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시조에 구조에 대하여
시조의 현대화를 위해 또 하나 검토되어야 할 것이 연형체(連形体)의 문제이다. 이미 살핀 바와 같이 형성 초기에서 조선왕조 전반기에 이르기까지 시조는 대체로 3장 6구 단형의 시가를 뜻했다. 고려 말기의 이조년(李兆年), 원천석(元天錫), 이색(李穡), 정몽주(鄭夢周), 길재(吉再) 등의 작품이 모두 그런 것이다. 이런 단형시조는 그 장점과 한계를 아울러 가진다. 단형시가로서의 단시조는 시의 이상인 긴축성, 집약미를 최대한 살릴 수가 있다. 그러나 그 축약적 성격으로 하여 단형시조는 인생과 세계의 의미나 국면을 극히 단편적으로 밖에는 제시하지 못한다. 이 한계점을 보완하면서 시로서의 특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양식으로 형성된 것이 연시조다. 흔히 이야기 되는 대로 이 유형의 시조로 초기에 나타난 것은 퇴계의 「도산12곡」이며, 율곡의 「고산9곡가」도 그와 비슷한 작품이다. 이들 작품은 큰 제목 아래 몇 개의 작은 제목들이 서로 독립된 단위를 이루면서 자리잡고 있다. 거기에는 부분과 부분이 생동감을 가진 가운데 전체가 유기적인 상관관계를 이루면서 상승작용을 하는 구조적 탄력감이 충분할 정도로 확보되지 못했다. 시조가 현대문학의 양식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런 연립주택식 형태, 시멘트 블록으로 이루어진 방과 같은 비구조적 속성이 지양, 극복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 가능성의 하나를 다음과 같은 현대시조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세월도 강물따라 칠백리(七百里)를 흐르다가
마지막 바다 가까운 하구(河口)에선 지쳤던가
을숙도(乙叔島) 갈대밭 베고 질펀히도 누웠데.
그래서 목로주점엔 한낮에도 등을 달고
흔들리는 흰술 한잔을 석양 앞에 받아 놓면
갈매기 울음소리가 술잔에 와 떨어지데.
백발(白髮)이 갈대처럼 서걱이는 노사공도
강만이 강이 아니라 하루 해도 강이라며
김해(金海)ㅅ벌 막막히 저무는 또하나의 강을 보데.
-정완영, 「을숙도」전문
이 작품의 제목이 된 을숙도는 제목이 물리적인 차원으로 치면 낙동강이 바다와 맞닿은 곳에 생긴 한 자연공간일 뿐이다. 그런 소재를 3연 18행의 연시조로 읆은 것이 이 작품이다. 여기서 시인은 을숙도를 자연 공간에 그치지 않는 인간 생활의 한 무대로 탈바꿈시켰다. 첫 수에서 낙동강을 다분히 신화, 전설에 나오는 거인의 심상을 갖도록 의인화되어 있다. ‘갈대밭 베고 질펀히도 누었데’로 의인화된 을숙도는 자연공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화시대에 나옴직한 거인의 심상으로 떠오른다. 둘째 수에서 이 작품에는 비로소 인간이 나타나면서 그 배경이 채색도 선명한 풍경화의 공간이 된다. 여기서 화자로 등장하는 것은 우리 국토 어디에나 있는 목로주점의 손님이다. 그는 붉게 타오르는 석양 앞에 탁주에 지나지 않는 ‘흰술 한잔’을 받아들었다. 그것은 다시 ‘갈매기 울음소리가 술잔에 와 떨어지데’와 일체화된 것이 이 부분이다.
이것으로 화자를 둘러 싼 자연은 빛깔과 소리를 아울러 지닌 공감각적 차원에 이른다. 그와 아울러 을숙도의 석조가 선명무비한 동영상의 한 장면으로 떠오른다. 셋째 수는 을숙도 지역에 사는 주민을 등장시킨다. 여기서 그는 오랫동안 세상을 살면서 강물과 같은 시간 속에서 그 나름의 삶을 엮어가는 사람이다. 그것으로 자연 자체인 강과 인간의 삶이일체가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저녁 노을 속의 벌판, 곧 ‘김해ㅅ벌’이 또하나의 ‘강’이 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또한 이것으로 이 시는 우리 모두의 일상생활에 밀착되는 생활의 노래를 이룬다. 그를 통해 이 작품은 서경(敍景)에 그치지 않고 우리 자신의 역사, 현실을 포함시킨 생활의 시가 되었으며 나아가 우리 자신의 일상이 원색적인 동영상으로 탈바꿈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이런 구조적인 분석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명백하다. 이 작품의 각 연은 매우 인상적이며 동시에 독자적이다. 그러나 그 독자성은 전체 작품을 떠나서 고립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각 부분이 전체에 수용되면서 유기체적 구조가 되어 있다. 특히 2연 첫수의 ‘그래서’와 같은 접속사 사용은 매우 독특한 기법이다. 그것으로 시조만의 몫인 연속적 어조, 또는 휘늘어진 가락이 빚어지도록 첫째수와 둘째수가 연결고리를 갖게 되고 의미 맥락상의 접착성도 확보되었다. 그와 아울러 이 작품의 뼈대를 이룬 음성구조가 독특한 의미구조와 서로 상승작용을 하면서 총체적 효과를 내기에 성공한다. 오늘 우리 주변의 시조에는 이에 배견될 작품들이 다수 있다. 이런 고무적 상황을 확충, 개발해 나가면서 한국 국민시가 양식인 시조의 푸른 서부를 개척하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담당할 보람 있는 과제일 것이다.
출처 : 김용직 ,『洛江』42호(영남시조문학회), 2009.12월에서.
* 소제목과 굵은 줄은 발췌자가 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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