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길자 시인의『쉬어가렴, 사람아』를 읽고
김우연
책을 잘 받고 잘 읽었습니다. 시조와 사진이 함께 있어 아름다운 시집입니다. 이름이 묻혀 있는 저에게 이 귀중한 책을 받게 인연은 영남시조문학회 회원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얼굴을 뵌 적은 없지만 책을 읽고 나서 그 고마움에 대한 보답으로 저의 짧은 식견으로 본 대로 아는 대로 간단한 소감이랄까 평을 써 보고자 합니다.
맥시조 카페에도 올리겠습니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일반적인 문투로 쓰고자 합니다.
향목(向木)진길자 시인은 교육자이자 시인이자 사진가이다. “근세조선 제일의 권문반가(權門班家)인 안동 김씨의 며느리로 양반가의 가르침도 반듯하게 익힌 믿음직하고 책임감 있는 여인이다. 종종 시어머리를 그리워할 만큼 사랑도 덤뿍 받았다고 한다, 종가(宗家) 대소사를 치르는 가운데 얻어진 경륜과, 30년을 교육계에 몸담아온 교직 생활은 진길자 시인으로 하여금 단아한 여인상으로 거듭나게 했으리라.”고 하듯이 시를 읽으면 우선 ‘단아한’ 느낌이 든다. 그것은 사진처럼 군더더기가 없고 감정을 자제하고 선명한 이미지를 형상화하여 함축적인 의미를 제시하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징적으로 읽히는 작품이 많다. 그러나 독자들이 다양하게 생각하면서도 쉽게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점이 좋다. 그것은 오랜 경륜으로 곰삭아진 삶이 익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도 문학과 내게는 항상 벅차고 가슴 설레는 만남으로 희열 그 자체이면서 사물의 진실을 찾아내어 그 내면에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길어 올리는 숭고한 인간에의 탐구라고 여겨집니다.”라고 하고 있듯이 진길자님의 시를 읽으면 ‘설렘’과 ‘희열’로 가득하다. 그러나 단순한 아름다움의 제시로 끝나지 않는다. “한 작품이 마음의 출렁거림이라면 그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늘 절박한 아픔이었음을 고백합니다.”라고 하듯이 ‘절박한 아픔’을 노래한 것이다.
시와 사진이 있는 아름다운 시집, 『쉬어가렴, 사람아』를 펴내기까지 국내외 많은 곳을 여행한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내게 여행은 창작의 시간입니다. 시로 사진으로 태어날 작품들의 엄마이기도 합니다.”고 하듯이 진길자 시인에게 여행은 창작의 모태가 되고 있다.
1. 삶을 돌아보게 하는 시
삼켜보는 하얀 갈증 판소리 한 소절이
핏줄 트고 아물려
쉬어가는 한 대목
가슴 속
파고들어야
뉘우치는 큰 울림
-진길자, <쉬어 가란다> 전문
초장에서 “판소리 한 소절”을 “하얀 갈증”이라고 표현한 것은 아주 적절한 표현으로 뛰어난 표현이다. 판소리는 서민들의 눈물과 한이 진하게 묻어나는 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중장에서는 “핏줄 트고 아물려”에는 우리의 삶이 핏줄 트는 아픔 속에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큰 아픔도 이겨내며 살아가기에 아물고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그래서 삶이 힘들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고개를 넘어면서 “쉬어가는 한 대목” 잠시 숨을 돌린다. 쉰다는 것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종장에서는 “가슴 속/파고 들어야/ 뉘우치는 큰 울림”이라며 그냥 쉬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나날의 삶을 가슴 깊이 들여다보며 뉘우침이 있어야 진정한 큰 울림이 온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깨우쳐 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의 삶은 어떠한가?
요즘은 남들보다 빨리 가려고 한다. 더 높이 가려고 한다. 많이 가지려고 한다. 남들보다 고생이라고 한다. 그러한 욕망이 강할수록 욕구 충족이 부족하여 불만이 많다. ‘네 탓’이라며 남을 탓하게 된다. 그렇게 한다고 욕구 충족이 되지 않고 삶이 더욱 황폐해질 뿐이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시인은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진실한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 길이 보임을 깨우쳐 주고 있다.
2. 외국 여행에서의 깨달음
등 굽고 손 부르튼 반뇌의 한 수녀님
순례자들 만나면 반가움에 미소 짓고
이 빠진 귀퉁이 찾아 오늘도 바쁘십니다
낡은 옷이 되어있는 주름살의 그분은
일평생 성모님을 품고 사는 고운 소녀
가슴엔 충만한 사랑 강이 되어 흐릅니다.
-진길자, <반뇌에서 만난 노(老) 수녀님> 전문
“여행은 평범한 삶속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불넣어주는 방향타가 되기도 합니다.”라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여행길에서 만난 젬마 수녀님을 뵙고는 “가슴엔 충만한 사랑 강이 되어 흐릅디다”로 노래한다. 시인의 가슴에도 충만한 사랑의 강으로 흐르기를 기원한다. 그만큼 시인의 마음도 순수하기 때문에 느끼는 감동일 것이다. 수녀님을 본다고 모두 어찌 이런 감정을 가지겠는가.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기에 늙으신 수녀님을 뵙고도 “일평생 수녀님을 품고 사는 고운 소녀”라고 예찬하고 있다.
겉모습은 늙었지만 사랑으로 충만한 마음은 어찌 늙은 것인가. 그래서 ‘고운 소녀’라고 감탄하며, 자신도 순수한 고운 소녀시절의 마음을 되찾고 있는 것이다. 여행에서 새로운 기운을 받기에 힘든 여행길도 세계 곳곳 누비는 시인의 모습이 대단해 보인다. 여행길에서 사람을 만나서 정을 나눈다는 것은 평생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하늘이 불탄다
심장이 요동친다
첫사랑 그 설렘
꺼내보다 들킨 날
하루해 저리 곱거늘
내 한생의 노을은.
-진길자, <잠비아의 노을> 전문
여행길에서 사람을 만나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자연이 인간에게 잊지 못할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잠비아의 노을’은 먼 아프리카에서 아름다운 노을을 보면서 “하늘이 불탄다”라고 외친다. 실제 장엄한 노을을 바라보면 말문이 막히고 만다. 그래서 “심장이 요동친다”고 하였다.
그런데 “첫사랑의 그 설렘/ 커내보다 들킨 날”이라며 첫사랑을 떠올린다. 첫사랑이란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인가. 들켰을 때 붉은 볼이 되고 심장이 뛰는 것과 연관한 것이 정말 절묘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 평생을 돌아보며 “내 한생의 노을은”이라며 조용히 말하고 있지만 굳은 각오가 들어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흔히 외국 기행시에서 새로운 풍경에 대한 스케치나 경탄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작품은 풍경에서 자신의 삶을 확대하고 있다. 단아하면서도 그 내용은 폭이 크다. 그 만큼 울림이 큰 작품이다. ‘서경과 서정이 작 직조된 작품이’ 좋은 시라고 한다. 이 작품은 그런 면에서 절창이다.
숨이 찬 산악열차 페루문명 퍼 나르며
잉카 혼은 살아 있다 태양신께 외친다
촌노는
피리 소리로
해거름을 이끌고
-진길자, <마추픽추 가는 길> 일부
“잉카 혼은 살아 있다 태양신께 외친다”는 것은 잉카 문명을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도 살아있으며 더 널리 살렸으면 하는 기원이 담겨 있다. 아메리카 신대륙 발견은 백인들의 입장일뿐 침략자요 약탈자가 아니었던가. 60년대까지도 인디언 말살정책이 추진한 곳도 있었다고 한다.
인디언들은 토지를 소유하지 않고 자연에 경건하게 기도를 드리며 약한 자들들을 돕고, 약속을 소중히 여기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촌로는/ 피리 소리로/ 해거름을 이끌고”라며 상징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해거름에 집으로 돌아가는 노인을 말하면서도 찬란했던 잉카 문명의 명맥만 겨우 유지하는 현실을 ‘해거름’이라고 한 것이다. 이처럼 시인은 사진처럼 감정을 억제하고 보여줌으로서 독자들이 아는 것만큼 보게 하고 있다. 좋은 시는 이처럼 독자들에게 생각을 하게 하는 시이다.
인력거 자동차 가축들 뒤섞이고
갠지스 강 화장터 옆 꽹과리로 춤을 춘다
찰나의 생과 사 공존 그들은 알고 있다.
-진길자, <그들은 알고 있다> 일부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첫째 수에서는 “아잔타 석불의 미소 그들은 알고 있다”며 먹을 것 없이 가난하지만 기도하는 인도인들의 고통과 소원을 석불은 알고 있다고 했으며, 둘째 수에는 가난 속에서도 들고양이를 배불리는 인도인들을 보면서 “아픔은 나눠야 함을 그들은 알고 있다”고 하였다. 사람과 동물이 어울리는 모습을 그렸다.
세 수 중에서 마지막 수인 위에 인용한 것을 보면, 인도는 우리들의 삶과는 매우 다른 풍경으로 다가 온다. 사람과 짐승들이 어울려서 살아가며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것을 시인은 바라보았다.
마지막 수에서 “생과 사 공존”을 가장 감명 깊게 본 것 같다. ‘생사일여(生死一如)’라고 흔히 말하지만 필자는 피부로 느끼며 다시한번 깊이 생각했을 것이다. 이 한 작품을 두고도 며칠을 이야기해도 끝이 없을 것이다.
이 밖에도 <타지마할>에서는 “아픔을 쪼아대던/ 석공의 가난한 손”이라며 화려함 뒤에 가려 있는 아픔을 찾아내고 있다.
<과거를 사는 왕도-이집트>에서는 “몰려든 /호기심 앞에/ 내세(來世)되어 누워있다”며 영화로운 과거가 새로운 현재로 탄생하여 여행객을 부르는 현실을 노래하고 있다.
또 <바이칼 호-알혼섬>, <사막은>, <미얀마에서> 등의 작품이 있다.
위 작품들의 제목들만 보아도 시인은 얼마나 동서를 누비며 여행을 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그 여정길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이 한 권의 시집은 그런 면에서 쉽게 아무나 쓸 수 없는 시집인 것이다.
3. 인생은 여로(旅路)
홍시 툭 건드리며
지나가는 바람 소리
가을이 간 저 길로
도 그렇게 겨울이 온다
도솔산 가파른 길에
수많은 삶 그 이야기
-진길자, <여로(旅路)> 전문
앞에서 몇 작품만 살펴봐도 진길자님 시인이자 사진작가일 뿐만 아니라 여행가라 불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우리 삶 자체가 여행이라고 <여로>에서 승화시키고 있다.
초장에서 “홍시 툭 건드리며/ 지나가는 사람 소리”라며 열매 한 알이 익기까지 얼마나 비바람이 있었을 것이며, 다 여물고 홍시가 되어 매달린 가을에도 바람을 맞고 있다. 우리의 삶은 끝날 때까지 바람 없이 살 수 없듯이 홍시에도 바람이 일고 있다.
중장에서 가을이 간 저 길로 겨울이 오고 또 봄이 오고 여름이 올 것이다. 또 계절은 잠시도 쉬지 않고 흘러갈 것이다.
종장에서는 우리의 삶은 “도솔산 가파른 길”을 오르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사람들마다 얼마나 사연이 많을 것인가. “수많은 삶 그 이야기”에는 기쁜 일도 많지만 한 맺히고, 슬프고, 억울하고, 부끄럽고, 누추하고, 고단한 이야기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이 시를 읽은이라면 “수많은 삶 그 이야기”를 남에게 하려고 하기 전에 남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마음도 열릴 것이다.
쉽게 읽히면서도 선명한 이미지가 있으며 많은 함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어 좋은 시의 요소를 갖춘 좋은 작품이다.
이 작품 외에도 늘 사진을 얻으러 가는 길이 여행의 길이요 시를 얻는 길이요 삶을 돌아보는 길임을 알 수 있다.
4. 주변 생활
진길자 시인은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눈을 생활 주변에도 돌리고 있다.
뿌리는 뿌리끼리
푸른 잎은 잎끼리
대파 다발 책처럼
높다랗게 쌓여있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어우러져 사는 세상
-진길자, <시장 풍경> 전문
시장에서 대파 다발이 책처럼 쌓여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 인간들도 인간들끼리 화합하며 살아가야 할 것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남북이 갈리고 남남 갈등을 겪고 있다. 이것은 모두 이념의 갈등 문제에서 비롯된다. 이제는 한이 맺힌 사람은 한을 풀고 거짓은 진실 앞에 솔직해져야 한다. 그래야 화합이 되는 것이다.
상대방을 보고 손질하면 한은 한을 낳고 풀릴 길이 없다. 생각이 잘못되면 엉뚱한 길로 간다. 북한의 핵실험을 보고도 입을 다물고, 북한 주민이 굶주리고 있는 것도 북한 독재자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남한 때문이니, 미국 때문이라고 외치고 있는 자들도 있다.
이것은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할 일이다. 이중잣대로 역사를 보면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우리 인간들은 대부분 그저 평범한 행복을 바란다. 작은 행복을 바란다. 그런데 언제까지 이념으로 갈등해야 할 것인가. 그러나 시인은 이런 저런 것을 따지지 않고 따뜻하게 감싼다. 우리는 같은 민족이기에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어우러져 사는 세상”을 희구한다. 다문화 시대에 어찌 같은 민족만을 외칠 것인가.
시인은 더 높은 차원에서 담담하게 “서로를 의지하고/어우러져 사는 세상”이라며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을 노래한다. <시장 풍경>은 생활 주변의 소재를 가지고 인간들이 살아가야 할 가장 높은 차원의 가치를 제시하고 있다.
물에 젖은 몇내 꿰미 덕장에 매달려
동해의 찬바람 속 좋은 맛 얻고자
숙성된 시간의 맛으로 스무 고개 넘습니다
-진길자, <황태 덕장에서> 일부
명태가 황태가 되기까지 “숙성된 시간의 맛으로 스무 고개 넘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의 삶도 숙성된 시간 없이 하루 아침에 새로운 이름을 얻을 수 없음을 깨닫게 하는 좋은 작품이다. 우리 인간들도 여러 가지 이름이 있다. 아들, 딸,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하여 사회에 나서면 각각의 이름들이 있다.
운해 속 먼 삼봉(三峰)은
섬으로만 앉아있고
삶에 지친 여인 하나
힘에 겨운 손수레
첫 새벽
인력시장에 부려 놓은 많은 사연
진길자, <현실은> 전문
초장에서 ‘삼봉(三峰)’은 여인이 추구하는 현실적인 안정을 취하기 위한 이상일 것이다. 따뜻한 집 마련이 될 수도 있고, 가족들의 생계를 걱정하지 않을 정도의 물질이 될 수도 있다. 거창한 꿈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여인에게는 쉽게 얻을 수 없는 곳이기에 운해 속에 가려 있다고 상징화한 것이다. 초장은 아주 뛰어난 표현이다.
중장과 종장에서는 우리 주변의 사회적 약자의 모습을 그리면서 그에게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많은 사연”이란 말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저 힘든 이들에게 ‘사연’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만큼 시인은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주변의 약자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쉽지 않은 일이다. 오히려 그들을 무시하거나 무관심으로 상처를 주기 쉽다.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현실은 자신이 부족하다고, 배고프다고 더 달라고 외치는 현실이다. 정상이 아니다. 정치인들도 표를 위해서 무조건 주자고 한 것이 화근이다. 불행은 후세대의 몫으로 돌리는 일은 죄를 짓는 일이다. 후세대들은 누구인가 모두 우리의 아들, 딸들, 손자, 손녀가 아닌가. 제발 잘 먹고 잘 사는 이들까지 배고프다고 칭얼대는 소리는 말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사회에 베풀려는 마음을 내어야 사회는 밝아올 것이다.
진길자 시인처럼 저들의 마음부터 가까이 다가갈 일이다. 가작이며 여러 사람들이 널리 읽었으면 하는 작품이다.
5. 강한 역사 의식
덕혜옹주 눈물어린
통신사 지나던 길
말 두필 마주보고
누워있는 애틋한 섬
돌이킬
역사의 줄기 흔적만이 남았네
물려받은 천혜의 땅
임란때도 푸르던 곳
농경 사회 홀대했던
아쉬움이 파랑(波浪) 넘어
가뭇이
일렁거리는 대마도는 우리땅
-진길자, <대마도는 우리 땅>
우선 1연을 보면서 필자가 쓴 졸시 <덕혜옹주>가 떠올랐다.
덕혜옹주
운명의 수레바퀴는
외로움만 풀고 있다
혼자서 걷는 길에
바람마저 스쳐가고
끝내는
책갈피 속에서
곱게 마른 물매화.
1연에서는 덕혜옹주가 유폐되다시피 머물렀던 대다도에는 덕혜옹주의 흔적만이 남았다고 노래한다.
2연에서는 임진왜란 때까지만 해도 대마도주는 풍신수길보다는 조선에 더 우호적이었으며 조선에 조공을 바치고 있었다. 그래서 임진왜란 때 동래로 풍신수길의 전쟁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우리 조정은 농업을 위주로 하여 섬의 중요성을 몰랐다. 고려 말기에 왜구들의 침략에 시달렸는데 그 본거지가 된 곳을 조선 초기에는 정벌하였다. 우리의 화포 위력 때문에 가능하였다. 일본은 그 당시까지만 해도 중국에도 ‘신(臣)’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일본 본토에서도 신(臣)이라며 우리에게 고개 숙인 역사가 있다.
그러나 섬의 중요성을 모르고 일본에 편입되고 말았다. 대마도는 일본보다 우리 땅에서 가깝다. 거제도에서는 맑은 날에 눈으로 보인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망언을 일삼고 있는 논리로 본다면 독도는 우리 땅일뿐만 아니라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고 하는 것이 역사적으로도 마땅한 일이다. 시인은 그 사실을 분명하게 노래하고 있다.
일본이 ‘독도’을 운운하면 양국 국민들 간에 감정만 나빠진다. 일본이 지진이 나도 애통해하는 마음이 없어질 것이다. ‘독도’ 망발이 이어진다면 ‘언젠가 우리도 대마도을 찾으러 가야지 하는’ 감정이 일어날 수 있다. 일본제국주의에 당한 동아시아 사람들의 분노를 생각한다면 어찌 저들을 용서할 것인가. 중국이나 우리는 너무도 당하였다. 그때를 생각하면 일본의 씨를 말려도 시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인간이기에 우리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고 있다.
이제 일본 정치가들의 망발은 멈추기를 바란다. 일본의 불행을 막는 일이다.
너희를 어쩌랴
-천안함 1주기
쓰나미다 지진이다
참담해져 돌아보니
산화한 내 살붙이
그 넋을 어이 하리
절규는
3․26 소총에
응징으로 음각했다
-진길자, <너희를 어쩌랴-천안함 1주기> 전문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천안함 피격 사건이 일어났다. 북괴의 소행임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는데도 학자들의 말은 믿지 않고 정치적으로 불신하는 무리들이 있다. 과연 어느 나라 국민인지 의심하게 하며 그 실체를 밝혀야 할 일이라고 본다. 도올 김용옥은 0.00001%도 믿지 않는다며 인문학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마저 날뛰기도 하였다. 지금은 노무현 대통령의 NLL 발언의 문제를 검찰에서 다루고 있는 중이다. 남남갈등은 핵심은 무엇인가? 이승만 대통령이 세운 남한 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북한을 정통으로 보려는 것에 그 궁극적인 목적을 가진 세력들 때문인 것이다.
역사 문제에 있어서 국민들이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 될 것이다.
46용사 죽음을 매도하는 저들의 실체가 무엇인지 밝혔으면 한다.
필자도 졸시를 쓴 바 있다.
천안함 앞에서
갈라진 국토인 양
죽어서 누운 그대
그대에게 칼질하는
무임승차의 저 무리들
이 땅을 떠나지 않고
암세포를 키우네.
46용사들이여
영원히 핀 무궁화여
이 민족 헤쳐 온 길
그 오랜 가시밭길에
파도가 거센 날에는
등대로 솟을 님들이여.
다른 것은 몰라도 안보에는 중도가 없다. 정치인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나라도 팔아먹을 짓은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어찌 우리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서 죽은 자들에게 돌을 던지는 자들을 같은 국민이라 할 것인가. 어찌 같은 땅에서 살 수 있겠는가.
만고에 흐를 역사 동북공정 거친 바람
떨리는 가슴으로
내 숨결도 섞는다
원혼은
고국 하늘을 꿈길에나 더듬을까
-진길자, <고구려 고분-지린 성 집안 현> 일부
진길자 시인은 고구려의 ‘동북공정’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다. 처음엔 고구려 역사를 중국역사에 편입하려고 하다가 이제는 단군이 세운 고조선마저도 중국사에 편입하려고 하고 있다. 우리 역사를 통째로 중국 역사의 일부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인문학이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반성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는 역사학계에 대폭 지원할 연구비가 모자란다고 한다. 국민들이 각성할 일이다.
이렇게 긴박한 상황에서도 좌파들은 남남갈등을 부추기고 있으니 소인배들의 극치에 해당하는 것이다.
떠남만이 살길이던 절박한 사람들
애타는 맘 모르는 너 고향을 묻는구나
생나무
가지 위에다
살점 하나 걸어놓고
발자국 자국마나 고달픈 삶의 여정
어둠을 헤쳐가며 생명선을 넘었다
언 땅에
못다 한 꿈들
맑은 햇살 넉넉하리
-진길자, <탈북자> 전문
요즘은 다문화 시대라면서 텔레비전에는 많이 다루고 있다. 시들도 다문화 시대를 다루는 작품들이 많이 발표되고 있다. 그러나 진정 관심 가져야 될 일은 ‘탈북자’들에 대한 관심일 것이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탈북자’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이처럼 승화시킨 작품을 본 적이 없다.
1연에서는 탈북자에게 고향이 어디인냐고 묻는다는 것은 살점을 뜯어내는 아픔이라고 말한다.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을 생각한다면 살점을 뜯어내는 아픔뿐이겠는가.
2연에서는 자유의 품에 안길 때까지의 생명의 위태로움을 수없이 겪었음을 노래하였다. 그들이 이 땅에서 그 동안 못다 한 꿈들을 이루기를 “맑은 햇살 넉넉하리”라며 기원하고 있다.
탈북자들을 돕기 위한 단체나 노력하는 사람들의 노고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유를 찾아오는 사람들 앞에서 종북의 세력들이 북한을 추종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그냥 사상의 자유라고 그냥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국민의 생존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자유는 그냥 지켜지지 않는다.
6․25를 북한(당시 용어로 ‘북괴’)의 남침이라고 가르치지 않는 교사들과 정치인들과 일반인들과 북한 추종 세력들을 감상적인 눈으로 봐서는 안 될 것이다. 끝없는 도발을 해 온 것을 잊어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진길자 시인은 역사를 과거에 묻어두지 않고 현실에 살려내는 건강한 눈을 지니고 있는 시인임을 알았다.
6. 순수 서정
시란 서정갈래라서 서정이 시의 본령이 된다. 온갖 감정이 시심의 바탕이 된다고 한다. 평화롭고 아름다움 마음이 나타나는 작품이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서정시는 생명이 길다. 어느 곳에 편벽되지 않기에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끝엔 바닷냄새
수초처럼 흔들린다
노란 우도의 봄
돌담길로 이어지고
한나절 볼때기 햇살
따갑다 여유롭다.
-진길자, <우도의 봄> 전문
이 시는 한 폭의 그림이요, 사진이다. 진길자 시인은 이미지를 잘 형상화한다. 이 작품은 평화롭고 아름답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그것도 자연의 품에 안길 때 가장 행복하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 같다.
‘유채꽃’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고도 ‘노란’이란 말로 전달하고 있어 간결한 형식인 시조에서 언어도 절약하고 있다. 단형시조로 단아한 작품이다.
살짝 고개 내민 소나무 숲 사이
서둘러 피려 하네 아직 바람 소슬한테
그래도 살랑거리며 꽃잎 여는 저 소리
허전한 산등성이 분홍빛의 설레임
가냘픈 꽃잎들은 봄을 여는 고운 물결
펼쳐질 생의 한복판 저리 곱고 애잔할까
-진길자, <진달래> 전문
이 시는 1연에서 초봄에 찬바람 속에서 진달래 꽃잎이 피는 것을 표현하면서 “꽃잎 여는 저 소리”라며 시인 특유의 섬세한 청각을 동원하고 있다.
2연에서는 활짝 핀 진달래를 보면서 <고운 물결>이라고 잔잔하게 노래한다. 흔히 ‘불길’이라거나 혁명의 기운이나 독재자에 희생당한 자의 피를 연상하는 것에 비하면 담담하게 한 편의 사진처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2연 종장에서 시상이 전환된다. “펼쳐질 생의 한 복판 저리 곱고 애잔할까”라며 자신의 삶이 진달래꽃처럼 곱기를 기원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
이처럼 진길자 시인은 현실을 노래할 땐 건강한 눈으로 매섭게 바라보며, 다른 사물을 노래할 때도 자연물을 노래하다가 자신의 삶으로 승화시켜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만큼 시를 탄탄하게 쓰고 있는 것이다. 하루 아침에 이룬 성과가 아닐 것이다.
7. 자신을 낮추는 삶의 자세
동서고금의 성인들은 자신을 낮추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남들 위에 서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현실이다.
이끼와 물안개 어깨어깨 맞대고
흐르는 물줄기를 버티려고 한간힘
생명의
힘을 전한다
가장 낮은 포복으로
낮은 목소리 방울방울 톡톡 떨구며
물보라 하얀 세상 보듬는 저 생명력
모든 빛
초록으로 바꾸며
맑은 세상 살아간다.
-진길자, <이끼 폭포> 전문
이 작품은 이번 시집에서 진길자 시인의 인생관을 가장 잘 나타낸 작품이라고 본다. 이 한 작품만 봐도 진길자 시인의 인품이 드러난다.
가장 작은 초록의 생명체인 이끼가 이끼들과 물안개와 어깨를 맞대면서 저 강한 폭포의 물줄기에도 견뎌내고 있음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생명의 강인함을 전하면서 “가장 낮는 포복으로” 존재함을 강조한다.
우리 인간세상에서 가장 낮고 어리석게 보이는 사람들이 얼마나 강하게 살아왔으며, 또 그들의 낮은 자세가 세상에 사랑을 퍼지게 했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2연에서는 “물보라 하얀 세상 보듬는 저 생명력”이라며 남에 대한 포용력을 다시 한번 예찬한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빛/ 초록으로 바꾸며/ 맑은 세상 살아간다”며 이 세상이 맑고 곱고 화합스럽게 살아가기를 기원한다.
낮은 자세와 사랑으로 이 세상을 온통 초록 세상으로 바꾸며 살아가는 이끼처럼 그렇게 살고자 염원하고 있다. 우리 인간들이 가야할 가장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고 있다.
진길자 시인은 이 한 작품으로도 우리 현대시조단에 우뚝 설 것이며, 이 작품은 앞으로도 영원히 기억될 작품이라 본다.
진길자 시인님을 생각하면 이끼처럼 초록 세상을 만들자!란 말이 들려오는 것 같다.
“모든 빛
초록으로 바꾸며
맑은 세상 살아간다”
는 말이 오랫동안 가슴을 울릴 것 같다.
이상으로 두서 없이 『쉬어가렴, 사람아』에 대한 소감을 적어보았습니다. 한 작품, 한 작품 느낀 바가 많지만 후일 두고 두고 읽도록 하겠습니다.
예쁘고, 소중하고, 알차고 사진까지 곁들인 고급스러운 시집을 보내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소감문 형식으로 글을 보냅니다.
진길자, 『쉬어가렴, 사람아』, 북 나비,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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