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연의 동인지, 시집 평론

석등에 붉을 밝혀-목원 선생의 시 세계

가산바위 2017. 8. 23. 13:11



석등에 붉을 밝혀(8.25일수정)-김양수론 최종(2017).hwp



석 등 붉을 밝혀

-목원(牧園) 선생의 시() 세계

 

김우연

 

 

목원(牧園) 김양수(金良洙) 선생은 197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등단 이듬해에 대학으로 진출하여 T.S 엘리엇을 중심으로 한 영미시를 주로 연구한 영문학자의 길을 정년까지 이어온 영문학자로서 시집 2권과 전공분야의 저서와 역서, 주석서 등이 12권에 이르며 이 외에도 많은 영시 관련 논문을 저술하였다. 그 중에서T.S. Eliot의 시와 사상은 한국 T.S. 엘리엇 학회가 유례가 드문 출판기념회를 개최했을 정도로 수준 높은 학문적 업적으로 평가되어 왔다.

이번에 펴낸 목원 선생의 제 2 시선집석등(2017)에서는 지나간 날을 돌이켜 보면서 노래한 작품이 많은 편인데, 인생의 유한성을 직시하고 자연이라는 신()의 질서를 은연중에 관조하는 인생관 같은 것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음을 진하게 풍겨준다. 머리말에서 일시적인 유행이나 기이한 형상을 그리기보다는, 어떤 항성(恒性)이나 보편적인 생명성과 의미를 가진 것을 그리고자 한 것이 평소의 소박한 소망이라고 밝히면서, “등불은 어두운 밤의 세계를 밝혀주는 광체(光體)로서, 어둡고도 혼탁한 세상을 밝혀주는 등불의 의미도 있겠지만, 그 범위를 좁혀서, 필자의 선조 17위를 모신 봉모단을 밝히고, 원근에 흩어져 살아가는 후손들의 앞길을 밝혀주는 등불이기도 한 것이라며 후손들과 나아가 독자의 가슴에 맑고 밝은 그림자를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으로, 이 시집의 제목의 함의와 의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소고에서는 시집에 들어 있는 몇 편의 작품을 통하여 목원 선생의 시 세계의 단면을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1. 시조와의 인연

 

목원 선생은 1938년 김천 아포 출생으로 초고 학창시절에 시조와 깊은 인연이 있었다. 대신초등학교 4학년, 5학년 때에 담임선생님께서 매주 고시조를 한 작품씩 칠판에 써 주시고 암기를 하도록 하였는데 이것이 첫 번째 시조와 만난 인연이었다. 고시조 암기를 통하여 시조의 형식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두 번째는 1950년 김천 중학교 입학 후 국어 수업 첫 시간에 국어 선생님이 이은상의가고파열 수(十首)를 암송하셨는데 고시조와는 완전히 다른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멋진 20대 후반의 미남 선생님이 눈을 지그시 감고 가슴을 울리는 목소리로 읊조리셨는데 열 수를 암송하시는 선생님이 인간이 아니고 신()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였다고 한다. 그 선생님은 바로 김천의 배병창 시인이었으며 후일에 김천의 백수 정완영 선생과 함께 영남시조문학회의 창립회원이 되었던 시인이었다.

시조와의 세 번째 인연은 능인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영남시조문학회 초대회장인 초운(樵雲) 이우출 선생님의 지도를 받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고려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초임 문명고등학교에 잠시 재직한 후에 모교에 재직하면서 이우출 선생님의 권유로 시조를 쓰게 되고 또 영남시조문학회에 가입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목원 선생은 시조와의 인연이 초등학교부터 영어교사로 근무할 때까지 계속 이어왔으니 참으로 시조와의 인연이 깊으며 또한 행복한 인연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2. 수운정(脩雲亭) 현판에 새긴 글(사진은석등(石燈)36)

 

수운정에 걸려 있는 편액은, 2016년 현월(玄月: 9월의 별칭)에 목원 김양수 선생의 글씨로서 모두 서체를 달리하여 다섯 편의 글귀를 새긴 것이다. 선생님이 해설해 주시는 것을 바탕으로 정리해보았으나 잘못 해석된 곳이 있다면 필자의 잘못이다. 필자는 20165월에 처음 수운정을 찾고 느낀 바가 있어 졸시 <봉화산 신선을 찾아>를 지어 올렸다. 그 이후 두 번째 찾은 가을에는 정자 내부에 새로운 글이 있어서 반가웠다.

 

 

1) 淸風入竹 白登高節

청풍입수죽 : 쭉 곧은 대나무 사이로 맑은 바람이 불어오고

백운등고절 : 흰 구름은 하늘로 높이 피어 오른다.

 

수운정(脩雲亭)은 목원 선생의 선영 옆에 있는 정자로서 앞 구의 수()와 둘째 구의 운()을 따와서 그 이름으로 삼았다고 한다. 봉화산에 있는 목원 선생의 선영 밑 산자락에는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어 속세와 선계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듯하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곳을 가꾸며 살아가고 있으니 신선의 모습이었다. 유한한 존재로서의 시간을 뛰어넘어 영원 속에 합일하려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리라. 청운(靑雲)은 푸른 꿈을 뜻하며 출세의 꿈이라면, 白雲(백운) 역시 높은 꿈을 뜻한다. 그러나 청운이 세속의 꿈이라면 백운은 더 높은 정신적 세계의 꿈을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고절(高節)이란 인품이 높은 절개를 뜻한다. 후손들에게 꿈을 가진 절개가 높은 인품의 사람이 되라는 유훈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선생 또한 먼 조상님들의 유훈을 이어받았으며 또 전해주고자 하는 의도가 묻어나는 분위기가 역연하다.

 

 

2) 李白(이백)의 시

 

問餘何意棲碧山(문여하의서벽산)

笑而不答心自閑(소이부답심자한)

桃花流水杳燃去(도화유수묘연거)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무슨 생각으로 푸른 산중에 사느냐고 묻는데

빙그래 웃으며 대답은 않아도 마음은 한가롭고.

복사꽃잎 강물에 묘연히 흘러가니

이곳은 인간 세상이 아닌 별천지라네.

 

 

거의 날마다 찾으시는 이곳 봉모단 선영이 바로 목원 선생의 별천지(別天地)이며 이곳은 시간을 초월한 곳이며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영원을 꿈꾸는 곳이기도 하다. 유한하기에 물질에 얽매이는 존재에서 벗어날 때 영원의 세계에 합일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연과 합일하는 곳에 영원의 세계가 있음을 목원 선생은 체득한 것으로 보인다.

 

 

 

3) 萬里和風(만리화풍)

古木龍音(고목용음)

 

온 세상에 부드러운 봄바람 불어오고

고목은 용의 울음소리를 내고 있다.

 

용은 상상의 동물이며 상스러운 기운을 상징하고 있다. 오래 된 나무가 용의 소리를 내듯이 인간도 노인이 되어야 세상을 넓고 깊게 보는 지혜가 있음을 비유한 것이라 하겠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은 죽을 때까지 배우고 수행해야 고절의 단계에 이를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4) 洪鐘無聲(홍종무성)

滿甁不響(만병불향)

 

큰 종은 군소리가 없고

꽉 찬 병은 촐랑거리지 않는다.

 

큰 사람은, 큰 종이 군소리가 없듯이, 물이 꽉 찬 병이 흔들리지 않듯이 군소리를 하거나 함부로 촐랑대지 말라는 뜻이다. 목원 선생은 의지가 굳고 생각이 깊으며, 한번 결심하면 그것을 최대한 추구하는 성품을 가졌음을 느끼게 한다.

 

 

3. 수명(受命)의 길

 

내 여생(餘生) 수명(受命)의 길이

봉모단(鳳慕壇)을 지키는 일

 

억수장마 속눈물도

설한풍(雪寒風)의 긴 한 숨도

 

쌍사자

석등(石燈)에 새겨

천년성(千年城)을 가꾸리.

-수명(受命)의 길전문

 

 

 

봉모단은 경상북도 김천시 아포읍 봉산리 산 26번지, 목원 선생의 선산(先山)인 봉화산(鳳和山)에 선조 17위를 모신 곳이다. 여든의 목원 선생은 공직에서 퇴직 후부터 여생을 봉모단을 지키는 것이 주손(胄孫)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면서 요즘도 그곳을 가꾸고 있다. 조상들의 산소가 여러 곳에 흩어져 후손들에게 잊혀질 것을 두려워하여 이곳으로 모신 것이다. “칠대주손(七大胄孫)으로서의 의무감에서, 뿌리의 고향 봉화산에 봉모단(鳳慕壇)이라는 이름의 선영(先塋)을 가꾸고 다듬으며라고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다.

서구의 직선적인 시간관에서는 과거는 과거이며 미래로만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지만, 조상들로부터 받은 생명이 미래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현재 속에 과거가 있고 또한 미래가 있는 것이니 중장에서는 억수장마 속눈물도/설한풍(雪寒風)의 긴 한 숨도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어찌 기쁨만이겠는가. 부모와 할아버지의 피와 땀이 오늘의 삶으로 전해지고 있으니 그 은덕을 잊는다는 것은 불효라고 늘 명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장의 쌍사자는 봉모단에 있는 쌍사자 석등을 말하며 시집 표지에 그 사진을 싣고 있다. ‘천년성이란 봉화산(鳳和山)을 말하는 것이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족보를 정리하거나 선영을 다듬는 일을 흔히 하는데 목원 선생은 특별한 날이 아니면 봉화산에서 잡초 하나라도 뽑고, 또 나무를 심고 가꾸고 있다. 특히 금년엔 가물어서 봉모단 아래쪽 작은 연못(月影池)마저 다 말라버려 날마다 오봉동 저수지에서 흘러오는 물을 길어 가서 나무와 꽃에 물을 주어 가꾸고 있으니 그 정성이 대단하다.

이번 시집은 9부로 되어 있는데, 9천년성(千年城)의 달빛>에는 위의 수명(受命)의 길을 비롯하여 21편을 싣고 있다. 조상에 대한 추모의 념()이 얼마나 곡진한 가를 작품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목원 선생은 왜 이토록 선영을 다듬고 있는 것일까?

해묵어/ 간절한 유향(遺香)/ 풀어내는 너의 순수”(봉화산(鳳和山)에서)라며 조상이 남긴 미덕의 유향(遺香)을 늘 되새기는 것이다. 그것은 (敬誠仁) 조화의 길을/ 가보(家寶:家訓)로 내림하며”(봉모단(鳳慕壇)에서)라고 조선(祖先)의 가르침에 충실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천대만손(千代萬孫) 후예들의/ 구원의 불을 밝혀”(비마등(飛馬燈))에서), “만세루(萬歲樓)/ 구원(久遠)의 영지(靈地)/ 먼 하늘이 열린다.”(세화등(世和燈)의 노래에서)라고 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봉모단이 있는 봉화산은 영원히 이어갈 영지(靈地)임을 강조하고 있다.

물질만능의 각박한 삶으로 부모의 봉양마저 멀리하는 요즘 세태에 지나간 유교적인 관습이라고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유한한 인간이기 때문에 금강경에서도 우리의 삶을 풀잎의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다라고 하였듯이 지나고 보면 꿈같은 것이다. 생명은 생명을 잇고 그 은덕을 기리면서 후손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기원하는 것이 소박한 꿈이요 행복일 것이다. 물질의 노예가 되는 한 우리의 정신세계는 더욱 황폐해지고 욕구불만으로 불만족과 분노로 불행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봉화산 대숲을 지나면서 속세의 먼지를 씻고 조상의 유훈을 통하여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돌아보는 힘의 원천은, 목원 선생에게는 봉화산 봉모단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시간이 나는 한 그곳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는 것이다.

봉화산(鳳和山) 봉모단 입구에 봉화산(鳳和山)이라는 표지석이 있다. “歷千劫而不古(역천겁이불고)/ 亘萬歲而長今(긍만세이장금)”을 선생님의 필체로 새겨두었다. “천 겁이 지나도 옛날이 아니고, 만세에 걸쳐서 늘 현재라고 하였으니 이곳에 잠들어 있는 선생의 선조들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가 구분되는 세계가 아니고 늘 현재(영원)라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영원 세계라는 것이다. 그 영원의 세계는 또한 영원히 이어갈 후세와도 일체를 이루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가 일체를 이루고 있는 이곳이 그에게는 무릉도원이 아니겠는가. 神仙(신선)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

 

 

 

4. 세월을 건너

 

시집 곳곳에 유난히 드러나는 시어가 세월이다. ‘세월이라는 단어가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세월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그의 삶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8부에는세월이란 시제로 17편을 쓰고 있다.

 

 

파아란 북극성이

먼 빛으로 질 때까지

 

눈보라 업어치고

노도 타고 달린 세월

 

어느새

앞 산 마루엔

흰 눈발이 날린다.

-세월(8)전문

 

 

초장에서 파아란 북극성이/ 먼 빛으로 질 때까지는 밤 새워 학문 연구나 해야할 임무를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중장의 눈보라 업어치고/ 노도 타고 달린 세월눈보라’, ‘노도는 시련을 비유한 것으로 그것들을 다 물리치고 치열한 삶을 살아왔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어언 여든이라는 고개에 올라선 것을 앞 산 마루엔/흰 눈발이 날린다.”라며 앞 산의 흰 눈발은 자신의 백발을 연상케 하는 매개체로 상징적이다. ‘어느새라는 말 속에는 지난 세월이 번개처럼빠르다는 불경의 게송과 통한다.

바위로나 오는 세월/ 이고 지고 달린 세월// 덜컥이는 발길마다/ 되감기는 노을 자락// 오늘도/ 먼 산마루에/ 달 하나가 걸린다.”(세월(15) 전문)에서도 바위로나 오는 세월/ 이고 지고 달린 세월이라며 얼마나 투철한 삶을 살아왔는 지를 짐작케 한다.

해 저문 서녘가에/ 종소리가 걸리면// 노을은 갈대를 잡고/ 산 마루에 주저 앉고// 세월은/ 또 둥근 매듭을/ 천공에다 그린다.”(세월(16)) 전문)에서는 시각적 형상화가 돋보인다. 한 폭의 그림과 같다. 황혼녘의 붉게 타는 노을의 아름다움은 자연 현상을 표현한 것이면서도 동시에 자신을 그 노을과 동일시 한 것이다.

아무리 저녁 노을이 아름답더라도 지나간 삶은 누구에게나 일장춘몽(一場春夢) 같기만 하다. 그래서 꿈인 듯/ 낮꿈인 듯// 밀려온/ 여든 고개라고 하면서도 갈지자 버거운 발길// 하늘 길은 구만리”(세월(13)에서) 라며 끝까지 하늘 길인 천도(天道) 즉 섭리의 길을 걷고자 하며 허탈감을 달래고 있다.

그러나 지나간 세월에 대한 그리움 또한 간절하다. “마음 다져 오무려도/ 그리움은 나비되고// 눈 감고 돌아누워도/ 뜬 마음 접지 못해// 꿈길은/ 은하수 너머/ 나래 펴는 연()이어라.”(춘몽(春夢)전문)라고 노래하고 있다. ‘그리움은 꿈길이지만 무한한 우주인 은하수 너머로 나래를 편다고 하였다. 그리움은 서정시의 본령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 꿈은 금강경이나 장자가 말하는 우리의 인생을 꿈이라고 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한 세월 꿈꾸다가

여든 고개 바라서니

 

뒤척이는 발길따라

헛기침만 날리고

 

인생사

낮꿈 이런가

저 하늘은 말이 없다

-꿈길전문

 

인생사/ 낮꿈 이런가라는 것은 일체의 현상계는 꿈과 같고 허깨비 같고 물거품 같다.(금강경)”는 것처럼 우리의 삶이 꿈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경지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이익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다투는 중생들의 모습도 우습게 보이게 된다. 여든이 되면 평범한 사람도 생사(生死)에 달관할 수 있는 나이라고 한다. “한 세월을 꿈꾸었지만 그 또한 꿈 속의 꿈임을 말하고 있다. 이제는 생사에 초연하며 영원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걷는 것이 시들해서

보는 것도 너덜해서

 

노도(怒濤)에 밀리는 세상

생각조차 무거워서

 

말없이

흐르는 물에

풀잎 하나 던진다.

-어느 오후전문

 

에리히 프롬은 평등을 외치는 자들은 나보다 더 가진 것을 빼앗겠다는 것을 에둘러서 말한 것이라고 했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문제이기에 해결해야하는 과제이긴 하지만 남보다 덜 가진 것에 대한 분노를 충동하는 세력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 시에서도 보는 것도 시들해서라고 말하고 있다. “노도(怒濤)에 밀리는 세상은 민주화의 이름으로 외치는 무질서한 사회현상에 대한 비판의 시각에서 오는 목소리이다. 문익환 목사님은히브리 민중사에서 하느님을 가장 많이 외친 자는 군인과 정치가라고 하였다. 오늘날에는 하느님정의민주’ ‘통일’ ‘민족등으로 바뀌었다고 하였다. ‘민주’, ‘복지’, ‘환경등을 외치는 이면에는 또 다른 목적이 없는지를 돌아보면 생각조차 무거워서라고 노래하였다.

결국은 말없이/ 흐르는 물에/ 풀잎 하나 던지게 되는데 풀잎 하나를 던진다는 것은 순수를 향한 목원 선생의 몸짓이다.

 

 

 

5. 선비 기질

 

삼동(三冬)이 매서워도

말이 없던 저 기품

 

휘어진 등줄기에

인고의 업보를 지고

 

저만치

안개 낀 산하를

미소로 돌아보나,

 

노도(怒濤)같은 한 세월을

꺾어 넘긴 그 의지로

 

한사(寒士)의 고절(孤節)마저

눈속에 삭혀내어

 

기어이

옹이 진 마디에

흰 등불을 달았구나.

-매화사(梅花詞)전문

 

 

매화(梅花)는 모든 선비들이 사랑한 꽃이 아닌가. 모진 겨울을 이겨내고 일찍 꽃을 피우는 것과 그 향기가 매운 것이 선비의 기상을 상징하기 때문일 것이다. 목원 선생은 영문학을 하지 않았다면 한문학을 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일찍이 조부님으로부터 배운 한학을 통하여 선비의 정신을 몸에 익힌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매화는 바로 자신이 걸어온 삶의 한 표상이기도 한 것이다.

노도(怒濤)같은 한 세월을/ 꺾어 넘긴 그 의지로는 학창 시절 독재 정권을 물리친 4·18, 4·19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도 한 예가 될 수 있으며, 영어교사로서 첫 발령지인 청도 문명고등학교(운문댐 수몰로 현재는 경산시로 이전함)에 다시 교감으로 발령받아 1년간 재직하던 시절에, 십 년 동안 예비고사에 한 명도 합격하지 못한 상태의 학교를, 대구에서 하던 시스템으로 바꾸어서 1년 만에 88%의 합격자를 배출함으로써 지역사회 인사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된 것도 그 한 예가 될 것이다. 이처럼 하는 일마다 최선을 다했기에 노도(怒濤)같은 한 세월이라 한 것이다. 특히 안동대학교 영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엘리엇에 대한 연구 업적을 내기까지는 노도(怒濤)’같은 세월이었으리라. 미국에 교환 교수로 가서 직접 엘리엇에 대한 자료를 구하여 연구하고 저술한영국 시문학사는 우리 영문학계에도 큰 영향을 주었으니 노도(怒濤)’와 같은 세월 아니겠는가. 영문학에 있어서는 고() 서주(西洲) 이창배 동국대 명예교수의 연구 업적과 그 고매한 인품과 학덕을 높이 받들고, 그 학자적 자세에 이심전심으로 많은 감명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그리하여 서주 선생의 격려와 총애를 많이 받았고, 그 정을 못 잊어 서주 선생에 대한 추모의 시를 올리기도 했다.

이렇게 영문학 연구와 후학들을 지도했던 안동대학교 시절의 감회를 다음 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눈물보다 진한 정을/ 두고 온 솔메골에// 묻어 둔 그 세월이/ 꿈길에도 밟히는데// 오늘도/ 반변천 긴 물길은/ 달을 안고 누웠는가.// 물소리 바람소리/ 가을 지고 겨울 가면// 봄은 또 꿈을 빚어/ 여름조차 불사르며// 산너머/ 무지개 걸어놓고/ 천년 물레 잣던 언덕.”(솔메골전문)

솔메골이란 안동대학교 소재지명이며, ‘천년 물레란 영문학(영시)의 역사가 일천 여년이 됨을 말한다. 그곳에서 근 30년을 바친 세월이라서 눈물보다 진한 정을/ 두고 온 솔메골에라고 노래하는 것이다. 얼마나 사무치는 정을 두고 온 곳인가. 그래서 꿈길에도 밟힌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정열을 바친 곳은 평생 잊지 못하는 것이다. 그게 자신의 삶이요 역사이기 때문이다. ‘노도(怒濤)’와 같은 시절이었기에 눈물보다 진한 정을 두고 온 것이다. 그렇기에 영문학(영시) 연구에 평생을 바치면서도 바쁜 틈틈이 시조를 쓴 것으로 볼 때 그 원동력이, 유년 시절부터 익혀온 시조의 맥락 속에 녹아 있는 선비정신이 아닐까 한다.

 

 

 

6. 낙강(洛江)에 달을 밝혀

 

그때는

낙강은 달을 품어

은하수는 높았고

 

아린 정 흰 옷자락

기워이은 옷소매에

 

빈 술잔

반 넋두리로

고향하늘 지켰거니.

 

오늘은

살구꽃 피던 마을

취객들은 가고 없고

 

강물은 노을에 젖어

쇠북소리 은은한데

 

하늘빛

어리는 수평

눈물 고인 향수의 늪

 

내일은

칠 백리 굽이굽이

산도 들도 둘러놓고

 

한 세월 엮어온 사연

달빛 풀어 노래하며

 

푸른 솔

흰 구름 너머

학을 띄워 춤을 출까.

ㅡ「낙강(洛江)에 달을 밝혀전문

 

위 시는낙강에 달을 밝혀의 연작 세 편이다. ‘낙강(洛江)’은 낙동강(洛東江)의 준말로 영남시조문학회지의 제호(題號)이기도 하다. 또한 낙강(洛江)’은 영남시조문학회의 별칭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다. 초대 회장 초운 이우출 선생이 제의하여 선정된 것이다.

목원 선생은 퇴직 후에 창작을 더욱 왕성히 하였다. 또한 1965년에 창립하여 우리나라에서 시조문학회로 가장 오래된 동인인 영남시조문학회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회장을 두 번이나 역임하였다. 어려운 여건이었지만 연간집의 품위를 한 차원 높이는 계기를 만들었다.

목원 선생은 초운(樵雲) 선생님을 통하여 시조를 배우고 등단을 하고 또 영남시조문학회에 가입하게 되었으니 이 회에 대한 애정은 남다를 것이다. 그래서 낙강(洛江)’의 발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낙강에 달을 밝혀라는 작품을 썼다고 하였으며, 봉화산에 있는 시비에 이 작품을 새긴 것도 낙강(洛江)’의 발전을 기원하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목원 선생이 낙강(洛江)’에 무한한 애정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때는초장에서 낙강은 달을 품어/ 은하수는 높았고는 시조를 향한 낙강(洛江)’ 회원들의 시조에 대한 큰 꿈을 품은 것을 노래하였으며, 중장에서는 문학지를 낸다는 것이 어려운 1960년대였지만 아린 정 흰 옷자락/ 기워이은 옷소매라고,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형편에서도 영남시조문학회를 발전시키고, 시조라는 우리 고유의 시를 발전시키고자 함께 노심초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장에서 빈 술잔/ 반 넋두리로/ 고향하늘 지켰거니라며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막걸리 한 잔 나누면서 밤늦도록 시조를 읊고 논하면서 서로의 정을 나누었다는 것이다. 정이 흐르던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노래한 것이다. 요즘은 물질은 풍부해졌지만 더욱 바빠지고 정을 나누기에는 부족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심정이 여운으로 날린다.

오늘은에서는 초장에서 살구꽃 피던 마을/ 취객들은 가고 없고라는 것은 이호우 선생의 이미지를 그린 것이다. 이호우 선생의살구꽃 핀 마을은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지고/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살구꽃 핀 마을두 수중 첫째 수) 의 초장에서 따온 것이다. 영남시조문학회의 전신 경북시조동호회1965년에 창립하였는데 이우출은 회장, 이호우는 고문이었다. 그러다가 1967영남시조문학회로 개칭하면서 이호우 선생이 회장을 맡으셨다.실제로 이호우 선생이 초운 선생보다 문단의 선배였기에, 이호우 선생을 먼저 기린 것이다.

중장에서 강물은 노을에 젖어/ 쇠북소리 은은한데는 초운(樵雲) 이우출(李禹出) 선생을 기리면서 그 이미지를 그린 것이다. 초운 사백의 시집으로종루가 있으며, ‘종루196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 작품이기도 하다. 초운 선생의종루는 세 수의 연시조인데종루(鐘樓)첫 수는 청태(靑苔)빛 돌층대를 눌러 앉아 솟은 다락/ 서역길 문을 열어 범종이 울려오면/ 새벽달 푸른빛 여울을 헤엄치는 저 여운.”이라고 노래했다. ‘범종이 울려오면쇠북소리 은은한데로 그 이미지를 살린 것이다. 초운 선생은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의고 절에서 공부를 하였는데 절의 이미지는 초운 선생에게 꼭 들어맞는 것이고 그래서 등단작도 자신의 삶과 연관이 많은종루(鍾樓)였으며 불교종립학교인 능인고등학교 교사, 교감, 교장으로 평생을 재직하였다.

종장은 영남시조문학회 3대 회장인 정완영 선생을 기린 것이다. 목원 선생도 김천 출신이니 인연이 있는 분이기도 하다. 백수 정완영 선생은 201698세로 돌아가셨으며 평생 시조만을 써 오신 분이었기에 고향에 대한 향수가 남다르고 고향에 대한 작품들도 많이 남기셨다. “해지면 빈 하늘 뿐 다 묻힐 줄 알았는데/ 불타는 노을 속에 저도 타는 갈가마귀/ 밤 새 내 한 잠도 못이룬 뒷골 못물 찾아가자.”(고향 가는 길세 수 중 셋째 수)라고 한 백수 선생의 이미지를 그리워한 작품이다.

결국 위 작품은 영남시조문학회의 초석을 놓으신 1, 2, 3대 회장을 기린 것이다. 이것만 보아도 목원 선생이 영남시조문학회에 깊은 애정이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시조에 대한 사랑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평소에 영문학 관련 논저나 그 외의 산문에서도 3 ,4조의 음조로 기술이 되는 것이 많은 것을 보면 시조의 음수율이 몸에 완전히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그가 오늘날에는 많은 시조 잡지가 발간되고 있고, 여러 시조 단체가 생겨서 발표 기회도 많은데 왜 이토록 낙강(洛江)’에 많은 애정을 보이는 것일까? 그것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역사의 뿌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내일도 변함없이 낙강(洛江)’이 흘러가기를 기원하면서내일은을 새긴 것이다.

초장, “칠 백리 굽이굽이/ 산도 들도 둘러놓고낙강(洛江)’이 변함없이 발전하기를 바라며, 중장, “한 세월 엮어온 사연/ 달빛 풀어 노래하며는 서정시인 시조의 본령을 살려 달빛처럼 고운 시를 빚어내자는 것이요, 종장, “푸른 솔/ 흰 구름 너머/ 학을 띄워 춤을 출까.”푸른 솔이란 낙강(洛江)’이 무성히 발전하기를 바라며, ‘흰 구름 너머, “은하수는 높았고와 같은 맥락으로 높은 수준의 시를 창작하려는 이상을 노래하며, “학을 띄워 춤을 출까는 시조문학 단체로서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과 애정을 주는 시조를 발표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문학이란 그 단체의 유구한 역사만으로 그 가치가 평가되는 것은 아니지만, 흔히 시조 문학 역사의 오랜 전통을 자랑하면서도 오래된 시조 단체를 외면하고 몇 몇 시인의 욕심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은 아닐 것이다. 문학은 운동 이전에 작품의 문학성이 우선 되어야 할 것이다. ‘낙강(洛江)’에 대한 애정들이 모이고 쌓여 지금도 낙강은 푸르게 유유히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목원 선생이 생각하는 시의 효용에 대해서는 그간의 저서 서문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19세기 영미시(1984)서문에서 물질과 경제일변도로 치닫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시()나 문학(文學)을 한다는 것이 어쩌면 우리 생활에 있어 여분(餘分)의 장식처럼 생각될는지 모르나 본질적으로, 영혼(靈魂)과 육체(肉體) 또는 신성(神性)과 수성(獸性) 또는 이성(理性)과 감성(感性)이라는 양대(兩大) 속성(屬性)을 가진 인간들로 구성된 이 사회가 physical한 쪽으로만 계속 기울어진다면 마침내 인류 사회는 unbalance의 가공할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경종을 울리고 있다.

영국 시문학사(2003)에서는 아무리 만물유전(萬物流轉) 개무영속(皆無永續)의 현상 세계라지만, 세월이 갈수록 시간과 변화의 함수관계는 가속도적으로 빨라지고 있다. 더욱이 변화 자체가 인간의 삶에 긍정적이기보다는 더 많은 부정적인 역작용을 양산(量産)해내는 바, 그것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리려는 노력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몫일 것이고, 그러한 노력은 혼탁한 세파에 물들지 않으려는 바른 정신, 순수한 감성, 해맑은 영혼을 견지하려는 데서 가능할 것이며, 또 그렇게 하는 길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위대한 시인들의 고매한 사상과 진솔한 삶과 순수한 열정이 녹아있는 그들의 작품을 읽는 것이 그 첩경의 하나일 것이다.”라고 하여 물질만능시대의 부작용을 시를 통하여 영혼을 맑게 하는 것이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결국 목원(牧園) 선생이 평생 영문학을 연구하고 시조를 창작해 온 것은, 선생의 석사학위 논문을 요약한이미지즘과 모더니즘 그리고 한국의 현대시(낙강 42, 2009)에서 우리나라 현대시와 시조가 그 초창기의 모습과는 달리 현저하게 발전하게 된 데는 다른 요인의 영향도 배제할 수 없긴 하지만, 무엇보다 이미지즘과 모더니즘의 요소를 흡수, 소화한 데 크게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라는 결어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보다 앞선 영문학을 배우고 익혀서 우리나라 문학의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했던 20대 초의 선생의 결심을 초지일관 추구해 온 의지의 결실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목원 선생이 평소에 강조하는 문학(文學)과 예술(藝術)은 주관(主觀)의 객관화(客觀化)이며 개성(個性)의 보편화(普遍化)이다.”라는 신념은 이러한 동서양 고금의 문학적 편력을 통해서 얻게 된 문학과 예술에 대한 선생 나름의 문예관의 한 단면으로 보인다.

 

 

 

7. 석등(石燈), 그 유향(遺香)

 

이상으로 시집석등에 나타난 목원 선생의 시 세계를 간단히 살펴보았다.

유성호 교수는 시집 해설심미적 정서와 사유(思惟)-김양수의 시조 미학-에서 목원(牧園) 김양수(金良洙) 시인의 시선집석등(石燈)(드림, 2017), 단아하고 웅숭깊은 정형 미학의 정수를 드리우고 있는 창의적 성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양수 시인은 시조를 통해 우리 고유의 숨결과 리듬 그리고 내용적 고갱이를 설파하고 있거니와, 그것은 곧 시인의 견고하고도 단정한 삶을 고스란히 반영한 결실일 터이다.”라고 하였다.

이번 시집에서 자연이 빈번하게 등장하였는데 자연이라는 신()의 절서를 은연중 관조하는 인생관이 그 바탕에 흐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세월연작시들은 그동안 노도(怒濤)같은치열한 삶을 잘 표현하였다. 솔메골등에서는 영어교육과 교수로서 열정을 바친 솔메골에 대한 그리움을 깊이 새기고 있다. 그리고 영남시조문학회에 대한 사랑은 봉화산에낙강(洛江)에 달을 밝혀를 시비에 새겨 두고서, 지난날의 그리움을 노래하며 미래에도 영원히 유유히 흘러가기를 기원하고 있다.매화사(梅花詞)등의 여러 작품에서는 고절(孤節)한 선비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데, 목원 선생의 학자로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또 섭리의 길을 늘 추구하면서, 여생의 수명(受命)의 길은 봉모단을 다듬으며 영원한 세계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선조(先祖)들의 가르침을 이어 받았듯이 후손들도 영원히 가훈의 정신을 이어받아 살아가고, 그러한 것이 이웃과 사회에 등불이 되길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시집의 표제가 된 작품을 통해서 그러한 선생의 정신이 오래 오래 전해지기를 기원해본다.

 

천년성(千年城) 만세루(萬歲樓)

푸른 달빛 깔아 놓고

 

은하수 긴 밤을 세워

먼 유향(遺香)을 풀어내면

 

석등은

또 천년 꿈을 엮어

새 전설(傳說)을 마름한다.

-석등(石燈)전문

 

시집을 읽고 나니 시 한 편 한 편이 어두운 곳을 비춰 주는 등불이었다. 이번 시집석등(2017)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을 밝게 해주는 등불로 오래 오래 널리 비춰줄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등불을 더 밝게 켜 가시기를 기원하면서 마친다.







석등에 붉을 밝혀(8.22일수정)-낙강제출용(2017).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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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등에 붉을 밝혀(8.24일수정)-김양수론 최종(2017).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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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등에 붉을 밝혀(8.25일수정)-김양수론 최종(2017).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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