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푸른 사랑의 노래-김석이의『블루문』(2016.11.29).hwp
짙푸른 사랑의 노래
-김석이의『블루문』
김우연
1. 단시조집『블루문』
김석이 시인의『블루문』(2016.11)은 74편의 단시조집이다. 시조의 본령은 단시조이다. 1980년에 200명 정도의 시조시인은 이제 2,000명 정도로 늘어났으며 갈수록 시조시인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다. 발표지면도 늘어났고 시집발간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가히 시조단의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이제 국내 시조를 넘어서서 세계화․국제화로 나아가는 길목에 있다. 이럴 때 정형시인 시조의 형식이 중요시 되고 있으며, 단시조는 그 중요성이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근래에는 단시조집 발간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시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연시조보다 응축과 절제가 요구되는 것이라 시적 형상화가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블루문』을 일별해보면 고도의 시적 장치를 동원하여 시인의 의도를 적절히 전달하여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첫 시집『비브라토』에 이어 이번 시집의 제호를 ‘블루문’이라는 외래어를 사용함으로써 제목부터 시인이 의도적이며 개성적으로 드러내었다. 또 제목이 내용을 은유함으로써 불필요한 서술을 줄임으로써 시의 구조를 탄탄하게 하고 있다.
시인은 고독과 고통을 양식으로 삼는다고 한다. 김석이 시인은 고독과 고통을 양식으로 삼아서 눈물과 불면의 밤으로 시를 품어 이번에 은은하면서도 아름다운 진주를 세상에 내놓았다. 아픔을 오래 감싸 안았기에 그만큼 색채가 더 영롱한 것이다.
시인의 가슴에는 짙푸른 사랑이 출렁이고 있다. 그래서 세상의 낮은 곳에도 관심을 가지며, 그 고통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삶의 달관이 있다. 그 높고 험한 물결과 벼랑을 넘어 희망의 꽃을 피우고 있다. 험난한 세상이지만 봄을 맞이하고 꽃을 피움으로써 이 세상은 살만하고 아름다운 곳이라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관념의 세계가 아니라 평소의 삶이 누구보다 치열하게 낮은 곳, 어둔 곳, 힘든 곳을 거부하지 않고 마주하였기에 가능한 세계일 것이다. “오늘도 삶의 해변으로 달려간다”는 ‘시인이 말’을 보더라도 그는 늘 출렁이는 속에서도 어둠 속에 길 밝히는 등대로『블루문』이 다가온다.
2. 말의 씨앗
바닥에 엎드렸다//
소금 볕에 따가웠다//
물컹대는 모래밭길 맨발로 허둥지둥//
바다는//
내 꿈의 산실//
배경 없는 독무대
-『갯메꽃』전문
나팔꽃과 비슷하나 나팔꽃은 귀화식물이고 메꽃이나 갯멧꽃은 토종인데 갯멧꽃이 더 윤기가 있다. 갯멧꽃은 생존의 터가 바닷가 거센 바람과 소금기가 많은 척박한 곳에 살고 있다. 그런 곳에서 아름다운 분홍색 꽃을 피운다. 시인은 있는 현실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면서 꽃을 피우는 것에서 무한한 감동을 받는다. 우리의 삶 또한 저 메꽃과 다를 바가 없다는 인식에 도달하면서 시인 역시 갯메꽃이 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바다는/ 내 꿈의 산실/ 배경 없는 독무대”라면서 저 무한히 넓은 바다와 마주하면서 고독의 길을 걷겠다는 것이다. 저 갯메꽃이 바로 흔한 꽃이 아니라 우담화라고 인식한 것이다.
“모두들 잠든 밤에// 어둠의 속곳 열어// 출렁이는 이랑마다 말의 씨앗 파종한다// 밤새워// 달려온 글밭// 한 줄 시로 떠오른다 (-「간절곶 일출」전문)
한 편의 시를 얻기 위해서 어둠의 밤을 지새워 ‘한 줄 시’를 얻게 된다. 그리하여 낯선 곳이든 주위를 살펴보더라도 슬픈 곳, 어둔 곳, 낮은 곳에 시선을 보낸다.
가라앉은 물빛 주름//
목 밑까지 잡아당겨//
한평생 푹 젖은 채//
갯바위로 앉아 있다//
세월은//
다 멈추었다//
널 두고 갈 수 없다
-「슬픈여」전문
‘슬픈여’는 홍도에 있는 갯바위 이름이라고 한다. 그 갯바위는 “한평생 푹 젖은 채/ 갯바위로 앉아 있다”라며 “널 두고 갈 수 없다”고 애절히 말한다. 고통과 아픔은 함께 나눌수록 줄어드는 법이다. 이것은 이웃과 사회에 대한 사랑이 바탕이 없이는 노래할 수 없는 것이다. 김석이 시인의 눈물은 결국 사랑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사랑은 천성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의지와 노력이 없이는 가질 수 없는 따뜻한 마음이다.
“어제를 밟고 서서// 오늘을 키워본다// 휘몰아친 폭풍은// 널 품기 위한 몸짓// 비워져// 넓어진 하늘// 내 삶의 은유다”(-「층층나무」전문)에서도 휘몰아친 폭풍도 감싸 안으며 어제보다 오늘을 키워왔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더 넉넉한 ‘넓어진 하늘’을 품은 것이리라.
이런 시인이 세상을 돌아볼 때 우리의 생은 경건하고 엄숙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저녁 노을마저 ‘탄트라(tantra)’로 다가온다
해거름에 벗어놓은 한낮 열기 자국마다//
붉은 하늘 끌어와서//
부르튼 발 쓰다듬는//
다 해져//
너덜너덜한//
뒤꿈치가 쓴 기도문
-「노을 신발」전문
우리는 하루의 일을 마치면 지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그럴 때 저 붉은 노을은 “부르튼 발 쓰다듬는”다고 하였다. 그 노을은 “너덜너들한 뒤꿈치가 쓴 기도문”이라 하였다. 흔히 생의 마지막 즈음을 노을에 비유하지만 여기선 하루의 마지막을 노을에 비유한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하루 하루의 삶을 치열하게 다루는 의식이 반영된 것이다. 하루 하루의 삶이 생의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처절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지만 치열한 삶일수록, 고단할수록 저 노을처럼 아름답다고 생을 찬미하고 있다. 노을 신발을 신은 주체는 해 또는 하루가 될 것이다. 시상이 크다. 우리들의 하루의 삶 자체가 노을 신발을 신은 주체가 될 것이다.
3. 짙푸른 사랑
한걸음에 달려오는 파도의 선율 있다
온몸으로 구르는 돌들의 리듬 있다
가슴을 출렁이게 하는 짙푸른 사랑 있다
-「블루문」전문
양력을 기준으로 하면 2~3년에 한 번 정도는 한 달에 보름달이 두 번 뜨는 현상이 생기는데, 그중 두 번째로 뜬 보름달을 블루문(Blue Moon)이라 한다. 동양에서는 보름달은 풍요로움의 상징인 반면에 서양에서는 부정적인 이미지였기에 ‘우울한’ 이란 뜻의 ‘블루(blue)’를 붙였다. 사실 샤먼들이 알고 있었던 지동설을 서구에서는 플라톤까지는 믿었으나 그 제자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에는 천동설로 바뀌고 교회가 그것을 받아들이며 2000년 동안 서구는 암흑기에 쌓였고 또 천동설을 거부하는 자에겐 화형에 처해졌다.
“1543년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한 후 거의 한 세기나 지나서 갈릴레이가 다시 같은 주장을 했다. 그 결과 대주교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성경 위에 손을 얹고 사죄했다. 반면 신념을 포기하지 않은 조르다노 브루노는 로마의 캄포 디 피오리 광장에서 기어이 불타 죽었다(1592년). 이것은 서구 문명이 우리에게 보여준 최대의 희극이다. ”(박용숙, 『샤먼문명』,55쪽)
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달과 인체, 밀물 썰물과 관련 있음이 상식이었으나 서구에서는 지동설과 마찬가지로 근세에 와서야 알게 된 것이다. 초장에서 “한걸음에 달려오는 파도의 선율 있다”며 경쾌감을 주고 있다. 중장에서도 “온몸으로 구르는 돌들의 리듬이 있다”며 더욱 즐거움이 고조되고 있다. 결국은 “가슴을 출렁이게 하는 짙푸른 사랑 있다”며 눈물을 넘어서서 밝고 힘찬 모습의 사랑을 간직한 모습으로 읽힌다. 어쩌면 ‘블루문’에 대한 비운의 사랑 이야기를 소재로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 시집 전체에서 ‘사랑’이 많이 나타나는 것과 이 시 자체에서 느껴지는 이미지가 그렇다는 말이다.
“시린 사랑 잘라서 채곡채곡 쌓습니다.// 그리움에 넋이 나간// 정수리에 얹습니다// 삽시간// 번져간 입깁// 툰드라에 안깁니다”(-「석빙고」전문)
‘석빙고’를 사랑을 표현하는 소재로 이용한 것이 참신하다. “시린 사랑”이지만 “그리움에 넋이 나간” 것은 애닯은 사랑의 본질이 아니던가. 꽁꽁 얼어붙을지언정 임에 대한 그리움은 아주 단단하게 굳어있는 얼음처럼 된 것이다. 이 얼마나 역설적인 사랑인가. 사랑이란 기쁨과 슬픔의 양면성이 있기에 김석이 시인에게서도 다양하게 변주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 잎씩 떼낸 얼룩// 물과 함께 사라졌다// 뭉개진 향내 짙어// 가슴팍에 녹아든다// 시간이// 지우고 가는// 몰래 키운 첫사랑”(-「비누꽃」전문)에서는 따뜻하고 향기로운 첫사랑의 이미지로 나타나기도 한다.
짙푸른 사랑으로 출렁이는 가슴을 가졌기에 사회를 바라보더라도 낮은 곳으로 바라 보게 된다. 몇 편을 살펴보기로 한다.
4. 낮은 곳의 사랑
꽃 위에 앉지 못한
일벌들 빙빙 돈다
일용직 제갈 씨는
오늘도 헛날갯짓
늘어선
무료급식 대열
맷 뒷줄에 엉거주춤
-「벌떼인력개발」전문
시제의 ‘벌떼인력개발’은 일자리 구하려는 사람들을 ‘벌떼’에 비유하였다. 일자리 구하고 싶어도 구할 자리가 없어 결국은 ‘일용직 제갈 씨’는 무료급식 대열에 서 있다. 그것도 젤 “맨 뒷줄에 엉거주춤” 한 자세이다. 일자리가 목숨인 현실에서 ‘제갈 씨’같은 순박한 성품을 가진 자에게는 돌아오지 않을 뿐더러 무료급식에서도 젤 뒤로 밀려 있는 약자이다. 시인은 시각적 이미지로 나타만 낼 뿐 시에 개입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시집 전체에 관통하는 시인의 작시법이다. 시는 본질적으로 ‘말하기’보다 ‘보여주기’에 있다. 이 시인은 이 점을 잘 터득하여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해석을 맡긴다. 그래서 상상과 공감의 폭을 더 크고 넓게 만들고 있다.
눕는 곳이 집이요
발 닿는 곳 고향이다
갈라진 시멘트 틈새
봄을 이고 앉은 꽃
신문지 이불로 덮고
봄꿈에 젖는 사내
-「냉이꽃」전문
‘냉이꽃’은 노숙자를 비유한 것이다. 일자리를 구하고 싶어도 구하지 못하고 떠돌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갈라진 시멘트 틈새”에도 냉이꽃을 피우듯이 신문지를 이불고 덮고 있지만 “봄꿈에 젖는 사내”라고 희망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오늘날 풍요 속에서도 양극화가 심해지고, 외국인 노동자 또는 불법 노동자가 늘어나는대도 청년 일자리를 비롯하여 일자리가 심각하여 실업자가 갈수록 많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절망하지 않은다. 부정을 위한 부정, 대안 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이기적인 것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이라서 쉽게 외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은 아무리 달콤하게 속여도 진정으로 민중들을 사랑하지 않는한 민중의 고통은 끝이 없다. 이럴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아무리 힘이 들어도 용기를 가지도록 격려하고 꿈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시인은 관찰자의 입장으로 노래하고 있지만 시인의 가슴 속에는 약한 자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것을 알 수 있다.
물살에 뒤척이다 파도를 닮아버린//
보호색 짙은 생애//
갯바위에 붙어 있다//
짊어진//
짐이 오히려//
등고선을 밀고 간다//
-「명주고둥」전문
갯바위에 붙어 있는 ‘명주고둥’의 강인한 생명력을 노래하였다. ‘명주고둥’ 또한 이 사회의 낮은 곳에서 강인하게 살아가는 인간을 비유하고 있다. “물살에 뒤척이다 파도를 닮어버린”이라며 험난한 일도 결국은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며 끝내는 “짊어진// 짐이 오히려// 등고선을 밀고 간다”며 느리지만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밖에도「분꽃씨」에서도「냉이꽃」과 유사하게 시멘트 바닥위에 뒹구는 ‘분꽃씨’를 보면서 “금이 간 틈// 파고들어 새싹 하나 틔우”기를 기원하였다. 「서성이다」에서는 “돌 위에 앉아 있는 내 아픔에 급급하여// 뾰족한 너, 아팠겠다 생각조차 못 했어”라고 노래하고 있다.
이처럼 시인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서 많은 시선을 돌리고 있다. 이미지로 담담하게 처리하고 있으나 그 울림이 크며 내가 아픔 속에 있을 때라도 상대방의 아픔을 헤아리는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다.
5. 달관의 자세
땅 고른 집터 위에//
한 사코 뿌리 내린//
개망초 한 무리가//
유유자적 흔들린다//
곧 뽑혀//
나갈지라도//
웃음소리 청랑하다
-「어짜능교」전문
‘땅 고른 집터’에는 곧 건물이 들어설 것이다. 그런데도 개망초가 뿌리를 내려서 유유자적 흔들리며 웃음소리까지 청랑하게 서 있다. 개망초의 이야기이면서 개발에 밀려 삶의 터를 잃고 떠났지만 그 터에 잠시라도 씨를 뿌려 가꾸는 강인한 삶의 이야기로도 읽힌다. 그러면서 유한한 우리의 삶도 따지고 보면 저 개망초와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시제를 ‘우짜능교’라는 방언을 사용함으로써 더 친근함을 느끼게 한다. 제목 자체에서 ‘달관의 삶의 자세’를 알 수 있게 한다. 대체로 김석이 시인은 식물들을 소재로 달관의 자세를 읽고 있다.
“맞잡은 기둥 속에// 그늘을 깔고 앉아// 빛을 향한 그리움에// 멀리 뻗은 줄기 하나// 낮추어// 바라본 세상// 더 넓고 아늑하다”(-「곤달비」)
곤달비는 국화과의 산나물로 키는 60cm~100cm라고 한다. 빛을 향한 그리움에 멀리 올라간 줄기는 더 위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낮추어/ 바라본 세상”을 바라보면서 “더 넓고 아늑하다”고 하였다. 높은 줄기 아래 햇살을 고루 받고 있는 모습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이 시의 화자도 관찰자의 입장에서 묘사하고 있지만 시인의 성품이 모두가 따뜻한 햇살을 받고 함께 잘 세상을 염원하고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그것은 나 하나만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내려다 볼 줄 아는 ‘줄기’처럼 달관의 자세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온몸에 힘을 빼고 바람 따라 출렁인다// 바닷가 둔덕길에 억새풀 떼를 지어// 언 땅을 밀어올린다// 위로 뻗어 가늘다 -「군락지」전문
“온몸에 힘을 빼고 바람 따라 출렁이다”는 것은 순리의 삶이요 달관의 모습이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서는 억새풀은 떼를 지어 함께 피는 꽃이라고 민중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렸다. 여기서는 ‘언땅을 밀어올리는 모습’은 민중의 강인한 모습, 약자들의 강인한 삶의 자세로도 읽을 수도 있지만 그 강인함 너머의 ‘달관’의 모습에 더 초점을 둔 것 같다. 이처럼 시인은 늘 희망을 품고 희망을 염원하고 있다.
6. 희망의 노래
굽이치는 물의 반란//
어둠이 엎질러도//
혼돈의 터널에서//
움켜잡은 꿈 하나//
꼿꼿한//
심지 하나로//
물마루 넘어간다
-「등대, 길을 내다」전문
어둠과 험난한 파도 속의 망망대해에서 등대는 길잡이요 희망이다. 시인은 어떠한 역경에 처하더라도 희망을 가진다. 그래서 희망을 노래한 이 시집 또한 독자들에게 하나의 등대가 되고 있다.
들뜬 것도 시린 것도 다지고 밟아준다
벌어진 간격만큼 다가서야 감기는 정
잦아진 발걸음 속에
번져가는 초록 세상
-「보리밟기」전문
보리는 ‘보리밟기’의 고통을 당하지만 오히려 “번져가는 초록 세상”이라며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둑이 되어 막은 바람 잔가지로 다시 막고//
굽이쳐 흐른 시간 물이 되어 또 흐르네//
잎잎에//
새긴 바람길//
마른 언덕 꽃 피운다
-「갯버들」전문
긴 겨울을 견뎌낸 갯버들은 봄을 맞이하여 “마른 언덕 꽃 피운다”며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이밖에도「산국을 보다」에서는 “그늘을 품에 앉는다// 굽은 등에 매단 등불”이라며 노래하고 있으며,「틈」에서는 “진초록 문을 열고// 둘러앉은 저 볕뉘”라고 하였으며,「외등」에서는 “캄캄한 골목길을 밝혀주는 목소리”로,「겨울풀」에서는 “수없이/ 지피는 불씨/ 당겨보는 봄볕 한 줌”이라고 하였으며, 「다시, 봄」에서는 “해마다/ 물푸레나무/ 새순으로 돋습니다”라고 희망적인 노래를 부르고 있다.
7. 눈물로 꽃 피우며
이번 『블루문』의 74편의 단시조는 다양한 소재와 시선으로 노래하였다. 특히 화자에 시에 개입하지 않고 관찰자의 시선으로 시각적 이미지를 통하여 탄탄한 시적 구성을 보여 주었다. 특히 시의 제목을 비유하여 적절하게 붙임으로써 ‘보여주기’ 시로서 성공을 거두는데 일조하고 있다.
고독과 고통을 안고 눈물로서 불면의 밤을 거쳐서 이번에 영롱한 진주를 뽑아내었다. 그것은 시인이 가슴속에 출렁이는 짙푸른 사랑이 그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김석이 시인은 더 낮은 곳으로 시선을 돌려 사회의 약자들을 따뜻하게 잘 조명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에게 시인으로서 응원하는 방법이며 독자들에게는 자신을 돌아보게 하여 사회적으로 관심을 갖게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웃으며 달관의 자세로 이겨내는 모습은 힘든 세상에서 희망을 품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희망의 노래를 전편에 걸쳐서 제일 많이 노래하고 있다. 그 근원은 사랑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희망을 노래하지만 고통이 끝이 없기에 눈물의 노래도 끝이 없다 그것이 희망을 향한 구도의 길이기 때문이다.
한평생 젖어 있어//
눈물에 더 익숙해//
부대끼며 시달리며//
둥글어진 조약돌//
모나고//
각진 세상을//
깎고 있는 저 몸부림
-「와르르」전문
물속에 잠긴 조약돌을 보면서 “눈물에 더 익숙해”서 둥글어졌다고 한다. 우리도 저 조약돌과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나고// 각진 세상을 깎고 있는”에서 ‘세상’을 깎는다고 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다함께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염원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시집 전편의 바탕에 ‘사랑’이 흐르고 있지만 개인적인 사랑에서 사회적인 사랑으로 연결된 건실한 사랑이 잘 구현되어 있어 시조단에서 또 하나의 지평을 넓힌 것이다.
“함박눈 내리는 날/ 복수초 노란 꽃잎// 혹독한 겨울 막바지/ 오도카니 부친 편지// 시려도/ 행복했다고/ 환한 웃음/ 보낸다”-(「마감 일자 소인 유효」전문)
이번 시집이 눈물과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피어낸 복수초임을 밝히고 있다. 시인의 고독한 만큼 시는 더 탄탄하고 아름답게 꽃을 피운 것이다. 그래서 ‘행복했다’고 말하고 있다. 정말 시인이 한 작품 한 작품 얼마나 땀을 흘렸는가를 느낄 수 있었다. 크게 박수를 보내며 그 자세를 본받고자 한다.
앞으로도 또 긴 겨울을 견뎌내고 저 눈부신 복수초로 환환 웃음으로 새봄을 맞이할 것이라 기대한다.
'김우연의 동인지, 시집 평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병래론-생명희 환희 (0) | 2017.06.26 |
---|---|
이경옥/ 막사발의 노래(2010) (0) | 2017.05.22 |
손증호론-웃음 속에 담겨 있는 진실미 (0) | 2016.11.27 |
윤경희론-단시조 미학의 정수 (0) | 2016.11.24 |
김미정론-경계를 허문 화엄을 향한 여정 (0) | 2016.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