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우문학기념회,『開花』(2호·1993)
<다시 읽는 시인론>
李鎬雨의 詩
-絶對에의 追求와 發見, 그 成立-
徐伐
1
뼈의 文士 李鎬雨, 굵고 크고 억세었던 李鎬雨, 거칠고 늠름함으로 하여 强力하게 陽角되어 오는 李鎬雨다.
現代時調 七十年史를 통해 李鎬雨만한 氣骨, 그 튼튼함을 찾을 수가 없다.
李鎬雨는 現代時調의 精神的 據點이며 巨大한 뿌리다. 萬海, 陸史, 靑馬에 이어지는 大桶이며, 흔하지 않은 韓國文學의 맥본으로서 그가 남긴 首首片片은 이제 당당한 하나의 古典이 되고 있다.
2
李鎬雨文學의 패턴은 絶對性에 있다고 할 것이다. 絶對에의 追求와 發見, 그리고 그 成立을 위한 그의 向念, 그의 몸부림은 그가 남긴 두 권의 時調集과 遺稿노트인 (餘白錄)에 鐵筋처럼 박혀 있다.
去頭截尾하고, 이호우의 絶對性은 「旗빨」에 의해 가장 氣勝해 있음을 보게 되리라. 하등의 눈치作戰(詩的方法論 혹은 風潮따위)하고는 관계없이 噴出된 이 思考의 力學에서 우리 詩가 당면하고 있는 諸般사항중 어떤 部分이 빠져 있는가라는 점을 느낄 수가 있으리라.
편의상 靑馬의 「旗ㅅ발」과 견주어 봄으로서 李鎬雨의 氣骨을 더욱 명료하게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海原을 向하여 흔드는
永遠한 노스탈자의 손수건.
純情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理念의 標ㅅ대 끝에
哀愁는 白鷺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空中에 달 줄을 알 그는.
-<靑馬의 「旗ㅅ발」 全文>
旗빨! 너는 힘이었다, 一切를 밀고 앞장을 썼다.
오직 勝利의 믿음에 항시 넌 높이만 날렸다.
이날도 너 싸우는 자랑 앞에 地球는 떨고 있다.
온몸에 햇볕을 받고 旗빨은 부르짖고 있다.
보라, 얼마나 눈부신 絶對의 表白인가
우러러 감은 눈에도 불꽃인양 뜨거워라
어느 새벽이더뇨 밝혀 든 횃불 위에
때묻지 않은 목숨들이 비로소 받들은 旗빨은
星霜도 犯하지 ㅁ소한 아아 다함 없는 젊음이여.
-<李鎬雨의 「旗빨」 全文>
靑馬의 「旗ㅅ발」은 <오로지 맑고 곧은 理念의 標ㅅ대 끝에> <소리없는 아우성>이고 <푸른 海原을 向하여 흔드는 / 永遠한 노스탈쟈의 손수건>이다. 또한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는 <純情>이다. 그러나 靑馬의 「旗ㅅ발」은 <白鷺처럼 날개를 > 편 <哀愁>로 換置된다. 永遠한 노스탈쟈의 손수건과 나부끼는 純情이 哀愁의 날개로 바뀌는 感情의 안타까움으로 하여, 靑馬의 「旗ㅅ발」은 人間의 永遠한 宿命的인 悲劇을 개탄하는 것으로 直觀되는 것이다.
反面, 이호우의 「旗빨」은 靑馬의 「旗ㅅ발」에 비해 그 詩題부터가 빠른 템포와 强한 액센트로 表記되어 나오고 있음을 看過해서는 안될 것이다. 따라서 이호우의 「旗빨」은 처음부터 <힘>이고 그러한 前提하에 一切를 밀고 나가는 <앞장>으로 力說된다. 오직 <勝利>라는 그러한 <믿음>으로 항상 높이만 날려지는 <자랑), 그것도 싸워서 펄럭이는 자랑, 그 偉容 앞에 地球도 떨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구김살 없는, 鼓舞도 당당한 氣魂을 韓國文學史는 몇 篇이나 간직하고 있는가 적이 의심스럽다.
<온몸에 햇볕을 받고> 부르짖는 <눈부신 絶對의 表白>으로서의 이호우의 偉容은 <우러러 감은 눈에도 불꽃인양> 뜨거운 <意氣當千>을 加動시킨다. 여기엔 星霜도 감히 犯할 수가 없었으며 오로지 <다함 없는 젊음> 만으로 原初的 光源을 노래하는 것이다. 이 絶對絶要의 氣魂은 <때묻지 않은 목숨들이 비로소 받들은> 그것이며 카리스마다. <어느 새벽이더뇨 밝혀든 횃불> 그것의 성취인 것이다.
이호우의 原初的 衝天은 앞의 靑馬의 「旗ㅅ발」에 비해 보다 直立的이고 散文性임으로 하여 藝術性의 결여가 따르고, 陸史의 「曠野」에 비해 유연한 광활성과 초월으ㅟ식이 결여되었다손 치더라도 이들에 비해 힘의 充塡, 즉 精神力學의 성취는 한결 强하다는 것을 엔드라인 해야 하리라.
이러한 精神力은 저 絶倫한 鄭夢周, 金宗瑞, 成三問, 楊士彦 등의 精神力學과 그 脈이 다르지 않음을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다고는 하나 이들 例의 先人들의 精神을 잇는 그 滅私奉公의 名分에게다가만 李鎬雨文學을 옭아맨다면 지나친 銜枚의 결과를 만들고 말 것이다. 단지 뼈의 文士로서의 이호우와 例의 先人들과의 脈絡을 통해 李鎬雨의 時調와 時調精神에 대한 認知를 밝혀 내는데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는 것을 강조하자는데 그침을 애써 밝히고 싶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호우는 어떠한 意圖로 하여 時調라는 固定型, 즉 三章六句 四十五字 內外의 基本律韻을 찾아 나섰던 것일까. 구차한 이야기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이호우에게 있어서 時調 즉 三章詩에 대한 向念의 理由는 명백하게도 그 자신이 밝혀 놓고 있는 것이다.
「「한 民族 國家에는 반드시 그 民族의 呼吸인 國民詩가 있고 또 있어야만 하리라 믿는다. 나는 그것을 時調(原文대로)에서 찾고 이뤄보려 해 보았다. 왜냐 하면 國民詩는 먼첨 庶民的이어야 할 것임에, 그 型이 간결하여 짓기가 쉽고 외우고 傳하기가 쉬우며 또한 그 내용이 平明하고 周邊的이어야 할 것임으로, 時調의 現代詩로서의 成長을 沮害하고 있는 定型 卽 短型과 韻律的인 非現代性 國民詩的型으로서는 도리어 適當한 要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많은 先輩와 同人들이 이 時調의 國民詩化를 위하여 진실로 피나는 努力들을 해 왔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데까지나 在來的인 時調觀念의 테둘레 안에서 解決코저 해 왔다고 본다. 그러므로 나는 그와 달리 이의 테둘레 밖에서 解決해 보고저 한 것이다. …中略…이러한 나의 時調에 대한 期待와 念願은 오히려 나의 이 民族에 대한 宿命的인 信賴와 愛情일지도 모르겠다.」
<一九五五년刊爾豪愚時調集 後記에서>
앞의 「後記」에서 우리는 이호의 詩學, 즉 그의 時調에의 向念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호우와 國民詩, 時調가 國民詩가 될 수 있는 要素와 理由, 李鎬雨의 時調에 대한 명확한 태도와 입장 등으로, 여기서 우리는 이호우가 평생 동안 言語의 잔재주가 주는 복잡 미묘한 기교하고는 관계를 멀리한, 직접적이고도 단순한 表現道로 一觀관, 그의 文學習性을 알 수 있고, 그러한 노력으로서의 댓가인 간결, 요약, 그리고 平明性과 周邊的이라는 그 나름의 文學道가 피력되고 있음을 그것이 설사 非現代的이더라 하더라도 이러한 옹립으로 하여 民族의 호흡이 될 수 있는 國民詩를 이룩하려는 이 원대한 꿈, 여기에 이호우의 포부는 응축되어 形式과 精神의 同化作用이 이룩됨을 볼 수 있다.
이러한 國民詩化의 노력, 그것은 곧 이호우가 갖는 이 民族에 대한 신뢰와 愛情으로 直結된다.
그러나 이호우는 모든 時調向應論者들처럼 어디까지나 在來的 時調 觀念에만 머무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이호우라는 個體가 너무나도 苛烈性을 지닌 詩人이었기 때문이다. 形式의존주의자로서의 詩人이기엔 너무나 강한 個性을 처음부터 지니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와 달리 이의 테둘레 밖에서 解決해 보고저 한 것이다」를 再記할 필요도 없이 그의 精神力이 가장 기승해 있을 때의 詩의 하나인 「旗빨」이 在來的 時調型에서 보다 파격적으로 熱血해 옴이 그를 증명한다.
어쨌든 이호우는 두 개의 모순점 그 중간에서 앓고 몸부림쳤다. 해결을 보기 위한 앓음과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陸史와 靑馬의 정신적 가열성의 차원에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도 三聯六行을 지켰다는 사실은 보다 어려운 自制와 특수한 능력이 요청되었을 것이라면, 이호우가 짊어졌던 한국 詩學의 시련은 엄청난 실험이었고, 동시에 엄청난 시련이었으리라. 이러한 시련의 일관성은 그가 진짜 시인이 한 사람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호우에 대한 김윤식의 탁견이다. 아무튼 金允植의 말과 같이 이호우는 보다 어려운 自制로 특수한 능력을 요청하면서 엄청난 시련을 永續的으로 이겨나갔다. 그 결과로 「旗빨」과 같은 氣勝의 世界에서 「休火山」과 같은 <함부로하지 못함>의 世界, 즉 「살아있는 정신의 본고향」으로 옮아 앉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일찍이 千길 불길을
떠뜨려도 보았도다
끓는 가슴을 달래어
자듯이 이 날을 견딤은
언젠가 있을 그날을 믿어
함부로하지 못함일레
-<「休火山」 全文>
여기서의 이호우는 求道者로서의 그 모습이며 그것은 「旗빨」의 정신과 먼 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噴出을 안으로 단지 갈무렸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날도 너 싸우는 자랑 앞에>가 <자듯이 이날을 견딤>으로 응축심화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旗빨」에서의 <오직 勝利>로 치닫던 <믿음>을 <언젠가 있을 그날>에 대한 새로운 <믿음>으로 바꾸어 놓는 또 하나의 大役事를 치루지 않으면 안되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 초월적인 向姿勢의 次元에서 드디어 이호우의 오랜 熱望의 開花가 實現됨을 短首 「開花」가 잘 보여주고 있다.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나도 아려 눈을 감네.
세련되고도 농축된 이 예술성의 次元을 열기 위해 이호우는 엄청난 苛烈의 연속적인 熱氣에 신음해야 했었다. 참으로 길고 먼 歷程이었던 것이다. 孤獨한 巡禮者와도 같이 한 頂點에서 다시 한 頂에로 이어 오면서 祖國과 民族 그 한 個體로서의 자기 자신, 그리고 이웃들의 狀況을 언제나 불길처럼 노래했고 그러다가 그는 갔다. 굵고 큰 李鎬雨, 거칠고 늠름함으로 하여 그는 우리들에게 더욱 永遠히 살아 있는 뼈의 文士인 것이다.
3
「달밤」에서 出發을 열어 「旗빨」, 「休火山」 등의 필연적인 곡절을 거침으로서 「開花」에 到底되는 李鎬雨의 또 하나의 숨은 求心點이 있다. 그것은 그의 文學 도처에 깔려 있는 <한> 혹은 <하나>라는 言語이다.
<여기 사람이 / 이제야 잠 들었도다> <어덴가 걸음 한 걸음 오고 있을 봄이여>. <꽃가룬 나들련마는> / 蜀道보다 먼 금> < 胎줄 진하던 피는 / 물로 엷어 가는가.> <이 가을도 祖上 앞에 / 한자리 못하는 형제> < 얼굴 江山이요 /로 둥근 달을> <외로이 남았던 燈臺 또 꺼져만 가는가 / 뿌린 씨 꽃피는 그날에 거듭 오소서> <자리 잡은 모래알> < 네가 고이며> <바람 스쳐만 주면> < 無로 잠긴 밤> <종잇장 에 가려> <단 인 목숨과 목숨> <에 가려> < 단 의 목숨과 목숨> < 애정일레라> <올배미 우지 않은 山은 무겁다? < 꽃이로되> < 고이 가꾸어> <一切의 色相과 因緣 / 零으로 돌아와> <이미 女人을> < 우러르면 푸른 하늘> <꽃 벌레 하나> <온 세상 쉬는 숨결 로 맑습니다> < 風景이긴 너무나 간절한 情> < 빌어 온 그날 또 믿기야 하건만> <은 예있건만 은 어디메뇨> <나비 오지 않은 잔디밭에 다만 할미꽃이 피었네> <다만 약병> < 꽃을 안고> < 와락 치미는> < 연기 있다> < 떠나면은> <한 삶의 一切를> <파리 > <시조도 부르고 술도 > < 하이얀 꿈은> < 마시고는> < 새 아니오고> <시릉밑 에> < 興亡에 걸려> < 너를 지닌 채> < 너를 안고> <또 금이 갑니다> < 또 하나 슬픈 씨앗> <봄을 봄 못한 채> < 터뜨려 울어도 못보고> < 감당치 못해> <산에도 봄은 > < 웃음으로> <말 차마> <단 면서 宇宙에 가득히 차고> <오로지 너로만 > <죄 짓듯 잎 두 잎> <우리를 심으려 들> <다만 푸름> < 에도> <혼자 와서, 혼자 가는 길 兒孫들은 한탄 佩物> <무심한 발길에도> < 王國의 무너짐 보다><또 지는 잇발> <틈 날까도 저어해> <地球도 落島>
대충 뽑아본 것이지만 이토록 많은 <한> 혹은 <하나>가 이호우의 句와 章, 혹은 한 首 全體를 지배하거나 아니면 잠재적으로 意味를 확충시켜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봄은 한갈래> <하나를 찾아> 등 詩題를 지배하고 나오기도 하는 <한> <하나>다.
이호우에게 있어서 <한> 혹은 <하나>는 그의 精神力學의 蠶豆요 馬蹄다. 그러므로 이호우 문학에 있어서 <한> 혹은 <하나>는 絶對絶命의 求心인가 하면 久遠으로서의 求心이며, 非情悲願의 核이기도 하다. 個體요 全體로서의 通念이며 分化다.
꽃이 피네 잎 잎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이렇게 되었을 때, 初章外句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한>은 꽃잎 하나 하나가 個體로서 分化된 상태를 나타낸다. 開花의 個體的 상태, 그 하나 하나를 <한>이라는 復數韻으로 말해 주고 있다.
다음의 初章內句의 첫머리에 올라앉아 있는 <한>은 앞句의 個體的 分化 상태를 종합한 全體로서의 個體를 나타내 주는, 單獨韻이다. 다시 말해서 한잎 한 이 열려서 한송이 開花를 이룬 形象, 즉 한송이 꽃을 한 하늘에다 포개버리는 高度한 비유법으로서 韻, 이 高度한 은유법에 의한 엄청난 상징으로서의 韻, 생의 경이로움과 宇宙的 神秘와 질서, 그것이 이 <한>이라는 單獨韻에 의해 集約되어 있다.
中章外句의 <한> 앞의 個體와 個體 중에서 유독히 하나만을 따돌려 浮彫해 낸 韻으로서 事物의 특징을 아주 주의깊고 細密하도록 처리되게 하려는 手法으로 도입되는 韻, 그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開花」는 이 <한>이라는 韻 하나만을 가지고도 이호우 시조가 도달한 경지가 어떤 것이라는 것을 제시해 준다. 만년의 그의 詩는 이렇게 精神的으로나 方法的으로 다 같이 圓熟精製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일찍이 <千 길 불길을 떠트려도> 보았고, <끓는 가슴을 달래어> 자듯이 견디어도 보았기 때문이며, 이 <함부로 못함>이라는 哲學의 터득으로 하여 圓熟精製의 中心안에 들어설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그의 文學은 당당한 하나의 古典이 되고 있는 것이다.
-<現代詩學> 7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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