4번에 해당하는 “살아, 단 한번/ 내 핏줄은 만나고 싶다.// 고독이 뼈에 닿아/ 먹빛으로 떨구는// 그 목숨 통한(痛恨)의 목청이/ 허공에 떠 울먹인다.”는 제외시켰다. 이 밖에도 쉼표(“북위 오십도 밖”이 “북위, 오십도 밖”), 쉼표와 배행( “천 길 늪 말굽을 젖히고,”를 “천길 늪/ 말굽을 젖히고/ 송이 떨기 뿜더니) 등 미묘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런 퇴고 과정을 살펴보면서 조주환 시인은 『사할린의 민들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 나라 최초의 대하서사시조인 <사할린의 민들레>에 대한 조주환 선생의 말을 직접 옮겨 본다.

 

이 작품을 처음 시작한 1980년대 초 한반도 남녘에서 바라본 북위 50도 밖의 사할린은 동서 냉전으로 인해 닿을 수 없는 섬으로, 칠흑의 얼부푼 이념의 빙벽으로 싸여 오고갈 수 있는 길이 없었음은 물론, 단 한 점의 소식도 들을 수 없는 땅이었다.

그 누가 빙벽이 녹아 오고갈 수 있는 길이 트이리라 짐작이나 했으랴.

작품을 처음 시작한 뒤 6·7년간 이 한 편을 붙들고 씨름하는 동안에 체력이 달려 비틀대기도 했으나 그때마다 칠흑의 빙벽에 갇혀 뼈에 닿도록 육친을 그리며 서늘히 떨고 있을 사할린의 서느런 핏줄들을 떠올리며 스스로 몸을 가누고 채찍질해 왔다.

사할린의 민들레!

그들은 참담했던 우리 민족사의 한 부분인 일제치하에서 끊일 듯 모진 목숨을 어어가던 이 땅의 소작농, 화전민, 날품꾼 등 대부분 밟히고 짓밟히던 핏줄들로, 징용이란 일제의 사람 사냥의 덫에 걸려 생가지 찢기듯 끌려가 지상 최악의 땅이란 천 길 탄광의 막장에서 갖은 고통을 당하며 더러는 오호츠크해 물굽이 위나 그 툰드라의 허공에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떨구며 숨져갔고, 살아 목숨이 붙은 사람도 시신같은 눈시울로 종전을 맞았으나, 다시 소련군의 점령으로 칠흑 속에 떨어져 오직 귀국의 꿈만 뼈 속에 새기어 목줄기 빼어들고 지금도 오호츠크 물굽이 너머 먼 이 땅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이 작품에 손을 댄 동기는 실제 징용에 끌려갔던 가친(家親)과 어릴 적 동네 어른들의 피묻은 체험담을 듣고 일제에 대한 일종의 증오심을 느꼈고, 어릴 적부터 국사에 무척 흥미를 가졌으며, 중·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며 역사를 연구하려고 중등교사 자격증을 얻기도 했다. 대학 이후 더욱 근대사에 관심을 가지면서 사할린에 끌려가 돌아오지 못하고 버려진 핏줄들이 내 혈육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종전 반세기가 가까워도 끌고 간 일본이나 피해를 당한 우리들마저도 꺼질듯 깜박이는 제 핏줄을 구출하기 위한 그 어떤 손길을 건네지 않았음에도 있지만, 그보다 차마 외면할 수 없는 천길 나락의 핏줄들을 두고도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여 남의 일인 듯 흘려 넘기는 굴절된 인간의 양심에 대한 고발의 뜻이 있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비록 분단된 조국이기는 하지만 내 땅에 발을 붙이고 산다. 끌려가 처절한 고통을 당하며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려고 몸부림 치고, 울부짖는 핏줄들을  외면하고 군력을 잡은 자는 정권의 연장이나 억압의 서슬을 펴왔고, 억눌린 자들은 그 억압에 항거하는 일에 많은 힘을 쏟아왔다.

도대체 조국은 무엇이며, 국가란 무엇인가. 그리고 겨레란 또 무엇인가. 역사는 늘 이기는 자, 힘 있는 자들의 것인가. 외세에 의해 이렇게 밟히고 짓밟힌 제 핏줄을 팽개칠 수 있는 것인가.

이 땅의 정치인, 지식인, 종교인, 학생 등의 수많은 단체나 개인은 끌려간 제 핏줄을 구하기 위한 그 어떤 군중집회나 불덩이 같은 구호나 귀환운동 같은 것은 왜 하나도 없다는 것인가. 왜 이런 곳에는 국내외 인권단체들이 그토록 냉담한가. 그 서느런 목숨을 위한 한 점 까만 불빛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그 무엇이 내 가슴속에서 영혼의 불길로 타오르고 있었다. 민족의 한 부분이 천길 나락에서 신음하며 죽어가고 있는데, 민족의 양심, 시인의 양심은 이를 외면하고, 그 어떤 곳에 마음을 두고 찬란한 조명을 바라고 있지는 않은가. 모두가 이를 외면한다고 해도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시조 속에 이 모든 것을 담으려고 작정했다.

그리하여 1981년 가을부터 시상을 가다듬으며 고심하다가 ‘82년 겨울 30여 일의 면벽 고뇌 끝에 서시에 해당하는 부분(앞에 제시한 8수)을 얻어 발표하게 되었고, 마침 서벌(徐伐) 시인의 격려와 함께 시조단의 볼모지인 대하 서사시조로 써볼 것을 간곡히 권유했다. 여러 번 생각을 거듭했으나 너무나 방대하고 처음 하는 일이라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나 자유시쪽에서도 소월(素月)의 시적 성취나 파인(巴人)의 위대한 실패는 둘 다 한국시사에서 시적 진폭과 깊이를 더해 주고 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리라 믿었다. 이 땅의 많은 시인들은 소월(素月)쪽을 선호하고 파인(巴人)쪽을 피하려 해도 나는 파인(巴人)의 위대한 실패를 그리며, 지금도 흩날리는 눈발을 뚫고 이 반도 빈 벌판이나 깊은 산 응달진 계곡을 절룩이며 걷고 있을 고산자(古山子)의 드높은 혼을 우러르며, 이 길에 나서리라 다짐했다.

자료 수집에 나서「조선독립운동전사」며, 일본의 르뽀라이터 三品英彬의「나의 조국 일본을 고발한다」등 40여 권의 자료를 참고하여 줄거리를 구상하고 대하소설이나 대하드라마를 연상하며 단형·중형·장형시조 등을 동원하여 그런 것들보다는 다른 서사시조를 써보려고 했으며, 고도의 비유나 상징보다는 가급적 쉽게 읽히게 하려고도 노력했다.

그리하여 당시 백성의 팔할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며 일제의 학정에 시달리다 스러지듯, 일제의 징병에 가장 많이 끌려갔던 삼남지방 농민들의 참상을 배경으로 경상도 동북부 지방인 영덕·영양·영일(포항) 등을 그리며, 그 속에 실제 사할린에 끌려갔던 영양군의 이의팔이란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그의 조부와 부, 본인에 이르는 3대의 이야기를 그리게 되었다.

이야기의 전개는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하고 다시 현재로 돌아오게 했다. 곧 일흔 노구의 주인공이 왓카나이 갯벌에 나와 귀국의 꿈을 그리며 오호C크해류 너머 먼 동해를 향해, 사할린에서 태어난 아들에게 그들의 뿌리인 조국와 민족혼을 깨우치게 하는 내용(Ⅱ), 한말(韓末)의 흔들리는 왕조와 정세 속에서 의병장 신돌석을 등장시켜 주인공의 조부와 함께 의병활동을 하는 내용(Ⅲ), 주인공 아버지의 3․1운동 참여와 그 당시 토지를 빼앗긴 화전민 유랑민의 생활상, 상해 임시정부와 청산리정투 등을 그리며(Ⅳ), 관동 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 원산 대파업, 광주 학생 의거 및 애국지사들의 활동(Ⅴ), 일제의 잔악한 수탈과 탄압 등(Ⅵ,Ⅶ)을 그렸으며, 주인공이 노무자 사냥의 덫에 걸려 사할린에 끌려가는 내용(Ⅷ)을, 끌려가 탄광 막장에서 겪은 참상과 2차대전의 진행(Ⅸ), 종전과 함께 조국은 광복되었으나 소련군의 침공으로 다시 칠흑 속에 떨어진 모습(Ⅹ), 소련군의 점령아래서의 탄광생활과 무국적이 된 민들레의 아픔(Ⅺ), 끌려갈 때는 일본 국적이었으나 광복으로 국적을 잃었다며 그들 가족만 귀환시키고 반도인은 팽개치는 국제사회의 비정함과 북한 노무자들이 밀려오면서 이념으로 인한 동족간의 피흘림(Ⅻ), 귀환의 꿈을 안고 몸부림치듯 울부짖는 처절함, 귀환을 기다리며 끝까지 무국적을 고집한 풀꽃들의 골수에 박힌 아픔, 이제 끌려간 세대들은 거의 70대로 스스로 고독이 아파 목숨을 떨구는 참상과 주인공의 죽음(ⅩⅢ)으로 막을 내리게 했다.

인간이 인간을 버린 이 비극을 처음의 각오처럼 모두를 다 바쳐 그린다고 하였으나 워낙 무딘 사람으로 의욕만 앞서고 거친 곳이 많음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또한 비슷한 참상을 계속 그리자니 같은 말의 중복도 많고 장면을 바꾸는 데 호흡이 단절되는 점도 많으리라 본다. 처음 발표할 때와는 달리 순서에 다소 차질이 있으나 1,226수로 끝을 맺었다.<조주환>11)

 

한 덩이 이 지구의 공산권 자유권도

서로를 이웃하고 해빙(解氷)속에 오가는데

사할린 죽음의 계속엔 그 기척도 없는가

 

끝없는 줄다리기 일․소 외교에 묶여

계절은 겉잎 속잎 시들고 덧쌓여도

통곡만 얼음장 두께로 얼부풀고 얼붙는다.

      -조주환, 『사할린의 민들레』마지막편인, ‘ⅩⅢ 빙벽(氷壁)의 원혼들’, <29. 얼음장> 전문

 

위 시는 해방 후 우리 나라에서 사할린에 끌려간 우리 동포들을 정치인들을 비롯하여 모두가 무관심하게 잊고 있었다. 그런 현실에 대한 분노를 선지자와 같은 예언을 하며, 사할린 동포들에 대한 연민의 정을 그리며 그들과 만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편 한 편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문학의 기능이 현실 문제를 진단하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는데 있다면 이 작품은 평소 역사의식에 투철한 인식이 없이는 그 진단을 할 수 없었으리라 믿는다. 세월이 흘러 상황이 바뀌어도 그 상처를 다 쓰다듬을 수 없다. 세월이 아무리 바뀐다 한들 현실에 분명히 존재했던 한 때의 고통을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조주환 시인님께서 약 7년간이나 혼신의 정열을 바쳤던 『사할린의 민들레』1,226수의 마지막 편을 살펴본다.

 

거푸 아비를 흔드는 그 아들의 목청 속에

두 손 허공에 하고 휘청이며 비틀대다

일순에 고개를 떨구는 아, 일월산 민들레

 

천지는 일순에 멈춰 적막으로 휘감겼다.

갈꽃 자욱히 훝고 먹빛으로 오는 갯벌

아득히 오호츠크 해류가 피로 붉게 흐른다.

 

철새떼 꺾여나는 툰두라의 찬 바람에

꽃잎 칠 팔만의 피멍이진 반 세기가

만리밖 멍박힌 죽지로

퍼덕이며 헤어 온다.

     -조주환, 『사할린의 민들레』마지막편인, ‘ⅩⅢ 빙벽(氷壁)의 원혼들’, <32. 천지는 일순에 멎고> 전문.

 

끝내 주인공은 조국의 품에 안기려고 세월을 기다리다 절망 끝에 죽는 것으로 끝이 나고 있다. 한 때 주권을 상실하여 이런 고통을 당하였으며, 심지어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국론이 분열되는 것을 보고 유성룡은 징비록에서 “이러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고 통탄하였다.

지금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우리의 천안함이 북괴의 공격으로 서해에서 두 동강이 나고, 과학적인 조사를 국제 합동으로 하여 자료를 내놓고, 여기 와보지도 않은 미국의 모 교수가 사건을 왜곡하여 “1번”의 의혹을 제기하였을 때도, 카이스트의 그 분야 전공 노교수가 과학적으로 설명하여 진실을 밝혔다. 그런데도 끝까지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국론을 분열하였다.

임진왜란 때와 마찬가지로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 속에서도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소인배들의 짓이 지금도 재현되고 있다. 내가 보기엔 그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안보의 위기 속에서도 소인배의 차원을 넘어선 ‘악성 종양’과 간은 존재들이 있다. 그들은 암을 유발하는 정신병자라 할 것이다. 종북의 인사들이 ‘악성 종양’을 키워갈 때, ‘설마’하는 안이한 의식과 ‘설마 지금은 빨갱이가 어디 있나’하는 안보에 대한 ‘무임승차’의 무책임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 한 죽음은 우리 앞에 있다. 그 결과 ‘연평도’에 무차별 포격을 받고 또 군인은 물론 민간인까지 죽지 않았는가?

심지어 T.V 방송에서 ‘노자’를 강의한 도올 김용옥 같이 무조건 불신하는 자들이 문제다. 천안함 수사 결과를 0.0001%도 믿지 않는다는 도올과 같은 인사들이 국론을 분열하고, 북한 독재자를 도와주는 이적행위를 한 결과 ‘연평도’에 또 폭탄을 맞았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시대 최대의 매국노인 ‘국경인’은 회령에서 두 왕자를 잡아 묶어 적인 일본장수한테 받쳤지만, 곧 반역자들을 진압하고 그들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남북 분단의 상황에서 양다리 걸치며 안보 불감증을 조장하는 자들은 ‘국경인’과 같은 매국행위를 하는 것이다.

조주환 시인의 시를 읽으면 현실은 무엇이며 어떠한 길로 가야하는가 하는 역사의식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윤동주 생각-대성중학교>에서는 “한 떨기 조선의 별이/ 제 속살을 태운다.”로 노래하여 양심에 바탕을 두고 바른 길로 향한 윤동주를 ‘조선의 별’이라고 칭송하였다.

 

‘독도’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푸른 유리컵 같은 저 동해의 자궁을 열고

몇 조각 뼈로 태어난 백두의 핏줄 독도가 산다.

수줍은 태초의 햇살이

맨 처음 닿는 곳.

 

해협 밖 미친바람이 제 뿌리를 흔들 때는

시퍼런 힘줄을 떠는 겨울바다의 등뼈

결연히 창검을 세운다.

그 실존의 한 끝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혈육들이 잠든 밤

거친 풍랑에 꺼질듯 깜박이다.

가끔은 고독에 깎이며

소금 꽃을 꺾어 문다.

                   -조주환, <독도> 전문

 

조주환 선생님의 시조집 『독도』(동학시인선, 2005년)을 출간한 바 있다. <독도>는 1997년 1월호 『문학사상』에 실린 작품이다.

『독도』의 작품 후기에 민병도 시인의 해설에서도 민족정신에 대한 시평이 있다.12)  <독도>에서는 “해협 밖 미친바람이 제 뿌리를 흔들 때는/ 시퍼런 힘줄을 떠는 겨울바다의 등뼈/ 결연히 창검을 세운다./ 그 실존의 한 끝에서.//”라고 노래하며 외부 세력 그 누구라도 영토의 침범이 있을 때는 목숨을 바쳐 수호할 자세인 “결연히 창검을 세운다”고 하였다.

이상으로 <사할린의 민들레>, <윤동주 생각>, <독도> 등을 살펴보면 조주환 시인은 역사의식에 바탕으로 한 시를 꾸준히 써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우리 나라 현대 최초의 대하서사시조집인 『사할린의 민들레』시조문학사에서도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다만 아직까지도 신춘문예 심사를 줄곧 맡기도 하고, 열린 시조에 대해 목청을 높이고 있는 윤금초 시인은 “ 800년 이상 면면히 그 맥을 이어온 시조문학의 기나긴 역사에 비해 아직까지 장편 서사시조 한 편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우리 문학사의 크나큰 수치가 아닐 수 없다.”13)고 하고 있으니, 그의 무지를 드러내는 말인지 고의성이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필자의 추측으로는 윤금초의 『현대시조 쓰기』의 상당 분량의 내용이 김제현의 『현대 시조작법』의 내용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으며, 앞에서도 밝혔듯이 그 책에는 조주환 시인의 『사할린의 민들레』에 대한 소개도 자세히 나와 있는 것으로 봐서 무지의 소치로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더구나 이 작품으로 제5회 중앙시조대상을 받으며 있으며, 시조시단의 쟁쟁한 “月下, 白水, 師峯, 松羅, 金濟鉉, 徐伐, 沃泉” 선생님의 격려에 감사하는14) 글을 보면 이 땅에 장편서사시조가 없다는 윤금초 시인의 말은 이해하기 어렵다.

 

다음으로 역사에서 소재를 찾은 작품으로는 조순호 시인의 <박혁거세>, <김후직>, <김대성>의 세 작품이 있다.

순수서정시를 앞에서 두 편 다룬 바 있는데, 역사적인 소재를 3편 쓰고 있으니 천년 고도 경주에 거주하는 조순호 시인으로서는 당연히 관심을 가질 만한 소재일 것이다. 역사에 대한 것으로 시의 폭을 넓힌 것이다.

세 편 모두 현재 시제를 사용하며 역사를 과거 것이 아니라 현대에도 살아 있는 과거로서의 역사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백성을 다 버린 듯

사냥길만 나서던 임금

 

하얀 뼈 흙이 되도록

성군의 길 일깨우려

 

오늘도 길목을 지키며

손 모으는 님의 혼.

            -조순호, <김후직15)>

조순호 시인은 오늘도 길목을 지키는 <김후직>의 묘를 보면서 충간(忠諫)하여 왕을 깨우치던 모습을 돌아보고 있다. 오늘날에도 ‘소통’의 문제가 크게 중요시 되고 있다. 옛날이든 오늘날이든 사회 각층 및 정치권력의 정권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은 바른 소리를 들어야 할 것이다.

<박혁거세>에서는 “오늘도/ 도타운  햇살이/ 온 누리에 쏟아진다.”고 하며 양극화 현상의 문제점이 갈수록 심해지는 오늘날 우리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도록 서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을 말하고 있다. 위정자들은 자신의 영달이 아닌 진심으로 국민을 위하는 자세로 임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김대성>에서는 “하늘에 닿은 효심이/ 불국사로 태어나”라고 하여 김대성의 ‘효심’은 ‘부모님이 장수와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여 불국사와 석굴암을 설계하여 완성하게 된 것을 노래하고 있다. 절의 완성은 그의 사후에 완성하게 되었다.  미국의 동양여류사학자인 존 카터 코벨 여사는 ‘석굴암’을 지구상 종교적인 예술 중에서 한 가지 사상을 한 건물 전체를 통하여 구현한 유일한 작품이라고 극찬하였다. 불구사의 건물 배치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은 불국사가 온전히 복원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불국사와 석굴암은 불교의 심오한 진리를 그 건축을 통하여 재현하였으니 지금까지도 세계적인 걸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런 것들도 자 전세와 현세의 부모님을 위한 지극한 효심에서 꽃피운 것임을 노래하였으니 오늘날에도 김대성을 생각하면 머리가 숙여진다.

서석찬 시인은 ‘서라벌’ 시인이다. 서라벌145를 내놓고도 시집으로 묶지 않는 것은 앞으로도 노래할 것이 너무나 많이 남아 있는 까닭이 아닌가 한다. 서석찬 시인은 경주에서 태어나 경주에서 살아왔다. 맥시조문학회 창립회원은 조주환 시인과 서석찬 시인 2명 뿐이다. 이러한 서석찬 시인이 어느 때부터인가 ‘서라벌’을 노래하기 시작하였으며, 한 번 흐르기 시작한 물줄기를 갈수록 더욱 넓고 깊게 흐르고 있다. 서석찬 시인의 가슴을 거쳐서 나온 ‘서라벌’ 시들은 1,000년의 세월을 훌쩍 건너가서 우리가 옛 ‘서라벌’에 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서석찬 시인은 ‘서라벌’을 노래하되 흘러간 과거의 추억을 되새겨보는 것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고 그 옛날을 오늘날에 재현시키는 힘이 있다. 그래서 읽는 이로 하여금 1,000년 전의 세월이 과거가 아니라 현재로서의 과거임을 생생하게 체험하게 한다.

 

죽은 것들이 숨죽이며 수화를 나누는 곳

핏발선 목 줄기위로 뜨거운 피가 흘러

폐기된 이면지위로 일어서는 하루하루

 

언제나 산 것들이 죽은 것을 닦아낸다

미이라가 되어 버린 시간을 훔치면서

죽어서 만들어내는 산 것에 대한 의미들을

                 - 서석찬, <서라벌 145-박물관에서>

 

박물관의 유물들은 “미이라가 되어 버린 시간”이지만 “죽어서 만들어내는 산 것에 대한 의미들을”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현재에도 살아있는 과거로서의 의미를 찾고 있는 것이다. 역사를 바라보는 바람직한 자세로 여겨진다. 존 카더 코벨 여사는 동양여류 사학자로 일본 동경대학에서 평생 학문을 연구하다가 “유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고 고희의 나이에 한국으로 와서 한국인과 한국의 역사에 대한 사랑을 몸소 보여주었다. 특히 한국은 “신라, 백제, 고구려의 삼국사가 아니라 일찍 문화를 꽃피운 가야를 포함한 4국사”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일본인의 역사 왜곡을 단적으로 “천마총의 천마도”를 통하여 일본 임나설을 비롯한 허구적인 역사를 파헤쳤다.

한국 사람 100명이 이야기하는 것보다 제3자인 외국 사람 한 사람이 인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진실의 손을 들어 주었다. 독도도 여러 가지 증거 자료를 통해서 우리의 영토가 분명한다. 그런데도 ‘독도’를 일본인 중에는 아직도 야만의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일본땅이라고 주장하니 그냥 참는다고만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서석찬 시인은 ‘경주박물관’하나만 노래하더라도 책 한 권이 되고도 남으리라 생각한다.

 

하루 한 끼 목숨을 끼니마다 꺼내서

바닥이 보이도록 긁고 또 긁어 내면

물푸레 진물이 나와 새까맣게 타는 인연

 

다 내준 빈 삶에도 바루 하나 남아서

말씀은 삶아내고 인연은 퍼내어도

행구고 또 행궈내도 자꾸 남는 저 미련을

 

육신의 갈증 때문 버리지 못하는 건

세상을 고루고루 탁발(托鉢)을 하다보면

빈 바루 향기 머금고 하루하루 빛이 난다

                        -서석찬, <서라벌7-바루> 전문

 

이 작품을 2009년 1월에 맥시조 카페에 올렸을 때, 한솔 김진혁 시인은 “갑자기 시들이 미쳤나보다. 갈수록 시들의 눈망울이 미친 듯 빛나네요. 계속 뛰세요. 약발 받을때 놓치지말고 ....핫팅”이라고 칭찬했으며, 봄비 이경옥 시인은 “라벌님 최근작이 예전에 비해 빛나고 있다고 회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칭송하셨어요. 쭈욱 지켜보고 있는 회원들의 귀감이 되게 더욱 정진하시고 올해나 내년 쯤에는 처녀시집도 발간하면 좋겠네요. 저도 화이팅~ 입니다”라고 격려했다.

바루를 통한 시적 형상화가 뛰어난 작품이다. “물푸레 진물이 나와 새까맣게 얽힌 인연”이 “말씀은 삶아내고 인연은 퍼내어도/ 헹구고 또 헹궈내도 자꾸 남는 저 미련을”으로 이어졌다. 속세의 인연을 끊고 구도를 향한 어려움을 절간에서 늘 생활하는 ‘바루’를 통해서 시적 형상화를 하고 있음이 놀라운 표현이다. 부처님도 탁발을 하셨다. 금강경 첫 구절의 탁발의 과정을 먼저 소개하고 있다.16) 탁발은 집착을 버리고 인욕(忍辱)의 정신을 기르기 위한 수행이다. ‘나’라는 아상(我相)을 버려서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인데, 깨달음을 얻으신 부처님께서도 다른 비구들과 똑같이 걸식하여 본을 보이고 있다. 밥을 얻기 위해서는 남에게 공손이 머리를 숙여야 할 것이다. 현재 조계종서에서는 오늘날에는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현실에 맞추어 ‘탁발’을 공식적으로는 금하고 있다.

결국은 아무리 끊기 어려운 ‘육신의 갈증’도 “세상을 고루고루 탁발을 하다보면”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인 해탈을 날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임을 “빈 하루 향기 머금고 하루하루 빛이 난다”고 표현하여 첫째 수와 둘째 수와 셋째  수가 내용상 물이 흘러가듯이 잘 연결되고 있다. <서라벌>을 노래해온 서석찬 시인이 한 차원 높게 뛰어오른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사족으로 서석찬 시인의 <서라벌>에는 1,000년 고도의 무궁한 소재를 주된 소재로 표현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현실적인 소재도 외면하지 않는다. 역사는 결국 과거와 현대가 만나는 것이 역사가 아닌가.

 

하늘 가득 떠돌던 민심의 붉은 씨앗

하얗게 옷 벗으며 드러낸 얼굴에는

하나 둘 간절한 마음 싹이 트는 새벽 하늘

 

마침내 터진 폭죽 그 불빛을 따라서

순산의 함박웃음 가득 채운 경주에

참아온 고통의 날들 일어서리 황룡의 꿈

             -서석찬, 『맥․25』<서라벌 153-방폐장 유치확정> 전문

 

서석찬 시인은 경주 방폐장 유치가 경주시민들의 민심이 모인 결과요 축제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더욱 도약하는 경주가 되기를 “황룡의 꿈”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 사회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핵문제도 마찬가지다. 환경론자들은 핵이라면 무조건 반대만 하고 있다. 핵의 평화적인 면은 보지 않고 다만 파괴적인 면만 부각시킨다. 그러면서 평화적으로 사용하는 핵 사용은 반대하면서, 진정으로 가공할 만한 위력으로 민족의 생명을 집어삼키려는 북한 독재집단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핵실험이나 핵무기 개발에는 오히며 입을 다물고 있으니 그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의심스럽다. 서석찬 시인은 <서라벌>을 노래하되, 경주 시민의 일원으로서도 충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6. 현실비판

 

김우연 시인이 현실성을 노래한 작품을 살펴본다.

 

헤매던 황소 한 마리

코골며 잠들었다.

백여 년 만의 폭설과 한파로

온 거리가 얼었는데

수도관 데우는 열기로

언 핏줄을 녹인다.

 

불과 몇 십 년 전엔

논밭 갈던 황소들이

아파트 사이사이

이리저리 기웃대다

신문지 몇 장 깔고서

그래도 꿈을 꾼다.

 

어디 저들 탓이랴

논밭 찾아 떠도는 길

목만 겨우 내놓고서

강 건너던 저들인데

벼랑 끝 칼바람 속에

인동초로 견디리.

     -김우연, <길 잃은 황소, 공중화장실에 잠들다> 전문

 

어느 몹시 추운 날 공원의 공중화장실에서 신문지 깔고서 잠든 사람들을 보고 쓴 것이다. 양극화 현상에서 일어나는 그늘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리라. 한편으로는 우리 인간들이 생산을 효율성을 앞세운 도시로 짐승처럼 몰려나왔지만, 거지처럼 살아야 하는 현실에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안타깝기만 하였다. 이런 그늘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소득 2만불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하였다. 6.25때는 소득이 50불이었다고 한다. 농업이 주가 되었던 시대에는 대부분 사람들은 노동을 하면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 대도시에서 가진 것도 없고 일자리도 없는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들에게 팔매질을 할 수 없는 구조적인 모순이 있는 것만 같다. 자연을 멀리할수록 인간은 불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들에게도 희망이 있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이경옥 시인은 청문회를 보면서 불신만을 불러온 인사청문회를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처서 벌써 지났는데 매미소리 요란하다

어리둥절 피어난 매화꽃 라일락꽃

사람들 정신 못 차리니

미물들도 난린지 싶다

        -이경옥, <2010 인사 청문회를 보며> 전문

 

이 작품은 현실비판적이요 풍자적인 작품이다. 지난날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실망을 하였다. 사회지도자는 남의 모범이 되어야 할 것인데 부패, 병역미필, 거짓말 등등 냄새가 진동하여 사람들을 정치에 더욱 불신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경옥 시인은 “사람들 정신을 못 차리니/ 미물들도 저 난리지 싶다”라고 철 지난 매미 소리며, 제철이 아닌데 피어나는 꽃들을 보며 인간 세상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지도자는 남의 모범이 되는 사람이라야 남이 따른다. 그런 인물들이 지도자가 되기를 바라고 있는 이경옥 시인이 마음이 보인다.

 

서석찬 시인은 <서라벌>을 노래하기도 하지만 현실성이 강한 시도 노래하고 있다.

 

껍데기는 가라가라 고래고래 고함질러

누가 있어 알맹인가 두리 번 거려봐도

결국은 껍데긴 것들 알맹인냥 뻐기기는 -첫째 수

 

모가지 가득가득 소주를 털어놓고

돌아눕는 그 녀석 껍질을 질겅질겅

질기긴 하다만서도 씹을수록 단맛이라 -다섯째 수

 

껍데기는 가라라라 알맹이도 가라가라

껍질이면 어떻고 알맹이면 어떠하랴 -일곱째 수

결국은 하나인 것을 혼자인 척하기는

 

이참에 우리 모두 껍데기나 될 일이다

화려함도 두려움도 끝은 다 하나인 걸

껍데기 알맹이보다 더 깊은 맛 나는 것을 -여덟째 수

                 -서석찬, <껍데기 예찬>

 

이 시는 8수로 된 연시조이다. 그만큼 서석찬 시인의 현실 비판에 대한 울분이 쏟아져서 길어진 것이다.

살다보면 이중적인 인간을 가끔 보게 된다. 위선적인 것에 분노할 수 있지만 불쌍하게 바라볼 수도 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다함께 잘사는 세상’이라고 외치며 그것이 민주화의 길이요 참된 길인 양 어깨를 펴고 띠를 두르고 주먹을 내민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자들은 해마다 대기업노조원들이나 그렇게 해왔다. 그 피해는 누가 보아왔는가. 파업기간의 임금을 보상하기 위해서 대기업의 하청업체인 힘없는 중소업체들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어왔다. 소위 ‘귀족 노조’원들이 힘이 약한 노조원들의 피를 빨아왔던 것이다. 그러고도 민주화 인사인양 떠들어 댄다. 배만 채우고자 하는 동물적인 인간들일 뿐이다. 가장 위선자들이다. 노동자가 노동자를 짓밟은 것은 얼마나 나쁜가. 저 북녘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유재산을 깡패처럼 빼앗아서 다함께 잘 사는 것인가. 독재권력자들의 배만 채워주고 있지 않은가. 황장엽 씨는 통일의 길을 분명히 제시하였다. 독재권력자인 김정일 일가를 제거하고 희망의 사회 구조로 만드는 길 뿐이다. 그 길 이외의 어떤 통일의 방법도 환상에 지나지 않고, 거짓에 지나지 않음을 현실에서 드러나고 있다.

산업 현장에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아온 서석찬 시인은 그 누구보다 위선적인 태도에 울분을 느꼈으리라. 서석찬 시인은 젊은 시절부터 정의에 불타는 가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자신의 생각만으로는 살아갈 수는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가슴 깊숙이 담겨 있고 변하지 않는 순수한 마음이 있어 이 시를 노래한 것이리라.

“결국은 껍데긴 것들 알맹인냥 뻐기기는”이란 이 한마디면 위선적인 태도를 비난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러나 감정을 억제할 수 없어 “싸기기 없는 놈이” “똥물에다 발을 깊이 담그고는”이라고 노골적인 말을 서슴지 않고 있다. 결국 그는 소주를 마시며 껍질을 씹게 되고, “질기지만 하다만서도 씹을수록 단맛이라”고 껍데기를 예찬하고 있다.

그래서 “이참에 우리 모두 껍데기나 될 일이다”고 권하면서 ‘껍데기가 알맹이보다 더 깊은 맛이 난다고’하였다.

흔히 알맹이가 선이고 껍데기는 악으로 비유되지만 이 시에는 그런 통념을 무너뜨리고 있다. 그래서 이 시는 감정을  많이 토로한 작품이지만  위선적인 인물에 대한 현실비판에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강성태 시인도 현실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낮은 데로 스며들어

패인 곳 채우 듯

 

외롭고 힘겹고 구석지고 그늘진 곳

 

물처럼 적셔야 하리

배려 손길

골고루

 

물같은 흐름

바람 같은 소통으로

 

베품과 나눔 햇살처럼 펼쳐야 하리

 

더불어 살아가는 길

상생(相生)으로

멀리

함께

  -강성태, <동행>

 

오늘날에는 ‘더불어 살아가는 길’이 모두 행복된 길로 가는 길임을 강성태 시인은 알고 있다. 양극화 현상의 그늘이 짙어질수록 사회의 불안도 그만큼 커지는 것이다. 그래서 강성태 시인은 더불어 살아가는 상생(相生)의 도를 말하고 있다. 다만 이 땅에 미친 바람처럼 휘감으며 불안을 조성하는 ‘다함께 잘사는 세상’과는 다를 것이다. 사회주의 사상자들은 그 허위가 드러나서 세계적으로 실제적인 막을 내렸다. 다만 저 북한만 권력자들의 욕심에 의해 동포를 살인적인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을 뿐이다. 그보다 더한 거짓을 일삼는 자들은 남쪽에서 북한 독재자를 은근히 찬양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역사를 왜곡하면서 남남 갈등을 조장해왔다. 이제는 그들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중이라고 본다. 다만 일부 좌편향 법관들이 궤변으로 그들을 두둔하고 있다.

강성태 시인은 ‘더불어 살아가는 길’을 위해서 가진 자는 좀더 베풀고 나주어야 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위정자는 아래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잘 들어야 할 것이다. 막힌 곳에는 진실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늘진 곳’에 물이 땅에 스며들듯이 고루고루 스며들 수 있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상생(相生)’의 길이라는 것이다. 시조가 개인이 서정에만 머물지 말고 역사의식, 사회의식으로 확대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7. 예찬

 

“경주 외동 냉천리엔 비익조가 있습니다”라고 김우연 시인이 ‘애기봉 시인-김일용’을 예찬하였다. 김일용 시인의 인품은 순박하며, 그의 웃음 또한 진심이 담겨 있어 느낀 바 많았다. 총회 때 숙식과 많은 음식을 제공해 준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연꽃차를 마시며 그 향기에 취해서 시상이 저절로 나왔다.

 

 

 

 

 

 

 

8. 환경 문제

 

환경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는 원정호 시인의 작품이 있다.

 

너무 늦게 둥지 튼 숙명적인 탄생으로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버림받은 철새들을

계절은 그물을 펼치며 달려들고 있었다.

나무들은 저마다 가지 들어 길을 열고

몇날 며칠 강물을 따라가며 울어 보았지만

끝내는 솟대 끝에 올라 그리움이 되었다.

                 -원정호, <솟대 끝에 올라보면-떠날 수 없는 철새>

 

오늘날에는 환경 문제가 정치, 경제, 교육 등의 모든 면에 걸쳐서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인간을 비롯하여 지구상의 동식물의 생존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이 이전에도 환경 문제는 있었다. 인류 최초의 생태시는 기원 전 ‘길가메시’를 꼽고 있다.17) 산업화 이전 유럽에는 땔감, 농토 확장, 목축 등으로 삼림이 파괴되어 14세기 경에는 가뭄이 심화되어 식량난이 심각함에 처했다고 한다. 산업 혁명 이후에는 대기, 토양, 수질 등의 환경이 급속도 오염되고 파괴되면서 인류는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특히 북극, 남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며 그 위험성을 점점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이 시에서는 철새들 중에서 늦게 태어나서 무리에서 떨어져 끝내 혼자가 된 새를 소재로 하고 있다. 그 새는 무리들을 따라가기 위해서 강물을 따라가며 울기도 했지만 끝내는 혼자 남게 되고, 솟대 끝에 올라 있는 모습을 그렸다. “계절은 그물을 펼치며 달려들고 있었다”는 표현에서 ‘계절’을 의인화 시켜서 생생한 이미지를 구사하고 있는 점이 뛰어났다.

원정호 시인은 무리를 그리워하는 ‘철새’를 보면서 가슴 아파하고 있다. 그 새의 그리움은 ‘망부석’ 설화에서 임을 기다리다 죽어서 망부석이 된 것과 비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원정호 시인은 철새가 어떤 그리움과 혹독한 계절의 시련이 있을지라도 잘 견디어 내라는 기원의 심정을 담고 있을 것만 같다. 원정호 시인은 가슴이 따듯하며, 언제나 사회를 긍정적인 것으로 노래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항상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우리 동포들도 저 철새와 같이 사할린에서, 일본에서, 만주에서, 북녘에서 피붙이를 찾거나 고국의 땅을 밟고 싶으나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죽어갔으며 지금은 거의 고령이 되어 그 희망이 꺼져 가고 있다. 특히 남북 이산가족들의 아픔이 저 철새의 그리움과 무엇이 다르랴. 텔레비전의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북녘이 고향인 102세 된 노인이 매일 운동하면서 오래 살기를 원하고 있었다. 속사정은 아버지 어머니 산소에 가서 한 번이라도 절을 하는 효도를 하고 그 옆에 묻히겠다는 소원 때문이었다. 임진강 망향비 앞에서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을 보면서 이 땅에도 ‘그리움’의 한을 안고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 시는 환경문제를 다룬 시이면서도 ‘그리움’의 정서를 함께 느끼게 하는 작품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다.

Ⅲ. 나오며

 

이상으로『맥․30』를 살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작품해설을 해겠다는 욕심이 있었으나 시평(詩評)에 대한 소견이 부족하여 감상문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작품을 남이 평해준다면 객관성이 있어 더 좋겠지만, 남의 평만 기다리기보다 우리 회원님들의 작품을 우리 회원이 평을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시작하였습니다만 군더더기가 심한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시는 시인을 떠나면 새로운 생명이 있다지만 너무 자의적인 해석으로 시인의 마음을 혹 상하게 하지나 않았는지 걱정이 됩니다. 총회 때나 세미나 때에 모든 회원들이 조금씩 준비한다면 더 알찬 모임이 될 것 같습니다. 주옥같은 작품들을 대함에 배운 바도 많고 느낀 바도 많았습니다. 잘못된 것을 지적해주시면 달게 받겠습니다.

 

『맥․30호』에 발표된 작품은 16명이 76편의 시를 발표하였다. 그 발표량은 1)자아성찰, 2)순수 서정, 3)일생생활, 4)그리움, 5)역사의식에 대한 내용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아 성찰(깨달음)’은 21편, ‘순수 서정’은 16편, ‘일생생활’ 15편, ‘그리움’ 10편, ‘역사의식’ 10편 등을 합치면 68편으로 위의 다섯 가지 주제가 전체의 90%에 이른다.

이밖에도 현실비판, 예찬, 환경(생태시) 등도 일부 발표되었다. 주제는 크게 8가지 로 나타났다. 대부분 서정에 바탕을 두면서 감각적인 시적 형상화를 하여 생생한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었다. 흔히 시조에 대해 걱정하는 ‘음풍농월’적인 시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맥시조 시인들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좀 더 욕심을 부린다면 ‘역사의식’, ‘현실 문제’, ‘환경’, ‘민족’, ‘다문화’, ‘장애우’, ‘교육’, ‘안보’, 등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더욱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그 영역을 확대해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 나라 최초의 대하서사시조인 조주환 시인의『사할린의 민들레』도 우리 맥시조의 자랑이 되고 있다.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란 노래가 있습니다. 글을 쓰다보니 작품 해설이 아닌 감상문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글이 가치가 있는 글일까 스스로 의심을 해봅니다.  그러나 ‘이런 해설 또 없습니다’라며 널리 이해를 바랍니다.

 

 

 

 

 

 

 

Ⅱ. 나의 문학관

         

 

1. 가장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

 

김우연

 

내가 시조 창작을 하게 된 것은 우연한 인연 때문이었다. 1980년 교직 첫 발령을 받은 안강고등학교에 조주환 시인이 계셨기 때문이었다. 그 분과 수석 탐석을 함께 하고 또한 시조에 대해서도 배웠다. 조 선생님은 1979년 안강에서 ‘비화’ 동인회를 창립하여 자유시와 시조를 쓰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시집을 내다가 몇 년 후에는 모두 시조를 쓰는 문학지로 변하였다. 나는 등단한 지 15년 가까이 시조만 써 오고 있다. 아직 시집 한 권도 없는 처지에 나의 문학관을 쓴다니 외람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나름대로 나의 문학관을 돌아보았다.

80년대 중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시조의 문학적 사명감이 끝났다”라는 『삶을 위한 문학교육』의 한 마디가 내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나도 민주화에 공감하고 어쩌면 시보다는 민주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하였으나 우리 민족의 전통이요 뿌리를 왜곡하는 것에 대해서 바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주장을 펴는 근본은 서구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기인한 것에 나오는 것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적인 사고로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한 노동운동이 교육은 물론 문학까지도 재단하고 지금도 많은 부분에서 진실하지 못한 것들을 보여주고 있다. 가진 자와 없는 자로 세상을 바라보는 천박한 철학을 가진 이가 시조를 왜곡 시키고 아직도 그런 사람들의 시각이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평시조는 양반 시조요 가진 자의 것이요, 사설시조는 평민들의 것이요 없는 자의 것이라는 도식은 서양의 이분법적인 사고에 기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시조가 변증법적으로 발전되어 온 것이 아니라 평시조와 사설시조의 뿌리는 처음부터 다르다. 또한 사설시조도 대개는 중인층들의 유희적인 작품들이 많다. 조선 후기 중인층은 만족할 만한 권력은 없었을지언정 물질은 넉넉한 층이었다. 평시조가 사설시조로 발전해갔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것으로 식민사관 극복을 위한 도식적 이론을 맞추기 위한 것일 뿐이다. 평시조는 평시조요 사설시조는 사설시조이다.

특히 7차 교육과정의 교과서에서 시조 작품의 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이것은 서구의 이분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교과서 편집에 크게 관여한 때문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양반층, 가진 자를 적대시하고 통일이라는 명분에 사로잡혀서 그 자신이 솔직하지 못하고 우리 민족의 보석을 팽개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그래서 교과서에서 고시조는 물론 현대시조의 작품도 자유시와 균형 있게 싣고 가르치고 가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 시조시인들 중에는 전통을 지킨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창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음 교육과정에서는 좀더 자유시와 시조가 균형 잡힌 시조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시조는 정형시이다. 시조의 형식을 벗어나서 새로운 형을 개발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은 시조의 형식을 완전히 벗어난 것은 시조가 아니다.

또한 형식을 갖춘 시조라는 것을 분석해 보면 시조의 형식에서 벗어난 작품들이 제법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두 가지만 들어본다. 첫째로 시조는 3장 6구이다. 그런데 ‘구’의 개념은 두 음보가 한 구가 된 것이고, 한 장의 가운데를 나눈 단위이다. 그런데 현대시조를 보면 구의 개념이 없이 쓴 작품들이 있다. 시조의 운율이 살아날 수 없다.

둘째는 시조의 한 장은 기본적으로는 4음보이다. 그런데 3음보 작품도 제법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작품은 시조의 형식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 두 가지 현상은 읽기 위한 시조라거나 전통의 형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현대성을 살린 시조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다면 이것은 크게 잘 못된 것일 것이다. 현대시를 염두에 두고 시조의 가장 장점인 운율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조의 내용은 현대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음풍농월에서 벗어나서 현대 사회를 현대인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진실한 마음을 표현해야 남에게 감동을 준다고 본다. 오늘날은 숫자의 시대, 감각의 시대라고 한다. 자신의 내면 성찰보다는 경제적인 수치와 온갖 감각적인 행동이 앞서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문학의 사명감이라고 본다. 특히 진실한 마음의 표현은 이런 세대들에게도 감동을 줄 것이라 믿는다. 물질의 중요성만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진정한 행복은 무엇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을 찾는 길인가를 제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 길은 시에서 진실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본다.

아직도 일본인들 중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또 우리 사회에서도 촛불을 횃불로 사용하는 사람들, 통일을 외치면서 자신의 체재를 부정하거나, 우리 문화를 사랑한다면서 우리의 보석인 시조를 폄하하는 사람들, 환경을 외치면서 권력을 탐하거나, 시민참여를 외치면서 권력을 탐하는 사람들 등 거짓된 사람들을 수없이 많이 본다. 그러나 나는 시를 통하여 이러한 거짓에서 벗어나고자 애쓰는 것이 나의 문학관이다.

가장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을 한 뼘 한 뼘 가꾸기 위한 시를 앞으로도 쓸 것이다. (문학공간』,2009,1월호 게재)

 

 

 

 

 

 

 

 

2. <나의 시, 나의 시론>-피 묻은 시, 흰 뼈의 시

 

서숙희                                                        

 

오랜만에 긴 호흡으로 산문을 쓰고자 책상 앞에 앉는다. 시가 직관과 은유로 이미지를 형상화 시키는, 말하자면 글쓴이 자신을 최대한 숨기면서 최대한 표현하는 일견 모순된 작법을 견지한다면, 산문은 보다 진솔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 솔직함에 있는 것 같다. 시적 긴장감을 내려놓은 이 해방감이라니. 펜이 가는대로 마음을 열며 시와 나, 나와 시, 이 불가해하면서도 절망적인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시란 무엇인가. 이는 무릇 이 땅의 모든 시인 앞에 던져진 명제가 아닐까. 이 대명제 앞에서 당황해하거나 속수무책이지 않는 시인이 있을까.

 

지리하고도 긴 회임, 쉽사리 단안을 못 내리는 사념의 발열, 심층심리 안의 문답, 외롭게 회귀한 개 성적 심상, 선명하지도 밝지도 못한 사고의 교착, 암시, 모든 잠재의식과 꼬리가 긴 여운. 시인이 버리면 영 유실되는 것, 시인이 명명하지 않으면 영 이름이 붙지 못하는 것. 원초의 작업 같은 혼돈 에의 투신과 첩첩한 미혹, 그리고 눈물나는 긴 방황.

 -김남조, 〈시의 주소는 어디인가〉에서

 

정말 그렇구나, 하며 무릎을 치게 한다. 그러나 곧바로 다시 ‘혼돈에의 투신’과 ‘첩첩한 미혹’ 속에 빠지게 한다. 그리고는 또 여전히 ‘눈물나는 긴 방황’을 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시일까.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같은 무게로 시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놓여 있고 왜 사는지 모르면서 살아가는 것처럼 왜 시를 써야 하는지 모르면서, 그리고 내 시가 과연 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나는 시를 쓰고 있다. 다만 몇 안되는 내 시의 시어 하나하나 마다, 혹은 행간 마다 내 온 진실을 쟁여 넣으면서.

 

초심을 잃지 마라는 경구가 있다. 그만큼 초심을 잃기 쉽고 망각하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시의 길로 들어었을 때, 신춘문예의 문을 두드리던 그때, 15년 전 그해의 십일월과 십이월을 나는 혹독하게 보냈다. 한 줄의 시를 건지기 위해 캄캄한 밤바다에서 자맥질을 거듭했다. 일부러 방에 불기를 넣지 않았다. 차가운 방에서 밤을 세며 백지 앞에서 정신의 날을 갈았다. 손과 발, 뺨이 싸늘한 공기에 시려오면서 육신은 지칠 대로 지쳐 왔지만 그럴수록 영혼의 날을 벼리려 무진 애를 썼다.

지금, 시에 대해 나태해지려 할 때마다 그때의 초심을 불러내어 나를 일깨우며 채찍질하는 죽비로 삼는다. 나는 쉽게 쓰는 시를 경계한다. 단번에 써내려간 시를 멀리 한다. 어렵고 두려운 시, 피 묻은 시, 흰 뼈의 쓰고자 한다. 그래서 초고를 주머니나 핸드백에 넣고 다니며 시간 날 때마다 들여다보고 매만지고 다듬으며 담금질을 거듭한다. 그럼에도 발표할 때는 늘 부끄럽고 내 시의 한계에 절망한다.

음악에 있어 작곡, 미술에 있어 조각. 이들은 다른 장르에 비해 보다 고도의 예술적 장치와 혼, 정교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분야라고 늘 생각하고 있다. 시는 문학에 있어서 음악의 작곡과 같고 미술의 조각과 같다. 허공에 집을 짓는 것과도 같이 막막하고 절망스럽다.

막막하고 절망스러운 시작(詩作)의 과정은 늘 고통스럽고 힘겹지만 그 속엔 분명 어떤 것으로도 대치할 수 없는 희열이 있다. 나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와 욕망을 시라는 정교하면서도 명징한 장치를 통해 표현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다. 그것이 고통 끝에 얻는 것이기에, 그리고 온전히 나를 쏟은 후에 얻는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들여다보면 어디에고 시가 있다. 저기 먼 산과 빈 들녘, 벗은 나무 한 그루에, 낮은 풀 한포기에, 그리고 지금 내 방안의 이 적요한 공기 속에. 밝은 눈과 촉수를 가지고 시의 눈으로 사물을 들여다 볼 것이나, ‘시는 언제까지나 기다리지 않으면 안된다. 일생 동안, 그것도 70년 또는 80년 걸려서 벌처럼 꿀과 의미를 모아야 한다’는 릴케의 말을 또한 새겨, 기다리고 기다려서 얻는 피 묻은 시, 흰 뼈의 시를 쓰고자 한다. (다층 2007년 봄호)

 

 

 

 

 

 

 

 

 

 

 

 

 

 

 

 

 

 

 

 

 

Ⅲ. 나의 시조 산책

 

나의 시조 산책

 

김진혁

 

 

참 세월은 빠르다.

79년 여름, 수석의 동호인으로 처음 만난 조주환 선생님의 지도로 시조 창작에 입문한 지 29년, 처음 만난 후 1년여 동안 매주 토요일은 작품을 들고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 나이 서른 하나, 고향이 광주이면서 경북 안강에 첫 직장을 풍산금속에 두고, 부친의 사업의 실패와 현실적 소외감 속에 사로잡인 고통의 시간 속에 타향에서 신혼을 보내고 있었다. 지난 날 유년의 고운 추억들은 사라지지 않고 일어나 늘 괴롭혔던 고뇌에 찬 나날들, 그 때 태어난 첫 작품 ‘항국’이 새롭다

 

가난한 나의 뜰에 찬 서리 내리던 날

스러진 가지마다 솟아나는 정이 있어

한아름 고운 추억만 띄워 놓고 떠났어.

 

그리움 더한 세원 흘러보니 이젠 한 점

추억도 물이 들면 곱게 필 꽃이 되나

남몰래 설운 눈물난 남겨 놓고 떠났어. (황국 전문)

 

그 후 82년 시조문학에 추천되고 84년 천료 됨으로 시조시 단에 등단하게 된다. 늦게 시작한 일이라 집에서도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이 길만이 나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일이라 믿고 멈추지 않았다. 사실 그 동안 직장을 옮기고 실직의 늪을 빠져 나와 당시 동력자원부에 임용됐는데, 그 해 천료 소감도 없이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다.

1회 추천 ‘학’과 천료 작품 ‘서천 강나루’ 일부를 소개한다.

 

천년목숨 머리에 이고

치솟아 오른 쪽빛 하늘

사념의 기슭을 돌며

잠시 접은 나래깃 사이

한백년 여윈 일월이

소리 없이 저문다.

 

울어도 풀리지 않을

빈 목숨 그 어디쯤엔

염원의 여운이 어려

노을 밖을 이루는가

하많은 아픔을 딛고

일월 쪼는 부리여. (학 1,3수)

 

하늘 끝 수평 위에 이승의 긴 숨결이

산보다 큰 업으로 남아 물비늘로 삭히는데

어둠속 물새 한 마리 피안을 쪼아 댄다. (서천강나루 3수)

 

그때 당시의 허전한 마음을 표현한 시가 아닌가 한다.

그 후 88년 가을에 그 동안 시작품 80여 편을 묶어 ‘바람으로 서서’를 상재하게 된다. 그 해 돌아가신 부친의 영전에 올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詩作한 지 9년, 천료 4년 만에 어설픈 작품이나마 월하 선생님의 서문을 받고 조주환 선생님의 해설을 실었다. 공직에 몸담으면서 정서적으로 점점 안정을 찾을 수 있어 전남 화순에서 경북 문경으로 발령을 받아 삶의 터전을 옮겼음에도 서정적, 자아의식의 극복, 민족과 종교를 통한 현실의 새로운 개안 등 시상의 확대에 힘을 기울였으나 탐탁하지 않다. 불혹을 넘긴 나이에 삶의 의미를 되새기며 여전히 삶의 의미는 시와 신앙으로 확인하고 바다처럼 열리는 삶의 의미와 넘치는 사랑과 쓸리는 고독과 그리움을 일구어 새로운 생명의 시로 하여금 내 존재의 발자국을 새롭게 느껴 본다. 그러면서 사색을 통하여 대자연 가운데 미미한 내 삶의 의미를 발견하려고 노력하였다. 91년 경북 문경 사무소에서 재직하면서 제2시조집 ‘술잔 속에 넘치는 바다’를 상재하게 된다.

 

술잔속에 넘치는 당신은

지워도 일어서는 파도입니다.

허물어진 기억의 한계를 넘나들며

자꾸만 가슴 후비는 날이 선 바람입니다. (술잔속에 넘치는 바다 첫 수)

 

치솟는 욕망의 비늘이 퍼덕인다.

진한 어둠 걷히고 일출, 그 순간에

갑자기

날카로운 비명이 청각의 한계를 넘는다. (개화기 첫 수)

 

당시 서정적 자아의 내면에 숨어 있는 본성을 은유한 문무학, 권형화, 권갑화 시인들의 시를 즐겨 읽었고, 나래시조 동인의 리강용 시인, 신후식 시인, 장세득 시인들과도 가끔 만나곤 하였다.

또한 문경 세재에서 개최된 민족통일 대동 장승굿의 행사를 보고 우리의 사상과 감정에 짙게 박힌 무속인 장승굿을 시조로 표현하여 소화해 내려는 의도에서 연작시 30수를 그려내기도 하였다.

 

가자, 우리의 산아, 저 솟대에 깃발을 달고,

저마다 제 사는 곳, 내닫는 걸음마다

뜨거운 가슴을 열고 출발이다, 덩더쿵. (민족통일장승굿 열마당 중 끝 수)

 

요즘 남북교류가 활발히 진행된 것을 볼 때 장승굿의 효험이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뿌듯하다. 한편 누가복음의 감회를 시화한 만남을 위한 노래 연작을 시도해 보았으나 시력이 부족한 나로서 38수로 마감해 버리고 말았다.

제2시조집의 해설 역시 조주환 선생님이 쓰셨는데, 정확한 시어, 뚜렷한 주제의식, 감정의 절제 등을 극복해야 할 과제를 제시해 주기도 하였다.

 

문경에서 다시 화순으로 또다시 보령으로 옮기면서 8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보령에서는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 시작에 전념할 수 있었다. 한국적인 정서 속에 그리움의 정한을 넣으려고 애써 시도해 보았다. ‘범종소리’ ‘남조창’ 그리고 ‘청동하늘을 그리며’ 등 심혈을 기울인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다.

노을이미지가 공무원 문예대전에서 장려상을 받고, 다음 해 가야 유물발굴 현장이라는 부재로 쓴 ‘청동하늘을 그리며’ 로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한평생 가슴앓던 욕망의 비늘을 털고

찬란한 저 수평에 찌든 때를 씻고 나면

속죄의 황홀한 순간 푸른 영혼이 보인다. (노을 이미지 셋째 수)

 

가만가만 붓끝으로 천년 햇살 털어내면

곰삭은 얼굴들이 소스라쳐 잠을 깨고

절박한 선대의 숨결이 일어서는 청동하늘. (청동하늘을 그리며 첫 수)

 

두 번째 시조집을 낸 지 9년, 2000년 말에 그 동안 쓴 작품들을 한데 모아 제 3 시조집 ‘청동하늘을 그리며’를 이지엽 교수의 작품해설로 상재하였다.

공직생활의 마지막 작품집이라 생각하고 여기 저기 흩어진 작품들을 정리해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새로운 시가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강박감이 들었기 때문이리라. 2004년 12월, 공직을 마무리하고 그 이듬해 동신대학교 산학 협력단에서 근무하게 되고 낙향하여 전남 광주 시조시인협회에 가입하여 꾸준히 작품을 써오던 중 2008년 1월에 70여 편의 작품을 모아 제 4 시조집‘내 마음의 작은 두레를 상재하게 되는데 3 집 이후 8년 만에 나오게 된다. ’자연 경영, 그 순수의 서정 따기‘라는 발문으로 노창수 회장이 친히 써주었다.

 

당신은 비바체 플롯 그 맑은 음성으로

산수유 꽃그늘 아래 춤추는 듯 다가와

살며시 귀볼 간질이는 꽃잎으로 왔나요.

 

한세상 사는 것이 슬픔도 아닌 것을

작은 문 조금 열고 기웃대며 망설이다

따뜻한 봄볕을 감고 꽃잎 하나 주셨나요. (산수유 꽃그늘아래 1,2 수)

 

가면 갈수록 어려운 작업을 어떻게 해내야 할 지 몰랐던 나에게 이 자리까지 올 수 있도록 지도와 격려를 해 주신 모든 분들 특히 시조의 길을 열어 주신 조주환 선생님. 맥 시조 동인 여러분께 늘 감사드린다. 결국 노력한 만큼 거둘 수 있다는 평범한 생각이 나를 이 자리까지 오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시와는 도무지 인연이 없는 기술직 공무원인 내가 우리의 정형시인 시조 밭을 가꾼 지 29년, 그저 척박한 텃밭 하나 일구어 어둔한 낱말을 억지로 꿰어 맞추며 내 감성의 마음 밭에 씨를 뿌린지 여러 해, 나는 또 다시 새로운 마음의 눈을 뜨고 계속 이 길을 가려 한다.

최근에 지은 시 한편을 끝으로 처음과 오늘을 가름해 보고 저 나은 삶 속에서의 나와 나의 시조 세계를 자평해 본다.*

 

*원이 엄마에게

 

                      김진혁

 

사랑이 무엇이고 부부가 무언가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고독한 그대 영혼은

사백년 망각忘却을 깨고 하늘 나는 푸른 학鶴.

 

한번 가면 못 올 길에 그리움만 날 刃을 세워

삼단 머리채 베어 미투리를 삼았을까.

가시는 저승 길섶이 이승보다 환하구나.

 

사백년 태워도 남을 뜨거운 사랑으로

여백 없이 써내려 간 진한 먹빛 자국자국.

사부곡思夫曲 애틋한 사연이 긴 강으로 흐느끼네.

 

그대처럼 설움 많은 조선의 어머니들

못 다한 정과 한을 눌리고 재운 한 생애가

오늘은 메아리 되어 세상 허공 찢는구나.

 

* 세계적인 인문지리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원이 엄마'의 사연과 미투리를 '사랑의 머리카락(Locks of Love)'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했다. 이 미투리는 1998년 경북 안동 조선시대 사람 이응태(1556 ~1586) 의 무덤을 이장하던 중 발견됐다.

 출토 당시 미투리는 한지에 싸여 있었는데 31세 젊은 나이에 죽은 남편을 위해 아내는 그녀의 머리카락

으로 짠 사실이 드러나면서 애틋한 부부애를 느끼게 해 주었다.

Ⅳ. 시조 낭송

          -『맥․30호』에서

 

 

1. 묵은지

 

                  이경옥

 

  잘 익은 묵은지 맛

  새싹처럼 파릇하다

 

  버무려지고 곰삭아서

  보시기에 담긴 말씀

 

  화엄이 따로 있는가

  입안에 고이는 경(憬)  

 

 

 

 

 

 

2. 중심에 닿는다는 것은

 

                      서숙희

 

과녁에 박힌 화살을 뽑으며 알았네

섬뜩하도록 탱탱한 손끝에 닿는 전율은

제 몸에 깊숙이 꽂은

뜨거운 비명임을

 

중심에 닿는 다는 건

스스로를 관통하여

운명의 입속을 향해

자신을 쏘는 것

아, 그대

먼 과녁이여

내 아득한 중심이여

         

 

3. 연두빛 신앙

 

               손수성

 

내 안에 사는 나팔꽃

나를 밀어 올리리라

 

바람을 휘감으며

허공도 오르게 하리라

 

담장을,

넘는 환희로

내 주변을 웃게 하리라

 

 

4. 봄비 2

 

                         김진혁

               

가식의 옷을 벗고 가지 위에 내려 와

해맑은 클라리넷 고운 선율을 탄다.

무수한 팔분음표로 출렁이는 이른 새벽.

 

가만 보면 방울방울 새 날의 등을 달고

멀어진 그리움이 다시 봉긋 돋아날 듯

해 묵은 가지 끝마다 연록의 길을 연다.

   

 5. 연

 

                     김제흥

 

날아서 보노라면 가볍잖은 삶의 무게

저 세상 그 모두를 발 밑에 두고라도

무언지 허전해지는 하늘 높은 여기서

6. 晩秋

 

                     조영두

 

 

새벽별 찬이슬 머금은 이른 들녘

구절초 소담스레 무리지어 눈뜨고

텅 빈 논 가득한 햇살

계절이 익어간다.

 

온 여름 고단했던

삶의 흔적 걷어내고

공허로 남는 가을 저편에서 오는 소리

내일은 또 새로울 게라는

밝음을 보며

한 해를 마감하는

그루터기에 비춰 보는

질박했던 농부의 처진 어깨 너머로

꿈꾸듯 지켜 온 삶이

흰 연기로 오른다.

               

 

7. 먹빛 솎기

 

                        강성태

 

마음의 뜨락에 서(書)의 창을 드리워

먹 갈고 붓 잡기  위안으로 삼은 나날

무채색 끝 모를 깊이에 솟아나는 빛줄기

 

순백의 설원에 그리움의 점을 찍고

마르고 거친 맥박 애환의 획을 그어

들끊듯 뿜어진 먹빛

눈부신 침묵이어라

 

잡힐 듯 멀어지는

보일 듯 사라지는

불가해(不可解)의 숨결인가 미몽(迷夢)의 필화(筆花)인가

또 한 겹 껍질 벗기며

먹빛 순수 솎는다.

 

8. 책

 

                         김일용

                   

몇 날 며칠 읽어도 못 읽는 아버지의 말

행간 같은 이랑을 책으로 만들었다

씨앗들 글자로 뿌려 띄워 쓰기도 하면서

 

은유법 쓰는 봄비 첫 페이지를 읽고 가면

음표로 돋는 새싹 악보 읽는 뻐꾸기

몰려온 풀뿌리 관객 난해 시를 써놓았다

 

뙤약볕 허리 굽혀 호미로 캐는 말씀

낱말 같은 땀방울 거름으로 뿌려두고

마침표 없는 문장을 날마다 쓰고 있다

 

 

9. 서라벌7-바루

 

                          서석찬

 

하루 한 끼 목숨을 끼니마다 꺼내서

바닥이 보이도록 긁고 또 긁어 내면

물푸레 진물이 나와 새까맣게 타는 인연

 

다 내준 빈 삶에도 바루 하나 남아서

말씀은 삶아내고 인연은 퍼내어도

행구고 또 행궈내도 자꾸 남는 저 미련을

 

육신의 갈증 때문 버리지 못하는 건

세상을 고루고루 탁발(托鉢)을 하다보면

빈 바루 향기 머금고 하루하루 빛이 난다.

10. 고향길

 

                       조주환

             

내 감성의 여울목에 푸른 불길로 타는

아직 마르지 않은 영혼의 탯줄 같은

아득한 경상도 길섶의

탱자꽃을 따 문다.

 

보현산 산그늘 따라 대추나무 뿌리로 늙은

큰댁 골기와 쪽에 그리움만 파랗게 돋고,

추억은 낙엽을 흩으며

빈 가지를 흔든다.

 

칼끝 같은 슬픔이 박혀 하늘빛은 더 푸르고

금호강 강물로 울던 내 젊은 날 상흔 위로

길게 휜 산굽이 아득히 한 생애가 저문다.

 

낡은 항아리처럼 등이 굽은 내 노모는

모진 세월로 퇴행성관절을 앓고

바람은 눈발을 날리며

갈대처럼 흔들린다.

               

 

 

11.  오월

 

                    조순호

 

   

다듬이질한 비단 같은

하늘 한 폭 잡힐 듯

 

산야엔 신록이

웃으며 다가오고

 

어머님

하얀 옷자락

불현듯 피어난다.

 

 

 

 

 

12. 석양은 그림자 묻고

 

                  박광훈

 

 뱃길

 아직 먼데

 석양은 그림자 묻고

 

 타향을 떠도는 별들

 하나 둘 내 곁에 내려

 

 가슴을

 쓸다가 쓸다가

 항적길을 쫍니다.

 

 고향이 파도로 일고

 추억이 뉫살로 피고

 

 오늘이, 내일이...

 물비늘로 돋는데

 

 아득히

 수평선 멀리로

 하현달이 뜹니다

 

 

 

 

 

 

13. 분재를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어머니.34

         

                           김두섭

 

베란다 속 단풍은 외출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창 너머 사람들 버스 타는 소리도

길 너머 칠월이면 또,

불빛축제도 본다

 

쏴아아 파도소리

조개껍질 벗는 소리도

날마다 짧은 고개

깨금발로 높이 서서

오늘도,

강강수월래 하듯 한 뼘 씩만 맴을 돈다

 

고요한 밤거리

찹쌀떡 파는 소리

문 밖으로 살며시 고개를 돌리고는

어쩌나, 난 움직일 수 없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14. 친구

 

               이문균

 

보고 싶은 친구들

생각나는 날이면

 

말려둔 깻단 털듯

툭툭툭 털어봅니다

 

숨었던 그리운 친구

깨알 되어 쏟아집니다.

 

15. 길 잃은 황소, 공중화장실에 잠들다

 

                            김우연

 

헤매던 황소 한 마리

코골며 잠들었다.

백여 년 만의 폭설과 한파로

온 거리가 얼었는데

수도관 데우는 열기로

언 핏줄을 녹인다.

 

불과 몇 십 년 전엔

논밭 갈던 황소들이

아파트 사이사이

이리저리 기웃대다

신문지 몇 장 깔고서

그래도 꿈을 꾼다.

 

어디 저들 탓이랴

논밭 찾아 떠도는 길

목만 겨우 내놓고서

강 건너던 저들인데

벼랑 끝 칼바람 속에

인동초로 견디리.

     

 

16. 솟대 끝에 올라보면-떠날 수 없는 철새

 

                           원정호

 

너무 늦게 둥지 튼 숙명적인 탄생으로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버림받은 철새들을

계절은 그물을 펼치며 달려들고 있었다.

나무들은 저마다 가지 들어 길을 열고

몇날 며칠 강물을 따라가며 울어 보았지만

끝내는 솟대 끝에 올라 그리움이 되었다.

편집 후기

 

 

맥시조문학회가 창립된 지 3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해마다 한 권씩 동인지를 발간한 것이 『맥․30호』입니다.

정기 총회 때 회장님을 비롯하여 책임을 지고 있는 임원님들께서 시급한 문제들을 의논해 오고 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일박을 하면서 정담을 많이 나누는 것이 우리 맥시조의 자랑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들이 우리 시를 평해주기를 기다리기에는 너무나 바쁘게 살아가는 세상이라 생각하면서, 맥시조회원으로서 작품 해설을 할 만한 혜안을 갖추지 못하였지만 감히 작품을 들여다보면서 느낀 점을 적어 보았습니다. 군더더기 말일지언정 정기총회 때에 조그만 연수자료가 되었으면 합니다.(김우연)

 

 

 

『맥․30호』에 나타난 주제 의식

발행일 : 2011.1.

발행인 : 맥시조 회장 김두섭

발행처 : 동아인쇄․기획(구미시 신평동)

 


1) 단수시조의 고전이 된 시 한편, 이우걸 선생님의 "팽이"를 잘 아시겠지요. "쳐라, 가혹한 매여 무지개가 보일 때까지"로 시작되는 시는 저를 강렬하게 일어서게 하고 서럽게 존재하게 합니다. 찰지고 매운 매로 누가 나를 쳐 주기를, 두껍고 뻔뻔한 살을 다 흩뿌리도록, 무수한 고통을 맨몸으로 건너 찬란한 무지개가 보일 때까지 가혹한 매가 되어 치고 또 쳐달라고 하고 싶어지는 시입니다.

 

 

위의 시 "불온한, 詩"는 시 "팽이"를 읽고 느낀 감흥에 받은 영향이 컸습니다. 모든 문학, 나아가 모든 예술이 다 그러하겠지만 시는 충분한 내적 고통이 낳는 산물일 것입니다. 시조 역시 먼저 시가 된 후에(시적 완성도를 구축한 뒤에) 그 위에 율과 격을 얹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시조는 창작과정에서 이중의 고통을 겪어야 하겠지요. 한 편의 시로 탄생시키기 위한 産苦에다, 맺고 푸는 우리 고유의 가락을 시에 잘 스며들도록 자연스럽게 실어야 하는 기술(?)을 필요로 하니까요.

2) 이봉수,『현대시조』103호(2009년 겨울호), 67∼68쪽.

3) 경주시 외동읍 입실 마을 이란리 서쪽 산등성이로 불룩하게 솟아오른 아기봉은 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낮고, 바위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봉우리이다. 아기봉이 자리한 입실 마을은 신라 시대, 불국사와 모화리의 원원사 사이에 있는 78개의 사찰과 사찰 사이의 통로로 마치 복도처럼 생긴 마을이다. 불국사에 들어간 사람은 미리 이 마을의 작은 사찰로 들어와 삭발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었다는데, 도(道)를 닦으러 오는 사람들이 실내로 들어오는 문이라 하여 ‘입실’(入室)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예사롭지 않은 마을 이름 유래에서 짐작할 수 있듯 아기봉 역시 신성한 전설을 품고 있다. 『삼국유사』에 전해지는 기록을 토대로 한 옛날 이야기다.


삼백예순날을 하루같이 아기봉에 올라가 치성을 드리는 할머니가 있었다. 그날도 할머니는 목욕재계 후 새벽 하늘 맑은 별빛을 벗삼아 산으로 올랐다. 먼저 떠난 바깥양반과 함께 사는 가난한 가족들을 위해 양손이 닳도록 부비고 앉았다 일어섰다를 수차례 반복하는 동안 어느새 동이 터 올랐다. 기도를 마치고 일어서려던 할머니는 저쪽 봉우리에서 다가오는 오색찬란한 빛을 보았다. 그리고 그 빛의 정체를 확인한 할머니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녀였다. 황금꽃과 금이파리로 장식된 머리 관을 쓰고 비단 날개옷을 입은 선녀의 몸짓은 눈부시면서도 화려하지 않고 마치 하늘거리는 풀꽃처럼 가냘프고 아름다웠다. 할머니는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선녀의 동정을 살폈다. 선녀가 오색 구름을 타고 내려온 후에도 구름이 바위를 감싸 돌고 흐를 뿐 한동안 정적이 계속됐다. 잠시간 선녀의 신음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으앙~” 하고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당혹스런 광경을 지켜본 할머니는 자기도 모르게 “윽” 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순간, 뜻 밖의 화답이 있었다.


“거기 누구 계세요? 저 좀 도와 주세요.”


애원하며 흐느끼는 선녀의 청을 듣고 할머니는 떨리는 다리를 일으켜 눈부신 선녀의 실체에 한 발짝씩 다가섰다. 선녀의 다리 밑에 피투성이 아기와 마주했을 때는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할머니는 숨을 크게 한 번 들이마신 후 장님처럼 서툰 손을 더듬어 아이의 탯줄을 끊어 주었다. 산 정상 바위 홈에 고인 맑은 물을 치맛자락에 적셔 내려와 아기의 몸을 정성껏 닦아 주고 선녀의 비단 치맛자락으로 살포시 아이를 감싸 안아 주었다. 그제서야 선녀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할머니. 저는 보시다시피 선경(仙境)에 사는 제석천왕의 막내딸이에요. 어쩌다 하늘도 허락치 않는 연분을 맺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에게 기대가 크셨던 아버님이 노하여 인간 세상으로 쫓아냈지만 다시 저를 불러 주실 줄로 믿어요. 이곳은 아버님께서 노여움을 푸시는 동안 제가 잠깐 머물다 갈 귀향지라고 생각합니다. 할머니의 은혜는 잊지 않을 테니 제발 저를 도와 주십시오. 사람들에게 제 아이의 존재가 알려지면 저와 아이 모두 생명이 온전치 못할 것이니 부디 제 은신처를 알리지 말아 주십시오.”


선녀의 간곡한 부탁을 들으며 할머니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비밀을 지켜 주겠노라는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할머니는 그날 이후 밤낮없이 산에 올라 선녀의 시중을 들기 시작했다. 큰 바위 밑에 거처를 만들어 주고 선녀가 덮고 잘 두둑한 목화 솜이불도 가져다주었다. 밥과 빨래는 물론이고 아기가 걸치고 있을 배냇저고리도 손수 지어다 입혀 주었다. 덕분에 아이는 건강하게 자랐다. 그런데 아기가 태어난 지 삼칠일이 되는 날,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이의 말과 행동이었다.


“어머니, 인간 세상에는 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힘을 기르지 않으면 약자만 피해를 입게 됩니다. 저는 이제부터 힘을 기르겠습니다” 하고 석굴 앞에 있는 지름 50cm, 길이 1m쯤 되는 돌을 밧줄로 묶어 짊어지고 동몽산 정상을 오르내렸다. 기이한 아이의 행동은 매일 반복되었다. 너무도 신통하게 여긴 할머니는 선녀의 간곡한 부탁을 잊은 채 집안 식구들에게 그 아이의 정체를 누설해 버리고 말았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고 급기야 임금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신하를 파견해 사실을 확인한 임금님은 좌불안석이 되었다.


‘그 아이가 어른이 되면 얼마나 힘이 세어질지 심히 걱정이군. 하늘나라 사람이니 인간의 말을 순종할 리 만무하고, 그 아이를 이대로 방치해 두었다간 언제 궁으로 쳐들어와 나를 헤칠지 모르니 하루빨리 대책을 마련해야겠군.’


자신의 신변에 위협을 느낀 임금님은 고민 끝에 그 아이를 없애 버리라고 명령했다.


그날 밤, 어머니를 보호하기 위해 굴 밖에서 잠을 자고 있던 아이는 비명소리를 내지를 겨를도 없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버렸다. 사주받은 장수가 아이의 시체를 부대 자루에 넣어 옮기려는 순간 갑자기 요란한 우레소리와 함께 폭우가 쏟아져 겁에 질린 군사들은 시체를 내팽개치고 도망을 쳤다. 한밤중 난리 통에 잠이 깬 선녀가 굴 밖으로 나왔을 때 아이는 온데간데없고 부대 속에는 커다란 돌덩이로 변한 아이의 시체만 있을 뿐이었다. 더 이상 지상에서의 삶에 희망을 잃어버린 선녀는 목메어 울다가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튿날 이들을 발견한 할머니는 자신의 경솔함을 깊이 뉘우치며 양지바른 곳에 그들을 함께 묻어 주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 봉우리를 아기봉이라 불렀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집에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면 이 바위에 치성을 드리고 아기봉 부근에서는 부정한 일을 삼가고 있다.


위 전설을 입증하듯 지금도 그 바위 위에는 갓난아이를 목욕시켰던 둥근 홈이 남아 있고 바로 아래 동굴 앞에는 아기가 지고 다녔다는 돌이 있는데, 그 돌에는 두 줄의 밧줄자국이 있다


4) 김훈, 『칼의 노래』, 생각의 나무, (2010, 개정판 34쇄), 232~233쪽.

5) 
삼업(三業)


아석소조제악업(我昔所造諸惡業) 개유무시탐진치(皆由無始貪瞋痴)
종신구의지소생(從身口意之所生) 일체아금개참회(一切我今皆懺悔)
내가 저 먼 과거로부터 지은바 여러 가지 악업들은
모두가 저 시작도 끝도 없는 과거로 부터의 탐진치로 말미암은 것이다.
모든 악업들은 신`구`의(身`口`意) 삼업으로 부터서 생기는 바이오니,
일체를 이제 다 참회 하옵나이다.








6) 김우연, 『맥․28집』, 2008. 및  『새시대시조』(2008).

7) 맥시조 카페 : <마지막 꽃상여-어머니 4> 시작노트 :  결혼도 하기 전에 어머님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혼자 살기 바빠 효도라는 단어 자체를 잊어버리고 살었던 것 같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다. 어머니에 대한 불효가 엄습해 온다.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연작시를 쓰기로 한다.

8) 윤금초,『현대시조 쓰기』, 새문사, 2010, 초판3쇄, 203쪽.

9) 위의 책, 207쪽.

10) 위의 책, 210쪽.

11) 김제현, 『현대 시조작법』, 새문사, 1999, 270~27쪽4. 이 글은 조주환,『사할린의 민들레』( 혜화당,1991.)의 서문 ‘나의 詩, 나의 辨’에서 밝힌 바 있다.

12) “조주환의 시조는 ‘사유’ 보다는 ‘직관’에 가깝다. 그것은 아마도 평생을 교육자로서 살아온 선비정신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시편마다 청진기가 들려져 있고 시편마다 작은 촛불이 들려져 올곧은 삶을 향한 몇 갈래의 길들이 환하게 독자들을 인도하고 있다. 언제나 그는 부정적인 시각에서 현실을 조명하되 좌절하지 않으며 냉정한 진단은 내리되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것이 그의 시조가 지닌 가치요 미덕이다. 분명한 것은 결코 가볍지 않은 그의 처방이 가져다 줄 민족정신의 건강성과 그의 전정술에 다듬어져 온 사도(師道)라는 나무에 열린 시조열매가 지닌 향기는 오래도록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13) 윤금초, 『현대시조 쓰기』, 새문사, 2010, 초판 3쇄(초판은 2003년), 19쪽.

14) 조주환, 『사할린의 민들레』, 혜화당, 1991. 서문에서.

15) 경주 간묘
경북 경주시 황성동에 '諫墓(간묘), 諫獵墓(간렵묘)' 또는 '金后稷(김후직)묘'라는 무덤이 있다. 이 무덤은 신라 22대 지증왕의 증손으로, 진평왕 때 임금께 충성으로 (간)하다가 罷職(파직)된 병부령 김후직의 무덤이다.
옛날 신라 서울의 주변은 무성한 숲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서쪽에는 남정숲이 있었고, 남쪽에는 흥륜사로 유명한 천경림이 있었다. 동쪽에는 남천왕사로 이름난 신유림이 있었고, 북쪽에는 호원사로 이름난 논호림(지금 고성숲)과 유림숲이 무성하게 울을 치고 있었다. 논호림과 유림숲은 특히 울창하여 새들과 짐승들이 많이 서식했으므로 임금과 귀족들은 이 숲에서 사냥을 즐기는 일이 많았다.
지금 논호림과 유림숲 사이에 옛무덤 하나가 쓸쓸하게 자리잡고 있는데이 무덤은 신라 충신 김후직의 묘로서 간묘라 불리우는 유서깊은 묘소이다. 김후직은 신라 22대 지증왕의 증손으로 진평왕 때 병부령이라는 높은 벼슬에 있었다. 진평왕은 신체가 장대하고, 힘이 장사일뿐 아니라 무예도 능했으므로 사냥을 무척 즐겼다. 대궐을 비워 놓고, 사냥을 즐기는 무리와 함께 짐승들의 뒤를 쫓아 헤매는 날이 퍽 많았다.
어느 날, 김후직이 사냥을 떠나는 임금의 말고삐를 붙잡고 "옛 성인의 말씀에 사냥을 즐기면 마음이 거칠어져서 옳은 생각을 못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나라의 정무를 등한하시고, 사냥으로 시간을 낭비하신다면 선대에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옵고 만대에 본보기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임금님께서 사냥을 거두어 주소서" 하며 눈물로 간청하였다. 그러나 왕은 김후직의 손을 뿌리치고 숲을 향해 말을 달렸다. 그 후에도 김후직은 여러번 임금님께 간청하였으나 왕은 후직의 말을 귀찮게 여길 뿐 아니라 끝내는 후직을 미워하게 되었다.
임금께 충성으로 바른 말을 올리려 애쓰던 김후직은 그만 병이 들어 죽게 되었다. 임종에 이르러 세 아들을 불러 놓고 "나는 임금의 잘못 행함을 바로 잡아드리지 못하고 죽는구나. 임금이 그릇되면 나라가 위태롭게 되는 것인데 이를 바로 잡아 드리지 못했으니 나를 어찌 임금의 신하라 하고, 나라를 사랑한다 하겠느냐. 내가 죽거든 임금이 사냥다니는 길 옆에 묻어 달라." 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아들들은 고성숲 서편 유림숲으로 가는 길옆에 산소를 모셨다. 그때 진평왕은 유림숲으로 자주 사냥을 다녔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왕은 많은 사냥꾼을 거느리고, 유림숲으로 사냥을 떠났다. 매사냥꾼들은 매를 손에 들고 짐승 사냥꾼들은 활과 창을 들고, 많은 개들을 앞세우거니뒤세우거니 하면서 고성숲 독산에서 유림숲으로 향해 줄지어 갔다. 이때 바람결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임금님, 사냥을 거두어 주소서..." 하는 간절한 소리에 사냥꾼들은 그만 가슴이 움찔하여 걸음을 멈추고, 사실을 임금께 아뢰었다. 그제서야 임금님이 귀를 기울이니 사냥을 거두어 달라는 애절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임금은 "이 소리가 어느 곳에서 들려오는가?"하고 신하들에게 물었다. "얼마 전에 죽은 김후직의 무덤에서 들려오는 소리인줄로 아뢰옵니다" 하고 신하들이 대답했다. 임금은 눈을 감고 말이 없었다. 감고 있는 임금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김후직은 죽어서도 나를 아껴 무덤 속에서 충간하니 내 어찌 이 말을 안 들으리오. 이 말마저 듣지 않는다면 무슨 면목으로 그의 영령에 대하랴." 하고, 사냥길에서 되돌아 섰다. 진평왕은 그후부터 일체 사냥을 하지 않고, 정무에만 힘썼으니 사람들은 이 묘소를 기리어 간묘(諫墓)라 부르게 된 것이다. 지금 묘 앞에 김후직 묘비가 서 있는데 1710년 경주부윤이 세운 것으로 김후직 간신 지묘라 새겨져 있다.






16) 金剛經, 第一 法會因由分, “이와 같이 들었사온데-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 나라 기수 숲 고독원에 큰 비구 무리 1,250명과 함께 계시었다. 그 때, 마침 세존께서 식사를 하실 시간이라, 가사를 입으시고 바리때를 드시고 사위의 큰 성안으로 들어가시어 그 성안에서 밥을 빌으시기를 한 집 한 집 차례로 다 마치시고 본디 계시던 곳으로 돌아오시어 밥을 다 잡수시고 나서, 가사와 바리때를 거두어 치우시고 발을 씻으신 뒤에 자리를 마련하고 앉으시었다.

17) “이 작품은 최초의 서사시일 뿐만 아니라 생태주의를 다룬 최초의 문학 작품이다. 이 서사시는 5,000년 전의 태고적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21세기에 사는 현대인에게도 창조의 새 아침처럼 자못 신선하다.”
김옥동,『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서양 고전』, 현암사, 2005 2쇄. 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