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작 소개

1. 2011겨울 시조시학 신인작품상(조한일,최화수, 최미향)

가산바위 2017. 5. 3. 23:35

 

 

 

최화수 신인작품상(시조시학2011겨울).hwp

 

 

2011겨울 시조시학 신인작품상

 

<심사기>

 

한국 시조단의 든든한 교각이 되주길

 

조한일의 「나비, 베토벤을 만나다」外의 작품에는 시조에서는 흔히 발견할 수 없는 시적 상상력이 있다. 우선「나비, 베토벤을 만나다」에서는 나비와 베토벤을 연결하는 것부터가 심상치 않다. 귀먹은 바다에 혼절하며 날아드는 나비는 절대불가항력적인 세계에 당당하게 맞서는 황홀한 몸짓으로 이해된다. 죽음까지도 초월하는 그 몸짓에서는 고독한 예술혼이 느껴지는 것 같아 자못 엄숙해지기까지 한다. “안단테로 나래 치며 들어선 가을 속”이라든지 “비문증과 같이 / 묵은 사랑 어른대는” 비유 등은 쉽게 얻어지는 표현들이 아니다. 이 시인은 사물을 대하는 솜씨가 우리 시조를 보다 순정한 차원까지 견인해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최화수의「유등지 오월」外의 작품들은 특히 순간성과 압축성이 뛰어나다.「유등지 오월」작품에는 낚싯대와 물고기와 연못과 연꽃의 팽팽한 관계가 시적 긴장감을 절정으로 이끌고 있다.「화병의 목련」에도 “목련”이라는 꽃을 “단단히 여민 옷섶” “새하얀 버선코 뽑듯”에서 보듯 순간적으로 잡아내는 시적묘사가 바로 눈앞에서 연출되고 있을 정도로 착각할 만큼 생생하다.

최미향의「어머니의 바다」에는 어머니의 고단한 삶을 진솔하게 형상화시키는 진지함이 있다. “내 목을 치는 것 같아 무섭다”는 읊조림에서는 어머니의 아픔에 동행하는 시적자아의 고백이 적지 않은 울림을 준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이 절망이나 낙담이 아니라 역동적 에너지로 변모하고 있음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마알간 아이들 눈동자에 스프링처럼 튀는 다리”의 표현이 이를 단적으로 잘 보여준다. 여기 이 시인들은 모두다 한국 시조단의 든든한 교각이 되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심사위원 : 이용상·이정환·나순옥·이지엽(글)

 

 

나비, 베토벤을 만나다 외 3편

 

조한일

 

결 고운 왕나비 혼절하며 춤춘다

노란빛, 초록빛, 붉은빛이 아니어도

귀먹은

바다에 돛 올려

천재를 만난다

 

안단테로 나래 치며 들어선 가을 속

달빛의 소나타 눈으로는 들었을

그 사람,

비문증과 같이

묵은 사랑 어른대는

 

한밤중 손끝으로 감아 돌던 음률에

내 귀를 먹게 하고 내 눈을 멀게 하는

남루한

영혼에 들이친

나비 저 날갯짓

 

 

- 이외 3편 제목: 「오래된 국자」,「운항 중단」, 「모래의 지문」

 

<당선소감>

 

한라산의 어승생악을 올랐다. 삼 십 여분의 가파른 등산로는 오를 때부터 범상치 않았다. 오름 정상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의 능선과 가을빛 그리고 사방이 확 트여 다가오는 시가지 전경, 멀리 보이는 바다는 그 어느 때보다도 새롭게 펼쳐진 풍광이었다. 또 어리목 입구에 떡 버티고 있는 이 어승생악은 장성한 아들이 한라산의 버팀목이 되어 언제나 든든한 느낌을 받곤 한다.

정형률의 시조를 배우고 쓰는 일이 나에게도 이처럼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매번 일상에 찌든 내게 위로도 해주고 격려도 해주며 새로운 힘이 되어 주었다.

이런 과정에 뜻밖의 당선 소식을 접했다. 아직은 서툴고 위태위태한 걸음걸이지만 3장 6구 45자의 틀 안에서 자유를 만끽하면서도 치열하게 써 나갈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그동안 미지하고 서툰 글에 힘을 보태주신 제주시조문학회 선생님들, 회원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제 작품을 선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고마움을 전하며, 앞으로 더욱 정진해 나갈 것을 약속드린다.

 

조한일

제주 하귀 출생. 어학원 영어강사.

 

 

 

 

 

 

 

유등지 오월 외 3편

 

최화수

 

 

1.

속잎 잣던 실버들

졸고 있는 오월 한나절

 

마믈마믈 수면 위로

입질하는 저 밀어들

 

일순간 속살 가르며

흰 포물선 솟는다.

 

 

2.

휘우듬 낚싯대에

번뜩이는 은비늘

 

미각이 곤두선 찰나

삼켜버린 미끼 탓에

 

숨 가쁜 생명줄 잡기

유등지도 숨 고른다.

 

 

3.

바늘을 뽑아내고

돌려보내는 그 순간

 

첨버덩! 환한 물속

물기등 하나 세운

 

그 자리 다올찬 연꽃

연등처럼 피겠다.

 

 

 

 

화병의 목련

 

때 늦은 수로부인

한 다발 받은 목련

 

아직 꽃망울은

꽃눈 덮고 졸고 있다

 

봄바람 깨우기 전에

화병에게 안긴 목련.

 

수줍은 아씨같이

고개 살풋 조아린 채

 

단단히 여민 옷섶

소리 없이 풀고 있다

 

새하얀 버선코 뽑듯

꽃잎을 뽑으려고.

 

나비같이 숨죽여

하르르 떠는 몸짓

 

손으로 받쳐 들긴

차마 조심스러워

 

꽃 아래 모로 누워서

여는 꽃잎 지켜본다.

 

 

 

씨감자

 

눈 떴다고 다 보이나

씨감자 눈 보면 안다

 

눈감고도 모자라

검은 재 덮어쓰고

 

밤보다

캄캄한 땅 속

꿈 새김질 들었다.

 

눈 감고도 꽃과 잎

뿌리까지 다 빚어서

 

어둔 흙 뚫고 솟아

청이 크듯 크는 감자

 

그 봐라

눈 뜨고도 못할 일

씨감자가 해냈다.

 

 

 

 

들녘이 운다

 

 

글썽이는 초승달 눈물 는개로 피는 무논

 

개구리는 시인 되어 눈썹달 따라 운다

 

어느 새 개굴 개개굴 온 들녘이 함께 운다

 

아닌 듯 고개 돌려 두런대는 붉은 자운영

 

언제일까, 몸 비우고 거름으로 묻힐 그날

 

끝내는 흐흐 흐흐흑 자운영도 함께 운다

 

 

 

<당선소감>

 

숨겨둔 소중한 씨앗

흔히 인생 제3막이라고 표현하는 퇴직 후의 생활을 멋지게 연출하고 싶었습니다. 주변에선 나더러 그림을 그리라고 했습니다. 40년이 넘은 교직생활을 아이들과 어울려 그림 그리는 일에 몰두하였으니까요.

문득 학장시절 내 마음밭에 소중히 숨겨둔 ‘시조 씨앗’이 생각났습니다. 그동안 일상에 얽매여 잊고 살아왔지만 다시금 싹을 틔우고 싶었습니다. ‘너무 오래 묵혀 사라지지나 않았을가?’하는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마침 대구시조시인협회(회장 이정환) 상설 <화요시조창작교실>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 꿈틀꿈틀 씨앗의 태동을 느꼈습니다. 계속 아낌없는 자양분을 주신 시인님들 덕분에 씨앗은 드디어 여린 새싹으로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예쁜 꽃 피우고 알찬 열매 맺어 나의 시조 씨앗을 싹틔워 주신 분 그리고 세상의 빛을 보게 허락해 주신 시조시학사와 심사위원님들께 보답하겠습니다.

 

 

 

최화수

 

경북 청도 출생. 경북여고와 대구교육대학교 대학원 미술과 졸업. 대구 노변초등학교장 역임. 2010년 대구시조전국공모전 입상. <영음시조>동인. 대구교육대학교 미술과 출강.

 

 

 

 

어머니의 바다 외 3편

 

 

최미향

 

밀려드는 단잠에 가로등도 눈감은 밤

진새벽 빗장 열고 수산시장 향하신다

검푸른 파도에 실려 부려진 생선좌판

 

비린내 묻을까봐 안아주지 못한 애들

눈동자 그득 피는 안개꽃도 외면하고

지그시 입술 깨물며 삼키던 진한울음

 

내리쳐도 떨어지지 않는 꽝꽝 언 동태 짝들

오늘도 세상 향해 던지고 또 던진다

명치끝 조이는 멍에 신음으로 새나오고

 

동강동강 잘려진 채 쳐다보는 생선대가리

내 목을 치는 것 같아 무섭다는 푸념도 잠시

마알간 아이들 눈동자에 스프링처럼 튀는 다리

 

 

 

 

겨울나무

 

 

햇살이 비질하며 앞서간 오솔길

퍼런 힘줄 불거진 뭉툭한 그 다리로

오늘도 내려앉은 하늘

받치고 계신 어머니

 

이리 저리 뚫고 나온 새하얀 뼈마디들

안쓰러움 짙어져 고개만 떨구는데

갈비뼈 흔쾌히 내어

비탈 계단 만드신다

 

 

 

 

연근

 

 

진흙 속 허름한 집

잔물결에 시달려도

온 힘 다해 한 방울씩

뽑아낸 진액 모아

애끓는

간절한 사랑

꽃으로 피워 올리고

 

숭숭 뚫린 하얀 뼈

찬바람 스며들어도

아직은 줄게 남았다며

부르는 애닳은 손짓

마지막

가을볕처럼

웃고 계시는 어머니

 

 

 

 

USB

 

 

소우주 구겨 넣으려 빨라진 마우스 클릭

달디달게 들이키고 헛기침만 내 뱉는다

햇살 위

미끄러지는 걸음

내딛는 곳 어딘가

 

뜨거운 입맞춤 스르르 열리는 문

커져가는 눈동자 방망이질 치는 가슴

후두둑

터진 물길이

단번이 들이 친다

 

두 세상 드나들다 가상이 현실되고

서로 같은 말로도 소통은 어려워져

발걸음

잦아들다가

섬 되어 둥둥 뜬다

 

 

 

<당선소감>

 

세상이 말없이 다가와 제 손을 잡았습니다

새파란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 포실포실 비처럼 내리던 날 생각지도 못한 큰 선물에 가슴이 두방망이질 쳤습니다.

10여 년 전 시조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나순옥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시조의 율도 맞추지 못하면서 눈과 귀만 가지고 선생님 댁을 찾았습니다. 손끝에서 떠나지 말라는 그 말씀에 의지해 지낸 시간들. 타지로 시집와 마음 붙이지 못하는 저에게 울타리를 만들어 주시고 복닥이는 생활 속에서 내일을 향한 소망의 불씨를 지피게 해주셨습니다.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뒷걸음질 치는 저를 끝없는 인내로 기다려 주시고 격려해주신 선생님께 큰 절을 올립니다.

시조를 배우며 또 다른 세상의 문이 열렸습니다. 잎새 위 찰랑이던 햇살이 톡톡 어깨를 치고 쪽빛하늘이 성큼성큼 다가와 말을 걸어옵니다. 나에게만 향하던 눈길 속에 다른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이 말없이 다가와 조용히 제 손을 잡았습니다.

제자리만 뱅뱅 도는 것 같아 두렵던 저에게 다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옆에서 지켜봐 주시는 나순옥 선생님과 마음을 나누는 우리시 2기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고 또 노력하겠습니다.

 

 

최미향

2011년《시조시학》

최화수 신인작품상(시조시학2011겨울).hwp
0.04MB
최화수 신인작품상(시조시학2011겨울).hwp
0.05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