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자료

독서자료집1(독서의 뗏목을 타고(1)/ 김우연 엮음

가산바위 2013. 12. 13. 12:06

 

2012 사제동행독서자료(1)-수정본.hwp

 

2012학년도

사제동행 독서동아리(여울) 독서자료

 

 

 

 

 

독서의 뗏목을 타고

 

 

 

(1)

 

 

 

 

 

 

 

 

 

 

 

 

 

 

 

 

 

 

사교육절감형창의경영학교

사 곡 고 등 학 교

http://www.sagok.hs.kr

 

 

 

 

차 례

 

 

 

1. 하와이 전설1

2. 홀로 당당히 맞서라2

3. 콜베 신부3

4.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1월에서)4

5.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2월에서)5

6.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5,6,7,8월에서)6

7.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9.10월에서)7

8.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11월에서)8

9.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12월에서)9

10. 버나드 비숍 여사의 기행문10

11. 백수 정완영 시조11

12. 고독/박이문12

13. 혜초의 왕오천축국전13

14. 별에서 온 아이/김우연14

15. 간디 어록15

16. 카산드라의 예언16

17.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17

18. 페넬로페의 베짜기18

19. 선택(법구경에서)20

20. 소리들/나희덕21

21. 피그말리온 효과22

22. 비극적 영웅, 오이디푸스24

23. 미노스와 미노타우로스26

24. 이카로스의 아버지 다이달로스27

25. 나르키소스의 닫힌 마음과 네메시스의 응징29

26.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팡세30

27. 『국화와 칼』 해설에서 (해설: 이광규)31

28. 국화와 칼 (제3장 각자 알맞은 위치 갖기)33

29. 국화와 칼 (제3장 각자 알맞은 위치 갖기)35

30. 국화와 칼 (제3장)36

31. 국화와 칼 (제4장 메이지 유신)31

32. 국화와 칼 (제5장 과거와 세상에 빚을 진 사람)39

33. 국화와 칼 (제5장에서 ‘봇창’)41

34. 국화와 칼 (제6장 만분의 일의 은혜 갚음)42

35. 국화와 칼 (제6장)43

36. 국화와 칼 (제6장 만분의 일의 은혜 갚음) -효와 천황관련44

37. 국화와 칼(8장 오명을 씻는다)45

38. 국화와 칼(제10장 덕의 딜레마)46

39. 국화와 칼(제11장 자기 수양)47

40. 국화와 칼(제12장 어린아이는 배운다)48

41. 국화와 칼(제2장 전쟁 중인 일본인)49

42. 『어린 왕자』에서50

43.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51

44. 야생초 편지53

45. 채근담55

46. 누구나 홀로 선 나무(조정래 산문집)56

47. 노자와 21세기(上)57

48. 노자와 21세기(下)58

49. 어머니(막심 고리키)59

50. 흑백이서유(黑白二鼠喩)60

51. 김약국의 딸들61

52.『생태학과 예술적 상상력』에서63

53. 노년의 왕관(게오르규)64

54. 순애보65

55.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한비야66

56. 죽비소리(1)68

57. 죽비소리(2)69

58. 죽비소리(3)70

59. 죽비소리(4)71

60. 독서/서강대 장영희 교수72

61. 가재미/문태준73

62. 콜럼부스74

63.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오히예사의 삼촌)76

64. 메이플라워77

65. 이 대지 위에서 우리는 행복했다(사고예와타)79

66. 생텍쥐페리81

67. 억새꽃(한강 10권)82

68. 열하일기(1)83

69. 열하일기(2)85

70. 자산어보86

71. 돈키호테87

72. 유토피아90

73. 백치(하)에서92

74. 안찰사 손변렴의 판결(역옹패설에서)93

75. 선택(1)/이문열94

76. 선택(2)/이문열96

77. 가장 오래 가는 향기97

78. 우리는 형제들이다(인디언 추장 시애틀의 연설문)98

79. 태백산맥(권8)99

80. 원이 아버지에게100

81. 현대사회의 문화적 전파와 수용101

82. 웰빙102

83. 수삽석남(首揷石楠)103

84. 장길산(3권)-풍렬 스님이 길산에게103

85. 장길산(7권)-잠행104

86. 장길산(12권)-운주미륵106

87. 혼불(3권)-땅에서는 썩어야110

88. 혼불(3권)-청암부인의 혼불111

89. 혼불(3권)-부모상112

90. 혼불(3권)-마을의 유래113

91. 혼불(6권)-구용(九容)과 구사(九思)114

92. 서정가(抒情歌)/가와바다 야스나리115

93. 지배이데올로기-주체사상118

94. 길가메시119

95. 이상121

96. 고향(1)/이기영122

97. 고향(2)/이기영124

98. 스토리텔링126

99. 원형의 전설/장용학127

100. 논어(論語)-학이(學而)130

1.하와이 전설

 

하와이 전설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마을에 딸 셋을 둔 사람이 있었습니다. 둘째와 셋째는 생김새가 고와서 많은 청년들이 서로 데려가겠다고 청혼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첫째는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 대신 집안일을 하느라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여인으로서의 매력은 없었습니다.

이 마을 풍습을 따르자면, 남자가 아내를 데려오기 위해서는 장인에게 소를 주어야 했는데 보통은 세 마리를 주고, 신부가 정말 마음에 들면 다섯 마리를 주기도 합니다. 둘째와 셋째는 각각 소 세 마리와 다섯 마리를 받고 시집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첫째는 아무도 데려가겠다는 사람이 나서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누구든 소를 한 마리만 주는 사람에게라도 딸을 시집보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먼 동네에서 살고 있는 귀공자가 나타나서 큰딸을 데려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큰딸에 대한 소문을 들었었는데 와서 보니 자신의 마음에도 든다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의 말이 정녕 믿을 만했고, 진정으로 자신의 딸을 생각하는 것 같아서 아버지는 속으로 소를 안 줘도 이 사람에게 보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귀공자는 딸을 위해 소 열 마리를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놀란 아버지는 첫째가 귀한 딸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많이 주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귀공자가 열 마리를 받지 않으면 데려가지 않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나중에 돌려달라고 하면 그때 돌려주어도 늦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귀공자의 말대로 하였습니다.

그들은 무사히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떠났습니다. 결혼생활 1년이 지나 친정에 인사 온 첫째 딸을 본 가족들은 모두 놀라고 말았습니다. 귀공자에게 소 열 마리를 받는 것이 미안할 정도였던 큰딸은 1년 동안 귀공자보다 더 우아한 공주가 되어서 돌아왔던 것입니다. 살림만 하던 첫째 딸은 공주와 같은 대접을 받으며 1년을 지낸 후, 소 백 마리도 아깝지 않은 여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첫째 딸이 살림만 하며 집 안에 머물러 있을 때, 그 환경은 그녀를 투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한 남자에 의해서 새로운 환경이 주어지자 그녀의 아름다움이 피어날 수 있었습니다.

출전 : 김홍식,『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 도서출판 주변인의 길(2004) 107쪽.

 

♥ 위 글을 읽은 소감을 자유롭게 써 봅시다.

 

 

 

 

 

 

 

 

 

2. 홀로 당당히 맞서라

 

위험이 증가하는 만큼 기회의 진폭도 커지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을 전망하고 이해하며 판단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 국가가 어떤 약속을 하더라도 임기가 끝나면 그만이다. 직장도 마찬가지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 같은 질문을 진지하게 던져보고 해답을 찾아야 한다.

자신의 직업과 노후, 아이들의 교육 등 스스로 부담해야 할 책임의 크기는 더욱 커졌다. 남들이 가는 길이 올바른 길이던 시대는 지났기 때문이다. 남들 하는 대로 따라가면 그럭저럭 지낼 만하던 시절은 이미 사라졌다. 교육문제만 해도 그렇다. 아이들에게 어떤 미래를 준비시켜야 할지 부모는 자신의 관점을 세워야 한다. 과거에 했던 식은 이제 유효기간이 지났다. 교육뿐 아니라 매사가 다 그렇게 되었다.

공동 창업자로 오늘날의 인텔을 만들어낸 앤드류 그로브의 자서전 『위대한 수업』의 내용이 무척 흥미롭다. 체제의 변질이 개인과 가족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보여주는 감동적인 내용인데, 우리는 이 책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948년 8월, 헝가리에 공산당 정권이 집권한다. 공산당은 먼저 민간 기업을 국유화하고 그 다음 학교 체재에 손을 뻗치기 시작한다. 1936년생인 앤드류 그로브가 11살 되던 해인 1946년 봄, 그의 아버지는 시대의 변화를 나름대로 파악하고 결정을 내린다. 헝가리 속담에 ‘할 줄 아는 언어가 많을수록 그 사람의 가치는 높아진다.’는 말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헝가리라는 국가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자식의 미래를 걱정했고, 그래서 영어를 가르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는 금목걸이를 팔아 수업료를 내면서 앤드류 그로브에게 과외를 시킨다.

 

아버지는 크게 후회되는 것 중 하나가 어렸을 때 외국어를 배우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어른이 된 수 다른 나라말을 배운다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믿고 계셨다. 아버지는 전쟁 중에 독일어와 러시아어를 배워보려고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특히 영어를 배우라고 하셨다. 영국사람과 미국사람 모두 영어를 쓰기 때문에, 앞으로는 영어가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언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그렇게 배운 언어는 훗날 앤드류 그로브가 헝가리를 탈출하고 오스트리아를 거쳐 미국에 입국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게 된다. 앤드류는 “10년 전 영어를 공부하라고 했던 아버지의 고집이 행운을 가져다 준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나는 편지를 쓰면서 아버지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적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국가든 조직이든 자신 이외에 운명을 책임질 수 있는 존재는 없다.

다행히 한국이 다시 역동성을 회복해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을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스스로 판단하고 준비해야 한다. ‘주어진 제도에서 열심히 공부했는데, 왜 일자리를 잡을 수 없는가?’라는 탄식이 흘러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의 고용 사정이 더욱 악화된다면, 다른 나라에서라도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제도나 체제에 믿음을 가지면서도 스스로 위험을 분산시켜 나가야 한다. 스스로 인생을 만들어가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공병호,『10년 후, 한국』,해냄(2004), 222~224쪽. (책의 마지막 부분임)

3. 콜베 신부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는 자신이 설립한 폴란드의 한 수도원에 있다가, 아무 이유 없이 독일군에게 체포되어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존경받는 지도급 인사라는 이유로 독일군 병사들은 그를 집중적으로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과 인격은 수용소 안에서도 빛을 발했고, 다른 수감자들은 그를 보기만 해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이 많은 그는 독일군의 심문을 이겨내지 못하고 나날이 건강을 잃어갔습니다.

콜베 신부가 건강을 회복하자 독일군은 그를 14호 감방에 가두었습니다. 그 감방은 문제 있는 사람들만을 가두는 곳으로, 죽을 때까지 집중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갇힌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사람이 탈옥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수용소 소장은 14호 감방 수감자들을 모두 마당에 불러내서 하루 종일 뙤약볕 아래 세워놓았습니다. 저녁이 되어서도 탈옥한 사람이 잡히지 않자 소장은 다음날 열 명을 가려내어 죽음의 감방으로 보내겠다고 하였습니다. 죽음의 감방은 사람을 굶어 줄을 때까지 아무 것도 주지 않고 가두는 사형감옥이었습니다.

그날 밤, 14호 감방의 수감자들은 한 사람도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한 남자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부인과 아이들이 고향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요!”

하지만 누구도 그를 위로 할 수 없었습니다. 말없는 죽음의 공포만이 가득할 뿐이었지요.

다음날 소장은 14호 수감자들을 마당에 세워놓고 무작위로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름이 불린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죽음의 감방으로 끌려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름이 불린, 어젯밤에 그토록 서럽게 울부짖었던 남자가 또다시 흐느껴 울기 시작했습니다. 병사들은 그를 마치 죽은 짐승 다루듯 끌고 갔습니다.

그때 콜베 신부가 소장 앞으로 다가서더니 그 사람 대신 자신이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나이도 많고, 힘도 없습니다. 제가 대신 가게 해주십시오!‘

콜베 신부를 빤히 쳐다보고 있던 소장은 “그놈을 놔두고 이 신부를 끌고 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날 밤, 아무도 잠들지 않은 수용소 한 구석에서 적막을 뚫고 노랫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소리는 곧 수용소 전체로 퍼졌습니다. 죽음의 감방에서 한 사람에 의해 시작된 노랫소리는 간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밤새도록 울려 퍼졌습니다. 그리고 콜베 신부는 그곳에서 아홉 번의 죽음의 미사를 드리고도 살아남았습니다. 그는 죽어가는 사람을 축복하기 위해 먼저 죽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모든 삶이 죽고 콜베 신부 혼자만이 살아 있는 것을 확인한 독일군은 그를 끌어내어 독극물을 주사했습니다.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는 1969년에 그의 순교 사실이 확인되어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성자로 임명되었습니다.

김홍식,『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주변인의 길(2004), 103~105쪽.

 

 

 

 

 

4.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1월에서)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에는 우선 <감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구하며 그것에 솔직하게 감사하라. 이것은 마음에 한층 안정감을 불어넣어 주며 더욱이 이런 안정된 마음에서는 다른 일들도 훨씬 견디기 쉽게 여겨진다. 이 일을 평소에 끊임없이 연습해두면 점차로 좋은 습관이 되어 삶을 훨씬 편하게 해준다. (1월 5일에서)

 

<침묵을 지켜 실패한 사람은 없다.>

약간 기묘하게 들리는 이 말은 다방면에 걸친 사회생활을 통해서 매우 특출하게 성공적인 생활을 했던, 나의 절친한 사람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실제로 매우 곤란하고 불쾌한 인생살이의 복잡한 분쟁 따위도 이따금 침묵함으로써 손쉽게 헤쳐나갈 수가 있다.(1월 10일에서)

 

지상천국(地上天國)이란, 인간이 신과 항상 뜻을 같이 한다는 것 외에, 아무 것도 더 이상 열망하지 않을 때만이 시작된다.

다가올 천국도, 이외의 다른 무엇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이러한 심정 없이는 그러한 천국에 어울리고, 그곳에 안주(安住)할 수 있으리라고는 이성적으로도 전혀 생각할 수 없다.(1월 13일)

 

좋지 못한 독서는 나쁜 교제보다 더 위험하다. 왜냐 하면 실로 인간이란 완전히 절대적으로 사악하고 타락한 것을 상상의 사물과 같이 자기 내부에 구상화할 줄도 모르고, 또 그런 경우에 미화시킬 줄도 모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나쁜 사람들로부터는 오히려 자연적으로 떨어져서 그들을 경계한다. 반면에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참으로 저속한 종류의 책, 신문, 소설, 희곡 따위가 양가(良家)의 부녀자들의 눈에까지 뜨인다는 점이다.

한 권의 책이 때로는 한 인간에게 있어서 전 생애의 불행이나 행복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1월 18일)

 

<사랑>이란 사람을 기만하거나 또는 흔히 실행에 옮길 수 없는 말이다. 인간에 대해서는 동정이, 신에 대해서는 신뢰와 감사를 표하는 것이 올바른 감정이다. 모든 인간을 진실로 사랑하려 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이며 그것은 심한 실망으로 결국에는 염세주의로 이끌어갈 뿐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 대해서 친절하고 누구에게나 동정을 느끼며, 결코 증오나 공포, 또는 분노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늘 입버릇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을 부르짖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많다.

애정이 없는 사람들과의 잦은 교제는 영혼의 낭비이다. (중략)

인간에 대한 지나친 사랑은 여성에게 있어서는 함정이며, 여성이 거기에서 빠져나오기란 극히 어렵다.(1월 30일)

카알 힐티,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어문각(1988)

* 카알 힐티(Cail Hilty 1833~1909) : 스위스의 사상가, 법률가. 칸트의 영향을 많이 받음. 스위스의 성자로 추앙받고 있음.

5.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2월에서)

 

한번 얼마 동안 시험 삼아 잠시 비판하는 것을 중단하라. 그리고 어디에서든지 힘이 자라는 데까지 무엇이든 선한 것이 있거든 그것을 칭찬하고 또 지지하라. 그리하여 범속(凡俗)하고 악한 것은 허망하고 덧없는 것으로 돌리고 경시해보라. 그렇게 한다면 당신은 보다 만족스러운 생활에 이를 것이다. 우리 생활은 바로 이러한 것에 모든 것이 좌우되는 수가 많다.(2월 5일)

 

대다수의 사람들은 언제나 일하기를 싫어하며, 자기 자신은 활동하지 않는 대신에, 축적된 자본이라든가 여러 가지 유리한 결탁, 또는 편한 사회적 지위 등으로 자기를 위한 다른 사람의 노고에서 획득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스스로 일하는 것보다 더 좋은 상태에 이르지 못하고 오히려 남에게 예속되어 부자유스럽게 살게 된다.

이러한 이치를 빨리 파악하여 스스로 일을 선택하고,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 유일한 자유로운 인간이 되는 자는 극히 드물다.(2월 8일에서)

 

내적인 발전이 행해지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즉, 우리에게 들려주는 소리와, 그것을 들을 수 있는 귀인 것이다.

나는 우리들의 영혼과는 전혀 다른 예지를 가지고 인도하는 영혼의 배려를 믿을 별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경험이 그것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즉, 나의 내적인 인생행로에 도움을 준 중요한 책들은 모두가 <우연히> 나와 만난 것이지, 내 스스로 찾아 낸 책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없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그러한 책 속에서는 배울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일 적절한 준비가 미처 되어 있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2월 11일)

 

인간의 모든 특성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은 성실이다. 이 성실은 거의 모든 다른 특성들의 부족을 보충할 수 있지만, 그 성실 자체는 무엇으로도 보충되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이 성실성은 인간보다 오히려 동물에게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 중요한 점에 있어서는 사실 동물보다 우월하지 못하다. 만약 다른 어떤 점보다도 이것으로 인하여 인간이 우수하다고 한다면 모든 생물이 단계적 진화론의 성립을 나도 인정할 것이다.

또 일반적으로 말해 고등동물보다 인간이 은혜를 아는 법이 드물다. 그러므로 타인으로부터 감사를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나 자기 자신은 언제나 예외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망은(忘恩)의 가장 보편적인 형태는 방문이라든가, 또는 그 밖의 다른 방법으로 상대의 은혜를 갚는 것으로 모든 감사의 의무를 다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군주국가에서는 훈장 수여라는 형식으로 그 일이 행하여지는데, 그로 인하여 그 관계가 오히려 거꾸로 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와 같은 너무나 값싼 지불은 될 수 있는 한 피하고 차라리 빌려 준 채로 있어야 하는 것이다.(2월 26일)

 

* 카알 힐티(Cail Hilty 1833~1909) : 스위스의 사상가, 법률가. 칸트의 영향을 많이 받음. 스위스의 성자로 추앙받고 있음.

 

 

 

6.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5월, 6월, 7월, 8월에서)

 

 

우리들은 지나친 비판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애써 비판을 하는 사람이 대단히 많은 반면, 좋은 것을 인정하여 이것을 고무하고 장려하는 사람 또는 진리를 차분히 그리고 완전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꼭 그렇게 설명되어야 하는데도)은 오히려 드물다.(5월 6일에서)

 

교제를 할 때에 가장 유쾌하고 가장 효력이 있는 것은 조용하고 변함없는 우정이다. 아주 어린 아이도 심지어 모든 동물마저도 이러한 우정을 잘 느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우연적인 것인가, 아니면 순간적인 동기에서 나온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지속적인 성질의 것인가 하는 것마저도 곧잘 판별하곤 한다.(5월 16일)

 

신앙의 열쇠는 본래 사랑이다.(6월 10일에서)

 

너무 많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른바 양서나 종교적인 서적이라 할지라도 아직 옳게 주견(主見)이 서지 못한 사람에게는 불건전한 것이다. 왜냐 하면 그들은 자신의 의견이 정립돼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순수하지 못한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기분에 동요되기 쉽고 그 때문에 오히려 자기의 요구에 대하여 어두워져, 자기의 신념이나 때로는 자기 생애의 사명에 대해서도 갈팡질팡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과는 반대로 완전한 몇 권의 양서를 읽고 거기에 대하여 많이 사색한다는 것은 진보를 가져다 준다.(6월 14일)

 

고난은 사람을 강하게 하지만 환락은 대체로 약하게 할 뿐이다. 무해한 즐거움은 용감히 참고 견디는 고난과 고난 사이의 휴식시간일 뿐이다.(6월 21일에서)

 

남에게 주는 것을 배우는 것은 다른 많은 위대한 일과 마찬가지로 오직 실천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러나 일단 이것을 배우면 그것은 인생의 최대 기쁨의 하나가 된다.(7월 21일)

 

인간관계에 어떤 사소한 일, 뿐만 아니라 생활 관계의 불안도 만약 장래에 대한 우리가 이것에 따르지 않고, 또 자신으로 친히 더 훌륭한 생활을 보아 알고 있어 그로 하여 그것에 대하여 지나친 환상을 지니지 않는다면 결국은 인생의 행복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8월 8일)

 

 

 

 

 

 

7.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9월, 10월에서)

 

관능적 생활에서 완전히 단절된 순수한 <정신적> 생활은 이 지상에서는 무서운 일이다. 그것은 그 사람의 내부에 쉽게 공허한 감정을 만들고 다른 사람에 대한 냉담과 무정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이로 말미암아 냉혹한 수도자적인 폭군이나 신앙 박해의 도구가 발생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개인적으로 하등의 비난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도 이미 많은 환난을 일으켰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언제나 그들에게 대해서뿐만 아니라 이론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철학자, 신학자들 전반에 대하여 언제나 반감을 품었다. 이러한 작자들은 우리들에게 거의 무익하며 또 사람의 마음을 평안하게도, 진보시킬 수도 없는 문제를 즐겨 논의한다.(9월 10일에서)

 

일단 완전히 사랑의 나라에 들어간다면 이 세상은 아무리 불완전하다 하더라도 아름답고 또한 풍성한 것이 된다. 그 까닭은 이 세상은 완전히 사랑을 베풀 수 있는 기회만으로 성립되어 있기 때문이다.(10월 7일)

 

성실은 실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소중한 특성이다. 이 특성은 동물까지도 고귀하게 하고 그들을 거의 인간적 가치와 품위에까지 높일 정도이다. 성실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는 곳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재주와 교양이 있는 사람도 사회 전반에 해를 미치는 야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10월 16일)

 

* 카알 힐티(Cail Hilty 1833~1909) : 스위스의 사상가, 법률가. 칸트의 영향을 많이 받음. 스위스의 성자로 추앙받고 있음

 

 

 

 

 

 

 

 

 

 

 

 

 

 

 

 

8.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11월에서)

 

망각은 이미 이 세상에서의 축복의 시작이다. 만약 레테의 강물 모든 고난이 되살아나와 이 축복은 성립되지 않는다.(11월 2일에서)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그 하나는 우리들이 행복할 때에는 지극히 친절하고 다정하게 굴지만 우리가 계속 불행에 처하게 되면 슬그머니 몸을 숨기는 작자들이다. 다른 하나는 이보다 훨씬 덜 친절하지만, 불운할 때 우리를 버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친애하는 독자여! 당신은 과연 어느 쪽에 속하는가를 판단하라. 또 어느 것이 보다 아름다운가를 판단하라. 만약 상대가 첫째의 무리에 속한다면 이제 어떠한 경우에도 그들이 당신의 심장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하라. 그들은 형편이 좋을 때의 위락일 뿐, 그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다.(11월 4일)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날을 정확히 미리 알고 있다면 아마도 이제는 남에게 심한 화는 내지 않을 것이다.(11월 11일)

 

결혼은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니다. 어쩌면 두려운 일이다. 그것은 개인에게나 전 민족에게 축복의 원천이 되고, 그들이 이제는 다시 일어날 수 없을 만큼의 저주의 기원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개인에 있어서나 전체에 있어서도 흔히 지적될 수 있는 일이다.

결혼식 날이 생애의 가장 결정적인 날임을 비단 여성에게 있어서만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례의 많은 축연, 환락은 때때로 이 중대사의 더없는 엄숙을, 당사자와 그 가족들을 위하여 얼마간 간직해 둔다는 숨은 의의를 가지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11월 14일)

 

나는 나의 생애 가운데 몇 번이나 인간 멸시자가 될 수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내가 그렇게 되지 않았던 것은 결코 상류 사회와의 친분 때문이 아니고 오히려 반대로 소시민 계급의 생활이나 사고방식을 통찰한 덕분이었다.

(중략) 이 세상의 조그만한 것에 관심을 가지면 그것은 인생을 보다 풍부하고 만족스럽게 된다.(11월 17일)

 

일을 할 때는 우선 가장 필요한 것부터 시작하라.(11월 28일에서)

 

 

 

 

 

9.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12월에서)

 

언젠가 노년기가 시작되는 날 사람은 한번쯤 과거를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노여움이나 애석한 생각을 갖지 말고, 과거의 장부를 덮고 이제는 다시 그것을 펼쳐서는 안 된다. 그리고 지난날에 있었던 모든 선행(善行)에 대하여 감사하라.(12월 1일에서)

 

미래의 일에 대하여 심지어는 세계의 종말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한다는 것은 전혀 소용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누구든 이러한 것을 짐작으로나마 계산할 수 없고 예견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12월 4일)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간에 절약하여야 한다. 그 이유는 낭비가 필수품마저도 갖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 대한 부당한 행위이기 때문이며 또 필요에 따라 남에게 충분히 베풀 수 있기 위해서다.(12월 7일)

 

불친절한 말과 실없는 말은 결코 하지 마라. 그렇지만 일이 중대하고 또 필요한 때는 분명히 말을 하라. 냉담하고 거만한, 또는 적어도 거만하게 보이는 침묵을 지킬 것, 이것은 실로 중요한 일이다. 왜냐 하면 적어도 언어는 행위에 못지않게 많은 불행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또 <실없는 말>은 많은 것을, 그리고 또 이 불행을 메우고 또 개선하는 신의 은혜가 없으면, 만약 그 전모를 눈앞에 보면 전율하지 않을 수 없는 어떤 죄를 모든 사람에게 누적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는 먼저 수목을 잘 가꿀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12월 7일)

 

* 카알 힐티(Cail Hilty 1833~1909) : 스위스의 사상가, 법률가. 칸트의 영향을 많이 받음. 스위스의 성자로 추앙받고 있음.

 

 

 

 

 

 

 

 

 

 

 

 

 

 

 

10. 버나드 비숍 여사의 기행문

 

1884년부터 네 차례에 걸쳐 한국 땅을 밟고 전국 곳곳을 여행했던 버나드 비숍 여사의 기행문을 보면, 그 당시 능력 있는 개인에 대한 수탈은 일상적인 일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녀는 한국인들이 가난한 것은 개인의 무능함 때문이 아니라 노력의 결실을 자신의 것으로 거두어들일 수 없는 구조 때문이라고 보았다.

 

한국인들은 게을러 보인다. 나는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노동으로 획득한 재산이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체제 아래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누군가 ‘돈을 번’ 것으로 알려지거나, 심지어 사치품인 놋쇠그릇을 샀다는 것만 알려지면 근처의 탐욕스러운 관리나 그의 앞잡이로부터 주의를 받거나 양반으로부터 대부를 갚도록 독촉당하는 식이었다.

근사한 기후, 풍부하지만 혹독하지는 않은 강우량, 기름진 농토, 내란과 절도가 일어나기 힘든 교육. 한국인은 영원히 행복하고 번영할 민족임에 틀림없다. ‘협잡’을 업으로 삼는 관아의 심부름꾼과 그들의 횡포, 관리들의 악행이 강력한 정부에 의해 줄어들고 소작료가 적절히 책정되고 수납된다면 반드시 그럴 것이다. 나는 한국의 농부들이 일본 농부처럼 행복하고 근면하지 못할 이유를 전혀 알지 못한다. 다만 여기에는 중요한 단서가 있다. 그것은 내가 누누이 강조했듯이 ‘생업에서 생기는 이익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행자들은 한국인의 게으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한다. 그러나 러시아령 만주 한국인들의 활력과 근면함, 검소하고 유족하며 안락한 가정을 보고 난 후에 나는 기질문제로 오해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한국 사람들은 가난이 최고의 방어막일 뿐, 최소한의 음식와 옷 외에 자신이 소유한 것은 탐욕스럽고 부정한 관리들에게 빼앗길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한국인의 활력과 활달함은 노력의 대가를 자신의 것으로 보호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유지할 수 있었다는 애목이 인상적이다. 이렇듯 시대 정신은 홀로 존립하는 게 아니라 보호되고 만들어지는 것이다. 비숍 여사는 자신의 기행문을 이렇게 끝맺는다.

 

시베리아의 한국 남자들에겐 고국의 남자들이 갖고 있는 그 특유의 풀죽은 모습이 없다. 토착 한국인의 특징인 나태한 자부심, 자기보다 나은 삶에 대한 노예근성이 주체성과 독립심, 아시아인의 것이라기보다는 영국인의 것에 가까운 터프한 남자다움으로 변했다. (중략) 그들에겐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만달린이나 양반의 착취는 없었다. 안락과 어떤 형태의 재산도 더 이상 관리들의 수탈 대상이 되지 않았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한국인들을 세계에서 가장 열등한 민족이 아닌가 의심한 적이 있고 그들의 상황을 가망 없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곳 프리모르스크에서 내 견해를 수정할 상당한 이유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한국인들은 번창하는 부농이 되었고, 근면하고 훌륭한 사람들로 변해갔다. 이들 역시 한국에 있었으면 게으르고 방탕했으리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들은 대부분 기근으로부터 도망쳐 나온 배고픈 난민에 불과했다. 이들의 번영과 행동은 조국에 남은 한국인들도 정직한 정부 밑에서 그들의 생계를 보호받을 수만 있다면 진정한 의미의 ‘서민’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었다.

출전 : 공병호,『10년 후, 한국』,해냄(2004), 49~51쪽

 

 

11. 백수 정완영 시조

 

이승의 등불

 

내가 죽어 저승엘 가면

이승이 고향 아닐까

 

너랑 나눈 한 잔 차 이야기

오소소 추운 낙엽

 

가을밤 잘 익은 등불이 모두 꿈길에 밟히겠네.

 

 

시암(詩菴)의 봄

 

내가 사는 艸艸(초초) (詩菴(시암)은 감나무가 일곱 그루

여릿 여릿 피는 속잎이 청이 속눈물이라면

햇살은 공양미 삼백 석 지천으로 쏟아진다.

 

옷고름 풀어 논 강물 열두 대문 열어 놓고 선 산

세월은 뺑덕어미라 날 속이고 달아나고

심봉사 지팡이 더듬듯 더듬더듬 봄이 또 온다.

 

 

적막 하늘( “당신의 가고”의 2편 중 한 편임)

 

당신이 있을 때는 빈 항아리 같던 사람

가고 나니 삼월 하늘 제기처럼 적막하다

봄은 왜 오지도 않고, 겨울 가지도 않네.

 

 

감을 따 내리며

 

저토록 푸른 하늘이 어디에다 가마(窯) 걸고

이토록 붉은 열매를 주저리로 구워내었나

여든 해 이 땅에 살아도 가마터는 나는 몰라.

 

 

* 출전 : 정완영 시조집 『이승의 등불』, 토방(2001)

 

 

12. 고독 /박이문

 

고독은 자아의 진정한 모습, 인간의 근본적인 존재를 발견케 한다. 고독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진정한 의미에서 의식할 수 없다. 고독의 아픔을 체험하지 않고 우리는 자유를, 동물 아닌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의식할 수 없다. 그래서 고독은 우리의 삶을 깊게 해준다. 우리는 고독한 경험을 자아에 대한, 삶에 대한, 인간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를 갖게 될 수 있다. 그러기에 고독을 모르는, 깊은 고독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피상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소포클레스는 비극 『안티고네』에서 동생 안티고네가 언니 이스메네와 더불어 보냈던 무도회의 이야기를 그린다. 무도회에서 에몽이라는 젊은 남자는 모든 젊은 남녀들이 즐겁게 춤추고 있는 가운데 한구석에 혼자 쓸쓸히 앉아 구경만 하고 있는 안티고네에게 눈길이 갔다. 더욱 아름다운 언니 이스메네와 밤새도록 춤을 추었으면서도 에몽의 마음을 끈 것은 구석에만 앉아 있던 아름답지 않은 외모의 안티고네였고, 에몽은 마침내 그녀와 사랑에 빠져 약혼을 하게 된다. 놀기에 정신 없던 사람들과는 달리 혼자 따로 떨어져 있던 안티고네, 그 안티고네의 고독이 깊은 의미로 그에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고독을 모르고 어찌 깊은 삶의 경험을 알 수 있을 것인가. 한 번도 고독에 빠져보지 못했던 사람이 어찌 참다운 자아, 자기 자신의 모습을 알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고독에 젖어보지 않았던 사람이 어찌 위대한 문학작품을 쓸 수 있을 것인가. 깊은 철학적 사상이 고독을 떠나 어찌 탄생할 수 있겠는가.

하이데거는 잡담과 진담을 구분짓고, 대부분의 우리들은 인생의 대부분을 잡담으로 보낸다고 주장한다. 잡답은 진정을 전달하지 않으며 진실하지 않다. 그러므로 진실을 보여주는 진담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대체로 참다운 자기를 의식하지도, 진실하게 살고 있지도 않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그냥 떠들면서 살고 있지 ‘실존’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존적 불안, 실존적 책임, 실존의 조건으로서의 고독을 도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신념대로 살기를 포기하고, 실존하지 않고 군중의 틈에서 군중을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 우리는 실존적 인간이 아니라 속물이 되기를 무의식중에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고귀함은 고독을 거치지 않고서는 생겨나지 않는다. 고독 속에서 자라고 피어나지 않은 인간의 열매는 고귀한 것이 될 수 없다. 고독은 문자 그대로 외롭지만 고독을 모르는 마음, 고독을 모르는 군중은 더욱 허전하며 더욱 외로울 것이다.

고독은 풍요하다. 잠시 군중으로부터 떨어져서, 잠시 일상적 관심을 떠나서, 잠시 혼자서 고독에 파묻혀 있을 때 우리는 새로운 자아를, 참다운 남들을, 남들과 나와의 올바른 관계를 생각할 수 있고 알게 될 것이며, 무한의 우주, 밑도 끝도 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의 나의 존재의 의미가 발견될지도 모른다.

박이문, 『길』, 미다스북스, 2003, 34~36쪽.

 

 

 

 

 

 

 

13.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중천축국에서 곧바로 남쪽으로 석 달 남짓 가면 남천축국 왕이 사는 곳에 이른다. 왕은 코끼리 팔백 마리를 소유하고 있다. 영토가 매우 넓어서 남쪽으로는 남해에, 동쪽으로는 동해에, 서쪽으로는 서해에 이르며, 북쪽으로는 중천축국과 서천축국, 동천축국 등의 나라들과 경계가 맞닿아 있다. 의복과 음식, 풍속은 중천축국과 비슷하다. 다만 언어는 좀 다르고 기후는 중천축국보다 덥다. 그곳 산물들로는 무영, 천, 코끼리, 물소, 황소가 있다. 양도 조금 있으나 낙타나 노새, 당나귀 따위는 없다. 논은 있으나 기장이나 조 등은 없다. 풀솜이나 비단 같은 것은 오천축국 어디에도 없다. 왕과 수령, 백성들은 삼보를 지극히 공경하며 절도 많고 승려도 많으며, 대승과 소승이 더불어 행해진다.

그곳 산 중에 큰 절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용수 보살이 야차신을 시켜 지은 것이지, 사람이 지은 것이 아니다. 산을 뚫어 기둥을 세우고 삼층 짜리 누각으로 지었는데, 사방의 둘레가 삼백여 보나 된다. 용수 생전에는 절에 삼천 명의 승려가 있었고 공양미만도 열다섯 섬이나 되어, 매일 삼천 명의 승려들을 공양하였다. 그대도 쌀이 바닥나는 일이 없었고 써도 다시 생기곤 하여 원래의 양이 줄어들지를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이 절이 황폐해져 승려가 없다. 용수는 나이 칠백이 되어서야 비로소 입적하였다. 때마침 남천축국의 여행길에 하고픈 말을 오언(五言)으로 이렇게 읊었다.

 

달 밝은 밤에 고향길을 바라보니

뜬구름은 너울너울 돌아가네.

그 편에 감히 편지 한 장 부쳐 보지만

바람이 거세어 화답(和答)이 안 들리는구나.

내 나라는 하늘가 북쪽에 있고

남의 나라는 땅끝 서쪽에 있네.

일남(日南)에는 기러기마저 없으니

누가 소식 전하려 계림(鷄林)으로 날아가리.

 

출전: 정수일 역,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학고재(2004), 197~198쪽.

 

 

 

 

 

 

 

14. 별에서 온 아이/김우연

 

오늘도 민종이는 지구를 벗어났다.

 

문경 가은 어디에서도 그를 만날 수 없다. 산이며 강이며 들판마다 다 뒤져도 그를 끝내 못 찾는다. 중학교 2학년 민종이는 교복에다 책가방 메고 골목길 나섰다가 회오리바람속으로 지구를 벗어났다. 태양계 건너고 은하수 어느 별에 조용히 내려앉아 책가방을 벗는다. 복숭아 무르익어 향기로운 어느 계곡에 발을 담근다. 노랗고 빨간 꽃들이 그에게 인사한다. 민종이 또 왔구나 무척 기다렸어. 새들도 노래한다. 민종아 어서 와라. 그래 내가 왔다. 지구에서 내가 왔다. 그 소리 메아리도 다시 돌아온다. 사슴도 지나다가 민종이를 반겨하고 강아지도 꼬리치며 가까이 다가온다. 배고프면 복숭아 따먹고 양지에서 잠이 든다. 깨어서 또 따먹고 혼자서 명상을 한다. 엄마는 마흔에야 초혼을 하였는데 아빠는 마흔 네 살, 세 번째 맞이한 신부. 엄마는 약 기운으로 정신을 지탱했다. 세 살도 되기 전에 엄마는 병원에 가고. 아빠는 일터로 가면 밥을 찾아 먹었다. 세 살박이 민종이는 늘 집을 보고 있었다. 네 살엔 할머니 댁으로 떨어져 살았다가 7살에 엄마는 끝내 멀리 떠나갔다. 새 엄마 맞이하고 초등학교 들어가서야 겨우 말문이 열렸다. 새 엄마 교통사고로 또 하늘로 가버리고. 늘 혼자 살아온 그는 별에서는 외롭지 않다. 과일이며 꽃이며 새들이 친구가 되고. 물소리 바람소리도 그에게는 기쁨이었다. 어둠은 포근한 이불 늘 그렇게 살았다. 은하수의 별에는 학교가 없다. 혼자인 그에게는 포근한 별이었다. 지구에 된서리가 내리던 날 그는 들판의 집 삐까리 속에서 눈을 떴다. 지구로 돌아왔다.

 

단 한 명 친구만 생겨도 은하수엔 안 갈 거야. 지구에 놀러온 거야 은하수가 제 집일 거야. 지구가 좋아서 온 아이니까 너희들이 좋아해 봐.

 

 

 

 

 

 

 

 

 

 

 

 

 

 

 

 

 

15. 간디 어록

 

1. 힘은 육체적인 역량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불굴의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다.

 

2. 가혹한 경험을 통해서 한 가지 지고한 교훈을 배웠다. 즉, 분노를 참아라. 그러면 열이 에너지로 전환되는 것처럼 절제된 우리의 분노는 온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전환되는 것처럼 절제된 우리의 분노는 온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힘으로 전환될 수 있다.

기쁨은 투쟁 속에, 노력 속에,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고통 속에 있다. 승리 자체에 기쁨이 있는 것은 아니다.

 

3. 인생은 모든 예술보다 더 위대하다. 한 걸음 나아가 완벽에 가까운 인생을 영위하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예술가이다. 그 까닭은 숭고한 인생이라는 확실한 토대와 틀 없이는 예술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4. 흙을 파고 토양을 가꾸는 방법을 잊는다는 것은, 즉 우리 자신을 잊는 것이다.

 

5. 현대 문명의 특징은 인간의 욕구가 무한할 정도로 배가되어 있다는 것이다. 고대문명의 특징은 이러한 욕구에 대해 엄격히 규제하고 통제했다는 것이다.

 

6. 사랑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오묘한 힘이다.

 

7.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 형제와 자매, 친구와 친구들 간에 맺어진 사랑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힘을 모든 인류를 위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힘을 사용할 때 우리는 신(神)을 알게 되는 것이다. 사랑이 있는 곳에 인생이 있다. 증오는 오직 파멸의 길로 인도할 따름이다.

 

8. 선(善)은 달팽이 걸음으로 나아간다. 선을 행하고 싶은 사람은 이기적이지 않고, 서두르지 않으며, 사람들에게 선을 잉태시키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9.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비폭력이 아니다. 우리를 증오하는 사람들을 사랑할 때 비로소 그것이 비폭력이다. 이 사랑의 법칙을 따르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위대하고 훌륭한 일들은 모두 어렵지 않던가? 그 모든 것 중에서도 자신을 증오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 가장 어려운 일까지도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신의 은총으로 쉬워진다.

 

리처드 아텐버러 편/최현 옮김, 『간디어록』, 범우사, 2003.

 

 

16. 카산드라의 예언

 

카산드라는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딸이었다. 어느 날 아폴론이 그녀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 카산드라가 좀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아폴론은 ‘ 내 사랑을 받아 준다면 내가 가진 예언력을 나누어 주겠다’고 유혹했다. 하지만 예언력을 얻은 뒤에도 카산드라는 몸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자 화가 난 아폴론은 카산드라에게 입맞춤을 하면서 이왕에 준 예언력에서 설득력을 빼 버렸다. 이 때문에 카산드라가 아무리 신통한 예언을 해도 사람들은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뒷날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을 때 카산드라는 전쟁에 원인을 제공한 파리스가 스파르타를 방문하면 트로이를 지킬 수 있다고 예언했으나 아무도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이 없었다. 또 그리스군의 간계를 알아차리고 목마를 성 안에 들여놓으면 안 된다고 알렸지만 역시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아 결국 트로이는 멸망하고 말았다. 사람들이 믿어 주지 않는 예언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래서 겉으론 번듯한지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아무 소용도 없는 빈 말을 일러 ‘카산드라의 예언’이라고 한다.

 

유시주, 『신화 속세어 인간 찾기 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푸른나무, 296쪽.

 

 

 

 

 

 

 

 

 

 

 

 

 

 

 

 

 

 

 

 

 

 

 

 

 

17.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힘이 장사였던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아내가 아들 낳기를 학수고대하다 지친 나머지 그는 어느 날 델포이 신전을 찾아가 과연 언제쯤 아들을 보겠는가 물었다. 신탁이 나오기를 “네 나라로 돌아갈 때까지는 술을 먹지 말아라. 그렇지 않으면 아이게우스의 아들을 보리라.”하였다. 아들 보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그렇지 않으면’이라는 토를 달아, 마치 그게 안 좋은 일인양 ‘아들을 보리라’하니 참 아리송한 신탁이었다.

그래서 아이게우스는 현자로 소문난 트로이젠 왕 피테우스를 찾아갔다. 피테우스는 아들을 낳는다는데 뭐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다며 술을 권했다. 신탁의 논리인즉 술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데 뭐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다며 술을 권했다. 신탁의 논리인즉 술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말이니 아이에우스도 사양치 않고 거나하게 마셨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이게 웬일인가. 옆에 피테우스의 딸인 아이트라가 발가벗을 몸으로 누워 있는 것이었다. 놀라 제 몸을 굽어보니 발가벗기로는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취중에 남의 나라 공주를 범했으니 이만저만한 실수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내가 버젓이 있는 몸으로 공주를 데리고 돌아갈 수도 없었다. 해서 아이게우스는 자신이 묵었던 궁전의 댓돌을 번쩍 들어 올려 그 아래에 칼 한 자루와 가죽신 한 켤레를 넣고는 다시 댓돌을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혹시라도 아들을 낳거든, 그 애가 자라 이 댓돌을 들어 올릴 수 있게 되면 그 때 내게 보내시오. 댓돌 밑에 둔 칼과 가죽신은 나의 신표이니 그걸로 내가 내 아들을 알아볼 것이요.”

그의 예상대로 공주는 아들을 낳았고 아비를 닮아서인지 아들 또한 힘이 장사였다. 아들의 이름은 테세우스였다. 그런데 사실 테세우스는 아이게우스의 아들이긴 하나 아테네 왕 아이게우스의 아들은 아니었다. 트로이젠 지방에서는 포세이돈을 흔히 ‘포세이돈 아이게우스(에게 바다의 포세이돈)’라 불렀는데 테세우스는 바로 그 아이게우스의 아들이었다. 아이트라 공주가 바닷가에 놀러갔다가 그만 포세이돈의 씨를 받게 되었던 것인데 그참에 아이게우스가 아리송한 신탁을 들로 트로이젠을 방문했고 트로이젠 왕 피테우스는 딸을 그의 침실에 들게 함으로써 골치아픈 문제를 해결한 것이었다.

어쨌거나 어릴 적부터 영웅다운 면모를 내보이며 자란 테세우스는 열여섯이 되는 해에 댓돌을 번쩍 들어올리고 아버지가 남기고 간 칼과 가죽신을 꺼냈다. 트로이젠에서 아테네까지는 바닷길로 가는 게 가장 빠르고 안전했다. 하지만 테세우스는 부득부득 육로로 돌아가겠다고 우겼다. 당시에 유명짜하던 영웅 헤라클레스처럼 자신도 여행 도중에 괴물들과 일전을 치름으로써 이름을 내고 싶어서였다.

안테네에 당도하기까지 테세우스는 모두 여섯 명의 괴한을 만났다. 쇠몽둥이로 행인을 때려죽이는 자, 소나무 두 그루를 마주 휘어 놓고는 행인을 붙잡아 양쪽 소나무에 발목을 하나씩 묶은 뒤 소나무를 휘어 놓은 줄을 잘라 버리는 방법으로 사람을 찢어 줄이는 자, 멧돼지를 시켜 나그네를 엄니로 찔러 죽이는 자, 나그네를 벼랑 아래로 차 던져 바다거북에게 잡아먹히게 하는 자, 씨름을 한판 벌인 뒤 목을 졸라 죽이는 자 - 이 다섯 명의 괴한을 그들이 이제껏 나그네를 죽인 방법으로 죽인 뒤 테세우스가 마지막으로 대적한 괴한이 프로크루스테스였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침대를 두 개 가지고 있었다. 키가 큰 행인이 지나가면 작은 침대에다 눕혀 침대 길이보다 긴만큼 잘라 버리고 키가 작은 행인이 지나가면 큰 침대에다 눕혀 침대 길에에 맞추어 몸을 잡아 당겼다. 그러니 아무도 살아나올 수 없었다. 테세우스는 프로크루스테스를 붙잡아 작은 침대에 다 누이고는 목을 잘라 버렸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자기 편한 대로 행동하는 사람, 제 고집을 죽일 줄 모르는 독불장군, 자기 기준만 내세우는 사람을 흔히 이 프로크루스테스에 비유하며,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행태를 비판할 때 자주 쓰인다.

유시주, 『신화 속세어 인간 찾기 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푸른나무, 310~313쪽.

18. 페넬로페의 베짜기

 

이타카의 영웅 오디세우스와 그의 아내 페넬로페는 금슬이 원앙이었다. 오죽하면 트로이 전쟁 참전 요청을 받고도 아내와 떨어지기 싫어 미친 흉내를 냈을까. 하지만 결국은 속임수가 탄로나 오디세우스는 아내와 어린 아들 텔레마코스를 남겨 두고 전쟁터로 떠나게 되었다. 비록 처음엔 그런 꾀도 부렸지만 10년 끌던 전쟁을 마침내 그리스군의 승리로 이끈 영웅이 바로 오디세우스였다. 목마를 이용한 위장 전술이 그의 지략에서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전쟁에서 승리하고도 그 뒤로 10년간을 더 바다 위에서 유랑해야 했다. 목마를 앞세워 트로이 성을 함락시킬 때 생각없이 포세이돈 신전의 기둥을 하나 뽑아 버렸는데 그 일로 말미암아 포세이돈의 미움을 샀던 것이다. 호머의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가 겪은, 10년에 걸친 그 유랑의 기록이다.

오디세우스가 20년 동안이나 돌아오지 않으니 자연 여러 야심가들이 오디세우스의 권좌와 재산을 노리고 아내 페넬로페에게 구혼을 했다. 그들은 구혼을 빌미로 집을 차지하고 앉아 하인을 제맘대로 부리며 완전히 주인 행세를 해 댔다. 말이 구혼자지 여차하면 일을 저지를 태세였다. 오디세우스에 대한 정절도 정절이려니와 자칫 잘못 처신했다간 늙은 시아버지와 아들 텔레마코스의 목숨도 위태로울 것을 염려한 페넬로페는 그럴듯한 이유를 둘러 대며 구혼자들을 물리쳤다. “시아버지의 수의 한 벌 마련해 두고자 하니 그걸 다 짤 때까지는 결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페넬로페는 수의를 짓기에 충분할 만큼의 베를 짜면 그것을 죄다 풀어 버리고 다시 짜기를 되풀이했다. 세월아 네월아 하며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일, 그게 페넬로페의 베짜기이다.

페넬로페는 서양에서는 우리나라의 춘향이와 같은 대접을 받는다. 오디세우스가 긴 유랑 끝에 돌아와 아내와 해후하는 장면도 이도령과 춘향이가 상봉하는 대목과 흡사하다.

영웅들의 수호신 아테나 여신의 가호로 무사히 조국에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우선 돼지치기 집으로 가 그간의 상황을 전해 들었다. 자신이 돌아왔다는 말이 돌면 안 되겠기에 그는 아테나가 시킨 대로 꼴사나운 거지 행색을 했다. 마침 아버지의 행방을 알기 위해 같이 트로이 전쟁에 참가했던 다른 나라 왕들을 찾아다니며 아들 텔레마코스도 아테나 여신의 현몽이 있어 돼지치기 집으로 돌아왔다. 부자는 감격스러운 포옹을 나눈 뒤 그 동안 페넬로페를 못살게 군 구혼자들에게 복수할 계획을 세웠다.

텔레마코스가 먼저 집으로 들어갔다. 집 안은 늘 그랬듯이 구혼자들이 벌인 술자리로 떠들썩했다. 구혼자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텔레마코스를 맞이했다. 귀국길에 사람을 시켜 그를 없애려 했으나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뒤이어 오디세우스가 동냥을 하러 집 안으로 들어섰다. 당시엔 거지들이 갖가지 풍물을 접한 이야기꾼으로서 대접을 받았기에 오디세우스는 술자리의 말석을 차지하고 앉을 수 있었다.

오디세우스가 구혼자들이 물린 음식을 먹고 있자니 방약무인한 구혼자들이 집적대기 시작했다. 오디세우스가 점잖게 그러지 말라고 해도 안하무인이었다. 그 중에 어떤 놈은 의자로 그를 내려치기까지 했다. 텔레마코스는 당장 술판을 뒤집어엎고 싶었으나 아버지와 해 놓은 약속이 있어 꾹 참았다. 좌중의 소란이 가라앉자 드디어 그 날의 행사가 시작되었다. 행사란 다름 아니라 활솜씨 겨루기였다. 더 이상 구혼자들의 생떼를 물리칠 수 없게 된 페렐로페가 활솜씨가 제일 좋은 사람을 골라 결혼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었다. 텔레마코스는 시합이 시작되기 전 시합 때문에 모두가 흥분하면 혹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구실로 구혼자들의 무기를 다른 데로 치워 놓게 했다. 그리고는 옛날 아버지가 쓰던 활과 화살을 대전에 갖다 놓았다.

대전 앞에는 열두 개의 고리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화살 열 두 개를 그 고리 구멍 속으로 쏘아 가장 많이 고리를 관통시키는 자가 페넬로페를 자지하게 되어 있었다. 구혼자들은 먼저 활을 구부려 시위를 매겨야 했다. 그런데 활이 얼마나 다단한지 아무도 시위를 매기지 못했다. 창피스런 결과를 두고 구혼자들이 웅성웅성하고 있는데 말석의 거지가 나섰다.

"지금은 보잘 것 없는 거렁뱅이지만 옛날엔 저도 무사 흉내를 좀 내고 다녔답니다. 제가 한번 구부려 봐도 될는지요?"

구혼자들은 배를 잡고 웃다가 "이 무엄한 놈을 당장 끌어내라"고 호령했다. 그 때 텔레마코스가 나섰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이 늙어빠진 거지의 소원을 한 번 들어준들 그게 그대들의 체모에 무슨 큰 흠절이 되겠습니까?"

활들 잡은 오디세우스는 엿가락 구부리듯 활을 구부려 시위를 매긴 뒤, 첫 화살을 보기 좋게 고리 구멍 속으로 쏘았다. 구혼자들이 입을 다물어 감탄사를 내뱉을 시간도 주지 않고 외데세우스가 구혼자들에게로 돌아섰다. 두 번째 화살은 구혼자 가운데서 가장 무례했던 자의 목을 관통했다. 기겁을 한 구혼자들은 허둥지둥 무기를 찾았다. 그러나 무기가 있을 리 없었다. 오디세우스는 드디어 정체를 밝혔다.

“나는 비록 집을 오래 떠나 있긴 하였으나 네놈들이 침범한 이 집의 주인이며, 네놈들이 흥청망정 낭비한 재산의 소유자이며,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오늘까지 10년이란 오랜 세월동안 네놈들이 지긋지긋하게 괴롭혀 온 페넬로페의 남편이며, 네놈들이 죽여 없애려 한 테레마코스의 아비이다. 이제 그 동안 밀린 신세를 갚겠다.”

구혼자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오디세우스의 화살을 맞고 쓰러졌고 페넬로페는 돌아온 남편과 감격적인 포옹을 나누었다.

 

 

 

 

 

 

 

 

 

 

 

 

 

 

 

 

 

19. 선택

 

우리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

모든 것은 생각에서 생기며

생각으로 세계를 만드니

악한 마음으로 말하고 행하면 괴로움이 뒤따르리.

수레를 따르는 수레바퀴처럼.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모든 것은 생각에서 생기며

생각으로 세계를 만드니

순수한 마음으로 말하고 행하면 즐거움이 뒤따르리.

내 몸을 따르는 그림자처럼.

 

“그가 나를 비웃고 때리고 짓밟고 빼앗아 갔다.”

이런 생각으로 살면 미움 속에 살게 되리라.

 

“그가 나를 비웃고 때리고 짓밟고 빼앗아 갔다.”

이런 생각을 버리면 사랑 속에 살게 되리라.

 

이 세상에서는

증오로 증오를 내쫒지 못하며

오직 사랑으로만 증오를 내몰 수 있으니

이것은 영원한 진리.

 

너도 언젠가 떠나야 할 몸

그것을 알면 다툼도 사라질 것을.

 

바람이 약한 나무를 쓰러뜨리기란 쉬운 일.

감각 속에서 행복을 찾거나

먹고 자는 데만 빠져 든다면

너도 뿌리째 뽑히고 말리라.

 

바람이라도 산을 넘어뜨리진 못하듯

지혜로우면서도 강하고,

강하면서도 겸손한 사람,

스스로의 주인이며 가슴 깊이 진리를 간직한 사람,

그런 사람에게는 그 무엇도 어찌하지 못하리.

 

조현숙,『법구경』,서광사, 1992.

 

 

 

20. 소리들 /나희덕

 

승부역에 가면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

 

이 봉우리에서 저 봉우리로

구름 옮겨가는 소리

지붕이 지붕에게 중얼거리는 소리

그 소리에 뒤척이는 길 위로

모녀가 손잡고 마을을 내려오는 소리

계곡물이 얼음장 건드리며 가는 소리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송아지

다시 고개 돌리고 여물 되새기는 소리

마른 꽃대들 싸르락거리는 소리

소리들만 이야기하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겨울 승부역

소리들로 하염없이 붐비는

 

고요도 세 평

 

* 나희덕(1666~)

출처 : 중앙일보 : 시가 있는 아침(2004.12.7일)

해설 : 김기택 시인

‘고요’는 아무 소리가 없는 적막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소리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침묵의 소리다.

마음속에서는 활발하게 움직이지만 귀에서는 들리지 않는 소리다. 구름이나 지붕, 마른 꽃대들처럼 아무 소리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물들이 저희들끼리 주고받는 소리다. 그 활기찬 삶의 소리를 찾아내는 마음의 소리다.

 

 

 

 

 

 

 

 

 

 

 

21. 피그말리온 효과

 

미국의 교육학자인 로젠탈(Rosenthal)과 제이콥슨(Jacobson)은 1968년, 교육학 관련 학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연구 결과의 요지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교사가 어떤 학생에게 ‘ 저 아이의 성적은 장차 성적이 크게 오를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 그런 기대를 받은 학생은 실제로 성적이 올라간다는 것이었다.

로젠탈과 제이콥슨의 연구는 이른바 ‘자기 충족적 예언’ 이론을 교육 현장에서 검증한 것이었다. ‘자기 충족적 예언’이론이란 ‘어떻게 행동하리라는 주위의 예언이 행위자에게 영향을 주어 결국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든다’는 이론이다. 그것을 다른 말로 ‘피그말리온 효과’라고도 한다.

 

피그말리온의 사랑과 아프로디테의 은총

 

피그말리온은 키프로스섬에 사는 솜씨가 빼어난 조각가였다. 키도 작고 별로 잘생기지도 못한 피그말리온은 어쩐 일인지 ‘여자는 멀리할수록 좋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보기엔 여자란 결점이 너무 많은 존재였다. 그래서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리라 결심했다.

어느 날 피그말리온은 상아로 만든 여자의 입상(立像)을 조각했다. 어찌나 정교하게 만들었는지 조각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여자가 너무 얌전해서 그런 것 같아 보일 정도였다. 상아 처녀는 살아 있는 인간 그대로였으며, 감히 어떤 여자도 가까이 와 견주어 보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피그말리온은 자신의 이 완벽한 작품을 날마다 흡족한 눈으로 감상했다. 그러다 그만 상아 처녀를 사랑하게 되고 말았다. 제 손으로 만든 조각임에도 그걸 깜빡 잊고 살아 있는 여인에게 하듯 하루에도 몇 번씩 상아 처녀를 손끝으로 쓰다듬곤 했다. 해변에서 예쁜 조개껍질이나 조약돌이라도 주울라치면 얼른 상아 처녀에게 갖다 바쳤고 산에 들에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도 한아름씩 꺾어다 처녀의 팔에 안겨 주었다. 앙증맞은 귀와 긴 목에다가 빛나는 진주 귀걸이와 목걸이를 걸어 두었다. 얼굴에 어울리는 예쁜 옷도 해 입혔고 급기야는 긴 의자에 폭신폭신한 요를 깔고 그 위에 상아 처녀를 눕혔다. 물론 머리맡에 부드러운 깃털로 만든 배게를 고여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는 집을 들고 날 때마다 허리를 굽혀 상아 처녀에게 입맞춤을 하곤 했다.

그런데 키프로스섬에는 사랑과 미의 엿니인 아프로디테의 신전이 있었다. 아프로디테는 이름 그대로 바다의 흰 거품(아프로스)에서 태어난 여신이었다. 흰 거품이 오랜 세월 바다를 떠돌다 이윽고 여신을 빚어 조개껍질에 싣고 지중해의 한 섬에 내려다 놓으니 그 섬이 바로 키프로스였다. 아프로디테가 대지 위에 첫발을 디딘 곳이 바로 키프로스였던 것이다. 그 뒤로 키프로스 사람들은 아프로디테의 신전을 세우고 해마다 큰 축제를 벌였다.

피그말리온이 상아 처녀와 사랑에 빠져 있는 동안 어느 새 섬의 제일 큰 명절인 아프로디테 축제일이 다가왔다. 사람들은 신전에 갖가지 제물을 갖다 바쳤고 신전에 피운 향 냄새가 온 섬에 진동했다. 피그말리온도 신전으로 가 제물을 바치고 여신을 경배했다. 그러고나서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빌었다.

“여신이시여, 바라건대 저에게 아내를 주소서…….”

그는 ‘저 상아 처녀를 아내로 주소서’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너무도 수줍어서 그렇게는 못하고 대신에 ‘저 상아 처녀 같은 여성을 아내로 주소서’라고 조그맣게 덧붙였다.

기도를 마친 피그말리온은 집으로 돌아와 늘 하듯이 긴 의자 위로 몸을 구부리고 상아 처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처녀의 입술에 온기가 감도는 게 아닌가. 놀란 피그말리온은 처녀의 몸을 쓰다듬어 보았다. 쳐녀의 몸은 따뜻하고 말랑말랑했다. 그래도 믿기지 않아 피그말리온은 다시 한 번 처녀의 입술을 만져 보았다. 그러자 처녀가 두 눈을 뜨고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피그말리온을 바라보는 게 아닌가. 신전에 흠향하러 와 있던 아프로디테가 피그말리온의 순정을 어여삐 여겨 소원을 들어준 것이었다.

렇게 해서 인간이 된 상아 처녀에게 피그말리온은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으며 둘 사이엔 아들 파포스가 태어났다. 아프토디테에게 봉헌된 키프로스의 파토스라는 도시는 바로 이 아들의 이름을 딴 것이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우리에게 사랑과 믿은의 힘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우리네 속담이 가리키는 바도 그것이다. 사람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믿음은 그 사람 속에 잠들어 있는 것들을 깨우고 흔들어 마침내는 활짝 꽃피게 한다. 요컨대 상아를 사람으로 변하게 하는 것이다. 흔히들 그것을 일컬어 ‘사랑의 기적’이라고 한다. 친구나 부모, 선생님, 때로는 연인-최악의 순간에도 자신을 사랑하고 믿어 주는 피그말리온이 있기에 수많은 기적이 일어난다. 빈곤과 범죄의 수렁에서 헤어나 새 사람이 되고, 불치의 병을 이겨 내며, 온갖 시련을 헤쳐내고, 인간 승리를 이룩한다. 설리반 선생님이 없었으면 헬렌 켈러도 없었을 것이다. 꼭 그런 기적이 아니더라도 힘들고 외로울 때 마음 놓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날의 삶이 얼마나 따뜻하겠는가. 눈에 보이지 않고, 소리를 내지도 않고, 냄새도 맡을 수도 없고, 더듬어 볼 수도 없는 것이지만 내가 저 사람에게 품고 있는 사랑과 믿음은 반드시 전달되고, 그것이 간절하고 지극한 것이라면 그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정신, 의지, 마음, 영혼은 우리가 얼핏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힘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음의 힘을 이야기하다 보니 얼은 떠오르는 이야기가 또 하나 있다. 이른바 ‘플라시보 효과’에 대한 이야기이다.

프라시보란 가짜약(僞藥)을 말한다. 위방병 환자에게 새로 개발된 위장약이라고 속이고 영양제를 복용하게 하였더니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현저하게 병세가 호전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플라시보 효과’라는 것인데 여러 가지 실험에서 이런 효과가 검증되었기 때문에 의약계에서는 치료를 목적으로 일부러 가짜 약을 주기도 한다. 실질적인 약리 작용은 없지만 환자의 정신을 안정시켜 일정한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새삼 마음의 힘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유시주, 『신화 속세어 인간 찾기 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푸른나무.

 

 

 

 

 

 

 

22. 비극적 영웅, 오이디푸스

 

오이디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비극적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였다는 모티브에 착안하여 프로이트가 자신의 이론에 그 주인공의 이름을 갖다 붙인 것이다.

테베의 왕 라이오스와 왕비 이오카스테에겐 자식이 없었다. 텔포이 신전에서 아들을 갖게 해 달라고 비는 그들에게 신탁이 내리기를 ‘아들이 생기긴 하겠지만, 그 아들은 장차 아비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리라‘는 것이었다. 라이오스는 왕비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음으로써 신탁이 내린 운명을 피해 가려했다. 그러나 술이 몹시 취한 어느 날, 왕비와 몸을 섞고 말았고 마침내 그토록 두려워하던 아들이 태어났다. 신탁의 실현을 두려워 한 왕은 아이를 죽이기로 결심하고는 은밀히 부하 한 사람을 불렀다. 그는 양치기였다. 라이오스는 아이의 발목에 구멍을 뚫어 가죽끈으로 두 발목을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는 아이를 강보에 싸 내밀며 일렀다.

“키타이론 산 깊숙이 아이의 발목을 묶은 이 가죽끈을 튼튼한 나뭇가지에다 걸어 놓고 오너라.”

하지만 양치기는 차마 아이를 죽일 수 없었다. 그래서 산에서 만난 코린토스의 어떤 양치기에게 아이를 넘겨주었고, 왕에게는 시킨 대로 했노라고 보고했다. 그런데 당시 코린토스의 왕 폴리보스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왕에게 혈륙이 없음을 늘 안타까이 여겨 왔던 충직한 양치기는 자기가 얻은 아이를 왕에게 갖다 보였고, 왕과 왕비는 아이를 양자로 입적했다. 발견된 당시에 발이 퉁퉁 부어 있었다고 해서 아이에겐 오이디푸스(발이 부은 자)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런데 오이디푸스가 헌헌장부로 자라난 뒤, 어느 날이었다. 오이디푸스를 데려왔던 양치기가 술자리에서 오이디푸스가 왕의 친아들이 아님을 설명하고 말았다. 왕은 쉬쉬했지만 이상하게 생각한 오이디푸스는 델포이 신전으로 찾아가 사실 여부를 물었다. 물음에 대답한 대신 ‘너는 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이 내렸다. 오이디푸스는 저주받은 운명을 피하기 위해 코린토스로 돌아가지 않고 그 길로 방랑길에 올랐다. 아버지를 떠나 있으면 아버지를 죽이게 되는 일도 없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보이오티아로 향하던 도중에 오이디푸스는 본의 아니게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다. 좁은 길에서 마차를 탄 웬 노인과 마주치게 되었는데, 노인은 오이디푸스더러 길을 비키라고 채찍을 휘둘렀고 젊은 혈기를 이기지 못한 오이디푸스는 노인과 그 부하를 모두 죽이고 말았다. 그 노인은 다름 아닌 테베의 왕 라이오스였다. 라이오스는 테베에 스핑크스라는 괴물이 나타나 사람을 수없이 죽이기에 델포이 신전에 그 연유를 물으러 가던 중이었다. 자기를 죽인 청년이 자신의 아들임을 라이오스는 몰랐듯이 오이디푸스도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

오이디푸스가 방랑을 계속하여 몇 달 뒤에 테베에 이르렀다.

오이디푸스가 테베에 당도한즉 사람들이 반가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상히 여긴 오이디푸스가 까닭을 물으니 혹시 스핑크스를 물리칠 수 있는 영웅이 아닌가 싶어 그런다고 대답했다. 스핑크스는 머리는 여자, 몸은 사자인데다 양 어깨엔 날개까지 단 괴물이었다. 테베 도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신전의 기둥 위에 올라앉아 수수께끼를 내고는 그걸 알아맞히지 못하면 목을 졸라 죽여 버린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꼭 남자만 죽이니 자칫하다간 테베 남자들은 씨가 마를 지경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다. 사람들은 말끝에 “선왕도 스핑크스를 물리칠 방도를 묻기 위해 델포이 신전으로 가다, 불행이도 강도를 만나 죽고 말았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테베 왕가에서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푸는 사람에게 왕위를 주며, 홀로 된 왕비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내걸고 있었다.

오이디푸스는 이 모험을 받아들였다. 수수께끼는 ‘아침에는 네 개의 다리, 오후에는 두 개의 다리, 저녁에는 세 개의 다리로 걷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것이었다. 해답은 ‘인간’이었다. 인간은 갓난아기 때는 두 발과 두 팔, 즉 네 다리로 걷다가 어른이 되면 두 다리로, 그리고 늙으면 지팡이에 의지해 세 다리로 걷는다. 오이디푸스가 해답을 말하자마자 스핑크스는 그 자리에서 굳어 버리고 말았다.

약속대로 왕위에 오른 오이디푸스는 왕비 이오카스테와 결혼하여 두 딸과 두 아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태평성대가 계속되는가 싶더니 어느 날 난데없이 테베에 전염병이 번지기 시작했다. 오이디푸스는 다시 델포이 신전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부친 살해와 근친상간에 대한 징벌’이라는 신탁이 내렸다. 그 때까지도 코린토스 왕을 친아버지로 알고 있던 오이디푸스는 영문을 몰랐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모든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스스로 자신을 눈을 뽑아 장님이 되었으며 죽을 때까지 미치광이가 되어 떠돌아다녔다.

연민과 공포의 카타르시스

 

아리스토텔레스의『시학』에 따르면 우리가 느끼는 이 연민이야말로 오이디푸스의 비극적 이야기가 우리에게 불러일으키고자 목적했던 바로 그것이라고 한다. 즉 우리는 정해진 각본대로의 반응을 보인 셈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기능을 '연민과 공포의 카타르시스‘라고 갈파했다. 비극을 봄으로써 우리는 가련한 주인공에게는 연민을, 인간의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힘 앞에서는 공포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현실이 아니라 극장의 무대 위에서 그것을 경험함으로써 훨씬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극장문을 나설 수 있게 된다. 우리의 마음이 ‘카타르시스’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운명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저지른 악행 때문에 오이디푸스가 파멸했다면 그에게 연민을 느낄 필요가 있겠는가’하는 반문으로 그만 오이디푸스에 대한 연민의 정을 다스리기로 하자.

 

유시주,『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23. 미노스와 미노타우로스

 

티로스의 왕 포에닉스에게 에우로페라는 외동딸이 있었다. 어느 날 에우로페가 바닷가에서 시녀들과 놀고 있는데 잘생긴 황소(!) 한 마리가 다가와서 에우로페 앞에 무릎을 끊었다. 황소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끌린 에우로페가 등에 올라타자마자 황소는 그녀를 크레타 섬으로 납치해 버렸다. 황소는 다름 아닌 제우스였다. 이 둘 사이에 생긴 아들이 미노스였다.

미노스는 장성한 뒤 의붓형제들과 왕위를 놓고 다투다가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도움을 청했다.

“제가 제우스의 아들로서 신들의 가호를 받고 있다는 증거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그것을 반드시 신께 제물로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포세이돈은 미노스의 청을 받아들여 흰 파도를 가르고 황소를 한 마리 보내 주었다. 든든한 뒷 배경을 과시한 덕에 미노스는 무사히 왕위에 올랐고 나라는 융성했다. 그러나 미노스는 그만 과욕을 부리고 말았다. 포세이돈이 보낸 신성한 황소를 다시 제물로 갖다 바치는 게 못내 아까워서 다른 소를 그 황소인 것처럼 속여 제사를 지낸 것이다. 포세이돈이 미노스의 잔꾀에 속을 리 없었다. 진노한 포세이돈은 가혹한 형벌을 내렸다. 미노스의 왕비 파시파에로 하여금 문제의 황소를 사랑하게 함으로써 둘 사이에 괴물이 태어나도록 만든 것이다.

그 괴물이 머리는 소, 몸은 사람의 형상을 한 미노타우로스(미노스의 소)였다. 미노스로서는 차마 낯을 들고 다니기가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미노타우로스를 죽일 수도 없었다. 그랬다간 포세이돈이 또 무슨 형벌을 내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미노스는 할 수 없이 ‘지상의 헤파이토스’라고 불리는 장인(匠人) 다이달로스를 불러 ‘한 번 들어가면 신들도 나오기 어려운 미궁, 만든 사람도 나올 수 없는 미궁’을 만들라고 명령했다. 미노타우로스는 그 미궁에 갇혀 멋모르고 그 곳에 들어갔다가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 사람들을 잡아먹고 살았다.

미노스왕의 애물단지인 이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사람은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였다. 어느 날 미노스의 아들 안드로게오스가 아테네에서 열린 운동 경기에 참가했다가 황소의 뿔에 받혀 죽는 사건이 일어났다. 미노스는 이를 빌미로 아테네를 공격했다. 그리고 평화를 맺는 조건으로 매년 7명의 처녀와 7명의 총각을 공물로 바칠 것을 요구했다. 미노타우로스의 먹이로 던져주기 위해서였다. 아들 딸을 둔 아테네의 부모들은 해마다 공물을 바치는 때가 오면 자기 자식이 뽑혀 갈까 봐 공포에 떨어야 했다. 이 때 왕자인 테세우스가 공물로 바쳐지는 다른 처녀 총각 사이에 섞여 크레타로 가서 그 괴물을 처치하고 오겠다고 나섰다. 테세우스는 자신에게 반한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아 괴물을 처치하고 무사히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리아드네가 실 한 꾸러미를 주면서 자신이 실의 한 쪽 끝을 잡고 미궁 앞에 서 있을 테니 실을 풀어 가며 미궁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그 실을 따라 나오라고 일러 주었던 것이다.

 

신화와 역사

슐리만과 에번스가 발견한 <황소와 춤추는 사람>은 사실은 미노타우로스에게 바쳐진 제물이었는지도 모른다.

 

유시주,『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24. 이카로스의 아버지 다이달로스

 

이카로스는 장인(匠人) 다이달로스의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다이달로스는 크레타 섬에 살면서 미노타우로를 가둔 미궁을 만든 바로 그 사람인데 원래는 아테네 사람이었다. ‘지상의 헤파이토스’라는 별명에 걸맞게 그는 건축과 목공, 철공 두루 능해 돛과 수레, 도끼 등 사람들에게 요긴한 여러 가지 것들을 만들어 냈다.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 여신이 이를 어여삐 여겨 아크로풀리스 언덕 꼭대기에 높이 솟아 있는 자신의 신전 한 귀퉁이에다 다이달로스의 작업장을 내줄 정도였다.

그런데 다이달로스 밑에는 탈로스라는 도제(徒弟)가 한 명 있었다. 탈로스는 나이가 어려 아직 손재간은 스승을 따라갈 수 없었지만 자연의 이치를 깨쳐 그것을 활용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앞질렀다. 그는 물고기 등뼈에 착안해 톱을 만들었고 바람개비가 도는 걸 보고 원을 그릴 수 있는 양각기(콤파스)를 고안했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가히 그 앞날이 기대되었다. 새로운 것은 늘 눈길을 끄는 법, 자연히 아테네 사람들의 눈길이 구관인 다이달로스보다 신인인 탈로스에게 더 자주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유일무이한 명성을 누리던 아이달로스의 가슴엔 불같은 질투가 일었다.(다른 사람이 자신을 능가하는 것을 못견뎌하는 이런 마음보를 ‘다이달로스의 질투’라고 한다. 모차르트를 향한 살리에리의 마음이 그러했을 것이다.) 결국 다이달로스는 어느 날 탈로스를 신전 지붕 위로 데려가 밀어 버렸다. 아테나 여신은 이 사실을 알고 다이달로스를 아테네에서 쫓아냈다. 차마 죽이지 못한 것은 재주가 아까와서였다.

아테네에게 쫓겨난 다이달로스가 찾아든 곳이 바로 미노스 왕이 다스리던 크레타 섬이었다. 다이달로스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던 미노스는 왕가의 여자 노예를 다이달로스와 짝지워 줌으로써 이 재간꾼을 자신의 왕국에 눌러 앉혔다. 다이달로스는 이 크레타 여인과의 사이에서 아들 이카로스를 얻었다. 그런데 다이달로스는 뜻하지 아니한 사건에 휘말려 미노스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미노스의 왕비 파시파가 포세이돈의 황소와 사랑을 하여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낳은 바로 그 사건에 연루되었던 것이다. 사련(邪戀)에 눈이 먼 왕비는 다이달로스에게 매달렸고, 왕비의 간청을 못 이긴 다이달로스는 왕비에게 암소를 한 마리 만들어 주었다. 나무로 암소의 형상을 만들고 그 위에 암소 가죽을 입히니 누가 보아도 살아 있는 암소 그대로였다. 왕비는 속이 빈 그 가짜 암소 속에 들어가 포세이돈의 황소에게 접근했고 급기야 괴물을 낳았다.

미노스는 사건의 전말을 알고 격분했다. 그러나 그는 홧김에 쓸 곳 많은 재간꾼을 죽일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우리가 아는 대로 미노스는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원칙을 적용해 다이달로스에게 미노타우로스를 가둘 미궁을 만들게 했다. 다만 말끝에 미노스는 이런 단서를 달았다.

“만약 미궁에서 살아나오는 자가 있으면 너를 그 곳에 가둘 터이니 그리 알아라!”

그러나 알다시피 아네테의 왕자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아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미궁을 빠져나오게 된다.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된 미노스는 다이달로스뿐 아니라 그 아들 이카로스까지 함께 미궁에 가두어 버렸다.

 

미노스의 다이달로스가 또 무슨 손재주를 부려 미궁을 탈출할까 우려하여 군사들로 하여금 미궁을 겹겹이 에워싸게 했고 그러고도 못미더워 바다로 나가는 배까지 철저하게 수색하게 하였다. 다이달로스 부자는 꼼짝없이 죽을 날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다이달로스는 여느 때처럼 아들을 쓰다듬으며 한숨을 쉬다가, 가슴이 답답하여 미궁의 제일 높은 곳, 바다쪽 절벽에 면한 첨탑에서 절망스럽게 바깥 세상을 내다보았다. 첨탑 위로 새떼들이 날아올랐다. 그 중에 몇 마리는 창틀에 앉아 깃을 쪼기도 했다. 순간 섬광처럼 미노스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있는 방도가 떠올랐다.

“하늘! 땅과 바다는 막았지만 하늘은 미노스도 막지 못하리라!”

그 날부터 다이달로스는 첨탑에 떨어진 새의 깃털을 모으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몫의 날개를 만들 수 있을 만큼 깃털이 모이자 다이달로스는 작업을 시작했다. 큰 깃은 옷에서 뽑아 낸 실로 묶고 작은 깃은 미궁의 천정 모서리에서 긁어 낸 밀랍으로 붙였다. 날개가 완성되자 다이달로스는 이카로스를 데리고 첨탑으로 올라갔다. 아들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 주고 나는 법을 가르친 뒤 다이달로스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일렀다.

“아들아, 너무 높게 날아서도 아니 되고 너무 낮게 날아서도 아니 된다. 너무 높이 날면 태양이 날개를 녹여 버릴 것이며 너무 낮게 날면 날개가 물에 젖게 된다. 반드시 내가 나는 높이만큼만 날아라.”

아들을 먼저 허공으로 밀아 준 뒤 다이달로스도 바람에 몸을 실었다. 다이달로스는 아들보다 앞서 날며 아들이 제대로 날고 있는지 가끔씩 뒤돌아보았다. 시킨 대로 잘 날고 있는 듯하여 다이달로스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델로스 섬을 지날 즈음이었다. 푸른 바다와 뭇 섬을 눈 아래로 굽어보며 하늘을 나는 기분에 도취되어 이카로스는 아버지의 당부를 무시하고 조금씩 고도를 높이기 시작하였다. 아득히 비상하여 창공의 한 점이 되는가 싶은 순간, 이카로스는 추락하기 시작하였다. 태양이 날개를 이어붙인 밀랍을 녹여 버린 탓이었다. 추락은 비상보다 더 짧은, 찰나의 일이었다. 다이달로스가 문득 내 뒤를 돌려다보았을 땐 두어 개 가벼운 깃털만이 허공을 날고 있었다. 내려다보니 이카리아(이카로스의 바다) 위엔 그저 하얀 포말만이 무심히 동심원을 그리며 잦아들고 있었다.

 

유시주,『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25. 나르키소스의 닫힌 마음과 네메시스의 응징

 

나르키소스(나르시스는 나르키소스의 프랑스식 표기이다.)는 강신(江神) 케피소스와 강의 요정 레이리오페 사이에 난 아들이었다. ‘망연자실’이라는 뜻의 이름 그대로 나르키소스는 쳐다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신을 잃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나르키소스가 두 살 나던 때였다. 강둑에서 요정들에게 둘러싸인 채 놀고 있는 나르키소스를 보고 지나가던 왠 눈먼 여자가 “저 아이는 제 얼굴을 보 지 않아야 오래 살겠다.”는 이상한 말을 던졌다. 그 여자는 목욕하는 아테나 여신의 알몸을 멋모르고 훔쳐보았다가 장님이 되어 버린 테이레시아스였다. 아테나는 테이레시아스의 눈을 멀게 한 대신 예언의 능력을 주었던 것이니, 그녀가 던진 말은 곧 나르키소스의 앞날에 대한 불길한 암시였다.

(중략)

이때부터 에코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동굴이나 계곡에서만 살았으며 사랑을 거절당한 슬픔 때문에 나날이 여위어 가다가 마침내는 형체도 없이 스러져 목소리만 남게 되었다. 나르키소승게 사랑을 호소하다 죽어 간 요정은 비단 에코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요정들이 응답 없는 사랑에 절망하여 에코처럼 몸을 말리면서 죽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역시나 상사병으로 여위어 가던, 람누스에 사는 샘의 요정 하나가 신들게 기도를 드렸다.

“바라건대 나르키소스로 하여금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고, 사랑의 보답을 받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깨닫게 해 주소서.”

요정의 응어리진 기도를 들어 준 이는 저 가차없는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였다.

람누스의 산 속에는 아주 맑은 샘이 하나 있었다. 물이 어찌나 맑았던지 숲 속의 짐승들도 그 곳으로는 가지 않았으며 낙엽이나 나뭇가지도 그 샘만은 더럽히지 않았다. 어느 날 사냥에 지친 나르키소스가 더위와 갈증에 쫓겨 그 샘가를 찾았다. 물을 마시려고 몸을 구부리다가 나르키소스는 수면에 비친 제 모습을 보았다. 빛나는 두 눈, 어깨까지 내려온 황금빛 고수머리, 통통한 장밋빛 뺨, 상아같이 흰 목, 반쯤 벌어진 붉은 입술, 나르키소스는 그만 그 아름다운 모습에 넑을 잃고 말았다. 한 번도 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지라 나르키소스는 그것이 제 얼굴인 줄을 까맣게 몰랐던 것이다. 샘 속의 요정이려니 생각한 나르키소스는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수면 가까이 가져갔다. 그리고는 그 사랑스러운 몸을 끌어안으려고 두 팔을 물속에 담갔다. 그러자 요정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그런가 싶더니 당황한 나르키소스가 어쩔 줄 몰라 하는 동안 어느 새 다시 나타나 나르키소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나르키소스는 샘가를 떠날 수 없었다.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잊고 수면에 비친 제 모습만 바라보았다. 자신을 사모했던 수많은 요정들처럼 나르키소스 또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열병으로 홀로 여위어 갔다. 나르키소스는 마침내 샘가에서 죽고 말았다. 얼마나 애를 태웠던지 죽고 난 자리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에, 가운데는 자줏빛이고 가장자리는 하얀 한 송이 꽃이 피었다. 그 이름, 수선화였다.

 

유시주, 『 거꾸러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26.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팡세

 

391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다. 그를 박살내기 위해 전 우주가 무장할 필요가 없다. 한번 뿜은 증기, 한 방울의 물이면 그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박살낸다 해도 인간은 그를 죽이는 것보다 더 고귀할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그리고 우주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주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존엄성은 사유(思惟)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스스로를 높여야 하는 것은 여기서부터이지, 우리가 채울 수 없는 공간과 시간에서가 아니다. 그러니 올바르게 사유하도록 힘쓰자. 이것이 곧 도덕의 원리이다.

 

392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 (213쪽)

 

713 모든 거창한 오락들은 기독교인의 삶에 위험하다. 그러나 인간이 고안한 모든 오락 중에서 연극보다 더 두려워해야 할 것은 없다. 연극은 정념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미묘하게 재현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 마음속의 뭇 정념들, 특히 사랑의 정념을 자극하고 불러일으킨다. 특히 사랑을 매우 순결하고 성실하게 그려낼 때 그렇다. 왜냐 하면 순수한 사람들에게 사랑이 순수하게 보이면 보일수록 그들은 더 깊은 감동을 받기 때문이다. 사랑의 격렬함은 우리의 자애심을 만족시켜 주고 이 자애심은 그렇게 훌륭하게 묘사된 것과 똑같은 결과를 얻어내고 싶은 욕망을 품는다. 그리고 동시에 사람들은 연극에서 보는 감정들의 성실성을 근거로 어떤 생각을 갖게 되는데, 이 감정들은 순수한 사람들의 우려를 제거해 주며 이들은 그렇게 정숙해 보이는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은 순결을 헤치는 것이 아니라고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극장을 나설 때 사람들의 마음은 모든 아름다움과 감미로움으로 가득 차고 또 마음과 정신이 사랑의 순결을 굳게 믿는 나머지 그에게 먼저 다가올 어떤 감동이라도 받아들일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아니, 차라리 극 중에 그처럼 훌륭히 묘사된 것과 똑같은 기쁨과 희생을 받아들이기 위해 누군가의 마음속에 그러한 감동을 낳게 할 기회를 찾을 태세가 되어 있는 것이다. (361쪽)

 

파스칼/이환옮김,『팡세』, 민음사.

 

 

블레즈 파스칼 : 1623년 6월 19일, 프랑스 출생. 아버지 에틴엔 파스칼은 고등세무원장.

1658년부터는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항하기 위해 ‘기독교 호교론’을 쓸 구상을 시작함.

1662년 8월 19일 지병이 악화되어 39세를 일기로 생을 마침.

 

 

 

 

27. 『국화와 칼』 해설에서 (해설: 이광규)

 

서양과 다른 동양, 한국과 다른 일본

 

국화는 일본의 황실을 상징한다. 일본인들은 벚꽃보다도 국화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다른 꽃들이 피지 않는 차가운 가을에 홀로 피는 국화는 깨끗하고 청결하고 조용하고 엄숙하고 고귀하다는 생각에서다. <국화와 칼>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그렇게 예의바르고 착하고 겸손하고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일본 사람들 속에 무서운 칼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이라는 제목을 통해 일본 사람들의 이중적인 성격을 드러냈다. 일본 사람들 스스로도 자신들은 앞에 내세우는 얼굴과 속마음이 다르다는 점은 인정한다. <국화와 칼>은 우리 시각으로 볼 때 어떤 긴요한 것을 빠뜨린 것 같아 보이지만 그것을 서양인이 썼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대단한 저작임에 분명하다. 또한 일본에 대해 상당히 대담하게 이야기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중략)

우리는 ‘의리(義理)’를 쉽게 이해하지만 서양인은 의(義), 충(忠) 같은 것들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서양인들은 일본인이 전쟁을 일으킨 것은 일본 사회가 가진 종적 관계를 세계에도 적용시키기 위해, 즉 세계를 상하 질서의 관계로 재편시키기 위해서라고 보았다. 서양 사람들은 동양의 상하 질서, 종적 구조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반대로 서양의 평등 사상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서양 사람들에게는 형제라는 개념이 없고 우리 역시 서양의 평등 개념이 없다.

물론 서양인들에게도 로열티(royalty)라는 것이 있지만 우리의 충(忠)이란 개념과는 다르다. 서양인들의 인간 관계는 완전히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이다. 우리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베네딕트가 충과 효, 의리, 은혜 사상을 밝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중략)

또한 같은 동양권의 일본은 우리와 많은 것이 같으면서도 다른 점 또한 많다. 그 중의 하나가 일본 사람들은 충과 효를 같은 의식선상에 둔다는 점이다. 충과 효가 대치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일본인들은 둘 중에 충을 선택하지만 우리는 효를 선택한다. 좀더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일본에는 효라는 개념이 없다고도 할 수 있다. 혹자들은 “한국인과 일본인이 1 대 1로 있으면 한국인이 훨씬 우세하지만 집단으로 있을 때는 그 반대이다”라는 말을 한다. 일본인의 강점은 단결을 잘하고 우리는 국가라는 공적인 개념에 충성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것을 일본이 무(武)를 숭상하고 우리는 문(文)을 숭상하는 것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어쨌든 우리는 무보다는 문을, 충보다는 효를 숭상했고 일본은 그 반대였다. 따라서 일본인은 우리보다 쉽고 빠르게 대동단결하고 천황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까지 내놓았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에 계속해서 전쟁을 일으켰는데, 전쟁은 국민의 의식을 단결시키고 초점을 한곳에 집중시키는 데 유리한 것이었다. 그런데 “도쿠가와가 한국과의 교류 없이 막부를 유지할 수 있었겠는가”라는 말이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우리 도공들과 학자들같이 기술과 학식이 있는 사람은 모조리 잡아가는 바람에 당시 우리 나라는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도쿠가와 막부 이후 일본을 만든 것은 한국에서 잡혀간 포로들의 공이었다.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고 또한 메이지유신을 거치면서 성공할 수 있었다. 메이지유신 시기에 임금은 시원치 않았으나 유신을 한 관료들은 충성심을 가지고 임금을 잘 받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로부터 백년 후에 ‘유신’이라는 말을 쓰게 되는데 내용은 전혀 달랐다.

예를 들어 일본이나 우리 나라에는 동네마다 그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있었는데 일본은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수호신이 없었던 면, 군, 읍에까지 새로운 수호신을 만들었다. 그래서 신사를 만들어 정신적인 통일을 했는데 우리는 같은 유신이라는 말을 쓰면서 그런 수호신 같은 것들을 미신이라고 다 철거했다. 그러나 일본은 수천 녀 동안 내려온 토착 신앙을 기초로 신토이즘을 만들고, 서양에서 교육 제도를 받아들여 교육칙령을 만들었고, 그 교육칙령을 쓴 사람이 <해석서>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것은 이퇴계 선생의 사상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었다. 바로 메이지유신 시대의 교육헌장이다. 우리는 그 백년 후에 이퇴계 선생 사상 근처에도 가지 못한 국정 불명의 교육헌장을 만든다.

일본은 거기서부터 우리와 달라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일본보다 백년 늦게 같은 유신이라는 말을 썼지만 우리의 토착 신앙을 다 때려 부수었고, 한문권에서 이탈하고, 차(茶)의 세계에서 이탈한다.

미국의 대학들에는 동양학 연구소가 있다. 그 동양학 연구소의 선생이 열 명이라면 여섯 명은 중국을 연구하고, 네 명은 일본을 연구한다. 한국을 연구하는 선생은 없다. 또한 미국에서 한국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 이유는 한국말은 배우기가 어렵고 또 다시 한자도 배워야 하는 이중 부담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조선조 이상의 자료들은 한문으로 되어 있다. 일본어를 배운 학생들은 한자도 읽을 수 있지만 한국어를 배운 학생들은 고전을 읽기 위해 또 다시 한자를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한국이 동양의 한문권에서 완전히 고아가 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더 위축되고 있다.

그리고 또 근래에는 중국의 홍차와 일본의 녹차 사이에 패권 쟁탈전이 한창이다. 일본의 녹차는 한국에서 불교와 함께 가져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불교를 억압하면서 차도 억압했다. 우리는 아시아에서 커피를 제일 많이 소비하는 나라이다. 이제 우리는 문화의 고아가 되어 버렸다.

 

루스 베네딕트 지음/김윤식‧,『국화와 칼』, 을유문화사,2002(4판 9쇄발행/초판은 1974년)

 

인간에게는 동물과 구별되는 세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다. 그 첫 번째가 근친금혼을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언어 사용이다. 인간과 가장 비슷한 종류의 원숭이는 서른 가지의 발성을 하지만 그것은 모두 단절음이다. 그러나 인간이 구사할 수 있는 단어는 무한하다. 일본에는 원숭이만 사는 섬이 있다. 그 원숭이들은 감자를 물레 씻어 먹는 것이 더 맛있다는 것을 아는 데 3년이 걸렸다고 한다. 왜냐하면 직접 눈으로 보지 않으면 모르기 때문이다.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겪는 경험을 말을 통해서 전달할 수 있다. 인간은 남에게 들은 사건, 사고, 사물을 공간적으로 또한 시간적으로 정리한다. 따라서 인간은 언어를 통해서 시간을 가지게 되었고, 시간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시간을 과거,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까지 연장하고 죽음 이후의 내세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현세가 유한하다면 내세는 영원하고 현세는 힘들고 괴롭지만 내세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생각해서 종교를 가지게 된 것이다. 즉 인간은 언어를 가졌기 때문에 시간을, 미래를, 내세를, 종교를, 영혼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세 번째 특징은 불의 발견이다. 불의 발견으로 인간은 맹수의 공포로부터 해방되었고 먹을 수 있는 종류가 늘어났으며 밤을 단축하게 되었다. 그리고 겨울을 날 수 있게 되어 사람이 살 수 있는 영역이 확대되었다. 이렇게 동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근친금혼, 언어, 불의 발견이라는 인간만의 특징을 통해 인류는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다.

 

인류학자들은 중동 지역의 일부다처제를 분석하면서 “왜 그 사람들이 일부다처제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가”에 주목했다. 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를 연역적으로 연구하는 것, 그것이 인류학의 첫 번째 목표다.

중동은 높은 기온으로 인해 영‧유아 사망률이 매우 높았다. 그런데 영‧유아들이 높은 기온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약이 있었는데 바로 어머니의 젖이었다. 어머미의 젖은 영‧유아들에게 항생력을 길러 주었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여 어머니의 젖과 똑같은 성분의 분유를 만들 수 있게 되었지만, 어머니의 젖과 같은 항생력까지는 만들어 내지 못한다. 항생력은 바로 생명을 의미한다. 사람의 피도 같은 원리인데 인간은 피도 만들어 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사람의 피에는 딱지가 앉지만 만든 피는 그렇지 못하다. 어머니 젖에도 어린 생명력이 있다는 것이다.

중동 지역에서 태어난 아이가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젖을 이년간 먹어야 했는데 그 사이에 어머니가 임신을 하게 하면 젖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일부다처제가 필요했다.

임신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출산 후 이년 동안 성관계를 갖지 말아야 했고 남자들은 그 사이 새 여자를 맞아들였다.

그런데 묘한 것은 이런 것들을 제도적으로 잘 유지해 나간다는 사실이다. 중동 지역의 남자는 토지의 소유권을, 여자는 경작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토지의 소유권과 경작권을 교묘히 만들었고, 그것은 절대로 침범할 수 없는 남녀 고유의 권리였다. (중략)

사람은 각기 다른 환경에서 태어난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합리적으로 운영해 오고 있다. 그러므로 어느 민족이 뛰어나다거나 못났다거나 하는 등의 평가는 무용지물이다. 인류학에서는 모든 사람의 가치가 똑같다. 다만 각기 태어난 장소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여러 조건을 가장 합리적, 경제적, 논리적으로 영위하고 있고 그것을 문화라고 한다.

 

루스 베네딕트 지음/김윤식‧,『국화와 칼』, 을유문화사,2002(4판 9쇄발행/초판은 1974년)

* <국화와 칼>은 1944년 6월 미 국무부의 위촉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임.

 

 

 

28. 국화와 칼 (제3장 각자 알맞은 위치 갖기)

 

일본은 근래 두드러지게 서구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귀족주의적인 사회다. 사람들과 인사하고 접촉할 때는 반드시 서로간의 성질과 정도를 암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인은 남을 향해 ‘이트(Eat:먹어라)’라든가, ‘싯다운(sit down: 앉아라)’이라고 말할 때, 상대방이 친한 사람인가 손아랫사람인가 윗사람인가에 따라 각기 다른 말을 쓴다. 같은 ‘유(You:너)’라도 각기 경우에 따라 다르게 쓰며, 같은 의미의 동사가 여러 종류의 다른 어간을 가지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일본인에게도 다른 많은 태평양 여러 민족과 같이 ‘경어’가 있다.

또한 이와 함께 허리를 굽히는 인사와 꿇어앉는 예의를 행한다. 이러한 동작은 모두 세밀한 규칙과 관례에 의해 지배된다. 누구에게 허리를 굽히는가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또한 어느 정도로 허리를 굽혀 절을 할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바르고 정당한 절일지라도, 절을 하는 사람과의 관계와 약간 차이가 있는 다른 사람에게는 모욕이 되어 노여움을 사게 된다. 따라서 절에는 무릎 꿇고 앉아서 마룻바닥에 손을 댄 손까지 이마를 나직이 수그리는 가장 정중한 절에서부터 머리와 어깨를 조금 수그리는 간단한 절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사람들은 어떠한 절이 각각의 경우에 합당한가를 어려서부터 배우고, 또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적당한 행동에 의해 끊임없이 서로 인식해야만 하는 계급의 차이-이러한 것들이 중요함은 물론 말할 것도 없지만-이것은 단순한 계급적 차이는 아니다. 성별이나 연령, 두 사람 사이의 가족 관계나 종래의 교제 관계 등이 모두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다. 같은 두 사람 사이에도 처지가 변하면 그것에 알맞은 존경이 요청된다. 가령 민간인이었을 때는 서로 친숙한 사이여서 따로 절을 안했지만 그들 중 한쪽이 군복을 입게 되면 평복을 입은 친구가 경례를 한다. 그리하여 어떤 특수한 경우에, 그 인자 중의 어떤 것은 서로 마이너스로 작용해서 상쇄되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서로 플러스로 작용해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물론 서로 간에 그렇게 형식이 필요치 않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에서 그것은 자기 가족권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우리의 가족권 안으로 돌아오면 형식적인 예의는 일체 벗어버린다. 그런데 일본에서 예의범절을 배우며 세심한 주의를 가지고 이행하는 곳이 바로 가정이다. 어머니는 아이를 업고 다닐 때부터 자기 손으로 아이 머리를 눌러 고새 숙여 절하는 법을 가르친다. 그러다가 그 아이가 아장아장 걷게 되면, 처음으로 아버지나 형에게 존경을 표하는 행위를 가르친다. 아내는 남편에게, 자식은 아버지에게, 동생은 형에게, 여자아이는 연령에 관계없이 남자 형제 모두에게 머리를 수그린다. 그것은 결코 내용 없는 몸짓이 아니다. 그것은 머리를 수그리는 사람이, 사실은 자기 뜻대로 처리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에서 상대방이 자기 뜻대로 행동할 권리를 승인하는 것이며, 절은 받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그 지위에 당연히 돌아가는 어떤 책임을 승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에게는 성별과 세대의 구별과 장자 상속권에 입각한 계층 제도가 가정 생활의 근간이다.

효도는 말할 것도 없이 일본이 중국과 공유하고 있는 숭고한 도덕률이어서, 효도에 관한 중국인의 가르침은 일찍이 6세기에서 7세기경의 중국 불교, 유교의 도덕설, 세속적인 중국 문화와 함께 일본이 들어왔다.

그러나 효도의 성격은 불가피하게 중국과는 다른 일본의 가족 구조에 적합하도록 개조되었다. 중국에서는 오늘날에도 자기가 속하는 광대한 종족에 대하여 충성을 바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종족은 어떤 경우에는 몇 만 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사람들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가지고, 또 그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는다. 중국은 넓은 나라이기 때문에 지방에 따라 사정이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지역에서는 어느 부락의 주민은 모두 같은 종족의 구성원이다. 중국의 인구는 총 4억 5,000만 명 이상이지만 성(性)은 겨우 470개 정도이다. 그렇지만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은 모두 자신들은 어느 정도의 종족적 동포라고 생각하고 있다.

광동성과 같이 인구가 밀접한 지역에서는 종족의 모든 구성원이 결속하여 당당한 종족 회관을 유지‧경영하며, 일정한 날에 거기 모여서 공통의 조상에서 유래한 1,000명 이상이나 되는 이미 죽은 종족 구성원들의 위패를 받든다.(중략)

이 점은 일본에서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19세기 중반 경까지 성이 허용된 것은 귀족과 사무라이(武士) 집안에만 한정되었다. 중국 가족 제도의 근본이 되는 성, 혹은 적어도 무엇인가 성에 상당하는 것이 없고서는 씨족 조직은 발달할 수 없다. 어떤 부족에서는 계도를 기록하는 것이 이 성에 해당하는 것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이 계도를 갖는 것도 상류 계급뿐이었고, 게다가 그 계도는 미국애국부인회가 행하는 것처럼 현재 살아 있는 인간에서부터 거꾸로 소급하여 기록하는 것이어서, 예로부터 순서대로 시대를 따라 내려오면서 시조로부터 나뉘는 동시대의 모든 사람을 빠짐없이 망라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 두 가지 방법은 매우 다른 것이었다. 그 밖에도 일본은 봉건적 영주였다. 그는 그 토지에 존재하는 주권자였다. 그는 일시적이고 관료적인 중국 관리와는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 일본에서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사쓰마 영지에 속하는가 히젠 영지에 속하는가에 있었다. 어떤 사람의 고삐는 그의 영지에 매여 있었다.

씨족을 제도화하는 또 다른 방법의 하나는 먼 선조나 종족의 신들을 신사(紳士)나 성소(聖所)에서 숭배하는 것이다. 이러한 숭배는 계보와 성이 없는 서민들도 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먼 선조를 숭배하는 의식은 행하지 않는다. ‘서민’들이 제사 지내는 신사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이지만, 그들의 선조가 공통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신사의 제신(諸神)의 ‘아이들’이라 불리지만 그들이 ‘아이들’인 것은 그들이 제신의 영역 내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같은 씨신(氏神)을 제사 지내는 촌민은, 세계 속 도처의 촌민과 마찬가지로 몇 대 동안 같은 땅에 정주한 결과로서 서로 인연을 맺어 왔지만, 그들은 공통된 선조의 피를 받은 긴밀한 씨족 집단은 아닌 것이다.

조상에 대한 숭배는 신사와는 별개로 가족의 거실에 마련된 불단에서 행해지는데, 거기엔 최근에 죽은 겨우 6, 7명의 영혼만을 모신다. 일본의 모든 계급의 사람들은 매일 이 불단 앞에서, 그 안에 안치된 작은 묘비를 모방한 위패로 대표되는,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부모나 조부모 몇 가까운 친족을 위해 예배를 행하고 음식을 바친다. 묘지에도 증조부모의 묘표(墓標)는 글씨가 흐려져도 고쳐 쓰지 않고 그대로 두며, 3대 전의 조상에 이르면 그것이 누구의 묘인가조차 모를 정도로 잊게 된다. 일본의 가족적인 유대는 서양과 차이가 없는 데까지 좁혀져 있다. 아마도 프랑스의 가족이 이와 가장 흡사할 것이다.

따라서 일본의 ‘효도’는 직접 얼굴을 마주치는 한정된 가족 간의 문제이다. 이것은 아버지와 할아버지, 형제 및 직계 비속 정도를 포함하는 데 머무는 집단 속에서, 세대나 성별, 연령에 따라서 자기에게 알맞은 위치를 차지하는 것을 말한다. 더욱 넓은 범위의 집단이 포함되는 큰 가정에서조차도, 가족은 몇 개의 다른 계통으로 나뉘어 차남 이하의 남자는 분가를 하게 된다. 이렇게 직접 얼굴을 대하는 좁은 집단 내부에서 ‘알맞은 위치’를 규정하는 규칙은 참으로 엄밀하다.

 

루스 베네딕트 지음/김윤식‧,『국화와 칼』, 을유문화사,2002(4판 9쇄발행/초판은 1974년)

 

 

 

 

 

 

 

29. 국화와 칼 (제3장 각자 알맞은 위치 갖기)

 

일본은 또 중국의 세속적 황제 사상을 채용하지 않았다. 황실을 의미하는 일본어의 명칭은 ‘구름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며, 이 일족의 사람들만이 황제에 오를 수 있다. 중국에서는 번번이 왕조가 교체되었지만 일본에서는 한 번도 그러한 일이 없었다. 천황은 불가침이며 천황의 몸은 신성한 것이었다. 중국 문화를 일본에 도입한 일본의 천황들과 궁정은 그런 점에 관하여 중국의 조직은 대체 어떠했는가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못하였고, 또 자신들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를 깨닫지도 못했음에 틀림없다.

따라서, 중국에서 문화를 수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새로운 일본 문명은 세습 영주의 가신들 사이의 몇 세기에 걸친 패권 쟁탈전의 길을 열어 놓았던 것이다. 8세기 말경까지는 귀족인 후지와라 가문이 지배권을 장악하여 천황을 그들의 배후에 눌러 두었다. 시간이 흐르자 봉건 영주들이 후지와라의 지배를 거부하여 내란이 일어났다. 그 봉건 영주 중의 하나인 유명한 미나모토노 오리토모가 경쟁자를 정복하여 예로부터 군사적 칭호로 있어 온 쇼군(將軍)이라는 이름 아래 일본의 실질상의 지배자가 되었다. 이 쇼군이라는 관명(官名)은 약칭이다. 완전한 명칭은 ‘세이이다이쇼군(征夷大將軍)’이다. 일본에서는 통례이지만 요리토모는 이 관직을 그의 자손들이 봉건 영주를 제압할 수 있는 실력이 있는 동안 미나모토 가문이 세습하도록 하였다.

천황은 무력한 존재가 되었다. 천황의 역할은 단지 쇼군을 의례적으로 임명하는 데 국한되어 있을 따름이었다. 천황은 어떤 정치적 권력도 갖지 못하였다. 실제적인 권력은 위령(威令)에 복종치 않는 번에 대해 무력으로 지배력을 확보하려던 바쿠후(幕府-이 명칭은 원래 대장의 군영을 의미하였는데 후에 쇼군의 정부를 뜻하게 되었다.-가 장악하였다. 봉건 영주, 즉 다이묘는 각각 무장인 가신 사무라이(武士)를 거느리고 있었다. 이들 사무라이들은 주인의 명령에 따라 칼을 휘둘렀다. 그리하여 그들은 불안한 동란기에는 항상 경쟁 상대인 번이나 지배자인 쇼군의 ‘알맞은 위치’에 의의를 제기하고 항쟁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16세기에는 내란이 마치 풍토병처럼 퍼져나갔다. 수십 년간의 동란 끝에 위대한 무장 이에야스(家康)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1603년 도쿠가와(德川) 가문의 초대 쇼군이 되었다. 쇼군의 지위는 그 후 2세기 반에 걸쳐 이에야스의 혈통 속에 머물렀으며, 1868년 천황과 쇼군간의 ‘이중통치’가 폐지되고 근대의 막이 올랐을 때 비로서 종말을 고하였다.(76~78쪽)

 

상인 계급은 천민 계급 바로 위에 놓였다. 이 사실은 미국인에게는 참으로 의외라고 느껴지지만 봉건 사회라는 실정에는 매우 적합한 일이었다. 상인 계급은 늘 봉건 제도의 파괴자였다. 실업가는 존경받고 번영하게 되면 봉건 제도는 쇠퇴한다. 도쿠가와 바쿠후가 17세기에 어느 나라에도 볼 수 없었던 가혹한 법률로 일본의 쇄국을 선포한 것은 상인의 설자리를 빼앗기 위해서였다. 이 무렵 일본은 중국 및 조선의 연안 일대에 걸쳐 해외 무역이 성행하였고, 따라서 상인 계급이 발달 추세를 보였다. 도쿠가와 바쿠후는 일정한 한도 이상의 배를 만들고 운항하는 것에 대해 극형이라는 대죄(大罪)를 적용함으로써 이러한 추세를 막았다. 허가된 작은 배로는 대륙 사이를 항해하거나 상품을 싣고 다닐 수가 없었다.

국내 무역 역시 각 번의 접경에 관소(關所)를 설치하여 상품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였다. 또한 상인 계급의 사회적 지위를 낮추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가지 법률을 정하였다. 사치를 금지하는 법령을 만들어 상인이 입는 옷,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우산, 혼례나 장례식에 사용되는 비용 등을 규정하였다.(80쪽)

 

루스 베네딕트 지음/김윤식‧,『국화와 칼』, 을유문화사,2002(4판 9쇄발행/초판은 1974년)

 

 

 

 

30. 국화와 칼 (제3장)

 

또 하나, 카스트 제도를 교묘히 조종하는 전통적인 방법은 양자를 삼는 관습이었다. 이 방법으로 사무라이 신분을 ‘사들일’ 수 있었다. 상인들은 도쿠가와 바쿠후의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부를 축적하게 되면 그들의 자식을 사무라이 집안에 양자로 보낼 궁리를 하였다. 일본에는 아들을 양자로 주는 일은 좀처럼 없다. 사위를 양자로 삼는다. 이것을 데릴사위(壻養子)라 부른다. 데릴사위는 장인의 상속자가 된다. 그는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한다. 그의 이름은 본가의 호적에서 말소되어 처가의 호적에 기입된다. 자기 처의 성을 따르며 처가에 가서 장모와 생활해야 한다. 그렇지만 희생이 큰 것에 비례해서 이익도 크다. 부유한 상인의 자손은 사무라이가 되며 빈궁한 사무라이의 가족은 부호와 연분을 맺는다. 카스트 제도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그대로이다. 그러나 그 제도를 교묘히 조종함으로써 부자는 상류 계급 신분을 획득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각각의 카스트가 절대로 동일한 카스트 안에서만 혼인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카스트간의 통혼도 가능하게 하는 공인된 절차가 있었다. 그 결과 마침내 부유한 상인의 하층 사무라이 계급에 합류되었다. 이 사실은 서구와 일본 간의 현저한 차이점의 하나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서양에서 봉건 제도가 붕괴된 것은 점점 발달하고 우세해진 중산 계급의 압력이 그 원인이었다. 중산 계급이 근대 산업 시대를 지배한 것이다. 일본에는 그러한 강대한 중산 계급은 발생하지 않았다. 상인이나 돈놀이꾼은 공인된 방법에 의해 상류 계급의 신분을 샀다. 상인과 하층 사무라이들은 동맹자가 되었다. 서양과 일본 모두에서 봉건 제도가 단말마의 고통을 겪고 있던 시기에, 일본이 유럽 대륙의 여러 나라들보다도 더 많은 계급간의 이동을 승인한 것은 기묘하고도 의의의 일이지만,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무엇보다도 유력한 증거는 귀족과 서민 사이에 계급 투쟁이 행해진 흔적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 두 계급이 제휴한 것은 일본에서는 그렇게 하는 편이 두 계급 모두에게 이로웠기 때문이었다. 서구에도 그러한 제휴가 이루어진 몇몇 특수한 사례가 있기는 하였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대체로 계급이 철저하게 고정되어 있었고, 프랑스 같은 데서는 계급 투쟁이 귀족의 재산을 몰수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일본에서는 계급간의 사이가 밀접하였다. 쇠약해진 바쿠후를 전복시킨 동맹은 상인과 돈놀이꾼 및 사무라이 계급의 동맹이었다. 일본에서는 근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귀족 계급이 보존되었는데, 만일 일본에서는 근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귀족 계급이 보존되었는데, 만일 일본에 계급간의 이동을 가능케 한 공인된 수단이 없었다면 이러한 현상은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일본인이 상세한 행동의 지도를 좋아하고 신뢰한 것에는 그럴 만한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그 지도는 사람이 규칙에 따르는 한 반드시 보증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은 부당한 침략에 대한 항의를 인정하였다. 또 그것은 교묘히 조종하여 자기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었다. 그것은 상호 의무 이행을 요구하였다. 19세기 후반에 도쿠가와 바쿠후가 붕괴되었을 때에도, 국민 중에 이 지도를 버리자는 의견을 제시한 그룹은 하나도 없었다. 프랑스 혁명 같은 것은 일본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프랑스의 1848년 2월 혁명 정도의 혁명조차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무렵 사태는 절망적이었다. 서민에서부터 바쿠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급이 상인이나 돈놀이꾼에게 빚을 지고 있었다.(중략) 페리 제독이 함대를 이끌고 나타난 1853년 무렵의 일본 국내는 극도로 비참한 상태였다. 페리의 강제 입국에 이어 1858년에는 미국과의 통상 조약이 체결되었는데, 이때 일본은 이미 그 강요를 거부할 힘이 없었다.

그러나 일본 방방곡곡에서 터져 나온 절규는 ‘잇신(一新)’, 즉 과거로 복귀하자는 이른바 유신(維新)이었다. 그것은 혁명과는 정반대로, 진보적인 것이 아니었다. ‘왕정복고(尊王)’의 외침과 함께 민심을 사로잡은 외침은 ‘오랑캐 추방(攘夷)’이었다. 국민은 쇄국의 황금 시대로 복귀하자는 정책 강령을 지지하였다. 그리하여 이러한 방침이 도저히 행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간파한 소수의 지도자들은 그러한 노력 때문에 암살되었다. 혁명을 싫어하던 일본이 갑자기 방침을 바꾸어 서양 여러 나라의 모범에 따르기로 하였고, 겨우 그로부터 50년 후에는 서양 여러 나라가 본령(本領)으로 하는 분야에서 서양 여러 나라와 경쟁하게 되리라고는 실로 생각조차도 못한 일이었다.(92~95쪽에서)

루스 베네딕트 지음/김윤식‧,『국화와 칼』, 을유문화사,2002(4판 9쇄발행/초판은 1974년)

 

31. 국화와 칼 (제4장 메이지 유신)

 

일본 근대화의 구호는 손노조이(尊王攘夷), 즉 ‘왕정을 복고하고 오랑캐를 추방하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일본을 외국에게 짓밟히지 않도록 함과 동시에 천황과 쇼군의 ‘이중 통치’ 속에 있었던 10세기의 황금 시대로 복귀하려는 슬로건이었다. 교토(京都)에 있는 천황의 궁정은 극단적으로 반동적이었다. 천황 지지자에게 존왕파(尊王派)의 승리란 외국인을 굴복시켜 추방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전통적인 생활 양식을 회복하고, ‘개혁파’의 정치적 발언권을 봉쇄하는 것이었다. 유력한 도자마 다이묘(外樣大名)들, 즉 바쿠후를 무너뜨리는 데 선두에 선 번(藩)의 다이묘들은 왕정 복고야말로 도쿠가와 대신에 자신들이 일본을 지배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이 하고자 한 것은 단지 사람을 바꾸는 일이었다. 농부들은 농사지은 쌀을 될 수 있는 한 많이 자신들이 소유하기를 원했지만 ‘개혁’은 매우 싫어하였다. 사무라이 계급은 또 종전대로 봉급을 받고 칼로써 공명을 세울 기회가 오기를 바랐다. 존왕파에게 군사 자금을 빌려 준 상인들은 중상주의가 신장되길 원했지만, 결코 봉건 제도를 규탄하지는 않았다.

반(反)도쿠가와 세력이 승리를 거두어 1868년 왕정 복고에 의해 ‘이중 통치’가 종말을 고했을 때, 우리 서양인의 기준으로 보면 승리자들은 이제부터는 놀라울 정도로 보수적인 고립주의 정책이 실시될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그러나 신정부가 취한 방침은 처음부터 그 반대였다. 신정부는 성립 후 1년도 채 못 되어, 모든 번에서 다이묘의 과세권을 철폐하였다. 정부는 토지 대장을 회수하여, 이른바 ‘사공육민(四公六民)’ 중 사공의 몫은 정부에 납부하도록 하였다. 재산 몰수는 무상이 아니었다. 정부는 각 다이묘에게 정규 봉록의 반액에 상당하는 액수를 나누어 주었다. 동시에 정부는 다이묘에게서 사무라이를 부양하고 토목 사업비를 부담하는 책임을 면제하였다. 사무라이들에게도 다이묘와 같이 정부에서 봉급을 지급하였다.

다음 5년 동안에 계급 사이의 모든 법률상 불평등이 철폐되었다. 카스트나 계급을 나타내는 징표나 복장이 폐지되고-상투(丁髮)조차도 잘라야 했다- 천민 계급은 해방되었으며, 토지 양도를 금지하는 법률이 철폐되고, 번과 번 사이를 격리하는 장벽이 제거되었으며, 불교는 국교의 지위에서 추방되었다. 1876년에는 다이묘와 사무라이의 봉록이 5년 또는 15년을 상환 기간으로 하는 질록공채(秩祿公債)에 의해 일시불로 지급되었다. 물론 이 일시불은 도쿠가와 시대에 정해진 다이묘들의 봉급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그리하여 다이묘와 사무라리들은 이 돈을 자금으로 새로운 비봉건적 경제하에서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도쿠가와 시대에 이미 분명해진 상업‧금융 귀족과 봉건‧토직 귀족의 특수한 연합을 마침내 정식으로 체결하는 최 종단계였다.”

갓 태어난 메이지 정부의 이같은 괄목할 만한 개혁은 대중의 뜻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대중들로부터 지지를 받은 것은 1871년에서 1873년에 걸친 조선 침략론이었다. 그러나 메이지 정부는 철저한 개혁을 단행하는 방침을 결코 굽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조선 침략 계획을 묵살하였다. 정부의 시정 방침은 메이지 정부 수립을 위해 싸운 대다수 사람들의 소망과는 전혀 상반되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1877년에, 이들 불평 분자의 최고 지도자인 사이고가 반정부 기치로 내세운 대규모 반군을 조직하였다. 그의 군대는 왕정 복고 첫해부터 메이지 정부에 의해 배반당해 왔던 봉건 제도의 존속을 그리워하는 존왕파의 모든 소망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정부는 사무라이 이외의 사람들로 구성된 의용군을 모집하여 사이고의 사무라이 사무라이 군을 격파하였다. 이 반란은 당시 정부가 국내에 얼마나 큰 불만을 야기시켰는가에 대한 하나의 증거였다.

농민의 불만도 또한 현저하였다. 1868년에서 1878년까지, 즉 메이지 초기 10년 동안에 적어도 190건의 농민 봉기가 일어났다. 신정부는 1877년에 가서야 겨우 농민의 과중한 세금을 경감하는 조치를 취했을 따름이다. 따라서 농민은 신정부가 자기들에게 아무런 이익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었다. 농민들은 또 학교의 설립, 징병, 제도, 토지 측량, 단발령, 천민들의 차별 대우 철폐, 공인된 불교에 대한 극단적인 제한, 역법 개혁, 기타 그들의 고정된 생활 양식을 변혁시키는 많은 시책에 반대하였다.

그러면 이토록 철저하고 평판 나쁜 개혁을 단행한 ‘정부’는 대체 누구였던가? 그것은 특수한 일본의 여러 제도가 이미 봉건 시대부터 육성시켜 온 하층 사무라이 계급과 상인 계급의 ‘특수한 연합’ 세력이었다. 즉 그들은 다이묘의 어용인(御用人)으로서 또 가로(家老)로서 정치적 수완을 정치적 수완을 익혀, 공산업, 직물업, 판지(板紙) 제조 등 번의 독점 사업을 경영해 온 사무라이들과, 사무라이의 신분을 사서 사무라이 계급 속에 생산 기술의 지식을 보급시킨 상인들이었다. 사무라이와 상인의 동맹이 메이지 정부의 정책을 작성하고 그 실행을 계획한, 유능하고도 자신에 가득 찬 위정자들을 급속히 무대 앞으로 내세운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중요성은 이 정치가들이 어느 계급 출신인가에 있지 않고, 어떻게 그들이 그토록 유능하면서도 현실주의적일 수가 있었는가에 있다. 19세기 전반에 겨우 중세에서 벗어난, 오늘날 태국 정도의 약소국이었던 일본이, 어느 나라도 감히 시도하지 못한 비범한 정치적 수완을 필요로 하는, 더군다나 놀라운 성공을 거둔 메이지유신이라는 대사업을 계획하고 수행할 능력을 가진 많은 지도자들을 배출한 것이다. 이들 지도자들의 장점은 물로 또 그 단점까지도 전통적인 일본인의 성격에 깊이 뿌리박힌 것이었다. 그 성격은 무엇이었고, 또 무엇인가를 논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목적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단지 메이지유신의 정치가들이 어떻게 하여 이 사업을 수행해 갔는가를 이해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

그들은 그들의 임무를 결코 이데올로기적인 혁명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을 하나의 사업으로 취급하였다. 그들이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목표란 일본을 세계 열강 대열에 서게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우상 파괴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봉건 계급을 욕하지도 않았고 무일푼의 상태로 몰아넣지도 않았으며, 이들에게 많은 질록을 주로 그 미끼로 메이지 정부를 지지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마지막으로 농민의 처우를 개선하였다. 이 조치가 10년이나 늦어진 것은 정부에 대한 농민의 요구를 계급적 입장에서 묵살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메이지 초기의 빈약한 국고 때문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97~101쪽)

 

 

루스 베네딕트 지음/김윤식‧,『국화와 칼』, 을유문화사,2002(4판 9쇄발행/초판은 1974년)

 

 

 

 

 

 

 

 

 

 

 

 

 

32. 국화와 칼 (제5장 과거와 세상에 빚을 진 사람)

 

온-은(恩)-은 최우선이며 최대의 채무, 즉 ‘천황의 온(皇恩)’에 대해서 사용되는 경우에는 항상 무한한 헌신이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천황에 대한 채무로서 사람들은 황은(皇恩)을 무한한 감사로 받아들인다. 일본인은 이 땅에서 태어나 이렇게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자기 신변의 크고 작은 일이 잘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기뻐할 때에는, 자기 신변의 크고 작은 일이 잘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기뻐할 때에는, 언제나 이것들은 모두 어떤 한 사람으로부터 주어진 은혜라고 느낀다. 일본 역사의 모든 시기를 통해 일본인들이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은 그들이 소속하는 세계의 최고 윗사람이었다. 그것은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지방 영주, 봉건 영주, 쇼군 등으로 변하였다. 오늘날엔 그것이 천황이다. 그러나 윗사람이 누구인가보다 중대한 의의를 지닌 것은 몇 세기에 걸쳐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것이 일본인의 습성 속에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근대 일본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이 감정을 천황에게 집중하도록 해 왔다. 일본인 특유의 생활 양식에 대하여 그들이 품고 있는 모든 편애의 정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황은을 증대시킨다.(127쪽)

 

일본인은 조상 숭배의 대상을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최근의 조상만으로 한정하는데, 이러한 사실이 일본인에게 유년 시대에 현실적으로 무엇인가 이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는 것을 한층 절실히 느끼게 한다. 물론 어떤 문화에서나 누구든 한 번은 양친의 보살핌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무력한 어린아이이고, 성인이 되기까지 얼마 동안 의식주를 제공받는 것은 명백하고 틀림없는 사실이다. 일본인은 미국인들이 이 사실을 경시하고 있다고 통감한다.(128~129)

 

그러나 이처럼 일본 문화의 특수성이 은(恩)의 부담을 가볍고 지기 쉬운 것으로 만들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일본에서 감정을 상하지 않고 은을 ‘입은 것’은 행복한 경우이다. 일본인은 우연히 다른 사람으로부터 은을 받음으로써 보답의 빚을 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항상 “사람에게 은을 베푼다”는 말을 한다. 그것에 가까운 영어 표현은 “타인에게 무엇을 강제한다(imposing upon another)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임포징(imposing)'이란 말은 타인으로부터 무엇인가 요구하는 것인데 반하여 일본에서 이 표현은 타인에게 무엇인가를 주는 것 또는 친절을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 비교적 인연이 먼 사람으로부터 뜻밖의 은혜를 입는다는 것은 일본인에게 가장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이웃 사람들이나 예로부터 정해진 계층적 관계에서는 일본인은 은을 받는 번거러움을 알고 있으며, 또한 기쁘게 그 번거로움을 받아들여 왔다. 그러나 상대가 단순히 지인(知人)이거나, 자신과 거의 대등한 인간의 경우에는 매우 불안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될 수 있는 한 은의 여러 가지 결과에 휩쓸리는 것을 피하고 싶어 한다.

일본의 거리에서 무슨 사고가 일어났을 때 모인 군중들이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은 단지 자발성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경찰이 아닌 사사로운 사람이 제멋대로 참견을 하면 그 행위가 그 사람에게 은을 입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메이지 이전의 가장 유명한 법령의 하나에 “싸움이나 말다툼이 났을 때, 불필요한 참견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 있다. 그런 경우에 분명한 권한이 없이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은 무언가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는 게 아닌가 의심받게 된다. 도움을 베풀면 상대가 크게 은혜를 입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어떻게 해서든 이 좋은 기회를 이용할 법도 한데, 반대로 원조를 베풀지 않으려 애써 조심한다. 더욱이 형식을 차릴 필요가 없는 경우 일본인은 온에 휩쓸리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이제까지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사람으로부터 단지 담배 한 개비 얻어 피워도 일본인은 마음이 편치 않다. 그리고 그런 경우 고마움을 표시하는 정중한 화법은 “아, 기노도쿠(氣の毒 : 독이 있는 감정)군요”라고 하는 것이다. 어떤 일본인이 나에게 이렇게 설명하였다. “얼마나 좋지 못한 느낌인가를 확실히 말해버리는 편이 참기 쉬운 일입니다. 이때까지 그 사람을 위해 무엇 하나 해 주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은을 입었다는 것이 부끄럽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노도쿠’라는 말이 때로는 “Thank yoy(감사합니다)”, 때로는 “I am sorry(유감입니다)”(은혜를 입어서), 또 때로는 “I feel like a hell(면목없습니다)”(이처럼 과분한 대우를 받아서)라고 번역된다. ‘기노도쿠’라는 일본어는 이상의 모든 의미를 나타내지만, 또한 그 중의 어떤 말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일본어에는 은을 받음으로써 느끼는 마음이 편치 않음을 표현하는 ‘감사하다’라는 뜻의 많은 화법이 있다. 그 중 일반적으로 대도시의 백화점에서 사용하고 있는 ‘아리가토Z(有難う)라는 표현이다. 이 말은 “이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Oh, this is difficult things)"를 의미한다. 일본인은 ‘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손님이 물건을 삼으로써 그 상점에서 주는 크고도 대단한 은혜라고 설명한다. 이 말은 일종의 인사말이다. 이 말은 또한 선물을 받았을 때 쓰여지기도 하며, 그 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경우에 쓰여지고 있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보편적으로 ‘감사를 나타내는 그 밖의 말들은 ’기노도쿠’처럼 은혜를 받아 곤란하다는 심정을 표현한다. 상점 주인은 대체로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이것은 끝나지 않았습니다“라는 뜻이 되는 ‘스미마센(濟みません)’이라는 말을 쓴다. 즉, ”나는 당신에게 은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현대 경제 조직 하에서 나는 당신에게 은을 갚을 길이 없습니다. 나는 이런 입장에 놓여진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라는 의미이다.

‘스미마센’을 영어로 옮기면 “Thank you", "I'm grateful", 또는 ”I'm sorry", "I apologize"가 된다. 이를테면, 거리를 거닐다가 바람이 불어 날아가 버린 모자를 누군가가 쫓아가서 주워 준 경우에, 다른 감사의 말보다 즐겨 쓰는 것이 이 말이다. 그 사람이 당신의 손에 모자를 되돌려 줄 때 당신은 예의바르게 그것을 받아 쥐면서 느껴지는 마음속의 괴로움을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사람은 지금 나에게 이렇게 은을 베풀고 있지만 나는 이제까지 한 번도 이 사람을 만난 일이 없다. 나는 이 사람에게 이쪽에서 온을 제공할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 이런 은혜를 받아서 뒤가 꼴리긴 하지만 사죄하면 약간은 마음이 편해진다. 감사를 나타내는 말 중에서 아마도 ‘스미마센’이 가장 보통으로 쓰여지는 말이리라. 내가 이 사람에게 온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모자를 받았다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자. 그 이상 나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니까.”

다른 사람에게서 은혜를 입었을 때 일본인의 입장에서 한층 강하게 나타내는 감사의 말은 ‘가타지케나이(かたじけない)’로서, 이 말은 ‘모욕’,‘면목없음’을 의미하는 글자 -욕(辱), 첨(忝)-로 표현한다. 이 말은 ‘나는 모욕을 당하였다’는 의미와 ‘나는 감사하다’는 의미 두 가지를 지니고 있다. 일본어 사전의 풀이에 의하면, 이 말은 당신은 당신이 받은 각별한 은혜에 의하여 욕을 당하고 모욕을 받았다-당신은 그런 은혜를 받을 가치가 없기 때문에-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씌어 있다. 이 표현에 이해 당신은 은을 받음으로써 느끼는 당신의 부끄러움을 분명히 입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치욕, 하지-치(恥)-라는 것은 일본인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다. ‘가타지케나이’, 즉 ‘나는 모욕을 당하였다’는 지금도 전통적인 상인이 손님에게 예의를 나타낼 때 쓰고 있다. 또한 손님이 외상을 달 때 쓰이기도 한다. 메이지 이전의 소설에는 이 말이 자주 나타난다. 궁중에서 하녀로 봉사하던 중 영주에게 첩으로 발탁된 신분이 천한 아름다운 소녀는 영주에게 ‘가타지케나이’이라고 말한다. 즉 “저는 황공하게 이와 같은 온을 입게 되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저는 영주님의 자비가 두렵습니다.” 혹은 결투를 한 사무라이가 당국으로부터 무죄로 풀려나오게 되었을 때 ‘가타지케나이’이라고 말한다. 즉 “나는 이와 같은 온을 입게 되어 면목을 잃었소. 이런 천한 위치에 몸을 두는 것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오. 나는 유감으로 생각하오. 당신에게 정중히 감사하오”라는 의미이다.(130~134쪽)

 

루스 베네딕트 지음/김윤식‧,『국화와 칼』, 을유문화사,2002(4판 9쇄발행/초판은 1974년)

 

 

 

 

 

33. 국화와 칼 (제5장에서 ‘봇창’)

 

일반적으로 인정된 구조화된 관계에서, ‘온(恩)’이 내포하는 커다란 채무는 때로는 사람들을 자극시켜 한결같이 전력을 다하여 은혜를 갚게 만든다. 그러나 채무자가 되는 것은 대단히 괴로운 일이어서 쉽게 화를 내기도 한다. 은혜를 입은 사람이 얼마나 화를 내기 쉬운가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가의 한 사람인 나쓰메 소세키의 <봇창>이란 유명한 소설 속에 선명히 묘사되어 있다. 주인공 봇창은 시골의 한 작은 읍에서 처음으로 취직한 도쿄 출신 젊은이다. 봇창은 곧 동료 교사 대부분이 속물들이어서 이들과 같이 지내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한 젊은 교사가 있어 봇창은 이 교사와 친하게 된다. 언젠가 둘이서 거리를 거닐게 되었는데, 봇창이 고슴도치라는 별명을 붙인 이 친구가 봇창에게 빙수를 한 그릇을 사 주게 된다. 고슴도치는 빙수값으로 1전 5리-1센트의 5분의 1정도-를 지불한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다른 교사가 봇창에게, 고슴도치가 봇창에 대하여 좋지 않게 말하였다고 고자질한다. 봇창은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고 고슴도치로부터 받은 온이 마음속에 걸리게 된다.

 

그런 놈에게서, 빙수 같은 하찮은 것이라도 온을 입었다는 건 내 체면이 깎이는 일이다. 1전이든 5리이든 내가 이런 온을 입는다면, 마음 편히 죽을 순 없다.……(중략)……내가 거절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서 온을 받은 건, 그들 버젓한 인간으로 여기는 회의 있는 행위 탓이다. 내 빙수값을 내가 지불하겠다고 우기지 않고, 나는 온을 받고 감사해야 하였다. 그것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답례이다. 지위도 없고 관직도 없지만, 나도 한 사람의 독립된 인간이다. 독립된 인간이 온을 호의로 받아들이는 건 100만 원보다도 더한 보답이다. 나는 고슴도치에게 1전 5리를 쓰게 하고는, 100만 원보다 더 값진 나의 답례를 치렀다고 생각해야 한다.

 

다음날 그는 고슴도치의 책상 위에 1전 5리를 내던진다. 그것은 빙수 한 그릇의 온을 입은 것을 갚은 뒤라야만 두 사람 사이의 당면 문제, 즉 봇창에게 한 고슴도치의 모욕적인 언사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주먹다짐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온은 친구 사이에는 있는 게 아니니까 먼저 그 혼을 없애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소한 일에 관한 신경 과민이나 상처받기 쉬운 생각은 미국에서는 젊은 폭력배들의 기록이나, 신경쇠약증 환자의 병력 기록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이것이 미덕이다. 일본인일지라도 이와 같이 극단적인 것을 하는 자는 많지 않다고 일본인은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야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봇창에 대해서 쓰고 있는 일본의 비평가들은 그를 ‘신경질적이고 수정처럼 순수하고 옳은 일을 위해서는 끝까지 싸우는 인간’이라고 평하고 있다. 저자 또한 봇창과 동일시하고 있으며, 또 사실상 비평가들에 의하여 항상 주인공은 작자 자신의 초상화라고 인정되고 있다. 이 소설은 높은 덕에 관한 이야기로서 온을 입은 인간이 자신이 감사는 ‘100 만원’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생각에 알맞은 행위를 함으로써 비로소 채무자의 위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오직 ‘버젓한 인간’으로부터만 온을 받을 수 있다.

봇창은 화를 내면서 고슴도치의 온과 늙은 유모로부터 오랫동안 받았던 온을 비교한다. 이 노파는 그를 맹목적으로 사랑하였다. 그리고 그의 가족은 누구 하나 그의 진가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곧잘 과자나 색연필 등 자그만 선물을 살짝 그에게 갖다 주곤 하였다. 한번은 3원이나 되는 큰 돈을 준 일도 있었다. “나에 대한 그녀의 끊임없는 관심은 나로 하여금 뼛속까지 오싹하게 하였다.” 그는 3원을 받게 되어 ‘모욕’당하였지만 그것을 빌리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갚지 않고 있다. 그것은 그가 고슴도치로부터 받은 온에 대해 느끼는 감정고 비교하여 독백하고 있듯이 “나는 그녀를 나의 분신처럼 생각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말은 일본인의 온에 대한 반응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된다. 아무리 착잡한 감정을 가졌더라도 ‘온진’(恩人)이 실제로 자기 자신인 한, 즉 그 사람이 ‘나의’ 계층적 조직 속에 일정한 위치를 점하는 사람이든지, 혹은 바람 부는 날 모자를 집어 준 경우처럼 나 자신도 아마 그렇게 하였으리라 상상되는 일이든지, 혹은 나를 숭배하는 사람일 경우에 한해서는 일본인은 안심하고 ‘온’을 입는다. 그런데 일단 이런 조건에 해당되지 않으면 그 ‘온’은 참기 어려운 고통이 된다. 지워진 부채가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것을 불쾌하게 느끼는 것이 훌륭한 태도이다.(134~137쪽)

 

루스 베네딕트 지음/김윤식‧,『국화와 칼』, 을유문화사,2002(4판 9쇄발행/초판은 1974년)

 

 

34. 국화와 칼 (제6장 만분의 일의 은혜 갚음)

 

일본인의 의무 및 반대 의무 일람표

 

1. ‘‘온’’(恩) : 수동적으로 입는 의무. 사람이 ‘‘‘온’’’을 받느다, 또는 ‘‘온’’을 입는다. 즉 ‘‘온’’이란 수동적으로 그것을 받는 인간의 입장에서 본 경우의 의무이다.

 

∙고‘온’(皇恩) = 천황으로부터 받은 ‘온’

∙오야노‘온’(親の恩) = 양친으로부터 받은 ‘온’

∙누시노‘온’(主の恩) = 주군(主君)으로부터 받은 ‘온’

∙시노‘온’(師の恩) = 스승으로부터 받은 ‘온’

∙ 생애 중에 ‘온’갖 접촉에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온’

자기가 누구에게서 ‘온’을 받았을 때 자기에게 ‘온’을 주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은진(恩人)이 된다.

 

2. ‘온’의 반대 의무 : 사람은 은진(恩人)에게 ‘부채를 갚는다’, 또는 ‘의무(obligation)를 갚는다’, 즉 이 것은 적극적인 갚음이란 견지에서 본 경우의 의무이다.

A. 기무(義務) :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결코 그 전부를 갚을 수 없고 또 시간적으로도 한계가 없는 의무(obligation)이다.

∙주(忠) = 전황‧법률‧일본국에 대한 의무(duty).

∙고(孝) = 양친 또는 조상(자손까지를 포함)에 대한 의무.

∙닌무(任務) = 자기이 일에 대한 임무

 

B. 기리(義理) : 자신이 받은 은혜와 같은 수량만을 갚으면 되고, 또 시간적으로도 제한된 부채.

① 세상에 대한 기리

∙ 주군(主君)에 대한 의무(duty).

∙ 근친(近親)에 대한 의무.

∙ 타인에 대한 의무. 그 사람에게서 받은 ‘온’, 이를테면 돈을 받았거나 호의를 받았거나 또는 일 에 도움을 받았거나 협동 노동의 경우에 기인하는 것.

∙ 먼 친척(아주머니, 아저씨, 조카)들에 대한 의미. 이것은 특별히 이들로부터 ‘온’을 받았기 때문 이 아니라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온’을 받았다는 데에 기인하는 것.

 

② 이름(名)에 대한 기리 : 이 말은, ‘die Ehre'(명에)의 일본식 변형이다.

∙ 사람으로부터 모욕이나 핀잔을 받았을 때, 그 오명을 ‘씻는’ 의무(duty). 즉 보복, 또는 복수의 의무(이 복수는 불법적인 공격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 자신의 실패나 전문적인 일에 대한 무지를 인정하지 않는 의무

∙ 일본인의 예절을 다하는 의무. 이를테면 모든 예의 범절을 지킬 것. 신분에 맞지 않는 생활을 하지 않을 것, 함부로 감정을 나타내지 않을 것 등.(145~146쪽)

 

루스 베네딕트 지음/김윤식‧,『국화와 칼』, 을유문화사,2002(4판 9쇄발행/초판은 1974년)

 

 

 

35. 국화와 칼 (제6장)

(1)

일본인들은 이처럼 중국의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덕을 완전히 달리 해석하여 그 지위를 저하시키고 말았다. 그 대신 일본에서 효행이란 ‘기무’가 조건적인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령 부모의 악덕이나 부정을 보고도 못 본 체하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에도 이행해야만 하는 의무가 되었다. 그것은 천황에 대한 의무와 충돌할 경우에만 폐기할 수 있는 것으로, 부모가 존경할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든가 자신의 행복을 깨트린다는 이유만으로 절대로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일본 현대 영화 가운에 한 어머니가 어느 마을 학교 교사인 결혼한 아들의 돈을 훔치는 장면이 있다. 이 돈은 이 교사가 어린 여학생, 즉 흉년으로 굶어 죽게 된 그녀의 부모가 사창가에 팔려는 것을 구제하기 위하여 마을 사람들로부터 모금한 돈이었다. 교사의 어머니는 자신이 상당한 요리집을 경영하여 조금도 돈에 궁색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아들로부터 이 돈을 훔친다. 아들은 어머니가 돈을 훔친 것을 알지만 자신이 그 책임을 뒤집어쓴다. 그의 아내는 진상을 알고 돈을 잃어버린 데 대한 모든 책임을 지는 유서를 남기고 어린아이와 함께 자살한다.

여기에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데, 이 비극에서 어머니의 역할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효행을 다한 아들은, 장래에도 같은 시련을 견딜 수 있는 강한 인간이 되기 위하여 혼자서 홋카이도(北海島)를 향해 출발한다. 그 아들은 훌륭한 영웅이다. 이 비극 전체의 책임을 져야 할 인물은 도둑질한 어머니밖에 없다는 나의 분명한 미국인적인 판단에 대해서 일본인 동료는 맹렬히 반대하였다.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점은 “고(孝)는 때때로 다른 덕과 충돌한다. 만일 주인공이 매우 현명하였다면, 자존심을 잃지 않고서도 서로 모순되는 덕을 융화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일 그가 자신의 마음속에서나마 자기 어머니를 책망하는 결과가 된다면 자존심을 앞세우는 것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149~150쪽)

 

(2)

효행은 중국의 경우처럼 몇 세기 동안의 역대 조상이나 그 조상의 후손인 번성하는 현재의 넓은 종족을 포괄하지 않는다. 일본의 조상 숭배는 최근의 조상에 한정되어 있다. 묘석은 누구의 무덤인가를 명확히 하기 위해 매년 문자를 고쳐 쓰지만,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이미 사라진 조상의 묘석은 치워 버린다. 또한 그런 조상의 위패는 불단에 안치하지 않는다. 일본인은 생생하게 기억되는 사람 이외의 조상에 대한 효행을 중시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지금 여기에 있는 자에게 집중한다. 많은 저서가 일본인의 추상적 사색, 또는 현존하지 않는 사물의 심상을 뇌리에 그려 내는 것에 대한 흥미의 결여를 논하고 있는데, 일본인의 효행관을 중국의 효행관가 대조해 보면 역시 이 점을 입증하는 사례의 하나로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 효행관의 가장 큰 실제적 중요성은 ‘고’(孝)의 의무를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에 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중국이나 일본이나 모두 효행이라는 것은 단지 자기 부모나 조상에 대한 존경과 복종일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서구인이 어머니의 본능이나 아버지의 책임감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식을 위한 일체의 수고로움을, 그들은 조상에 대한 효심에 의존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일본은 이 점에 대하여 자신이 받은 사랑과 보호를 자식에게 베풂으로써 조상의 은혜를 갚는다고 단언하고 있다. ‘자식에 대한 어버이의 의무’를 표현하는 특별한 말은 없고 그런 의무는 모두 부모와 부모의 부모에 대한 ‘고’ 속에 포함 된다.(153쪽)

 

루스 베네딕트 지음/김윤식‧,『국화와 칼』, 을유문화사,2002(4판 9쇄발행/초판은 1974년)

 

 

36. 국화와 칼 (제6장 만분의 일의 은혜 갚음) -효와 천황관련

 

일본 효행의 특징인 가족 구성원 간에 나타나는 뚜렷한 원한은, 효행과 동등하게 ‘기무’라고 여겨지는 또 하나의 중대한 의무인 천황에 대한 충절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일본의 정치가들이 천황을 신성한 수장으로 받들고, 세속적 생활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하는 계획을 세운 것은 정말로 타당한 조치였다. 일본에서 천황은 전국민을 통일하여 반감 없이 국가에 봉사하도록 하는 수단으로서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단순히 천황을 국민의 아버지로 삼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였다. 왜냐하면 가정의 아버지는 자식들이 모든 의무를 다하여 은혜를 갚기는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존경받을 수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천황은 일체의 세속적 고려에서 떠난 신성한 수장이어야 했다. 일본인 치고의 덕인 천황에 대한 충절, 즉 ‘주’(忠)는 속세와의 접촉에 의하여 더럽혀지지 않는 하나의 환상적인 ‘선량한 아버지’를 무의식적으로 받들어야 한다.

메이지 초기의 정치가들은 서양 여러 나라를 시찰한 후, 이들 나라에서는 모든 역사가 지배자와 인민 사이의 투쟁에 의해 형성되어 있어, 이것은 일본의 정신에는 부합되지 않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귀국 후 헌법에다 천황은 ‘신성하며 침범될 수 없는’ 존재로서, 국무장관의 어떠한 행위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내용의 조항을 삽입하였다. 천황은 책임 있는 국가의 원수로서가 아니라 일본 국민 통합의 최고의 상징으로 필요한 존재였다. 사실 천황은 거의 700년간 실권을 지닌 통치자로서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까지처럼 천황을 무대 뒤에 머물러 있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단지 메이지의 정치가들이 해결해야 했던 것은, 모든 일본인이 마음속에서 무조건적이며 최고의 덕인 ‘주’(忠)을 천황에 대하여 바치도록 하는 것이었다.

봉건 시대의 일본에서의 ‘주’(忠)는 세속적 수장인 쇼군(將軍)에 대한 의무였다. 이러한 긴 역사가 메이지의 정치가들에게 그들이 목적으로 삼은 일본의 정신적 통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었다. 과거 몇 세기 동안이나 쇼군은 대원수와 최고 행정관을 겸하였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쇼군에게 ‘주’를 바쳐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종종 쇼군의 지배권에 반항하여 쇼군의 생명을 빼앗으려는 음모가 되풀이되었다. 쇼군에 대한 충절은 때로는 봉건 군주에 대한 ‘기무’와 모순되었다. 더구나 고차원의 충의는 낮은 차원의 충의만큼의 강제력을 지니지 못하였다. 어쨌든 주군에 대한 충절은 직접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주종의 인연을 기초로 한 것으로, 이것과 비교할 때 쇼군에게 하는 충절이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무리는 아니었다. 더구나 동란 시대에는 번신(藩臣)들이 쇼군을 쫓아내고 자기의 봉건 영주를 옹립하기 위해 싸웠다.

메이지유신의 선각자와 지도자들은 구중(九重) 구름 속에 깊숙이 은거하고 있는 천황, 따라서 그 풍모를 각자가 제각기 원하는 바에 따라 이상화하여 그릴 수 있는 천황에게 ‘주’를 바쳐야 한다는 구호를 내걸고 1세기에 걸쳐 도쿠가와 바쿠후와 싸웠다. 메이지유신은 이 존왕파의 승리였다. 그리하여 1866년은 ‘주’를 쇼군으로부터 상징적 천황에게 전환시킨 해이기 때문에 ‘복고’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충분히 이유가 있었다. 천황은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그림자로 물러났다. 천황은 각하들에게 권력을 부여하였다. 천황은 스스로 정부나 군대를 지휘하며 그때 그때의 정치 방침을 지령하지 않았다. 지난날처럼 조언자들-이전보다는 뛰어난 인물이 뽑혔지만- 이 변함없이 정무를 담당하였다. 정말 큰 이변이 일어난 것은 정신적 영역이었다. ‘주’는 최고의 사제이며 일본의 통일과 무궁함의 상징인 신성한 수장 돋 천황에 대하여 모든 사람이 지불해야 하는 의무가 되었다.(156~158쪽)

 

천황은 이처럼 여러 가지 방법에 의하여 국내의 정쟁이 전혀 미치지 않는 곳에 놓여진 상징이 되었다. 성조기에 대한 충성이 일체의 정당 정치를 초월한 영역에 있는 것과 같이, 천황은 ‘침범될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만일 그것이 인간이었다면 그러한 일이 전혀 온당치 못한 것으로 생각할 정도로 국기를 정중하게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일본인은 더없는 상징성을 지닌 인간을 철저하게 활용하였다. (중략) 그들은 ‘폐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온몸을 희생하였다. 일본 문화처럼 개인적 유대 위에 입각한 문화에서는 천황은 국기 따위는 감히 미치지 못하는 충성의 상징이었다.(160쪽) (중략) 일본 군대의 훈련에서는 곤란한 상황 하에서 중간 휴식 없이 4,50마일을 계속 강행군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이날에는 갈증과 피로로 낙오자가 20명이 나왔다. 그 중 5명이 사망하였다. 사망한 병사의 수통을 열어 조사하여 보니 전혀 손을 대지 않은 채로 있었다. “ 그 사관이 그런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명령은 천황의 명령이었다.”(161쪽)

 

루스 베네딕트 지음/김윤식‧,『국화와 칼』, 을유문화사,2002(4판 9쇄발행/초판은 1974년)

 

37. 국화와 칼(8장 오명을 씻는다)

 

(1) 이름에 대한 ‘기리’(義理)에 문제가 될 듯한 수치를 발생시키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온갖 종류의 예의범절이 규정되어 있다. 이처럼 사태를 최소한으로 그치게 하는 이들 규정은 단지 직접적 경쟁의 경우뿐 아니라 그보다 훨씬 넓은 범위에 미치고 있다. 일본인은 주인이 손임을 맞아들일 때에는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일정한 의식으로 반갑게 맞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농부의 집을 방문했을 때 농부가 작업복을 입은 채로 있으면 잠시 기다려야만 한다. 농부는 적당한 옷을 갈아입고 적당한 예의를 차리기까지는 손님을 아는 체하지 않는다. 그것은 주인이 손님을 기다리게 한 방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알맞은 몸차림을 하기 전에는 그는 그 장소에 있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또한 시골에서는 가족이 모두 잠들고 나면 처녀가 침상에 든 뒤인 깊은 밤에 동네 총각이 처녀를 방문하는 풍습이 있다. 처녀는 총각의 요구를 들어주기도 하고 거절하기도 하는데, 그때 총각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림으로써 설사 거절을 당해도 다음날 수치를 느끼지 않도록 한다. 이 변장은 처녀에게 누구인지 발각되지 않기 위한 일은 아니다. 그것은 타조가 모래에 머리를 처박는 속임수처럼 뒤에 치욕을 당한 사람이 자신이라고 인정하는 궁지에 빠지지 않으려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어떠한 계획이건 성공이 확실해지기까지는 될 수 있는 한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하는 예절을 요구한다. 결혼 중매인의 임무 가운데 하나는 혼약이 이루어지기 전에 장래 신랑‧신부 될 사람을 대면시키는 일인데, 이 대면이 우연한 것으로 여겨지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한다. 그 이유는 만약 공개적으로 소개하였다가 만약 파혼이라도 되면, 한쪽 집 또는 양쪽 집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젊은 남녀가 만날 때는 각각 부친이나 모친 또는 양친이 함께 만나게 되는데 중매인은 주인역을 맡아야 한다. 따라서 가장 편리한 방법은 연중 행사인 국화 전람회나 벚꽃놀이, 또는 이름난 공원이나 유원지에서 일행이 우연히 ‘만났다’는 듯이 꾸미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방법이나 그 밖의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여 일본인은 실패로 인해 치욕을 당하는 기회를 피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서 모욕을 받은 오명을 씻는 의무를 대단히 강조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이 사실이 그들로 하여금 될 수 있는 한 모욕을 느끼는 기회가 적도록 처리하게 한다. 이 점은 일본과 마찬가지고 오명을 씻는 데 중점을 두는 태평양의 여러 섬의 많은 부족과 비교할 때 뚜렷하게 다른 점이다.(192~194쪽)

 

(2) 일본은 역사상 여러 가지 경우에서도 같은 태도를 보여 왔다. 그것은 항상 서구인을 당혹시키는 일이었다. 오랜 기간에 걸친 일본의 봉건적 고집이 종말을 고하고 근대 일본의 막이 오르려는 1862년에, 리처드슨(Richardson)이라는 영국인이 사쓰마(薩摩)에서 살해되었다. 사쓰마 번(藩)은 양이(攘夷) 운동의 온상이며 사쓰마의 사무라이는 일본 안에서 제일 거만하고 호전적으로 알려져 있었다. 영국은 보복을 위하여 원정군을 파견하여 사쓰마의 중요한 항구인 가고시마(鹿兒島)를 포격하였다. 일본인은 도쿠가와와 시대를 통하여 계속 화기(火器)를 제작하고는 있었으나, 그것은 구식 포르투칼 대포를 모방한 것이었다. 따라서 사쓰마는 영국 군함의 상대가 못 되었다. 그런데 이 포격은 의외의 결과를 초래하였다. 사쓰마 번은 영국에 대한 영원한 복수를 맹세하는 대신에 오히려 영국과 우호를 청하였다. 그들은 적이 강대하다는 것을 알고 적의 가르침을 받으려 했던 것이다. 그들은 영국과 통상 관계를 맺고, 다음해에는 사쓰마에 학교를 설립하였다. 당시 한 일본인은 다름과 같이 쓰고 있다. “ 이 학교에서는 서양의 과학과 지식의 신비를 가르쳤다.……나마무기(生麥) 사건을 계기로 한 우호 관계는 더욱 더 깊어 갔다.” 나마무기 사건이란 영국의 사쓰마 보복과 가고시마 포격 사건을 말한다.

 

루스 베네딕트 지음/김윤식‧,『국화와 칼』, 을유문화사,2002(4판 9쇄발행/초판은 1974년)

 

38. 국화와 칼(제10장 덕의 딜레마)

여러 가지 문화의 인류학적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수치를 기조로 하는 문화와, 죄를 기조로 하는 문화를 구별하는 일이다. 도덕의 절대적 기준을 설명하고 양심의 계발을 의지로 삼는 사회는 '죄의 문화'라고 정의할 수가 있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사회의 인간도 이를테면 미국의 경우처럼, 그 자체는 결코 죄가 아니지만 어떤 바보 같은 것을 저질렀을 때 치욕감을 느끼고 상심하게 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이를테면 경우에 알맞은 복장을 갖추지 않았거나, 실언을 한 일로 해서 매우 번민하는 경우이다. 수치가 중요한 강제력이 되는 문화에서도 사람들은 당연히 누구라도 죄를 범하였다고 느끼는 행위를 했을 경우에는 번민한다. 이 번민은 때로 강렬하다. 더욱이 그것이 죄처럼 참회나 속죄에 의해 경감 받을 수가 없다. 죄를 범한 사람은 그 죄를 감추지 않고 고백함으로써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가 있다. 이 고백이라는 수단은 우리의 세속적 요법에서, 또 그 밖의 점에 관해서는 거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 않은 많은 종교 단체에 의하여 이용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이 기분을 가볍게 해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수치가 주요한 강제력이 디는 사회에서는 설사 참회승(懺悔僧)에게 과오를 고백하였다 해도 전혀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나쁜 행위가 '세상 사람들 앞에 드러나지' 않는 한 고민할 필요가 없으며, 고백은 도리어 스스로 고민을 자초하는 일로 생각되고 있다. 따라서 '수치의 문화'에서는 인간에 대해서는 몰론, 신에 대해서조차도 고백한다는 습관은 없다. 행운을 기원하는 의식은 있으나 속죄 의식은 없다.(272~273)

미국에 이주한 초기의 청교도들은 일체의 도덕을 죄책감의 기초 위에 두려고 하였다. 그리고 현대 미국인의 양심이 얼마나 죄의식에 고민하고 있는가를 모든 정신병 의사가 알고 있는 바이다. 그렇지만 미국에서도 수치가 점차 무게를 더해 가고 있으며 죄는 전만큼 심하게 느껴지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 사실을 도덕적 이완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해석에는 다분히 진리가 들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수치에는 도덕의 기초와 같은 중임을 수행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치에 수반되는 심한 개인적 통한의 정을 도덕의 기본 체제를 이루는 원동력으로 보지 않는다.(274쪽)

일본인의 생활에서 수치가 최고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수치를 심각하게 느끼는 부족 또는 국민이 모두 그러하듯이, 각자가 자기 행동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에 마음을 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다만 타인이 어떤 판단을 내릴까 하는 것을 추측하고, 그 판단을 기준으로 하여 자기의 행동 방침을 정한다. 모두가 같은 규칙에 따라 게임을 하여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고 있을 때에는 일본인은 쾌활하고 편하게 행동할 수가 있다. 그들은 그것이 일본의 ‘사명’을 수행하는 길이라고 느끼는 경우에는 게임에 열중할 수가 있다. 그들이 가장 심한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것은 그들의 덕을 일본 특유의 선행 도표가 그대로 통용되지 않는 외국에 적용하려고 시도한 때였다. 그들의 ‘선의’에 의거한 ‘대동아’의 사명에 실패했는데, 중국인이나 필리핀인이 그들에게 취한 태도에 대하여 많은 일본인이 느낀 분노는 거짓 없는 감정이었다.

국가주의적 동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유학이나 업무상의 목적으로 미국으로 건너간 개개의 일본인 또한 도덕이 그다지 딱딱하게 정해져 있지 않은 세계에서 생활할 때, 그들이 지금까지 받아 온 주도면밀한 교육의 ‘파탄’을 통감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의 덕이 대외적으로는 부적절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의 논점은 문화를 바꾸는 것은 곤란하다는 일반적인 사항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다. 그들은 때때로 일본인이 미국의 생활에 맞추는 것이 매우 곤란한 데 비해, 중국인이나 태국인은 그렇게 곤란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들이 보는 일본인 특유의 문제는, 그들의 일정한 법도를 지키며 행동하기만 하면 반드시 남이 가기 행동의 미묘한 뉘앙스를 인정해 줄 것이 틀림없다는 안도감에 의지하여 생활하도록 길들여져 왔다는 것이다. 외국인이 이런 예절을 일체 무시하는 것을 보고 일본인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들은 어떻게든 서구인이 일본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생활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면밀한 예절을 발견해 내려 한다. 그리고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어떤 일본인은 화가 났다고 말하고, 어떤 일본인은 깜짝 놀랐다고 말하고 있다.(275~276쪽)

짧은 기간일지라도 미국에서 산 경험이 있어 그다지 딱딱하지 않고 번잡스럽지 않은 미국의 행동 규칙을 받아들인 일본인에게는, 전에 그들이 일본에서 보낸 그 답답한 생활을 다시 되풀이한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옛날의 생활을 어느 때는 잃어버린 낙원, 어느 때는 ‘질곡’, 어느 때는 ‘감옥’, 또 어느 때는 분재를 심는 ‘조그만 화분’에 빗대어 말한다. 분재로 꾸며진 소나무 뿌리가 화분 속에 갇혀 있는 동안은 아름다운 정원에 미관을 더해 주는 예술품이 된다. 그런데 한 번 직접 대지에 옮겨 심어진 분재 소나무는 절대로 다시 원상으로 되돌려질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은 이미 도저히 저 일본 정원의 장식이 될 수 없다고 느낀다. 그들은 두 번 다시 옛날의 요구에 응할 수 없다. 이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첨예한 형태로 일본인의 덕의 달레마를 경험한 사람들이다.(278쪽)

 

루스 베네딕트 지음/김윤식‧,『국화와 칼』, 을유문화사,2002(4판 9쇄발행/초판은 1974년)

 

39. 국화와 칼(제11장 자기 수양)

 

어린아이는 일정한 시간에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점차 그는 부모의 눈치를 보면서 잠자는 것이 일종의 억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가정에서 어린아이들은 밤마다 실컷 떼를 쓰면서 분만의 뜻을 나타낸다. 그는 이미 잠을 아무래도 ‘헤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훈련을 받으며, 도저히 항거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항해 보는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또 그가 먹어야만 ‘하는’ 것을 정한다. 그것은 오트밀일 수도 있고, 시금치일 수도 있고, 빵일 수도 있고, 오렌지 주스일 수도 있지만, 미국의 어린아이는 그가 먹어야만 ‘하는’ 음식에 저항하는 법을 배운다. 그는 ‘몸에 좋은’ 음식은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고 작심하고 대한다. 이런 것은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며, 또 예를 든다면 그리스와 같은 몇몇 유럽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습관이다. 미국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음식의 억제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어른이 되면 몸에 좋은 음식이 아니라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가 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잠이나 음식에 대한 관념은 서구인의 자기 희생 개념 전체에 비하면 하찮아 거론할 만한 것이 못 된다. 부모는 어린이를 위해 커다란 희생을 치르고, 아내는 남편을 위해 그 생애를 희생하고, 남편은 한 집안의 생계를 위해 책임지기 위해 자기의 자유를 희생한다는 것이 표준적인 서구인의 신조이다. 미국인에게는 자기 희생의 필요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가 존재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사회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사회의 사람들은, 부모는 인정으로서 당연히 아이를 사랑하고, 여자는 다른 어떤 생활보다도 결혼 생활에 들어갈 것을 바라며, 일가의 생계를 책임지는 남자는 사냥꾼이든 정원사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자기 희생이니 뭐니 하는 말을 입에 담을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사회가 이런 해석을 강조하고 사람들이 그와 같은 해석에 따라 생활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는 경우 자기 희생의 관념은 거의 인정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사람이 그런 ‘희생’을 치르고 남을 위해 하는 일들 모두가 다른 문화에서는 상호 교환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그것은 나중에 변제 받는 투자이거나 혹은 이전에 남으로부터 받은 가치에 대한 답례이다. 그와 같은 나라에서는 부자의 관계조차 이와 같이 다루어진다.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아들이 어렸을 때 해 주는 것을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아버지의 만년에, 혹은 아버지의 사후에 한다. 모든 실무상의 관계가 또한 일종의 민간 계약으로 그것은 흔히 같은 것을 같은 양만큼 변제할 것을 보증하는 동시에, 통상 당사자의 한쪽에는 비호의 의무를, 다른 쪽에는 봉사의 의무를 지게 한다. 이리하여 쌍방이 다 이익을 얻는 것을 서로 좋다고 생각하는 일은 있어도 당사자의 어느 쪽도 자기가 수행하는 의무를 희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인의 타인에 대한 봉사의 배후에 있는 강제력은 물론 이러한 상호 의무로서, 그것은 남에게서 받은 것에 대하여 같은 양을 변제할 것을 요구하는 동시에, 계층적 관계에 선 사람끼리 서로 그 책임을 수행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자기 희생의 도덕적 지위는 미국의 경우와 매우 다르다. 일본인은 이제까지 항상 특히 기독교 선교사의 자기 희생의 가르침에 대하여 반대 입장을 보여 왔다. 그들은 유덕한 사람은 남을 위해 하는 것을 자기 소마의 억압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어떤 일본인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당신들이 말하는 이른바 자기 희생을 행하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하기를 원하기 때문이거나, 혹은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행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결코 유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실제로 남을 위해 아무리 많은 것을 희생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정신적으로 고매해진다거나, 또 ‘보답’을 받아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인처럼 정교하고 치밀한 상호 의무를 생활의 중추로 삼고 있는 국민이, 자기들의 행동을 자기 희생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극단적인 의무를 수행하는데 전통적인 상호 의무의 강제력 때문에, 개인주의적인 경쟁이라는 것을 기조로 하는 나라들에서 자칫 일어나기 쉬운 자기 연민과 독선의 감정을 품지 않아도 된다.(283~285)

 

루스 베네딕트 지음/김윤식‧,『국화와 칼』, 을유문화사,2002(4판 9쇄발행/초판은 1974년)

 

 

 

 

40. 국화와 칼(제12장 어린아이는 배운다)

 

그러나 일본인의 양육 방법은 이것과는 전혀 다르다. 일본의 생활 곡선은 미국의 생활 곡선과 정반대로 되어 있다. 그것은 저변이 얕은 큰 U자형 곡선으로 갓난아이와 노인에게 최대의 자유와 제멋대로 구는 것이 허락된다. 유아기를 지나면서부터 서서히 구속이 커지고 바로 결혼 전후의 시기에 이르면 자신의 자의대로 누릴 수 있는 자유는 최저선에 달한다. 이 최저선은 장년기를 통하여 몇 십년 계속되는데, 그 후 곡선은 다시 점차로 상승하여 60세가 지나면 유아와 거의 마찬가지로 수치나 외부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게 된다. 미국에서는 이 곡선이 정반대이다. 갓난아이 때에는 엄한 교육을 하지만 아이의 체력이 성장함에 따라 차츰 완화되어, 드디어 직업을 가지고 가족을 거느리고 자력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나이가 되면 거의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않게 된다. 우리의 경우에는 장년기가 자유와 자발성의 장점이 된다. 나이가 들고 늙어서 기력이 쇠하거나 남의 신세를 지게 되면 다시 구속의 그림자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미국인에게는 일본인과 같은 형으로 조직된 생활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그와 같은 일생은 우리에게는 전혀 사실과 상반되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미국인들이나 일본인들은 그들의 생활 곡선을 이상과 같이 규정함으로써 사실상 각각의 나라에서 개인의 장년기에 마음껏 활약하여 그들 문화에 참가하는 길을 확보하여 왔다. 미국에서는 이 목적을 확보하기 위해서 장년기에 선택의 자유를 증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본인은 개인에게 가해진 속박을 최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시기에 인간은 체력이나 돈 버는 능력이 정점에 달하게 되지만 일본인은 자신의 생활을 자신의 취향대로 누릴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다. 그들은 속박이 가장 좋은 정신적 훈련(‘수요’ 修養)이요, 자유에 의해서는 달성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고 굳게 믿는 것이다. 이처럼 일본인은 가장 활동적이고 생산적인 시기에 도달한 남녀에게 최대한 속박을 가하는데, 이것은 결코 속박이 일생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가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유년기와 노년기는 ‘자유로운 영역’이다. (310~311쪽)

 

루스 베네딕트 지음/김윤식‧,『국화와 칼』, 을유문화사,2002(4판 9쇄발행/초판은 1974년)

 

 

 

 

 

 

 

 

 

 

 

 

 

 

 

 

41. 국화와 칼(제2장 전쟁 중인 일본인)

 

일본이 이번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사용한 전제 자체가 미국과는 정반대였다. 일본은 국제 정세를 다른 방법으로 규정했다. 미국은 추축국(樞軸國)의 침략 행위가 전쟁의 원인이라고 했다. 일본‧이탈리라‧독일 3국이 부당한 정복 행위로 국제 평화를 침해했다. 추축국이 권력을 쥔 곳이 만주국이든 에티오피아든 폴란드든 그것은 그들이 약소 민족을 억압하는 사악한 길로 나아갔음을 증명한다. 그들은 ‘공존 공영’, 또는 적어도 자유 기업을 위한 ‘문호 개방’이라는 국제간의 규약에 대해 죄를 범한 것이다.

반면 일본은 전쟁의 원인을 이와는 다른 시각에서 보았다. 각국이 절대적 주권을 가지고 있는 동안 세계는 무정부 상태가 계속된다. 일본은 계층 제도(hierarchy)를 수립하기 위해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절서의 지도자는 물론 일본인이다. 왜냐하면 일본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계층적으로 조직된 유일한 나라이며, 따라서 ‘저마다의 알맞은 위치’를 가져야 할 필요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국내의 통일과 평화를 달성하였고, 폭도를 진압하였으며, 도로‧전력‧철강‧산업 등을 건설하였고, 또 공표된 숫자에 의하면 공립 학교에서는 청소년의 99.5퍼센트가 교육을 받았다. 그러므로 계층 제도에 대한 일본인의 전제에 따라 뒤처진 동생인 중국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대동아(大東亞) 여러 나라와 동일한 인종이므로 이 지역에서 먼저 미국을, 다음엔 영국과 소련을 쫓아내서 ‘자기네의 알맞은 위치’를 차지하도록 해야 한다. 세계 모든 나라는 국제적 계층 조직 속에 제각기 일정한 위치가 주어져 하나의 세계로 통일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음 장에서 이와 같은 계층 제도를 높은 가치를 둔 것이 일본 문화에 어떤 의미를 가져왔는지를 검토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일본이 만들어 내기에 알맞은 하나의 환상이었다. 일본에게 불행한 일은 일본 점령하에 있었던 나라들이 대동아의 이상을 일본과 같은 눈으로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전 후까지도 일본은 대동아의 이상이 도덕적으로 거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또 일본인 포로 중에 주전론적 색채가 가장 희박한 자들까지도, 대륙과 서남 태평양에서의 일본의 목적을 전혀 규탄하지 않았다. 아마도 앞으로 오랫동안 일본은 이 본래 태도를 계속 간직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계층 제도에 대한 신앙과 신뢰이다. 그것은 평등을 사랑하는 미국인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32~33쪽)

 

루스 베네딕트 지음/김윤식‧,『국화와 칼』, 을유문화사,2002(4판 9쇄발행/초판은 1974년)

 

 

 

 

 

 

 

 

 

 

42. 『어린 왕자』에서

 

여우가 말했다.

“이제 내 비밀을 선물할게. 내 비밀은 이런 거야. 그것은 아주 단순하지. 오로지 마음으로만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란다.”

“가장 중요한 건 눈에는 보이진 않는다.”

잘 기억하기 위해서 어린 왕자가 여우의 말을 따라서 되뇌었다.

“너의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드는 건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내가 내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드는 건 내가 내 장미꽃을 위해 소비한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는 또 여우의 말을 따라 되뇌었다.

“사람들은 그 진리를 잊어 버렸어.”

여우가 말했다.

“하지만 넌 그것을 잊으면 안 돼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언제까지나 책임을 져야 해. 너는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나는 내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 왕자는 계속 여우의 말을 되뇌었다.(116쪽)

 

“별들은 참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한 송이 꽃이 저 별에 있기 때문이야.”

“그럴 테지.”

나는 그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 말없이 달빛 아래서 주름처럼 펼쳐져 있는 모래 둔덕을 바라보았다.

“사막은 아름다워.”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언제나 사막을 사랑해 왔다. 사막의 모래 둔덕 위에 앉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인가 침묵 속에서 빛나는 것이 있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인 거야.”

어린 왕자가 말했다.

사막의 그 신비로운 진리가 무엇인지를 그제서야 깨닫고 나는 흠칫 놀랐다. 어린 시절 나는 해묵은 낡은 집에서 살았다. 그런데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 집에는 보물이 감춰져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것을 찾으려고 노력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 보물로 인해 그 집 전체는 매력에 넘쳤다. 우리 집의 가장 깊숙한 곳에 보물이 감추어져 있다는 이유로.

“그래, 집이든 별이든 혹은 사막이든 그것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항상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야!”

나는 무엇인가를 깨닫고 어린 왕자에게 힘을 주어 말했다.

 

생텍쥐페리 지음 / 이미연 옮김,『어린 왕자』, 영재,1999.

 

 

 

 

 

 

43.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그런데 몇 년 뜻밖의 보고서가 발표되었습니다. 독일의 슈피겔지가 조사한 결과, 방글라데시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로 나타났습니다. 미국 등 선진국은 하위권에 머물렀고, 우리 나라는 23위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왜 가장 행복할까요? 보고서는 이렇게 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진 행복의 비결은 가난 속에서 높은 꿈을 갖지 않고 현실에 만족하며 작은 것에 기뻐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가족과 친구, 이웃 간에 오가는 애정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그것이 삶의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보고서가 발표되자 많은 사람들이 신기해하며 자신들이 쓰는 글과 가시에 그것을 인용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통계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전체의 행복 지수가 아무리 세계1위라 해도, 이 나라에는 여전히 전 세계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이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쓰러져 있습니다. 행복 지수에 대한 보고서 하나로 이들의 고통을 미화시켜선 안 됩니다.

‘박시시(한 푼 주세요)“를 외치며 앞다투어 손을 내미는 거리의 헐벗은 아이들과, 잘못된 관습과 신분차별 제도에 가장 큰 희생자가 되어 살아가는 여인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끝없는 굶주림과 소외에서 그들을 구제해야 합니다. 하지만 독일 수피겔지의 행복 지수에 대한 그 보고서는 더 나쁜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외국인들이 방글라데시의 정부 관리들에게 빈곤 문제와 부패에 대해 지적하면 행복 지수가 이렇게 높은데 무슨 상관이냐며 귀찮게 하지 말라고 한답니다.(212쪽)

 

난민이 된다는 것은 배가 고프며, 옷과 덮을 것이 없고, 누워서 잘 자리가 없고, 병들었으나 치료받을 수 없고, 배울 수 없고, 어떤 직업도 가질 수 없음을 뜻합니다. 또한 적들의 공격 앞에 속수무책이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 사회로부터 소외당함을 뜻합니다. 인류 역사상 유례 없이 세계가 부유해지고, 먼 거리가 하나로 연결되고, 기술이 최고로 발달해 인간의 삶의 조건이 최고로 좋아진 세상이지만 수천만 난민들의 처절한 고통은 이 시간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나눔’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나누는 것입니다.(251쪽)

 

다음 날, 다행히 식량 배급차가 도착해 에꾸아무는 가까스로 죽음을 면했습니다. 언제까지 이 아이들이 이렇게 살아야 할까요?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단돈 1백 원이면 한 끼를 배불리 먹일 수 있는데.

바로 이 순간에도 지구상에서는 4초마다 한 명의 아이가 전쟁과 기아로 죽어가고 있고, 매일 3만 5천 명의 아이들이 먹을 것이 없어 죽거나 전쟁터의 총알받이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2억 5천 명의 아이들이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 아이들을 고통받게 해야 될까요?(19쪽)

 

잭 켈리라는 한 신문기자가 소말리아의 비극을 취재하다가 겪은 체험담이 있습니다.

기자 일행이 수도 모가디슈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는 기근이 극심한 때였습니다. 기자가 한 마을에 들어갔을 때, 마을 사람들은 모두 죽어 있었습니다. 그 기자는 한 작은 소년을 발견했습니다. 소년은 온몸이 벌레에 물려 있었고, 영양실조에 걸려 배가 불룩했습니다. 머리카락은 빨갛게 변해 있었으며, 피부는 한 백 살이나 딘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마침 일행 중의 한 사진기자가 과일을 하나 갖고 있어서 소년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너무 허약해서 그것을 들고 있을 힘이 없었습니다. 기자는 그것을 반으로 잘라서 소년에게 주었습니다.

소년을 그것을 받아들고는 고맙다는 눈짓을 하더니 마을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기자 일행이 소년의 뒤를 따라갔지만, 소년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소년이 마을에 들어섰을 때, 이미 죽은 것처럼 보이는 한 작은 아이가 땅바닥에 누워 있었습니다. 아이의 눈은 완전히 감겨 있었습니다. 이 작은 아이는 소년의 동생이었습니다. 형은 자신의 동생 곁에 무릎을 꿇더니 손에 쥐고 있던 과일을 한 입 베어서는 그것을 씹었습니다. 그리고는 동생의 입을 벌리고는 그것을 입 안에 넣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동생의 턱을 잡고 입을 벌렸다 오므렸다 하면서 동생이 씹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기자 일행은 그 소년이 자기 동생을 위해 보름 동안이나 그렇게 해온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며칠 뒤 결국 소년은 영양실조로 죽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의 동생은 끝내 살아남았습니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은 다음과 같은 자막으로 시작됩니다. 플라톤이 한 말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전쟁은 죽은 자에게만 끝난다.”(132~133쪽)

 

어떤 책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인간의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라고 합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이동하는 데 평생이 걸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머리와 가슴 사이에 너무 큰 바리케이트가 설치돼 있어 죽을 때까지 가슴으로 못 가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생각의 차이, 종교의 차이, 능력의 차이, 피부색의 차이는 필요합니다. 지구는 다양성이 꽃 피어나는 곳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나눠 가져야 합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 사회에서는 먹을 것을 훔쳐가는 것은 죄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누군가 먹을 것이 없게 만든 그 사회가 잘못이라 여겼다고 합니다. 최소한 굶어 죽지만은 않게 해야 합니다. 최소한 항생제 하나가 없어 눈이 멀게 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똑같은 인간이니까요. (198쪽)

 

앙상한 뼈만 남은 채 흙바닥에 누워서 얼굴에 파리떼가 붙어도 쫓을 기력이 없는 아이들, 이것이 오늘날 에티오피아의 모습입니다. ‘새로운 꽃’이라는 뜻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는 비행기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이름 그대로 마치 활짝 핀 코스모스 같습니다. 하지만 지상의 아디스아바바로 내려오면 꽃은 간 곳 없고 지구상 최악의 빈곤이 무엇인가를 실감하게 합니다.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피어있는 것이 아니라 걸인들이 줄지어 서 있고, 병원마다 벼룩과 빈대가 들끓는가 하면, 의약품과 의료 도구는 언제나 부족한 상태입니다. 마취제가 부족해 웬만한 수술은 마취 없이 하기 때문에 환자가 고통을 참지 못하면 그냥 돌려보내기 일쑤입니다. 상처를 치료할 소독약도 넉넉지 않아 숱한 환자들이 수술 뒤 감염 합병증으로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103쪽)

 

김혜자,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오래된 미래, 2004.

 

 

 

 

 

 

 

44. 야생초 편지

 

내가 야생초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내 속의 만(慢)을 다스리고자 하는 뜻도 숨어 있다. 인간의 손때가 묻은 관상용 화초에서 느껴지는 화려함이나 교만이 야생초에는 없기 때문이지. 아무리 화사한 꽃을 피우는 야생초라 할지라도 가만히 십 분만 들여다보면 그렇게 소박해 보일 수가 없다. 자연 속에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있을지언정 남을 우습게 보는 교만은 없거든. 우리 인간만이 생존경쟁을 넘어서서 남을 무시하고 제 잘난 맛에 빠져 자연의 향기를 잃고 있다. 남과 나를 비교하여 나만이 옳고 잘났다며 뻐기는 인간들은 크건 작건 못생겼건 잘생겼건 타고난 제 모습의 꽃만 피워내는 야생초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많다. 야생초를 사랑하면서 교만한 자가 있다면 그는 다른 목적으로 야생초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102쪽)

 

내가 징역 들어와 야생초에 심취하고 나서 변한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본격적으로 야생초를 섭렵하기 시작한 것은 지병이었던 만성기관지염을 고쳐보려고 한 데서였다. 양약을 먹다 지쳐서 풀을 뜯어먹기 시작한 거다. 그러나 보니 자연히 민간 요법이나 자연건강요법 등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것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주는 동양 의학이나 철학을 연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 안에 들어와 담배, 술, 커피, 콜라, 사이다 등과 완전히 결별하게 되었다. 결별 정도가 아니라 지금은 그것을 먹으려면 속이 영 거북하단다. 대신에 나는 늘 쑥이나 꿀풀 우린 물을 마신다.(155~156쪽)

 

이 나라의 가장 민중적인 야생초 네 가지를 꼽으라 하면, 나는 서슴없이 쇠비름, 참비름, 질경이, 명아주를 들겠다. 이 땅에 가장 흔할 뿐 아니라 모두가 식용으로, 또 민간 약재로 광범위하게 쓰이기 때문이다.(167쪽)

 

기존의 야채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야생초의 폴 냄새가 역겹게 느껴질 수도 있다. 싱싱하게 무쳐 낸 야생초의 냄새를 맡아보고는 어쩌면 야만의 시대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럴 거다. 우리의 먼 조상들은 그런 풀들을 뜯어먹고 살았다. 문명이란 그 풀 냄새를 점차로 지워 없앤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야채가 그것이지. 야생이 풀 냄새를 제거하고 인간의 미각-작위(作爲)로서의 문명의 변천에 따라 함께 변해 온-에 맞추어 특정한 맛만을 선택하여 육종, 발전시킨 것이 오늘의 야채이다. 우리 인간은 자신의 얄팍한 입맛을 위하여 원래의 야채가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영양소와 맛을 제거해 버리고 특정의 맛과 영양소만을 취하게 된 것이다. 그래 놓고 요리할 땐 그 위에 갖은 양념을 다 뿌리고 또 영양을 보충한다고 각종 비타민제를 따로 먹고 있다. 우습지 않니? 이것이 문명이다. 요소를 분리해서 자기가 필요한 것만 골라 먹겠다는 것인데, 어떻게 보면 대단히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격이다. 이 세상은 단순히 요소의 합이 아니거든, 각 요소들은 전체 속에 있을 때에라야 비로소 제 가치를 온전히 지닐 수 있는 것이다. 전체와 분리된 요소는 제한적인 가치를 지닐 수밖에 없다. 채소는 채소를 둘러싼 생태계와 온전히 결합되어 있어야 하고, 그 채소를 먹을 때에도 요소로 나누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식주의자들은 되도록 전체식을 권장하는 것이다. 머리부터 뿌리까지 전체를 통째로 먹어야 한다는 것이지.(176~177쪽)

야채와 달리 야생초는 자연 상태에서 섭취한 영양소와 천지 기운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때문에 야생초를 먹게 되면 따로 영양제나 비타민제 따위를 먹을 필요가 없다. 어디 영양소뿐인가? 야생초에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온갖 약효가 들어 있어서 먹으면 자기도 모르게 건강해진다. 야생초를 먹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을 정화할 필요가 있다. 코카콜라 따위에 찌들은 입맛으로는 결코 야생초와 친해질 수가 없다. 요즘 나라 여기저기서 자연환경을 되살리자는 소리가 드높은데, 어째 우리 본래의 입맛을 되살리자는 소리는 안 들리는지?(177쪽)

남을 결코 비판하지 않고 자기 잣대로 남을 몰아세우지도 않는 이 사람들, 남의 행위를 있는 그대로 흡수해 버리는 이들, 이런 사람들 사이에 심각한 트러블이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을 거야.

그에 반해서 우리가 사는 모습은 어떤가? 상대의 하는 양이 자기 기준에 맞지 않으면 갖은 비판과 욕설을 서슴없이 해 대고, 심지어 그를 매도하기 위해 중상모략도 서슴지 않고 있다. 사람마다 각기 나름의 대응 양식과 습관이 있을 터인데 우리는 왜 그것을 인정해 주지 못하는 것일까? 남성과 여성, 어른과 아이, 선배와 후배……, 이 둘 사이의 바이오리듬이 다 다른 데도 우리는 자기만의 기준으로 상대를 재단하고 있다.(234쪽)

 

황대권,『야생초 편지』, 도솔, 2002.

 

 

 

 

 

 

 

 

 

 

 

 

 

 

 

 

 

 

 

 

 

 

45. 채근담

 

1. 도덕을 지키며 사는 사람은 일시적으로 적막할 뿐이지만, 권세에 의지하고 아부하는 자는 만고에 처량하다.

달인(達人)은 사물 밖의 사물을 관찰하고 몸 뒤의 몸을 생각하느니, 차라리 일시적인 적막을 겪을지언정 만고에 처량함을 취하지 말라.(27쪽)

 

10. 은혜로움 속에서 재앙은 싹터 나온다. 그러므로 마음에 만족할 때 모름지기 일찍이 머리를 돌려야 한다. 실패한 뒤에 혹 도리어 일이 이루어지는 수도 있다. 그러므로 마음에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여 문득 손을 놓아 버려서도 안 되리라.(36쪽)

 

<해의(解義)>

천자문(千字文)에 ‘총증항극(寵增抗極신)이란 말이 있다. 은혜는 깊어질수록 그 끝을 다투게 된다는 말이다. 신임이 깊어지고 은혜가 두터워질수록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도 또한 세상 인심이다. 더구나 사람의 호오(好惡)도 그 변화가 무쌍한지라 은혜가 은제 미움으로 바뀔지 모르며 미움이 언제 은혜로 바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므로 은혜가 깊어졌다고 그를 믿고 오만방자하거나 방심하였다가는 언제 어느 때에 어떤 재앙을 당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신임이 두터울수록 더욱 자신을 수양하고 주위를 살펴보아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즉시 그만두어야 몸에 재앙이 없다. 또한 세상의 일이란 늘 일정한 것이 없다. 기쁨이 있으면 슬픔이 따라나오고 슬픔이 가면 즐거움이 따라 나온다하여 인생만사는 새옹지마라고 하는 것이다. 한 번 일에 실패하였다고 자포자기하거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실망하여 중지하게 되면 그 일은 영원히 실패로 끝나 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성공하였다고 하여 자만하거나 실패하였다고 하여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36~37쪽)

 

21. 집 안에도 한 분의 참 부처가 있고 일상생활 속에도 하나의 진정한 도(道)가 있다. 사람이 능히 마음을 성실하게 하고 기운을 부드럽게 하며 얼굴빛을 유쾌하게 하고 말을 완곡하게 하여 부모형제간으로 하여금 한 덩어리가 되게 하고 뜻이 통하게 한다면, 이야말로 숨결을 고르게 하고 마음을 관찰하는 것보다 만 배나 더 나으니라.(45~46쪽)

 

39. 제자를 가르치는 것은 마치 규중의 처녀를 기르는 것과 같으니 무엇보다도 출입을 엄히 하고 교제를 삼가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만약 한 번 나쁜 사람과 접근하게 되면, 이것은 깨끗한 밭에 더러운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아서 평생토록 좋은 곡식을 심기가 어려울 것이다.

 

황병국 역해,『채근담(菜根譚)』, 혜원출판사, 1993.

 

 

 

46. 누구나 홀로 선 나무(조정래 산문집)

 

(1) 흔히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하지만 그건 환상의 기대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21세기는 그 어느 세기보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받는 세기가 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세 가지 위험이 인간들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강대국들이 무한정한 무기 경쟁을 일삼고 있고, 둘째, 지구 온난화와 함께 환경 오염은 날로 심각해져가고 있고, 셋째, 과잉생산을 부추키는 성장 제일주의의 자본주의는 방자한 독주를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런 문제들은 인간의 진정한 노력으로 얼마든지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당장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는 국가 이기주의의 벽 앞에서 그 길은 혼미하기만 하다. 인간이란, 배가 침몰하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제 먹을 것을 서로 많이 가지려고 다투는 쥐새끼들과 다를 것이 없는 존재일까. 손자의 해맑은 눈동자를 들여다보면서 내가 가고 없을 세상에 대한 시름이 깊어진다.(45쪽)

 

(2) 삶

 

누구나 / 홀로 /선 / 나무.

그러나 서로가 뻗친 가지가 어깨동무하여 숲을 이루어가는 것.

 

(3) 인도는 이 세상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생존을 일직선의 지평 위에 올려놓고 똑같은 가치로 존중하고 있었다.

한 마리의 소, 한 마리의 개, 한 마리의 염소, 한 마리의 원숭이, 하나의 인간, 그 생명 하나하나가 존귀하게 받들어지며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 조화의 질서를 지키고 운영해가는 것은 모든 인도 사람들이었다.

20세기 문명을 한마디로 하자면 인간 확대의 문명일 것이다. 이 세상 만상 중에서 인간이 으뜸이라는 그 거친 물결은 아무런 반성도 회의도 없이 전 세계를 휩쓸었다. 백년 세월을 그렇게 치달아온 결과는 무엇인가. 인간 확대의 무작정한 맹신으로 멸종시켜버린 수많은 종류의 동물군은 일단 접어두자. 이제 인간은 인간이란 종족마저 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말살시켜버릴 수 있는 끔찍한 무기들을 장만해놓고 있다. 이것이 늙은 20세기가 스스로 빠진 함정이다.

 

(4) 흩날리는 낙엽을 밟으며 황혼의 인생을 고즈넉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 그것이 낙엽비보다 더 아름다운 노년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52쪽)

 

(5) 돌이켜보건대, 1980년대는 우리에게 무엇이었으며 우리는 무엇을 추구했던 것일까. 그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군부독재 타도와 민주주의의 건설, 둘째 인간다운 삶의 조건 확보, 셋째 민족통일의 성취였다. 이 세 가지는 상호보완적이고 상호상승적인 역학관계 속에서 운동권을 추동하며 1980년대를 관통해 왔다.(105쪽)

 

조정래,『누구나 홀로 선 나무』, 문학동네, 2003.

47. 노자와 21세기(上)

 

인간이 살아가는데 사랑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여기서 사랑이란 매우 구체적으로 이성간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사랑은 애타는 그리움이다. 사랑은 열정이다. 사랑은 불꽃이다. 아니 그것은 훨훨 타오르는 열화다. 사랑은 내 몸의 케미스트리인 것이다. 내 몸이 불타오르는 화학반응인 것이다. 모든 정신적 사랑도 결국은 신체적 사랑으로 꼴인 한다. 아니 모든 정신적 사랑도 신체적 사랑이 전제가 없다면 그와 같이 열화와 같은 형태를 띨 수가 없다. 신체적 사랑이 빠진 정신적 사랑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해도 그것은 그러한 전제와 가능성 속에서 현존하는 것이다.(66~67쪽)

 

공부를 안 하고, 노는 일조차, 노력과 시간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요즈음 젊은이들은 스케이트보드나 힙합에는 그 쓰잘데 없는 시간과 정력을 소비하면서, 그 시간을 공부에는 쏟질 않는가? 분명 공부하는 것이 스케이트보드보다는 더 확실한 효과가 있고, 더 지속적이고 더 다양한 재미를 줄 수 있으며, 더 확실한 삶의 가치와 보람을 확보해준다는 것은 너무도 명약관화한데, 우리의 자식들은 왜 이것을 모를까? 아무리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깝게 외쳐봐도 소용없는 일이다. 젊은이들은 역시 “孔子曰 孟子曰”이나 “임마누엘 칸트”에게 보다는, “스케이트보드”나 “힙합,” “테크노 댄스”로 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립씽크 힙합보다는 공부가 확실히 더 재미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나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내가 공부가 재미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냥 공부가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재미있게 느낄 수 있게 되기까지 재미없고 지루할 수도 있는 훈련의 기간을 포함한다는 사실이다. 힘합을 자유자재로 추는 것은 재미있지만, 그 자유자재로움에 도달하기까지는 결코 즐거울 수만은 없는 시간과 정력이 소요되는 것과 매우 동일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에 대한 우리의 분석의 최종 결론은 이러하다. 힘합을 배우는 과정과 공부를 배우는 과정을 비교하면, 역시 공불ㄹ 배우는 과정이 더 어렵고, 더 시간이 걸리며, 더 지루하게 느껴지며, 무엇보다도 인간을 집중하게 만드는 흡인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80~81쪽)

 

선인에 대하여 악인이 있고, 선행에 대하여 악행이 있고, 선신에 대하여 악신이 있고, 천사에 대하여 악마가 있고, 빛에 대하여 어둠이 있고, 창조에 대하여 종말이 있는 것은 모두 헤브라이즘의 전통 속에 나온 특이한 발상이다. 이 특이한 발상이 과학주의와 더불어 20세기 인류의 보편적 사유방식으로 왜곡되어 정착된 것이, 바로 인류 20세기의 발전이요 불행인 것이다. 인류의 21세기는 바로 다시 19세기 이전의 老子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인간을 “악인”으로 바라보는 것과, “선하지 못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것은 너무도 큰 차이가 있다. 한 인간이 악인이 되면 그 인간은 악의 화신으로 악의 실체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개전이 여지가 없다. 그러나 “선하지 못한 인간”은 항상 선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124~125쪽)

 

善은 美로 환원될 수 있는 가치에 불과한 것이다. 여자가 예쁘다는 것은 선일 수 있다. 그러나 여자가 못 생겼다고 악일 수는 없다. 악은 상식적으로 인간에게 부정적인 가치이지만, 못생김이나 추함은 그것 나름대로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가치일 수가 있다.(127쪽)

 

김용옥,『노자와 21세기(上)』, 통나무,2000.

 

 

 

48. 노자와 21세기(下)

 

여덟째 가름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잘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살 때는

낮은 땅에 처하기를 잘하고,

마음 쓸 때는 그윽한 마음가짐을 잘하고,

말 할 때는

믿음직하기를 잘하고,

다스릴 때는

질서있게 하기를 잘하고,

일 할 때는

능력 있기를 잘하고,

움직일 때는

바른 때를 타기를 잘한다.

대저 오로지

다투지 아니하니

허물이 없어라.

 

김용옥 ,『노자와 21세기』, 통나무, 2000. p.35.

 

 

 

 

 

 

 

 

 

49. 어머니(막심 고리키)

 

“진리와 이성의 길을 걷고 있는 아이들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가져다 줄 것이오. 그리고 그들은 모든 사물 위에 새로운 하늘을 덮어주고, 그들은 깊은 영혼으로부터 나오는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모든 사물을 비춰주게 될 거예요. 그리하여 새로운 생활이 현실속에 나타나고 온 지구상에는 순수한 사랑이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누가 그 불을 끌 수 있겠어요. -누가? 어떤 힘이 이보다 더 강하겠어요? 누가 감히 그것을 진압하겠어요? 지구가 새로이 태어나고 모든 생명들은 승리를 구가하고-모든 생명들이, 피로 강물을 이루어도, 아니, 피바다를 이루어도, 결코 그 불을 끄지는 못할 것이오.”(401쪽)

 

“정직한 사람들은 만나러 가십시오. 모든 가난하게 찌들린 사람들에게 충고를 해주는 사람들을 찾으세요. 결코 타협하지 마시오. 동지들! 결코! 권력의 압제에 굴복하지 마시오. 일어나세요. 여러분, 노동자 여러분! 당신들은 주인입니다! 모두가 당신들의 노동 때문에 먹고 살아요. 저들은 노동을 시킬 때만 여러분의 손을 들어줍니다. 보세요! 여러분은 묶여 있습니다. 저들은 여러분의 영혼을 죽이고 도둑질해 갔어요. 가슴과 마음을 하나의 힘으로 단절시키네요. 그러면 모든 것을 이겨낼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 외에는 친구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유일한 친구들이 노동자들을 향해 외치며 나아가고, 감옥으로 가는 길목에서 쓰러져 죽고 하는 것입니다.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속이는 자들은 그렇게 하지 못해요.(410쪽)

 

주위에는 고함소리가 터져나와 어머니의 머리를 스쳤다.

“그녀를 치지마라 이놈들아!”

“청년들!”

“왜 이래 이거!”

“오, 악당같은 놈!”

“천벌받을 놈들!”

“피로 이성을 죽일 것 같으나, 진리를 어떻게 할 수 있을 줄 아느냐!

그녀는 목과 등을 호되게 밀리며 어깨, 머리 할 것 없이 수없이 두들겨 맞았다. 사방이 빙그르르 돌고, 고함과 울부짖는 소리, 호각소리 소용돌이치면서 눈앞이 캄캄해왔다. 무언가 둔하고 멍멍한 충격이 귀에 가해지면서 목이 아프고 숨이 꽉 막혔다. 발밑이 방그르르 돌며 흔들렸다. 다리가 휘청거리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고통이 심해지고, 몸이 무거워서 비틀비틀거렸다. 그러나 눈은 감겨지지 않았다. 그녀는 수많은 다른 눈들이 눈에 불꽃을 튀기며 빛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어머니도 알고 있고 가슴에 간절한 불길로 빛나고 있는 눈물이었다.

그녀는 어딘지 모를 곳에서 문안으로 밀어 던져졌다.

그녀는 경찰의 손을 뿌리치며 문설주를 움켜잡았다.

“피바다를 이루어도 진리를 마르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붙잡고 있는 손을 뿌리쳤다.

“천벌 받을 놈들, 이 바보 같은 놈들아! 네놈들 머리 위에-”

누군가 목을 잡고 누르기 시작했다. 목구멍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났다.

“불쌍한 것들, 이 가련한 것들-” <끝> (412쪽)

 

막심 고리키,『어머니』, 석탑,1987.

 

 

50. 흑백이서유(黑白二鼠喩)

 

불타의 입장에서 볼 때 인생은 고(苦)도 낙(樂)도 아니다. 이 세계와 인생, 이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변한 것이므로 마음이 괴로우면 이 세계가 괴롭고 마음이 즐거우면 즐거운 것이 마치 푸른 안경을 끼고 보면 푸른 세계로 보이고 붉은 안경을 끼고 보면 붉은 세계로 보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빈두설경(賓頭說經)에서 다음과 같은 설화를 이야기 하였다.

『옛날 어떤 사람이 큰 광야에 나갔다가 미친 코끼리 한 마리를 만났다. 그는 크게 놀라 뒤돌아볼 겨를 없이 도망쳐 가다가 들 한복판 옛 우물터에 뻗어 내려간 등나무 넝쿨을 붙잡고 들어가 간신히 몸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속에는 또 다른 적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물 네 구석에서는 네 마리의 독사가 혀를 널름거리고 우물 한 복판에서는 무서운 독룡이 독기를 내품고 있었다. 위에서는 미친 코리가 발을 동동 구르고 밑에서는 용사(龍蛇)가 함께 혀를 널름거리니 오도 가도 못한 행인은 오직 하나의 생명선이라 할 수 있는 그 등나무 넝쿨에 몸을 꼭 붙이고 있는데 어디에선가 말 발굽소리 같은 게 들렸다. 이상히 여긴 행인은 고개를 빼들고 그 소리를 경청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그를 구하기 위해서 오는 대상들의 말발굽 소리가 아니라 자기가 잡고 있는 등나무 넝쿨을 흰 쥐와 검정 쥐가 서로 번갈아 가면서 쓸고 있는 것이었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의 사나이었다. 그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하늘가에선 몇 마리의 꿀벌들이 집을 짓느라고 날고 있었다. 앉고 날 때마다 떨어지는 꿀방울 너덧개, 그것이 입에 닿았을 때 그는 그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그것에만 도취되었다. 그러는 동안 대지엔 난데없는 불이 일어나 태울만한 모든 것은 다 태워 버렸다.』

이것은 비유다. 넓은 광야는 무명장야(無明長夜), 어떤 사람은 생존 인간, 코끼리는 무상(無常), 옛 우물은 생사(生死), 나무 넝쿨은 명줄, 흰 쥐와 검정 쥐는 낮과 밤, 해와 달, 넝쿨 쓰는 것은 염념생멸(念念生滅), 네 구석의 독사는 사대색신(四大色身), 독룡은 죽음, 벌은 사사(邪思), 너덧 방울의 꿀은 오욕(五慾), 불은 노병(老病)에 각각 비유한 것이다. 끝없는 무명장야(無明長夜)의 이 세상에 태어나 무상신속(無常迅速)의 불안 속에 위협을 당해 가면서 수파축랑(隨波逐浪)하는 인생, 이 인생을 부처님은 이 설화에 비유했다. 인생은 누구나 끝없는 세월 속에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유랑객이다. 누구고 생사(生死)의 암두(巖頭)에 바로 서서 깊이를 알 수 없는 깊은 못을 바라보면 무서운 죽음의 그림자가 시시각각으로 닥아옴을 볼 것이다. 생명 하나만은 온 몸의 끄나풀로 믿고 모든 고통을 참고 가는 모습을 똑똑히 볼 것이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도살장을 향해 보보등단(步步登壇)하는 소와 같다. 일월서야(日月晝夜)의 시간이 용서 없이 우리의 명줄을 깎으면서 지나간다. 생각하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위험한 운명에 놓여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사대육신(四大六身)을 오욕(五欲)의 쾌락에 깊숙이 묻고 미망(迷妄)으로 고뇌로부터 고뇌로 줄달음질 친다. 대왕 빈두사라(賓頭娑羅)는 이 법문을 듣고 불사의 영광을 얻었다 하거니와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도 이 설화에 의하여 비로소 구도의 역경에 오르게 되었다 한다.

 

한정섭,『불교설화문학연구』,법륜사, 1978. p.36~38.

 

 

51. 김약국의 딸들

 

“저의 아버지는 고아로 자라셨어요. 할머니는 자살을 하고 할아버지는 살인을 하고, 그리고 어디서 돌아가셨지는지 아무도 몰라요. 아버지는 딸을 다섯 두셨어요. 큰딸은 과부, 그리고 영아 살해 혐의로 경찰서까지 다녀왔어요. 저는 노처녀구요. 다음 동생이 발광했어요. 집에서 키운 머슴을 사랑했죠. 그것은 허용되지 못했습니다. 저 자신부터가 반대했으니까요. 그는 처녀가 아니라는 험 때문에 아편장이 부자 아들에게 시집을 갔어요. 결국 그 아편장이 남편은 어머니와 그 머슴을 도끼로 찍었습니다. 그 가엾은 동생은 미치광이가 됐죠. 다음 동생이 이번에 죽은 거예요. 오늘 아침에 그 편지를 받았습니다.”

용빈은 맞은편 벽을 바라보면 한숨에 말을 뇌까린다. 강극은 규격을 잃은 듯 산란한 용빈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381쪽)

“사람이 사는 곳에 외로움이 있다.”(335쪽)(김약국의 말)

제1장

통영(統營)

통영(지금은 忠武市)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 거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 만큼 바닷빛은 맑고 푸르다. 남해안 일대에 있어서 남해도와 쌍벽인 큰 섬 거제도가 앞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현해탄의 거센 파도가 우회하므로 항만은 잔잔하고 사철은 온난하여 매우 살기 좋은 곳이다. 통영 주변에는 무수한 섬들이 위성처럼 산재하고 있다. 북쪽에 두루미 목만큼 좁은 육로를 빼면 통영 역시 섬과 별다름이 없이 사면이 바다이다. 벼랑 가에 얼마쯤 포전(浦田)이 있고 언덕빼기에 대부분이 집들이 송이버섯처럼 들앉은 지세는 빈약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주민들은 자연 어업에, 혹은 어업과 관련된 사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일면 통영은 해산물의 집산지이기도 했다. 통영 근처에서 포획하는 해산물이 그 수에 있어 많기도 하거니와 고래로 그 맛이 각별하다하여 외지 시장에서도 비싸게 호가되고 있으니 일찍부터 항구는 번영하였고, 주민들의 기질도 진취적이며 모험심이 강하였다. 이와 같은 형편은 조상 전래의 문벌과 토지를 가진 지주층들-대개는 하동(河東), 사천(泗川) 등지에 땅을 갖고 있었다.-보다 어장을 경영하여 수천금을 잡은 어장아비들의 진출이 활발하였고, 어느 정도 원시적이기는 하나 자본주의가 일찍부터 형성되었다. 그 결과 투기적인 일확천금의 꿈이 횡행하여 경제적인 지배계급은 부단히 변동을 보였다. 실로 바다는 그곳 사람들의 미지의 보고이며, 흥망성쇠의 근원이기도 하였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타관의 영락된 양반들이 이 고장을 찾을 때 통영 어구에 있는 죽림고개에서 갓을 벗어 나무에다 걸어놓고 들어온다고 한다. 그것은 통영에 와서 양반 행세를 해봤자 별 실속이 없다는 비유에서 온 말일 게다. 어쨌든 다른 산골 지방보다 동건 제도가 일찍 무너지고 활동의 자유, 배금사상이 보급된 것만은 사실이다.

어업 외에 규모가 작지만 특수한 수공업도 이곳의 오랜 전통의 하나다. 근래에 와서는 두메산골로 들어가도 좀처럼 갓 쓴 사람은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이조왕실이 쓰러지기 전까지는 최상품의 갓이라면 으레 통영갓이었고, 그 유명한 통영갓은 제주도의 말총으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지금도 흔히 여염집에 들르는 뜨내기 소반장수가 싸구려 소반을 통영소반이라 사칭하고 거래하는 풍경 있는데 통영갓, 통영소반은 그 세공이 정묘하여 매우 값진 상품이었다. 이밖에도 소라 껍데기, 혹은 전복 껍데기를 갖가지 의장(意匠)으로 목재에 박아서 만든 장롱, 교잣상, 경대, 문갑, 자(尺)에 이르기까지 화려 찬란한 가구 제작은 일찍부터 발달되었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바다에 나가서 생선 배나 찔러먹고 사는 이 고장의 조야하고 거친 풍토 속에서 그처럼 섬세하고 탐미적인 수공업이 발달되었다는 것은 좀 이상한 일이다. 바닷빛이 공누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노오란 유자가 무르익고 타는 듯 붉은 동백꽃이 피는 청명한 기후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1864년, 고종이 왕위에 오름으로써 그의 아버지 대원군은 집권하였다. 그러나 병인양요(丙寅洋擾)를 겪고 극도에 달한 경제적 파탄으로 드디어 대원군은 그 패권을 민비에게 빼앗겼다. 정권이 민씨 일파로 넘어간 후에도 여전히 나라 안은 소연하였다. 청‧일 두 세력의 대립, 민씨파와 대원군파의 암투, 개화파와 보수파의 갈등, 개화파 중에서도 일본식ㅇ르 따르자는 친일파, 청국식을 따르자는 사대파, 이러한 파벌의 발호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국운은 차츰 기울어만 갔다.

이 무렵의 통영 항구를 점묘해 보면, 고성반도에서 한층 허리가 짤리어져 부챗살처럼 퍼진 통영은 복장대 줄기를 타고 뻗은 안뒤산이 시가를 안은 채 고깃배가 무수히 드나드는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뒤산 기슭에는 동헌과 세병관(洗兵館) 두 건물이 문무(文武)를 상징하듯 나란히 자리잡고 있었다. 시가는 동서남북 네 개의 문과 동문, 남문 중간에 있는 수구문을 합하여 모두 다섯 개의 문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동헌에서 남문을 지나면 고깃배, 장배가 밀려오는 갯문가, 둥그스름한 항만이다. 항만 입구 오른편이 동충이며 남방산이다. 이 두 끄트머리가 슬며시 다가서서 항만을 감싸주며 드나드는 배를 지켜보고 있었다. 동충과 남방산 사이에는 나룻배가 수시로 내왕한다. 항구에 서면, 어떻게 솜씨가 떨어졌는지 소나무 한 두 그루가 우뚝 서 있는 장난감 같은 공지섬이 보이고 그 너머 한산섬이 있다. 여기서 거제도는 아득하다.

동헌에서 서쪽을 나가면 안뒤산 기슭으로부터 그 아래 일대는 간창골이란 마을이다. 간창골 건너편에는 한량들이 노는 활터가 있고, 이월 풍신제를 올리는 뚝지가 있다. 그러니까 안뒤산과 뚝지 사이의 계곡이 간창골인 셈이다. 간창골에서 얼마를 가파롭게 올라가면 서문이 있다. 그곳을 일컬어 서문고개라 한다. 서문 밖에는 안뒤산의 한 줄기인 뒷당산이 있는데, 이 일대는 이곳의 성지라 할만하다. 충렬사에 이르는 길 양켠에는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줄을 지어 서 있고, 아지랑이가 감도는 봄날 핏빛 같은 꽃을 피운다. 그 길 연변에 명정골 우물이 부부처럼 두 개가 나란히 있었다. 음력 이월 풍신제를 올릴 무렵이면 고을 안의 젊은 각시, 처녀들이 정화수를 길어내느라고 밤이 재새도록 지분 내음을 풍기며 득실거린다. 뒷당산과 마주 보는 곳이 안산이다. 안산을 넘어가면 작은개, 큰개, 우룩개가 있어 봄이면 멸치떼가 시뻘겋게 몰려든다.

명정골 우물에서 서문고개로 가는 길을 되돌아서면 대밭골이다. 이 대밭골에서 서문고개 가는 길과 갈라진 길을 접어들어 줄곤 나가면 판데로 가게 된다. 판데는 임진왜란 때 우리 수군에 쫓긴 왜병들이 그 판데목에 몰려서 엉겹결에 그 곳을 파헤치고 한산섬으로 도주하였으나, 결국 전멸을 당하고 말았다는 곳이다. 그래서 판데라고 부른다. 판데에서 마주 보이는 미륵도는 본시 통영과 연결된 육로였는데 그러한 경위로 섬이 되었다. 미륵도에는 봉화를 올리는 고봉 용화산이 있고 그 아래에 봉수골, 더 내려오면 통영 항구가 바라다보이는 해명나루가 있다. 바다에 가서 죽은 남편을 뒤따라 순사한 여인의 전설이 있는 곳이다. 용화산을 넘어서면 첫개와 그밖에 소소한 어촌이 있고, 넓은 바다를 한눈으로 굽어보는데, 대충 큰 섬만 추려도 사랑섬, 추도, 주미도, 욕지섬, 영화도 등 많은 섬들이 있다. 되돌아와서, 통영 육지도 막바지인 한실이라는 마을에서 보는 판데는 좁다란 수로다. 현재는 여수로 가는 윤선의 항로가 되어 있고 해저 터널이 가설되어 있다. 왜정시에는 해저 터널을 다이꼬보리(大閣이 팠다는 뜻의 왜말. 大閣은 風神秀吉의 존칭)라 불렀다. 역사상으로 풍신수길이 조선까지 출전한 일이 없었는데 일본인들까지 해저 터널을 다이꼬보리라 불렀으니 우습다.

동헌에서 비스듬히 동쪽으로 길을 건너 솟은 것은 당산이다. 당산은 동헌과 건너다보이는 곳이어서 백성들이 억울한 일이 있으면 당산에 올라, 사또에게 억울한 사연을 외치며 호소했던 곳이다. 당산 옆을 빠져서 돌아가면 동문이다. 동문에서 얼마간 떨어진 곳에 수구문이 있고 수구문 주변은 장터였다. 이 두 문 밖에도 막바지는 바다였다. 그 바닷가에 먼제(아마 먼 것이라는 뜻)라는 가난한 어촌이 있어 밤낮 파도 소리를 들으며 어부들은 손바닥만한 통구멩이(한둘이 탈 수 있는 작은배)를 손질창하고 어망을 깁는다. 아낙들은 생선과 해초를 모래밭에 널면서 구름을 보고 바람 소리를 들으며 가슴 죄는 하루살이 살림을 하고 있었다. 거기서 보이는 바다에 지도라는 섬이 있었다.

 

박경리,『김약국의 딸들』, 나남, 1993.

52. 『생태학과 예술적 상상력』에서

 

1. 생태계와 탈인간 중심주의

 

강과 바닷물이 썩고 도시와 마을의 공기가 탁하다. 썩은 물속에 사는 물고기들과 짐승들이 병들어 가고 그런 짐승들이 병들어 가고 그런 짐승들을 식탁에 올려놓은 사람들도 이상한 병에 걸려 쓰러진다. 탁한 공기를 마실 수밖에 도시인들의 신체는 기형적으로 현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태양의 자외선을 막아주는 오존의 기층에 큰 구멍이 나면 인류는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며, 태양의 열이 가해져서 남북극의 빙산이 녹게 되면 많은 부분의 지구가 물에 침몰되리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종류의 자연 환경의 해로운 현상은 인간이 자신의 욕구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이러한 해로움을 공해라고 부르고 환경오염이라고 일컫는다. 공해는 모든 존재의 생태학적 관계를 입증해주는 좋은, 그러나 부정적 예가 된다. 생태학적 입장에서 볼 때 모든 개별적 존재는 사실상 서로 끊을 수 없이 밀접한 관계의 고리에 의해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한 존재의 변화는 다른 모든 존재에 대해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연쇄적 영향을 미치고 변화를 일으킨다. 이러한 관계는 특히 인간을 포함한 생물의 영역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우리는 서로 다른 모든 생물들의 종들을 비롯해서 모든 사물들도 각기 영원히 개별적인 원자와 같은 독립된 존재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생태학은 개별적으로 보이는 모든 것들이 궁극적으로는 ‘하나’임을 주장한다. 현재 전 세계가 실감하기 시작한 공해의 문제는 생태학적 자연관, 그것이 함의하는 생태학적 형이상학이 옳음을 구체적으로 증명해 준다.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공해는 생태학적 자연관, 생태학적 형이상학의 정당성을 의미할 뿐 아니라 불행히도 자연의 생태학적 질서가 파괴되고 있음을 뜻한다. 싫건 좋건 우리는 생태학적 자연관을 수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자연관이야말로 진리이기 때문이다. 생태학적 질서의 파괴를 막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파괴는 생태학적 고리 속에 얽혀 있는 한 생명체로부터 인간 자신의 멸종, 아니면 엄청난 재난을 직접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날 세계 어느 곳에서나 공해 문제를 절실히 느끼고 있으며 긴급한 해결의 필요성을 안고 있다. 그 이유, 아니 원인은 공해가 인류의 존속, 아니면 복지를 근본적이며 전체적으로 위험함을 의식하게 됐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인류가 공해의 문제에 주의를 갖고 따라서 은연중에 생태학적 자연관을 받아들이고 있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이기심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를 갖는 한에서 인간은 아직도 인간 중심주의적이다. 인간 중심적이란 말은 반생태적이라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공해의 문제 해결이 다급하지만 그 이유가 인간의 존속, 아니면 복지에만 있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그런 생각은 근본적인 모순을 내포한다. 왜냐하면 공해가 인간을 위협함을 인정한다는 사실이 인간이 크나큰 하나의 자연 체계의 일부임을 전제함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인간의 이익을 위해서, 즉 인간 중심적인 이유에서 공해를 해결하려는 입장은 인간이 어느 차원에서는 자연의 연쇄적 관계에서 빠져 있는 특별한 존재로 보는 반생태학적 자연관을 토대로 하기 때문이다.

각자 ‘나’의 입장에서 볼 때 내 개인의 생명은 둘도 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내 개인적 생명보다는 종으로서의 인류의 생명은 더 중요하다. 사실 내 한 개인의 삶은 인류의 존속을 위해 있는 하나의 제약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인류와 그 밖의 모든 생명체의 관계도 똑같은 각도에서 설명될 수 있다. 인간에게 종으로서의 인류의 존속이 귀중함은 틀림없다. 그러나 인류는 다른 허다한 생물의 종들의 하나에 불과하고, 생태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류의 존재는 무한한 수의 고리 가운데의 단지 하나의 고리에 불과하다. 자연의 생태계의 존속은 인류의 존속보다도 더 근본적이며 더 귀중하다. 그러므로 공해의 문제를 해결하고 자연의 생태학적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이유는 인간 중심주의적 관점을 넘어 생태학적 관점에서 제시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은 편의상 인간 중심주의와 대조해서 생태 중심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박이문,『이카루스의 날개와 예술』, 민음사, 2003. 250~252쪽.

 

53. 노년의 왕관(게오르규)

 

현대사회에 있어서 한국은 많은 분야에서 모범이 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노인에 대한 공경이다. 현재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노인들은 버림을 받고 있다. 나에게는 미국에서 아주 유명한 변호사인 한 사람의 친구가 있다. 어느 날 그는 파리에 왔다. 그는 머리에 염색을 하고 있었다.

「자네 암탉처럼 머리를 염색했군 웬일이야?」하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나는 그의 염색한 머리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참다운 루마니아인이었다. 루마니아 사람은 모리를 염색하지 않는다. 그들은 노년을 조용히 받아들인다. 노년은 인생의 일부이다. 죽음이 그렇듯이…….

「만일 내가 머리를 염색하지 않으면 나는 미국에서 직업을 유지할 수 없다네」하고 나의 친구는 변명을 하였다.

나는 미국에 살지 않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지상의 모든 가난한 자들은 미국을 꿈꾼다. 그곳은 풍요의 나라이다. 이전에 나도 미국에 사는 그 친구를 부러워했다. 그는 백만장자의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를 가련하게 여긴다. 루마니아에는 노인이 없는 마을은 노인을 하나 사야 한다는 격언이 있다. 세계 어디에도 노인들이 한국처럼 존경받는 곳은 없다. 모든 문명화된 나라에서 노년은 혐오의 대상이 된다. 인간은 늙는 것이 부끄럽다. 자동차 공장의 못쓰게 된 부속품처럼 사람들은 노년을 가려낸다. 한국은 이와는 반대이다. 한국에서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존경을 받는다. 노인은 머리에 왕관이라도 쓴 것처럼 존경을 받는다.(29쪽)

 

양치는 사람들

 

수도의 목적은 마음을 깨끗이 하자는 데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가 어디에 오셨던가요? 아주 조그마한 오딴 마을에, 그것도 마굿간에 오셨지요.

그가 오시는 것을 누가 지켜보았습니까? 자본가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관리였습니까? 아닙니다. 지방의 명사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교수이었습니까? 아닙니다. 바리새인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프롤레타리아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가 오시는 것을 지켜본 사람은 양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양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넓은 벌판, 인적이 드문 들의 고요함 속에서 외롭게 혼자 살 줄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 고독과 정숙에 싫증을 내지 않는 가장 깨끗한 사람들입니다. 복잡한 소음의 세계에서 멀리 떨어진 곳, 그곳을 저희들은 희랍말로 아나코레세(Anachorese)하고 합니다. 그곳에 물러앉아 마음의 때를 없애버리는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가장 귀중한 존재들이며 진리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아마도 도시에 사는 문명인을 그렇게 먼 곳에 데려다가 고독하게 살라고 하면 당장에 죽고 말는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127쪽)

 

게오르규/민희식외 역,『한국찬가-25時를 넘어 아침의 나라로』범서출판사,1984.

 

54. 순애보

 

(1)

《 나는 나를 그이에게 바친 그의 영원한 것. 하느님이 아닌 인간에게는 잘못도 있을 수 있고 실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 인간이란 영원히 완전체일 수 없는 존재, 하느님 앞에서는 인간은 누구나 죄인인 것이다. 내가 나를 그에게 바칠 때에 는 거기에 어떠한 한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법죄하지 않은 때만 골라서 그리하여 범죄하기 전까지만 내 마음과 몸을 바쳐서 사랑한다는 그러한 규정이나 한계가 사랑엔 있을 수 없다. 사랑이란 상대가 죄를 지을수록 더욱 버리지 말아야 하며 불쌍히 여겨야 하며 그 죄 뒤에 오는 온갖 모욕과 고통과 죽음도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허물을 용서해 주고 덮어 주고 또는 그 허물을 내가 분담하기도 하고 전적으로 대신 뒤집어쓰기도 함으로써 상대로 하여금 본래의 자기에게로 돌아가게 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랑은 주는 것이요 가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사랑에는 나를 제공하는 희생만이 있기 때문에》

《그러나 나는 그의 결백을 믿는다. 결백하지 않더래도 좋다. 강간미수, 살인…… 아무 것이래도 좋다. 나는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범죄자일지라도 그를 버려서는 안 되지만 버릴 수도 없다. 그는 내 속의 나요 나는 그의 속의 <그>가 아닌가. 더러운 누명도 치욕도 모별도 슬픔도 고통도 심지어 죽음도 같이 나눠야 한다. 그리고 지옥에도 같이 가야 한다.

이러한 구절을 쓴 명희 언니는 그 당시에 문선씨가 사형이 집행이 되었으면 그의 무덤 앞에서 자살 했을 지도 모를 일이었나이다. 저는 그때부터구약 성서 아가(雅歌)에 기록된 <사랑은 죽음과 같이 강하다>라는 시의 한 구절을 늘 상기하고 있나이다.

어쨌든 명희 언니의 사랑은 요새 길바닥에 늘려있는 그러한 연애가 아니라 지순 지고한 그리고 지극히 열렬한 것이었아오며 이러한 사랑을 가리켜 사랑의 극치(極致)라 또는 진정한 연애라 사람들은 부르나 보옵니다. (435~436쪽)

 

(2)

『전 선생님의 눈만을 사랑했거나 선생님의 얼굴이라는 형체에 사랑을 두지는 않았어요. 눈이나 용모가 그 사람의 인격은 아닐꺼예요. 사랑만이 진정한 눈이 될 수 있으며 아무리 흉한 얼굴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 얼굴에 사랑이 담겨져 있을 때는 뭇 사람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인격의 미(美)가 빛날 꺼얘요.』

『그러나 나는 아무 기능도 발휘할 수 없고 생활력도 상실했고 경제적으로도 남의 기생충은 될지언정 명희씨를 행복하게 할 재력을 갖지 못했습니다. 내가 명희씨를 사랑하는 한 명희씨를 불행하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행복은 돈이나 물질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 것에 좌우되는 것도 아니라 봐요. 사랑이 행복의 본질이라면 사랑이 있는 곳에는 행복이 따를 것이얘요. 이제부터 저는 선생님의 눈이 되겠어요. 제가 가진 기능만으로도 우리는 능히 살아 갈 수 있지만 제가 문선씨의 문학도 다른 기능도 모두 살릴 수 있을 꺼얘요.』(443쪽)-끝부분

 

박계주,『순애보』, 홍신문화사,1986.

 

 

 

 

 

 

55.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한비야

 

나는 인생이란 산맥을 따라 걷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산맥에는 무수한 산이 있고 각 산마다 정상이 있다. 그런 산 가운데는 넘어가려면 수십 년 걸리는 거대한 산도 있고, 1년이면 오를 수 있는 아담한 산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산이라도 정상에 서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한 발 한 발 걸어서 열심히 올라온 끝에 밟은 정상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어떤 산의 정상에 올랐다고 그게 끝은 아니다. 산은 또 다른 산으로 이어지는 것. 그렇게 모인 정상들과 그 사이를 잇는 능선들이 바로 인생길인 것이다. 삶을 갈무리할 나이쯤 되었을 때, 그곳에서 여태껏 넘어온 크고 작은 산들을 돌아보는 기분은 어떨까?

철들고 나서 내가 넘어온 산들을 따져본다. 국제 홍보라는 산, 세계 일주라는 산, 중국어라는 산을 넘어 지금은 긴급구호라는 산을 오르고 있다. 이제 5년 차이지만 이번 산은 워낙 크고 높아서 정상에 오르려면 아직 멀었다. 겨우 3부 능선 쯤 올라온 것 같다. 그러나 애초부터 오래 걸릴 것을 각오했기 때문에 진도가 더디게 나간다고 답답해하거나, 어느 천 년에 정상까지 가냐며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곧 7부 능선, 8부 능선으로 올라가면 조금씩 시야가 트이고, 어느 순간 까마득했던 정상이 눈앞에 나타나면서 든든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오늘도 나는 행군한다. 지금은 몸에 익지 않은 무거운 배낭을 지고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좀 괴롭다. 무엇보다도 앞서가는 사람 없이 길 없는 길을 가야 하는 게 제일 힘들다. 이 길 끝은 과연 정상인가. 내가 가진 식량과 장비는 충분한가, 앞으로 닥칠 크레파스와 암벽은 어떻게 넘어가나 하는 생각으로 때로는 버겁고 무섭기도 하다. 그러나 내 능력에 대한 의심이 들 때마다, 기가 꺾여 자신이 없어 질 때마다, 몸이 지쳐서 한 걸음 한 걸음이 천근만근일 때마다, 그래서 무릎을 꿇고 싶을 때마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울려오는 진군의 북소리가 난다. 그리고 나에게 내려진 절체절명의 명령 소리가 들린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286-287쪽)

 

월드비전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전쟁 고아와 미망인을 돕는 일로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한경직 목사님이 아이들을 돌보시고 밥 피얼스 목사님은 외국에서 필요한 자금을 모아 오셨다. 이렇게 작은 규모로 출발한 긴급구호 팀이 지금은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약 1억명의 사람을 돌보는 세계 최대의 기독교 구호 및 개발 단체가 된 것이다.

나도 월드비전에 들어와서야 알았다. 전쟁이 끝난 후부터 1990년까지 우리 나라에 들어온 해외 원조 총액이 무려 25조 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1960년대에는 한 해 원조 액수가 우리 나라 보사부 액수의 두 배를 능가하기도 했다. 내가 어렸을 때 그렇게 맛있게 먹던 옥수수빵과 덩어리 우유도, 학기 초에 받던 공짜 공책과 연필도, 아프게 맞던 예방주사도 바로 이런 돈에서 나온 것이다. 그때는 막연히 바다 건너 부자 나라에서 오는 거려니 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눈물나게 고맙다. 누군가가 지금 우리처럼 그 돈을 모아다 주려 갖은 애를 썼을 테니 말이다.

우리 나라에서 어려운 사람이 있는데 왜 멀리 있는 한국까지 도와야 하는냐는 사람도 많았을 테고, 희망이 없으니 도울 필요가 없다고 냉소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어떤 외국 기자는 노골적으로 이런 기사를 썼다고 한다. ‘35년간 일본 식민지에, 남북 이념 대립에, 이제는 전쟁까지 하고 있는 한국이 제 발로 서기를 바라느니 쓰레기 더미에서 장미꽃이 피는 것을 바라겠다’고. 이런 차가운 시선에도 한국의 가능성을 믿고 끝까지 구호 활동을 벌여준 단체들에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런데 이 도움은 1990년까지 계속되었다. 가만, 1990년이라? 처음 이 말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1988년 뻑적지근하게 올림픽을 열고, 경제 선진국 20개국이 모인 OECD에 가입하느니 마느니 할 때도 다른 나라 아이들의 코 묻은 돈으로 우리 아이들을 먹이고, 외국 할머니들의 쌈짓돈으로 우리 할머니들 약을 사드렸다는 말인가? 얼굴이 화끈했다.

다행히 1991년부터 완전히 해외 원조를 끊고 오히려 우리 돈을 모아 다른 나라를 도와주는 나라가 되었다. 50년 만에 쓰레기 더미에서 장미꽃을 피워낸 것이다. 월드비전 내에서도 수혜국에서 지원국이 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이건 대단한 희망의 메시지다. 지금 후원을 받고 있는 세계 80여 개국도 한 세대만 노력하면 받는 나라에설 돕는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152-154쪽)

 

한비야 ,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2005. 푸른숲.

 

 

 

 

 

 

 

 

 

 

 

 

 

 

 

 

 

 

56. 죽비소리(1)

 

(1) 이해(利害)

 

개구리는 시내나 도랑에서 나는데 꼭 계단이나 뜰 사이에 숨는다. 닭들이 마구 뒤져 잡히기만 하면 죽는다. 나는 말한다. 왜 수풀 사이에 가만있지 아니하고, 인가에 가까이 와서 재앙을 면치 못하는 것일까! 생각건대 사람 가까운 곳에서는 땅이 기름지고 벌레가 많으니, 개구리는 벌레를 쫓아온 것이었다. 아! 이로움이 있으면 해가 뒤따른다는 말을 이에 있어 징험할 수 있겠다.-이익(李瀷, 1681~1763), 「觀物篇」

 

(2) 정기(精氣)

 

대저 해라는 것은 태양이다. 사해를 덮어 씌워 만물을 기르는 것이다. 젖은 곳을 비추면 마르게 되고, 어두운 곳이 빛을 받으면 환하게 된다. 하지만 능히 나무를 사르거나 쇠를 녹일 수는 없다. 왜 그럴까? 빛이 퍼져서 정기가 흩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만리에 두루 비치는 빛을 거두어, 좁은 틈으로 빛을 받아 모아, 둥근 유리알에 이를 받아 그 정채로운 빛을 콩알만하게 만들면, 처음에는 내리쬐어 반짝반짝하다가 갑자기 불꽃이 일어나 타오른다. 어째서일까? 빛이 전일하여 흩어지지 않고, 정기가 한테 모여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박지원,「능양시집서 菱陽詩集序」

 

(3) 실로(失路)

 

작년에 산사에 놀러 갔다가 길을 잃고 깎아지른 벼랑으로 잘못 들었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등나무를 더위잡아 산도 물도 다한 곳에 이르니, 단지 흰 구름이 피어나고 있을 뿐이었다. 옷도 흐트러진 채 이리저리 방황해도 더 나아갈 곳이 없었다. 그때 갑자기 구름 위로부터 종소리가 들려와 나를 이끄는 안내자가 되었다. 있는 힘을 다해 다시금 묏부리 하나를 올라가니 푸른 전각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산에 들어 길 잃음을 유감으로 알지 말라. 여태껏 못 본 산을 수도 없이 볼 터이니”라고 한 것은 그래서 지은 시다. 잘못해서 나쁜 길로 들어가 온갖 괴로움을 겪은 뒤에야 바야흐로 바른 길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비단 참선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시문과 서화도 또한 그러하다.-조희룡, 「한와헌제와잡존」

 

무턱대고 실수를 두려워만 할 것은 아니다. 실수는 내게 뜻하지 않은 기회를 제공한다. 역사상의 수많은 발전과 발명들은 실수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 산길을 잘못 들어 길 잃고 헤맬 때는 불안하기도 했겠지. -중략- 실수를 발전의 기회로 만드는 사람이 있고, 실수를 곧바로 자포자기의 나락으로 끌고 가는 사람이 있다. 길을 잘못 들어 절망적으로 헤매 돈 사람만이 바른 길이 얼마나 고마운 줄 알게 된다. 처음부터 탄탄대로만 걸어가면 순조롭기야 하겠지만 큰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역경이 순경(順境)이요, 순경이 역경이다. 젊어서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에 오르는 것은 하나의 큰 불행이라고 한 옛사람의 말도 있다.(81쪽)

정민 , 『죽비소리』, 2005. 마음산책

57. 죽비소리(2)

 

(4) 택교(擇交)

 

사람은 벗을 가려 사귀지 않을 수 없다. 벗이란 나의 어짊을 돕고 나의 덕을 도와주는 존재다. 유익한 벗과 지내면 배움이 날로 밝아지고, 학업이 나날이 진보한다. 부족한 자와 지내면 이름이 절로 낮아지고, 몸이 절로 천하게 된다. 비유하자면 개와 개가 사귀면 측간으로 이끌고, 돼지와 돼지가 어울리면 돼지우리로 이끄는 것과 같다.

-성현(成俔, 1439~1504), 「부휴자담론 浮休子談論」

 

 

(5) 취장(取長)

 

감나무를 심었다. 열매가 많은 것은 알이 작았고, 열매가 드문 것은 알이 굵었다. 나중에는 같이 잘 자라 그늘이 지기에 하나를 베어버리려 하니, 알이 작은 것은 싫지만 많은 것이 아깝고, 열매가 드문 것은 미워도 그 알이 굵은 것은 아까웠다. 내가 말했다. “둘 다 그대로 두어라. 비록 단점이 있더라도 장점을 취할 뿐이다.”

-이익, 「관물편」

 

 

(6) 명결(明潔)

 

문순공 이황이 단양 군수로 있다가 떠나갔을 때 일이다. 아전이 관사를 수리하려고 들어가 방을 보니, 도배한 종이가 맑고도 깨끗하여 새것 같았다. 요만큼의 얼룩도 묻은 것이 없었다. 아전과 백성들이 크게 기뻐했다.

-이식(李植, 1584~1647), 『택당집 澤堂潗』

 

 

(7) 영단(靈丹)

 

책 속에 엄한 스승과 두려운 벗이 있다. 읽는 사람이 진부한 말로 보아버리는 까닭에 마침내 건질 것이 없을 따름이다. 만약 묵은 생각을 씻어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가만히 보면 넘실대는 성인의 말씀이 어느 것 하나 질병을 물리치는 영약(靈藥)이 아님이 없다.

-김굉(1739~1816),「각재하공행장」

 

 

정민 , 『죽비소리』, 2005. 마음산책

 

 

 

58. 죽비소리(3)

 

(8)중간(中間)

 

임백호(林白湖)가 말을 타려는데 하인이 나서며 말했다. “나으리! 취하셨습니다요. 가죽신과 나막신을 한 짝씩 신으셨어요.” 백호가 꾸짖으며 말했다.

“ 길 오른편에 있는 자는 날더러 가죽신을 신었다 할 터이고, 길 왼편에 있는 자는 날더러 나막신을 신었다 할 터이니, 무슨 문제란 말이야!” 이로 말미암아 논하건대, 천하게 보기 쉬운 것에 발만한 것이 없지만, 보는 바가 같이 않게 되면 가죽신인지 나막신인지도 구별하기가 어렵다. 그런 까닭에 참되고 바른 견해는 진실로 옳다 하고 그르다 하는 그 가운데 있다.

-박지원, 「낭환집서」

 

 

(9) 언사(言事)

 

경계할지어다. 많은 말을 하지 말고, 많은 일을 벌이지도 말라. 말이 많으면 실패가 많고, 일이 많으면 해가 많은 법이다. 안락을 반드시 경계하고, 후회할 일은 하지를 말아라. 무슨 손해가 있겠느냐고 말하지 말라. 그 화가 장차 듣지 못했다고 말하지 말라. 귀신이 사람을 엿보고 있나니. 막 불이 붙기 시작할 때 끄지 않으면 활활 타오를 때야 어찌하리. 졸졸 흐르는 물을 막지 않으면 마침내는 드넓은 강물이 되리라. 실낱같이 이어짐을 끊지 않으면 혹 그물이 될 것이요, 터럭 끝을 뽑아내지 않으면 장차는 도끼를 찾아야 하리. 진실로 능히 삼가는 것이 복의 근원이 된다. 입은 무슨 해가 되는가. 재앙이 들어오는 문인 것이다.(口是何傷, 禍之門也)

 

-허목(1595~1682), 「기언서記言序」

* 본관 양천, 사상적으로 이황, 정구의 학통을 이어받아 이익에게 연결시킴으로써 기호 남인의 선구이며 남인 실학파의 기반이 되었다.

 

 

(10) 어묵(語嘿)

 

마땅히 말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잘못이다. 의당 침묵해야 할 자리에서 말하는 것도 잘못이다. 반드시 말해야 할 때 말하고, 마땅히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해야만 군자일 것이다. 군자의침묵은 현묘한 하늘 같고 깊은 연못 같고 진흙으로 빚은 소상(塑像)같다. 군자의 말은 구슬 같고 혜초(蕙草)와 난초 같고, 종과 북 같다.

-신흠, 「어묵편 語嘿篇」

 

정민 , 『죽비소리』, 2005. 마음산책

 

 

 

59 죽비소리(4)

 

(11) 안목(眼目)

 

그림은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 아끼는 사람, 보는 사람, 소장하는 사람이 있다. 유명한 화가 고개지의 그림을 부엌에 걸거나, 왕애의 그림을 벽에다 꾸미는 사람은 오직 소장한 것일 뿐이니 반드시 능히 그 그림을 볼 자격이 없다. 본다 해도 어린애가 보는 것과 비슷해서, 입을 벌리고 웃지만 다시 붉고 푸른 빛깔 외에 다른 것은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반드시 능히 그 그림을 아낄 수가 없다. 설령 아낀다 해도 오직 붓과 종이의 빛깔만 가지고 취하거나, 형상과 배치만 가지고 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능히 그 그림을 알아 볼 수가 없다. 그림을 알아보는 사람은 외형이나 법도 같은 것은 잠시 접어두고, 먼저 오묘한 이치와 아득한 조화 속에서 마음으로 만난다. 그런 까닭에 그림 감상의 묘는 소장하거나 바라보거나 아끼는 세 부류의 껍데기에 있지 않고, 알아봄에 있는 것이다. 알게 되면 참으로 아끼게 되고, 아끼면 참으로 볼 수 있게 되며, 보이게 되면 이를 소장하게 되는데, 이것은 그저 쌓아두는 것과는 다르다.-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 而非徒畜也-

-유한준(愈漢寯, 1732~1811),「석농화원발 石農畵苑跋」

 

 

(12) 시청(視聽)

 

남을 살피느니 차라리 스스로를 살피고, 남에 대해 듣기보다 오히려 스스로에 대해 들으라.

(與其視人寧自視, 與基聽人寧自聽)

위백규(魏伯珪, 1727~1798), 「좌우명」

-열 살 때 지었다는 좌우명이다. 그 조숙함이 참 맹랑하다.

 

 

(13) 검신(檢身)

 

자기의 허물은 살피고, 남의 허물은 보지 않는 것은 군자다. 남의 허물은 보면서 자기의 허물은 살피지 않는 것은 소인이다. 자신을 점검함을 진실로 성실하게 한다면 자기의 허물이 날마다 제 앞에 보일 토이니, 어느 겨를에 남의 허물을 살피겠는가? 남의 허물만 살피는 자는 자신을 검속함이 성실치 못한 자다. 자기의 잘못은 용서하고 남의 허물은 살피며, 자기의 허물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남의 허물을 들춰내니, 이야말로 허물 중에 큰 허물이다. 자기의 허물을 능히 고치는 사람은 허물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만하다.

-見人之過, 不見人之過, 君子也-

-신흠,「검신편」

 

정민 , 『죽비소리』, 2005. 마음산책

 

 

 

60. 독서/서강대 장영희 교수

 

청소년들에게 문학의 힘을 알려 주고 싶다는 장영희 교수가 아끼는 책은 무엇일까? 그녀가 늘 곁에 두고 있는 책은 멜빌(H.Melville, 1819~1891)의 『백경(Moby Dick)』(1851)이다. 박사 학위 논문을 따기 위해 손에서 놓지 않았던 책이며,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늘 펼치는 책이기도 하다. 『백경』은 머리가 흰 거대한 고래에게 한쪽 다리를 읽은 뒤 복수를 위해 그 고래를 쫒아가는 에이햅 선장의 이야기다. 그녀가 이 책을 아끼는 이유는 운명에 순응하지 않는 주인공 에이햅 때문이다.

“에이햅 선장이 고래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이유는 단지 고래를 잡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힘, 나를 운명으로 이끄는 그런 힘에 한번 도전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백경』에 등장하는 유명한 구절 가운데 이런 게 있어요. ‘이 고래는 내게 마분지 가면이다. 이 가면 뒤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나를 운명적으로 누르고 있다. 그래서 그 운명을, 그 가면을 벗겨 보겠다. 그 가면을 벗겨 보면 그 위에 아무것도 없어도, 그 뒤에 어떤 실체가 없어도 그래도 한번 벗겨 봐야 목적을 달성할 것이다.’ 그 대목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운명에 대한 도전입니다. 결국 그 운명 앞에 쓰러진다고 해도 도전하는 자체, 싸움하는 과정 자체에 의미 있는 것이죠.”

소설에 등장하는 에이햅 선장처럼 그녀는 운명에도 도전하며, 하루하루를 ‘생에 단 한번의 날’처럼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교과서 집필과 수업, 암 투병까지 넘어야 할 산이 첩첩이 쌓여 있지만, 그 모든 것이 그에게는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다가온다고 말한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책을 읽는 일이 그만큼 그녀에게 힘이 되기 때문이다.

 

* 저서 : 장영희, 『문학의 숲을 거닐다』

 

『고교 독서평설』, 지학사, 2005년 11월호, 12~13쪽에서.

 

 

 

 

 

 

 

 

 

 

 

61. 가재미/문태준

 

김천 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 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빡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 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바라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波浪)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을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累代)의 가계(家系)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 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 호흡기로 들어 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 준다.

-문채준, 「가재미」, <현대시학>, 2004년 9월호.

 

* 이 시는 2004년 한 해 동안에 발표된 작품 가운데 동료 시인과 평론가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시’로 선정한 작품이다. ‘그녀’는 지난 해 돌아가신 큰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이 시를 썼다고 함.

* 문태준(1970~), 김천시 봉산면 태화리가 고향임.

 

* 시가 있기에 우리의 추억은 더욱 비옥해지며, 희망 또한 선명해지지 않던가. 시인 안도현(1961~)이 『그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에서 한 다음 말이, 새삼 마음속에 긴 여운을 남긴다.

“ 시를 읽어도 세월은 가고, 시를 읽지 않아도 세월은 간다. 그러나 시를 읽으며 세월을 보낸 사람에 비해 시를 읽지 않고 세월을 보낸 사람은 불행하다. 시 읽기가 새롭고 다양한 세계에 대한 하나의 경험이라면, 시를 읽지 않는 사람의 경험은 얕아서 찰방거리고 추억은 남루할 테니까 말이다. 추억이란 세월의 축적이기 때문이다.”

『고교 독서평설』, 지학사, 2005년 11월호, 173~177쪽에서.

 

 

 

62. 콜럼부스

 

1492년, 콜럼부스와 그의 선원들은 바다에서 길을 잃고 이질 설사에 걸려 고생하다가 마침내 육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곳 사람들에 의해 구조되었다. 사실 그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대륙이 그를 ‘발견’한 것이었다. 콜럼부스의 표현을 빌리면, 그곳 원주민들은 ‘ 피부가 검지도 희지도 않고, 키가 무척 크고 잘생겼으며, 건강한 몸을 지니고’ 있었다. 인도 동쪽에 도착했다고 믿는 그는 그곳 사람들을 인디언이라고 불렀다. 얼마 후 그는 그곳이 인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원조를 받기 위해 본국의 여왕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인도땅에 도착했음을 거듭 강조했다. 그렇게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은 착오와 거짓말로부터 시작되었다.

콜럼부스 일행이 처음 맞닥뜨린 카리브 해의 타이노 족 원주민들은 두 팔을 벌려 그들을 환영했다. 집으로 데려가 휴식을 취하게 하고, 음식과 선물을 대접했다. 뜻밖의 환대를 받은 콜럼부스는 이방인을 친절하게 대접하는 것이 인디언들의 오랜 전통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그들이 자신을 신으로 여기고 있다고 오해했다. 타이노 족의 친절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콜럼부스는 첫 도착 후 페르티난도 왕과 이사벨라 여왕 앞에 전시하기 위해 인디언 10명을 붙잡아 스페인으로 보냈다. 그리고 2년 뒤에는 5백 명의 인디언들을 노예로 팔기 위해 배에 실어 보냈다. 하지만 그들 모두 항해 도중에 병으로 죽었다. 그것이 종족 말살의 신호탄이었다.

1493년 콜럼부스는 17척의 배에 무기와 병사들을 가득 싣고 어메리카 대륙으로 다시 돌아왔다. 사람을 붙잡아 노예로 파는 스페인 상인들을 이미 경험한 카리브 해 원주민들은 더 많은 배가 도착 했다는 소식을 듣고 공포에 질렸다. 몇몇은 대륙의 열대 우림 속으로 달아나고, 나머지는 자신들이 살던 섬을 떠나 필사적으로 섬에서 섬으로 몸을 피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 앞에 놓인 비극적인 운명을 피할 수가 없었다.

히스파니올라 섬(하이티와 도미니카 섬)의 추장 하투아이 역시 가족들을 데리고 쿠바로 피신하다가 스페인 병사들에게 붙잡혔다.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기를 거부했다는 ‘죄’로 그는 화형에 처해졌다. 화형대 위에 섰을 때 그에게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 프란체스코 교단의 사제가 그에게 로마 카톨릭으로 개종하면 영생을 보장할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져 온갖 고문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사제는 대답을 기다렸다.

하투아이는 차분한 어조로 “그럼 천국에도 스페인 사람들이 있는가?” 하고 물었다. 사제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하투아이는 말했다.

“잔인무도한 종족이 한 명이라도 살고 있는 곳에는 난 결코 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는 기꺼이 화형대의 연기로 사라졌다.

1494년 그 지역에서 황금이 발견되면서부터 사태는 더 악화되었다. 금광을 보호하기 위해 더 많은 군대가 들어왔고, 타이노 족의 저항이 만만치 않자 콜럼부스는 유럽 인 한 명이 죽으면 타이노 족 백 명을 죽이라는 포고령을 내렸다. 14년 동안에 무려 300백만 명이 넘게 죽었다. 50년 뒤 스페인 관리가 행한 인구 조사에 따르면 불과 200 명만이 살아남아 있었다. 콜럼부스 시대의 중심적인 역사학자 카사스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토착민들에게 저지른 잔인한 행위들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집단으로 목을 매달고, 불태우고, 아이들의 시체를 개에게 던져 주었다.

금강에 끌려간 원주민 노동자들은 호미에 불과한 도구로 갱도를 파야 했고, 수천 명이 병과 굶주림으로 사망했다. 여자들 역시 스페인 정복자들의 양식을 대기 위해 들판에서 하루 종일 힘든 노동을 해야만 했다. 그 결과 유아 사망률이 급증했다. 석 달 만에 7천 명의 아이들이 사망했다. 라스 카사스는 자신이 기록한 것은 ‘내 눈으로 목적한 참상의 100분의 일도 안 된다’고 고백했다.

아직 유럽 인들을 경험하지 못한 내륙의 원주민들은 스페인 병사와 상인들이 밀려오자 전통에 따라 ,그 외지인들에게 음식을 대접했다. 그리고 그들이 무엇보다 황금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기꺼이 자신들이 갖고 있는 금붙이들을 선물했다. (중략)

아즈텍의 수도로 진군한 코르테스의 군대 역시 원주민들로부터 금은으로 된 장신구들을 선물받고 거의 광적으로 변했다. 아즈텍의 연대기가 그 광경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원주민들이 스페인 사람들에게 황금으로 된 깃발과 목걸이 장식들을 선물했다. 그러자 그들은 기쁨에 넘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들은 원숭이들처럼 금붙이를 높이 쳐들고 펄쩍펄쩍 뛰는가 하면 아예 그것들을 깔고 앉기까지 했다. 마치 그것들이 그들에게 새 생명을 주고 가슴에 빛을 주는 것처럼. 그들은 마치 굶주린 돼지처럼 그것들에 덤벼들었다. 황금 깃발을 뜯어 공중에 펄럴이며 바보처럼 소리를 질러 댔다. 그들이 내지르는 소리는 야만인 그 자체였다.”

곧이어 아즈텍 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금과 은을 빼앗기 위해서 대량 학살이 저질러졌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불과 이틀 만에 아즈텍의 수도는 폐허로 변했다. (중략)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스페인 사람들에 이어 속속 도착한 유럽 이주민자들과 새로 들어선 미국 정부 역시 똑같은 잔학 행위를 계속했다. 북남미 전역에서 인디언들을 제거하기 위해 마을을 불사르고. 인디언 머리 가죽을 잘라온 자들에게는 상금을 내리고 생화학전까지 펼쳤다.

크라크 족은 한때 미국 남부에서 가장 큰 부족에 속했다. 1800년에 한 지역에 사는 부족의 인구가 2만이 넘었다. 하지만 그들은 앤드루 잭슨(미국 7대 대통령)이 이끄는 군대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으며, 그것은 인디언 역사에서 가장 피비린내 나는 학살이었다. 불과 두세 달 사이에 백인 군대는 2천 명의 남자, 여자, 아이들을 죽이고 마을과 들판을 불질렀다. 그리고 탈라푸사 강에서 또다시 7천 명을 죽였다.

인간과 자연이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던 조화로운 세계 속으로 백인 정착민들은 전염병을 선물했다. 그것들은 원주민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질병들이었다. 백인 침입자들이 들어가기도 전에 그들의 훌륭한 우군인 전염병이 먼저 대륙을 휩쓸었다. 그래서 막상 두 종족간의 접촉이 이루어졌을 때는 인디언들의 숫자가 이미 10분의 1로 줄어들어 있었다.

 

류시화 ,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2003. 감영사, 287~291쪽.

 

 

 

 

 

 

 

 

 

 

 

 

 

63.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

- 오히예사의 삼촌

 

얼굴 흰 사람들은 가슴을 갖고 있는 않은 게 분명하다. 그들은 자기 부족의 어떤 사람을 하인으로 부린다. 그렇다. 인간을 노예로 만들기까지 하는 것이다. 우리 인디언은 사람을 노예로 부리는 것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얼굴 흰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 그들은 하인들을 다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해 오래전에 그들의 몸에 검은 칠을 해놓은 것 같다. 그래서 이제 하인들은 자신들과 똑같은 피부색의 아이들만 낳게 된 것이 틀림없다.

얼굴 흰 사람들은 삶의 목표를 오로지 더 많이 소유하는 것, 더 큰 부자가 되는 것에 두고 있다. 마침내 우리가 말을 듣지 않자 군인들을 보내 강제로 땅을 빼앗았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아름다운 땅으로부터 쫓겨났다.

얼굴 흰 사람들은 정말로 특이한 자들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하루를 여러 시간으로 나누고, 한 해를 여러 날로 쪼갠다. 그들은 모든 것을 그런 식으로 나눈다.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해 가치를 따지고, 끝까지 이익을 추구하며, 마침내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쓸모없는 것이라 여긴다. 그들은 아마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그들의 대추장은 그들이 살고 있는 땅과 물건들에 대해 세금을 물린다고 들었다. 아무 것도 소유하고 있지 않아도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매년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인디언들은 그런 법 아래선 도저히 살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전투를 할 때도 병사들을 여러 계급으로 나누며, 일반 병사들만 영양떼처럼 앞으로 내몰려져 전투를 벌인다. 그들이 그런 방식의 전투를 하게 되는 것은 개인의 용기와 정당한 목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강요에 의해 싸움터에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인디언들은 그들을 물리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특히 그들이 낯선 지역에 있을 때는 인디언 전사 한 명이 많은 수의 병사를 거뜬히 물리칠 수 있다.

얼굴 흰 사람들은 은행이라는 큰 집에 돈을 맡기고 가끔씩 이자를 붙여 찾아간다. 그러나 우리 인디언에게는 은행이라는 것이 없다. 우리는 돈이나 담요가 남으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 주며, 필요할 때는 그들에게서 얻어다 쓴다. 주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는 은행인 셈이다.

우리가 보기에 그들은 삶의 기준을 돈에다 두고 있으며, 진실과 거짓조차 돈 앞에서 그 위치가 뒤바뀐다. 죽음 앞에서도 진실을 말하는 우리 인디언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진리에 대해 잘 설명하고, 진리가 적혀 있다는 책을 늘 지참하고 다닌다. 그러나 그들만큼 진리와 동떨어진 행동을 하는 자들도 없다. 만일 인디언 부족 내에 그러한 자가 있었다면 당장 부족 밖으로 추방당했을 것이다.

우리는 진리의 책이라는 걸 가져본 역사가 없으며, 누가 어떤 진리를 말했다고 해서 그것을 책에다 적어 놓고 찬양하고 다니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삶이 곧 진리이며, 진리가 곧 삶이다. 진리로부터 멀어진 삶은 죽음이며, 그런 삶을 사는 자에게는 진리의 책도 아무 소용없다.

 

류시화 ,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2003. 감영사

 

 

 

 

64. 메이플라워

 

북쪽으로는 이로쿼이 족과 남쪽으로는 포와탄 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은 부족들이 남부 뉴일글랜드(미국 북동부의 코네티커트, 매사추세츠, 로드 아일랜드, 버몬트, 메인, 뉴햄프셔 등 6개주) 지방의 해안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1620년 12월 21일, 이 부족들 중 하나인 왐파노그 족 마을로 배 한 척 미끌어져 들어왔다.

그 배의 이름은 오월의 꽃, 메일플라워였다. 하지만 이름과는 거리가 멀게 그 배는 다 낡고 악취가 풍기는 180톤급 선박으로, 노르웨이로부터 생선과 기름을 비롯해 온갖 냄새나는 화물들을 실어나르던 배였다. 배 갑판 아래. 어둡고 메스꺼운 공간에는 102명의 승객이 발 디딜 틈도 없이 타고 있었다. 기록에 적힌 대로 ‘영국의 성이 아니라 오두막에서 살다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바로 청교도라고 불리는, 영국 식민지의 전위대였다. 그들은 매우 엄격한 종교적 규율을 설교했기 때문에 청교도라 불렀으며, 자신들이 믿는 대로 살기 위해 영국을 떠나 새롭게 낯선 대륙으로 이주해 온 것이었다.

왐파노그 족 인디언들은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몸을 떨며 그 배가 플리머스라고 이름 붙여진 바위 해안에 상륙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하느님을 믿는 청교도들과 인디언들의 만남은 불행히도 반가움의 악수로 시작되지 않았다. 인디언들의 모습을 발견한 청교도단의 목사 한 명이 배 위에서 구식 소총인 머스켓 총을 발사했다. 왐파노그 족 사람들은 황급히 숲 속으로 피했다. 그렇게 첫 접촉은 적대적인 총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총성은 그날 이후 거북이 섬에서 하느님의 자녀들에 의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청교도들은 곧 육지로 진격했으며, 비옥한 땅과 ‘온갖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아름다운 샛강’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해 겨울, 많은 눈이 동부 해안에 내렸기 때문에 청교도들은 인디언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태였다. 통나무집을 짓는 법을 몰라 그들은 나뭇가지에 흙을 발라 벽을 쌓고 풀로 엮은 가파른 지붕을 얹었다. 구멍이 숭숭한 이 집은 너무 추어 살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이듬해 4월 배가 떠날 때까지 메이플라워 안에서 생활해야만 했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배에서 내려 몰래 인디언 마을로 잠입해 먹을 것을 훔쳐갔다. 인디언들은 그 사실을 다 알면서도 묵인했다. 얼마나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훔쳐가겠는가 하고, 인디언들은 동정을 표시할 뿐이었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인디언 사회에서는 먹을 것을 훔치는 것은 범죄가 아니었다.

배 안에서의 비좁고 불결한 생활은 곧 심각한 질병으로 이어져 괴혈병, 폐렴, 결핵으로 청교도들 절반이 목숨을 잃었다. 마사소이트 추장이 이끄는 왐파노그 족 인디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 나머지 절반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인디언들은 그들에게 언덕배기에 옥수수 심는 법과, 강에서 물고기를 유인해 잡는 법을 가르쳤다. 청어를 제물로 바쳐 땅을 비옥하게 하는 의식까지도 일러 주었다.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납치되어 유럽으로 팔려갔다가 극적으로 돌아온 한 인디언은 그동안 익힌 영어로 이 새 이주자들의 입과 귀가 되어 주었다. 청교도들은 당연히 그를 ‘하느님이 보내 준 특별한 도구’로 여겼다.

원주민들의 아낌없는 도움을 받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 이주자들은 큰 강을 따라 플미머스 식민지를 세우기 시작했다. 작업은 곧바로 진행되었다. 대포를 설치하고, 공동주택을 지었으며, 각자 구획을 정해 땅을 나눠 가졌다.

왐파노그 족 인디언들은 활과 화살을 내려놓고 이 새로운 정착민들과 평화 조약을 맺었다. 부족의 추장 마사소이트는 백인들로부터 한쌍의 칼과 비스켓, 그리고 독한 물 한 병(위스키)을 선물받았다. 그로부터 40년 뒤 추장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왐파노그 족은 단 한 차례도 이 조약을 깨뜨리지 않았다.

더 많은 이주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한 소노에는 성경을, 다른 손에는 머스켓 총을 들고서 그들은 빠른 속도로 마을과 도시를 건설해 나갔다. 영국뿐만 아니라 포르투칼, 아일랜드, 네들란드, 스웨덴에서까지 이주자들이 밀려왔다. 집을 짓고 옥수수를 심고 가축을 키우고 새로운 마을을 세우기 위해서는 더 많은 땅이 필요했다. 백인 정착민들은 인디언들로부터 헐값에 땅을 사들이거나 아니면 막무가내로 그들을 밀어냈다.

마사이트 추장은 우정과 평화를 실천하자는 조약을 끝까지 지키며, 많은 땅을 백인들에게 내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땅에 대한 소유 개념이었다. 백인들은 인디언들이 내준 땅을 자기들 소유라고 주장하며 울타리를 박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인디언들의 시각은 달랐다. 땅을 제공한 것은 백인들도 먹고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으며,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땅을 함께 나눠쓰자는 뜻이었다. 무엇보다도 땅을 개인이 소유한다는 생각을 인디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류시화 ,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2003. 감영사

 

 

 

 

 

 

 

 

 

 

 

 

 

 

 

 

65.이 대지 위에서 우리는 행복했다 -사고예와타

 

이 대지는 우리의 조상들이 위대한 정령으로부터 받은 것이며, 조상들은 우리의 자식들을 위해 우리에게 이 대지를 물려주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곳과 헤어질 수가 없다.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은 신성한 땅이다. 이 곳의 흙은 우리 조상들의 피와 유해로 이루어져 있다. 이 드넓은 평원에 위싱턴의 얼굴 흰 대추장이 긴 칼과 총으로 무장한 병사들을 보내 인디언들을 쓰러뜨렸다. 흰구름 추장이 그토록 용감히 싸웠던 저 언덕배기에는 우리의 많은 전사들이 잠들어 있다.

형제여! 한때 우리 부족의 자리는 넓었고, 당신들의 자리는 매우 좁았다. 그러나 이제 당신들의 부족은 거대했으며, 우리에겐 담요 한 장 펼칠 땅밖에 남지 않았다. 당신들이 우리의 대지를 다 차지한 것이다. 그런데도 당신들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이제 자신들의 종교까지 강요하고 있다.

형제여, 계속해서 내 말을 들으라. 당신은 말한다. 당신은 신의 마음에 들도록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우리에게 보내진 사람이라고. 그리고 이 시간 이후로 당신들의 종교를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척 불행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또 한 당신은 말한다. 당신들의 종교는 옳고, 우리의 것은 틀리다고.

그 말이 맞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우리는 당신들의 종교가 위대한 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들었다. 만일 그 책의 내용이 당신들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라면, 신은 마땅히 우리에게도 그 책을 내려주었을 것이 아닌가? 아니, 우리뿐 아니라 우리의 조상들에게도 그 책에 대한 지식과 올바른 이해를 심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만 당신의 말을 통해 그것에 대해 들었을 뿐이다. 얼굴 흰 사람들에게 수없이 속아 온 우리가 어떻게 그 말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당신은 말한다. 당신이 따르는 그 길만이 신을 믿는 유일한 길이라고.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 만일 그런 식으로 단 하나의 종교만 존재한다면, 왜 당신들 얼굴 흰 사람들은 종교에 대해 그토록 의견이 다른가? 당신들 모두 그 책을 읽을 수 있는데, 왜 서로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가? 우리는 도무지 그 점을 이해할 수가 없다.

당신은 당신의 종교가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종교라고.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 또한 종교를 갖고 있으며, 그것 역시 조상 대대로 그 자식들에게 전해져 내려왔다. 그 종교는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에게 세상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가르치고. 서로 사랑하라 이르며, 서로 기대어 살아야 한다고 일깨웠다. 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변치 않는 마음을 가지라고 가르쳤다.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은 종교에 대해선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종교란 사람 개개인과 신과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형제여! 신은 당신과 나 모두를 만들었지만 우리 둘 사이에 큰 차이를 두었다. 얼굴도 다르게 만들고 관습도 다르게 만들었다. 당신들에게는 기술 문명을 주었지만, 우리에게는 그것에 대해 눈을 튀워 주지 않았다. 우리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다른 많은 것들에 대해서도 신은 차이를 있게 했다. 따라서 종교 역시 그렇지 않겠는가? 신은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에게는 얼굴 붉은 사람들의 세계에 어울리는 종교를 주었다. 신이 잘못 판단할 리 없다. 신은 자신의 아들들에게 무엇이 가장 적합한가를 알고 있으며, 우리는 그 판단에 만족해 왔다.

형제여! 위대한 정령이 우리 모두를 만들었다. 우리는 당신의 종교를 파괴하거나 빼앗을 의도가 전혀 없다. 당신 역시 그런 의도를 가져선 안 된다. 우리는 단지 우리 자신의 종교를 원할 뿐이다. 검은 코트를 입은 자들은 우리에게 집을 짓는 법과 농사 짓는 법을 가르치려 들고,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설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인디언들은 언제나 농사를 지어 왔으며,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갖고 있다 해도 검은 코트를 입은 자들은 결국 우리의 종교와 문화를 빼앗을 것이며, 끝없는 불행을 안겨 줄 뿐이다. 당신들은 우리의 아이들을 데려가 당신들의 학교에서 가르쳤다. 그들을 교육하고 당신들의 종교를 가르쳤다. 그 아이들은 그후 가족에게로 돌아왔지만, 더 이상 인디언도 백인도 아니었다. 그들이 배운 기술은 사냥에는 아무 쓸모가 없고, 우리의 문화와도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형제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쓸모없는 욕망에 길들여져 있었다. 이 숲 속에서는 알려져 있지도 않은 악의 씨앗들을 당신들의 도시에서 들어마신 것이다. 언제나 술에 취해 있고, 방탕하며, 인디언들로부터는 무시당하고, 얼굴 흰 자들로부터는 멸시당한다. 어느 쪽 가치관도 갖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얼굴 흰 정착민들보다도 정직하지 않고, 어쩌면 ,훨씬 더 나쁜 물이 들었다.

 

류시화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2003. 감영사

 

 

 

 

 

 

 

 

 

 

 

 

 

 

 

 

 

 

 

66. 생텍쥐페리

 

1. 경험을 통해 보건대 사랑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함께 같은 방향을 볼 때 생겨난다.(바람과 모래와 별들)

 

2. 사랑은 기도의 훈련이고, 기도는 침묵을 위한 훈련이다.(사막의 도시)

 

3. 사랑은 창고에 저장해 둔 물건처럼 아무 때나 쉽게 꺼내어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설레는 가슴이 전제되어야 한다.

당신이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서 받은 선물이 사랑이 아니듯이 당신의 유쾌한 마음도 단지 눈에 보이는 풍경 때문이 아니라 힘들게 위로 올라왔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있는 힘을 다해 산을 올라갔다는 것 때문에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다.(사막의 도시)

 

4. 사랑은 그 대가를 바라지 않을 때 진정 빛을 발한다.(사막의 도시)

 

5. 오직 신뢰만이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어떤 일에서는 신뢰할 수 있지만 다른 일에서는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신뢰가 아니다. 신뢰가 있는 사람은 언제나 믿음직한 사람으로 남는다.(사막의 도시)

 

6. 친구란 무엇보다도 상대를 내 마음대로 조종하거나 이용하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다.(사막의 도시)

 

7. 지난 과거를 물고 늘어지려는 자는 어리석다. 과거란 화강암 조각처럼 단단하여 깨뜨릴 수도 바꿀 수도 없는, 이미 완전하게 지나가 버린 것이다.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을 애써 꺼내려 하지 말고 너에게 주어진 오늘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라. 다시 불러올 수 없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 거기에는 단지 과거라고 새겨진 도장이 찍혀 있을 뿐이다.(사막의 도시)

 

8. 미래를 미리 내다보려 하지 말고, 미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야 한다. 마치 시간이 지나면서 가지를 하나씩 내뻗고 자라나는 나무처럼 말이다. 나무는 현재의 순간순간에 충실하면서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자라날 것이다.

 

생텍쥐페리 지음/유혜자 편역,『우리가 정말 사랑하고 있을까』, 웅진닷컴, 2003.

 

 

 

 

 

67. 억새꽃(『한강』 10권에서)

 

 

단풍과 억새꽃은 서로 북돋워주는 조화 속에서 가을산을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다. 그들이 시샘이라고는 모르고 그다지 사이가 좋은 것은 머지않아 서로에게 닥칠 똑같은 운명을 알아서인지도 모른다. 차가운 북풍을 타고 겨울이 닥쳐오면 그들은 어찌할 수 없이 삶을 마감해야 한다. 곱고 고운 단품들은 낙엽이 되어 어디론가 휩쓸려가야 하고, 순백으로 풍성하게 부풀었던 억새꽃들은 거센 바람에 꽃씨들을 날려 보내며 뼈만 앙상하게 남게 된다. 단풍들은 한해살이를 끝내는 마지막 삶이라 노을처럼 그리도 찬란한 것이고. 억새꽃들은 긴긴 날들을 오래오래 참다가 꽃 중에서는 마지막으로 피는 꽃이라 들국화처럼 청초하면서도 쓸쓸한 것인지도 모른다.

억새꽃의 아름다움은 혼자 피는 것이 아니라 무리를 이루는 데 있고,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고 쓸리고 나부끼고 출렁이면서 하얀 꽃들의 파도를 이루는 데 있었다. 억새들은 그 가늘고 긴 키의 호리호리한 몸매를 서로 서로 의지해 가며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도 부러지거나 꺾이는 일 없이 낭창낭창한 허리로 바람결을 타며 오히려 더 환상적인 군무를 이루어냈다. 굽이치고 솟구치고 자지러지고 너울거리는 억새꽃들의 하얀 춤사위는 그 어느 꽃도 흉내낼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조정래, 『한강』, 10권. 해냄, 2003, 29쪽

 

 

 

 

 

 

 

 

 

 

 

 

 

 

68. 열하일기(1)

 

7월 2일에서

오후에는 심심하기에 밖에 나가 사잇길을 거닐었다. 수수밭 속에서 별안간 한 방 총소리가 들렸다. 주인이 바쁘게 뛰어나가 보니 밭 가운데 웬 사람이 한 손에 총을 들고 한 손에는 돼지 뒷다리를 끌고 점방 주인을 노려보면서 성이 나서 소리를 친다.

“어째서 이놈의 짐승을 밭에 들어가도록 놓아두었담!”

점방 주인은 얼굴에 무안하고도 당황한 빛을 띠고 공손히 사과를 한다. 그자는 피투성이가 된 돼지를 끌고 가 버렸다. 점방 주인은 얼에 빠진 것처럼 우두커니 서서 한숨만 거듭 쉰다. 나는,

“저자가 잡은 돼지는 뉘 집에서 기르던 돼지요?”

하고 물으니, 점방 주인은

“우리 집에서 치던 겝니다.”

한다. 나는,

“짐승이 어쩌다가 남의 밭에 들어갔다손 치더라도 수숫대 한 대 다친 데라고는 없거든, 어쩌자고 남의 짐승을 함부로 막 죽일 수야 있겠소? 임자는 응당 돼지 값을 물리겠지?”

하니, 점방 주인은,

“웬걸요, 물리다니요. 우리 단속을 못한 것이 이쪽 불찰이니깐요.”

한다. 대체 강희 황제는 농사를 끔찍이 소중히 여겨 마소가 곡식을 밟으면 곱절을 물리고 짐짓 짐승을 놓은 자는 곤장 예순 대를 친다. 그리고 돼지가 밭 가운데 들어가면 밭 임자가 그 자리에서 잡아도 방목한 자는 임자라고 나서지를 못한다고 한다. 다만 수레 다니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어 수레가 진탕을 만나면 밭 사이로 빠져나오게 되므로 밭 임자는 항시 길을 손질하여 밭을 보살핀다고 한다.(86-87쪽)

 

대체로 가마의 법식은 우리 나라 것과는 판이하다. 먼저 우리 나라 가마의 결함을 말하고 보아야 참말 가마 제도를 똑똑히 알 수 있다. 우리 나라 가마는 한 개 누운 아궁이라고나 할까. 가마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애초에는 가마를 만들 벽돌이 없으므로 고임대 나무로 바치고 진흙으로 쌓아 소나무 통장작을 때어 가마를 굳히는데, 우선 굳히는 비용이 많이 든다. 가마는 길기만 하고 높지는 않으므로 불꽃이 타오르지 못하고, 불꽃이 타오를 수 없고 보니 불길이 고르지 못하고, 불길이 고르지 못하고 보니 불에 가까운 기왓장은 깨지고, 불에서 먼 놈은 잘 구워지지 않을 염려는 크다. 사기나 오기나 할 것 없이 무릇 옹기점의 가마란 죄다 이런 따위다.

소나무 장작을 때는 방법도 또 같은 꼴이다. 소나무 송진 불길은 다른 장작보다도 불길이 세다. 소나무는 한번 베면 다시 돋지 않는 나무로 옹기점을 한번 잘못 만나고 보면 사방의 산은 발가벗게 되고 백 년을 걸러 하루아침에 없애게 되매 옹기점은 또다시 소나무 있는 곳을 따라서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이것은 벽돌 가마 만드는 방식이 한번 잘못된 탓으로 온 나라의 좋은 재목이 날로 없어지는 셈이요, 옹기점으로서는 날로 곤경에 빠지고 있다. (중략)

우리 나라 옹기점들은 먼저 가마 궁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큼직한 소나무 산판을 끼지 않으면 옹기점을 못 벌이는 줄만 안다. 질그릇은 없앨 수 없는 물건이요, 소나무인즉 한정이 있는 물건이니 부득불 먼저 가마 제도부터 고쳐 양편이 다 이롭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오성 이항복과 노가재는 함께 벽돌의 이로운 점을 설명하면서도 가마 제도에는 자세하든 못하였으니 애석한 일이다. 혹은 말하기를, 수수깽이 삼백 줌이면 한 가마치 땔나무로서 벽돌 8천 장을 구울 수 있다고 한다. 수숫대 길이는 발 가웃쯤이요, 엄지손가락만큼 굵으니, 한 줌이면 네댓 대이므로 수수깽이로 땔나무를 한다면 불과 천 여대로 근 만 장 벽돌을 얻게 된다.(88-89쪽)

 

7월 5일에서

우리 나라 온돌은 언제나 내를 토하고 고루 덥지 못하니 이는 오로지 굴뚝목의 불찰이다. (101쪽)

 

7월 9일에서

처음으로 한족 여자들을 보는데 모두 전족을 하고 궁혜를 신었으나 인물은 모두 만족 여자보다 못하다. 만주 여자들은 인물이 다들 잘 났다. (117쪽)

 

박지원 씀, 리상호 옮김, 『열하일기상』, 보리, 2004.,

 

 

 

 

 

 

 

 

 

 

69. 열하일기(2)

 

7월 15일에서

우리나라의 상류 인사들 사이에서 춘추대의를 위하여 중국을 떠받들고 오랑캐를 배척한다고 떠드는 자들은 백 년을 하루같이 내려오면서 가위 장관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마는 중국을 떠받드는 것도 제 탓이요, 오랑캐도 제 탓일 것이다. 오늘의 형편을 본다면 중국의 성곽과 궁실과 인민이 다 그대로 남아 있고 도덕과 산업, 경제가 전이나 다름없고 최씨, 노씨, 왕씨, 사씨의 씨족이 없어지지 않았고 주돈이, 정호와 정이, 장재, 주희의 학문이 그대로 남아 있고 하, 은, 주 삼대 이래로 현명한 제왕과 한, 당, 송, 명의 발달된 법률과 밝은 제도라 조금도 변함이 없다.

오랑캐로 부르는 오늘의 청조는 무엇이든지 중국의 이익이 될 만하고 그것으로써 오래 누릴 수 있는 일인 줄 알기만 할 때는 억지로 빼앗아 와서라도 이를 지켜 냈고, 만약 본래부터 있던 좋은 제도가 백성에게 이롭고 국가에 유용할 때는 비록 그 법이 오랑캐로부터 나왔다손 치더라도 주저 없이 이것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더구나 삼대 이래 현명한 제왕들의 법도와 역대 국가들이 가졌던 고유한 원칙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옛날 성이인 ≪춘추≫를 지을 때는 그 본의가 중화를 떠받들고 오랑캐를 배척함에 있을지언정, 나는 아직 오랑캐가 중국을 손아귀에 넣었다고 분개하여 중국의 제도로써 숭앙할 만한 알맹이까지 아울러 배척하라는 ≪춘추≫를 보지 못했다. 지금 사람들이 참으로 오랑캐를 배척하려거든 중국의 발달된 법제를 알뜰하게 배울 것이요, 자기 나라의 무딘 습속을 바꿔 밭 갈고 누에 치고 질그릇 굽고 쇠 녹이는 야장이 일을 비롯하여 공업을 고루 보급하고 장사의 혜택을 넓게 하는데 이르기까지 모두가 배우지 않을 것이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열 가지를 배울 때에 아녁은 백 가지를 배워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나라 백성들에게 이익을 주어야만 할 것이다. 우리나라 백성들의 튼튼한 준비 앞에 저들의 굳센 갑옷과 날카로운 병장기가 맥을 쓰지 못하게 될 때에야만 비로소 중국에는 볼 만한 것이 없다고 잠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나는 원래 삼류 인사다. 내가 본 장관을 말하리라. 깨진 기와 조각이 장관이요, 냄새나는 똥거름이 장관이더라. 왜? 깨진 기와 조각은 천하가 버리는 물건이다. 그러나 동리 집을 둘러싼 담장 어깨노리 위로는 깨진 기왓장을 두 장씩 마주 붙여 놓아 물결 무늬를 놓기도 하고 네 쪽이 안으로 합하면 동그라미 무늬가 되고 네 쪽을 밖으로 등을 대어 모아 붙이면 옛날 엽전의 구멍 모양을 이룬다. 이과 조각들은 서로 맞물려 알쏭달쏭 뚫린 구멍들이 안팎으로 마주 비치면서 별별 무늬가 다 놓이고 보니, 한번 깨진 기와 쪽을 내버리지 않아 천하의 문채는 벌써 여기 다 있지 않은가? 동리 집들의 문전 뜰에는 형세가 닿잖고 보니 벽돌은 깔 수 없고 오색 빛깔의 유리 기와 쪽과 냇가에서 둥굴고 반들반들한 조약돌을 주워다가 얼기설기 서로 맞추어 꽃 무늬, 나무 무늬, 새 무늬, 짐승 무늬를 놓아가면서 깔아 놓아 비가 와도 땅이 질 걱정이 없이 만든다. 한 번 자갈과 조약돌을 내버리지 않으니 천하의 명화는 다 여기 있지 않은가.

똥오줌이란 세상에서도 가장 더러운 물건이다. 그러나 이것이 거름으로 쓰일 때는 금싸락 같이도 아끼게 된다. 길에는 버린 재가 없고 말똥을 줍는 자는 오쟁이를 둘러메고 말꼬리를 따라다니고 있다. 이렇게 모은 똥을 거름간에다 쌓아 두는데 혹은네모 반듯하게, 혹은 팔모가 나게, 혹은 육모가 나게, 혹은 누각 모양으로 만들고 보니 한 번 쌓아 올린 똥거름의 맵시를 보아 천하의 문물 제도는 벌써 여기 벗젓이 서고 있음을 볼 수 있겠다.

그러매 나는 힘차게 말할 수 있다. 기와 조각, 조약돌이 장관이라고, 똥거름이 장관이라고. 하필 성곽과 연못과 궁실과 누각과 점포와 사찰과 목축과 광막한 벌판, 자욱한 수림의 꿈속 같은 풍광만을 장관이라고 부를 것인가? (227-229쪽)

 

박지원 씀, 리상호 옮김, 『열하일기상』, 보리, 2004.,

70. 자산어보

 

이같은 비판 의식은 최근에 발견된 정약전의 『송정사의(松政私議)』에서 날카롭게 드러난다. 그는 중앙 정부의 감시를 받는 요시찰 인물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단호한 어조로 당시의 소나무 정책이 백성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음을 고발하고 있다.

 

백성들이 살아서는 돌아갈 집이 없고, 죽어서는 몸을 눕힐 관이 없으며, 물에는 배가 없고, 일상생활에 연장과 도구가 없다면 어찌 하룬들 변란이 없을 수 있겠는가. 대저 소나무 벌목은 금지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공자나 안연이 지금 세상에 산다고 가정해 보자. 그들이 부모상을 당하고도 송금법 때문에 관을 만드는 예법을 폐하려 하겠는가. 공자나 안연조차도 범하지 않을 수 없는 법을 백성들에게 시행하려 해선 안 된다. 이미 나라는 소나무를 가꿀 힘이 없어 좋은 땅을 잔뜩 가졌으면서도 몽땅 불모지를 썩혀 두고 있다. 이는 내다 버리는 것이나 다를 바 없으니 차라리 백성들에게 넘겨준들 무슨 잘못이 되겠는가. 백성들이 열심히 노력하여 작은 산에도 나무가 자라게 된다면 큰봉산(나라에서 나무 베는 것을 금지하던 산)에서 도벌하는 일도 자연히 사라지게 될 테니 나라에서는 오히려 이익이 될 것이다. 그리고 산을 백성에게 맡긴다 해도 그들의 산에 나무가 있다면 다급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베어 쓰는 것을 결코 아깝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자고로 백성이 풍족하면 군주도 풍족한 법이다. 따라서 백성들에게 산을 나누어 주는 것은 위와 아래가 함께 이익을 얻는 방책이다. 일찍이 송정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남쪽으로 귀양살이 온 후 더욱 문제가 시급함을 느낀다.

 

간추린『송정사의』의 내용이다. 다산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이 논설을 통해 정약전은 소나무를 베지 못하게 한 송금 정책의 모순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나무가 없는 땅은 물을 저장하지 못하고, 물을 저장하지 못하는 땅은 황폐해져 사막이 되기 마련이다. 이것이 현대 생태학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정약전의 고찰은 참으로 탁월한 데가 있다. 더욱이 정약전은 규제와 처벌이라는 소극적 관리로부터 나무심기의 동기를 제공하는 적극적 관리로 발상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기까지 하다.

 

정약전 원저, 손택수지음『자산어보』, 아이세움, 2006, 120~121쪽.

 

 

 

 

 

71.돈키호테

 

산양치기 소녀 마르셀라의 말 :

정숙한 여인에게 아름다움은 저만치 떨어져 있는 불꽃, 혹은 예리한 칼날 같아서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면 데이지도 베이지도 않을 것입니다. 명예와 정절은 영혼을 더욱 더 아름답게 꾸며주는 것이니, 이런 것이 없는 육체는 비록 아름답더라도 아름답게 보일 수 없는 법입니다. 만일 정절이라는 것이 육체와 영혼을 좀더 아름답게 가꾸어주는 미덕이라면 왜 아름다움으로 인해 사랑받는 여인이 그저 재미로, 그리고 강압적으로 달려드는 남자의 의도에 의해 정절을 잃어야만 하는 겁니까? 저는 자유롭게 태어났고, 또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 초원에서의 고독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 산속의 나무들이 곧 제 친구이며, 투명한 시내물이 제 거울입니다. 저는 이 나무들에게 제 생각을 이야기하고 시냇물에게 제 아름다움을 보여주지요. 저는 저만치 떨어져 있는 불꽃이며, 멀리 놓여진 칼입니다. 제 외모를 보고 사랑에 빠진 이들에게 말로써 정신을 차리게 해 왔지요. 그리고 욕망은 희망으로 지탱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저는 그리소스토모에게 아무런 희망도 준 적이 없고, 그건 다른 남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니 제 잔혹임이 그를 죽였다고 하기에 앞서 그의 집착이 그를 죽였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그의 생각이 옳았기에 제가 그에게 화답이라도 했다고 책임을 지우려 하시니, 지금 그의 묘자리를 파고 있는 바로 이 자리에서 그가 저에게 마음을 털어놓았을 때 저는 그에게 영원히 혼자 살고 싶다는 점고 오로지 대지만이 제 은둔의 열매를 얻을 것이며, 아름다움의 전리품을 가질 거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합니다.(169~170쪽)

 

아시다시피 저는 재산이 많기에 남의 재산을 탐내지 않습니다. 저는 자유로우며 구속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지요. 이 사람을 속이고 저 사람에게 구애하지 않으며, 한 사람을 농락하고 다른 이의 마음을 유혹하지도 않았답니다. 이 마을의 양치기 여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산양을 돌보는 것이 제 기쁨이지요. 결국 이 산이야말로 제 갈망의 대상이며, 만일 제가 이곳에서 발걸음을 내디뎌 제 영혼이 본향을 찾아가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천국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함일 것입니다.(171쪽)

 

돈키호테의 말 :

-행운이라는 것은 숱한 불행 속에서도 빠져나갈 여지를 주기 위해 한 쪽 문을 열어놓고 있는 법이란다. (185쪽)

-제 천직이 약한 자를 돕고 비리에 괴로워하는 자들의 원수를 갚으며 배신을 응징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주십시오. (205쪽)

-명심해라, 산초야. 다른 사람보다 더 노력하지 않고서 다른 사람보다 더 훌륭해지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222쪽)

-불행한 가운데서도 그 불행을 함께 아파해줄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법이다. (298쪽)

-불행했던 순간을 회상한다는 것은 또 다른 불행을 하나 더 덧붙이는 것에 다름 아니다.(300쪽)

-노력은 행운의 어머니(642)

 

-나는 이 세상의 부조리를 타파하기 위해 태어났다. (706쪽)

 

산초 판사의 말 : (판사란 배불뚝이란 뜻)

-질투가 지배하는 곳에는 미덕이 살 수 없고, 인색한 짓이 있는 곳에는 관용이 있을 수 없습니다. (659쪽)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일한 만큼 얻는 법입니다. 인간인 이상 누구나 교황도 될 수 있고, 섬의 영주도 될 수 있습니다. (660쪽)

 

* 여인(도트테아)

자고로 여자들이란 아무리 못생겨도 남들에게 아름답다는 소리를 들으면 항상 기뻐하게 마련이다.( 378쪽)

 

* 산양지기

산은 학자를 키우고, 목자의 오두막은 철학자를 담고 있다. (692쪽)

 

* 돈키호테

이때 돈키호테가 도토리 한 주먹을 집어들고는 유심히 들여다보며 천천히 말했다.

“행복한 시절, 행복했던 수세기를 황금 시대라 이름 붙였던 이유는 오늘날 이 철기 시대에 높이 평가되는 황금이 복된 그 시기에 쉽게 구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 시절의 사람들은 ‘네 것, 내 것’이라는 두 단어를 모르고 살았기 때문이었소. 저 성스러운 시대에는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했지요. 그 누구라도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서는 달콤하게 익은 열매를 아낌없이 주는, 잎이 무성한 떡갈나무에 손만 뻗으면 되었소이다. 막은 샘물과 바위 틈에 흐르는 강물은 사람들에게 맛 좋고 투명한 물을 충분히 제공해주었지요. 바위 틈새와 움푹 파인 나무 구멍에는 부지런하고 분별력 있는 꿀벌들이 그들의 공화국을 건설하고 가장 달콤한 노동의 풍요한 수학을 아무런 대가 없이 누구에게나 제공했소. 거대한 코르크나무들은 순수한 호의로 자신의 넓고 큰 껍질을 벗겨내어 거친 기둥으로 지탱되어 있는 가옥들의 지붕을 씌우기 위해 사용되었소. 그것은 오로지 하늘의 눈, 비를 막아주기 위한 것이었다오. 황금 시대에는 모두가 평화로웠고, 우애가 넘쳤으며 조화로웠지요. 아직 밭가는 쟁기를 가지고 자연의 자애로운 땅 속을 열어보거나 건드릴 엄두도 내지 못했소. 대지는 강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그 비옥하고 젋은 대지 곳곳에서 그 당시 땅을 소유하고 있던 인간들을 실컷 먹이고, 영양분을 주고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을 제공했다오. 단순하고 아름다운 목녀들은 초록색 우엉과 덩굴 잎새로 엮은 것을 걸쳐 몸을 가리고 계곡에서 계곡으로, 언덕에서 언덕으로 돌아다녔지요. 액세서리 같은 건 없었습니다. 그녀들이 걸친 장식이란 것은 요즘 여자들이 사용하는 티라나의 자주색이나 다양한 방법으로 세공한 자주색 비단이 아니라 자연의 낙엽들이었소. 사랑을 나눌 때도 인위적인 언어의 현란함을 추구하지 않고, 자신이 느끼는 그대로 단순하고 소박하게 표현했지요. 진실과 소탈함 속에는 사기와 속임수, 악이 끼어들지 않았다, 이겁니다. 정의도 본래의 의미를 그대로 지니고 있어서 자신의 혜택이나 이득을 얻기 위해 오늘날 그토록 정의를 더럽히고 교란시키고 탄압하는 사람들도 감히 정의를 뒤흔들거나 모독할 수 없었소. 법관의 머릿속에 성문법의 개념도 존재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재판할 일도 재판받을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었소. 아까도 말했듯이 정숙한 여인들도 낯선 사람의 뻔뻔스러움과 음탕함이 자신을 욕보일까 두려움 없이 혼자서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었으며 여인이 정조를 잃는 일은 스스로 원해서 일어났을 뿐이요. 지금 우리의 이 가증스러운 시대에는 그 옛날 크레타의 미로와 같은 새로운 미로 속에 여인을 숨겨두거나 가둬둔다 해도 안전하지 않소. 사악한 열정에 들뜬 사랑이라는 전염병이 작은 틈새로 스며들어와 그녀의 은신처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오. 시간이 흐르면서 악 또한 더욱 퍼져나갔으므로 편력 기사단을 창설하여 처녀들을 지키고 과부들을 돕고 고아들과 빈민들을 구제하기에 이른 것이오. 친애하는 산양 치는 목동 여러분들, 내가 바로 편력기사단에 있는 사람이요. 여러분이 나와 종자에게 베풀어주신 후한 대접과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편력기사에게 호의를 베풀어야 할 의무가 있소이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그러한 의무도 알지 못한 채 나를 환대하고 호의를 베풀어주었으니 그것이야말로 내가 편 나의 모든 호의로써 당신들에게 감사하는 이유라오. (130~132쪽)

 

<작품 해설>에서

* 미겔 데 세르반데스는 1547년 9.29일 마드리드 근교 알칼라 데 에나레스 시에서 외과의사인 아버지 로드리고 데 세르반데스의 일곱 자녀 중 네 번째로 탄생. 정규교육을 거의 받아본 적이 없음.

1616년 4월 23일 운명. 같은 날 셰익스피어 타계.

 

* 세르반데스는 기사소설이라는 형식 속에 돈키호테의 광기를 이용하는 형태로 교묘하게 당시 사회를 비판하면서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다. 토마스 모어의『유토피아』에 감명을 받은 세르반데스는 종교의 자유, 남녀 간의 사랑의 자유, 세습제도의 폐지, 정의로운 재판 등을 꿈꾸었으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는 모험을 감행한다.

 

* 돈키호테가 오늘날까지도 최고의 소설로 손꼽히는 이유는 우리 인간에게 꿈을 심어주는 모습이 그 안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가 꾸는 꿈이 물거품으로 끝날지언정 한순간이라도 꿈과 희망이 없다면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상실할 것이다. 『돈키호테』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꿈과 이상을 위하여 모험을 하지만 끊임없이 좌절하고 실패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실존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코 꿈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기에 우리 인간의 내면에는 산초 판사와 같은 현실주의적 사고도 존재한다. 꿈과 실제, 이상과 현실을 상징하는 돈키호테와 산토 판사는 바로 우리의 양면적 모습이자 실존인 것이다.

 

작가 세르반데스의 위대한 가치는 그의 작품을 유머라는 가장 인간적인 감각으로 가득 채웠다는 점에서도 발견된다. 세르반데스의 위대함은 심각하거나 직설적인 방법으로 사회를 비판하지 않고, 당시 부조리한 사회구조와 귀족들의 형태를 유머러스하게 묘하하여 그들을 풍자하고 조소를 보냄으로써 문학적 진가를 발휘한 데 있다.

 

『돈키호테』, 미겔 데 세르반데스 지음/박철 옮김, 2004.

 

 

 

 

 

 

72. 유토피아

 

-유토피아란 ‘어디에도 없는 곳’이란 뜻이다. 즉 현실에 존재하지 않은 이상향(理想鄕)이 유포피아이다.

-인간의 상상력에 의한 현실비판이야말로 유토피아의 진실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유토피아는 영국의 산업혁명 초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했다. 이 당시 영국사회에서는 실업자가 속출하는 등 사회적 혼란이 일고 있었다.

-토마스 모어는 1478년 2월 6일 영국의 보통법원 판사인 존 모어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문> 중에서

- 절도범을 처벌하는 이 방법은 공평하지도,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도 못 됩니다. 처벌로서는 너무 심하고 억제책으로서는 매우 비효과적입니다. 가벼운 절도죄는 사형을 받을 만큼 큰 죄가 못 되며 또 그들이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훔치는 길밖에 없다고 한다면 아무리 극형을 가해도 절도를 멈추게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당신들 영국인은 나에게 학생들을 선도하기보다는 학생들에게 매질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무능한 교장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러한 끔찍한 처벌을 가하는 대신, 모든 사람들에게 살아갈 길을 마련해 주어 누구든 도둑이 되어서 마침내는 시체가 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보다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31쪽)

 

-노동조건

성별과 관계없이 시민이면 누구든지 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농업입니다. 농사는 어린이 교육의 필수과목입니다.

 

시포그란투스의 주된 업무는 빈둥거리고 노는 자가 없이 누구나 자신의 직업에 열중하도록 감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치 짐마차를 끄는 말처럼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을 시켜서 시민을 피로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노예와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토피아 이외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는 노동자들은 바로 이러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토피아에서는 하루에 여섯 시간 일을 합니다. 오전에 세 시간 일하고 점심을 먹고 두 시간 휴식을 취한 후, 오후에 세 시간 일하고 저녁을 먹습니다. 그들은 여덟시에 잠자리에 들며 여덟 시간 잠을 잡니다. 그 나머지 시간은 게으름이나 방종에 허비하지 않고 건전하게 이용한다는 조건으로 기호에 따라 자유롭게 보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육을 더 받는데 이 여가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일찍 공개 강좌가 열리고 있습니다. 학술연구를 위해 선발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참석하는 것은 자유 의사이지만, 계급이나 남녀의 구별없이 강좌를 들으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각기 자기의 취향에 맞는 강좌를 듣습니다. 그러나 원한다면, 이 여가를 자신의 본직에 이용하는 것을 금하지는 않습니다. 지적활동에 흥 미가 없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하고 있으며, 오히려 이러한 행동은 사회를 위한 봉사라고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중략)

그런데 특별한 주의가 필요한 사항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들은 하루에 여섯 시간만 일하므로 틀립없이 필수품이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은 반대입니다. 여섯 시산으로 충분하며, 오히려 안락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초과 생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다른 나라세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직상태에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그 이유를 이해할 것입니다. 우선 다른 나라에서는 실제로 여자들(전체 인구의 50%를 차지하고 있는)이 모두 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자들이 일을 하는 나라에서는 대신 남자들이 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직자라든가 수도회의 수도사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일을 얼마나 합니까? 게다가 부자들, 특히 일반적으로 귀족으로 알려진 지주들과 그들의 하인들, 빈둥빈둥 놀기만 하는 무사들이 있습니다. 끝으로 아주 건장하고 병이 없으면서도 게으름을 피우려는 구실로 꾀병을 앓고 있는 거지들을 꼽아야 합니다. 이러한 자들을 모두 헤아려 볼 때, 소수의 사람들이 인간에게 필요한 것을 실제로 생산하는 데 종사한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이러한 제도 밑에서 무엇이든지 풍족하고 또 전 주민에게 모든 것이 균등하게 분배되기 때문에 가난한 자나 거지는 있을 리 없습니다. (중략) 모두가 피차간에 물자를 그냥 주고받기 때문에 섬 전체가 하나의 대가족과 같은 분위기입니다.

 

<도덕적 철학>

하늘에 빛나는 온갖 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보다 희미한 작은 돌조각에 매혹되고, 또 질이 좋은 양털로 짠 옷을 입었다고 해서 유토피아인들보다 더 잘났다고 뽐내는 바보스런 사람들을 유토피아인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양털 옷이라 하더라도 그 양털 옷을 처음 입고 있던 것은 양인데, 양털의 좋은 옷을 입었다고 해서 양보다 더 훌륭해질 수 없습니다.

또한 유토피아인들은 현재 세계 도처에서 인간이 금과 같은 전혀 쓸모없는 물건을 인간보다 더 가치 있게 여기며 인간보다도 더 존중하게 여기는 까닭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 결과 납덩어리나 나무토막만한 지능밖에 갖지 못한 돌대가리가 또 행실마저 바르지 못한 자가, 단지 우연히 금화를 많이 소지하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자기보다 훨씬 우수한 선량하고 현명한 사람들을 마음대로 부려먹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불운이나 법의 속임수에 의해서 금화가 갑자기 가장 비천한 하인배의 손으로 넘어가면, 현재의 소유주는 자신이 부리던 하인의 하인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유토피아인들이 가장 추하게 생각하는 것은 부자에게 빚을 지거나 머리 숙여야 할 하등의 이유도 없으면서 단지 그가 부자라는 점 때문에 그를 존경하는 어리석은 태도입니다.

유토피아인들이 이러한 사상을 갖게 된 원인의 하나는 이러한 어리석은 제도와는 정반대의 사회제도 밑에서 양육되었다는 데 있으며 또 하나는 그들의 독서와 교육입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어릴 때부터 특별한 재능과 뛰어난 지혜, 그리고 각별한 학구열을 가졌다고 인정된, 각 도시의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든지 하루 종일 학문에만 전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어린이들은 일반교육을 받으며 또한 대부분의 남녀는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평생 동안 여가를 이용하여 독서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유토피아에서는 모든 것을 자기 나라 말로 가르칩니다. 이 나라 말은 풍부한 어휘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이 나라의 말은 발음이 유쾌하며 다감합니다. 다소 사투리가 있기는 하지만 전국적으로 한 가지 표준어를 쓰고 있습니다.

-결혼 풍습

여자는 18세가 되어야 결혼할 수 있고 남자는 4년을 더 기다려야 합니다.

 

유토피아인들의 경우에 있어서는 이러한 주의가 특히 필요합니다. 다른 이웃 나라와는 달라서 그들은 일부일처(一夫一妻制)를 엄수하기 때문입니다.

 

토마스 모어/원창엽 옮김, 『유토피아』, 홍신문화사,1994초판, 2004, 8쇄

 

 

 

73. 백치(하)에서

 

나는 나무 옆을 지나가면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요. 도대체 그런 사람들은 뭘 보고 다니는 거지요? 사랑하는 사람과 얘기를 나누면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아, 내가 모든 걸 표현해 낼 능력이 없음을 한탄할 따름입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얼마나 아름다운 사물이 펼쳐지나요? 심지어 그런 것을 잊고 살아가던 사람조차 그 아름다움을 발견해 내곤 하지 않습니까? 어린아이를 바라보세요. 신이 선물한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보세요. 풀잎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바라보세요. 당신을 쳐다보며 사랑하고 있는 눈을 바라보세요…….

공작은 이렇게 말하며 꽤 오랫동안 서 있었다.

 

도스또예프스끼 지음/김근식 옮김,『백치』(하),도서출판 열린 책들, 2003, 신판5쇄, 851쪽,

 

 

 

 

 

 

 

 

 

 

 

 

 

 

 

 

 

 

 

 

74. 안찰사 손변렴의 판결(역옹패설에서)

 

 

지추 손변렴이 경상도에 안찰사로 파견되어 있을 당시 누이와 서로 소송하는 이가 있었다.

동생이 누이에게 딸과 아들이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는데 누님 혼자서만 유산을 차지하고 어찌 아들에게는 나누어 줄 수 없느냐고 하자 누이는 아버지 임종시에 모든 가산(家産)을 내게 주셨으나, 네게 주신 것은 검은 옷과, 갓 하나씩과, 미투리 한 켤레, 종이 한 묶음뿐으로 아버지가 쓰신 증서(證書)를 간직하고 있으니 어찌 어길 수 있느냐고 하여 송사(訟事)는 몇 년이 지나도록 판결이 나지 않았다.

공이 두 사람을 불러 앞에 놓고 부친 임종시의 모친의 행방을 물으니 그 이전에 이미 돌아가셨다고 대답하였다.

“너희는 각각 나이가 몇 살 때였느냐?”

고 묻자 누이는 이미 출가한 후이고 동생은 7,8세쯤이었다는 대답이었다. 이 말에 공이 타이르며 이렇게 말하였다.

“부모는 아들이나 딸을 똑같이 생각한다. 어찌 장성하여 출가한 딸에게는 후하고 어머니도 없는 7살의 아들에게는 박하겠느냐? 아마도 부모를 잃은 어린 아들이 의지할 곳은 누이뿐이니, 만일 유산을 손위누이와 똑같이 분배할 경우에는 혹시 누이의 사랑함이 지극하지 않거나 동생을 키우는 데 있어서 온전하지 못하지나 않을까를 염려한 것이다. 아들이 장성한 후에 이 종이로 소장(訴狀)을 작성하고, 검은빛 관을 쓰고, 검은 옷차림에 미투리를 신고 관가에 고소하면 장차 이 일을 판단해 줄 사람이 있을 것으로 생각함이니, 다만 그 네 가지 물건만을 남겨 준 것은 이러한 뜻이다.”

누이와 동생은 이 말을 듣고 느끼어 깨달아 서로 마주보며 우니, 공이 드디어 재산을 반씩 나누어 주었다. <참고> * 이제현은 ‘낙옹비설’로 읽는다고 함.

 

 

이제현,『역옹패설(櫟翁稗說)』, (주)신원문화사, 2004, 45~46쪽.

 

 

 

 

 

 

 

 

 

 

 

75. 선택(1)/이문열

 

혼란에 빠진 세대의 어머니에게

1.

어머니는 여인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크고 아름다운 이름이다. 여인의 가장 중요한 생산은 자녀이며 가장 위대한 성취는 그 양육이다.-우리는 오랫동안 그렇게 배워왔고 아마도 그것은 앞으로도 영원히 패할 수 없는 진리일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시대에 이르러 그 이름을 포기하는 여인들이 적잖이 세상에 생겨났다. 자식은 다른 생산으로 갈음되고 어쩌다 생산을 해도 그 양육에서는 어떤 성취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많은 젊은 여성들은 그런 관점과 사고야말로 진보적이라고 믿으며 한술 더 떠 그 실천을 여권(女權) 신장(伸張)과 연결짓기도 한다.(148쪽)

 

2. 그런데 문제는 지금 흔하게 토로되고 있는 출산 기피의 논리다.

(1) 요즘 젊은 너희의 말을 듣고 있으면 그런 종합과 절충은 너희가 어머니 되기를 거부하는 이유와는 거의 무관하다. 내가 너희들에게 읽을 수 있는 것은 다만 가치관의 전도도 오해된 여권과 벌거숭이 이기뿐이다.

너희 중에도 공부나 일을 핑계로 출산을 마다하는 이가 있지만, 앞서 말했듯 그것이 깊이 있는 사유와 성실한 검토고 조작의 혐의가 짙은 자기 성취의 논리에 혼란된 경우가 많아 보인다. 성취의 가망도 별로 없고 가치도 의심스럽지만 어머니 됨의 힘들고 고단함보다는 편안하고 겉보기가 그럴싸하다는 점에서 이루어진 가치관의 전도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머니란 이름과 맞바꿀 수 있는 가치과 요즘처럼 이리 흔할 수 있으랴.

 

(2) 남녀의 예속의 빌미가 되기 때문에 어머니 되기를 마다하는 논의도 있다. 곧 자녀를 낳은 것은 남성에게 인질을 내어주는 일이 되어 불만스러우면서도 남성에게 복종하며 살아야 하는 경우를 피하기 위해서라는 뜻이다. 너무 비관적인 예단이며 남녀의 관계를 대립적으로만 이해한 논의다.

사람의 수컷처럼 오래 자기 새끼에게 애정과 관심을 표명하는 동물의 수컷은 없다. 그것은 자녀의 또 다른 역할을 암시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남녀가 어울려 사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우리 삶의 양태라면 자녀보다 더 든든하게 양성(兩性)을 연결하는 고리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그 고리를 족쇄로만 이해하고 더구나 그 단절을 여성의 권리 신장과 연관짓는 논의는 어딘가 크게 어긋나고 비뚤어진 데가 있다.

 

(3) 출산으로 가사 노동의 양이 늘어나고 특히 양육의 수고로움은 오직 여성에게만 부하된다는 점에서 여성의 출산 기피를 설명하려는 이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가계 상속권의 문제에서처럼 남성에게 공정한 노동 분담을 요구할 근거는 되어도 출산 그 자체를 거부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4) 또 육아가 요구하는 잡다한 노동과 주의력의 집중이 어머니의 정신 세계를 제한하고 나아가서는 퇴행시킨다는 이유를 들어 출산을 꺼리는 여인들도 있다. 그들은 흔히 육아에 골몰한 상태를 아이처럼 바보가 되어간다고 표현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런 생각이 실로 바보스럽다. 육아에 가치를 부여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지식과 경험의 축적이며 여성을 어머니로 한 단계 성숙시키는 과정이다. 어쩌면 아이를 갖지 않은 여성들이 일터에서 주워들은 대단찮은 전문지식이나 거기서 이 사람 저 사람과 벌이는 시시껍절한 수작보다는 훨씬 가치 있을 수도 있는.

 

(5) 삶을 즐기고 누리는 데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주장되는 출산 거부는 우리 시대의 개인주의가 얼마나 천박해지고 타락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실례가 될 것이다. 기껏해야 성적인 쾌락이나 물질적인 이유를 대상으로 하는 부담을 들어 당당하게 자녀를 마다하는 그 주장에서는 개인주의나 편의주의를 넘어 인간성의 황폐까지 느껴진다.

 

(6) 출산이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현저하게 떨어뜨리기 때문에 싫다는 여자들도 있다. 여자의 매력을 성적인 방향으로만 국한시킨다면 어느 정도는 사실이고, 그걸 잃게 되는 것은 여성으로서는 쓰라림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처녀적의 매력만으로 일생 남성들로부터 음란스러운 눈길을 느끼며 살겠다는 뜻인데 그 억지스러움은 따로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거기다가 이미 결혼까지 해놓고 몸매가 망가진다고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주장을 들으면 그저 그 거대한 벌거숭이 이기가 아연할 뿐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의 시대에는 출산과 육아가 여성 개인의 선책 사항은 아니었다. 그것은 당연한 의무로서 거부는커녕, 신체적 결함에 따른 그 불이행조차도 여성이 내쳐지는 일곱 가지 죄악(七去之惡)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그 시대에도 회임의 거북함과 분만의 고통은 있었고, 새로운 생명을 이 땅으로 불러내는 모체의 주저와 불안도 있었다. 따라서 그것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내면적인 선택이 있어야 했다.(155~157쪽)

 

이문열,『선택』, 민음사, 1997.

 

 

 

 

 

 

 

 

 

 

 

 

 

76. 선택(2)/이문열

 

그런데 요즘 똑똑한 여인네들 중에는 제례의 의미를 승인하면서도 불평등한 노동의 분담을 들어 안주인에게 맡겨진 의무의 허구성을 지적하는 이가 있다. 아마도 의미와 관계하는 의식의 측면은 남자들에게 독점되고 여인네들에게 주어진 몫은 다만 제물의 준비라는 노동적 측면뿐이라는 점에 착안한 듯하다. 그리하여 더 나가면 봉제사(奉祭祀)의 소임 또는 남성들의 편의를 위해 고안된 여성 노동력 착취 구조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의미와 관계 없는 노동이 있는가, 더구나 제물은 정성의 구체적인 표현이다. 아마도 그 같은 논의는 노동을 지나치게 단순하고 비하시켜 이해한 데서 왔을 것이다. 가문을 통한 자아의 확대를 인정한다면 거기서 어떤 몫을 담당하든 제사는 주인된 이의 당연한 의무이고 권리이다.

어려움이 있다면 오히려 많은 것이 달라진 오늘날의 너희 삶에 제사가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정의하는 일이다. 지속적인 산아 제한은 종통(宗統)이나 가문의 형성을 어렵게 하고 제사도 친기(親忌)조차 없는 집이 많은 핵가족 시대를 열었다. 거기다가 제사의 종교적 의미마저 퇴색해 버린 이런 시대에 고색창연한 제사의 의미를 제대로 되뇔 수는 없다.

하지만 애써 찾아본다면 너희 시대라고 제사의 의미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뿌리를 되돌아보는 일, 너희들 배운이들이 즐겨 하는 말투를 따르면 자기 정체성(自己正體性)의 근거를 상기하는 작업쯤으로 쳐도 제사는 여전히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 그마저 생략되어 추모담으로만 남든 그러한 작업의 중요한 부분은 여전히 안주인의 몫이 된다.

그런데 있는 친기조차 더러는 신앙을 구실로, 더러는 낭비로 잘못 이해해 제사를 마다하거나 소홀히 하는 것을 보면 다음 세대가 실로 근심된다. 너희는 거창한 세계 시민을 길러낸다고 믿을지는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뿌리 없는 정신을 기르고 있을 뿐이다. 그런 시대에는 그런 사람들이 어울려 만드는 또 다른 한세상이 있겠지만, 알지 못할레라, 이미 뿌리가 없는데 어찌 열매 맺기를 바라리오.(133~135쪽)

 

이문열,『선택』, 민음사, 1997.

 

 

 

 

 

 

77. 가장 오래 가는 향기

 

어느 아름다운 날, 한 천사가 하늘에서 이 세상에 오게 되었다. 그는 자연과 예술의 다양한 광경들을 보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리고 해질 무렵이 되어서, 그는 금빛 날개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나는 빛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여기 왔던 기념으로 무엇을 좀 가져갈까?”

“저 꽃들은 얼마나 아름답고 향기로운가! 저것들을 꺾어서 골라 꽃다발을 만들어야겠다.”

시골집을 지나가며, 열린 문을 통해 누워 있는 아기의 미소를 보고 그는 말했다.

“저 아기의 미소는 이 꽃보다도 아름답다. 저것도 가져가야겠다.”

바로 그때, 소중한 아기에게 잘 자라고 입 맞추며, 그녀의 사랑을 샘물처럼 쏟아 붓는 한 어머니를 보았다. 그는 말하였다.

“아!. 저 어머니의 사랑이야말로 내가 모든 세상에서 본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저것도 가져가야겠다.!”

이 세 가지 보물과 함께 그는 진줏빛 문으로 날아갔다. 그는 그곳에 들어가지 전에 그의 기념품들을 점검해 보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름다운 꽃들은 ( 더 이상 아름답지 않게) 이미 시들어 버렸고, 아기의 미소도 사라져 버렸다. 단지 어머니의 사랑만이 그 본래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시들은 장미와 사리진 미소를 던졌다.

그리고서 문을 통과하는데, 그가 무엇을 가져 왔는가 보기 위해서 모여든 하늘의 천사들이 그를 환영했다. 그가 말했다.

“이것이 지상에서 내가 발견한 것 중 하늘까지 오는데 그 이름다움과 향기를 보존한, 유일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편집부 엮음,『선생님, 이야기해 주세요』, 도서출판 참, 1991.

 

 

 

 

 

 

 

 

 

 

 

78.우리는 형제들이다

-인디언 추장 시애틀의 연설문의 일부에서

 

시애틀은 미국 서부 지역에 살던 한 인디언 부족의 추장이었다. 1854년 미국 대통령 피어스가 이 인디언 부족이 오랫동안 살아온 땅을 백인 정부에 팔라고 제안했다. 물론 말이 팔라는 것이지 안 나가면 내쫓겠다는 통고문에 다름 아니었다. 글에 답한 시애틀 추장의 연설문 「우리는 형제들이다」는 오늘날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는데 그 중의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다.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대지의 온기를 사고팔 수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 대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 대지의 모든 부분이 신성한 것이다. 빛나는 솔잎, 모래 기슭, 어두운 숲 속 안개, 맑게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 이 모두가 우리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 신성한 것들이다. 나무 속에 흐르는 수액은 우리 홍인(紅人)의 기억을 실어나른다. 백인은 죽어서 별들 사이를 거닐 적에 그들이 태어난 곳을 망각해 버리지만, 우리는 죽어서도 이 아름다운 대지를 결코 잊지 못한다. 그 이유는 여기가 바로 우리 홍인의 어머니의 품속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지의 한 부분이고 대지는 우리의 한 부분이다. 향기로운 꽃은 우리의 자매이다. 사슴, 말, 큰 독수리, 이들은 우리의 형제들이다. 바위산 꼭대기, 풀의 수액, 조랑말과 인간의 체온, 모두가 한 가족이다. …… 물결의 속삭임은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가 내는 목소리이다. 강은 우리의 형제이고 우리의 갈증을 풀어 준다. 카누를 날라 주고 자식들을 길러 준다. 만약 우리가 땅을 팔게 되면 저 강들이 우리와 그대들의 형제임을 잊지 말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형제에게 하듯 강에게도 친절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 우리는 우리 땅을 사겠다는 당신들의 제의를 고려해 보겠다. 그러나 제의를 받아들일 경우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즉 이 땅의 짐승들을 형제처럼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미개인이니 달리 생각할 길이 없다. 나는 초원에서 썩어 가고 있는 수많은 물소를 본 일이 있는데 모두 달리는 기차에서 백인들이 총으로 쏘고는 그대로 내버려 둔 것들이었다. 연기를 뿜어내는 철마가 우리가 생존을 위해서 죽이는 물소보다 어째서 더 중요한지를 모르는 것도 우리가 미개인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짐승들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모든 짐승이 사라져 버린다면 인간은 영혼의 외로움으로 죽게 될 것이다. 짐승들에게 일어난 일은 인간들에게도 일어나게 마련이다.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 땅이 인간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땅에 속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만물은 마치 한 가족을 맺어주는 피와도 같이 연결되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은 생명의 거미줄을 짜는 것이 아니라 그 거미줄의 한 가닥에 불과하다. 그가 그 거미줄에 행한 일은 곧 자신에게 행한 일과 다른 것이 아니다. …… 그러므로 우리가 땅을 팔더라도 우리가 사랑했듯이 이 땅을 사랑해달라. 우리가 돌본 것처럼 이 땅을 돌보아 달라. 당신들이 이 땅을 차지하게 될 때 이 땅의 기억을 지금처럼 마음 속에 간직해 달라. 온 힘을 다해서, 온 마음을 다해서 당신들의 아이를 위해 이 땅을 지키고 사랑해 달라. 하느님이 우리 모두를 사랑하듯이. 한 가지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모두의 하느님은 하나라는 것을. 이 땅은 그에게 소중한 것이다. 백인들조차도 이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한 형제임을 알게 되리라.

 

류시화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2003. 감영사

 

79. 태백산맥(권8)

 

건국신화로부터 호랑이와 인연을 깊이한 한반도 땅은 그 형상이 포효하는 호랑이라고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 전설에 따르면 백두산을 머리로 하고 한라산을 꼬리로 하여, 두 산이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음은 한 생명체의 완결성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백두산에서 뻗어 내린 마천령산맥은 함경산맥과 엇갈리면서 호랑이의 목뼈를 이루고, 그 아래를 이어 받치며 남쪽으로 뻗친 낭림산맥은 그 꼬리를 감추듯 하면서 남쪽 끝까지 줄기차게 뻗어 내리고 있는 태백산맥과 더불어 등뼈를 이루었으며, 그 두 산맥에서 가지 쳐 서쪽으로 뻗어나간 강남산맥 적유령산맥 묘향산맥 언진산맥 멸악산맥 마식령산맥 광주산맥 차령산맥 노령산맥 소백산맥은 제각기 갈비뼈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산맥들 사이사이로 긴 흐름을 짓는 청천강 대동강 예성강 임진강 한강 금강 섬진강 낙동강은 다른 수많은 지류들과 함께 핏줄을 이루고 있었다. 이것이 어찌 단순한 말놀이일 수 있으랴.

생태학의 분류에 따르더라도 반도땅의 호랑이는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없는 고유한 종류라고 하지 아니한가. 산신령을 모시고 다니는 호랑이는 민속신앙 속에서 오래고 긴 세월에 걸쳐 이 땅의 사람들과 친교를 맺어온 사이이기도 했다. 반도땅의 그 기이하고 신묘한 형상으로 볼 때 일본놈들의 강압지배는 호랑이의 몸을 쇠사슬로 칭칭 동여맨 형국이었고, 해방과 함께 미국이 멋대로 그어댄 삼십팔도선은 호랑이의 허리를 동강내려는 무모한 몸짓이었다. 호랑이가 어찌 실수하여 쇠사슬에 묶이었다 하나 언제까지나 묶여 있을 리가 만무한 일이었다.

호랑이는 마침내 성을 내고 쇠사슬을 끊으려고 포효하기 시작했으니, 그것은 삼일운동을 시발로 하여 해방이 되는 그날까지, 세계식민지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도록 치열하고 끈질기게 전개된 민중들의 독립운동이었다. 그 꺼질 줄 모르는 저항투쟁을 두려워한 나머지 일본놈들은 반도땅이 포효하는 호랑이 형상이라는 전설을 꺼려 토끼로 둔갑시키는 조작극을 꾸몄다.

그리고, 그것으로도 안도할 수가 없어 명산이라는 명산은 다 찾아다니며 그 맥을 끊겠다고 산줄기마다 깊이 파서 쇠기둥을 박아 넣은 다음 흙으로 덮는 것도 모자라 두꺼운 시멘트땜질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민족의 정기나 기상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의 전설을 간직한 석상들을 일일이 깨부수는가 하면, 그런 바위들을 찾아내 산봉우리에서 골짜기로 굴려 내리는 짓을 자행했다. 미국이나 소련이 아니었더라도 일본놈들의 강압지배가 일시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은 반도땅의 기상을 일본놈들로서는 꺾을 도리가 없었기 때문인 것이다. 반도땅에서 뿌리내래고 살아온 사람들의 장구한 역사를 돌이켜볼 때 일본놈들이 가하는 수난쯤은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지닌 민족이었다.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저력에 받들려 장구한 역사는 엮어내린 것이며, 그 저력은 산 많고 평지 적은 악조건을 이겨내며 살아오는 동안 길러진 끈질긴 생명력이었다.

이제 호랑이는 잘린 허리의 아픔을 떼쳐내려고 다시 포효하고 있었다. 허리가 잘린 아픔으로 더는 살 수가 없는 호랑이의 몸부림에 반도땅 전체는 요동치고 있었다. 잘려진 허리를 잇기 위하여, 갈라진 민족이 하나가 되기 위하여 산골짜기 살골짜기마다, 들녘의 이곳저곳에서 피를 뿌리고 있었다. 산하가 얼어붙어가는 속에 찬바람에 휘말리는 비명들은 처절하고, 흰 눈 위에 뿌려지는 피는 더욱 처연하게 붉었다. 수십 마리 또는 수백 마리씩 무리를 이룬 까마귀떼들이 그 음산한 울음과 함께 검은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극성을 부렸다.

다시 옷깃을 여미고 생각하건대, 어인 연고로 반도땅은 세계에서 유일하다는 백두산으로 시작되어 그 모양을 그대로 닮은 한라산으로 막음되고 있는가. 백두산 천지에서 한라산 백록담까지 우리 눈에는 안 보이는 무지개다리가 하늘로 드러워지고, 백록담에서 천지까지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또 하나의 무지개다리가 땅속으로 이어져 크고 큰 동그라미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인가. 그 크고 큰 동그라미를 따라 이 민족의 정기는 순환되고, 생명력은 생성되는 것이 아니랴. 그러나, 그 누가 그 수수께끼를 풀 수 있으랴. 아무도 그 수수께끼를 풀 수 없으되, 끝과 끝에 의연하게 자리잡고 있는 서로를 닮은 두 산은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되고자 하는 염원을 대변하는 상징이 확실하고, 그 어떤 힘으로도 우리 민족을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상징이 뚜렸했다. (조정래,『태백산맥』권 8, 13~15쪽)

 

 

80. 원이 아버지에게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의 어린 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을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이 있다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서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 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 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병술년(1586년) 유월 초하루날 아내

 

-남편이 31세에 요절하자 “가시는 길에 읽어 보시라”며 남편의 관속에 넣어 둔 조선 중기(1586년) 한 여인의 한글편지가 우리의 가슴을 붉게 물들인다.

그녀는 관속에 편지와 함께 병든 남편을 낫게 해달라고 천지신명께 기도하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삼줄기와 함께 엮어 만든 신발과 어린아이(유복자)가 태어나면 줄 배내옷까지 넣어 남편의 넋을 위로했다.

경북 안동시 정상동 택지개발지구에 묻힌 고성 李씨 이응태의 부인이 쓴 것으로 후손들이 이장하는 과정에서 발견했다.

 

81. 현대사회의 문학적 전파와 수용

 

사회는 잠시도 쉬지 않고 변한다. 겉으로 보아서는 성숙이 지속되어 변화가 없는 것같이 보여도 내적으로는 간단없이 변해 간다. 더구나 격동하는 산업사회인 현대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격동적으로 변하고 있다. 그 변화가 복잡하고 다양하여 그 지향성을 가늠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산업은 첨단화되고 원자력은 가공스러워지고 우주시대로 들어간다고 하는데 그 지주가 될 정신적인 세계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니 이건 현대사회의 위기라고 안 할 수가 없다. 여기에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청량제를 투입할 필요가 생긴다. 그것은 물신주의 일변으로 치닫는 현대사회를 정신주의와 조화하여 새로운 미래를 지향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문학은 바로 이러한 현대사회를 구제하는 청량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반문화적 일탈 속에서 자아도취에 빠져서는 안 된다. 또한 실험이란 미명 아래 탈문화적인 혼란 속으로 빠져들어가도 안 된다. 고향에 돌아온 탕아가 어머니 품에 안겨 안식을 느끼듯 문학의 그늘 아래서 위안을 얻게 해야 한다. 그것은 문학이 화폐의 숭배와 첨단적인 산업에 예속되어 물신주의에 젖어 있고 조직체의 한 부품으로 전락된 인간에게 삶의 새로운 의미를 인지케 하고 인간성을 회복하고 옹호하여 그 날을 성취해야 하는 창조적인 삶의 의미를 자각케 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그것은 인간은 이 세상을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일회적인 인생임을 인식하여 그저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호의호식하고 즐기면서 시간을 낭비할 수 없을 것을 시나 소설 등 문학작품을 통하여 감동하고 내적인 충격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루 종일 늦게까지 같은 일을 반복하여 회사나 산업체 또는 사회라는 커다란 조직체의 한 파트로 움직이다가 귀가했을 때의 허전함과 외로움을 무엇으로 충족시킬 수 있겠는가? 여기에는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위로가 그것을 해소시킬 수 있고 운동이나 등산 같은 레저로도 해소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왠지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모성애나 사랑하는 사람의 애정은 안식이 되고 위안은 되지만 근원적인 삶의 구제는 되지 못한다. 여기에 삶의 존재의미를 구명하고 싶은 그것을 위하여 치열하게 현실을 살아가는 현장을 적나라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문학이 반려로 나타나게 된다. 시나 소설이든 들어 읽기만 하면 우리를 감동케 하고 상상적 체험으로 인생과 현실을 인식케 하고 세계관을 확대하게 한다. 말하자면 괴테가 말한 대로 문학작품은 우리를 감동시키고 내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순원의 「움직이는 성」을 읽고 사랑과 종교의 의미를 되씹어 보거나 박경리의 「토지」를 탐독하고 한말부터의 격동기에 우리 민족과 개인이 겪어야 하는 처절한 삶에 깊이 감동하기도 하며 유재용의 「누님의 초상」을 읽고 실향민의 한을 가슴 아파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문학은 현대사회의 질곡에서 인간성을 상실하고 방황하는 인간에게 인간성을 해복하고 총체적인 삶을 인식케 하고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감독케 한다. 그래서 바로 현대문학이 구제의 문학이 되고 변화시키는 문학이 되며 소설가가 성직자화 되어 간다. 이것이 바로 레저화 되어 가는 소비적인 문학을 인간의 구제를 추구하고 제의화하는 문학으로 변화시켜 삶의 지향성을 제시하는 문학의 교사적 역할의 강조라고 할 수 있다.

구인환, 『시조춘추』(2008 창간호), 한국시조문학진흥회, 50~52쪽.

 

82.웰빙

 

건강한 생활을 위한 ‘웰빙’은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일까?

첫째로, 자신의 영양 상태를 주목해라. 인간의 몸은 6개월을 주기로 재생된다.

당신은 잘 먹을 필요가 있다. 이 말은 곧, 매일 세 끼의 균형잡힌 식사를 뜻한다. 당신은 끊임없이 새로운 세포로 교환하고 있기 때문에 이는 매우 중요하다. 튼튼한 몸을 만들기 위해서는 과일, 채소, 기름기 없는 단백질, 여러 곡물, 그리고 건강식품의 섭취가 중요하다. 패스트푸드나 건강을 해치는 지방질과 녹말성 음식은 식단의 1/10로 줄이는 것이 좋다.

 

둘째, 자신이 무엇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확실히 알아차리고 이를 잘 극복해나가야 한다. 스트레스를 잘 이겨나가는 것은 건강의 핵심 요소이다. 이 스트레스를 어떻게 처리해 나가느냐에 따라 당신의 수명이 짧아질 수도, 길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스트레스의 종류에 따라 당신을 불안하게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활기차게 만들 수도 있다. 나쁜 스트레스가 오면 당신의 몸은 아드레날린과 같이 몸 속의 세포를 파괴시키는 독소를 분비할 수 있다. 좋은 스트레스도 아드레날린을 분비한다. 하지만 이 스트레스는 세로토닌이라는 물질을 분비하여 몸 속의 독소를 제거해 주기도 하고, 좀더 오래 살 수 있게도 도와준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스트레스가 아니겠는가.

 

건강에 있어서 웰빙을 잘 지키고 싶다면 우선 긍정적인 스트레스를 포함한 건강한 삶을 추구해야만 한다. 또한 이를 추구하려면 반드시 긍정적이고 밝은 생각을 가져야 한다. 긍정적인 정신상태는 당신의 마음을 안정시켜주고 건강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병을 좀더 빨리 키우고, 좀더 일찍 죽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들은 영적인 신앙을 갖고 있고 이를 실천하면서 산다. 기도를 하거나 명상을 하면 세로토닌이 나오는 걸 볼 수 있다.

이러한 긍정적인 삶을 살려면 반드시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해야 한다. 매일 아침 일어나 일하러 가는 것이 끔찍하게만 느껴진다면, 이는 당신의 건강에 반대로 악영향만 미치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무엇을 성취하고 싶은가에 대한 창조적인 생각들로 가득한 공부를 시작하고 싶다면, 이는 당신의 건강에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직업에 관해 생각할 때, 스스로에게 한번 질문해 보자. 나는 정말 이 일을 즐기고 있는가? 아니면 이 일 말고 다른 일이 더 하고 싶은가?

운동은 중요하다. 몸을 움직여 속에 쌓인 아드레날닌을 분비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지금 규칙적으로 하고 있는 운동이 없다면 아무것이나 한번 시작해 보라. 걷기, 수영, 댄싱, 요가 등 근육을 움직여주고 정신적 이완을 도와주는 운동이라면 무슨 운동이든지 당신의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것은 물론 그 스트레스를 이겨나갈 체력도 증진시켜 줄 것이다.

 

휴식을 취하라! 이 말은 곧 케케묵은 평범한 말처럼 들리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는 당신의 건강에 매우 중요한 것이다. 하루 8시간은 수면을 취해야 하며, 최소 하루 10분에서 20분은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당신의 정신이나 신체 모두 재생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계속해서 달리기만 한다면 당신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너무 힘이 들어 나가떨어질 것이고, 이건 스트레스 지수만 높이는 결과가 될 것이다. 끝에 가서는 앓기밖에 더 하겠는가.

 

알톤 로즈 지음, 『당당하고 현명한 서른 되기』,북랜드, 2005. 159~163쪽

 

 

 

83. 수삽석남(首揷石楠)

 

신라의 최항(崔抗)은 자가 석남(石南)인데 애첩이 하나 있었다. 그러나 부모가 금해서 만나지를 못했다. 그러다가 몇 달만에 최항이 갑자기 죽었는데 八일이 지나 밤중에 최항이 애첩의 집으로 갔다. 첩은 최항이 죽을 줄도 모르고 도리어 기꺼이 맞이했다. 최항은 머리에 석남(石楠)의 가지를 꽂고 있었는데 그것을 첩에게 나누어 주면서,

『부모님이 당신과 같이 사는 것을 허락하셨으므로 왔소』

하고 첩을 데리고 그의 집으로 돌아왔다. 최항은 담을 뛰어 들어가 새벽이 되어도 종무소식이었다.

집안 사람들이 나가서 보고, 온 이유를 물으니 첩은 자세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 집안 사람은 말하기를,

『최항이 죽은 지가 八일이나 되어 오늘 장사를 지내려고 하는데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시오?』

하였다.

『낭군께서 나에게 석남 가지를 나누어 꽂아 주었으니 이것이 바로 증거가 됩니다.』

했다. 이에 관을 열고 보니 시체의 머리에 석남 가지가 꽂혀 있고 이슬로 몸이 함빡 젖어 있으며 신도 신고 있었다. 첩이 그제야 죽은 줄 알고 통곡하며 자결하려 하니 최항이 곧 다시 소생했다. 그래서 二十 년을 해로하다가 죽었다.

 

* 석남(石楠) : 5월에 백색 또는 담홍색의 꽃이 핌.

* 출전 : 조선 중기 학자 권문해의 <대동운부군옥> 제8권. 뒤의 출처로, <수이전>을 들고 있음.

 

 

 

 

 

 

 

 

 

 

 

 

 

84. 장길산(3권)- 풍열 스님이 길산에게

 

요즈음 시속을 보아하니, 오히려 나는 보살도가 더욱 행해져서 불원간에 미륵이 나타나시라 믿는다. 전조 고려 적에는 부처님의 상(像)을 들고서 탐욕스런 승려들이 왕족과 권문 세도가의 발밑에 엎드려 아부 아첨하면서 기름지게 하였다. 관등 때에도 돈닢이 없으면 촛불 한 점 공양드릴 수가 없으며, 아프고 빈궁한 자에게는 목어 한번 때려주지 않고서 부처의 상으로써 나라를 지킨다 하였으니, 그것은 부처가 아니라 환술사(幻術師)가 환을 친 꼭두각시이며, 재물 도깨비이니라. 이제 아조(我朝)는 불교를 천시하고 왕궁에서 몰아냈었으며, 사도로서 멀리하는 바람에 겨우 중생들의 곁으로 돌아온 것이니라. 부처님께서는 당신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자들과 함께 계시니라. 천해진 부처, 권력자가 싫어하는 부처야말로 보살이 일어날 수 있는 중생의 불이 아니고 무엇이냐. 사랑[慈]의 실행이 없이 어찌 참선에만 잠겨 있어서 깨달음을 얻겠느냐. 계율만을 앞세우고, 사람들의 생활에는 눈을 돌리지 않는다면, 그 누가 따라오겠느냐. 깨달음이란 중생들과 사랑을 몸소 행하는 가운데에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지느니라. 농부가 피땀을 흘려서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김을 매다 보니 어느 결에 아, 이삭이 열렸구나라고 발견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깨달음을 위한 사랑이 아니라 사랑을 행하는 중에 깃들인 깨달음이다. 번뇌 없는 사랑을 행하며, 평등한 사랑을 행하며, 다툼이 없는 사랑을 행하며, 차별이 없는 사랑(內外不仁)을 행하며, 부서지지 않고 견고한 사랑을 행하며, 청정하고 끝없는 사랑을 행하며, 스스로는 방편에 따라서 사랑을 행하고, 진실한 마음은 깨끗하므로 감출 것 없이 사랑을 행하며, 조잡한 행위를 하지 않으므로 깊은 마음의 사랑을 행하며, 거짓이 없으므로 진실한 사랑을 행하며, 부처 되는 자의 즐거움을 얻게 하므로 편안한 사랑을 행하느니라. 이 모든 것이 보살의 사랑이다. 이런 사랑은 분별로써 아는 것이 아니라, 실행하는 도중에 있는 모든 마음 전체이니라.

 

황석영, 『장길산』3권. 창비, 2004 개정판 1쇄, 14~14쪽.

 

 

 

 

 

 

 

 

 

 

 

 

 

85.장길산(7권)-잠행

 

흉년이 돌아올 적마다 아이들과 노인들은 이곳 저곳에 내버려졌다. 기근 뒤에 살아남아 일을 할 수 있는 자들이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흉년이나 난이 일어날 적에 구멍 뚫린 시루는 아이들을 버리는 도구가 되었으니, 그 안에서 숨을 쉬며 짐승에게 먹히지 말고 고이 죽으라는 뜻이었다. 당시 북관에서는 맏이를 낳고 나서 그 다음에 나오는 아들을 죽이는 습속도 있었으니, 조정에서는 이러한 처참한 습속을 살기가 워낙 어렵기 때문이라고 시인하였다. 딸은 색상들이 사러 오면 많은 무명과 바꿀 수 있으나, 아들은 변방에서 군적에 올라 끊임없이 군포를 물어야 하고 부역에 시달리게 하는 액덩어리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정들기 전에 죽이려니 갓난아이 적에 생매장을 하는데, 아버지는 구덩이를 파고 어머니는 마냥 울어서 곡성이 아닌 밤중에 들판을 울린다는 것이었다. 장사가 나면 나라에서 알기 전에 스스로 죽여 없앤다든가 하는 일은 사실은 굶주림 때문에 생겨난 풍문일 따름이었다. 먹고 살기에도 힘든 집안에 아이가 생겨나면 어깨에 비늘이 돋친 아니가 나와서 나라를 근심하여 죽

황석영, 『장길산』7권. 창비, 2004 개정판 1쇄, 46~47쪽.

 

황해도는 어디를가나 논밭이 쓸쓸하고 촌락은 비어 있었다. 제 고장을 등진 사람들의 떠도는 모습은 차마 볼 수 없고 주민들 역시 불안에 떨고 있었다. 길거리마다 걸인들이 들끓었는데 늙은이로부터 아이들까지 여럿이 모여 떼를 지어 돌아다닌다. 갓난아기를 길가에 버리는가 하면 어미와 자식이 서로 길을 잃어 울고불고하는 광경이 비일비재하였다. 그들의 용모는 파리하기가 흡사 귀신이다. 아침 저녁으로 우리가 주막에서 음식을 먹을라치면 걸인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둘러싸고 한술만 달라고 사방에서 아우성이다. 눈뜨고 차마 볼 수 없으며 밥이 어찌 목구멍으로 넘어가리요. 만약 그들에게 남은 밥을 주면 그들은 형제간, 부부간에도 서로 조금도 사양함이 없었다. 다투어 한술이라도 더 얻어먹으려고 다투고 빼앗았다. 이런 형편에서 염치나 인륜 같은 것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었다. 힘이 센 자는 구걸하다가 얻지 못하면 주인에게 원한을 품고 밤에 몰래 불을 싸지르니, 집 가지고 사는 백성들조차 피해가 막심하였다. 실상 걸인들에게 줄 것이 없지만, 또 안 주자니 보복이 두려운 것이다. 결인들은 소, 말, 닭 등의 아무 가축이든지 닥치는 대로 잡아가며 명화적의 기습 때문에 새벽에 길 떠나는 것을 모두 삼가고 있었다. 어느 마을이든 외모가 번듯한 집이 있어 안에 들어가보면 밥을 해 먹은 지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이 농사철임에도 종자마저 다 먹어치워 사실상 폐농상태의 농가가 태반이다. 나물 캐는 사람들로 산야가 뒤덮여 있으며 겨를 구해다가 나물과 죽을 쑤어 배를 채웠다. 사람들은 부기(浮氣)가 떠올랐으며 사람의 사는 즐거움을 잃은 지 오래였다.

 

황석영, 『장길산』7권. 창비, 2004 개정판 1쇄, 67~68쪽.

86. 장길산(12권)-운주미륵

 

호남 전도는 토지가 비옥하고 바다를 끼고 있어 해산이 풍부한 고장이다. 특히 남해안에는 수백의 섬이 있어 예로부터 극변의 유배지로 널리 알려졌다. 전라도는 평야가 광대하고 관개가 훌륭하여 이곳에 풍년이 들면 팔도를 먹인다 하였으나, 예로부터 중앙에서 멀고 현달한 이가 적어 부임하는 수령들은 마음놓고 조세를 과하여 부역과 작료가 가혹하였으며 지방 서리배들의 농간은 극심한 고장이라 민란이 잦았던 곳이다.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살림엔 수심도 많다.

아리 아리상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문경새재는 웬 고개인고

굽이야 굽이야 눈물이 난다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지느냐

날 두고 가신님은 가고 싶어 가느냐

말은 가자고 네 굽을 치는데

님은 붙들고 아니를 놓네

님 사는 곳이라고 내 여기 왔지

칠산바다에 어선이 드고

월출산봉에 달이 솟아온다

오늘 갈지 내일 갈지 모르는 세상

내가 심는 호박넝쿨 담장을 넘네

물을 쓰면 돌만 남고

님은 가면 나 혼자 남는다

낼 날 좋으면 홍어잡이 갈란다

높은 산 올라가서 어둡도록 보아라

왜 왔던고 왜 왔던고

울고 올 길을 왜 왔던고

 

노래는 끝이 없고 정은 샘처럼 깊다. 남도로 가는 들판 가운데 영산강과 월출산이 있으니, 영산강은 담양 추월산에서 시작하여 장성 백암산 능주 여함산 장성 황룡강 담양의 관방천 화순의 지석강이 합수하여 나주벌을 거느리고 서남해를 흘러나가는데, 영암 월출산은 들판의 끝에 기이하고 아리따운 봉우리를 불꽃처럼 쳐들고 국토의 마지막 수문장처럼 서 있다. 영조조 삼년에는 변산반도와 월출산을 근거로 하여 유민들이 난을 일으켰고, 이어서 육년 뒤에는 전라도 인근 해역의 섬들과 진도 나주 일대에서 노비들이 들고일어났다. 절도의 노비들이야말로 역률에 따라 내쳐진 죄인들 중의 생존자들이었으니 그들이 어찌 새 세상에 대한 희망을 저버렸을 것인가. 인근의 능주 땅에는 후백제가 망할 무렵부터 전해내려오는 전설과 기묘한 석불들이 있었는데 대개 이러하였다.

능주의 야산과 산줄기가 겹쳐서 오불꼬불한 비산비야(非山非野)를 이루어 들판 가에 쑥 빠져 물러난 곳이라 예전부터 의외로 귀 빠진 골이다. 화순 남방에서 시작된 산줄기가 울타리처럼 싸고 흘러 보성 유치까지 닿는다. 또 한 맥은 남평 동남방에서 뻗어내려 능주와 두 겹의 산줄기를 이루어 곰재에서 만나고 장흥 쪽으로 빠진다. 두 겹의 산줄기 안에 천불산(千佛山) 협곡이 있으니 옛글에 나오는 대로 엄택곡부(俺澤曲部)가 분명하다.

월출산을 근거로 하여 관군에 맞서 싸워오던 후백제의 유민들은 들판 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산에서 포위된 채로 굶주리며 죽어가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은 자들이 천불산 계곡으로 빠져 스며들었다. 그들은 손바닥만한 야산과 야산 사이의 황토에 밭을 일구어 보리와 조를 심고 숨어 살면서 때를 기다렸다. 그들은 자신의 고향이 어디인지 부모형제가 어떤 이들인지도 알지 못하였다. 다만 기억하는 것은 나라에 대적한 죄를 지은 혈족의 잘못으로 남해의 섬 가운데서 천민으로 태어났다는 것뿐이었다. 그들은 어머니나 누이가 일에 지쳐 돌아와 거적 위에 쓰러져 잠들기 전에 속삭이며 해주던 이야기로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너는 네 아버지처럼 삼촌같이 다시 일어나 해방되어야 한다. 네가 못하면 네 자식에게 또 그 자식에세 이 말을 전해야 한다.

그들은 협곡 속에 숨어 살면서 미륵님의 계시를 들었다. 이 골짜기 안에 천불천탑(千佛千塔)을 하룻밤 사이에 세우면 수도가 이곳으로 옮겨온다는 것이었다. 도읍지가 바뀌는 새로운 세상, 그들이 나라의 중심이 되는 세상이 하룻밤 사이에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유민들은 새벽에 깨어 일어나 보성만에서 떠오르는 아침해를 보았다.

우리는 이곳에 서울을 세우리라고 미륵님께 서원합니다. 여기가 염부제가 되리라고 믿습니다.

그들은 황토뿐인 야산에서 바위를 찾으려고 산등성이를 넘어가고 들판을 달리고 강을 건넜다. 바위를 굴려오고 끌어오고 떠메고 오면서 그들은 북을 두드렸다. 집채만한 북을 골짜기 어귀에 걸어두고 산천이 떠나가라고 두드리면서 미륵상과 탑을 쪼아 세우는 노고를 온 세상에 알렸다.

세상의 모든 천민이여 모여라. 모여서 천불천탑을 세우자.

그들은 보리밭 밭고랑에 돌을 뉘어놓고 새기기고 하고, 산비탈에서 쪼기도 하고 암벽 중간에 매달려서 정과 망치를 두드리기도 하였다. 고수는 망치소리를 모두 뒤덮을 만큼 우렁차게 북을 때리고 또 때렸다.

천불천탑을 보시고 새로운 세상을 이루는 부처님을 좌정시키려면 새 절도 세워야 한다.

늙은 유민이 일러서 계속이 끝나는 곳에 새 절을 세웠으니 운주사(運舟寺)라 하였다. 젊은 유민이 물었다.

할아버지, 절이름이 어째서 운주사요?

배를 부린다는 뜻이란다. 배가 물에 떠서 움직이게 된다는 뜻이니라.

젊은이는 더욱 궁금해졌다.

이 깊은 산골에서 배는 무엇이고 물은 또 무어요. 우리가 이제는 다시 죽지 못해 살던 섬으로 쫓겨간다는 뜻이우?

늙은이는 햇볕에 그을린 주름살 많은 눈을 감을 듯이 가늘게 뜨고 웃으면서 말하였다.

그게 아니란다, 얘야. 새로운 우리 세상이 바로 배가 되는 게야. 미륵님 세상이 배가 된다. 배는 물이 없으면 뜰 수가 없지 않으냐?

그럼 물은 또 무엇이우?

물은 우리 같은 천것들이고 만백성이란다. 우리 중생이 물이 되어 고이면 배가 떠서 나아가게 되는 게야. 이제야 배가 되어 움직이는 절의 의미를 알겠느냐.

유민들은 다시 정신없이 돌을 쪼아 미륵상을 세웠다.

미륵님이 어떻게 생기셨는지 본 적이 있어야지. 몸집이 얼마나 큰지 작은지, 잘생겼는지 못생겼는지 어찌 알고 미륵님을 감히 새긴단 말인고.

석수질을 하던 사람들은 거기에 생각이 닿자 모두 낙망하여 일손을 멈추고 주저앉았다. 늙은이가 다시 나서서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보게, 미륵님을 못 보았다고? 이런 어리석은 사람 같으니 미륵님이란 자네 아닌가. 자네 모양과 똑같은 이가 미륵님일세.

어리구, 그런 말씀 마시우. 저는 어릴 제 관차배에게 매를 맞아 콧대가 부러져서 이렇게 납작합니다. 다리는 절름발이구요.

저는 못 먹고 살아 그런지 키가 안 커요. 보시우, 항아리처럼 작달막합지요.

늙은이가 껄껄 웃었다.

하룻밤 사이에 천도되고 거기에 오시는 미륵님이란 모두 자네들 모습일세. 안심하고 꼭 그렇게 새겨드리게.

일손을 놓았던 유민들은 다시 용기가 나서 이번에는 자기 모습대로 각기 미륵님의 모양을 만들어나갔다. 골짜기 안에는 자기네처럼 성도 없고 이름도 없는 제멋대로 생긴 백성들이 꽉 들어차고 있었다. 고수는 다시 힘차게 북을 두드렸다. 황혼녘이 되자 이 소문을 들은 울출산, 해남 대둔산, 완도, 진도. 흑산 추자도의 바위들까지도 모두들 스스로 미륵상이 되기 위하여 우뚝우뚝 서서 골짜기를 바라고 몰려오기 시작하였다.

온 산의 바위가 밀려온다!

북소리는 더욱 우렁차게 곳곳에 울려 퍼졌다. 그들은 캄캄한 밤이 되었어도 횃불을 밝히고 일을 계속하였다. 구백구십구의 미륵상과 탑을 세웠다.

마지막 미륵님을 만들자.

유민들은 새로운 세상을 눈앞에 그리면서 산정으로 올라갔다. 산정에는 남도의 어느 곳에서 달려왔는지 집채보다 더 큰 바위가 땀을 뻘뻘 흘리며 누워 있었다. 바위는 비탈에 누워 있어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다.

상수하족(上首下足)일세. 비탈 위에 미륵님 머리를 새겨두고 아래쪽에 다리를 새겨야지.

하루종일 가장 열심히 일하였던 사람이 아는 척하였다.

아닐세, 그렇지 않아.

늙은이가 또 나서서 일러주었다.

우리가 세상의 밑바닥에 처박힌 것처럼 미륵님도 처박혀 있는 게야. 세상이 거꾸로 되었으니 상수하족은커녕 상족하수(上足下首)가 맞네. 그래야만 우리가 힘을 합쳐 바로 일으켜세울 것이 아닌가.

모두들 그 말에 따라서 머리와 다리를 정하고 와불(臥佛)을 새겨나갔다. 어떤 사람은 머리를 코를 누을 또 어떤 사람은 몸을 배를 어떤 이는 팔다리를 새겼다. 미륵님의 형상이 이루어졌다.

자, 이 미륵님만 일으켜 세워드리면 세상이 바뀐다네.

그들은 머리와 어깨와 몸에 달라붙어 힘을 썼다. 북은 그들의 힘쓰는 앞소리와 뒷소리에 장단을 맞추었다. 미륵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조금만 조금만 더, 하다가 미륵은 다시 넘어졌다. 사람들은 지칠 줄 모르고 미륵님을 밀어 올렸다. 그때 도저히 이 캄캄한 밤의 노고를 참지 못한 사람 하나이 있어, 손을 떼고 혼자 떨어져나가며 거짓말로 외쳐버렸다.

닭이 울었다!

고수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북채를 내던졌다. 미륵을 밀어 올리던 사람들도 힘을 잃고 주저앉아버렸다. 미륵상은 비탈 저 밑에 쳐박혀서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서로 미륵상이 되기 위하여 우뚝우뚝 새까맣게 몰려오던 사방의 바위들도 소문을 듣고는 그 자리에 넘어져버렸다. 그렇지만 넘어지면서도 머리를 계속 쪽을 향하였으니 먼 훗날에라도 와불이 바로 일어서면 다시 미륵이 되기 위해서였다. 바위들은 민병의 쓰러진 시체처럼 들판과 야산의 곳곳에 넘어져서 오랜 비바람에 씻겼다. 그 뒤부터 이상한 일이 있었으니 운주사의 대문을 여닫을 적마다 서울 장안에서 우지끈대는 우렛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서울이 옮겨지지 않은 것을 한하여 그런 소리가 들린 것이다. 그래서 대문을 떼어서 영산강으로 떠나보냈다. 운주사는 그 뒤로부터 운주사(雲住寺)가 되고 말았으며 이는 물이 차오르지 않아 세상이 머물러버렸던 까닭이라 하였다. 중생의 물이 차올라 세상인 배를 띄울 때까지 와불은 구렁에 처박힌 채 기다림의 장소에 머물게 되었다. 마을과 마을의 닭소리가 서로 접하여 있으며, 아름답지 않은 꽃과 과실의 나무는 말라서 없어지고 추하고 악한 것이 스스로 소멸하고, 기후는 화창하고 사시의 계절이 순조로우며 질병이 사라진 세상, 탐하는 마음과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이 커지지 아니하고 은근하며 사람마다 평등하여 모두 한가지 뜻으로 서로를 보게 되매 기쁘고 즐거워하며, 착한 말로 서로 오가는 뜻이 똑같아서 차별함이 없게 되는 사람들. 서로 싸우고 죽이며 잡혀가고 옥에 갇히고 무수한 고통을 가져왔던 부귀가 이제는 버려진 돌조각처럼 아끼고 탐내지 않게 된 그러한 곳은, 어느 숲속이든 산속이든 아니면 바다의 안개 속에 가려진 섬이든 실재하지 않았다.

대동세상이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들의 목숨 가운데서 문득 빛나던 것이 있었으니, 스스로의 가슴속에 이미 저러한 세계의 실상이 생생하게 담겨졌다는 깨달음이었다.

역(易)에 이르기를 미제(未濟)의 뜻이 해가 바닷속에 잠겨 있으므로 장차 밝게 떠오를 것을 안다 하였으매, 티끌처럼 수많은 생령(生靈)들의 뜻이 어찌 이루어지지 않으랴.

-대단원

 

황석영, 『장길산』12권. 창비, 2004 개정판 1쇄, 291~298쪽.

 

 

 

 

 

 

 

 

 

 

 

 

 

 

 

 

 

 

 

 

 

 

 

 

 

 

87. 혼불(3권)-땅에서는 썩어야

 

땅은 천한 것일수록 귀하게 받아들여 새롭게 만들어 준다. 땅에서는 무엇이든지 썩어야 한다. 썩은 것은 거름이 되어 곡식도 기름지게 하고 풀도 무성하게 하고 나무도 단단하게 키운다.

썩혀서 비로서 다른 생명으로 물오르게 한다.

그래서 죽어 땅에 묻히는 것을 사람들은 ‘돌아간다’라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모든 것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순하고 두말 없는 땅에다 한세상을 의탁하고 사는 농사꾼의 성정(性情)은 그대로 땅을 닮게 마련이었다. (15쪽)

 

“형님은 도대체 그 혁명을 통해서 무엇을 이루고자 합니까? 진정으로 이 사회에 변혁 같은 것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 겁니까? 혁명을 하고, 사유 재산을 폐지하고, 모든 수단을 사회화하고, 그래서 진짜 평등 사회를 과연 실현할 수 있단 말입니까? 아마 그것은 명분에 불과할 것입니다. 내 생각은 이래요, 형님 말씀대로 인류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지금까지 강자와 약자의 꾸준한 갈등과 투쟁 속에서 역사를 이루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강자의 권력과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약자의 설움과 분노는 그만큼 큰 것이지요. 그들의 분노와 설움이 드디어 포화 상태에 이르러, 폭동이든 반란이든 간에 이름이야 무어라고 붙여도 좋지만, 하여튼 변혁을 일으킨단 말이요. 형님 말씀마따나 혁명을, 그래서 강자가 무너지고 약자가 세력을 잡는 수도 있겠지요.

허나, 민중은 대다수이니 그 사람들이 모두 다 일선에서 일을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결국 대표자를 뽑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됩니까? 그 대표자는 새로운 강자 집단으로 등장하는 겁니다. 복수심에 가득차서 훨씬 더 잔혹하게, 언젠가 자신의 세력을 무너뜨릴 수 있는 민중의 무서운 잠재 세력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조직적인 말살까지를 곁들여서……종이 채를 잡으면 형문(刑問)부터 한다지 않아요? 종이 종한테 상전 노릇 하는 것은 더 무섭지요. 형님의 혁명이라는 것도 결국은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습니까? 이미 그들은 어제의 약한 자가 아니라, 이제는 권력을 가진 집단으로 강자가 되었으니, 그들에게 탄압당하는 계급이 반드시 상대적으로 생겨날 것이고.

말하자면, 이름만 다를 뿐이지 그게 그것 아닙니까. 형님의 내심에는 이름만 바꾼 독재자적인 교묘한 야심이 숨이 있단 말입니다.” (57-58쪽)

 

최명희,『혼불』3권, 225~226쪽

 

 

 

 

 

 

 

88. 혼불(3권)-청암부인의 혼불

 

그날 밤, 인월댁은 종가의 지붕 위로 훌렁 떠오르는 푸른 불덩이를 보았다. 안채 쪽에서 솟아오른 그 불덩어리는 보름달만큼 크고 투명하였다. 그러나 달보다 더 투명하고 시리어 섬뜩하도록 푸른 빛이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청암부인의 혼(魂)불이었다.

어두운 반공중에 우뚝한 용마루 근처에서 그 혼불은 잠시 멈칫하니 이윽고 혀를 차듯 한 번 출렁하고는, 검푸른 대밭을 넘어 너훌너훌 들판 쪽으로 날아갔다.

서늘하게 눈부신 불덩어리가 날아가는 모습을 향하여 인월댁은 하늘을 우러르며 두 손을 모은다.

삭막한 겨울의 밤하늘이 이에게 푸르다.

사람의 육신에서 그렇게 혼불이 나가면 바로 사흘 안에, 아니면 오래 가야 석 달 안에 초상이 난다고 사람들은 말하였다. 그러니 불이 나가고도 석 달까지는 살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석 달을 더 넘길 수는 없다는 말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은 그 말이 영락없이 맞아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운명하기 전에, 저와 더불어 살던 집이라고 할 육신을 가볍게 내버리고 홀연히 떠오르는 혼불은 크기가 종발만 하며, 살 없는 빛으로 별 색같이 맑고 포르스름한데,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선히 보이는 것이었다. 그것도 남자와 여자는 그 모양이 다른데, 여자의 것은 둥글고 남자의 것은 꼬리가 있다. 그것은 장닭의 꼬리처럼 생겼다 한다. 어쩌면 남자의 불이 좀더 크다고 하던가.

비명(非命)에 횡사를 한 원통한 사람의 넋은, 미처 몸 속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채 거리 중천에서 방황하게 된다.

그래서 혼불도 흩어져 버린다.

하지만 제 목숨을 다 채우고 고종명(故縱命)하여, 제 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가는 사람의 혼불은, 그처럼 미리 나가 들판 너머로 강 건너로 어디 더 먼 산 너머로 날아간다. 그렇게 날아서 다음에 태어날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라고도 하였다. 아니면 저승으로 너훌너훌 날아가는 일이라고도 했다. (최명희, ‘혼불’ 3권, 107~108쪽)

 

 

 

 

 

 

 

 

 

 

 

89. 혼불(3권)-부모상

 

부모상에 대나무와 오동나무 지팡이를 짚는 것은, 그 소나무의 속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대나무는 물론이고, 오동나무도 다 자라면 속이 메워지지만, 지팡이를 만들 만큼 어려서 아직 크기 전에는 비어 있다.

혹 누구는 그것이, 부모가 자식을 기를 때에 너무나 노심초사하여 속이 다 녹아 없어진 것을 슬퍼하며 기리어 짚는 것이라고도 하지만, 그보다는, 아무 사심 없이 자신을 모두 비워 내고 존재의 천연심(天然心)으로 돌아가, 우주 정기의 공간에서 부모와 자식이 아무 걸린 데 없이 서로 감응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충정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대나무는 속이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나면서부터 제 한 몸에 모든 거을 가지고 있으니, 죽순에 응축된 마디 수 그대로 일 년 안에 다 커 버린 뒤, 더 자라지도 줄지도 않으면서, 사시사철 푸르고 청정하다. 그리고 마디마디 절도가 있어 엄준한 성현 군자 그대로이다.

대나무를 베어 만든 피리나 대금 단소 같은 악기에서 울리는 음향을 율(律)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우주 천지 음양의 기운 중에 양성 소리이다. 양(陽)은 하늘의 기운을 받은 것으로 아버지를 상징하니, 부상(父喪)에 대나무를 지팡이를 짚는 것은, 아버지의 정신을 받들어 추모하는 것이라 하겠다.

또한 대나무의 마디마디는 아버지를 잃은 자식의 슬픈 마음의 옹이를 나타내며, 더울 때나 추울 때나, 해가 바뀌나 변함없이 추모의 마음을 이어가겠다는 다짐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동나무도 겉으로 보아 아무 마디도 없는 것 같지만,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눈에 얼른 안 보이는 마디가 가다 있고, 가다 있고 하여,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속으로 깊은 어머니의 자애 심정과 같은데.

오동은 베어서 거문고를 만든다. 오동 중에서도 석산(石山)에서 큰 오동은 소리가 짱짱하며 깊고 맑은데, 이것을 여(呂)라고 한다.

‘여’는 음성 소리이다. 음(陰)은 땅의 기운을 말하는 것이니 어머니를 상징하여, 모상(母喪)에는 오동나무 지팡이를 짚고 울며, 어머니 정신을 그리워하고 새기는 것이다.

대는 차고 오동은 다숩다.

나무의 성품과 온다가 그러하매, 음률도 대나무로 만은 악기는 폐부를 찌르며, 오동나무로 만든 악기는 심정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대나무 잎은 서슬이 날카로우며 오동나무 잎은 크고 넓어 치마폭 같다.

그러니 이 율과 여가 어우러져 조화를 이룰 때 비로서 율려(律呂)가 되어, 심원(深遠)하고 그윽한 현묘(玄妙)에 이르듯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정신과 기운을 빈 마음으로 받아들여, 그 혼백과 통하고자 하는 자식의 효심이 지팡이게 간곡하게 어리어 있는 것이다.

또한 대나무의 겉마디나, 오동나무의 속마디처럼, 정연한 우주의 질서 속에서 사람이 가고 오는 것 또한 그 한 마디인 것을 돌아보게 하고, 하나의 마디가 끊어져도 또 다음 마디가 이어져 높이 높이 커 오른이 나무들을 바라보며, 조상과, 부모와, 자식이 서로 그와 똑같은 이치를 깨닫게 하는 것이, 이 대나무 지팡이 저장(苴杖)이요, 오동나무 지팡이 삭장(削杖)이다.

음 ․ 양의 조화는 오묘하며, 하늘이라고 오직 양(陽)으로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땅이라고 오직 음(陰)으로만 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하늘에도 음 ․양이 두루 있고, 땅에도 음 ․ 양이 고루 있다. 사람 또한 남자라고 그냥 양이 아니요, 여자라고 다만 음이 아니니, 남자에게도 음 ․ 양의 기운이 함께 들어 있고, 여자에게도 음 ․ 양의 기운이 같이 들어 있어,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고 고루 갖춘 사람만이 그 조화로움으로 이 세상에 상생(相生)의 덕을 베풀 수 있을 것이다.

그 한 몸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동시에 살면서 어린 이기채를 기르고, 이제는 영결(永訣) 종천(終天), 다시 서로 만날 수 없는 곳으로 가시는 어머니, 청암부인의 입관(入棺)을 할 때.

굄목 두 개를 백지로 싼 등상 위에 관을 올려놓고, 풀솜으로 관 안을 깨끗하게 한 후에 사람들은 백지를 잘라서 위로부터 아래까지 펴서 놓았다. 그리고 관의 가장자리로도 백지를 병풍처럼 세워 놓은 뒤, 차조의 짚을 태운 재를 서푼 두께로 고루 깔았다.(최명희, ‘혼불’ 3권, 198~200쪽)

 

 

90. 혼불(3권)-마을의 유래

 

마을의 유래. 유적(遺跡)을 찾아보라.

조상의 땅에까지 갈 수 없는 사람은 멀리 갈 것 없이 자기 동네 우물가 버드나무는 누가 언제 심었는지, 저절로 났는지. 또 이곳이 예전에는 무엇을 하던 어떤 곳이었는지, 맨 처음 이 동네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사람은 누구였으며, 그는 어느 곳에 터를 잡았는지, 그가 살던 그 집은 아직도 그대로 있는지. 섬세한 지도를 그려 보기 바란다.

그리고 그것을 적어 놓아라.

실없어 보이는 이 면밀한 그림이 바로 당대의 기록이요, 후대한테는 소중한 유산이 될 것이다.

그리고……할 수만 있다면 반드시, 일생에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그대들의 성씨 관향에 가 보기 바란다.

그곳이 그대들의 성지(聖地)이다.

그 성지를 순례해 보면, 오늘보다 더 구체적이면서 절실한 이야기가 얼마든지 생생하게, 질기게, 거룩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웅혼하고 지혜로운 지형의 기맥과 울분의 용틀임, 들꽃 같은 어여쁨, 아쉬워 고개 숙인 인생의 애잔함, 그리고 끝없는 좌절과 소망의 회오리 숨결들이 점점이 고을 고을 새겨진 골목길들을 결코 놓치지 말라. 붙잡으라. 그 이야기와 삶의 흔적들을 지금 우리가 놓치면, 이제는 아무도 못 찾는다. 끝내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국토와 마을과 집안마다 흘러내리는 이 숨결과 이야기를, 갈피마다 주어 담아 품고 길러서,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위태로운 외나무다리다.

보라, 이제 세상은 급속도로 무너지고 부서지리라.

우리는 이미 나라마저 잃지 않았느냐.

물려주신 조상의 강토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일본에 짓밟힌 채 오늘날 나라는 없어져 뜻밖에도 식민지의 백성이 되어 버린 우리.

이것은, 우리가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제군들은 제군의 자손들에게, 식민지의 조상으로서 이 더럽고 서러운 식민지를 또 다시 물려줄 것이다. 원하지도 않은 그들에게. 그리하여 영원히 못난 굴욕의 조상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심진학 선생은 그때, 목이 꺾인 채 말을 더 잇지 못하였다.

 

최명희,『혼불』3권, 225~226쪽

 

 

 

 

 

 

91. 혼불(6권)-구용(九容)과 구사(九思)

 

효원이 아직 출가하지 전 대실의 친정에서 자라고 있을 때, 그네의 부친 허담은 여식과 마주앉아 율곡 선생이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 말한 ‘구용’과 구사‘를 일러주었다.

그것은 사람이 제 구실을 하기 위하여 마땅히 지녀야 할 아홉 가지 바른 용모와 아홉 가지 바른 생각을 이르는 것이었으니,

 

구용(九容)

1. 족용중(足容重)

발을 무겁게 가져 경박하게 들어올리거나 흔들지 않는다.

2. 수용공(手容恭)

손은 공손히 두어 만지작거리거나 함부로 내두르지 않는다.

3. 목용단(目容端)

눈동자를 단정히 하여 정면을 바로 보고 곁눈질하지 않는다.

4. 구용지(口容止)

말할 때와 먹을 때를 빼고는 입을 다물고 움직이지 않는다.

5. 성용정(聲容靜)

맑은 음성으로 말하며 재채기나 기침 등 잡소리를 내지 않는다.

6. 두용직(頭容直)

고개를 똑바로 하여 한편으로 기울게 하지 않는다.

7. 기용숙(氣容肅)

호흡을 조절하여 늘 엄숙한 태도를 지니도록 한다.

8. 입용덕(立容德)

낯빛을 늘 바로잡아 가지런히 하여 태만한 기색을 내지 않는다.

 

구사(九思)

1. 시사명(視思明)

항상 눈에 가림이 없이 사물이나 사람을 바르게 볼 것.

2. 청사총(聽思聰)

항상 말과 소리를 똑똑하고 분별있게 들을 것.

3. 색사온(色思溫)

항상 온화하여 얼굴에 성난 빛이 없도록 할 것.

4. 모사공(貌思恭)

항상 외모를 공손하고 단정하게 가질 것.

5. 언사충(言思忠)

항상 진실하고 믿음이 있는 말만 할 것.

6. 사사경(事思敬)

모든 일에 공경하고 행동을 조신히 삼갈 것.

7. 의사문(疑思問)

항상 의심이 있을 때는 반드시 선각(先覺)에게 물어 알 것.

8. 분사난(忿思難)

분한 일이 있을 때는 반드시 사리로 따져서 참을 것.

9. 견득사의(見得思義)

항상 재물을 얻게 될 때는 의(義)와 이(利)를 구분하여, 얻어도 되는 것과 버려야 할 것을 명확하게 가릴 것.

 

“ 이 가르침을 명심하여 마음에 새기면, 남들한테 본이 될지언정 결코 흉이 되지는 않으리라.”

허담은 이렇게 말하였다.

 

최명희, 『혼불』6권, 69~71쪽

 

92. 서정가(抒情歌)/ 가와바다 야스나리(川端康成) 지음/천상병 옮김

 

죽은 사람을 향해 말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인간의 습성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승에 가서도 이승에서 지녔던 모습으로 살아있는 줄로 생각한다는 것은 더욱 슬픈 인간의 습성이라고 생각됩니다.

식물의 운명과 인간의 운명과의 유사점을 느끼는 것이 모든 서정시(抒情詩)의 영원한 제목이다-라고 말한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마저도 잃어버렸고, 그뒤에 계속되는 구절도 모르고 이 말만은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식물이란 다만 꽃이 피고 잎이 지는 것만이 그 뜻인지, 보다 더 깊은 뜻이 깃들어 있는지 저로서는 모르겠습니다. 허나, 불교의 여러 경문(經文)을 비길 데 없이 귀중한 서정시라고 생각하는 요즈음의 저는, 지금 이렇게 해서 고인(故人)이 된 당신에게 말을 건다 하더라고, 저승에서도 역시 이승에서의 모습을 하고 계신 당신보다, 차라리 당신이 철을 서둘러서 봉오리가 달린 홍매(紅梅)로 변해서 재생했다는 상상(想像)을 꾸며내어, 지금 제 눈ㅇ앞의 도꼬노마(床の間, 방 한쪽에 바닥윽ㄹ 좀 높게 하고 벽에는 서화(書畵), 바닥에는 꽃병 등으로 장식한 곳:역주)에 놓여 있는 홍매를 향해서 이야기하는 편이 얼마나 더 즐거운지 모르겠습니다. 반드시 눈앞에 놓인, 제가 이름을 아는 꽃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프랑스 같은 먼 나라의, 이름 모를 산의, 한 번도 본 일 없는 꽃으로 당신이 부활했다고 상상하여, 그 꽃을 향해서 말을 건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만큼이나 지금도 여전히 저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서정가 시작 부분) (중략)

 

석가모니는 윤회(輪廻)에서 기반하고 해탈하고 열반의 불퇴전(不退轉)에 들라고 중생에게 설교하고 있으시니까 전생(轉生)을 되풀이하지 않으면 안될 혼은 아직 헤매고 다니는 불쌍한 혼이겠습니다만, 윤회전생의 가르침만큼 풍족한 꿈을 짜넣은 동화는 이 세상에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인간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서정시입니다. 인도에는 베다 경(經)에 옛날부터 이 전설이 있으므로 원래가 동방적인 것이겠지만 희랍 신화에도 밝은 꽃 이야기가 있으며,『파우스트』의 그레트헨의 감옥의 노래를 비롯하여 서양에도 동물이나 식물로 다시 태어나는 전설은 별똥보다 더 많은 것입니다.

옛날의 성자들이나 최근의 심령학자들이라 하더라도, 사람의 영혼을 다룬 사람들은 대체로 사람의 혼만을 존중하고 다른 동물이나 식물은 괄시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몇 천 년이나 걸려서 사람과 자연계의 만물을 여러 가지 의미로 구별하려고 하는 방향으로 불문곡직하고 걸어왔습니다.

그 독선적인 헛된 걸음이 오늘에 와서 사람의 혼을 이렇게도 적적하게 한 것이 아니겠는지요.

언젠가 또 사람은 원래 걸어온 이 길을 다시 되돌아가게 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태고의 민족이나 미개민족의 범신론(汎神論)이라고 당신은 웃으시겠습니까. 그렇지만 과학자는 물질을 만드는 그 근원을 꼬치꼬치 캐고 들어가면 갈수록 그것이 만물의 사이를 유전하는 것이라고 깨닫지 않으면 안 되지 않았습니까. 이 세상에서 형태를 잃는 것들의 향기가 저 세상의 물질을 만든다는 것도 과학사상의 상징의 노래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질의 근원이나 힘이 불멸하는데, 지혜롭지 못한 젊은 여자인 저의 반생으로도 깨달을 수 있었던 혼의 힘만이 소멸한다고 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요.

영혼은 불멸이라는 사고 방식은 살아있는 사람의 생명에의 집착과 죽은 사람에 대한 애착의 발로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 세상의 혼도 이 세상에서의 그 사람의 인격을 갖고 있다고 믿는 것은 인정의 슬픈 환상의 습성이기도 하겠습니다. 사람은 생전의 그 사람의 모습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사랑과 미움까지도 저 세상에 가져가며, 삶과 죽음으로 갈라져 있어도 어버이와 아들 딸은 역시 어버이와 아들 딸이며, 저 세상에서도 형제는 형제로서 같이 살고 있으며, 서양의 사령(死靈)은 대체로 명토(冥土)도 현세의 사회와 닮았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저는 오히려 사람만이 존귀하다는 삶의 집착에 대한 습성을 슬프게 생각합니다.

저는 죽으면 하얀 유령세계의 주민 같은 것이 되기보다 한 마리의 흰 비둘기라든가, 한 포기의 아네모네 꽃이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삶을 누리고 있을 때의 마음의 사랑이 얼마나 넓게, 그리고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중략)

 

불법의 윤회전생의 설도 이 세상의 윤리 상징과 같습니다. 전생의 매가 이 세상의 사람이 되는 것도, 현세의 삶이 내세의 나비가 되는 것도, 부처가 되는 것도 모두 이 세상의 행위의 인과응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마웠던 서정시의 오점입니다.

옛날 이집트의 유명한 서정시였던 죽은 사람의 글인 전생(轉生)의 노래는 좀더 솔직했고, 희랍신화의 이리스의 무지개 옷은 더욱 맑은 빛이었고, 아네모네의 전생(轉生)은 더욱 명랑한 기쁨이었습니다.

달이거나 별이거나, 그리고 동물이나 식물까지가 모두 신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 신이라고 하는 존재가 또한 사람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감정을 가지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희랍신화는, 발가벗고 맑은 하늘 아래의 푸른 풀밭에서 춤추는 것처럼 건전했습니다.

거기서는 하느님이 마치 숨바꼭질하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풀과 꽃이 되어 버립니다. 숲의 아름다운 님프인 헤리데스는 남편도 아닌 젊은 청년의 사랑의 눈으로부터 숨기 위해 데이지 꽃이 되어 버렸습니다.

폰은 음탕한 아폴로를 피해서 처녀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월계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름다운 소년인 아로니스는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여인 비너스를 위로하기 위하여 복수초(福壽草)의 모습을 하고 되살아났으며, 아름다운 젊은 청년 히아신스의 죽음을 한탄한 아폴로는 애인의 모습을 히아신스 꽃으로 바꾸어 주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도꼬노마에 놓인 홍매(紅梅)를 당신이라고 생각하고 그 꽃을 보고 말을 건넨들 상관하지 않겠습니까.

기묘하구나, 불 속에 연꽃이 피고 애욕 속에 참다운 깨달음이 있도다.

당신한테서 버림을 받고 아네모네 꽃의 마음을 알게 된 저는 흡사 이 말대로였을까요. 아네모네라고 부르는 아름다운 숲의 여신을 바람의 신이 언제부터인가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어쩐 일인지 이 일이 바람의 신의 연인인 꽃의 신의 귀에 들어가서 꽃의 신은 질투 끝에 아무것도 모르는 청순한 아네모네를 궁전에서 쫓아내고 말았습니다. 아네모네는 여러 밤을 들에서 울며 새우다가 이럴 바에는 차라리 풀이나 꽃이 되고 말자, 이 세상 끝날 때까지 아름다운 풀과 꽃으로 살자, 풀과 꽃의 솔직한 마음으로 하늘과 깡의 은혜를 받자, 문득 그렇게 깨달았습니다.

불쌍한 여신으로 있는 것보다 아름다운 꽃이 되는 편이 얼마나 즐거울까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여신의 마음은 비로소 아슴프레 밝아졌다는 것입니다. (중략)

 

사물의 향기나 색깔까지도, 정령들의 세계에서는 마음의 양식이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물며 연인의 사랑이 여자의 마음의 샘물이 되었다고 한들 뭐가 이상하겠습니까.

당신이 제 것이었을 무렵 저는 백화점에서 한 개의 옷 동정을 살 때만 해도, 부엌에서 한 마리의 도미를 요리할 때만 해도 행복한 여자다운 사랑의 마음을 나타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을 잃은 뒤부터는 꽃의 색깔, 새들의 지저귐이 저에게는 따분하고 허무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천지만물과 제 혼과의 통로과 뚝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잃은 연인보다도 잃은 사랑의 마음을 슬퍼했습니다.

그래서 읽은 것이 불교의 윤회전생의 서정시였습니다.

그 구절의 가르침으로 저는 금수초목 속에서 당신을 보았고 저를 보았고, 그리고 차차 천지만물을 너그럽게 사랑하는 마음을 되찾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깨달은 서정시는 너무나 속된 애욕이 낳은 슬픔의 마지막이 아니겠습니까. (중략)

 

이 세상의 혼과 저 세상의 혼의 열렬한 일단의 영의 병사들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사람의 생각의 습성을 멸하고 두 세상 사이에 다리(橋)를 놓고 길을 열어 사별(死別)의 슬픔을 이 세상에서 없애려고 싸우고 있다고 심령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저는 영계에서 당신의 사랑의 증거를 듣는다든가, 명토(冥土)나 내세에서 당신의 연인이 되느니보다, 당신이나 제가 홍매나 협죽도의 꽃이 되어 꽃가루를 나르는 나비에 의해 결혼하게 되는 것이 훨씬 아름답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사람의 슬픈 습성에 따라 이렇게 죽은 사람에게 말을 해야 하는 일도 없을 테인데. (끝부분)

 

이문열,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 사랑의 여러 빛깔』, 살림출판사, (1996년 초판), 2008 개정판 5쇄.

 

 

 

 

 

 

 

 

 

 

 

 

 

 

 

 

93.지배이데올로기-주체사상

 

애초부터 김일성은 노동 계급의 자기해방이라는 사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가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을 얼마나 배격했는지는 1956년 헝가리 혁명에 대한 태도에서도 잘 드러난다. “제국주의 간섭자들과 헝가리 반혁명 분자들에 의하여 도발된 헝가리에서의 반혁명 폭동은 헝가리 노동혁명 정부의 요청에 의해 소련의 국제주의적 원조와 전 세계 평화 애호 인민들의 지지를 받는 헝가리 인민의 영웅적 투쟁에 의하여 급속히 진압되었다.”(<로동신문>1957.4.2)

김일성은 노동 계급 대신에 권력을 잡은 조선로동당 관료가 혁명을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이 바로 주체사상의 핵심이다. 그런데 권력을 잡은 관료가 혁명을 수행한다면 거기서 필요한 것은 오로지 의지력과 올바른 사상, 지도력일 뿐이다. 김정일은 <주체사상에 대하여>에서 지도적 원칙으로 “사상을 기본적으로 틀어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황장엽은 혁명이 “혁명 의지”에서 비롯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경제적으로 뒤떨어져도 올바른 사상만 있으면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관념론이다. 사회적 의식이 사회적 존재를 규정한다는 것이다.

주체사상에는 혁명의 주체인 노동 계급이 완전히 빠져 있다. 주체사상은 ‘사회역사원리’에서 “인민대중은 혁명과 건설의 주인이며 자연을 개조하고 사회를 발전시키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하려면 “탁월한 수령을 모시고 수령의 영도를 받”아야만 한다. 인민대중은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한 것이다. (중략)

어떤 사람들은 북한의 체제와 주체사상을 분리해 주체사상만 문제 삼는다. 그러나 주체사상은 남한과 똑같이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체제인 북한 국가자본주의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다. 주체사상은 관료집단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오하 농민을 쥐어짜고, 착취 체제를 합리화하는 구실을 했다. 북한 지배 계급은 “수령의 사상과 의지대로만 사고하고 행동하며 수령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데서 삶의 보람을 찾”으라고 강조해 왔다. 이것은 노동자들에게 지배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라고 주문해 온 세계 모든 나라 지배자들의 흔하디 흔한 통치 이념에 불과하다.

 

김하영 지음,『국제주의 시각에서 본 한반도』, 책벌레, 2002. 216~217쪽.

* 김하영 :민주노동당 당원이고, 좌파 월간지 <다함께>의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94. 길가메시

 

옛날 로마 사람들은 “빛은 동방에서 왔다.”하고 생각하였다. 여기에서 빛이란 원시와 야만의 어둠을 밝힌 문명의 빛을 말한다. 동방이라면 흔히 아시아를 생각하지만, 이 말은 본디 로마를 기준으로 삼아 동쪽을 뜻하는 것으로 서아시아, 즉 오늘날의 중동 지방을 가리킨다. 좀더 좁혀 말하면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 만나는 메소포타미아를 뜻한다. 기원전 4000년쯤 이 비옥한 따이에 수메르 사람들이 정착하여 도시 국가를 건설하고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웠다. 그리하여 한 역사가는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하였다.”하고 주장하기도 한다. 수메르를 중심으로 한 동방 문명은 최초의 서양 문명으로 일컫는 그리스 문명보다 무려 2,000년이나 앞선다. 수메르는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쐐기 문자를 만들어 사용하고 관개를 이용하여 농사를 짓고, 태음력을 만들고 60진법에 따라 시간을 측정한 곳이다.

이렇듯 수메르는 세계 문명의 자궁이요 문화의 요람이다. 처음으로 문명의 동이 트고 문화의 새벽이 밝아 온 곳, 전 세계로 그 빛을 전파한 곳이 바로 수메르다. 세계 최초의 문학 작품이 탄생하였다는 점에서도 수메르는 눈길을 끈다. 수메르 사람들은 지금까지 알려진 문학 작품으로는 가장 오래된 서사시『길가메시』를 남겼다. 서양 사람들은 흔히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최초의 문학 작품으로 꼽지만 『길가메시』는 시기적으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나 『오디세이』보다 무려 1,500년이다 앞선다. 놀랍게도 이 작품에는 『구약성서』「창세기」에 기록된 노아의 홍수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길가메시』를 처음 창작한 시기는 가깝게는 2000년, 멀게는 기원전 3000년 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무렵의 작품이 흔히 그러하듯이 이 서사시도 한 사람이 한꺼번에 창작하기보다는 많은 시인들이 음송하면서 내용을 조금씩 보태어 오늘날의 형태로 만들었을 것이다. 수메르에 뿌리를 둔 이 서사시는 바빌론 사람들에게 전해졌고, 그들은 이 작품을 국가적인 서사시로 발전시켰다.

이 작품이 빛을 보게 된 것은 겨우 한 세기 반밖에 되지 않는다. 1839년 영국 학자 두 사람과 터키 고고학자 한 사람이 옛 아시리아 왕국의 도시 니베베를 발굴하던 중 우연히 왕궁과 서고 터에서 진흙으로 만든 점토판 열두 개를 찾아냈다. 점토판에 쐐기 문자로 적힌 내용은 길가메시라는 영웅의 무용담을 다룬 이야기였다.

(중략)

『길가메시』는 “친구를 사랑하고 친구와 사별한, 그리고 그를 다시 살려 낼 힘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한 사나이에 관한 옛이야기”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길가메시가 사랑한 친구란 바로 야생 인간 엔키두를 말한다. 대초원에서 짐승과 함께 행복하게 지내던 그는 창녀에게 이끌려 우루크로 오고 길가메시와 친구가 된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히말라야삼나무 숲을 지키는 괴물 훔바바(후와와)와 수메르 최고의 신 아누가 보낸 ‘하늘의 황소’를 죽였다는 이유로 일찍 죽음을 맞이한다. 친구를 잃고 깊은 절망에 빠진 길가메시는 불멸과 영생의 방법을 찾기 위하여 멀고도 험난한 방랑의 길을 떠난다. 그러나 실패하고 다시 우루크로 돌아온다.

비록 짧은 생애였지만 엔키두가 걸어온 삶의 궤적은 그 동안 인류가 발전해 온 과정을 보여 주는 우화로도 읽을 수 있다. 들판에서 태어난 엔키두는 짐승의 젖을 먹고 자라나 짐승과 마찬가지로 시냇물을 마시며 들판에서 자유롭게 뛰논다. 이렇게 자연인으로 생활하는 시절은 인간의 원시와 야만 시대를 상징하며, 우루크로 가기에 앞서 목동의 집에서 잠시 머무는 시절은 인간의 전원 시대를 상징한다. 원시 시대에서 문명 시대로 옮겨가는 과도기라고 할 이무렵, 엔키두는 창녀가 내어 준 옷을 입고, 목욕을 하고, 온 몸에 난 털을 깎는가 하면, 인간처럼 빵을 먹고, 술 마시는 법을 배운다. 높은 성곽을 쌓아 외부와 차단한 채 우루크에서 보내는 시절은 인간의 문명 시대를 상징한다. 인류는 엔키두와 마찬가지로 들판(원시시대)에서 목장(전원 시대)을 거쳐 마침내 도시(문명 시대)에 이르렀다. 이로써 비록 초기 형태나나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의 사회 진화론 흔적을 읽을 수 있다. 엔키두가 문명 시대에 목숨을 잃는다는 점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인간이 만든 문명이 곧 그를 멸망시킬지도 모른다는 점을 넌지시 내비치기 때문이다.

(중략)

이 작품은 인간의 우정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실감나게 보여 준다.

길가메시는 엔키두의 죽음을 보고 자신의 죽음을 생각한다.

『길가메시』는 자연과 환경에도 무게를 싣는다. 이 작품에서 히말라야 삼나무 샆을 ‘생명의 땅’이라고 일컫는다. 오늘날처럼 자연이 파괴되지 않은 그 옛날에 이렇게 숲을 소중하게 여긴 것이 놀랍다. 숲을 관장하는 신 엔릴이 이중, 삼중으로 인간의 접근을 차단한 사실은 이 무렵 숲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였는가를 잘 알려 준다. 나무나 숲이 중요하다는 것은 죽음에 직면한 훔바바가 길가메시에게 목숨만 살려 주면 숲의 “성스러운 나무를 잘라 집을 지어 주겠다.”하고 말하는 데에서도 잘 드러난다. (중략)

이렇게 삼라만상이 다 생명을 지닌다고 생각하는 것은 길가메시도 마찬가지도. 엔키두가 죽어갈 때 길가메시는 곰․하이에나․표범․호랑이․사자․사슴․들소․야생 염소 따위 짐승이 하나같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여 통곡한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히말라야삼나무 숲에 이르는 길도, 짐승과 함께 뛰놀던 들판도, 엔키두와 함께 걸었던 유프라테스 강도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자연의 대상물에 인간의 감정을 부여하는 것을 두고 흔히 ‘정감의 오류’라고 부른다. 이 정감의 오류는 주로 목가적 엘레지에서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삼라만상이 인간처럼 슬픔의 감정을 지닌다는 것은 감정을 헤프게 늘어놓은 정감의 오류 이상의 깊은 뜻을 지닌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최초의 서사시일 뿐만 아니라 생태주의를 다룬 최초의 문학 작품이다. 이 서사시는 5,000년 전의 태고적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21세기에 사는 현대인에게도 창조의 새 아침처럼 자못 신선하다.

 

김옥동,『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서양 고전』, 현암사,2005 2쇄.11-20쪽.

 

 

95. 이상(李箱)

 

[작가연구] 이상(李箱 1910~1937)

 

시인이며 소설가이다.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으로 서울 출신이다.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전축과를 나와 총독부 건축기사 생활을 했다. 1931년 시 <이상한 가역반응>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출발하여 같은 해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한 <자화상>이 입선되기도 하여 재기(才氣)를 나타내기도 했다.

그의 초기 시는 주로 일본어로 쓰여졌고 그 형식이 파격적이며 실험적이어서 당시 조선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언어를 연마하는 대신 언어를 파괴하고 서정을 닦는 대신 서정을 말살시킨 기하학적 낱말들로 연결된 시어를 썼다. 엄밀히 말해 기존의 시에 젖은 독자들에게 그것을 무의미한 ‘놀음’에 지나지 않게 비쳤다.

1933년 그는 폐결핵으로 각혈(咯血)을 하기 시작하여 총독부를 그만두고 황해도 백천(白川) 온천으로 요양을 갔다가 운명과도 같은 여자인 요정 ‘능라정’의 기생 금홍(錦紅)을 만난다. 본명은 연심(連心), 나이는 스물 하나, 16세에 시집을 가서 딸을 하나 낳은 경험이 있는 이 여자와 이상은 서울로 돌아와 ‘제비’라는 다방을 시작하였다.

폐결핵 증세로 인한 심함 무력감, 1930년대 식민지 사회가 주는 지식인 특유의 허무감, 경제적 무력감으로 위축된 자아 등으로 그는 기인(奇人)으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는 ‘구인회(九人會)’, 라는 문학동인회에 가입하였고 다방 ‘제비’는 그들의 본거지가 되었다.

1934년 7월 그는 시인 이상(李箱)을 실질적으로 세상에 알리게 된 연작시 <오감도(烏瞰圖

)>를 발표하였다. 이 <오감도> 이후 그는 계속된 사업 실패와 폐결핵의 악화로 ‘속옷 밖에 필요치 않은 하루’를 보내기 시작했다. 결국 금홍과의 동거생활은 1년 반이 지난 1934년 초가을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두 사람은 마침내 이상이 인천에 다녀온 사이에 금홍이 혼자 일방적으로 떠나버리고 말았다. 당연히 그의 삶은 무궤도 상태에 빠졌다. 금홍은 가출 몇 달만에 ‘왕복엽서처럼’ 돌아왔으나 결국 1935년에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 일은 이상의 삶에 커다란 정신적 경제적 패배의 상처를 남겨주고 말았다. 금홍이와 헤어지고 그는 전형적인 자유인이자 룸펜(고등실업자)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1936년 초겨울 그는 친구의 누이동생인 변동림과 정식 결혼했다. 그것은 이상이 일상생활에 복귀하려는 최후의 몸부림이었다. 어쨌든 1936년은 작가 이상이 대표소설인 「날개」를 발표한 해이며 가장 많은 작품을 발표한 해이다. 그는 재출발을 위해 일본으로 떠났다. 그러나 일본은 철저하게 이상의 기대를 배신했다. ‘동경은 실로 치사스런 데’ 임을 느끼게 했을 뿐 ‘천재 이상’을 배신하였다. 그는 어처구니없게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소위 불령선인이라는 혐의였다. 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그는 구금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석방되었다. 이미 회복될 수 없는 악화 상태였다. 그의 아내 변동림이 왔지만 이상은 1937년 4월 새벽 레몬 향기를 맡으며 세상을 떠났다.

 

윤병로 감수, 문승준 편저,『우리시 100선』, 도서출판 성림(2002), 147~148쪽.

 

 

96. 고향(1)/이기영

 

1. 겨울은 패전한 군대처럼 물러가자 앞내에는 어느덧 얼음장이 풀리고 먼 산에 쌓인 눈사태도 녹았다. (41쪽)

 

2.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포근하게 대지를 둘러쌌다. (42쪽)

 

3. 사람이란 자기의 신념을 잃게 되면 바람에 불리는 갈대와 같이 향방 없이 흔들리는 법이다. (45쪽)

 

4. 보리 이삭은 이따금 부는 바람에 파도같이 꿈틀거린다.(112)

 

5. 양반을 잡아먹은 상놈은 사실 양반보다 더 무서웠다. 그래서 그는 솔개를 내쫓은 독수리처럼 이 동리에서 새 양반이 되었다.(123)

 

6. 개꼬리 삼 년 가야 황모 못 되는거구 제 행실 저 갖지 남 줄라구!

 

7. “아이구 소경 개천 나무랄 것 있나, 제 눈먼 탓이나 하지.”(243)

 

8. 솔밭위로 넘어가는 우중충한 달 그늘은 마치 조수 물처럼 마을 안으로 밀려 나온다. 그러나 달빛은 받은 들 건너편은 훤하게 딴 세계를 이루었다. (245)

 

9. 일상 무슨 일이고 제 주견이 똑바로 서지 못한 인간일수록 남의 꾐을 잘 듣고 남의 똥에 주저앉는 법이다.(317)

 

10. 싸움 끝에 정이 붙는다고 그럴수록 잘 지내세.(325)

 

11. 정거장 위로 외딸게 켜진 불은 마치 섬 속에서 반짝이는 등대와 같이 깜박인다.(451쪽)

 

12. 한 회사의 사업과 한 공장의 생산으로 겉으로 보면 민간의 일개 산업에 불과하다. 그들은 상당한 대가를 지불하여 원료를 사들이고 노동자를 모아놓고 그리고 공장을 설비해놓고 제사와 방적업을 개시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다시 한편으로 그 이면을 들여다볼 때, 원료는 누가 공급하는 것이며 상품은 누가 만드는 것이며 그 상품이 시장으로 굴러 나와서 금전으로 교환이 될 때 자본은 어떠한 유통 과정을 밟아가지고 다시 공장주의 품속으로 들어가는가?

노동자와 농민은 결국 그들의 이윤을 불리기 위하여 원료를 공급하고 상품을 생산하고 다시 소비 계급으로 자기 자신이 만든 상품을 헐한 품삯을 받은 임금으로 사먹어야만 되는 것 아닌가?

옥희는 온 겨울 동안을 두고 이런 생각에 마음을 붙여 지냈다.

그의 생각은 새 생활을 파고들었다.

한번 그런 생각이 들자 그는 지나간 날의 일신에 대한 불행과 비관을 털어버리고 앞날의 포부를 가지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절망에서 헤매는 것보다 더 큰 불행이 없을 것이다. 자기의 생활에서 장래와 현재에 아무런 의의를 찾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인간성을 상실한 사람이다.

사람은 왜 사는가? 무엇 하러 사는 것인가? 자고로 성현 군자가 동서양에 적지 않았다고 역사는 말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들은 인간의 역사가 몇천만 년이 되어오도록 오늘날까지 그들이 이상하는 낙원을 한 번도 만들지 못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다만 인간성을 해석할 뿐이었다. 문제는 해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어떻게 변혁하는가에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이 무슨 까닭이냐? 사람은 자연의 법칙을 따라서 물질을 토대 삼아 살아왔고 정신은 그것을 부리 삼고 난만한 꽃을 피우지 않았는가?

사람은 자연을 극복하여 물질을 풍부히 함으로써만 그들의 생활을 향상하고 인간의 문화를 고상하게 발전할 수 있지 않으냐. 그것을 물질을 토대하고 물질을 해방하는 -오직 단순한 이 한 점에서 출발점을 찾을 것이다. 여기에 물질의 위대한 힘이 있다. 물질을 생산하는 도동의 위대한 힘이 있다.

옥희는 이렇게 혼자 생각하던 것을 차차 동무들에게 나눠보기를 시작하였다. 그는 마치 맛난 음식을 얻었을 때 사랑하는 가족에게 그것을 나누어 먹이고 싶듯이-그래서 서로 나우어 먹듯이……

그래서 지루한 시간도 괴로운 노동도 여기에 위안을 얻었다. 인순이 점순이 그 외에 여러 애들도 차차 옥희의 말에 동감하는 눈치가 보였다. 옥히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반가웠다. (534-536)

 

13. 암탉의 품속같이 포근한 봄은 따뜻한 양지를 대지에 펴고 있다! (559)

 

14. 사람이 자기의 생활에서 절망을 느끼는 경우에는 그런 사람은 오직 비관만 할 재로밖에 없으므로 피로한 심신이 무기력하게 날로 시들어갈 뿐이지마는 그와 반대로 자기의 생활에 이상과 신념을 발견하고 순교자적 정열을 가질 때에는 그는 어떠한 고통이라도 그것을 씹어 삼키고 밟아 넘어갈 만한 용기와 대담과 인내의 행동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650)

 

이기영, 『고향』, 문학과 지성사, 2009.초판6쇄.

* 1895년 5.29(음 5월 6일) 충남 아산군 배방면 회룡리에서 태어남. 1984년(90세) 8.9일 사망하여 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묻힘. 1936년 발표.

 

 

 

 

97. 고향(2)/이기영- 먼동이 틀 때 (‘고향’ 마지막 회에서)

희준이는 손목을 잡고서 사과를 하려다가 문득 무엇을 생각하고서 그것을 쥐러 가던 자기의 손을 도로 가져왔다.

옥희는 얼른 다시 고개를 희준에게로 돌리면서 무슨 말을 할 듯할 듯하더니 그대로 입을 다물어버린다.

‘저는 선생님을 사랑해요.’

옥희의 별같이 빛나는 눈이 이렇게 희준이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그러나 희준이는 괴로운 듯이 눈을 아래로 깔았다. 그렇다! 역시 옥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래야만 내가 정당하게 주의에 사는 사람이 된다. 그러면 이 말을 지금 이 자리에서 옥희에게 토파하는 것이 옳지 않으냐? 희준이는 결심한 듯이 고개를 번쩍 들고서

“옥희씨!”

하고 입을 열었다.

“네!”

“저는 동무에게 사죄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무엇을 제게 사죄하실 일이 있어야지요.”

옥희는 희준이의 마음을 아직 잘 알지 못하고 이렇게 말한다.

“일전에 저는 동무를 만나서 어느 정도까지 저의 진정을 이야기한 일이 있지요. 제가 동무를 사모해오던 정경을 듣고서 그동안 동무도, 역시 내나 마찬가지로 변민하셨을 줄 압니다.”

옥희는 고개를 수그리고 아무 말이 없다. 희준이는 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저는 지금 와서 동무에게 공연히 그런 말을 해서 마음을 괴롭게 하여준 것을 사과합니다. 저는 그 후로 이 며칠 동안 ‘사랑’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남녀 간의 애정이라는 문제게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그 결과 모든 형태의 사랑-애정이라는 것이 근본은 극단의 개인적인 것이면서 실상은 사회적인 물건이요, 극단의 감정적인 물건인 것 같으나 사실은 이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애인과 애인 간의 사랑도, 형과 아우와의 사랑도, 아버지와 아들과 어머니와 딸과의 사랑도, 결코 그것이 현재 우리들이 거처하고 있는 사회를 떠나서는, 그 처지를 떠나서는 문제가 서지 않는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들의 사랑이라는 것은 이와 같은 사회적인 그 처지의 기준 위에서 성립되고 평가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동무를 사랑했었다든지 혹은 앞으로 하겠다든지 하는 것은 물론 우리의 처지에 있어서, 또는 사회적으로 보아도 아무 부자연한 것이 없겠지요. 같은 부류의 일을 위해서 손목을 마주 잡고 나가는 동지로서 아무런 불순한 점이 없다고 하겠지요. 그러나 이성 간의 사랑은 단순한 개인과 개인의 결합만이 그 전부가 아닐 것입니다. 육체적 결합을 초월하고 결합되는 사랑! 동지적 사랑이라 할까? 이런 사랑이야말로 육체적 결합을 전제로 하고 출발하는 연애라는 것보다는 더 크고 힘 있고 영구적인 사랑인 줄로 나는 생각합니다. 연애도 물론 진실한 동지 간에 결합되는 것이라야 일평생 가는 것이 있기야 있지만……”

“그래요! 저도 선생님의 말슴이 그럴듯하게 생각되어요.”

옥희는 무어라고 이런 경우에 말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자, 희준이의 주장에 공명하였다.

그렇다고 공명하고 싶지 않은 말에 옥희는 거짓 찬성하였을까? 아니다, 그는 이렇게 말해놓고 가슴에서 무거운 돌덩어리 한 개를 내려놓은 것처럼 기분이 제 스스로 명랑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마음속의 무거운 짐을 희준이의 이 같은 설명으로 풀어놓은 것이 사실일 것이다.

“아-인제 고만 내려들 가자는데 두 분만 더 계시다 내려오실래요?”

돌연히 인동이가 이렇게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또 무어라고 입을 열려고 하던 희준이는 비로소 마을 사람들이 이때까지 자기들 두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멀찍이 서서 바라보고 있는 광경에 제 정신이 깨어났다. ‘아차! 잘못했구나.’

“참 너무 늦었군! 인제는 모두들 내려갑시다. 나는 이야기를 다 했으니까 같이들 가십시다. 옥희씨도 내려가지요.”

희준이는 빙글빙글 웃으면서 앞서서 걸으며 여러 사람 곁으로 갔다. 옥희도 기분이 가벼워진 듯이 웃는 얼굴로 그의 뒤를 따랐다.

하늘은 한빛으로 검은데 서쪽 만리재 고개에 걸쳐 있는 조각달은 구름이 가렸는지 보이지 않고 웅장한 봉화재 연봉의 산날망이가 어둠 가운데 희미하게 윤곽이 나타나면서 동쪽 하늘빛이 희끄무레하기 걷히기 시작한다.

검은 장막이 한 꺼풀 벗겨지고 희미한 회색 구름이 하늘 한구석에서 점점 커지면서 장차 오는 광명을 예고하는 것 같다.

그리고 머리 위에서는 은하수가 물속에 있는 보석같이 빛나고 있는데 언덕 아래에서는 닭의 홰치는 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면서 연달아서 “꼬가요-”하고 길게 빼내는 울음소리가 일어났다.

“아아 벌써 날이 밝기 시작하나베!”

앞에서 가는 사람들 중에서 누구인지 이런 말을 하였다.

“밝는 날을 위해서 우리도 준비합시다. 다들 집에 가셔서 편히 쉬시고 우리 집으로 오십시오.”

희준이는 마음이 상쾌하고 정신이 영롱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공중에다 대고 이렇게 말하였다.

“자아 그러면 편안히 쉬십시오.”

그들도 이렇게 희준에게 인사한다. 언덕을 다 내려와서, 그들은 동리 어귀에 르렀던 것이다.

“네 편안히들 쉬십시오.”

희준에게 이렇게 대답하자 인동이와 옥희를 앞세우고, 자기는 맨 뒤에 따라오다가 조금 높은 곳에서 발을 멈추고는 하나씩 둘씩 먼동이 트는 새벽하늘 밑으로 흩어져가는 그들의 뒷모양을 우두커니 내려다보고 있었다.(781-785쪽) 끝.

 

이기영, 『고향』, 문학과 지성사, 2009.초판6쇄.

* 1895년 5.29(음 5월 6일) 충남 아산군 배방면 회룡리에서 태어남. 1984년(90세) 8.9일 사망하여 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묻힘. 1936년 발표.

 

 

 

98. 스토리텔링

 

1981년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정보 혁명을 바탕으로 제3의 물결이 우리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또다른 미래학자 롤프 예센은 소비자에게 꿈과 감성을 제공하는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가 올 것이라고 선언했다. 지식과 정보의 경계가 무너지고 꿈과 감성이 이끄는 ‘제4의 물결’이 향후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이다. 더욱이 이 물결의 중심에는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사람들의 꿈과 감성을 자극하는 ‘스토리텔링’이 핵심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따라서 많은 국가들이 스토리텔링을 21세기 신국가사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야기가 세상을 지배하고 이야기꾼이 부자가 되는 미래 사회, 세상의 무게 중심이 이야기로 옮겨지고 있는 이때, 몸값이 높아진 스토리텔링이 어떤 것인지 우선 그 개념부터 정리해보도록 하자.

 

1. 스토리텔링이란?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은 우리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이야기 혹은 전해들은 이야기, 지어낸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면서 서로의 상상력과 감성을 주고받는 소통의 한 방식이다. 따라서 스토리텔링은 이야기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변형할 수 있으며,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목적으로 누구에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그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또 스토리텔링은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여 공감대를 끌어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다 하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이야기의 줄거리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움직일 수 있도록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덧붙여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같은 이야기라도 개인의 취향과 성향, 경험 등에 따라 이야기를 달리 해석할 수 있다. 더욱이 자기가 들은 이야기를 자기 방식으로 내면화해 또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기 때문에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에서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 공감의 장이 형성되고 감동의 교류를 끌어내는 것이므로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EBS 다큐프라임 '이야기의 힘' 제작팀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의 조건 이야기의 힘!』,황금물고기, 2011, 218쪽.

 

 

 

99. 원형의 전설(圓形의 傳說)/ 장용학

 

이것은 세계가 자유와 평등, 이 두 진영으로 갈라져서 싸우고 있던 시절, 조선이라고 하는 조그만 나라에 있은 한 사생아의 이야기입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동양에 있는 나라였고 <자유>와 <평등>은 서양에서 생긴 물결이었습니다. 이 자유와 평등이 핵전쟁을 일으켜 결국 인류전사(人類前史)에 종언을 고하게 하는데, 6‧ 25동란이라고 하는 그 전초전과 같은 전쟁이 벌어진 곳이 바로 이 조선이라는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족보를 따지면 르네상스를 어머니로 하는 프랑스 혁명이 낳은 남매라고 할 수 있는 <자유>와 <평등>이 어찌하여 생면부지라고 할 수 있는 조선이라는 엉뚱한 나라에 가서 충돌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세계사라고 할 수 서양사의 흐름을 더듬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내륙적이고 같은 자리에서 춘하추동을 되풀이한 식물적 계절성이랄까 <윤회>적인 동양사의 성격이라고 한다면, 서양사는 해양을 무대로 삼고 끊임없이 <서북에의 길>을 더듬어 유동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종말관>에서 그 특성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오리엔트에서 발원한 서양문명은 페르시아‧ 그리스를 거쳐 로마에, 로마에서 알프스를 넘어 프랑스로, 프랑스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하나는 잉글랜드에 머물렀다가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로, 다른 하나는 도이칠란드에 들렀다가 러시아로 흘러들었습니다. 러시아로 흘러든 그 흐름은 시베리아의 흰 벌판을 횡단하여 블라디보스톡에, 아메리카로 흘러들었던 흐름은 태평양의 푸른 파도를 넘어 필리핀에까지 당도했었는데, 이 이야기의 싹이 트는 무렵이 되는, 제이차세계대전이 끝나서 조선 땅인 북위 38도선에서 서로 만나게 되었을 때, 그들 남매는 서로 하늘을 같이 이지 못할 원수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아를 발견했다고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늘이 두려워 밤이고 낮이고 머리를 숙이고 기도만 드리면서 살다가 암만해도 재미라는 것이 있는 것 같지 않아서, 그중 몇몉 사람은 서로 짜 가지고 몰래 곳간에 들어가 먼지 속에서 옛날 그림책을 찾아 꺼내다 펼쳐 보았더니, 거기에는 자기들과 꼭 같은 모양을 한 인간들인데 기도를 하는 모습은 하나 없고 모두들 노래를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숲속으로 찾아가서 그림책에 있는 것처럼 노래를 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가슴이 울렁거리면서 몸이 쭉 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때까지 가슴에 십자(十字)를 그으면서 기도만 드리느라고 언제 가슴을 내밀고 살아 본 적이 없었던 그들이었습니다. 마을에 돌아온 그들은 소리소리 외쳤습니다. 우리는 <인간>을 발견했노라고. 그 당시는 신대륙을 발견해 내서 너도나도 발견이라는 것에 들떴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 소리는 마을에서 마을로 퍼져 나가 순식간 온 세상을 덮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발견이 아니라 발명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 될 성질의 것이었고, 더구나 인간은 발견이 아니라, 그것은 인간의 상실을 의미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도만 드리는 것이 인간생활이 아니라, 노래도 부르며 살아야 완전한 인간생활이다 해서 그렇게 산다는 것은, 마치 앞모습만 거울에 비추어 보고 살던 사람이 뒷모습도 보아야 완전한 내 모습을 알 수 있다 해서, 뒤에다 또 하나의 거울을 세워 놓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게 하니 과연 뒷모습도 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거기에는 무수(無數)의 내가 줄지어 있어서 어느 것이 낸지 알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낸가 해서 그를 보면 그 뒤에 또 내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를 보면 또 그 뒤에 내가 있고……

그로부터 인간의 역사는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 거울 속을 헤매는 과정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새로운 기도, 새로운 교회였습니다.

그 교회에 이름을 붙여야 했습니다. 이름이 없다는 것은 그 자체가 없다는 것이 되니까요. 그런데 이전과 달라 교회는 두 개였습니다. 그래서 앞에 서 있는 교회에는 <자유>라는 기를 꽂고, 뒤에 서 있는 교회에는 <평등>이라는 기를 꽂았습니다. 그리고서 학자들로 하여금 자유와 평등을 모순되는 개념이다, 라고 정의를 내리게 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싸움을 붙여 놓은 것입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 싸움을 노렸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본성은 파괴‧전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무엇보다 즐긴 구경거리가 화재였고 그들 자신도 인정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그들은 그렇게 호전적이고 파괴를 일삼았던가.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라고 해서 그들이 스스로 내세우는 것이 <손>과 <말>이었는데, 그 손과 말은 일치할 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왜 그렇게 일치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인간이 파괴적이고 싸움을 좋아하는 것은, 어린애가 손을 놀릴 수 있게 되면서부터, 하는 일이란 밀어뜨리고 부수고 찢고 허비고 하는 것뿐으로서 건설이다든지 우애라든지 하는 것을 그 손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라 하여, 생래적인 것으로 돌려놓고 있지만, 어린애들이 부수고 찢고 하는 것은 어른들이 말하는 <부수고 찢고> 이전의 단순한 동작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도리어 인간의 호전성은 어린애들의 그런 단순한 동작이 금지된 데서 잉태된 것이라 할 것입니다.

어린애들의 그런 동작이 수그러지기 시작하는 것은 어른들의 사설에 접촉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부수지 말아라> <싸워선 못 쓴다> <정 말을 안 들으면 집에서 내쫒겠다> 하는 말이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그런 동작을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없어진 것이 아니라 안으로 파고 들어가 마음으로 승화된 것입니다. 승화해서, 마치 시어머니가 두려운 며느리처럼 표면으로는 귀로 들어온 대로 행위라는 것을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언제나 딴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어머니란 바로 자기 자신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말>이 어떻게 생겼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최고의 책으로 쳤던 《성경》이라는 교과서에는 처음에 <말>이 있었다고 했지만 그것은 엄살이고, 사실은 처음에 행동이 있었고, 다음에 말이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이론상으로 봐서도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말>이란 <길>이고 길이란 <금지>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말이 따로 존재해 있어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금지에는 금지되어야 할 행동이 먼저 거기에 있어야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생동이 먼저 있고 다음에 말이 있게 되었다는 것은 또한 발생적 사실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말할 것도 없지만 금지하는 편과 금지 당하는 편은 서로 대립되는 반대의 위치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손>과 <말>이 일치할 때가 거의 없었다는 까닭도 이로써 분명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가령 어린이들의 그 동작을 금지하지 않고 그대로 둬두었더라면 인류 역사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답은 둘에서 하나를 빼면 하나가 된다는 셈보다 더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어린이들의 동작을 금지시킨 <말>에 의하여 엮어진 역사가 우리가 본 바와 같이 비리와 모순으로 가득 찬 암담하고도 불길한 박물관과 같은 것이었다면, 그 반대의 역사는 적어도 밝고 순하고 싱싱한 식물원과 같은 것이 되었으리라는 것은 정한 이치라 하겠습니다. 아무튼 그 동작의 금지야말로 인간형성의 원자였다고 할 수 있겠고, 인간의 고뇌와 방황은 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인간이 파괴를 즐기고 전쟁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은 인간이 인간이기 위한 조건이었고, 인류전사(人類前史)에 종지부를 찍게 한 핵전쟁은 그들이 스스로 자기의 조건을 청산하기 위한 예정조화였다고 할 것입니다.

자유와 평등의 대립은 고양이 한 마리도 죽을 필요가 없는 대립입니다. 그것은 남매라기보다 하나로 결합해서 서로 자기를 완성시키는 부부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자유를 취하려면 (평등을 -발췌자가 넣음), 평등을 취하려면 자유를 버려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유가 없는 평등이라면 우리 속의 돼지에게 더 있을 것이고, 평등이 없는 자유라면 산에 사는 늑대를 따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인간은 돼지도 아니고 늑대도 아니고, 인간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유 안에서 평등, 평등 안에서의 자유라야 참다운 평등이고 참다운 자유일 것입니다. 그들이 내세운 자유나 평등은 참다운 자유, 참다운 평등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그렇게 피투성이가 되어 싸울 수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이 자유와 평등의 싸움은 뒤집어서 말하면 민족과 계급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자유진영에도 계급이 있고, 한편 평등진영에도 민족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서로 높이 쳐든 깃발은 푸른 바탕에 붉은 점이 군데군데 박힌 것과, 반대로 붉은 바탕에 푸른 점이 군데군데 박힌 것이어야 정직한 기(旗)라 할 것인데, 그렇지 않고 말쑥하게 푸른 기와 말쑥하게 붉은 기였습니다. 그들은 거짓말의 기를 들고 싸운 것입니다. 정직한 기를 들면 싸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민족이야, 계급이냐!> <자유냐, 평등이냐!> 하고 다투는 것은 마치 <원형이 더 크다, 아니다, 사각형이 더 크다> 하고 싸우는 것과 무슨 다름이겠습니까. 이 이야기를 <원형의 전설>이라고 이름한 것은 그런 쑥스러운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라는 것이고 무슨 딴 뜻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출전: 장용학, 원형의 전설, 삼성출판사, 1972. pp 7~12. (소설의 첫머리임)

 

* 장용학 : 1921년 함북 부령에서 출생. 동아일보논설위원 엮임. 1962년 <원형의 전설> (사상계에 연재함)

 

 

 

 

 

 

 

 

 

 

 

 

 

 

 

 

 

 

 

 

 

 

 

 

100. 논어(論語)-학이(學而)

 

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은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않은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답지 않은가?”

 

2. 유자가 말했다. “그 사람됨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에게 공경스러우면서 윗사람 해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윗사람 해치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질서를 어지럽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군자는 근본에 힘쓰는 것이니, 근본이 확립되면 따라야 할 올바른 도리가 생겨난다. 효도와 공경이라는 것은 바로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니라!”

 

3.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곱게 꾸미는 사람들 중에는 인(仁)한 이가 드물다.”

 

4. 증자는 말했다. “나는 날마다 다음 세 가지 점에 대해 나 자신을 반성한다. 남을 위하여 일을 꾀하면서 진심을 다하지 못한 점은 없는가? 벗과 사귀면서 신의를 지키지 못한 일은 없는가? 배운 것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것ㅎ은 없는가?

 

6.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젊은이들은 집에 들어가서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나가서는 어른들을 공경하며, 말과 행동을 삼가고 신의를 지키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어진 사람과 가까이 지내야 한다. 이렇게 행하고서 남은 힘이 있으면 그 힘으로 글을 배워야 한다.

 

13. 유자가 말하였다. “약속한 것이 도의에 가깝다면 그 말을 실천할 수 있고, 공손함에 가깝다면 치욕을 멀리할 수 있다. 의탁하여도 그 친한 관계를 잃지 않을 수 있다면 또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

 

14.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먹는 것에 대해 배부름을 추구하지 않고, 거처하는 데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는다. 또한 일하는 데 민첩하고 말하는 데는 신중하며, 도의를 아는 사람에게 나아가 자신의 잘못을 바로 잡는다. 이런 사람이라면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할 만하다.”

 

공자 지음, 김형찬 옮김,『論語』,홍익출판사, 2011년(개정판 20쇄)

 

 

<편집후기>

 

넓은 의미에서의 독후감이란 독후에 남기는 모든 글이다. 읽은 글을 발췌하여 정리하는 것도 넓은 의미의 독후감인 것이다. 책을 읽고 나서 정리해 두지 않으면 강물이 흘러가듯 저 멀리 기억 너머로 흘러가 버린다.

읽은 글 중에서 다시 읽고 싶은 곳을 틈틈이 정리해둔다면 다시 읽을 수 있어 좋다. 필요할 때 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읽기는 글쓰기를 통해 더욱 비옥해지고, 완결성을 지니게 된다. 독후 글쓰기를 함으로써 독서 활동의 의의는 폭이 넓어지고 사고가 깊어지기 때문이다.

비평적 에세이는 문학 작품에 대해 자신이 사고한 바를 깊이 있게 써나가는 글을 뜻한다. 일정한 형식이나 절차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자유로운 사고 활동을 촉진시킬 수 있다.

비평적 에세이를 쓰기 위해서는 작품의 어떤 한 면을 잡아 자신의 생각을 깊이 있게 파고들면 된다. 주인공의 말 한마디에 깊은 인상을 받아 그것과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아도 좋고 반드시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인상 깊은 인물의 행동에 대해 물고 늘어져도 좋은 것이 비평적 에세이이다. 여기서 다만 중요한 것은 그렇게 써나간 내용이 얼마만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지의 여부이다.

비평적 에세이에서 중요한 것은 작품에 대한 자신의 ‘실감’이고 독자 자신의 주관적 해석과 판단이다.

교육과학지식부 지정 ‘사교육절감형 창의경영학교’를 3년째 운영하고 있다. 실무담당자인 정현희 부장님께서 독서교육자료로 활용하기 위하여 예산을 배정해주시고, 박병구 교감 선생님과 김대홍 교장 선생님께서도 발간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바쁜 중에도 사제동행독서동아리에 열심히 활동 중인 1학년 임유진, 송혜지, 원혜진, 임채린, 백소현, 남수민, 박선영, 김슬기, 권미정, 박선미, 2학년 노규선 등의 회원들께도 고마움을 전합니다.<지도교사 김우연>

 

 

 

2012‧ 독서동아리 ‘여울’ 독서자료

발 행 일 / 2012년 7월 20일

발 행 인 / 김 대 홍

발 행 처 / 사곡고등학교

경상북도 구미시 박정희로 195번지

경상북도 구미시 사곡동 461-2번지

☎(054)713-2540 (교무실) (054) 713-2500(행정실)

2012 사제동행독서자료(1)-수정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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