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환론-절대고독의 벼랑 끝에서 핀 우담발화(14쪽)(최종수정5월 10일).hwp
조주환론
-절대고독의 벼랑 끝에서 꽃피운 우담발화
김우연
1. 들어가며
백초(白初) 조주환(曺柱煥) 시인은 1946년 영천에서 출생하여 1976년「길목」으로 월간문학신인상 입상 및 1977년「대왕암」으로《시조문학》천료로 등단하였다. 그는 40년을 시조라는 외길을 걸어왔는데 어언 고희를 넘어서게 되었다. 그동안 3권의 시집을 발간하였으며 이번에 두 권의 시집을 추가하여 모두 5권의 시집, 641편(제3시집까지 발표한 작품은 655편이나 일부 제외하였음)을 묶어서 ≪조주환 시조전집≫을 발간하게 되었다. 그가 그동안 걸어온 개성적인 시적성취는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우람한 하나의 큰 산으로 우뚝 솟아 있다. 그래서 이번 전집 발간은 대단히 의미가 큰 것이며 크게 박수를 받을 일이다.
시집으로는 첫 시집『길목』(1986), 제2시집 장편대하서사시조『사할린의 민들레』(1991), 제3시집『독도』(2005), 제4시집『메아리』(2017), 제5시집『순천만의 갈숲』(2017)이 있다. 편의상 1-3시집까지는 전기, 4-5시집은 후기로 나눌 수 있겠다. 조주환 시조의 특징이 무엇인지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2. 서정시의 최고의 양식인 시조(時調)
조주환이 등단한 시기인 1970년대까지 “등단한 시인이 무려 150여명”이었으며 70년대에 등단한 시인은 박시교를 비롯한 76명이었다.
“소네트나 절구처럼 지나치거나 하이쿠처럼 모자람이 없는, 서정시로서의 형식요건을 오롯이 갖춘 최소 양식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시조는 3단 구조의 짧은 양식으로 어떤 정서나 진실을 온전히 담을 수 있으면서도 논리적으로 검박하게 진술하는 담론이므로 서정시의 최소 양식이자 최고의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시인 겸 중견 학자는『프린스턴 시학사전(The Princeton Encyclopedia of Poetry and Poetics)』의 ‘한국시(Korean Poetry)'라는 항목 서술에서, 한국의 현대시(자유시를 의미함)에 대한 설명이 의외로 소략한 데 비해, 시조는 “한국 시 형식 중에서 가장 대중적이며, 가장 융통성 있고, 가장 기억할 만한” 장르로 소개하면서 압도적인 비중으로 다루고 있음에 “예상 밖이었고 충격적이었다”고 고백한다. 시조는 우리 선조들이 남겨준 최고의 보물이다. 조주환은 이것을 일찍 깨닫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3. 조주환의 시조관
조주환의 시조관은 먼저 그의 아호(雅號)를 통하여 짐작할 수 있다.
조주환은 백악(白岳)이라는 호를 사용하였으나 근래에는 백초(白初)를 즐겨 쓰고 있다. ‘백악(白岳)’이란 백두산을 말하는 것이니, 웅대한 시, 민족혼이 담긴 형태인 시조를 통하여 민족혼을 일깨우는 시를 쓰겠다는 것이다. ‘백초(白初)’는 시인의 초심으로 돌아가서 시인으로 영원히 살겠다는 각오로 보인다.
둘째, 그는 1979년에 비화문학회(현 맥시조문학회)를 창립하면서 “우리의 첫 출발은 어떤 시류(時流)에의 편승이나 눈치작전이 아니라 스스로의 꿈과 체험과 진실을 스스로의 목소리로 다듬어 나가며 노래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셋째, 조주환 시조의 형식상 특징은 연시조를 즐겨 쓴다는 것이다. 단시조와 연시조의 비율은 20 : 80정도이다. 제4시집에서는 사설시조를 약 20% 모았으나 641편 중에는 약 5% 정도이다. 제2시집에서는 평시조, 엇시조, 사설시조, 그리고 이들의 혼합시조 등 자유자재로 활용하였다. 그에게 시조의 형식이란 무엇인가. 첫 시집에서 “시조가 형식으로 인해 시(詩)를 죽이는 일이나 형식을 벗어난 것이어서는 시조의 존립이 위협받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자수율에서도 조윤제보다는 이병기를 따르고 있으며 형식이 시를 죽이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
넷째, 내용에서는 현실 비판의식이다. 서정시의 본령에 충실하면서도 시대의 지성인으로서 현실의 모순을 비판·고발하고 방향을 제시한다. 그의 투철한 현실 인식은 역사의식에서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그것은 역사에 눈을 돌려서 민중들의 아픔을 형상화하여 현실의 어둠에 절망하지 말고 용기를 얻는 힘을 주고 있다. 시에 나타난 어조는 나약한 것이 아니라 지사적인 굵직한 목소리를 통하여 깨우침과 공감을 주고 있다.
다섯째, 시적 경향이나 소재의 다양성이다. 그는 정형시인 시조를 통하여 그 정형을 지키면서도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자유를 구가하고자 하였다. 그것은 각고의 노력을 통하여 시적성취를 이룩하였다. 그는 다양한 내용을 서 왔지만 3시집까지는 역사와 현실의 어두운 면에 저항하고 고발하고 극복하는 것에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4, 5시집인 후기에 와서는 생태와 생명 의식에 더 주목하고 있다.
4. 문단사의 위치
조주환의 제3시집『독도』를『우리시대 현대시조 100인선』에서『93․소금』(2006)으로 발간되었다.『소금』은 “공동체의 해체와 상실의식(「무너지는 음절」,「겨울 들」, 굵은 선의 힘으로 형상화한 장편서사(「사할린의 민들레」)”라고 하였다.
이지엽은 위에서 현대시조의 흐름을 간결하게 정리하는 중에서도 조주환의 “굵은 선의 힘으로 형상화한 대장편대하서사시조집「사할린의 민들레」”를 정리한 것은 대단히 의미가 큰 것이다. 그 이후에 아직도 대하서사시조는 나오지 않은 것으로 홀로 우뚝 솟아 있는 것이다.
윤금초는 “시조의 발생연원을 서울 정도(定都) 600년보다 200년이나 더 역사가 길다. 그러나 800년 이상 면면히 그 맥을 이어온 시조문학의 기나긴 역사에 비해 아직까지 장편 서사시조 한 편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우리 문학사의 크나큰 수치가 아닐 수 없다.”라고 대하 장편서사시조를 애타게 기다리면서도 정작 80년 초부터 약 1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시조문학』에 발표한 것을 책으로 1991년에 펴낸 바 있는데 아직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조주환은 70년대에 등단하여 후진 양성과 동인결성, 문단활동, 연구, 평론 등 다양하게 하였다. 시적 경향은 역사적인 큰 줄기를 끊임없이 써 왔으며 뛰어난 은유법은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칭찬까지 얻게 되었다. 굵직한 지사적인 어조로 세상의 모순을 향하여 질타하면서도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였다. 특히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드러내어 설교하거나 울분을 토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서정시의 본령을 생각하면서 은유로서 시각, 청각 등의 이미지를 통하여 보여주기를 통하여 시적성취를 얻었다. 묘사는 관찰자의 시선에 바탕을 두고 하고 있으며 의미진술을 직접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난해하지 않은 시로서 시조의 본령에도 충실하였다. 즉 묘사와 의미진술을 적절히 조화시켜서 높은 시적성취를 이루었다. 개성적인 목소리로 굵고 싱싱한 언어로 이미지화하여 우리 시조문단사에 아주 개성적인 모습을 남겼다. 그 상은 크고 웅혼하여 우주적이었다.
조주환은 대장편서사시조『사할린의 민들레』로 백악처럼 우뚝 솟아 있다. 이 작품을 30여 년을 두고 4번째 정독을 해 보았지만 읽을수록 머리가 숙여질 뿐이다. 단군 이래, 각 왕조의 역사와 조선 그리고 일제강점기로 각 국에 떠도는 동포들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그려낸『사할린의 민들레』는 하나의 고전이 되었다. 그것은 방대한 양이며 역사적이지만 시인의 주장이나 어떤 특정 관념이 치우치지 않고 묘사를 적절히 가미하여 보여주었기에 문학적으로 높이 승화되었으며 불후의 명작으로 남게 된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읽어도 또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고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좋은 작품이 고전이 아니던가. 1980년대 초 구상하여1980년대 말에 완성하고 1991년에 펴낸『사할린의 민들레』는 ‘절대고독의 벼랑 끝에서 꽃피운 우담발화’이며, 한국시조문단에 그를 백악처럼 우뚝 솟게 한 것이다.
4. 전기 : 현실 비판의식 -역사의 물줄기
하늘땅이 숨죽이고 싸느랗게 언 네거리
꺾인 꽃사슴뿔 그 앙상한 꼭지로 남아
뼈 속에 빙점(氷點)을 묻고 서릿발로 타고 있다.
시멘트벽에 떨어진 네 꿈의 죽지를 보라
박힌 피멍 속 새파랗게 이는 불꽃
이 겨울 분수(噴水)를 껴안고 힘줄로 와 떠느니.
물보라 은빛 선율을 저 동천(冬天)에 묻어 두고
창세의 지열(地熱)이 타는 지층 그 바닥에 가
박힌 못 빗장을 뽑으며 이 동토(凍土)를 녹이는가
불길을 터뜨리랴, 이 땅의 검은 벽에
밟힌 풀잎들의 그 깡마른 눈빛 낱낱
쏟아질 해빙(解氷)의 함성을 갈증인 양 뜯고 있다.
돌밭 구천 리 길 맨발로 온 물줄기로
짙은 고뇌를 삭힌 목숨의 뿌리 하나
바윗벽 칠흑을 뚫고 엉겅퀴로 돋겠네.
-「겨울 분수噴水」전문,(제1시집『길목』)
이 시는 1984년 『시조문학』겨울호에 발표된 작품이다. 그의 시작메모에서 “이 작품은 제5공화국 출범 전후로 살벌했던 계엄령 아래, 총칼로 짓밟힌 시대상과 자유와 민주를 되찾으려는, 민중들의 강렬한 의지와 염원을 형상화한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는 현실의 모순 앞에서 절망하지 않고 마지막 연에서 “바윗벽 칠흑을 뚫고 엉겅퀴로 돋겠네.”라며 민주화와 자유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고도의 은유와 상징을 통하여 표현하고 있다. 압제한 대한 비판과 저항의식은 보편성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시적성취를 얻고 있다. 압제란 동서고금 꾸준히 있어온 바 직설적으로 비판함으로써 사람들을 선동할 수 있을지 모르나 ‘카프’의 시들처럼 시의성취는 어렵다. 시는 언어 예술이다. 조주환은 울분, 분노의 가슴도 시를 통하여 고도의 은유와 상징을 통한 시적형상화에 성공함으로써 영원히 기억에 남는 시인이 되었다. 현실에 대한 시적 갈등은 시인들의 영원한 과제이다. 그래서 조주환은 전집을 발간하면서도 “시는 사회 비판이나 고발보다 서정적 예술의식이 앞서야 하겠지만 그런 것들을 고발하고 형상화하는 일이 더 많았기에 대부분이 거칠고 아픔이 있는 것들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특히 뛰어난 은유를 통하여 독자들에게 내용이 전달되면서도 시조의 절제미를 구현한 수준 높은 시를 통하여 시적성취를 이루었으며 현대시조를 자유시를 능가하는 시적성취를 보여주었다. 물론 시조 등단 이전에 수준 높은 자유시를 습작한 것이 그 바탕이 된 것이라 본다.
현실에 대한 고발, 비판과 방향 제시는 그의 시에서 굵직한 모습으로 변주되고 있으며 등단 시 대왕암에서 이미 출발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역사적인 소재도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삶과 연관되어 강렬한 현실 인식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한(恨), 천년
다스려 안고
동명(東溟)에 가 떠는 꽃등
사모침 연잎에 적셔
노을 밖을 이우는데
하 그리
피끓는 사랑
바윗돌로 굳었는가.
서라벌 한 점 먹물을
물보라로 씻으면서
영혼의 촉심(燭心)속을
다독여 온 인동뿌리
저 심전(心田)
바닥에 잠겨
해돋이를 여닫는가.
원(願) 푸른
비늘깃 틀다
못 다한 옥저(玉箸)로 풀면
한 가락 붉은 숨결로
저며드는 물굽인데
내 산하 맥(脈)을 빗기며
타오르는 성화(聖火}여
-「대왕암(大王巖)」전문(제1시집『길목』)
이 시는 1977년 『시조문학』천료작이다. 이처럼 조주환은 우리의 역사에서 소재를 잡고서 등단하였으며 그 이후 역사에 관심을 쏟아왔다.
미국 태생의 동양여류사학자인 존 카터 코벨 여사는 “통일신라(668∼936) 때는 해안지대에 출몰하는 왜구가 안보상의 문젯거리였다.”라고 하였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우리 국토 침탈과 역사 왜곡에 대해서 “내 산하 맥(脈)을 빗기며/ 타오르는 성화(聖火)여”라고 문무왕을 통하여 강한 국토애와 민족애를 노래하고 있다.
통나무 장작을 패듯 두들겨 잠을 깨우면
곡괭이 등짐을 지고 비틀대는 노무자들.
이승 녘 천만 길 벼랑에 해와 달이 떨며 운다.
명절, 일요일이 이 동토(凍土)에 있었으랴.
하루 열 두 시간 더러는 또 철야 작업에
육신은 넝마가 되어도
왜는 자꾸 채찍을 쳤다.
-「넝마」일부(제2시집『사할린의 민들레』)
탄광에서 강제노동을 당하고 있는 장면이다.
제2시집인 대장편대하서사시조집인『사할린의 민들레』는 대하서사시조로서는 전무후무한 것이다. 대하서사시집의 시적자아는 두 개의 목소리로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주인공의 목소리이며, 하나는 시인의 대리인으로서의 목소리이며 어느 경우에든 직설적인 목소리는 자제하며 당시의 고통의 참상을 묘사하여 독자들이 느끼도록 하고 있어 시적성취가 더 높다.
줄거리는 주인공인 ‘나’는 경상도일월산 아래에서 태어나서 19세에 18살의 ‘달래’와 결혼을 한다. 할아버지는 고려 때 장군의 후손인 신돌석 장군 의진에 들어가 의병활동 하였으며, 의진 해산 후에 만주로 가서 독립투쟁을 하였으며, 아버지는 3·1 운동 때 독립을 외치다가 일경의 총에 맞고, 투옥되어 구타 등의 고문으로 병을 얻어 사망하였으며, ‘나’는 결혼 직후에 생계를 위해 삼척 탄광에 가서 1년 남짓 일하다가 일본인의 1/3도 안 되는 봉급차별로 귀향하게 된다. 그러나 바로 강제징용으로 일본 탄광이나 비행장 건설에 투입된다. 그리고 사할린의 탄광 막장에서 혹사당하였다. 일제의 패망 후에 소련군이 들어와서 귀향길이 막힌다. 결국 그곳에서 결혼하여 자식을 낳았다. 탄광에서 계속 혹사를 당하면서고 고국으로 돌아갈 꿈을 키우며 어린 자식에게 어릴 때부터 꾸준히 민족혼을 일깨워준다. 일흔의 노인이 된 ‘나’는 귀향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내 죽으면 뼈와 살을 저 동해에 뿌리라”며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1990년에야 한·러 수교가 정상화되었는데, 그 10년 전인 1980년 초반부터 이런 구상을 하고 약 7년 끝에 이 작품을 완성하였다. 다만 시집 발행은 1991년으로 아쉬운 바가 있다. 조주환 시인은 항상 시류와 관계없이 투철한 시정신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으며 일제강점기 때의 우리민족의 참상과 고통을 드러내며 해방이 되어서도 각국에 흩어진 동포에 대해서 모두가 무관심하거나 입다물 때 사회를 일깨우는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대단히 의미가 큰 작품이다. 그는 역사를 미리 내다보는 안목이 있는 큰 시인이었다. 이것은 이번 전집에서는 제외된 작품이지만 제3시조집에서「대왕암 2」에서 “뿌연 황사가 묻혀 이 산하가 흔들리거든”이라는 대목은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한 역사의 왜곡에 대한 고발의 작품이며 미래를 내다보고 있는 작품임을 알 수 있다.
푸른 유리컵 같은 저 동해의 자궁을 열고
몇 조각 뼈로 태어난 백두의 핏줄 독도가 산다.
수줍은 태초의 햇살이
맨 처음 닿는 곳.
해협 밖 미친 바람이 제 뿌리를 흔들 때는
시퍼런 힘줄을 떠는 겨울바다의 등뼈
결연히 창검을 세운다.
그 실존의 한 끝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혈육들이 잠든 밤
거친 풍랑에 꺼질듯 깜박이다
가끔은 고독에 깎이며
소금 꽃을 꺾어 문다
-「독도」전문(제3시집『독도』)
「독도」는 제3시집의『독도』(2005)의 표제가 된 시이다. 1997년『문학사상』1월호에 발표한 것이다. 독도에 대한 일본의 야욕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 시를 발표할 당시 상황은 1994년 2월에 일본은 한국에 어업 협정 개정을 요구해왔으며, 1996년 2월에는 일본은 독도를 포함한 배타적 경제 구역 선포 방침을 결정하였으며, 1998년 1월에는 한·일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굴욕적인 신한일어업협정을 1998년 9월에 맺었으며 독도를 중간 수역에 포함시킨 것이다. 먼저 ‘백두의 핏줄 독도’는 성스러운 우리 영토임을 분명한 사실임을 밝히고 있다. 그래서 둘째 수 초장에서 “해협 밖 미친 바람이 제 뿌리를 흔들 때는”이라고 노래하며 우리 영토인 독도 침탈을 ‘미친 바람’이라며 강한 감정으로 고발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소극적으로 임하고, 국민들의 각성이 부족하던 시절에 독도에 대한 관심을 한편의 아름답고도 결연한 의지를 갖도록 하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는 “가끔은 고독에 깎이며/ 소금꽃을 꺾어 문다”면서 관심이 부족하던 그 시절에도 끝없는 국토애를 가지겠다는 시인의 의식을 투영한 것이다. 이처럼 조주환은 등단한 이래 꾸준히 국토애와 민족혼을 일깨워 왔다. 그 바탕에는 교육대학을 졸업하고도 또 중등교사가 되기 위하여 국어과와 역사과의 자격증을 갖고 있으며 실제 역사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학업을 해온 것이 그 바탕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주환 시인은 다양한 소재와 주제와 참신한 비유로 그의 시의 영역을 넓혀왔지만 전기 시조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 역사의 물줄기에서 시적 성취가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다.
5. 후기 : 생명 의식-나, 혈육, 고향, 생태
아우는 암으로 가고 목련꽃만 활짝 핀 봄
종일 누이가 울어 햇살도 다 젖는데
목을 빼 허공을 흔들며 네 이름을 부른다.
검은 짐승이 삼킨 그 처절한 흔적들이
피 묻은 메아리로 낱낱이 되돌아 와
애이듯 가슴에 뚫린 그 구멍만 커졌다.
-「메아리」전문(제4시집『메아리』)
「메아리」는 제4시집의 표제가 된 시이다. 목련꽃이 피어나는 봄날에 동생이 암으로 먼저 이승을 하직하게 되니 그 슬픔은 말할 수 없는 충격에 쌓였다. 동생을 부르며 직설적으로 감정을 토로하지만 부르는 그 이름은 메아리로 가슴에 뚫린 구멍만 커졌다며 그 비통한 심정은 독자들로 하여금 그 메아리에 젖게 된다. 조주환은 은유와 상징을 바탕으로 하되 특히 은유에 매우 능하며 작품마다 참신한 이미지 창조로 시조에서 요구되는 절제를 통하여 아주 개성적인 시적성취를 이룬 매우 보기 드문 시인이다. 그렇지만 아우의 죽음 앞에 그렇게 은유로 처리 오히려 독자들에게 감동은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내용에 따라 직설적인 것이 효과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에서 시적화자가 바로 시인 자신이라는 것은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그것은 제5시집『순천만 갈숲』에서도 “북벌 장군만 같던 그 장대한 기골(氣骨)과 힘이/ 악성 피톨로 스러져 비틀댄다./ 몇 번씩 꿈속만 같다며/ 풀린 눈을 끔뻑인다.”(「아우의 하늘-진환에게」세 수 중 둘째 수) 라며 직접 아우에게 바치는 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참으로 애통한 일이다. 장대한 기골의 아우가, 큰 눈을 끔벅이는 것을 바라보며 어찌 손을 쓸 수 없을 때 무너지는 가슴을 누가 알 것인가. 동생을 이처럼 애통하게 노래한 시가 있었던가. 조주환은 아우에 대한 생각이 각별하다. 첫 시집에서도 “흙빛 사금파리 풀물이 밴 길섶 아득/ 나목 등걸에 박힌 한 조각 불빛을 찾아/ 이 변방 빙벽(氷壁)을 뜯으며 통나무를 깎더니,”(「통나무를 깎는 아우」세 수 중 첫째 수)라며 힘든 일을 하는 아우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전통사회에서는 맏이의 책임이 무거웠다. 그러나 산업구조가 바뀌고 흩어져 살면서 형의 책임은 전통사회와는 많이 바뀌었다. 이렇게 볼 때 조주환 시인의 아우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과 사랑은 시인이기 이전부터 간직한 마음으로 보인다. 형제간에도 각박해져 가는 세상에 뜨거운 우애의 마음과 아우를 잃은 애통한 심정은 이 시를 읽는 이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할 것이다.
깃발처럼 휘날리며 하늘에 닿아 더 푸른
해발 1,124 미터 그 장엄한 기상으로
소슬히 전율을 흩으며
가슴에 와 솟은 산
녹음이 일렁이는 산허리 산등을 따라
동해가 철썩이고, 해와 달이 떴다 잠기고
목숨도 능선에 놓아
풀씨처럼 기르는 산.
풀빛 내 이웃이 뿌리 내린 개울길 따라
끌고 온 산그늘이 금호강물로 굽이쳐
넉넉히 가슴을 적시며 푸른 들을 키우느니,
조상의 뼈를 묻고 대대로 흙을 일구고,
몇 송이 능금꽃이 강기슭에 터져나던
아득한 추억의 강둑이 지명으로 휘어 있다.
도시 허공에 떠 바람에 흔들린 땐
어릴 적 우러르던 이 산을 더듬어 오른다.
풋풋한 하늘의 숨결에
내 영혼을 닿을 듯한,
-「보현산普賢山」전문(제4시집『메아리』)
첫 시집에서도 ‘보현산(普賢山)’과 ‘보현산(普賢山) 고을물’을 싣고 있으며, 제 5시집의「영천 가는 길」에서 “하늘을 받들고 솟은 저 장엄한 보현산 아래”라고 노래하고 있는데 제1시집부터 제5시집까지 끊임없이 노래하는 ‘보현산’은 그의 육신의 고향이자 정신적 성지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조주환 시인에게 있어서의 고향의 ‘보현산’은『사할린의 민들레』의 주인공 ‘나’의 영원한 고향인 일월산과 『대왕암』으로 상징되는 ‘동해’는 그의 시의 축을 이루는 트라이앵글이다. 그곳은 그에게 끊임없이 시심의 샘물을 솟아오르게 하는 성지임을 알 수 있다.
오늘 이곳에 와 신의 손자국을 본다.
아직 다 끊지 않은
저 우주의 탯줄과 실밥
속 깊은 남해의 자궁을
갈꽃들이 쓸고 있는,
갯벌에 손을 담궈도 닿을 수 없는 그 속
몇 겁을 굽이쳐와 갈숲이 된 수백만 평
비릿한 원시의 바람만
그 속내를 짐작할 뿐,
해와 달 별빛이 숨어 몸을 푸는 그 숲 속에
작은 게 발자국 따라 ‘물의 피가 흐른다’
수시로 양수가 터지고 새 생명이 꿈틀댄다.
수천 수만의 철새와 저 갈숲의 아우성들
연신 셔터를 눌러 갯내음까지 다 가둬도
저물녘 머물던 노을에
내 온 몸이 다 젖었다
-「순천만 갈숲」전문(제5시집『순천말 갈숲』)
이 시는 생태시로서 수준 높은 시적성취를 이룬 작품이다. 살아 숨쉬는 순천만갈숲의 싱싱한 생명력을 잘 묘사하였다. 유한한 존재인 우리 인간은 끝내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간다. 일흔을 앞두고 쓴 이 작품은 육신은 늙어가도 대자연은 변함없이 싱싱한 것이기에 “오늘 이곳에 와 신의 손자국을 본다.”라며 대뜸 노래를 시작하였으며 “저물녘 머물던 노을에/ 내 온 몸이 다 젖었다”라며 자연의 대생명에 완전 동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향 산밑에 와 저승 집 한 채 짓는다.
나와 아우들과 2세 3세로 이어 살
눈물이 반이나 섞인
긴 돌단을 쌓는다.
따뜻한 말 한 마디, 그 무엇도 해준 것 없이
여린 아우들 가슴에 큰못도 박았으리
스스로 참회를 하듯
내 마음을 묻는다.
햇살 짱짱한 날 들꽃도 몇 옮겨 심으리
훗날 혼백들도 그 머리를 맞대고
벙그는 꽃의 말들을
가만가만 들으라고,
-「귀천원(歸天園)」전문(제5시집『순천말 갈숲』)
조주환 시인은 죽어서도 부모님을 모시고 아우들과 함께 하기를 소원하고 있다. “여린 아우들 가슴에 큰못도 박았으리”라며 참회하는 모습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게 하여 눈물을 흘리게 한다. 참회한다는 것은 뉘우친다는 것이요 자신을 정화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영원히 순수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숙연하게 만든다.
6. 단시조
(1)
쫑쫑 물 쫑쫑/ 조약돌에 떨군 울음이//
소금쟁이 실여울에/ 물무늬로 가 앉다가//
풋잠 든 아가의 눈에/ 방울방울 벙근다.
-「물총새」전문(제1시집『길목』)
(2)
살아 푸르게 끓던/피와 살은/다 빠지고//
깨진/유리조각 같은/저 투명한/물의 뼈가//
마지막/지상에 남아/혼의 불로/타고 있다.
-「소금Ⅰ」전문(제3시집『독도』)
(3)
몇 억 광년이나/ 몇몇 겁을 굽이돌다//
관음의 아미蛾眉에 닿아/ 푸른 숨결로 깨어난 듯//
척박한 이 땅을 밝히는/ 영혼의 꽃/ 한 떨기.
-「미소-연꽃에게」전문(제4시집『메아리』)
(4)
가끔은 천애고아天涯孤兒로//
절해고도絶海孤島에 남은 것 같다.//
뼈를 깨무는//
수억만 평 절대고독 속//
그 모든 인연의 끈들이//
다 끊기어//
지워진 듯,
-「가끔은」전문(제5시집『순천만 갈숲』)
(1)은 동시조이며 많이 알려져 있다. (2)는 「우리시대 현대시조 100선」의 93번 『소금』의 표제가 된 시이다. (3)은 그 작품성이 인정되어 서울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게시된 작품이다. 자신과 인연한 새 핏줄을 바라볼 때의 생명의 신비로움에 대한 시로서 시상이 웅혼하면서도 아름답다. (4)는 절대고독의의 섬과 같이 살아가는 자신의 현재 모습이다. 주로 외부로 향하여 현실을 노래하는 것에 비해 내부로 향함으로써 삶의 진실한 모습을 노래하여 공감을 주고 있다.
7. 나오며
조주환은 1976년에 등단하여 5권의 시집을 발간하였으며, 제2시집『사할린의 민들레』는 대장편대하서사시조로서 독보적이다. 단시조보다는 연시조를 위주로 썼다. 연시조는 단시조에 비해서 시적 긴장이 떨어지기 쉬운데 고도의 은유를 구사하여 시적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 단시조에서도 수준 높은 수준 높은 작품으로 시적성취를 이루었다. 시조가 절제의 미를 요구한다고 볼 때 단시조에도 좀더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
시조가 서정시의 갈래로서 개인의 서정을 은유와 상징을 통하여 수준 높은 시적성취를 이루었다. 이것은 시조를 종교적 차원으로 받들며 글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지향한 그의 자세가 그 바탕이다. 특히 참신한 은유의 이미지는 그의 시를 시간을 초월하여 후배들에게 좋은 시조 창작의 모범이 되리라 본다.
그는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써서 시의 영역을 넓혀왔지만 그 중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역사의 물줄기와 생명의식이다. 전기에는 주로 역사에, 후기에는 생명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에게 역사의 소재는 현실의 모순점과 민초들의 아픔을 헤아리고 그 방향을 제시하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시적자아는 지사의 굵직한 목소리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직설적이거나 교훈적인 것에서 벗어나 묘사에 충실함으로서 시적성취를 높게 이루고 있다. 후기에는 생명의식이란 생태의식, 고향, 개인의 병마, 혈육을 잃은 아픔 등 개인의 일상이 주를 일고 있다.
전기 후기를 통하여 그의 시를 샘솟게 하는 원천적인 공간은 보현산과 일월산과 동해이며 이것이 트라이앵글을 이루고 있다. 그는 절대고독의 벼랑의 끝에서 우담발화를 꽃피워 왔다. 시조 전집을 발간한 것은 40년의 결실을 일단락 맺고 새롭게 정진하려는 각오로 보인다. 새롭게 충전하여 시조단에 빛을 더해 줄 것이라 믿는다.
“수만 겁 꺼지지 않는/ 불꽃이길 꿈꿈다.”「단풍을 보며」(제5시집)는 시인의 말처럼 앞날이 더욱 눈부시고 아름다운 불꽃이 활활 타오르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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