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연의 동인지, 시집 평론

강지원론-현대의 고독감과 그 너머를 향한 손짓

가산바위 2015. 12. 24. 11:22

 

 

강지원론-현대의 고독감과 그 너머를 향한 손짓.hwp

 

 

 

 

강지원론

     -현대의 고독감과 그 너머를 향한 손짓

 

김우연

 

 

1. 들어가며

 

강지원 시인의 첫 시조집 잡화 살롱(책만드는집, 2015)70편의 단시조 및 연시조가 아주 참신한 모습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그것은 시집 해설 끝맺는 말에서도 염창권 교수의 지적처럼 서둘러 단언하지 않고 은근슬쩍 내색하는 강지원 시인의 어법은 충분히 낯설게 느껴질 만큼 새로움을 가졌다고 본다.”라고 한 말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시간과 관련한 표현이 독창적이며 또한 시어, 현대 생활과 관련한 외래어 사용들이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또한 역동적 이미지로 시의 의미를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 특징들이다.

 

 

 

2. 시간과 관련한 표현들

 

황진이는 동짓달 기나긴 밤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인 밤을 베어내고’, ‘서리서리 넣었다가’, ‘굽이굽이 펴고처럼 시각적으로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기에 고시조 중에서도 표현이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힌다. 그런데 강지원 시인은 다음에 보는 것처럼 자연스러우면서도 시각적으로 매우 참신하게 다루고 있다.

 

 

· 새들은 포복하며 아침을 밀어내고 (푸른 수의)

· 시간은 앙감질로 풋잠 들다 깨어난다.()

· 긴 하루/ 팝콘처럼 가벼운/ 시간을 먹는다(조조 영화)

· 귀밑에 푸른 밤이 가시처럼 걸려 있다(갯배)

· 시간도 물살 타는 지느러미 달려 있나(팔손이)

· 벽을 타고 숲으로 들어서는 시간들(벽시계)

· 새벽은 눈을 떠서 갈증을 퍼 올리고(허날설헌)

· 밑줄로 그어놓은 하루가 걸릴 즈음(거미)

· 시간은 허공을 감싸며/ 거미가/ 흔들린다(거미)

· 삐걱이는 하루를 볼트로 다독이며(줄타기)

· 정지된 시간들을 도시 위에 뿌리며(무성영화)

· 녹슬은 시계추 소리 공중메 매달린다(풍경)

· 마당에 무뎌진 세월 꼬리 밟고 자라고(옹기)

· 수장된 내일을 풀어 저녁달에 묶는다()

· 흐린 듯 흔들어대던 시간 위로 쏟아져(눈의 꽃)

· 벚꽃에 내러앉은 오랜 시간 추스르며(덕혜옹주)

· 과속으로 달린 시간/ 브레이크 파열되어(환승)

 

 

시간에서 참신한 표현 이외에도 공감각적 표현, 기억과 관련한 표현들도 눈에 크게 뛰었다.

 

 

<공감각적 표현>

 

· 바람이 눈을 뜨고 우리 곁에 있었다.(BABA 마을)

· 벽 속을 기어 나온 하이힐 소리들이()

· 근력을 키운 바람 수초처럼 넘실거려(유리의 숲-해운대 마린시티)

 

<기억>

· 기억은 사선을 넘어 파월선을 타고 있다(푸른 수의)

· 스펀지로 말아 넣은 기억의 회로들이(려미 김)

· 기억은 환생하듯 가지 끝에 매달려/ 뽀드득 소리를 씹으며 거리를 나섭니다 (눈의 꽃)

· 혼절한 기억의 등 깃털은 깨어 있어(덕혜옹주)

 

 

3. 외래어 사용

 

현재는 영어가 세계적인 언어가 되었다. 우리의 삶에서 중국의 영향으로 한자어, 식민지 영향으로 해방 후에는 일본어, 지금은 세계화 속에서 영어가 우리의 일상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현대시조가 현대성을 가져야 한다고 현대의 삶을 현대어로 노래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강지원의 잡화 살롱은 제목에서부터 그 현대성을 상징하고 있으며 실제 시어 사용에서 현대성을 획득하고 있어 이것만으로도 이번 시조집이 우리 시조단에 신선한 감각으로 크게 충격을 주고 있다고 본다. 시조를 쓰는 사람들의 평균 연령이 높다. 젊은 사람부터 노인층까지 다양하게 분포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감수성이 예민하고 현대의 삶을 짊어지고 있는 젊은 사람이 많을수록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먼저 외래어로 제목을 삼은 작품으로는 메트로놈,잡화살롱,센텀시티,BABA 마을, 히치하이킹,브레이크 타임,물랭루주,돈키호테, 유리의 숲-해운대 마린시티,뉴스, 끄다,따수화,섬과 비올라-비올리스트 용재 오닐의 <섬집 아기>를감상한 후,셰르파,맨홀, 어떤 자화상-맥도날드 할머니,뮤직 박스16편으로 23%에 해당하며 이것은 연령이 놓은 시인에게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며 이것만으로도 참신하다. 그렇다고 몇 몇 외국 마을 빼고 나면 우리의 생활에서 사용되고 있는 말들이다. 이처럼 제목만 보더라도 강지원 시인은 현실의 삶을 자연스럽게 반영하고 있으며 현실에 예리한 눈으로 관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에 나타난 외래어(굳이 외국어 외래어가 구분이 필요 없는 말들이라 봄)에는 플랫폼’, ‘샹들리에’, ‘베트남’, ‘코딩’, ‘에스컬레이터’, ‘the ’, ‘아파트’, ‘프레임’, ‘코발트 빛’,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 ‘클로버잎’, ‘오베르의 집시’, ‘팝콘’, ‘레드카핏’, ‘밸런타인 화이트데이’, ‘인스턴트’, ‘렌즈’, ‘스캔’, ‘채널’, ‘마스크’, ‘미디어’, ‘바코드’, ‘클릭’, ‘볼트’, ‘겨울 소타타’, ‘커피색’, ‘스펀지’, ‘앵글’, ‘퍼즐’, ‘필름’, ‘스펙’, ‘헤즐넛’, ‘몽마르트르’, ‘집시’, ‘스텝’, ‘퐁네프’, ‘아카시아’, ‘라이너 마리아 릴케’, ‘베란다’, ‘하이힐’, ‘벤치’, ‘재즈’, ‘오르골’, ‘히말라야’, ‘큐 사인’, ‘빌딩’, ‘브레이크’, ‘애드블룬’, ‘커스빈 스타벅스 카페베네 뚜썸플레이스’, ‘맥도날드’, ‘휴대폰’, ‘앱 다운’ ‘비트’, ‘앰프’, ‘볼륨’, ‘CD’, ‘E메일’, ‘DJ’, ‘시그널 송’, ‘지퍼’, ‘쇼핑 홀릭등이 있다. 이런 용어만 보더라도 이번 시집의 내용이 얼마나 현실과 가까운 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고 외래어를 많이 사용하는 작품이 현대성을 지니는 것이니 많이 사용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번 시집처럼 현대 사회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생활 주변에서 휘트니스처럼 흔히 마주치는 말들이며 이런 용어 사용 자체가 현실의 한 단면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런 시어의 사용은 우리 시조단에서 70세 이상의 고령자가 많음을 감안할 때 노령층의 시인들의 시어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만큼 시조의 젊은 모습을 보이고 있어 매우 기쁜 일인 것이다.

 

 

4. 현대의 고독감과 그 너머를 향한 손짓

 

현대시조는 현대성을 가져야 한다. 현대성이란 내용이 현대 사회와 삶을 반영해야 한다는 뜻이며, 표현에서도 자신만의 독창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끔은 시조의 형식에서 현대성을 찾고자 실험적인 시인들도 있다. 그러나 강지원 시인은 정형시의 탄탄한 구조 속에서 내용과 표현에서 현대성을 갖추고 있다.

시에 나타난 시인의 삶의 조각들을 볼 수 있는 대로 나름대로 찾아서 조각보를 만들어보고자 한다. 현대 사회는 겉으로는 화려하고 풍족하다. 그러나 본질을 찾고자 하는 시인들의 눈에는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포착될 것이다. 붓다가 우리의 삶을 고통의 바다라고 한 것은 그 원인을 밝혀서 더 나은 삶을 향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강지원 시인은 시인이기에 현실의 부정적인 면을 찾아서 시화하고 있지만 밝은 사회를 지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시인은 자신이 섬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로변 빌딩 지나 속 깊이 들어선다

내 안의 나침반이 두리번댈 잠시 동안

길 곳곳 발자국 찍는다

돌아보며 걷는다

 

떨어진 목련꽃이 발의 그늘 드리운다

시골의 텃밭 같은 도시의 낯선 얼굴

섬으로 풍덩 빠져든 나도 지금 섬이다

-골목 속으로전문

 

첫째 수와 둘째 수 초장과 중장은 묘사, 종장은 진술로 이루어져 있다. 좋은 시는 묘사와 진술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 작품은 그것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들어선다’, ‘발자국 찍는다’, ‘걷는다’, ‘드리운다’, ‘풍덩 빠져든등이 역동적인 심상을 이루면서 지금 섬이다의 고독감을 심화시킨다. 이 작품 이외에도 대부분의 작품에서 강지원 시인은 역동적 이미지의 활동이 매우 특징적으로 시의 의미를 확대 심화시켜서 효과를 올리고 있다.

현대 도시의 삶은 우리 인간들을 고립시킨다. 그래서 항상 살아가는 곳이지만 항상 낯선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골의 텃밭 같은 도시의 낯선 얼굴이라 하였다. 같은 아파트나 원룸들에 살면서도 서로 섬처럼 이웃과 대화의 단절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재 우리들의 모습이다. 그래서 섬으로 풍덩 빠져든 나도 지금 섬이다라고 은유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러한 고독감, 단절감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 시인이 살고 있는 곳은 물론이고 전국 도시의 삶의 실태일 것이다. 현대 문명의 상징으로 센텀시티유리의 숲-해운대 마린시티등을 살펴본다.

 

 

바람벽이 굽은 몸을 지나가며 할퀴고

창 너머 쏘아 올린 불빛들이 흘러내려

새벽의 도로를 따라 단단히 굳어간다

 

코딩된 상상 속의 갇혀버린 신세계

밀봉된 백화점 문 포장지를 뜯어낸다

주름진 에스컬레이터 와르르 쏟아지고

 

광고 한 편 the 샵 그대 삶을 반올림

과열된 아파트가 헛발질하는 오후 한때

꽉 막힌 네거리에서 수신호를 찾고 있다

-센텀시티전문

 

첫째 수에서 창 너머 쏘아 올린 불빛들이 흘러내려라고 하여 빛을 하강적 이미지로 처리하여 부정적 현실을 표현하고 있으며, 과장 광고로 전국적인 열기 속에서 부나비처럼 빛을 좇아가는 소시민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결국 꽉 막힌 내거리에서 수신호를 찾고 있다며 교통의 정체는 우리의 환상이 깨어지는 순간이다. 그래서 수신호를 찾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절망적인 상황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그것은 현실의 안타까움을 표현하되 마음속으로는 희망의 손길을 염원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마린시티는 해운대에 있는 겉모습이 유리도 된 하나의 마천루다. 그래서 사진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현대문명의 상징이다. 시인은 역시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근력을 키운 바람 수초처럼 넘실거려

무성이 튀어 오른 나뭇잎 현을 켠다

초록이 바스러질 때 우수수 일어서는

 

우울한 물의 상자 초인종을 누른다

3001호 벽시계 길게 끄는 오르골 소리

불빛들 꼬리를 물어 목을 빼는 고층 건물

 

둥글게 흘러내린 뾰족한 각 벽의 지문

반사되는 물결 위에 나무를 심고 있다

동백섬 밀어 올리며 젖은 날개 퍼득인다

-유리의 숲-해운대 마린시티전문

 

 

첫째 수에서 근력을 키운 바람 수초처럼 넘실거려” “나뭇잎 현을 켠다고 하였다. 바람이란 하나의 희망이다. 그 희망은 나뭇잎 현을 켜는 것이다. 그러나 대도시 문명에서 그것을 넘고자 하는 희망은 너무나도 벅차다. 그래서 초록이 바스러질 때까지 우수우 일어서는이라고 하였다. 초록 역시 희망이라면 그것이 어떤 난관이 오더라도 일어서려는 발버둥이 우수수 일어서는것이다. 시인의 희망이자 의지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둘째 수에서는 우울한 물의 상자라고 현실을 직시한다. 오로지 오르골로 상징되는 기계 소리와 현대 물질문명만이 목을 빼고 있는 고층 건물앞에 어쩌면 인간은 왜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무섭기도 한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시인은 절망하지 않는다. 그래서 셋째 수에서는 반사되는 물결 위에 나무를 심고 있다고 한다. 물결 위에 심으니 하나의 환상이요 희망의 몸짓이다. 위쪽 뿐만 아니라 바닷물에 잠긴 건물의 모습 또한 이 지상의 모습이 아닌 듯이 환상적이고 웅장하다. 그렇지만 동백섬 밀어 올리며 젖은 날개 퍼덕인다고 하였다. 시인의 꿈과 의지는 현실을 인정하되 그 물질문명에 안주하지 않고 삶의 본질을 향한 꿈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말은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말하고 있다.

흘러라/ 바스러질 때까지// 흘러라/ 그리워질 때까지// 흘러라/그래서 새로워질 때까지

바스러질 때까지라는 말은 위시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현실을 바라보는 자신의 꿈에 대한 표현일 수도 있고, 시조에 대한 사랑으로 볼 수도 있다. 흐르고 흐르면 세월이 흐를 것이고 추구하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질 것이다. 그러면서 미래로 흐르면서 새로워질 때까지라는 말에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시인의 의지이자 시인으로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희망을 세상에 선언하는 것이리라. 이미 첫 시조집에서 그 가능성을 넘어서 그 실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위에서 살펴본 현대 문명의 단절감과 인간의 고독감을 직시한 시인의 마음은 그것을 치유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향하게 된다.

 

 

벽과 벽 또 가르며 물방을 끓고 있다.//

샹들리에 불빛이 테이블 구워가는//

눈보라 불을 켜는 밤/

그대 또한//

안녕하신지?

-잡화 살롱전문

 

 

이 시 잡화 살롱이 시집의 표제가 된 작품이다.

벽과 벽 또 가르며란 이웃과의 단절을 상징하고 있으며 화자가 있는 방안엔 차를 끓이가 위한 물이 끓고 있는 것을 연상시킨다. “샹들리에 불빛이 테이블 구워가는이란 표현은 상당히 도전적이고 낯선 표현으로 느껴진다. 생략된 것으로 읽고자 한다. 단절된 방의 샹들리에 불빛은 밝고, 테이블 위에는 차와 함께 마실 무엇인가가 구워간다는 것으로 소시민의 행복한 삶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아니면 표현대로 샹들리에 불빛이 테이블 구워가는화려함 속에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어떻게 보든 단절된 방에서는 소시민의 행복감이 충만할 수 있는 곳이다. 중장에서는 눈보라 치는 극한 상황이 설정된다. 그 부정적인 상황을 헤쳐 나가고자 불을 켜는 밤이다. 그런데 종장에서는 돌연 그대 또한 안녕하신지?”라며 타자에게 관심을 보인다. 자신이 안녕하듯이 타인도 안녕하신지묻고 있는 것이다. 소통이 단절된 곳의 안녕은 진정한 안녕이 아니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타자와의 소통을 꿈꾸며 다함께 행복한 길로 가자는 염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건강한 시민 의식을 엿볼 수 있으며 우리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다.

 

 

옥탑방 창문들은 별을 향해 뻗는다

바람이 불어오고 육각의 방 열리면

투명한 나뭇가지들 흔들리고 있겠지

 

바람이 귀를 대고 조용히 듣고 있다

숲 속의 눈밭 위에

피어난 복수초

창박한 얼굴을 씻는다

뽀드득 발의 문장(文章)

-설경(雪景)전문

 

첫째 수옥탑방 창문들은 별을 향해 뻗는다며 현대문명에 갇힌 화자 또는 누군가는 타자와의 소통이 인간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별을 향해 뻗는다고 하였다. 별은 순수의 세계라 할 수 있다. 둘째 수에서는 바람이 귀를 대고 조용히 듣고 있다고 하였다. 바람은 화자 또는 현대인의 누군가에 해당할 것이다. “숲 속의 눈밭 위에/ 피어난 복수초라고 하였다. 눈밭의 현대의 삭막한 문명과 같은 환경이다. 그렇지만 이른 봄에 가장 먼저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복수초처럼 긍정적이고 밝은 세상을 꿈꾼다. 그렇지만 결국 창백한 얼굴이라며 현실은 우울한 모습이다. 마음 속으로 염원하고 있는 시적 자아의 갈등을 엿보게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 같은 모습은 현실 생활에서도 비슷한 태도로 나타나고 있다.

 

분장한 대본 위로 붉은 등 점멸(點滅)한다//

큐 사인 내보냈던 계절에도 줄을 이러//

엇박자 팔의 피로를 왈칵왈칵 쏟는다//

벤치 위에 떨어지는 파열음과 마찰음//

포개진 속지 안에 갈색 잎 묻어온다//

발밑에 소리를 연다//

가만히 들려온다

-뉴스, 끄다전문

 

일상 생활을 가장 적나라하게 볼 수 있은 것은 뉴스이다. 그러나 엇박자 말의 피로를 왈칵왈칵 쏟는다며 부정적인 내용들 뿐이다. 그래서 뉴스를 끄고 순수한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포개진 속지 안에 갈색 잎 묻어온다// 발밑에 소리를 연다// 가만히 들려온다갈색 잎은 자연이요 순수의 세계이다. ‘발밑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면 인간의 혼잡한 세상들이 정화되기를 염원하고 있다. 시인으로서 이 혼탁한 세상에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결국 소리를 무조건 높이면 시인의 길이 아니라 옆길로 빠지게 된다. 자신의 순수성을 회복하는 것이 느리지만 정도인 것이다. 순수한 마음들이 모일 때 우리 사회는 밝아질 것이다. 사바 세계 이대로가 불국토가 될 것이다. 이런 순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시인은 우리 사회의 약한 자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하고 있다.

 

 

얼기설기 엉켜 있는 묘지 마을 지나서

바람이 눈을 뜨고 우리 곁에 서 있었다

햇볕과 하늘과 비 사이 그리고 대지 사이

 

자투리땅 밟고 있는 홀씨 날아오른다

죽은 자의 무덤보다 더 작은 산 자의 집

가난한 눈망울에 비친 허리 꺾인 거미줄

 

더 잃을 것 없어도 새들처럼 가볍다

민들레꽃 어깨에 코흘리개 아이들

귀 맑은 별빛이 앉는다

두 손 모아 잡는다

-BMBA 마을전문

 

 

BMBA 마을은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빈민 마을이라고 한다. 첫째 수에서 묘지 마을이라며 음침하게 묘사하고 있다. 둘째 수에서는 죽은 자의 무덤보다 더 작은 산 자의 집이라며 비참한 빈민가의 모습을 나타내었다. 그렇지만 셋째 수에서는 민들레꽃 어깨에 코흘리개 아이들// 귀 맑은 별빛이 앉는다// 두 손 모아 잡는다고 하며 희망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민들레꽃’, ‘별빛이 희망이라면, 그것을 두 손 모아 잡는다며 그들의 희망을 강하게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처지를 돌아볼 땐 현실의 모습을 직시한 대로 묘사한 것이라면 약한 자에 대한 관심에서는 묘사와 진술로 좀더 구체적으로 따뜻한 마음을 강하게 보이고 있다. 다른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볼 때 시인은 내강외유(內剛外柔)의 성품을 지닌 것이 아닐까 한다.

이와 같은 시선의 작품으로는줄타기, 려미 김, 브레이크 타임, 물랭루주,이력서, 따수화, 섬과 비올라-비올리스트 용재 오닐의 <섬짐 아기>를 감상한 후, 세르파, 덕혜옹주,어떤 자화상-맥도날드 할머니등이 있다.

 

 

5. 회상

-어머니와 아버지

 

우리의 삶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시인에 따라서 자연이 강하게 나타나기도 하고, 인간의 삶들이 강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강지원 시인의 시집에는 약한 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보낸 것을 앞에서 살펴보았다. 가까운 사람으로는 어머니와 아버지 두 사람이다. 첫 시조집인 만큼 어머니와 아버지께 시집을 바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살아오면서 현실이든 지난 추억이든 현재의 나를 존재케 한 직접적인 분들이기 때문에 영원히 의지하고 싶고 영원히 찬송하고 싶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매운 마늘 다질 때는 눈물도 맺혔겠지

애호박 늙은 호박 칼집에 꽃이 필 때

온몸에 새긴 실금만 한 줄 두 줄 늘어나

 

비릿한 달빛 무늬 돋아난 듯 배어 있고

소금기 절여진 저 얼룩의 무게들

 

묵묵히 다 받아주고

견뎌오신

어머니

-도마전문

 

 

도마는 도마이자 어머니의 중의적 표현이다. 첫째 수 초장에서 매운 마늘 다질 때는 눈물도 맺혔겠지라며 지난 날 어머니의 매운 삶을 추측하고 있다. 그 땐 알 수 없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저 도마가 매운 마늘 다질 때 눈물이 맺혔듯이 당신의 평생 자식을 향한 삶이 저 도마와 다를 것이 없음을 노래한 것이다. 바로 고려 가요 상저가를 연상케 한다. 둘째 수에서는 소금기 절여진 저 얼룩의 무게들이라고 하여 어머니의 지난날의 고생이 무게를 돌아보고 있다. 결국 도마에 새겨진 첫째수의 실금과 둘째 수의 얼룩은 어머니의 삶인 것이다. 그 어떤 무게로도 가늠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종장에서 묵묵히 다 받아주고/ 견뎌오신/ 어머니라며 낡아가는 도마와 같은 존재, 바다와 같이 묵묵히 모든 것을 다 받아주신 분이라는 것을 노래하였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묵묵히 다 받아주고/ 견뎌오신/ 어머니는 시인에게 하나의 진언일 것이며 독자에게 역시 진언으로 다가오는 말이다.

 

 

해조음 비탈길에 서서히 녹고 있다

새들은 포복하며 아침을 밀어내고

기억은 사선을 건너 파월선을 타고 있다

 

관통된 철모 위로 풀씨가 날아간다

마당에 엉겨 붙은 세월이 더듬거린

사진 속 아버지의 미소 초록 물이 번지고

 

바람이 전언하는 숲길을 따라가다

베트남 고개 너머 총성이 흩날리며

봄날은 푸른 수의를 천천히 입고 있다

-푸른 수의전문

 

 

시의 화자는 약 50년 전에 베트남 전에서 전사한 아버지의 회상하고 있다. 가난 하던 시절, 목숨을 걸고 가난을 극복하고자 한 시절이 있었다. 살아있는 참전 용사들도 어언 70세 전후의 노인이 되어 고엽제 등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기도 하다. 화자는 첫째 수에서 파월선을 타고 가는 상상을 한다. 둘째 수에서는 관통된 철모에 풀씨가 날아간다. 그런데 사진 속의 아버지는 웃고 있다. 그런데 셋째 수에서는 결국 고개 너머 총성이 들리고 전사하였음을 종장에서 봄날은 푸른 수의를 천천히 입고 있다.”라며 상징적으로, 중의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처럼 화자의 아버지의 전사라는 극한 슬픈 상황을 감정을 절제하고 시각적으로 처리함으로서 시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화자의 슬픔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의 삶 속에 과거가 녹아 있고, 미래의 삶 속에도 과거가 포함된 현재가 녹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 속 아버지는 웃고 계시는데도 제복과 같은 푸른 빛깔이건만 푸른 수의를 입는 슬픔의 봄이라는 것이다. 봄이 되어도 봄이 아닌 과거의 봄날을 회상하고 있는 것이다.

 

 

6. 나오며

 

강지원의 첫 시조집 잡화 살롱은 시인의 개성이 매우 강하게 나타난 것으로 시인의 염원처럼 매우 새롭게 흐르게 되었다.

그것은 표현과 내용, 시어 등에서 참신하며 현대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특히 시간을 표현하는 것에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시각적으로 자유자재로 다양하게 표현하였다. 또한 생활주변에서 사용되는 외래어의 사용을 통하여 삶의 본질을 탐구하였다. 또 현실의 문명을 직시하여 감정을 억제하고 묘사하면서도 자기 정화를 통하여 더 나은 사회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자신에게는 엄하게 대하여 감정을 억제하고 있으며 약한 이웃에게는 따뜻한 시선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단절되고 고독한 현대문명 사회에서 소통이 이루어지고 따뜻함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꿈꾸고 있었다. 그것은 낙엽처럼 가벼워진 가로수가 되는 사회일 때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폭식증을 앓은 도시에/ 처방전을 내린다”(낙엽)고 하였다. 사실 불평, 불만, 갈등은 모두 지나친 소유욕에서 발생함을 우리들을 보면서도 자각하지 못하는 면이 있다. 시인은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이 자각한 것을 따뜻한 마음으로 조요한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다. 그래서 자신은 하늘은 호수가 되고 그 안에 나를 담근다”(빗줄기)며 순수의 마음을 회복하고 있다. 그리하면서도 구도자처럼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본다. “적막한 햇살들이 합장을 올린다/ 후드득 빗장 풀어 소리 그물 날리면/ 법문을 해를 부르고 달마의 강 건넌다”(풍경)고 하였다.

특별하게 참신한 모습으로 나타난 이번 시집을 발간을 다시 축하드리면서 현실의 강에 발목을 더 깊이 담그고 건너서 삶의 향기가 짙은 작품이 언젠가 다시 보여줄 날을 기대합니다. 시조단의 한 송이 꽃인 잡화 살롱을 오래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강지원론-현대의_고독감과_그_너머를_향한_손짓[1].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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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원론-현대의 고독감과 그 너머를 향한 손짓.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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