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 길
-시눈동인 제 11집
김우연
1. 시조의 여울인 동인
시눈동인 제 11집 『수채화 길』(한글문화사, 2015)의 발간은 현대시조문학사에 또 하나의 발자취를 남겼다. 연간집 제11집이라면 한창 젊은 나이에 해당한다. 그래서 자연 연령에 관계없이 마음만은 젊고 싱싱함을 느낄 수 있었다.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2000년대에 등단한 시인들로 결속이 되어 새로운 시의 눈으로 보고자 하는 의욕들이 넘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동인은 시조 발전을 위해서 매우 소중한 시조의 여울이요 고향의 조그만 호수와 같은 곳이다. 그래서 동인의 모임은 친정집과 같이 정이 넘치는 곳이다. 끊임없이 시창작의 물길을 솟아오르게 하는 샘과 같은 곳이다. 그래서 서로 격려하면서 시조라는 거대한 바다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시눈동인들의 연간집 발간에 크게 박수를 보낸다. 시눈동인들은 일부 여류 시인들은 부산여류시조에도 활동하기도 하면서 더 크게는 모두 부산시조시인협회라는 강물에 모여서 결국 현대시조문학이라는 바다로 도도히 흘러가고 있다. 특히 발간사에서 “시눈 회원들은 멀리 전남나주의 삶의 현장에서, 경남 밀양의 농촌에서도 정기 모임 날이면 눈비를 마다않고 달려오는 열정을 보입니다. 다정하고 인정 많은 회원들의 단결력이 돋보이는 아름다움 모습입니다.”라는 말에는 부러움과 박수를 보낸다. 이들은 시조를 향한 열정이 동인을 이루고, 샘물처럼 솟아나는 시정을 동인들의 따뜻한 인정과 어울려 제11집을 내었으니 앞으로도 더욱 왕성하게 흐를 것이라 기대된다.
2. 다양한 목소리
10명의 회원이 80편을 발표한 이번 『수채화 길』에는 단시조 39편, 연시조 39편, 사설시조 2편을 실었다. 80편 속에는 4명의 회원이 동시조 1편씩 4편을 실은 것도 눈여겨 볼만하다. 시조 형식을 골고루 활용하여 창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는 서정 갈래다. 그래서 살아가면서 자신의 내면을 향한 감정들과 생활주변과 현실에 대한 관찰에서 느끼는 생각과 감정들이 솔직하게 나타나게 된다. 이번 동인지에도 서정을 맘껏 발휘하였다. 순수 서정, 자아성찰, 현실 문제, 회상(그리움), 기행시 등으로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순수 서정을 표현한 시들이다.
비 오다 그치기를
몇 차례 반복하네
젖은 잎 수북하게
쌓여있는 가을 아침
네 생은
이리 화려한데
내 심사 어이할꼬
-오기환,「수채화 길」전문
시집의 표제가 된 작품이다. 가을이 오는 것이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초장과 중장에서 가을이 오기까지 비 오기를 반복하더니 가을이 되고 아름다운 단풍으로 변한다. 그리고 어느 날 낙엽이 수북하게 쌓이게 된다. 떨어져 있는 낙엽마저 아름다운 모습이다. 봄이 오는 것도 그럴 것이며 우리의 삶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종장에서 단풍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네 생은/ 이리 화려한데/ 내 심사 어이할꼬”라며 화려한 단풍처럼 자신도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지고자 돌아보고 있다. 인생의 가을길에서 저 자연처럼 아름답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좋은 서정시는 서경과 서정이 적절하게 잘 짜여져야 한다고 볼 때 이 시는 초․중장의 서경과 종장의 서정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시조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오기환 시인은 「서리꽃 핀 뜨락」, 「2014년의 단풍」등에서 순수 서정을 보이며 서정 갈래의 본연의 길을 걸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즘음 귓속 어디 귀뚜라미 살고 있다
꼭꼭 숨어 지내다가 한 번씩 기어 나와
귀뚜르 뜨르르르륵 귓바퀴를 울린다
계약도 신고도 없이 제집인양 들어앉아
심심하면 귀뚜르르
일어나, 이제 깰 때야
한잠 든 영혼을 깨우고 사라지는 종소리
-이옥진,「귀뚜라미」전문
나이가 들면 이명(耳鳴)이 생기기도 한다. 이옥진 시인은 이명(耳鳴) 현상을 우선 귀뚜라미로 비유하여 표현한 것이 독특하다. 첫째 수에서는 전체가 묘사로 이루어져 있어 이미지가 눈에 선하며, 신선하고 독창적인 표현이 돋보인다. 둘째 수에서는 진술과 묘사로 표현하였다. “일어나, 이제 깰 때야/ 한잠 든 영혼을 깨우고 사라지는 종소리”라고 이명 때문에 잠을 깨었다고 하였다. 단순히 잠을 깨었다고만 볼 수 없다. “한 잠든 영혼”을 깨우고라는 말 속에는 귀뚜라미 소리가 자신의 영혼을 깨우고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것은 이명을 귀뚜라미 울음 소리에서 “사라지는 종소리”라고 은유하고 있다. 은유가 확장되면서 자아성찰의 종소리로 울리고 있는 여운을 남기고 있다. 이 작품은 묘사와 진술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한 이명을 활유, 은유 등의 비유로 이루면서도 분명한 이미지로 전달을 쉽게 하고 있어 현대시조의 전범을 보이고 있다. 이명을 소재로 한 시들은 많지만 이 시는 독창적인 표현으로 독자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는 것이다.
이 밖에도 최성아 시인의「골목음표」에서는 “시류를 비껴난 길/ 도, 미, 솔 줍고 있다”며 골목길이지만 밝고 환한 순수한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김병한 시인의 「봄타령」,「봄꽃」등에서 순수 서정을 노래하고 있다. 물론 현대시조가 서정 갈래이기에 전 회원들의 작품 속에는 서정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둘째, 자아성찰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그릇이 클수록 넉넉히 담는 것은//
크면 클수록 자기를 더 낮춘 덕분//
바닥을 한없이 낯춘 바다를 보면 알 수 있다
-손증호,「그릇1」전문
손증호 시인은 바다를 보면서 한없이 낮추었기에 모든 것을 포용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래서 바다를 담고자 한다. 넉넉한 가슴을 가진 분이라 느껴진다. 또 「문상」종장에서도 “다 벗어 홀가분하신가// 영정이 빙긋 웃으신다”라며 욕심을 비울 것을 지향하고 있다. 「한창때」역시 “사람도 한창때 있듯 나무들도 그러한지”라며 모든 것은 때가 있으니 제 때에 최선을 다해야 함을 돌아보고 있다.
왜 사냐고 다가와서 굳이 물어 보신다면
볼우물 지어가며 그냥 웃고 말 일이다
뒷산에 단풍이 들어 형형색색 빛이 난다.
그래 또 다가와서 재삼 물어보신다면
황국화 가지 꺾어 옷섶에다 감춰두고
수수히 앞산머리나 바라본다 하리라
-최정옥,「살아가기」전문
이백(李白)의 산중문답(山中問答)을 연상케 한다. 탈속적이다. 이 작품 외에 「책을 읽는 밤」, 「정민 교수 세설신어世說新語」,「온천천에서」등이 작품에도 이와 같은 경향을 보이고 있다. 불교 화엄세계로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중중무진(重重無盡) 법계(法界)라고 한다. 우리도 우주의 한 부분으로 끊임없는 연기 속에서 자신은 우주의 주인공으로 한 세계를 열어가고 있다. 최정옥 시인의 삶의 지향은 세속적 욕망을 초월하며 이 우주와 한 몸이 되고자 하고 있다. 첫째 수 종장에서 “뒷산에 단풍이 들어 형형색색 빛이 난다”는 것은 자연의 모습이자 자연에 동화된 자신의 모습이다. 자연과 완전일체를 꿈꾸고 있다. 그리하여 둘째 수에서도 옷섶에는 “황국화 가지”를 감춰두고 있다. 황국화 가지는 세속적 욕망을 떠난 순수한 가치라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왜 사냐고 누가 물어보고 재차 물어본다면 그냥 “수수히 앞산머리나 바라본다 하리라”고 하고 있다. 이런 순수한 마음들은 자신을 정화시키고 주변과 사회를 정화시키는 힘이 될 것이다.
생장점 움켜쥐고 숨죽이며 기다리다
눈치껏 물길 따라 힘겹게 뻗었는데
주가지 뻗지 못한다 느닷없이 자르네
남보다 설익고 고운 빛 덜하지만
안간힘 써가며 까치발도 세웠는데
남의 삶 방해 놓는다 비켜서라 밀치네
-조미영,「헛가지」전문
오랫동안 자던 눈이 갑자기 터서 쓸모없이 뻗는 가지가 헛가지다. “힘겹게 뻗었지만” 주가지에 방해된다고 잘리고 마는 처지에 있다. “안간힘 써가며 까치발도 세웠는데”란 비유적 묘사가 돋보인다. 우리 사회에서도 남들보다 낮은 곳에서 “안간힘”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보이는 작품이다. 그래서 자기자신은 함부로 헛가지를 자르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을 돌아보는 작품이다. 삶이 경쟁이며 전장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헛가지를 함부러 자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생명이 다 소중한 삶이라면 우리의 삶에는 헛가지가 없다는 것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의 생태계도 헛가지가 없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 밖에도 이옥진 시인의 「거슬러 걷기-해운대 시편 15」에서는 “당당한 연어가 되자, 붉은 강을 거스르는”이라며 타성적인 삶이 아니라 항상 새롭게 생각하고 의문을 품고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안귀녀 시인의 「마음 다스리기」에서는 “삐쭉삐죽 고개 내민/ 숨바꼭질 하던 시름”이란 표현이 참신하며 “아직도 까마득하여라/ 내려놓고 버리기가”며 자신의 헛된 욕망을 비우고자 자신을 돌아보며 생활 속에서 ‘마음 다스리기’ 공부를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셋째, 현실 문제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새벽달 빛바랜 때
독기 어린 야수들
허기진 희망 속에
괴로움과 막노동
오늘도
팔려간 자리
찾아와서 앉았네
-김병한,「새벽 인력시장」전문
세계적으로 노동시장은 비정규직이 많아 노동의 불안이 큰 문제가 되고 있으며, 양극화 현상으로 부의 쏠림이 점차 심해지고 있어 그 문제 해결의 과제를 안고 있다. 그렇다고 문학을 사상의 도구로 전락할 때 문학은 타락되고 문학에서 벗어남을 카프를 통해서도 이미 보았다. 문학에서는 문학적인 표현으로 조용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을 보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큰 목소리보다 오히려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오늘날 목소리를 높여서 더 가지려고 외치는 사람들도 많다. 그것도 대기업노조원들처럼 노동자라도 힘 센 노동자가 힘이 약한 노동자를 짓밟으면서도 자신은 가진 자들로부터 착취당한다고 외친다. 뉴스에는 종종 독거노인들이 사망한지 한 두달 지나서 발견되고 있으며, 지원 받아야 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자녀들이 있다는 이유로 지원도 못 받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김병한 시인은 날품팔이로 연명하는 노동자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인다. 생명체는 먹어야 산다. 그러나 먹는 것 해결도 쉽지 않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초장에서 “새벽달 빛 바랜 때/ 독기 어린 야수들”이라고 하였다. 새벽녘 남들이 일어나기 전에 일찍 날품팔이 하러 나가 앉아 있는 모습에서 생명을 연장하고자 하는 독기마저 어려 있음을 보았다. 처참함 몰골이다. 그들에게는 먼 희망이 없다. 그래서 “허기진 희망”이라고 하였다. 날마다 일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것이 소원일 것이다. 일이 없는 날은 처자식들에게도 체면이 서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일자리가 생기기를 바라면서 새벽부터 어제 팔려간 그 자리에 “오늘도” 앉아서 누가 데려가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겉이 화려한 현대 문명의 편안한 이기를 누리는 것도 누군가의 피땀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김병한 시인은 “억척같은 손아귀에/ 인정이 듬뿍듬뿍// 덩치 큰 사랑 속에/응시하는 눈망울들// 호방한 웃음소리에/ 해 그림자도 맘춘다”(「자갈치 아지매」전문)며 부산의 명소 자갈치 시장의 억척같은 현실 속에서도 훈훈한 인정이 감도는 현실을 노래하였다. 김병한 시인은 현실을 노래하되 부정적, 비판적인 시선보다는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서정시의 감동은 큰 목소리보다 잔잔한 목소리에서 감동이 오는 법이다.
바래지는 마음 색깔 무엇으로 칠을 할까
자식 나이 아래부터 셈하기로 세어보다 물색없다 사랑 없다 아내헤게 눈총받다 겁나다는 암이고 뭐고 담배 한 개비 물고 간접흡연 어쩌구 잔소리에 옥상으로 올라간다 한 때는 거친 산야 뽀얀 먼지 날리며 발굽이 다 닿도록 무거운 짐도 마다않았건만 모인 돈이 왜 없냐고 다른 집 아버지들은 결혼자금 사업자금 턱턱 다 내놓더구만 좋은 일 있으려나 깍깍대는 차치 소리에 할 일 없이 휴대폰만 만지작 또 만지작 좋은 세상 백세 시대 건강 상식 넘치는데 아들아 나는 마 오래 살고 싶지 않다 찬란한 연금도 없고 물려줄 재산도 없는데 나이 들어 누구한테 무얼 더 바라겠노 아들아 너는 알제 경제 구조가 다 이런 걸 내가 게을러서도 못나서도 아니란 걸
넋두리 가장자리에 핑크하트 그려본다
-최성아, 「중년 가장」전문
이 시는 사설시조이다. 또한 서사적 서정시이다. “서사적 양식은 주체와 객체가 소외의 관계, 대립 관계에 있고, 주체와 객체 사이에는 주체가 객체를 비판할 수 있는 거리가 유지되고 시간적으로 현재를 지향한다.”고 한다. “서사적 서정시에는 이야기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는 것”이 이야기시와 다른 점이다.
고시조에서 사설시조는 대개 풍자를 통한 모순된 사회를 비판하는데 해학성을 가미하면서 웃음을 유발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중인계층들의 사설시조에서는 기생들과 방탕하게 놀면서 해학성만 강조된 작품들이 많다.
오늘날 우리의 문제 중에서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가 중년 가장들의 힘겨운 삶이다. 흔히 말하는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물론이고 그 이전의 60대 중반 이후의 모든 이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물려받은 재산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평생 가정을 위해서 묵묵히 고통을 인내하고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발버둥쳤지만 결국 자신의 노후마저 챙겨두지 못한 사람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아내와 자식들로부터 체면이 서지 않는다. 그래서 해롭다는 담배를 핀다. 그것도 간접흡연의 잔소리에 옥상을 올라간다. 건강에 나쁜 줄은 알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답답함을 해소한다. 그렇지만 담배를 피면서 생각해봐도 결혼자금에 보탬도 없고, 연금이 없으니 자녀들에게 짐만 될 것을 생각하니 오래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데 최성아 시인은 관찰자로서 계속 ‘중년 가장’ 따뜻한 시선을 보인다. “아들아 너는 알제 경제 구조가 다 이런 걸 내가 게을러서도 못나서도 아니란 걸”이라며 경제 구조가 문제이지 자신이 게을러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발굽이 다 닳도록” 평생 노동을 해 온 결과가 현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성아 시인은 ‘중년 가장’에게 “넋두리 가장자리에 핑크하트 그려본다”며 그에게 따뜻한 마음과 위로를 보내고 있다.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가 심해지는 ‘경제구조’에 비판을 가하면서 약자에 애정을 보이는 이 작품은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한다.
천성수 시인은 “새벽을 잊어설까 갈곳을 잊어설까/뙤약볕 강한 날도 시들지 않았는데/고개를 한껏 숙이고 겸손하게 들어선다.”(「천일탕 풍경」세 수 중, 첫째 수)며 새벽부터 고개 숙이고 목욕탕을 들어서서는 고개 숙인 남자가 탕속에서 “침묵으로 앉았다”며 이 시대에 흔히 있는 실업자가 된 사내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하얀 가시내가 어느 봄날 내게 왔다
오도카니 앉아서 고개를 갸웃대며,
도저히 내칠 수 없는
고요한 눈빛으로
하루 세끼 챙겨주고,
잠자리도 봐주고
흠씬 비에 젖은 등허리도 닦아주고
싸우고 할퀴여 오면
상처도 살펴보고
나는 너를 입양했다
너도 나를 입양했다
치명적인 발톱을 고요히 말아 쥔 채
새로 난 마음길 따라
마리가 걸어온다
-김숙현,「길냥이, 마리」전문
길냥이는 ‘길거리’와 ‘고양이’의 합성어이다. ‘마리’는 1970년 디즈니 영화에서 나온 고양이 캐릭터 마리(Marie)를 떠올리게 한다.
길거리에 버려진 암고양이를 보살펴주고 상처를 돌보다가 드디어 입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셋째 수에서는 “나는 너를 입양했다/ 너도 나를 입양했다”고 하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물론이지만 사람과 동물 사이에서도 믿음, 사랑이 통해야 마음의 문을 열고 진정으로 따르고 서로 사랑함을 알 수 있다. 나는 너를 입양했지만, 너도 나를 입양했다는 표현은 평범한 것처럼 보이지만 쉽게 나올 수 있는 표현이 아니라고 본다. 사람과 동물이 동등한 입장에서 바라보고 생명의 고귀함을 느끼고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이런 표현을 할 수 있겠는가. 김숙현 시인은 가슴이 참 따뜻한 시인 같다. 결국 ‘마리’도 ‘치명적인 발톱’은 말아 쥐고 새로운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오늘날 생태계의 파괴가 문제가 되고 있다. 그와 관련된 문학 작품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확실히 깨닫고 실천하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이럴 때「길냥이, 마리」는 애완동물을 기르다가 싫증이 나면 함부로 버리는 사람들에게 반성하게 하며, 거창한 말보다 직접 불쌍한 고양이를 기르는 사랑을 보이며 실천하는 시인은 생태계 파괴로부터 회복하고자 하는 염원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시인이라 느껴진다. 작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것을 몸소 체험하면서 자연의 일부가 된 시인에게 박수를 보내며 「길냥이, 마리」에 대한 사랑은 우주에 대한 사랑이라 본다. 생명의 고귀함과 생태 의식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판문점 잔디밭에 놀고 있는 꿩 한 마리
좋겠다, 정말 좋겠다 마당 넓어 좋겠다
널문리 대성동 기정동 모두 다 네 집이니
돌아오지 않는 다리 넘어오는 꿩 한 마리
좋겠다, 정말 좋겠다 검문 없어 좋겠다
맘대로 오갈 수 있는 하늘 모두 다 네 것이니
-이옥진,「좋겠다, 정말 좋겠다」전문
동시조이다. 동시조는 어린이가 동심을 가지고 쓰는 것도 있고, 어른이 시적자아는 어린이가 되어 어린이의 눈과 마음으로 쓰는 시조가 있다. 동시조는 동시처럼 동심을 담고 있기 때문에 소중한 갈래이다. 백수 정완영 시인도 동시조를 여러 편 남기고 있다. 서정시라는 것 자체가 순수한 마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라면 동심은 순수 그 자체이니까 동시조를 창작하거나 보급하는 데도 우리 시조시인들이 동참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시는동인 제11집 「수채화 길」에 4명이 동시조에 동참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본다. 앞으로도 동시조 창작에 계속 관심을 가길 것이라 기대한다.
「좋겠다, 정말 좋겠다」는 우리 민족의 소원인 통일을 염원한 것이다. 내용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지만 꿩이 자유롭게 남북으로 날아다는 것을 보면서 “좋겠다, 정말 좋겠다”를 반복하면서 운율도 살리면서 통일을 간절하게 염원하는 효과를 잘 살리고 있다.
천성수 시인의 「두만강 강변에 서서」도 통일을 염원하고 있다.
넷째, 회상에 바탕을 둔 시들이다.
달 익어 둥근 마을 개가 짖어 고요하다
이야기로 피어나는 신율리 밤꽃 냄새
어느 집 닫힌 대문에 금줄 하나 걸어라
전설이 된 아기 울음 뻐꾸기로 울고 있다
핏줄이 그리운 할매 꿈길에서 토닥토닥
적막 속 신발 한 켤레 댓돌 위에 삭고 있다
-천성수,「신율리 사위어가다」전문
슈타이거(E. Staiger)는 기억의 원리가 서정시의 핵심이라고 하였다. 기억이란 회상이다. 천성수 시인은 고향 신율리에 대한 회상한다. 고향의 둥근 달, 개 짖는 소리, 들었던 이야기와 이야기하던 지난 날, 밤꽃 냄새, 금줄, 아기 울음, 할매, 댓돌, 신발 등을 떠올리며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다. 둘째 수에서 “전설이 된 아기 울음 뻐꾸기로 울고 있다”며 젊은 사람들이 떠나가서 적막한 농촌의 현 실태를 보여주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아기 울음 없는 곳에 자연의 소리인 “뻐꾸기”만 우는 것으로 연상하게 하면서 더욱 적막감을 고조시키며 시적 효과를 올리고 있다. 결국 “신 발 한 켤레 댓돌 위에 삭고 있다”며 마지막 고향을 지키는 할아버지나 할머니, 또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될 것이다. 그래서 불기운이 사위듯이 농촌은 점점 사위어가지만 그럴수록 시인의 마음속에는 정겹던 고향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시를 쓰게 하는 가장 큰 근원임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가신 지 오래 되면
영상도 흐르던가
지방 옆에 세워 놓은
오래 된 사진 한 장
향불에
가난이 어려
지난 날이 아프다
-오기환,「忌日」전문
누구의 기일(忌日)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부모님의 기일(忌日)이라 추측된다. 조선 말기부터 해방되고 1960년대까지는 우리는 세계적으로도 최하위의 가난을 겪었다. 지금 젊은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고, 지난 날 이야기하면 잔소리로 들리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기일(忌日)을 맞이하여 가난하던 시절,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부모님은 고생을 많이 하셨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효도하고 싶어도 계시지 않으니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이런 시인에게 「만 세 살」은 “오늘은 할부지 집 간다 으스대며 자랑한다”며 오늘을 즐거워한다. 이렇게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忌日」초장에서처럼 “가신 지 오래 되면/영상도 흐르던가”라며 사진은 빛을 바래가며, 그 옛날의 회상에 잠기도 한다. 중장의 묘사와 초장, 종장의 진술이 잘 어울리며 감정 절제도 잘 이룬 작품이다.
모든 시인에게 시의 근원 중 하나가 회상인 것 같다. 그리움이 없다면 어찌 시인이 될 수 있겠는가. 다만 회상의 시를 쓸 때는 감정의 남발이 쉽기 때문에 감정의 절제에도 신경 써야 할 줄로 안다.
다섯 째, 기행시이다.
시에서 새로움이란 주제나 소재의 새로움보다는 새롭게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새롭게 인식하고 새롭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기행에서 얻는 소재들은 늘 새롭기 때문에 시의 좋은 소재가 된다. 다만 기행시는 새로움에 대한 찬탄으로 끝나기보다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면 더 좋은 시가 될 것이다. 역사적인 소재도 마찬가지이다. 과거 이야기의 재현이나 소개나 감탄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과거의 역사가 현재와 연관이 되어서 그 의미가 살아나야 좋은 시가 될 것이다.
오또마니 언덕 위에
오밀조밀 모여 앉아
수평선 넘는 바람 죄다 불러 들썩이는
선인장 뽐내는 마을
사로잡는 너 에즈
폼 재는 사이사이
가쁜 길 올라 보니
아담한 잔칫상이 손님맞이 분주한데
모나코 깜찍한 꼬마
그 재롱이 더 깜찍해
-안귀녀,「선인장 마을」전문
모나코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의 지중해 연안에 있는 공국(公國)으로 작은 나라이다. 저 먼 곳에서 가서 잔치 분위기 속에서 그 주인공에게 눈길을 돌리기보다 어린 꼬마의 재롱에 놀라워하고 있다. 동서양 어디가나 어린 아이들은 순진무구함이 같다는 사실이 평범한 진리이지만 실제로 겪으니 새롭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의식은 새로운 환경에 접함으로서 대단히 각성된다. 그래서 기행은 시를 쓰기 위해서 중요하다. 그래서 책상에 앉아서 생각하는 것보다 생활주변에서 걷고, 보고, 듣고 하는 것도 중요한 것이다. 여행이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임에 틀림이 없다. 안귀녀 시인은 지중해 연안에 있는 프랑스의 니스 해변을 버스로 달린 것을 소재로 쓴 「니스의 속삭임」과 유럽의 남서쪽 끝에 있는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한 포르투칼의 옛 영화를 돌아보며 강인했던 해양국의 진취적인 사내들을 떠올리는 시「포르투칼」이 있다.
하늘 담은 푸른 눈동자
예닐곱 살 부하라 소녀
맑은 빛 렌즈에 담고
과잣값 내밀었더니
끝까지 거절하는 손
부끄러워 돈 든 손
-조미영,「우즈베키스탄 기행1
-부하라의 소녀」전문
우즈베키스탄 여행 중, 어린 소녀 부하라의 푸는 눈동자를 보면서 너무나 순수한 모습에 감동을 한다. 그래서 말은 통하지 않지만 귀엽고 사랑스럽게 여기는 마음을 전달할 방법을 달리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하는 방식대로 과자라도 사먹게 돈을 준다. 그러나 어린 아이지만 이유 없이 주는 돈을 끝까지 거부한다. 우스갯소리로 뱃속에 든 아이도 고액권을 흔들면 빨리 나온다는 우리들의 모습과는 너무 달라서 시인으로 하여금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끝까지 거절하는 손/ 부끄러운 돈 든 손”이라며 시인은 부끄러워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일상적이고 만연된 모습이며 당연히 여기고 있는 모습이다. 시인의 작품은 우리들이 배금주의(拜金主義)에 젖어 있음을 반성케 하는 좋은 작품이다.
3. 수채화 길
수채화는 물감을 풀어서 사물을 그리되 화가에 인식에 따라 같은 대상도 강조점이 다를 것이다. 시조 창작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같은 소재, 같은 주제로도 그 표현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그릴 때 독자들은 감동을 받는다. 그것은 결국 시인이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이번 시눈동인 제11집 『수채화 길』은 이런 점에서 10명의 회원들이 각자의 독특한 인식으로 개성적인 목소리로 노래하였다. 그리하여 참신한 표현들을 통하여 감동을 주고 있다. 활동의 범위가 좁은 나에게는 시눈동인들에 대한 면식은 없지만 『부산시조』지면에서 익히 보아온 분들이며, 전국적으로 왕성하게 발표하고 있는 분들이 여러 명이 되고 있음도 알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동인’이란 시의 여울이다. 여울이 여러 개 모이면 내가 되고 강이 될 것이다. 동인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본다. 요즘은 발표지면도 많지만 동인이 활성화될 때 시조의 발전이 오리라 믿는 사람이다. 또 고향의 작은 호수와 같아서 따뜻한 정으로 모여 있기 때문에 소통이 잘 이루어진다. 문학도 결국 독자와의 소통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동인 활동은 소중하다고 본다. 동인지는 시조를 쓰는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시인의 주변 사람들에게도 읽히게 되어 현대시조의 보급에도 앞장서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눈 동인’에 거는 기대로 크다. 앞으로 더욱 왕성하게 여울이 내가 되고 강을 이루어서 창창하게 현대시조의 흐름에 오래 오래 소리를 내며 흘러갈 것이라 믿는다.
널 그리기 위해 너를 비워둔다
오롯이 비운 자리 네가 피어나고
반물빛 그늘 너머로
웃음소리 말갛다
널 새기기 위해 너를 잊고 산다
서럽게 지운 자리 네가 돋아나고
송화색 기억 너머로
적막한 새가 난다
-김숙현,「흰 꽃 그리기」전문
흰 꽃을 그리기 위해서 역설적으로 “널 그리기 위해 너를 비워 둔다”고 하였으며, “널 새기기 위해 너를 잊고 산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흰 꽃이 완성이 되었다. 그리하여 “송화색 기억 너머로/ 적막한 새가 난다”고 차원 높은 은유를 하였다.
시눈 동인님들이 오늘도 적막한 새가 되어 시조의 하늘을 날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앞으로도 그 하늘을 더 높이 더 멀리, 오래 오래 날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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