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연의 시조 평론(해설, 논문)

단시조로 꽃피운 화엄의 달빛- 김소해 단시조집『대장장이의 딸』

가산바위 2020. 7. 19. 22:23

단시조로 꽃피운 화엄의 달빛

- 김소해 단시조집대장장이의 딸

 

 

김우연

 

 

1. 단시조의 달관

 

시조는 단시조가 본령(本領)이다. 현대시조 개척기에서 지금까지 약 100년간은 연시조에서 꽃을 피웠다. 그러나 시조의 세계화로 나가는 지금은 단시조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화전(花田) 김소해 시인의 단시조집대장장이의 딸(작가, 2020)75편 모두 단시조의 묘미를 최대한 살리고 있다. 독자들에게 기쁨과 다양한 사유를 하게하고 있다. 이것은 시인이 단시조를 다루는 솜씨가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대우주에서부터 작은 씨앗 하나까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데 자유자재하다. 그 바탕에는 우주와 뭇 생명과 하나가 되는 화엄의 사상, 사랑의 사상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화엄이라 하여 특정한 종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동서양 어떤 종교와 사상을 노래한 것이 아니면서도 그것을 다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대자연과 이웃과 삶 속에서 모든 것을 대긍정의 마음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죽음마저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번 시집에는 화엄의 경지, 시조에 대한 각오, 사랑, 고향의 그리움, 어버이의 노래, 순수서정, 생명 사랑, 자아성찰 등 다양한 주제가 나타난 시조의 보고와 같다. 여기서는 지면상 화엄의 경지를 위주로 살펴보고 다른 것은 간단히 다루고자 한다.

 

2. 화엄의 경지

 

퇴근이 늦은 거실을 지켜보는 둥근달//

반가울수록 예의는 등불 모두 끄는 일//

환하게 마주한 대작(對酌)//

조명 없이 밝은

-달빛손님

 

점자를 읽을 줄 몰라 해독을 못 하겠다//

우주를 가득 채운 밤하늘 뭇 별들//

나에게, 행성에서 행성으로//

뜨거운 호소, 기록인데

-점자

 

소 먹이다 소를 잃고 울며 돌아오는데//

날은 어둑어둑 걱정범벅 눈물범벅//

아 글쎄, 지가 먼저 와서 날 기다리고 있더라니까

-반가움

 

낮은 창 방문 앞은 때까치가 친구 같은//

철따라 꽃가지의 기웃거림 딸같은//

비비새 할머니 안영아침인사 손녀 같은

-문안인사의 변주

 

묵은 절집 쇠 종소리 산이 먼저 울었으니//

울음 값 받으려나 노승은 탁발가고//

노을만 소리의 파문에//

별계 어디 다녀온 듯

-타종

 

작은 날개 활짝 펼쳐 지붕을 만드는 어미//

죽지 아래 새끼들 걱정없이 난만하다//

집이란//

어미 날개의 크기//

꼭 그만큼 넓은 집

-비 오는 날의 오목눈이 둥지

 

<평화>를 그리라면 엎드린 소를 그리겠다//

닦달하던 채찍질도 반추할 무엇이라 듯//

다 받아//

안아주는 눈망울//

그 깊이를 본 적 있다

-되새김질

 

선 채로 늙어가는 그런 길도 있다는 걸//

발목을 빠뜨린 채 한 생이 저문다는 걸//

알면서 제 할 일 끝낸 저 넉넉한 파안대소

-가을, 허수아비

 

화엄경에 일체처문수사리보살이 수백억부처 앞에서 동시발성(同時發聲)’으로 예찬하는 장면이 여러 번 반복된다. 이것은 삼라만상이 부처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위에서 예를 들고 있는 작품들이 모두 이러한 경지에서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달빛손님은 도시의 밤은 밤에도 전깃불로 환하다. 그러나 둥근달을 바라보는 시인은 둥근달을 반가운 손님이라고 한다. 그래서 반가울수록 예의는 등불 모드 끄는 일이라며 달빛손님과 마주하여 고요히 달빛에 젖는다는 것이다. ‘둥근달은 친구며 신이며 부처며 사랑인 것이다. 자연과 일체가 되는 것이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길이기도 하다. 자신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참나는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점자에서는 우주를 가득 채운 밤하늘 뭇 별들이 점자라며 우주와 소통하기를 바란다. 시인으로서 뭇 별들을 점자로 참신하게 인식하고 표현한 것 자체가 나름대로의 시조의 경지를 개척한 것이다. 눈을 못 보는 장애우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있기에 이런 표현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병이라는 것을 시인을 알기에 우주의 근원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초장에 나타나 있다. 이 비밀을 아는 인간은 없지만 이 또한 알고자 하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기에 인간은 존엄한 것이다.

반가움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재로 한 것이다. 서정시인 시조의 본령에 충실한 것으로 독자에게 감동이 쉽게 전해진다. 그런데 좀 더 크게 보면 소(동물)과 인간의 교감을 나타낸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나 동물의 마음이나 본바탕은 같은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문안인사의 변주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만나는 온갖 동식물들과 인사를 주고 받는다. ‘때까치가 친구 같고, ‘철따라 피어나는 꽃가지는 딸 같고, 비비새는 손녀같이 사랑스럽게 인사를 한다. 행복한 삶 그 자체다.

타종에서는 노을만 소리의 파문에// 별계 어디 다녀온 듯이라며 조용한 산사에서 노을을 동적으로 표현하였다. 그 노을은 타종 소리를 듣고 온 것이니 자연을 바라보는 눈이 이미 문수사리보살의 경지가 아닌가.

비 오는 날의 오목눈이 둥지에서는 비가 내리는 데도 어미 새의 날개 아래서 천진난만한 새끼 새의 모습을 그렸다. 인간 세상에도 집이란 의미와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돌아보게 한다. 인간 세상을 표현하기 위한 비유나 상징으로만 본다면 얼마나 시조의 격이 낮아질 것인가. 인간의 생명과 뭇생명의 분별심을 떠났기에 더욱 빛나는 작품이 되는 것이다.

되새김질에서는 화자는 소는 평화의 대명사이다. “닦달하던 채찍질도 반추할 무엇이란 듯이라며 무엇이나 다 받아 안아주는 눈망울에서 그 깊이를 보았다고 말하고 있다. 기계화된 농업 시대와 달리, 농삿일로 힘들면서도 제대로 먹지 못하던 소에 대한 연민이 바탕이 되어 있다. 그러면서 진정한 행복이란 저 소처럼 우리 삶도 반추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조그마한 고통에도 참지 못하고 분노하는 삶을 주변에서 많이 본다. 분노는 자신과 이웃을 망치는 길이다. 우리는 흔히 선()과 악()으로 세상을 나누기도 하지만 진정으로 선과 악을 우리는 쉽게 분멸할 수 없다. 저 소에게 채찍을 가한 것은 선인가? 악인가? 넓고 깊게 세상을 바라보는 인생관이 담겨 있다.

가을, 허수아비에서는 허수아비마저도 제 할 일을 끝내고 넉넉한 파안대소를 한다고 하는 것도 삼라만상이 부처 아닌 것이 없다는 경지에서 나올 수 있는 표현이다.

화엄이란 결국 무엇인가 대열반경에 있는 자신은 제도를 얻지 못했으나 다른 사람을 먼저 제도하겠다.(自未得度先度他)” 보현행의 실천인 것이다. 문화의 세기라고 떠들었지만 아직도 세계적인 인류의 문화유산이요 보배인 시조를 국내에서도 인식이 부족하다. 그렇지만 시조시인들은 이 시조를 향해서 매진하고, 또 시조집을 내어 보급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최대한 선행을 하는 것이다. 불교식으로 말한다면 보시 중에서도 가장 높은 법보시를 행하는 것이 아닌가. 화엄에서는 불교다 아니다 이런 차별조차 큰 의미가 없다. 우리민족의 문화를 계승하고 전 세계로 전파하여 모든 인류가 좀더 행복해지려는 길로 가는 것 자체가 얼마나 숭고한 일인가.

 

 

3. 시인의 길

 

사랑을 훔치려다 불을 훔치고 말았다//

무쇠 시우쇠, 조선낫 얻기 까지//

숯덩이 사르는 불꽃//

명치 아래 풀무질

-대장장이의 딸

 

태양과 수직으로 맞서라면 맞서야하리//

그늘은 지우고 시침 분침 초침까지//

정수리//

불 데인 흑점//

합일의 빛, 시가 왔다

-정오의 손님

 

대장장이의 딸사랑을 훔치려다 불을 훔치고 말았다고 하였다. ‘이란 바로 자신의 시작(詩作)을 상징하고 있다. 그래서 가슴이 까만 숯덩이 되고 그 숯덩이를 태우기 위해서 명치 아래 풀무질을 한다는 것이다. 밤을 새우며 시작에 몰두하는 시인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정오의 손님에서는 가장 치열한 시인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이고 있다. “태양과 수직으로 맞서는 고통을 감내하고 가장 뜨거운 정오에 합일의 빛, 시가 왔다고 했다. 이 두 편은 시인이 얼마나 치열하게 시조를 향해 매진하고 있는가를 고백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항상 겸손한 말씀에는 존경스럽다. 시인이 자만해버리면 시가 멈추어 버릴 수가 있다. 백수 정완영 선생도 단시조감을 따 내리며종장에서 여든 해 이 땅에 살아도 가마터는 나는 몰라.”라고 했다.

 

 

4. 어버이 노래

 

은하 갈 물줄기가 휘청 떨렸겠다//

작은곰 큰곰자리 구도가 흔들렸겠다//

낯선 별 하나를 맞는 캄캄한 저 하늘

-마지막 밤, 아버지

 

 

 

밭일 마친 어머니 호미를 씻는 저녁강//

여남은 됫박 울음을 엎질러 놓고서는//

가을은 울음도 익혀 단물 들어 붉다

-귀뚜라미

 

천국에 들어가는 첫 번째 조건이란//

이승 일 아득 잊고 백지로 남기는 것//

아흔의 막바지 치매//

어머니를 보는 동안

-울컥

 

마지막 밤, 아버지은 단시조 한 편으로 그 큰 울음을 다 삼키고 있다. 초장과 중장에서 은하 강 물줄기가 휘청 떨리고, 곰자리 구도가 흔들렸다는 것은 이 지구에서 아버지가 가시던 날에 자식들의 슬픔으로 이 우주가 흔들렸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장이 아니다. 그만큼 그 슬픔이 진실하다. 그리하여 종장에서는 낯선 별 하나를 맞는 캄캄한 저 하늘이라 하여 새롭게 하나님의 품에 안긴 과정을 노래하고 있다. 단시조로서 우주적인 노래를 하는 것은 나가 우주의 중심이요, 나가 바로 우주 그 자체라는 화엄의 경지와도 통한다. 단시조의 절창이며 오래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명작이라 본다. 이 한 편으로도 김소해 시인은 행복한 시조시인이라 할 것이다.

귀뚜라미울컥은 사모곡이다. 귀뚜라미는 단시조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가을은 울음도 익혀 단물 들어 붉다라고 공감각적으로 처리하면서 한 인간의 일생을 함축하고 있다.울컥에서는 치매의 어머니가 이승의 일을 잊어가는 것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준비과정이라고 위로하고 있다. 이 얼마나 힘들고 슬픈 일을 다 주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라고 본다. 오늘날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치매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일이 아닌가.

 

 

5. 사랑의 섬

 

내게로 오실 때는 뱃길로 오시어요//

느닷없이 다리 놓아 쌩쌩 오지 말구요//

천천히 노 저어오던//

그 다정으로 오셔요

-

 

뒷면이 고운 너는 은사시나무 잎사귀//

미풍 그 미세함을 떨림으로 보여준//

내 사랑 수시로 흔든다 보고 싶은 뒷면

-부부

 

시의 주제로 사랑이란 가장 오래 된 주제요 앞으로도 서정시의 핵심에는 사랑이 있을 것이다.에는 천천히 노를 저어 오듯이 오라는 것은 사랑의 속성을 잘 표현한 것이다. 빠르게 왔다가 가버리는 소나기 같은 사랑이 아니라 봄비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대지를 적시는 진실한 사랑을 갈구한 것이다.부부에서는 미풍에 떨리는 은사시나무란 부부 사이의 교감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고 싶은 뒷면이란 아무리 가까운 사이도 다 알 수 없는 내면의 세계가 아닌가.

 

 

6. 아름다운 울음을 기대하며

 

이상으로 화전(花田) 김소해 시인의 단시조집대장장이의 딸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한마디로 단시조의 정수요 정화들만 모아둔 것이었다. 단시조의 전범(典範)이라 할 것이다. 시조는 압축, 응축, 생략, 비약, 비유 등의 묘미를 살려야 하는데 이 같은 것이 무르익어 있다.

삼라만상과 일상의 삶을 자유자재로 자신의 체험과 생각을 녹여서 새로운 화엄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치열한 그의 시작에서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죽을 때 단 한 번 우는 새가 있다기에// 울 줄 모르는 나를 슬퍼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그날을 위해// 울음준비 중입니다”(아름다운 울음)라고 했듯이 더욱 고운 노래를 앞으로도 꾸준히 부르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