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조

1. 추강에 밤이 드니 -남진원의 애송 명시조 감상(31)에서

가산바위 2013. 11. 19. 15:34

1. 추강에 밤이 드니

 

 

쓸쓸함과 허전함이 가을 강에 비치는 달빛 같은 아름다운 옛 시조를 읽어본다.

 

추강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우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홀로 오노매라

                                            -월산대군

 

월산대군은 누구인가? 왕의 적자였지만 정치세력 집단에서 가려진 아웃사이더였다. 정치적으로 지지리 운이 없는 사람이다.

수양대군인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등극하였다. 세조는 맏아들 의경 세자가 있었지만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의경세자에게는 월산대군과 동생 성종이 있었다.

의경세자가 죽으니 당연히 그의 아들 월산대군이 왕위에 올라야 했으나 그때 그의 나이 4세밖에 되지 않으니 세조의 둘째인 예종이 왕통을 잇는다. 예종 또한 1년 남짓 왕오릇하다가 애석하게 죽으니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이 왕통을 이어야 한다. 그러나 또한 나이 어리다는 이유로 양자를 들이는데, 그 양자가 의경세자  덕종(추증)의 둘째인 성종이다. 그러니 월산대군은 이래저래 왕권에서 제외된 인물이었다.

왕의 아들인 적장자로 태어나 할아버지인 세조의 사랑을 받았지만 세조 사후 정치적으로 소외된 인물이었기에 그가 가진 외로움이 무게가 족히 만근은 넘었을 것이다. 삼촌이 자기 대신 왕위에 오르고 나중에는 동생이 왕위에 오르니 그때까지 신변에 위협도 얼마나 많이 느꼈을 것인가. 월산대군이 사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풍류객이 되는 것이다. 쓸쓸함과 외로움에 사무친 세월은 울분과 비분마저 감자 썪듯이 섞었을 것 아니겠는가. 많은 조선의 왕들이 여인의 치마폭에서 단명으로 마친 것과는 달리 월산대군은 술과 스트레스로 꿈 많은 생을 포기한 채 삶을 접었을 것이다.

시조 '추강에 밤이 드니'는 그의 미학과 인생이 담긴 한 편의 시조라고 여겨진다.

가을밤의 강물은 물결소리에서부터 고적함이 몰려든다. 찬 물결처럼 온통 세상이 춥고 비어있는 모습이다.

낚싯대를 드리워봐야 한 마리의 고기조초 물리지 않는다. 강물을 현실이라 보고 보면 월산대군 주위에 정치적인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 무심한 달빛만 빈 배에 가득히 싣고 돌아오는 젊은 풍객(風客)의 쓸쓸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많은 고시조가 천편일률적으로 임금에 대한 충성심을 표현하여 정치적인 색채가 짙었다. 그래서 시조의 격이 떨어지는 걸 볼 수 있었는데, 위의 시조는 자신의 심정과 현실을 정조(情調)있는 가락으로 표현하였다. 2013년 지금에 와서 봐도 잔잔한 감동이 전해오지 않는가. 시조로서의 문학성 짙은 작품으로 크게 성공한 것을 알 수 있다. 시조 종장은 얼마나 의연하고 처연하고 멋들이진 표현인가. 가히 가을 강물에 반짝이는 서정의 금빛 비늘이다.

 

현대시조사, 『현대시조 117호』(2013년 가을호), 40~42쪽.(남진원의 애송 명시조 감상(31))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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