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연의 동인지, 시집 평론

풀뿌리 얼싸안는 아리랑 노래-최성아 시조집 『아리랑 DNA』

가산바위 2020. 7. 19. 22:24

풀뿌리 얼싸안는 아리랑 노래

-최성아 시조집 아리랑 DNA

 

김우연

 

 

1. 공동체 의식

 

한 권의 시집에는 시인이 지향하는 의식의 흔적이 나타난다. 그런데 의식은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어떤 고정된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시란 것은 토막난 나무토막 같은 것이 아니라 토막난 말의 조각을 이어붙여서 다듬어 놓은 재창조된 어떤 것이기 때문에 한 권의 시집에 나타난 시인의 의식을 나름대로 해석하는 것은 의미가 있는 길이기도 하다.

최성아 시인의 시조집아리앙 DNA(책만드는집, 2020. 7.)은 시인이 은유의 그루터기에 꽃불 환히 잇기를(여는 시에서) 추구한 끝에 얻은 은유와 상징의 열매들로 갈무리 되어 있다. 시집을 관류하는 큰 줄기의 시인의 의식은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여 밝고 희망찬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약자의 고통에 연민의 정을 느끼고 있다. 사회의 모순을 풍자적하여 바람직한 사회가 오기를 기대한다. 특히 여러 편의 사설시조를 통하여 모순된 현실을 풍자한다. 그런데 사설시조의 전통은 풍자보다는 해학적인 것에서 선조들의 넉넉한 마음을 보여왔음을 돌아볼 때, 시인은 불의를 물리치고자 하는 강렬한 의식을 지닌 것으로 느껴진다. 개인적인 삶보다는 한민족 공동체의 바람직한 길을 모색하여 길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소원인 통일에 대해서는 어떤 이유, 명분을 떠나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의식이 시집에서 큰 물줄기로 흐르고 있다. 이 공통체 의식이 바탕이 되어 사회적 약자, 사회적 모순, 자아성찰이 이루어지고 있어 독자들에게도 깨달음을 주고 있다.

 

 

2. 통일의 기원

 

산과 산이 얼싸안아 산맥으로 우뚝 선다

물과 물이 손을 잡고 강으로 어우러진다

아리랑 아라리 고개

어깨춤에 꿈틀대는

 

한라서 백두까지 흰 옷자락 먼지 털며

칠십 년 가른 다리 단 하루에 건너간다

통일아 너를 부르면

동해물도 철썩인다

-하나와 하나전문

 

첫째 수에서는 산은 산맥으로 물은 강으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같은 배달겨레이면서도 인간은 남북으로 분단되었는데 강산은 하나라는 것이라며 인간과 자연을 대조하고 있다. 그래서 아리랑 고개를 넘고서 함께 어깨춤을 추는 날이 오기를 염원하고 있다. 둘째 수에서는 광복 후 분단 70, 또는 6.25 발발 이후 70년이 지났는데 지구상 어느 나라보다 더 먼 나라가 된 현실을 노래했다. 하루 만에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인데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통한이 서려있다. 이산가족의 한은 물론이려니와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또 분단의 현실 속에 살아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큰 모순인 것이다. 그래서 통일아하고 부르기만 해도 동해물도 철썩인다며 통일을 모두가 염원하게 만들고 있다.

 

 

에움길 넘나들던 느려서 시린 걸음

동트기 빌고 앉아 손바닥 닳아가던

한 소절 메나리조에

목이 메는 사람아

 

타들던 가슴 반쪽 잔기침 쿨럭이며

열흘을 앓다가도 먹은 귀가 틔는 소리

걷어낸 어둠을 살라

붉어지는 사람들

 

바람은 흘러흘러 광장으로 이어진다

풀뿌리 얼싸안는 녹슬지 않을 노래

푸른 물 맥박이 뛰는

손에 손이 등글다

-아리랑 DNA전문

 

이번 시집의 표제시이다. 아리랑은 우리 겨레의 한이 서려있는 노래가 아닌가. 아리랑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가 되는 것이다. 첫째 수에서는 메나리조목이 메는 사람이라며 동트기까지 빌고 또 비는 것은 하나가 되자는 염원일 것이다. 둘째 수에서는 어둠을 살라라고 하며 통일을 향한 어려운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기 시작한 것을 노래하고 있다. 셋째 수에서는 모든 겨레의 염원이 광장으로 흘러들고 있다. ‘바람풀뿌리는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 겨레를 은유하고 있다. “풀뿌리 얼싸안는 녹슬지 않을 노래는 결코 통일의 염원을 포기할 수 없다는 강인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리하여 이러한 마음이 모아져 메아리치는 것을 푸른 물 맥박이 뛰는/ 손에 손이 둥글다라고 하였다. ‘둥글다는 것은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모두가 강강술래를 즐기는 것을 연상시키고 있다. 통일을 염원하고 함께 노력하는 것을 아리랑이라고 상징하고 있다. ‘DNA’라고 하는 것은 언어와 핏줄과 역사가 하나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통일의 당위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여기에 어떤 이유가 없다. 그것이 환상으로 끝날지라도 언제는 꿈을 깨면 현실이 될 날이 있기에 아리랑 DNA’ 이 한마디로 시인의 할 말은 다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소원이 독립이던 발자취 찾아들면/ 정통성 입에 올리는 허상이 부끄럽다/ 뒤돌면 멀어질 것 같아/ 아리도록 주먹 쥔다”(임시정부청사셋째 수)라며 독립 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 앞에서 남북분단에서 정통성 입에 올리는 허상이 부끄럽다고 하고 있다.

 

들불로 활활 타던 맨발의 항쟁 있다

아린 주먹 불끈 쥔 채 못다 푼 동학농민

사초에 불리지 못한 그날 다시 꺼내 본다

 

폭정에 일어섰다 폭도로 낙인찍힌

숨어서 지켜보다 하나 둘 잊혀져 간

기념관 벽에서 뵙는 날 선 시대 서사들

 

괭이 대신 죽창을 든 그날의 핏빛 절규

우금치 석대들녘 검붉도록 내달렸다

이 땅의 꽝꽝 언 겨울 흔들리며 봄은 오고

 

죽어서도 못 아뢰던 할아버지 그 함자를

이젠 편히 가시라 훈장으로 걸어놓고

아직도 남은 왜바람 부릅뜨고 지켜본다

-진행 중전문

 

화자의 할아버지는 동학농민혁명에 가담하였다가 폭도로 몰려 죽어서도 함자를 아뢰지 못한 애통한 사연을 담고 있다. “들불로 활활 타던 맨발의 항쟁 있다는 표현은 그날의 항쟁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 그날의 혁명은 끝난 것이 아니라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하여 시제를 붙인 것이다. 풀뿌리들의 진정한 해방의 날을 염원하고 있다. “아직도 남은 왜바람 부릅뜨고 지켜본다라고 하여 왜바람을 지금도 경계하고 있다고 한다. 친일파 청산에 대한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위정자들이 바뀌어도 민중들의 고통은 쉽게 물러가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약자들에 대한 연민이 크게 나타난 작품들도 여러 편 보인다.한때에서는 누구든지 환한 꽃띠 그런 때 없었을까라고 위로하고 있다. 변명에서는 민중들을 쫓기는 참새 떼에 비유하고 있다.양말 트럭에서는 발 디딜 터 고르는 취준생 어깨 위로/ 즐비한 생의 무늬가 삭바람에 매달린다라고 청년들의 힘든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다.유감은 사설시조인데 감 농사가 풍년이지만 반값 헐값이라 읍내 장터에서 힘 없이 앉아 있는 노인들의 모습을 연민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감꼭지 문드러지는 늦가을이 불덩이다라며 종장에서 상징적으로 처리하고 있다.꼬리연에서는 대가족을 거느리며 많은 자녀들을 키워 성장시킨 오늘날의 노인 세대들을 줄 끊어진 어르신네 허공이 가파르다라고 줄 끊어진 연에 비유하고 있다. 이밖에도 사설시조천형이 바람은 소록도를 기행하면서 그 작은 사슴섬엔 진실을 지우려는 알아도 말 못하는 천형의 바람뿐이었다라며 진실이 감추어진 것에 대한 양심 고백을 하고 있다.흔들리다에서는 가진 자 욕심 앞에 남은 건 얼룩 자국이라며 약자들에 대한 연민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현실비판적인 내용으로는 사설시조시각차이에서 삼삼오오 안경을 낀 많고 많은 눈높이들 똑같은 일을 두고 보는 법이 다른 건지 한쪽은 참 잘했다 다른 쪽은 대역죄라 사죄하라! 물러나라! 삿대질이 일상이네 눈이 커도 눈 작아도 있는 대로 읽지 못해 보이는 겉만 보고 편을 먹는 저 사람들이라며 남남분열로 혼탁한 오늘날의 현실을 잘 직시하고 있다. 화자는 있는 대로객관적으로 바라볼 것을 주문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중도(中道)를 강조하고 있다. 대방광불화엄경에서 이변(離邊)’를 떠나야 중도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란 치우침을 말한다. 중도는 양쪽을 다 떠남과 동시에 양쪽을 다 수용하는 것이 진짜 중도라고 한다. 우리 사회의 위정자들은 자신이나 자신의 세력은 선()이고 상대는 악()또는 적폐라고 하는 것은 자신들이 선인 동시에 악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사고에서 유래하고 있다. 3조 승찬의 신심명에서 미워하고 사랑하지 않으면(但莫憎愛)”하면 지극한 도(중도)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시각차이에서 편으로 나뉘어 있는 이상 옳고 그름에 대한 의미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최고 지도자가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극단적인 갈등이 끝이 없는 것이다. 지도자가 한쪽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인간 세상에서 어느 편이 완전 틀렸거나 완전하게 맞는 주장은 있을 수 없다.

 

 

3. 서정의 꽃

 

막사발이라 불리던 애틋한 그들 선택

둘이서 하나 되는 마디를 들춰보면

잡은 손 다듬어가는 부부라는 둘레다

 

순하게 뭉갠 시간 달의 사랑 차오른다

매무새 가다듬은 내력이 떨려오고

껴안은 금실 앞에는

달빛도 넉넉하다

-달항아리전문

 

달항아리를 노래한 시인들은 많다. 그러나 달항아리를 만드는 과정을 부부가 되는 것에 비유한 것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참신한 비유다. 서양의 추상화가들의 작품보다 조선의 달항아리는 500년 앞 선 것인데 서양의 추상화가들도 극찬하는 작품이 아닌가. 두 개의 큰 사발을 하나로 붙여 만든 것이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계로 찍어낸 것과는 다른 부드러운 미감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두 개의 사발을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부부가 되는 과정에 비유하고 있으니 시인의 안목이 대단한 것이다. 그리고 껴안은 금실 앞에는/ 달빛도 넉넉하다라며 마음의 여유마저 보이고 있다.

최성아 시인의 이번 시조집에서 현실 문제를 바라보는 작품들에서도 은유로써 시적 형상화의 높은 성취를 이루고 있지만, 달항아리에서 오히려 더 높은 시적 성취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시란 서정시가 본령이가 때문이다. 서정시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감동을 줄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결을 같이 하는 작품으로리모델링에서 내 안의 거친 결도 대패로 밀어내면이라며 리모델링 한다는 건 시든 꽃에 물 주는 일이라고 하고 있다. 화자 역시 콩깍지 눈먼 시간이/ 둥근 액자에 피고 있다라며 행복에 젖지 않는가. 꽃을 피우는 그 마음이 독자들에게 무한한 감동을 주는 것이다.

이정표에서는 나이를 먹는 것은 뱉는 말 모서리 갈고/ 듣는 말 가장자리 거친 면 삭이는 일/ 늦은 밤 귀를 후빈다/ 눈 감다가/ 다시 뜬다라며 말 모서리를 갈고’, ‘말 가장자리 거친 면 삭이는 일이라면서도 귀를 다시 후비고’ ‘눈 감다가 다시 뜬다라며 아직도 감정을 완전히 가라 않히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갓밝이 비쳐 드는 창/ 잊힌 길을 벼린다라고 하여 현실에 눈을 감지 못한다. 당연한 것이다. 의식이 잠들어버린다면 어찌 지성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뱉는 말 모서리를 갈고분도 삭이면서세상을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 바로 보려고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세상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돌아보는 화자의 태도가 독자들에게도 잠든 의식을 깨우게 한다.

숲을 보는 일에서는 편견이 착 달라붙은 위태로운 안목들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나무의 흠집을 찾기보다 숲을 보라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산들을 알고 보면 명산이라는 것이다. “지척이 명산인데 산인 줄 몰랐을까/ 낮은 곳 아우르며 하늘을 떠받치는데/ 새소리 귀를 세우는 산등성은 푸르다라며 주변 현실에 대한 대긍정이 일어나고 있다. 세상 모든 존재가 서로 연관이 되어 있다는 화엄의 사상이 여기서 꽃을 피운 것이다.초록보살에서 이파리 하나에도 경전의 손을 가졌네/ 닦고 있는 속다짐이라고 화엄의 세계를 노래하고 잇지 않은가.별이다에서는 구절초를 아래 위 아우르는 구절초 꽃별 무리라고 서정의 꽃을 피우고 있다.수국집 앞에 있는 수국을 바라보면서 잊고 지낸 첫사랑이 집 앞에 서성인다라며 변형묘사를 하고 있다. 독자들에게 첫사랑의 떨림을 회상하게 하는 힘이 있다.

 

 

4. 반전

 

최성아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통일의 염원을 크게 노래하였다. 우리 겨레는 아득한 옛날부터 한민족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한마디로 하면 아리랑 DNA’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마음을 갖게 된 것은 최성아 시인은 풀뿌리로 상징하고 있는 민중들이 밝고 희망찬 세상에서 살기를 기원하기 때문이다. 동학농민혁명,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 해방 후의 갈등, 현재의 극명한 남남분열 등의 내면에는 민중의 고통이 밑바탕이 되어 있다. 그래서 그들의 고통을 들어주는 것을 염원한 것이다. 그것이 통일로 압축된다. 그래서 연시조로 사설시조로 현실 문제를 자세하게 바라보면서 해결책을 찾기도 했다. 따뜻한 마음씨에서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현실을 망각한 문학이라면 자신의 위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겉으로 지나치게 드러나면 감동이 반감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문제를 최성아 시인은 은유와 상징으로서 극복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가슴으로서 쓴 시라기보다 머리로 쓴 시들이 많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그런데 오히려 순수 서정시에서는 작품 수는 적지만 오히려 서정의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고 본다. 시란 보편적인 감정과 정서를 노래할 때 감동적인 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현실적인 문제와 서정의 문제에서 다 같이 꽃을 피운 이번 시조집은 큰 의미가 있다.반전에서 송골매박차고 다시 오른다고 했듯이 앞으로도 힘차게 시조의 하늘을 날아다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