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증호론
- 웃음 속에 담겨 있는 진실미
김우연
1. 단시조
시조의 본령은 단시조이다. 국제화·세계화로 가는 길에 그 중요성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에 발간한 손증호의 단시조집『불쑥』(2016.10)은 60편의 단시조로만 묶었다. 모든 시인들은 자신의 개성을 꽃피우고자 한다. 창작 본연의 임무이자 독자들과 소통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불쑥』은 아주 독특한 목소리와 빛깔로 세상에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그것은 단시조의 간결미 속에서 주로 언어유희를 통하여 독자들이 웃음을 짓도록 하면서도 사회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위트, 해학. 풍자 등을 독자들을 즐겁게 하면서도 문제의 본질에 쉽게 접근하도록 한 시인의 의도가 적중한 때문일 것이다. 끝내는 담담한 달관의 세계에서 노니는 시인의 본 모습을 드러내어 우리들이 걸어갈 바람직한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하여 다 읽고 나서도 기쁨과 함께 잔잔한 감동의 여운이 맴돌아 다시 시집을 돌아보게 만든다. 모든 시는 소통을 전제로 한다. 시인과 독자, 시와 독자 등의 만남으로 시작한다. 그것은 시낭송, 시와 음악, 시와 그림이나 서예 등을 통하여 시집을 직접 읽지 않은 이웃 사람들에게도 파문처럼 퍼져 나간다. 이럴 때 단시조는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특히 시 암송 대회 등에서 연시조 위주로 하기보다 단시조 위주로 할 때 참가자들의 부담감을 줄일 수 있는 것을 보았다. 더 나아가 다수의 사람들이 즐겁게 참여하는 것을 보았다. 암송대회가 하나의 축제이며 시조 보급의 한 방법이지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들처럼 긴장감을 조성한다면 일부 사람들만 참여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도 이번 단시조집은 우리 시단에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앞으로도 애독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기대하면서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스케치하듯 몇 편을 내 눈에 보이는 대로 간단히 그려보고자 한다. 이 글은 나의 이웃 사람들에게 파문이 퍼져가도록 연못에 던지는 조그만 조약돌이다.
2. 시인의 길
시인은 눈밭에 첫발자국 찍는 사람
삼가는 마음으로 낯선 길 걸어가다
몸 한 번 부르르 떨고 새벽하늘 맞는 사람.
-「시인」전문
눈 내린 낯선 길에 발자국을 어지럽게 함부로 내지 않겠다고 한다. 뒷 사람들이 길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인은 눈밭에 첫발자국 찍는 사람”이라고 선언한다. 첫발자국을 내기 위해 시인은 밤새 고독과 고통을 겪는 것이다. 그런 결과 남보다 먼저 ‘새벽하늘’을 맞는 사람이 된다. 이번 시집에 나타난 위트, 해학, 풍자 등으로 꽃 피운 모든 작품들은 모두 첫발자국이며 독자들을 기쁘게 하였다.
3. 위트
학사 위에 석사 있고
석사 위에 박사 있지
박식한 박사 위에 무엇이 또 있을까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밥 잘 사는 밥사 있네.
-「밥사」전문
박사와 ‘밥사’ 사이엔 받침 음운 ‘ㄱ’이 ‘ㅂ’만 바뀐 유사음을 이용한 언어유희를 통하여 일단 재미를 준다. 독자와 소통을 위해서는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밥’은 우리 생명을 위한 가장 소중한 음식이 아닌가. 그런데 요즘은 식후에 마시는 커피 한 잔이 밥값보다 비싸다. 흔히 ‘커피 살게’가 흔히 듣는 소리이다. 또 너무 먹어서 살을 빼겠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 넘치는 세상이기도 하다. 한 편으로는 지구상 어린이 1/3이 굶주리고 있다고 한다. 이 소중한 ‘밥’에 대해서 모든 종교인은 기도 후에 먹는다. 은혜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은 일에 바빠서 가족들도 함께 밥을 같이 먹기 어렵다. 그러니 대화가 부족하다. 하물며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대화 단절이 심화되고 있다. 이럴 때 ‘밥사’는 밥을 잘 사는 사람이요, 남들과 소통을 원하는 사람을 말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들이 가장 소중한 것이 의사소통이요 인정을 나누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4. 해학
당신이 말씀하신 무지, 개 같은 사람
언젠가 무지개 같다던
그 사람 아닌가요
사람이 무지개 같다가 개 같아도 되는가요.
-「같은」전문
‘무지개’를 ‘무지, 개’로 언어유희를 통하여 아름다운의 상징인 ‘무지개’가 가장 상스러운 욕을 할 때 쓰는 ‘개’ 것도 ‘무지’는 ‘보통보다 훨씬 정도에 지나치게’의 뜻을 가진 부사로 변환시켜 ‘개’를 아주 강조한다. 인간의 내면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흔히 위로만 쳐다보며 ‘개’ 같은 사람이 되어 지탄을 받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러나 화자는 “사람이 무지개 같다가 개 같아도 되는가요.”라며 어리숙하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직설적으로 ‘개 같은 사람’에게 울분으로 욕을 했다면 오히려 시적 감동은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해학의 멋과 효과를 한껏 살리고 있다.
5. 풍자
돈에도 혀가 있어 사람들과 말을 트면
달콤함 말솜씨에
흘려든 대한민국
다발 돈 허방에 빠져 빙글빙글 돈다 돈다.
-「돈의 혀」전문
돈 때문에 부패가 되는 것은 동서고금의 일일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대만큼 물질추구 신앙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 사회도 더 큰 권력을 가질수록 돈과 관련하여 부패한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 왔다. 그런데 오웰의「동물농장」처럼 섞은 무리를 쫓아낸 무리 역시 썩고 마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것은 남에게 손가락질 하면서도 자신이 손가락 받을 짓에 대해서는 너무도 관대하기 때문이라고 성현들은 일찍부터 외쳐 온 것이다. 세계는 물질적으로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으며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니다. “돈에도 혀가 있어 사람들과 말을 트면”이라며 ‘돈에도 혀’가 있어 그것과 소통하는 순간 허방에 빠지고 많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허방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은 우리 사회를 향해 매서운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영란법이 통과되었지만 ‘돈의 혀’가 있음을 돌아보게 만들고 있다.
“철갑 기갑 막강해도 돈지갑 어찌 당할까// 산 사람 홀리고 귀신까지 움직이는// 요상한 지갑이야말로 갑중의 갑 분명하다”(「갑중의 갑」전문)며 돈으로 타락하는 사회를 풍자하였다. 언어유희로 돈으로 타락한 사회를 풍자하는 시로서 그 절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강하게 직설적인 비판보다는 웃음을 통하여 더욱 비판의 효과를 올리고 있다. 풍자시의 묘미를 보여주고 있다.
6. 자아성찰
시인은 웃음을 유발하여 독자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런데 웃고 난 뒤에 가슴에 남는 그 무엇이 있어 자신과 사회를 돌아보게 하였다. 그러나 시인은 웃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웃음이 멈추는 곳에 달처럼 은은하면서도 조용한 목소리로 시인의 진면목이 다가온다. 그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는 길이다. 그리하여 자신을 낮추기도 하고, 달관하기고 깨우쳐주기도 하면서 이 험난한 세상을 좀 더 따듯하고 밝은 세상이 되도록 조용히 달처럼 비추고 있다.
뒷모습 보여주는 그런 사람이 나는 좋다
넌지시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다
묵묵히 길 밝혀주는 그런 사람, 그 사람
-「달의 배후」전문
남 앞에 자기를 드러내어서 명성이나 이익을 얻기보다는 “묵묵히 길 밝혀주는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 하고 있다. 시인의 인품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한없이 큰 울림과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스무하루 달빛은 고즈넉한 의자다// 맑고도 고운 선을//차르르 펼쳐놓고// 여리고 고단한 것들 쉬어 가라 몸 낯추는”(「달빛의자」전문)는 서정시의 절창이다. 달빛은 ‘고즈넉한 의자’인데 ‘여리고 고단한 것들 쉬어 가라 몸 낯추’어 펼쳐 놓은 것이다. 여리고 고단한 자들에게 무한한 휴식처가 되는 것이다. 시인 자신이 ‘달빛의자’처럼 살아 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겠다는 다짐일 것이다. 독자들도 보름달은 아니지만 반달의 은은한 빛처럼 세상을 향해서 무엇인가 빛을 던짐으로 세상을 좀더 밝게 만들고자 하는 의욕들이 생기도록 하는 힘이 있는 작품이다. 이런 시인이 말인들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
맑았다 흐렸다 뒤채는 입방아에도
위 아래 굳게 다문 그 입술 참 무겁다
그렇지!
사내의 속내
저 정도는 돼야지.
-「수평선」전문
이번 시집 첫 페이지에 놓인 작품이다. 저 수평선을 사내의 입이라고 하였다. 저 수평선처럼 입은 좀 무거워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초장에서 세상 인심이란 손바닥 뒤집기처럼 “맑았다 흐렸다” 수시로 바뀌고 함부로 말하는 것이 세상의 모습이 아닌가. 그래서 칭찬에도 욕설에도 흔들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을 진정으로 비판하여 귀담아 들어야 하는 데도 듣지 않는 사람일수록 자신에게 아부하는 교언영색에는 귀을 기울여서 낭패를 보는 일이 많다. 그래서 사내의 속내는 저 수평선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한다. 정말 시상이 웅혼하면서도 말에 대하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시인은 살아가는 길에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하게 경고하고 있다. 단시조의 한 전범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산 사람 신발들로 어지러운 장례식장//
이걸까 저걸까 내 구두 찾는 동안//
다 벗어 홀가분하신가//
영정이 빙긋 웃으신다.
-「문상」전문
우리는 죽은 자 앞에 설 때에는 유한한 존재인 인가의 삶이 진정 무엇인가 진실로 체험하게 되는 법이다. 산 자들은 ‘내 것’을 찾는 동안 영정은 빙긋이 웃다. 홀가분하게 모든 것을 내려놓은 모습을 통해 인생을 달관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사회에 풍자 해학을 통하여 비판만 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도 염원하고 있다.
그대여 단비처럼 촉촉이 오소서
메마른 가슴자락 찰방찰방 적시며
연초록 바람을 품고 자박자박 오소서.
-「통일이여」전문
통일은 노래하되 이념을 토해내지도 않는다. 아픔이나 고통이니 상투적인 말을 쓰고 있지 않다. 긴 겨울 지나고 봄이 오듯이라고 관념적으로 말하지도 않는다. 한 폭의 산수화처럼 ‘연초록 바람’을 품고 ‘자박자박 오소서’라고 하고 있다. 작은 걸음이지만 한 걸음 한 걸음 통일로 가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듯하다. 그런 봄이 오도록 ‘단비’가 내리고 있든 듯한 느낌을 준다. 목소리를 낮춤으로써 감동의 폭을 크게 하고 있다. 통일을 염원하는 시로는「통일의 꽃」,「얼음공화국」,「내설악」등이 보인다.
이 사회는 나와 남과 공존하고, 다른 나라와 공존한다. 사람과 동물, 식물 나아가 저 태양과 달과 별 등 삼라만상과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걷는 모양 다 같다면 무슨 재미있을까
또박또박 걷는 사람
건들건들 걷는 사람
걸음새 서로 달라서 어울려 살만하다.
-「공존」전문
공존하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것을 이해해야 한다. 더 나아가 서로 다른 면이 있기 때문에 어울려 살만한 것이 세상이라고 한다. 시인은 도량이 넓고 커서 따뜻한 사람일 것이라고 느껴진다. 아울러 시인으로서도 개성을 살려서 쓸 때 또한 재미나는 될 것이라고 중첩적으로 읽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 재미있게 읽어온 시들을 그냥 읽고 또 읽으면 웃음이 나올 것인데 독후감이 오히려 웃음을 멀리하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다시 한번 웃어본다.
배우고 또 배워도 못 다 배울 경전이랴
모난 데 껴안고 닳도록 엮어 풀다
배우자 서로 배우자고 배우자라 하는 게지.
-「배우자(配偶者)」전문
배우자! 배우자! 배우자! 이 시집에서「배우자(配偶者)」에서 배우자는 ‘경전’으로 표현한 것도 재미있거니와 “모난 데 껴않고 닳도록 엮다 풀다”에서는 부부가 살아가야 할 길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어 공감을 주고 있다. 그래서 이 시는 부부끼리 모임에서 낭독하거나 건배사로 한다면 분위기를 크게 살려줄 시라 생각된다. 웃으면서도 가볍지 않은 진실이 담겨 있다.
군용 트럭에서 사내들 내리더니//
우루루 내달아 일제히 거총자세//
막막한 세상을 향해//
정조눈//
서서쏴!
-「불쑥」전문
「불쑥」은 이번 시집의 제호가 된 시이다. 군인들의 행동을 사격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웃음을 유발하고 있다. 이 시는 군인들이 집단적으로 행동하는 한 장면을 묘사하였는데 웃음을 유발하고 있다. ‘눈밭에 첫발자국’을 찍은 것이다. 그런데 웃음 속에서 요즘 젊은이들의 고뇌를 담고 있다. 그것은 “막막한 세상을 향해/ 정조준” 한다는 것이다. 시원하게 배설하는 행위를 보면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군 생활을 하는 젊은이들의 미래를 걱정해주고 있다. 청년 실업이 얼마나 심각한가. 또 부모가 되어 자식이 입대할 때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분단된 국가에 사는 국민으로서 저들이 있어 안심하고 살 수 있음도 행간에서 추가하여 읽을 수 있다.
7. 새로운 말의 씨
이번 시집을 읽으면서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그런데 웃고 나서는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여운이 있었다. 그것은 손증호 시인의 의도적인 장치에서 나온 것이다. 단시조란 압축, 절제 등이 요구되어 고도의 시적 장치가 요구된다. 그런데 언어유희를 통한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가볍지 않는 내용을 은근하게 전달하여 감동을 주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시집은 그 둘을 효과적으로 나타내었다. 그것은 웃음 속에서도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불쑥』은 특히 위트, 해학, 풍자 등으로 웃음을 유발하여 독자들에게 깊이 각인시켰다. 현대시조사에서 길이 남을 개성적인 얼굴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시인의 말’에서 “잘 여문 씨앗 하나 어떤 시보다 시답다”라고 말하며 “말의 씨 시를 심느니”라고 하였다.
‘말의 씨’를 잘 심어 멀지 않은 날에 새로운 꽃을 피우시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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