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35집『가득한_기억의곳간』(2015연간집김우연)-수정.hwp
맥35집『가득한 기억의 곳간』
김우연
1. 들어가며
1979년에 창립한 맥시조문학회 연간집 맥35집『가득한 기억의 공간』이 2015년 10월에 발간되었다. 대부분의 회원들은 조주환 명예회장님의 지도로 등단하였다. 지역적으로는 경주 안강에서 씨앗을 뿌렸으나 포항을 중심으로 활동을 해 오고 있다. 회의 명칭은 안강의 옛 이름을 따서 비화시조문학회라고 하였으나 2000년 연간집 20호 발간에 맞추어 회의 발전을 위해 맥시조문학회로 개칭하였다.
이번 호에는 16명의 회원이 71편을 발표하였다. 현대시조는 독자들을 염두에 둔다면 생활주변에서 독자들의 관심과 관련이 될 때 시조에 대한 관심을 더 가질 것이라 믿어진다. 제제를 살펴보면 크게 1) 인간 관계 2) 현대 사회 의식 3) 역사 의식 4) 죽음 5) 삶의 성찰 6) 동심 여섯 가지로 나타났다.
2. 인간 관계
특별히 생각하려 애쓴 적이 없었다
해마 속 돌기 깊이 자리한 어린 시절
가득한 기억의 곳간 가득 채운 너였기에
한 번도 보고 싶어 안달 난 적 없었다
뇌세포에 꼬깃꼬깃 사진으로 남아서
두 눈을 질끈 감아도 떠오르는 너였기에
한 번도 속마음이 궁금한 적 없었다
믿을 수가 있을까 의심하지 않아서
그 자리 그대로 서서 함께 하는 너였기에
-서석찬,「고향 친구란」전문
이 작품은 이번 연간집의 표제가 된 작품이다. 친구의 소중함에 대해서는 동서양에서 모두 강조해 왔다. 특히 도시 공업화로 농촌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은 퇴직하여 피곤할 때 찾는 곳이 고향이다. 고향이란 어머니나 할머니의 품과 같아서 인간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자연이란 거짓이 없이 순수해서 변함없는 모습으로 반겨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인간들 중에서도 고향의 자연과 같은 존재가 있다면 친구일 것이다.
그래서 서석찬 시인은 고향 친구에 대해서 “특별히 생각하려 애쓴 적이 없었다.”, “한 번도 보고 싶어 안달 난 적 없었다.”, “ 한 번도 속마음이 궁금한 적 없었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가득한 기억의 곳간 가득 채운 너였기에”, “두 눈을 질끈 감아도 떠오르는 너였기에”, “그 자리 그대로 서서 함께 하는 너였기에”라고 하였다. 모두가 공감하는 말일 것이다. 그것은 첫째수와 둘째 수의 중장에서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셋째 수 중장에서는 진술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첫째 수와 둘째 수는 주로 묘사에 의존하며 셋째 수에서는 주로 진술에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묘사와 진술이 조화를 이룬다. 좋은 시조는 묘사와 진술을 적절하게 해야 한다고 한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고향 친구를 떠올린다. 그리면서 시조의 고향 친구도 세월을 오래도록 함께 하였구나 되돌아 볼 수 있다.
3. 현대 사회 문제
현대 사회를 제제로 한 것에는 대개 현실의 문제점이나 모순을 다루고 있다.
산을 올려다보니 어쩌면 회사 같다
아득한 사장님과 부장 과장이 저리 첩첩
기슭엔 숲에 들려고 서성이는 나무들 첩첩
아무리 잠시라 해도 이승 일이 임시라 해도
신라적 능 지킴이 경주 소나무 처럼
일 따라 꾸불꾸불하게 휘어져 가는 세월
꺾이고 기울어져 옹이만 더하다가
자꾸만 탑을 쌓고 나이테를 더하고 더해
살갗이 툭툭 갈라져 등걸로 남는 생각
내일은 내일은 하며 산그늘을 지키다가
때로는 등걸이며 가는 줄기 잡아 주다가
숲에도 들지 못한 채 기슭을 맴돌 바위들
-손수성,「임시직」전문
내게도 아들 있죠, 눈에 넣어도 안 아프던
그 녀석 훌쩍 자라 청년이 되었지만
이태백 꼬리표를 달아
어미 가슴 후벼 파죠
어둑한 고시원에 곰처럼 짱박혀서
출구가 보이지 않는 빙벽을 두드리며
완생의 그날을 위해
날을 갈고 세우건만
퇴화된 독수리마냥 박차고 날지 못해
낚아챌 먹잇감을 번번이 놓치고서
무렴히 주먹 움켜쥔 채
공회전에 이력난
-이경옥,「미생」전문
바싹 마른 잎사귀다
가물어 터진 땅거죽이다
만지면 바스러지고
밟으면 가루가 되는
염치는
증발해 버리고
분노만
풀풀 날린다
- 예병태,「현대인」전문
손수성 시인은 은유에 능한 시인이다. 1996년 제14회 한국시조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임시직」오늘날 우리 사회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청년들의 일자리 부족으로 정규직 일자리는 구하기 힘들고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의 안타까움을 고발하고 있다. 첫째 수에서 ‘산’은 회사와 같다는 발상부터가 참신하다. 그래서 산은 ‘첩첩’하니 산을 넘어가기가 무척 힘들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래서 종장에서는 “기슭엔 숲에 들려고 서성이는 나무들 첩첩”이라며, 찬란한 스펙으로도 입사하기가 어려워 수많은 청년들이 수없이 많음을 선명한 이미지로 은유하였다. 둘째 수에서는 ‘꾸불꾸불’, 셋째 수에서는 ‘꺾이고 기울어져 옹이’, ‘살갗이 툭툭 갈라져’라며 이미지를 심화시키고 있다. 넷째 수에서는 결국 입사하지 못하고 임시직으로 맴도는 것을 종장에서 “숲에도 들지 못한 채 기슭을 맴돌 바위들”이라며 안타까운 눈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있다. 연시조는 하나의 주제를 향하여 심화시켜 나가야 하는데 연시조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수작이다.
이경옥의「미생」의 화자는 취업을 못하고, 고시원에서 준비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안쓰러우면서도 답답한 마음을 그리고 있다. 취업관련 유행어로 여전히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말이 ‘이태백’이다. ‘이십대 태반이 백수다’의 약어이다. 슬픈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미생’이란 바둑에서 죽은 것은 아니지만 아직 산 것이 아닌 상태의 돌들이다. “완생의 그날을 위해/ 날을 갈고 세우건만”에서 보듯이 취업을 하는 것을 ‘완생’이라고 하였다. 만화와 드라마까지 관심을 보인 취업 관련 「미생」은 청년을 가진 대부분의 부모들의 현실 문제인 것이다. 이런 현실 문제를 다룰 때 시에 관심을 갖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며 또한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본다. 셋째 수 종장에서 “무렴히 주먹을 움켜쥔 채/ 공회전에 이력난”이라며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 첫째와 둘째 수에서는 주로 진술로 마지막 수에서는 주로 묘사로 끝나서 균형을 이루며 시적 형상화에 성공을 거두고 있다.
예병태의「현대인」은 염치는 없고 분노만 일삼는 현대인을 비판한 작품이다. 초장에서는 현대인을 “바싹 마른 잎사귀”, “가물어 터진 땅거죽”이라고 두 가지 은유를 병치하였다. 이지엽 교수는 “병치 은유는 이러한 자아와 세계와의 대결의 원리를 전제로 한다. 비동일성의 원리를 따르는 셈이다.”, “병치는 흔히 ‘낯설게 하기’ 기법과 혼용되면서 현대시의 새로운 기법으로 주목받아오고 있다.”고 하였다. 현대인에 대한 비판의 내용을 같은 것이라 하더라도 표현에서 참신성이 있을 때 독자들을 기뻐하고 감동을 받게 된다. 앞으로도 꾸준히 참신한 표현을 갈고 닦을 때 시조가 더욱 빛이 나리라 본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평등을 외치는 자는 나보다 물질을 더 가진 자의 것을 빼앗겠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 사회의 남남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세력들을 보면 한결같이 평등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다만 지나친 양극화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가고자 하는 것은 정의로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근로자들도 가진 근로자만이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여튼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지나치게 염치는 사라지고 분노만 일삼는 사람들이 있다. 좌파 경제를 따랐던 나라들은 모두가 경제 파국을 맞이했으며 현재도 세계를 돌아보면 그런 것이 현실이다. 금강경에서 아상(我相)과 인상(人相)에 젖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걱대는 모래바람
빈집위로 흩어지고
기다리던 그 봄은 오지 않을 것 같더니만
그래도 훈풍은 불고 뻐꾸기는 울어댄다.
황량한 거리 위로 낮달이 걸려 있고
녹슬은 철망 사이로 장미는 붉게 피어
멋쩍은 붉은 바람이 망중한을 즐긴다.
-원정호,「재개발지구」전문
재개발지구에는 보금자리를 잃고 쫓겨나야 하는 약한 존재들이 등장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조세희의 단편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후에 끊임없이 제기되어 오는 문제이다. 첫째 수 초장에서 “서걱대는 모래바람/ 빈집위로 흩어지고”라며 암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종장에서 “그래도 훈풍은 불고 뻐꾸기는 울어댄다.”라며 희망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둘째 수에서도 활량한 거리에 낮달이 걸려 있어 핏기 없는 사람의 모습을 연상시키지만 녹슨 철망 사이로 장미꽃이 핀 것에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 “멋쩍은 붉은 바람이 망중한을 즐긴다.”라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인다. 이 작품은 인간사는 비극적이지만 자연은 원래의 모습대로 밝은 모습을 보이며 희망적으로 보이고 있다. 인간과 자연의 대조이다. 그러면서 전체적으로 희망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아마 원정호 시인의 성품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희망을 잃지 말라는 생각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한다.
조영두의 「포항역」은 분류 상 여기에 넣었지만, 역사의 이전으로 밝고 희망찬 미래를 밝고 노래하고 있다.
동해로 내달리는
달전벌 철길위에
한척 배처럼 새터를 열었다
환동해 가르는 지평
날개짓을 하면서
황금빛 전조등이 속도를 줄이면
곧게 선 철길위로 고운님 달려온다
늦은 밤 어둠을 뚫는 그리움을 안고서
보내고 맞이하는 일상의 일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가 가는 일들
활기찰
포항의 얼굴
새날이 보인다.
-조영두,「포항역」전문
첫째 수에서 “한 척 배처럼 새터를 열었다”며 결국은 셋째 수 종장에서 “활기찬/ 포항의 얼굴/ 새날이 보인다.”며 포항의 희망찬 미래를 노래하고 있다. 대중의 교통 수단인 역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것은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넉넉한 마음이 있기에 이런 소재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 본다.
4. 역사 의식
왜인들이 코와 귀 베어 비총 이총 만들더니
광복 70년에도 아베의 눈빛은 광기를 띠고
침략의 유전자들은 아직도 꿈틀댄다.
-김우연,「시총(詩塚)․1」부분
이 새벽 까치 소리 어느 먼 동천(冬天)일까
어제 오늘 손을 꼽다 지처 누운 칠십 평생
통일새 홰치는 소리 어느 뫼를 넘고 있나.
-황무굉,「전령사(傳令使)」부분
김우연의 「시총(詩塚)․1」은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하절에 있는 시총(詩塚)을 소재로 한 것이다. 의병장 정세아를 구하기 위해 맏아들이 나섰다가 종 억수와 함께 죽었는데 시신을 찾지 못해 지인들의 시를 모아서 무덤을 만든 것이다. 기룡산 기슭 오천정씨 문중 공동묘지에 비와 함께 무덤이 있다. 봉화군 청옥산 현불사에도 임진왜란에 전사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한 탑이 있음을 본 적도 있다. 토인비의 말처럼 “전쟁이란 어떠한 명분으로도 합리화 될 수 없다.”고 본다.
황무굉 시인은 효성이 지극한 분으로 알려져 있다. 산삼을 캐어서 어머님께 드렸드니 아들 먹으라며 들지 않아서 결국 다시 태백산 깊은 골에서 산삼 여러 뿌리를 캐었다고 들은 지가 어언 20년이 된 것 같다. 그런데 형제 내외들은 나누어 먹고 저자녀들은 후일 산삼을 캘 수 있으니 주지 않았다고 한다. 부모님 공경과 형제간의 우애는 단군 이래로 우리 선조들이 강조해온 인간다움의 첫째 강조 덕목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부모를 팽개치고 자식들에게는 무한 리필하는 모습들이 만연하다. 이럴 때 효성과 우애가 지극한 황무굉 시인이 통일을 염원하는 것에는 진지성이 느껴져 공감의 폭을 넓힌다. 통일을 ‘통일새’로 은유하여 “통일새 홰치는 소리 어느 뫼를 넘고 있나.”라며 역동적인 이미지를 통하여 형상화하여 참신하게 표현하였다. 「경주 박물관 성덕대황 신종」에서도 전 세 수 중 셋째 수 종장에서 “에밀레/ 못다 푼 한을 통일만세 올리소서”라며 통일을 강하게 염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 죽음
칼끝 같은 소름을 물고 설산 위를 떠가는 새
그 능선에 걸린 구름도 말없이 내려볼 뿐
적막한 마침표 하나가
지상에 와 찍혔다.
한 줄 쪽지도 없는 영혼의 땅 풍경 속에
절대 평온의 꽃과 종소리를 여는 손
바람은 이승을 건너는
발자국을 지운다.
-조주환,「신의 영토로-천장 또는 조장」부분
티베트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영혼은 불사하며 현세의 업에 따라서 윤회한다고 한다. 그래서 시체는 독수리에게 보시하는 것이 천장(天葬) 또는 조장(鳥葬)이라고 한다. “칼끝 같은 소름을 물고 설산 위를 떠가는 새”라고 표현한 것은 아무나 쉽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본다. 시신을 소중히 모시는 우리의 전통적인 인식으로는 독수리가 시신을 뜯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칼끝 같은 소름”에 독자들도 소름 돋게 하는 것으로 생생한 묘사를 하여 시의 구성을 탄력 있도록 하고 있다. “바람은 이승을 건너는/ 발자국을 지운다.”며 죽음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티베트인들의 전통적인 죽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화자 역시 죽음 앞에서 우리의 생이란 무엇인가 그 실존을 냉철하게 성찰하고 있다. 죽음의 문제를 직시할 수 있을 때 삶의 의미가 더욱 진지하고 깊게 다가오리라 본다.
가진 것 이룬 것
그 무엇 하나 없어도
신앙보다 더 굳은
정직한 삶이 곧다
돌 속에
남기고 싶은
청죽 같은 한 구절
-조순호,「묘비명」전문
아무리 백세 시대라고 하고, 이애란의 노래 ‘백세인생’ 유행하고 있지만 현대에도 고희를 넘으면 죽음이 저 머나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림자를 약간씩 의식하는 나이인 것 같다. 김진혁 시인의 이번 호 작품 「고희를 넘으며」에서도 “북망산 구름 사이로 손짓하는 아버지.”라고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순호 시인은 독실한 가톨릭 신앙을 가지신 분이다. 신앙 생활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평소에 선생님의 온화하고, 겸손하며, 화합하는 언행과 실천으로 주위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분이다. 그런데 조순회 시인께서 갑자기 「묘비병」이란 시로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그런데 중장에서 “신앙보다 더 굳은/정직한 삶이 곧다”라는 말을 들었을 땐 가슴이 진정이 된다. “정적한 삶” 독실한 신앙보다 더 굳다고 한 것이다. 그것이 ‘곧은’ 길이기도 하며 ‘청죽’과 같은 것이다고 한 것이다. 교육자로서, 신앙자로서, 시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부모로서 오롯이 최선을 다하며 살아오신 모습을 시조의 한 편에 오롯이 나타내었다.
6. 삶의 성찰
시를 쓴다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삶에 대한 성찰은 시인들의 삶인 것이다.
부러워 쳐다보다 바퀴에 눈이가면
닳아서 사고가 난 내 차꺼랑 하도 닮아
사는 게 같은가보다 가다가는 또 보고.
-김제흥,「에쿠스 바퀴」전문
외로움 뼈마디 쑤셔도
끝내 울지 않은
풍파도 거칠수록
고독을 정으로 낳은
그래서 그이 곁에는
물새들도 모였다
-박광훈,「내 머릿속 독도」전문
갈수록 멀어지고
디딜수록 버거워지는
혼신의 걸음걸음
고뇌의 촉수 밝혀
기어이 다다르고만
각고의 임계점
곧추 선 예지의 날(刃)
땀방울로 벼리고
울음 조차 삼키며
피나는 도움닫기
비로소 활개치는 꿈
눈물겨운 꽃이어라
-강성태,「창작․1」전문
서리올까 서둘러 따는 끝물 고추
아들부자 여섯째로 나 또한 끝물 고추
뒤쳐진 자들의 반란, 굵어가는 푸른 욕망
박스째로 나눠주고 그래도 남은 것들
장아찌로 튀김으로 짭쪼롬한 밑반찬으로
쓰임도 이만한 쓰임, 고추잔치 벌어진다
흔한게 끝물이란 쏠림 생각 지워야겠다
여름 가뭄 소나기로 목축임도 잠시였지
벌레와 바이러스가 침입해 앓던 날들
-김일용,「끝물」전문
살아보니 알겠네요
길눈 잃은 세월을
살아보니 알겠네요 인간사 저 깊이를
이제와
느끼고 나니
마음은 쇠북소리
-이문균,「살아보니 알겠네요」전문
김제흥의 「에쿠스 바퀴」는 닳아서 사고가 난 내 차처럼 에쿠스의 바퀴가 닳아있는 모습을 보고 “사는 게 같은가보다”라며 깨닫고 있는 내용이다. 특히 물질적으로 나보다 낫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삶을 더욱 알차게 살 것을 다짐하였으리라.
박광훈의 「내 머릿속 독도」에서는 독도를 초장에서 “외로움 뼈마디 쑤셔도/ 끝내 울지 않은”이라고 하였다. 박광훈 시인은 거제도에서 태어나서 대마도를 바라보면서 초등학교들 다녔다. 그 섬이 대마도인 줄은 나중에 알았다고 한다. 그리고 수산고등학교 교사로서 울릉도를 누구보다 여러 번 다녀왔다. 울릉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안다. 섬에서 지낸 외로움을 알기에 독도는 자신의 모습과 닮았음을 알았다. 그래서 중장에서 “풍파도 거칠수록/ 고독을 정으로 낳은”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고독한 섬에서 그는 시조를 썼다. 고독의 진수를 경험한 것이다. 독도는 절대고독을 상징하는 것이요 자신을 환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종장에서 “그래서 그이 곁에는/ 물새들도 모였다.” 고독하기 때문에 독도에는 물새들이 모인다고 하였다. 그래서 외로움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존재를 만난 것이다. 박광훈 시인에게 있어서 ‘새’는 시조가 될 것이다. 물론 시인의 취미는 다양해서 야생화 특히 난초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으며 지금은 청송 깊은 골짜기에서 사과 농사에 매진하고 있다. 섬에서 태어나 섬에서 오래 살고 또 섬처럼 깊은 골짜기에서 생활을 하고 있으니 그는 고독을 누구보다 체험한 것이다. 그 체험 끝에 새로운 비상의 새들을 만난 것이요. 그의 정신 세계는 세상을 달관하는 깨달음을 얻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마디로 그의 정신 세계는 순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강성태 시인은 회사에서 인재일 뿐만 아니라 서예가로 평생의 길을 닦아오고 있다. 그러나 창작의 길은 시조뿐만 아니라 서예에서도 쉬운 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첫째 수 초장에서 “갈수록 멀어지고/ 디딜수록 버거워지는”이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불퇴전의 용기로써 “기어이 다다르고만/ 각고의 임계점”이라고 하여 최선을 다해서 정진하고 있음을 나타내었다. 그 결과 둘째 수 종장에서 “비로소 활개를 치는 꿈/ 눈물겨운 꽃이어라”라고 움음조차 삼키며 피나는 노력 끝에 창작의 꽃을 하나하나 피워가는 것을 노래하였다.
김일용 시인은 「끝물」은 첫째 수에서 서리가 내리기 전에 서둘러 따내는 ‘끝물 고추’를 막내로 태어난 자신에 비유한 것이 재미있다. 그런데 둘째 수에서는 이웃에게 ‘박스째로’ 나눠주는 것으로 귀하게 쓰임에도 귀하게 대접하지 않고 하찮게 대하여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셋째 수에서는 ‘끝물’은 다른 것들보다 가치 없게 저절로 맺힌 가치 없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종장에서 “벌레와 바이러스가 침입해 앓던 날들”을 견뎌내고 ‘끝물’은 ‘끝물’ 대로 싱싱한 생명체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하찮은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며 모두가 귀한 것이라는 것을 강조한 작품이다.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는 것을 은연중에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직접 농사도 지으면서 삶의 현장에서 취한 것이기에 생생한 느낌을 전해주고 있다.
이문균 시인은 시조보다도 사진 쪽에서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시조에서도 신춘문예를 통하여 등단하여 일찍부터 기대가 컸다. 시에서는 ‘그리움’을 주제로 맑은 목소리로 꾸준히 노래하여 왔다. 이번 호에서 「살아보니 알겠어요」라는 제목은 그 동안의 삶에 대한 후회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동안의 시행착오가 이제는 환히 눈에 보인다는 뜻으로 읽히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이제는 인간사의 이해관계가 있을 때 속은 적도 많지만 이제는 알겠다는 뜻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것은 종장에서 “이제와/느끼고 나니/ 마음은 쇠북소리”라며 새로운 각오를 하게 됨을 느낄 수 있다. 인간사에서 속거나 배신감을 느꼈을 때 순수한 사람일수록 상처가 큰 법이다. 이문균은 ‘그리움’의 시인이라 불린다. 그만큼 순수하게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런 자신의 삶도 이제는 객관적으로 돌아보면서 대인 관계를 할 것으로 읽힌다.
7. 동심의 세계
나무는 날고 싶다
가지마다 날개이듯
수많은 잎들을 펼쳐
날개 짓 하다보면
마침내
하늘을 날 것이다
나무는 날 것이다
-김진혁,「나무의 꿈」전문
김진혁 시인은 광주에서 안강에 첫 직장을 구한 인연으로 조주환 선생과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시조를 쓰고 있다. 나이가 비슷하지만 스승님으로 깍뜻하게 대하는 모습이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한 번 동인은 영원한 동인이다.”라고 할 때 김진혁 시인을 떠올린다. 생활 근거지가 여러 번 바뀌어도 변함없는 애정을 맥시조에 보이고 있다. 시인은 시 이전에 사람이 먼저 되어야 된다고 한다. 우리의 인생사에는 조그만 것에 마음이 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배신감이 크게 느껴진다. 그러나 살다보면 성현들의 말씀에 공감하게 된다. 김진혁 시인은 자녀들의 출가를 통하여 다음 세대의 새 생명을 통해서 새로운 우주를 보게 된 시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그래서 시에서도 동심이 더욱 살아나고 동시조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는 시인이다. 마치 백수 선생님이 연세가 들어 손자 손녀들을 보면서 많은 동시조를 남긴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나무의 꿈」은 동심을 향한 첫 걸음을 보인 점에서 의의기 크다. “나무는 날고 싶다”는 생각이 참신하다. 나무가 난다는 것을 쉽게 할 수 있겠는가? “수많은 잎들을 펼쳐/ 날개 짓 하다보면”이라고 하였다. 나무가 날기 위해서 수많은 잎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마침내/ 하늘을 날 것이다/ 나무는 날 것이다”라며 낯설게 표현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기쁨을 준다. 앞으로 동시조에도 더욱 왕성한 창작을 기대한다.
8. 나오며
맥시조문학회 연간집 맥35집『가득한 기억의 곳간』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모두가 나름대로 시적 형상화가 뛰어나고 원숙한 작품을 보여주었다.
1979년에 창립된 맥시조동인회는 힘든 길을 헤치면서 묵묵히 걸어 왔다. 그 저력은 시조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항상 깨어있는 시 정신으로 사물과 사회를 날카롭고도 새롭게 인식하여 아름답게 시적형상화를 하고자 노력해 왔다. 앞으로도 시류에 흔들림이 없이 서정갈래의 길을 힘차게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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