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호우 시학의 계승과 극복문제
시조는 전통문제로 고민하는 장르다. 이에 지나치게 빠져있는 학자들은 현대시조를 인정하지 않으려 든다. 그러나 전통은 끊임없이 재해석되어야 하고 바람직한 것의 계승만이 진정한 계승이므로 오히려 역사의식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전통의 선별에는 창조적 안목이 필요하고 시인의 경우 개별적으로 미세한 부분을 탁월하게 시화할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이호우는 가장 강력한 개성으로 시조의 전통을 계승했고 스스로의 결점도 밝힌 시인이다. 초기의 「낙동강」류의 낭만적 상상력은 옛 강호의 시조나 가람의 시조와 비교해도 낯설지 않다. 그러나 「휴화산」류의 시조에 오면 그의 시조는 ‘현실적 상상력’으로 바뀌면서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치열한 비판, 그리고 통일의지를 끊임없이 피력한다. 「비키니섬」,「三弗也」,「상실 」,「 추석」등 일일이 예를 들 필요도 없다. 그는 결국 외우고 전하기 쉬운 평명한 시조를 통해 시대를 노래하고 싶었던 시인이다. 그러나 이호우 시학이 탁월한 이미지보다는 뜻이 강한 말에 의존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휴화산』뒤에 실린 “누군가 말하기를 시조는 가락과 의미는 있어도 이미지를 결했다고 한다. 유의해야 할 일이라고 여겨진다”라고 한 것은 비단 이호우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는 사실 명약관화하다.
나는 이호우 시학의 최대 장점으로는 의지의 미학, 여백의 미학, 잔상의 미학을 들고 싶다. 어떤 시인의 경우 시조라는 형식 안에서 모든 말을 다 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호우의 경우는 여러 가지 상상의 근원 풍경을 제시하고 묵언한다.
눈감으면 선해오는
지위도 가시잖는
胡광대 꽹과리에
어설피 재주턴 그 곰
祖國은 달무리처럼
희끄므레 떠 있고.
-「곰」전문
외세에 놀아나는 사람에 의해 조국은 운명이 암울하다. 이렇게 읽고 이 작품을 넘길 독자는 없다. 왜 곰이 등장했을까? 그 때의 외세는 어느 세력이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이 작품을 넘기게 하지 않는다.
무슨 業緣이기
먼 남의 골육전을
생떼 같은 목숨 값에
아아 던져진 3불 軍票여
그래도 祖國의 하늘이 고와
그 못 감고 갔을 눈
-「三弗也」전문
이 작품은 1966년 1월 12일자 중앙일보 보도를 보고 쓴 작품일 뿐 아니라 발표 시 그 기사를 옮겨놓았다. 그러나 할 말을 많이 하는 시인이라면 이 작품의 소재로 4수 5수씩 써 내려갔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시조문학에서 그런 시도가 시적 매력을 더해주는 방법인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짧지만 강한 시인의 의지가 판토마임처럼 극화되어 독자의 가슴에 닿는다. 계승해야 한다. 시조는 분명히 길게 써서 성공하는 장르는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우걸, 「현대시조, 현대시조단을 위한 몇 가지 생각」에서, 『대구시조』13호(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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