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연의 동인지, 시집 평론

맥33호 해설 / 김우연

가산바위 2013. 11. 28.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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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맥시조문학회 2013년 연간집)

-동백도 지쳐 못 피어해설

 

김우연

 

. 들어가며

 

맥시조문학회는 1979년에 창립(‘비화시조문학회’, 2000년에 회의 명칭을 맥시조문학회로 개칭) 하여 매년 동인지를 발간해 왔다. 금년에 33집을 내면서 조영두 회장이 머리글에서 이제 우리 맥시조문학회도 유년의 걸음마에서 질풍노도 같은 청년의 열정을 지나 보다 더 성숙하고 의연해지는 세월의 기점에 서있다.”고 하였다.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모두가 등단하였으며 시도 세월만큼 원숙미를 보인다는 말을 함축하고 있는 말이다.

이제는 등단 문도 넓어졌고, 발표 지면도 많아졌다. 그러나 인터넷, 스마트폰, TV 등의 매체환경의 변화로 종이 인쇄물은 독자들로부터 쉽게 가까이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물질위주의 인생관과 감각 위주의 행복 추구는 인간의 사고와는 먼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책을 읽지 않는 독자들을 보면서 절망 의식에 잠기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 맥시조회원들은 묵묵히 현대시조 창작의 길을 걸어왔고 또 걸어갈 것이다. 머리말에서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자연을 닮은 우리들로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했듯이 투명한 서정의식에 바탕을 둔 시조의 밭을 꾸준히 가꾸어 나갈 것이다.

어떤 시인들은 출판의 홍수의 시대를 맞이하여 동인지의 발행의 의미를 축소하여 말하기도 한다. 요즘 책들은 출판과 동시에 사산이 되어버리는 책들이 많기 때문에 일 년에 동인지 발행을 한 것으로 동인회 활동의 거의 전부가 되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충고일 것이다. 좀더 다양한 방법으로 적극적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을 말한 것이기에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동인활동의 공헌을 빼 놓을 수 없고, 앞으로도 동인활동은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를 쓰는 주체는 인간이고 인간은 모여서 함께 활동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동인회는 문학의 친정집이다. 그래서 동인들은 끈끈한 정으로 맺어지는 형제들이고 또한 문학 정진의 도반들이다. 동인회가 활성화될수록 문학의 튼튼한 기반이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맥시조동인회는 현대시조 발전의 한 몫을 차지해왔으며 앞으로도 꿋꿋하게 걸어갈 것이다.

이번 호에는 16명의 회원들이 총 71편을 발표하였다.

시조의 형식은 단시조는 31%(22), 연시조 66.2%(47), 사설시조 2.8%(2)로 나타났다. 연시조에는 2수의 연시조가 33.8%(24), 3수의 연시조는 26.5%(19), 4수의 연시조는 5.6%(4)였다.

그 내용면에서는 죽음, 현실문제, 자아성찰, 순수서정 등의 작품을 다루고 있었다. 간단하게 작품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 살펴보기

 

1. 죽음

 

인간은 유한한 존재임을 안다. 그러나 혈육의 죽음 앞에서 그 슬픔은 어떤 말로도 위로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시로써 추모하기도 하고 아픔을 승화시키기도 한다.

조주환의 메아리와 강성태의 思母曲두 편이 있다.

 

 

아우는 암으로 가고 목련꽃만 활짝 핀 봄

종일 누이와 말없이 햇살을 보다

감감히 목을 뺀 허공에 눈시울이 젖었다.

 

검은 짐승이 삼킨 그 처절한 흔적들이

피 묻은 메아리로 낱낱이 되돌아 와

에이듯 가슴에 뚫린 그 구멍만 커갔다.

-조주환, 메아리전문

 

암으로 죽은 동생을 떠올리며 가슴 아파하는 작품이다. 첫째 수에서는 목련꽃이 활짝 핀 봄과 아우의 죽음을 대비시키면서 맑은 햇살 속에 누이와 말없이 눈시울에 젖는 모습을 시각적 이미지를 살려서 표현하였다.

둘째 수에서는 암 덩어리를 검은 짐승으로 표현하였다. “피 묻은 메아리로 낱낱이 되돌아 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아우의 죽음에 대한 고통과 슬픔이 시간이 흘러도 쉽게 고통이 가라앉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처절하게 죽어간 동생의 모습이 애처롭고 안타까운 마음이 메아리로 되돌아 와라고 하고 있다. 그렇지만 끝까지 고통의 감정을 절제하여 에이듯 가슴에 뚫린 그 구멍만 커갔다라고 표현하여 현대시의 시각적 이미지 형상화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 좋은 작품이다.

조주환은 믿었던 산등이 무너지듯 그토록 건장했던 막내아우가 느닷없이 이승을 떠나고 1년 내내 우리 가족은 큰 슬픔에 빠졌다.”고 하였다. 그 아픔이 메아리로 들려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을 발표하기 전까지 아우의 죽음을 동인들에게 알리지 않으셨는데, 회원들의 마음을 모아 조의를 표한다.

 

 

질곡의 가난살이 우직하게 헤쳐가며

자식들 건사함만 바라고 비는 마음

이따금 눈물바다 건너며 애써 웃음 지으셨네

 

송두리째 뒤흔드는 고초도 달갑게

참고 기다림의 슬기 차분히 일깨우며

은혜로 가득한 우리 집 보듬으시던 그 손길

 

묵정밭 서성이는 망초의 흔들림 같은

지워도 돋는 풀꽃 아련한 향기 같은

어머니 눈물을 훔치면서 다시 뇌어 봅니다.

-강성태,사모곡전문

 

예부터 어머니의 사랑을 애절히 노래한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어머니의 사랑이 크시기 때문이다. 강성태 시인의 사모곡도 첫째 수에서 가난하고 힘든 시절에 자식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었고, 둘째 수에서는 어머니의 사랑이 집안에 가득하였음을 은혜라고 말하고 있다. 셋째 수에서는 묵정밭 서성이는 망초의 흔들림 같은이라며 어머니를 떠올리고 있다. 시적 형상화가 잘 되었다. “풀꽃 아련한 향기 같은어머니의 사랑은 가슴 속에 영원히 묻어날 것이다.

 

 

2. 현실 문제

 

시조는 시절단가음조(時節短歌音調)’의 준말로 흔히 시절가라고도 한다. 시조가 현실을 노래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다. 현실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1) 비판 2) 연민 3) 애정 4) 역사 및 기행으로 그 내용이 다양했다.

현실을 비판한 작품으로는 김우연의 나이 많아 미안해, 못 죽어서 미안해’, 김진혁의 여름 난장(亂場)’, 강성태의 스마트 폰 세태가 있으며 2) 연민의 정을 나타낸 것으로는 이경옥의 감정 노동자의 웃음’, 김일용의 야간경비원 오씨등이 있으며 3) 사라지는 문화에 대한 애정으로는 예병태의 연작시 사라짐에 대하여가 있으며, 4) 역사 및 기행으로는 서석찬의 서라벌 215-황룡사의 침묵’, 조순호의 기행시 오사카 성등이 있다.

 

1) 현실 비판

 

살던 집 쫒겨 나와서 요양시설로가는 세상.

제 살과 피를 자식한테 다 주었건만, 애완용 동물은 돌보지만 부모는 버리는 세상.

그래도 김 씨 할머니 마지막 하시는 말씀 나이 많아 미안해”, “못 죽어서 미안해

-김우연, 나이 많아 미안해, 못 죽어서 미안해일부

 

사설시조로 쓴 작품이다. 신문기사에 103세 된 노인이 며느리한테 구박을 받는 것이 심해서 이웃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하여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무슨 이유인지 사연은 알 수 없지만 빨리 죽어라고 외치는 소리는 과연 오래 산다는 것이 축복인지 저주인지 알 수 없는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

서양에는 우리의 효()라는 말이 없다고 한다. “filial piety라고 번역하는데, 그것은 합성어이지 한 단어가 아니다. 그것은 자식의 종교적 경건성이라는 의미이다. 불합당하다. 서양사람에게는 효가 없는 것이다.”

 

효에 대해서 좀더 살펴보면, “공자는 맹의자(孟懿子)의 아들, 맹무백(孟武伯)이 효를 물었을 때 군말없이 이와 같이만 대답했다: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까 걱정이다.(父母唯其疾之憂). 효를 묻는데 자식의 입장을 이야기하지 않고 부모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효()라는 것은 일차적으로 자식의 마음이라기보다는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부모의 마음이 있기에 거기에 감응하여 발하는 것이 자식의 마음인 것이다.

 

 

분노하는 반도는 제국의 여름같다.

폭염과 장맛비로 목이 타고 떠내려가도

말 많은 여의도 사공들 말꼬리 잡고 산으로 간다.

 

그 중에 어떤 놈은 훔쳐보고 장난치고

거짓이니 사실이니 사생이 결단 날 판

살쾡이 인피를 쓰고 이전투구 가관이다.

 

거짓을 말하는 자 진실을 왜곡한 자

알고도 모르는 척 수서양단(首鼠兩端) 꼬락서니

민중은 촛불을 들고 똥침 놓는 중이다.

-김진혁,여름 난장(亂場)전문

 

김진혁 시인은 5권의 시집을 낸 바 있으며, 2012년에는초록별사랑을 발간한 바 있다. 그는 30여 년 동안 예민한 감수성을 발휘하여 투명한 서정시들을 주로 써오고 있다. 현실을 다룬 작품들도 있지만 이 작품처럼 강렬하게 직설적으로 현실을 비판한 작품은 없었다. 그만큼 김진혁 시인에게 있어서 지금의 현실은 매우 답답한 것이다.

첫째 수에서는 폭염과 장맛비로 목이 타고 떠내려가도라고 하여 민중들은 생활에 고통을 받고 있는데도 국회의원들은 민생을 팽개치고 개인과 정당의 이익만을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둘째 수에서는 어떤 놈은 훔쳐보고 장난치고라고 하여 정당한 절차 없이 훔쳐봤을 것이란 추측을 하면서 장난친다고 하였으며, 한쪽에서는 거짓이니 사실이니하면서 어느 한 쪽이 죽어야 끝이 나는 사생결단의 판을 벌이고 있는 모습을 짐승들이나 하는 짓이라며 가관인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셋째 수에서는 민중은 촛불을 들고 똥침 놓은 중이라며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민생을 팽개치고 거짓을 말하는 자 진실을 왜곡한 자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눈치를 보는 수서양단(首鼠兩端)-쥐가 구멍에서 머리를 내밀고 나갈까 말까 망설인다는 뜻으로, 머뭇거리며 진퇴나 거취를 결정짓지 못하는 상태를 이르는 말-의 태도를 보이는 정치인들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진실을 밝히고 민생을 돌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논어(論語)에서는 정치란 바른 것이다.”라고 하였다. 거짓이 판을 치는 현실 정치판을 난장(亂場)이라고 하였다.

 

 

손 끝의 토닥거림에 별천지가 열리는

문명의 진화는

편리함의 덫이다

 

갈수록

메말라가는 정()

고립을 자초한다.

-강성태,스마트 폰 세태두 수 중, 첫째 수

 

스마트 폰은 편리한 기기이지만 결국 인간은 편리한 기기의 노예가 되어 결국 인간의 정()을 메마르게 함을 지적한 것이다. 둘째 수에서는 말수가 줄어들고 생각조차 얕아져라고 대화가 줄어들고 깊은 생각하기 싫어하는 천박한 인간을 만들어가는 세태를 비판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내용을 시로 표현한 것은 대화하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인간다움을 회복하자는 시인의 염원을 담고 있는 시이다.

 

 

2) 연민의 정

 

약한 이웃에 대한 연민의 정을 표현한 작품으로는 이경옥의 감정 노동자의 웃음’, 김일용의 야간경비원 오씨등이 있다.

 

그늘 없는 세상이 그 어디 있나요

태양이 빛날수록 그림자 우거지듯

활짝 핀 꽃웃음 안엔

가둔 울음 있어요

 

인생이 연극이고 땀내 나는 연기라서

치이고 구겨지며 방긋방긋 핀 걸요

씨방에 눈물 그렁한데

향기조차 품으라뇨

-이경옥,감정 노동자의 웃음전문

 

우리들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세계 최하위 빈국이었다. 북한이 남침한 625 전쟁까지 겪으면서 전국토는 초토화되다시피 하였다. 그 곳에서 우리는 자유민주의 정의로운 방향으로 달리고 지도자와 국민들이 한 뜻이 되어 경제적인 기적을 이루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현재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다. 이런 번영 뒤에도 그늘이 있음을 상기시키 있다. 이경옥 시인은 활짝 핀 꽃웃음 안엔/ 가둔 울음이 있어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씨방에 눈물 그렁한데/ 향기조차 품으라뇨라며 웃음과 향기를 강요하는 있는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약자들의 울음눈물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 사회 소외 계층, 3국의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자 등등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연민의 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늘 포근하고 넉넉한 정을 담고 있는 이경옥 시인의 성품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손전등 바투 쥐고 어둠만 쫓겠는가

숫자는 숫자일 뿐 일흔 나인 많지 않아

내뱉는 밭은기침에 움찔하는 노인실업

 

잠시 한눈파는 동안 시간을 놓쳤을까

순찰시계로 돌아가는 그 길은 너무 멀어

되짚어 내닫는 걸음 들메끈을 동여맨다

 

아직도 가야할 길, 가풀막을 당긴다

소등(消燈)하는 마을로 눈길 떼지 못하고

갓밝이 홰를 칠 때까지 등걸잠을 밀어내며

 

한 봉지 라면으로 시장기를 달래가며

늙은 의자 몸 추스러 꼿꼿이 세우고는

일과를 매조지하고 아침 해를 받아 든다

-김일용,야간경비원 오씨전문

 

 

이 시에서 오씨는 70대 노인으로 경비원 근무를 하고 있다. 우리의 노인층들은 노후 대비가 부족하여 늙어도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현실을 반영한 작품이다. 등걸잠마저도 거부하며 근무하는 오 씨에게 숙연함이 감돈다. 가장 편리하게 한 끼를 해결하거나 밤참으로 먹을 수 있는 라면으로 시장기를 달래는 모습도 한 끼 식사의 소중함이 담겨 있다. “늙은 의자 몸 추슬러 꼿꼿이 세우고는에서는 오 씨의 근무 태도에 의연함을 드러난다. 결국 남들이 출근할 때 퇴근하는 오 씨에게는 아침 해를 받아 든다고 표현에는 밝은 희망이 있음을 노래하였다.

김일용 시인은 넓은 가슴으로 세상을 품고 살아가는 시인이다. 모든 일에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살아간다. 불교의 선()詩 交合하여 심리적 치유를 위한 석사학위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그래서 그의 문학 작품 속에는 은연중에 세상을 치유하려는 마음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시에서는 밭은기침’, ‘가풀막’, ‘갓밝이’, ‘’, ‘등걸잠’, ‘매조지등의 고유어 사용도 돋보인다. ‘밭은기침이란 사전에는 병이나 버릇으로 소리도 크지 않게 자주하는 기침이라고 되어 있다. 가급적이면 우리말을 사용하여 적절한 표현을 하는 것은 우리 시인들이 해야 할 사명이기도 하다. 외래어나 지나치게 어려운 한자어들은 꼭 필요할 경우에만 쓰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3) 사라지는 문화에 대한 애정

 

예병태 시인은 2013년에 두 번째 시집인 바람의 얼굴을 발간하였다. 두 번째 시집의 시들을 살펴보면 시적 형상화가 뛰어났으며 특히 고유어 사용을 적절히 하는 언어 조련사로서의 뛰어난 면모를 보였다.

이번 호에서는 사라짐에 대하여란 연작시 5편을 발표한 것이 눈길을 끌고 있다. 부제목으로 대가족’, ‘마을 농악대’, ‘버선’, ‘지게’, ‘출생 및 그 변화’ 5편이다. 이것은 사라짐에 대한강한 애정 없이는 쓸 수 없는 시들이다. 앞으로도 이런 방향으로 꾸준히 천착한다면 현대시조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기리라 기대하면서 두 작품만 살펴본다.

 

너는 인생의 깊은 길눈을 요구했다

한걸음 잘못 디디면 빠지고 넘어져

어디에 디뎌야 하는지 스스로 알게 했다

 

너는 언제나 분수껏 등짐을 지웠다

무거우면 덜어내고 알맞게 져야 함을

인생의 간솔한 삶을 묵언으로 가르쳤다

 

땀으로 깨달은 푼더분한 삶의 철학

이제는 민속박물관 구석에서나 보는

받쳐진 너의 몸체엔 소금쩍이 부푼다

-예병태, 사라짐에 대하여-지게전문

 

지게는 우리 농촌에 1970년대까지는 꼭 필요한 농구(農具)였다. 누구나 지게 져보지 않는 사람들이 없는 시대였다. 이제는 민속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이 되었다. 시인은 지난날 지게를 진 경험을 돌이키며 삶의 깨달음을 얻은 것을 노래하였다. 첫째 수에서는 길눈’, 둘째 수에서는 분수를 셋째 수에는 =노력의 중요성을 지게가 깨우쳐주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예병태 시인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사랑과 아쉬움을 노래하였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났다면 지게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에게 공감을 얻기가 어려운 시가 되었을 것이다. 이제는 세상이 변하여 더 편리한 농기계들이 사용되고 있다. 박물관에 있는 지게를 보면서도 오늘날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매개체로 사용하고 있기에 좋은 시가 되었다.

 

 

산모와 떨어져 함께 모인 신생아실

위생수칙 건다짐이 번듯이 적혀 있고

가끔씩 간호사들만 표정 없이 들락인다

 

어디로 치웠을까 부정 막는 금줄은

어디로 갔을까 안아주던 그 손길들은

따스한 엄마의 젖은 어디에서 흐를까

-예병태, 사라짐에 대하여-출생, 그 변화일부

 

전통적인 가정에서의 출생 모습과 현대의 병원에서의 출생 모습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간결한 시 속에 압축하여 보여 준다. 현대 의학으로 위생을 내세우지만, 산모와 떨어져 있는 신생아는 출생하는 순간부터 불안과 공포에 떨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나타나 있다. 따뜻한 모유가 건강에 좋다고 한다. 부정을 막는 금줄은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것들이었다.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표정 없는 간호사의 손길보다는 따스한 엄마의 젖과 따뜻한 품을 최대한 돌려주길 바라는 마음이 나타나 있다. 이 시에서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노고를 몰라서도 아니고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변해 버린 세태에서 산모의 건강과 신생아의 건강과 행복을 함께 찾는 최선의 방법에 대해 모두가 생각해보게 하는 시이다.

 

4) 역사 및 기행시

 

서석찬 시인은 서라벌연작시를 꾸준히 써 오고 있다. 이제는 전국 어디가도 서라벌시인이라면 서석찬을 떠올릴 것이다. 그만큼 서라벌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이번호에는 서라벌연작시로는 두 편을 발표하였다.

한편 서석찬 시인은 사랑타령의 연작시를 발표하고 있는데 이번 호에 4편을 발표하여 22번까지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서석찬 시인은 서라벌의 시인이자 연작시의 시인으로 불릴 것 같다.

 

 

밤새 젖은 날개를 아침 햇살에 퍼덕이며

깃을 치려다 볼시착하여 피를 흘리는 날짐승

찍 소리 한번 못하고 한 생을 마감한 흔적

 

풍경소리는 땅으로 숨어 바람을 기다리고

흙으로 되돌아간 구층 목탑 나무기둥은

파랗게 잔디로 피어 홀로 묵언수행(黙言修行)을 한다

 

언제쯤 지축 깊이 감추어진 화두(話頭)를 들고

꼭지 눈을 부수고 발아(發芽)하는 연꽃 같이

천 년의 껍질을 깨고 고스란히 솟아 오를까

-서석찬, 서라벌 215-황룡사의 침묵전문

 

황룡사지 터에 가보면 엄청난 규모에 놀란다. 주춧돌만 보아도 대단한 규모임을 알 수 있다. 그 높이는 바벨탑과 같은 약 81m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바빌로니아는 그 선조들이 우리와 같은 종족들로 알려져 있다. 바벨탑이 파괴된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것과는 달리 바벨탑이 완성되어 오랫동안 유지되다가 페르샤인들의 침입으로 파괴되었다고 한다.

황룡사 9층탑도 몽고 침략으로 불탄 것과 같은 것이다. 애석한 일이다. 복원을 놓고 행정적인 문제로 일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니 애석한 일이다.

첫째 수에서는 황룡사가 파괴되던 때를 깃을 치려다 불시착하여 패를 흘리는 날짐승이라고 표현하였으며, 둘째 수에서는 조용한 황룡사지 터를 묵언수행을 하는 것으로 바라본 것이 독창적인 안목이다. 세쨋 수에서는 감추어진 화두발아한 연꽃 같이라며 시적 형상화를 아주 적절히 잘 하였다. 그리고 황룡사가 복원되어 우리 눈 앞에 나타날 날을 간절히 염원하면서 천 년의 껍질을 깨고 고스란히 솟아 오를까라고 노래하고 있다. 과거의 유물을 노래하되 현재의 소원을 담고 있기에 살아 있는 좋은 시가 된 것이다.

 

 

제 발 저린 도둑처럼

이중 해자(垓字)에 절벽성곽

 

대판시가 내려다뵈는

작은 왕국 건설하고

 

천만년

다스릴 꿈이

하루아침에 진 물거품

 

천하통일 망상 속에

총 들고 칼을 뽑아

 

겹겹이 번을 세워도

뜬눈으로 동튼 나날

 

제 덫에

걸린 수뢰(秀賴)

할복(割腹)으로 끝을 맺다

-조순호,오사카성전문

 

조순호 시인은 독실한 카톨릭 신자로서 교직계 정년퇴직 후 꾸준히 유럽을 비롯하여 세계 곳곳을 여행을 하면서 기행시를 남기고 있다. 금년호에는 유럽과 일본 여행에서 남긴 시들도 보인다.

이 시에서 천하통일을 꿈꾸던 풍신수길의 생각은 망상이었고 그 아들은 할복자살을 끝을 맺었다고 한다. 피바람을 불러일으켰던 왜적의 침략은 우리는 너무나 많은 피를 흘렸고, 그들도 젊은이들은 사지로 몰아넣어 너무나 많은 피를 흘렸다. 토인비는 1,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목격하고는 전쟁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남한 땅에 살고 있으면서도 북한의 남침을 오도하는 무리들이 있다. 심지어 해방 전쟁이라고 미화하고 있다. 미친 짓이요 망상가들이요, 역사의 죄인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념의 최면에 걸려 있는 줄을 모른다. 풍신수길에 이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쟁의 참상을 똑똑히 바라보았기에 우리와 협상을 맺고 약 200년이 넘도록 우리와 평화를 유지하였다. 국제 사회에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친구도 없다. 그런데 이 땅에는 친일이라는 명분으로 친공을 하려는 종북 내지 친북 세력들이 있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세력인 것이다. 진정한 북한 독재가에 대해서 침묵 내지 미화하면서 남쪽의 정통 정부 지도자들을 흔드는 것은 저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의심케 한다. 불행한 일이다. 이제 국민들은 알 만큼 다 안다. 언론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언론의 자유가 너무 지나쳐서 문제일 정도이다. 그래도 1970년대식의 구호를 외치며 국민들을 현혹할수록 지지율이 떨어지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지도자들은 젊은이들의 일자리 창출과 노년층의 일자리 등 생계에 관심을 둘 일이다.

오사카성은 이중 해자(垓字)에 절벽성곽이다. 그런데 세계 역사상 수도가 견고하면 나라가 위태롭다고 한다.

 

진나라 시황이 영원한 제국을 꿈꾸면서 흉노를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고 그 결과 국력이 소진되어 진나라 건국 143, 중국 통일 후 불과 15, 진시황 사후 3년 만에 망하였다. 외적을 막으려던 만리장성이 오히려 내부의 적을 만들어 낸 격이 되고 말았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다산 시문집 제 12고려구론에서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나온다. 고구려가 졸본성이나 국내성 등에 수도를 두고 북방 민족과 팽팽히 대치하던 때는 강건하였다. 그러다가 장수왕 15(427)에 방위가 훨씬 더 견고한 평양성으로 수도를 옮기고서 고구려는 오래가지 못하고 멸망했다. 그 이유는 다산 정양용은 평양은 풍속이 수려하고 유연하다. 그리고 밖으로 견고한 성과 큰 진이 겹겹으로 방호하고 있은 바 백암성, 개모성, 횡성, 은성, 안시성 등이 앞뒤로 잇따라 바라보이고 잇다. 이러니 평양 사람들이 어찌 두려움이 있었겠는가. 요동성이 함락되면 백암성이 위태하고, 백암성이 함락되면 안시성이 위태하고, 안시성이 함락되면 애주(愛州)가 위태하고, 애주가 함락되면 살수(薩水)가 위태하다. 실수는 평양의 울타리인 바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고, 가죽이 벗겨지면 뼈가 드러나게 된다. 이런 데도 평양을 믿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중국의 진() 나라와 송() 나라는 양자강을 건넌 뒤 천하를 잃었으며 고구려는 압록강을 건넌 뒤 나라를 잃었으며 백제는 한강을 건넌 뒤 나라를 잃었다고 한다.

 

결국 오사카성도 망하고 만 것이다.

역사의 교훈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게 한다. 북한 주민들은 굶주리는데 핵으로 독재정권을 유지하려는 북한은 내부 모순으로 스스로 몰락하고 말 것임을 예견할 수 있다.

 

 

3. 자아성찰

 

시를 쓴다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행위이기도 하다. 자신의 내부로 향하는 눈길을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시인들은 어느 누구보다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자아성찰이 두드러진 시로서는 조영두의 소금밭’, 김우연의 행복’, 원정호의 절벽을 오르며’, 김제흥의 셀프 주유소’, 황무굉의 단풍’, 박광훈의 행남등대’, 김두섭의 평행선’, 등이 있다.

 

 

작열하는 태양아래

삭신을 녹여가며

 

출렁이는 갯내음과

심해의 정념들을

 

하얗게 떨쳐낸 사리로

피워내는 삶의 결정

-조영두,소금밭전문

 

제목이 소금이 아니라 소금밭이라는 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소금들이 모여 있는 곳이 소금밭일 것이다. 소금 한 알 한 알은 출렁이는 갯내음과/ 심해의 정념들을모두 떨쳐내고 사리로 굳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출렁이는 갯내음을 떨쳐버린다는 인간 관계에서 순수하지 못한 일시적인 세속적 유혹을 떨쳐버리겠다는 것이요, “심해의 정념들을떨쳐버린다는 것은 무의식의 세계에서도 그런 찌꺼기가 남지 않도록 자신을 돌아보고 맑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작은 것들이 쌓여서 저 눈부신 소금밭을 이루는 것이다. 조영두 시인이 소금밭을 바라보며 환희의 탄성을 지르면서 자신도 소금밭이 되고자 다짐하고 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 않는 원만한 성품의 소유자인 조영두 시인은 교사, 교감, 교장으로서 변함없는 교육애를 가지고 있음을 소금밭을 통하여 느낄 수 있다.

 

 

우리들

가슴에는

행복의 숲이 자고 있어

 

만족의 자물쇠를

감사의 키로 살짝 열면

 

어느 새

맑은 숲속엔

꽃향기가 넘치네.

-김우연,행복전문

 

행복은 누구나 추구하는 길이다. 그러나 남들과 비교하는 마음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과 불만이 쌓인다. 금강경에서는 비교하는 마음인 인상(人相)’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보살이 될 수 없다고 하였다. 행복의 지름길은 살아가면서 작은 일에도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란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간간히 조여드는

회색빛 일상들이

무료한 벽에 갇혀

침묵에 빠져들면

스스로 온 몸을 묶어

벼랑 끝에 매단다.

 

천 길 낭떠러지

화석들도 깨어나고

바람이 훑고 간 길

더듬으며 돌아보면

아찔한 흔들림으로

빛이 되는 시간들.

-원정호,절벽을 오르며전문

 

이 시를 읽어보면 원정호 시인은 늘 깨어 있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회색빛 일상들이/ 무료한 벽에 갇혀서 침묵에 빠져든다고 하는 것은 잠든 의식 속에 빠져듦을 말한 것이다. 그럴 때 온 몸을 묶어/ 벼랑 끝에 매단다며 자신의 의식이 깨어 있도록 백척간두와 같은 벼랑에 몸을 매단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화석들도 깨어나고라며 각성의 상태를 회복하고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시인은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자신을 회복한 그 순간을 빛이 되는 시간들이라 하였다. 그런 마음을 지키기 위해 항상 자신을 돌아보고, 경계하고자 다짐하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로서, 교감으로서, 교장으로서 존경받는 교육자의 길을 변함없이 걸어갈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시이다.

 

 

셀프가 싸다는데 아빠는 왜 간가요

내 좋은데 가는 데다 싼 것도 아니거든

그보다 남 걱정 말고 제 일이나 잘해라

 

셸프를 찾아가는 그러한 정신으로

몇 분에 몇 시간 더 공부를 해 보거라

그까짓 푼 돈 몇 푼을 아끼는 데 비하니.

-김제흥,셸프 주유소전문

 

진솔한 작품이다. 자식을 위해 공부하라는 심정을 모든 부모의 심정을 나타내었다. 도올 김용옥은 우리의 교육열을 아래 글에서 효()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 사회에 교육열이 높은 것도 이러한 효()의 가치와 관련 되어 있다. 자녀교육에 열심인 부모들의 희생을 사회악으로만 볼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그나마 그것마저 없다면 우리 사회는 어떤 에너지의 사회가 될 것인가? 리비도의 충동만 난무하는 사회, 그리고 그 욕동의 절충, 그것을 사회제도라고 규정한다면 너무도 피폐된 인간세의 모습이 아닐까?

 

 

 

가네 돌아가네

계절 저문 골짝으로

 

푸른 숲 산새 소리

고을 물 노래 싣고

 

세월 빛

잎새에 새기고 원점으로 돌아가네.

-황무굉,단풍전문

 

황무굉 선생님은 효심이 지극하신 분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젊은 시절은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치열하게 자신을 삶에 충실한 분이었다. 교장 퇴임을 마치고도 울진에서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단풍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한 것이다. 불교에서는 온 우주가 띠끌 만큼도 늘어나는 것도 없고, 줄어드는 것도 없다고 한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단풍을 보면서 우리도 언젠가는 저 단풍처럼 떨어지는 존재임을 관조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삶의 원숙경에 접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 한다. 단풍이 아름답듯이 마지막까지 아름답고 알찬 삶을 살고자 애쓰는 시인의 마음이 나타내고 있다.

 

 

 

온다는 기별도 없이

간다는 기약도 없이

 

그대 파도라도 좋다

그대 바람이어도 좋다

 

막막함 그대 앞길에

한 점 불빛이 될 수 있다면

 

숱한 바람과 파도

운명처럼 끊을 수 없어

 

우러러 품은 하늘

동해 망망 풀어놓고

 

이 밤도 벼랑의 끝길에서

너를 위한 꽃이 된다.

-박광훈,행남등대

 

박광훈 시인은 고향이 거제도이다. 초등학교 때는 대마도를 바라보며 학교를 오갔다. 어릴 때부터 시심(詩心)이 남달랐다고 한다. 그런 탓인지 성품이 온화하며 순수하다. 전공학과와 관련하여 울릉도에 오래 근무한 적 있지만 금년에 다시 울릉도에 발령받아 근무 중이다. 교사로서, 시인으로서 울릉도는 그에게 특별히 인연이 깊은 곳이다.

이 작품은 울릉도 도동과 저동 중간지점에 있는 행남등대를 소재를 쓴 것이다. 첫째 수에서는 그대 파도라도 좋다/ 그대 바람이어도 좋다고 말하고 있다. 파도와 바람은 순간적인 존재라서 붙잡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에게 한 점 불빛이 되고자 한다. 순수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리하여 이 밤도 벼랑의 끝길에서/ 너를 위한 꽃이 된다고 하였다. 어두운 밤길에 바른 방향을 잡아주는 등대는 꽃으로 승화되고 있다. 박광훈 시인도 결국 등대처럼 빛을 밝히는 삶을 살겠다고 자신을 돌아보고 있는 시이다.

 

 

 

, 너 그리고 우리

만난 적도 없고 헤어진 적도 없다

 

둘이는 하나가 되고

하나는 둘이 되고

 

팽팽한, 저기 활시위 같은

긴장감의 연속은

-김두섭,평행선전문

 

우리의 삶에는 평행선이 많다. 만나서 좋은 것도 있고 평행선을 이루어야 좋은 것이 있다. 이 시에서는 만난 적도 없고 헤어진 적도 없다고 한다. 평행선을 이루어야 제 기능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철로가 평행선을 이루어야 제 기능을 다 하는 것처럼 우리의 인간 관계도 건강한 평행선을 이루고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팽팽한 긴장감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둘이는 하나가 되고/ 하나는 둘이 되어평행선을 유지하는 것이다.

노사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자 관계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런데 가끔은 그 균형을 깨뜨리려는 사람들이 있다. 둘 다 죽는 길이다. 성직자가 정치적으로 날뛰는 것은 평행선을 깨뜨리는 일이다.

 

 

4. 순수서정

 

시는 서정갈래로서 서정시의 본령에 속하는 것이다. 인간은 홀로 사는 면과 남과 더불어 사는 면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다. 순수서정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감흥을 노래하는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애들아, 왜 시를 공부하지 않느냐? 시를 배우면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사물을 잘 볼 수 있으며,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고, 사리에 어긋나지 않게 원망할 수 있다. 가까이는 어버이를 섬기고, 멀리는 임금을 섬기며,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의 이름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된다.”

 

순수서정시는 좋은 시는 남에게도 감동과 의지를 공감하게 한다. 그러나 자칫하면 너무 주관적으로 흘러 남의 공감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순수서정을 노래한 작품으로는 조영두의 경칩과 박광훈의 달빛 수채화’, 이문균의 그리움등이 있다.

 

 

대동강 푸른 물에 봄기운이 젖었을까?

개구리 울음소리 눈을 뜨고 일어설까?

동백도

지쳐 못 피어

꽃망울로 남았는데

 

내연산 골바람에 몸 뉘인 마늘, 양파

한 겨울 물러감을 바람으로 알았는지

경칩일

곧추 세운 몸

연둣빛을 쏟아낸다.

-조영두,경칩(驚蟄)전문

 

이 작품은 첫째 수의 동백도/ 지쳐 못 피워로 맥 33집의 표제로 삼은 것이다.

첫째 수에서 동백꽃은 꽃망울만 맺혀 있는 경칩일인데 대동강에는 봄기운이 감돌 것인지 궁금해 하고 있다. 그런데 포항 가까이 내연산에는 마늘, 양파 등에서 연두빛을 쏟아낸다며 감탄에 젖는 것이다. 자연의 순리를 느끼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시인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이다. 평범한 사실에 감동을 얻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다. 요즘은 감정이 메말라가는 세태이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이들은 자연과 멀리하는 생활 때문에 감동이 적은 것 같다. 인간다움은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느끼고 신기한 것을 신기하게 느끼는 데서 출발한다고 본다. 어린이의 마음과 눈을 가진 순수한 시인임을 느끼게 한다.

 

 

울릉도 촛대암에

보름달 걸리던 날

 

포구는 달빛을 찍어

바다 한 폭 달빛 수채화

 

가던 길 시간을 잃었네

나도 없네

넋도 없네.

-박광훈,달빛 수채화전문

 

한 폭의 수채화이다. 달밤의 울릉도는 얼마나 고요할 것인가. 그 속에 인간의 자취는 사라지고 없다. 그래서 나도 없네/ 넋도 없네라고 영탄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순수한 마음만이 남아 있는 곳이다. 아름다운 시이다. “가던 길 시간을 잃었네라고 하는 것은 월명사가 불던 피리 소리에 달이 멈추었다는 고사가 떠오른다. 자연에 젖어보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일이다.

 

 

 

고향 땅 떠나온 지

햇수로 수십여 년

 

지금쯤 그 동무들

다 무엇 하고 살까

 

멀잖아 고향땅 밟으면

어느 뉘 반겨줄까

 

살구꽃 복숭아꽃

즐겨 피던 내 고향

 

멱 감던 내 동무들

어디서나 다 무엇할까

 

그리워 바라본 고향

종달새는 반겨주리

-이문균,고향 그리워전문

 

오늘날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다. 고향을 찾는 것은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이 작품은 우리 인간들은 영원한 고향인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좋은 작품이다. 고향의 아름다움을 눈에 선하게 떠오르게 한다.

이문균 시인을 그리움의 시인이라고 부른 바 있다. 그의 시를 분석 한 결과 다음과 같았다.

 

이문균은 그리움의 시인이다. 이문균 시인은 1989'비화9'에서 세 편의 작품을 발표함으로서 시작활동을 시작하였다. 1991년에는 매일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비화9집부터 '그리움'의 주제로 출발하였으며 23년동안 끊임없이 그리움을 노래하였다. 그동안 맥(비화)동인지에 90편의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그리움'이란 단어를 직접 사용하여 그리움을 노래한 시는 33편으로 37%, 그리움을 주제로 한 시가 25편으로 28%이다. 이문균 시인 시인의 시에서 '그리움'을 노래한 것이 65%에 이른다. 23년이나 변함없이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그리움의 2대 원천은 어머니와 친구이다.

 

이문균 시인은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였으며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20여 년 동안 변함없이 친구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발표해 오고 있다.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며, 알아주는 사람들은 없더라도 종달새는 반겨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종달새는 자연의 대유로서 고향의 자연은 변함없음을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고향을 어머니의 품에 잘 비유된다. 이문균 시인의 고향은 어머니의 품과 같이 포근한 것이다. 그 어느 누구보다 순수한 마음을 가졌기에 그리움을 노래하는 시인이다. 그 어느 누구보다 간절한 그리움을 품었기에 그리움을 노래하는 것이다.

그러나 20여 년을 두고 변함없이 그 간절한 그리움을 노래하기는 쉽지 않는 일이다. ‘그리움의 정서의 샘물이 변함없이 솟아나기에 그는 시를 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욕심을 좀 낸다면 그리움 외에도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도 시로 승화시킨다면 시의 폭이 더 넓어질 것이다.

 

 

. 나오며

 

33-동백도 지쳐 못 피어에는 16명이 회원들이 71편의 시조를 발표하였다. 시조의 형식은 단시조는 31%, 연시조는 66.2%로 나타났다. 주된 내용으로는 죽음, 현실 문제, 자아성찰, 순수서정 등이었다.

맥시조문학회 회원들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투명한 서정의식을 바탕으로 시를 써 오고 있으며 어떤 시류에도 흔들림 없이 작품을 써 오고 있다. 연간집 33집 발간은 현대시조 발전에 큰 몫을 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별 것 아닌 시들을 가지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재주들은 부족하지만 묵묵히 시에 정진하는 마음들은 누구보다도 뜨겁다.

시조는 정형시이다. 정형성을 잘 지키고 있다. 600년을 넘게 흘러온 형식이라면 내용에서 현대성이 있어야지 형식을 파괴하여 현대성을 살리려는 의도는 잘못된 것이다. 특히 요즘 시조단에는 구를 파괴한 작품들이 가끔 나타난다. 시조는 장으로 되어 있고, 한 장은 두 구로 이루어지는 것은 오래된 정형이자 지켜야 할 묵계이다. 이런 면에서 맥시조회원들은 기계적으로 음절수까지 꼭 지키는 정형이 아니라 이호우 시인이 외친 내재적 율조를 잘 지키고 있는 것이다.

좋은 시란 독자들이 읽고 공감하는 시일 것이다. 물론 문학적 형상화가 잘 이루어진 작품은 표현에서도 뛰어난 시가 될 것이다. 흄은 새로운 제재를 노래한 시가 반드시 새로운 시는 아니다. 그 제재를 보는 눈이 새로워야 한다.”고 하였다. 눈이 새로워지기 위해서 끊임없이 관찰하고 사고해야 할 것이다.

맥시조회원들은 시조의 발전을 위해서 변함없이 시조인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또한 좀더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갈 것이다.

 

 

맥.33호_해설(김우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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