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으로 그려낸 한 폭의 수묵화
-김임순 시조집 『비어 있어도』
김 우 연
1. 비움의 미학
김임순 시인은 경남 창녕 출생으로 2013년《부산시조》및《시와 소금》으로 등단하였다. 제2시조집『비어 있어도』(2018)는 비움으로 그려낸 한 폭의 수묵화처럼 부드러우면서도 그윽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 화자의 목소리는 조용하면서도 우리의 삶이 무엇인가를 돌아보게 하여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 1980년대의 예술이 부정적인 드러냄으로서의 연대감 속에서 형성·발전되어 가는 것에 비판을 가한 이기철 교수는 “이성복의 시는 거의 현실에 대한 사시안적인 눈과 부정적인 드러냄의 미학에 몰입되어 있다”라며 ‘시는 언제나 보편적인 가치에로 귀속된다’는 일반적인 명제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조언한 바 있다. 그래서 김임순 시인은 현실문제도 냉철하게 보면서도 서정시의 본령에 충실하여 시조의 격조를 한층 높이고 있다.
이러한 부드러움의 바탕에는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 때부터 성당을 다니면서 종교적인 가르침이 시인의 삶의 나침반이 된 것 같다. 그래서 항상 ‘가난한 내일’을 준비하는 신앙인이자 생활인으로서의 명상들이 시로 형상화된 것으로 보인다.
2. 비움
폭포를 견뎌 낸
시냇물의 저 맑은 얼굴
서늘한 소용돌이
눈물도 다 쏟아내고
비운 속
하늘을 담아
솔잎 하나 데려간다
-「시냇물」전문
‘시냇물’은 화자의 삶을 비유한 객관적 상관물이다. “시냇물의 저 맑은 얼굴”은 청년기 또는 젊은 시절에 폭포의 아픔을 이겨낸 결과이다. “눈물도 다 쏟아내고” 도달한 원숙경이다. “비운 속/ 하늘을 담아”내기까지 고통과 눈물의 삶을 승화시킨 것이다. 그리하여 시냇물은 늘 푸르고 향기로운 ‘솔잎’을 품고 가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의 단시조로써 우리들의 삶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놀랍다. 온갖 고통을 이겨내고 맑은 얼굴을 짓는 담백한 모습이 독자들에게 오히려 울림이 크게 다가온다.
소나기/올까말까/꽃들은/ 필까말까// 너를 두고 넘겨보며/ 애가 타던 날들이// 어느덧/ 바람의 여백/ 찰랑이는 여기까지
-「비어 있어도」전문
이번 시집의 표제시이다. 초장과 중장은 화자가 하나의 꽃송이나 과일이나 곡식이 여물기까지 애태우며 기다리는 심경을 표현하고 있다. 종장에선 ‘어느덧’이라면서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시간은 흘러가게 되어있으며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바람의 여백/ 찰랑이는 여기까지”라며 관조의 태도로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게 된다. ‘찰랑이는’이란 말 속에는 알갱이를 맞이하게 된 감사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을 성찰한 것이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남보다 더 소유한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감사와 만족의 태도에서 오는 것이다. 허공은 비어 있기 때문에 모든 존재를 다 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처럼 마음을 비울 때에 오히려 충만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시냇물」과「비어 있어도」는 인생에 대한 시인의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3. 사모곡
제대에서 서너 걸음
늘 앞줄에 자리한
모시 적삼
미사포 가린
여인의 등이 낯익다
두 손을
꼭 맞잡고서
노래하던 내 어머니
-「창녕 성당」
시인의 고향 창녕은 육신의 고향일 뿐만 아니라「창녕 성당」을 통하여 정신의 뿌리가 가톨릭에 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에서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어머니는 나의 육친이지만 천국을 향하여 “두 손을/ 꼭 맞잡고서/ 노래하던 내 어머니”이기 때문에 기쁨으로 충만한 여인일 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내 귓속엔」에선 “목단꽃, 저래 곱다 혼자서 우째 다 보노”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지금도 쟁쟁하다고 하고 있다. 지금은 아파트나 주변 동네 공원만 해도 천국처럼 꾸며져 있어 아름다운 꽃들을 볼 때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깊어갈 것 같다.「창녕 성당」과 「지금도 내 귓속엔」은 사모곡이다. 담담하게 그려내면서도 그 그리움의 깊이는 그윽하다. 이밖에도「한가위 무렵」,「동치미」등에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한 폭의 수묵화처럼 그리고 있다.
4. 오늘
어제는/ 꽃이 졌다/ 급한 전갈 굽이친다// 닿고 닿인/ 찰나의 숨/ 지금의 나는 어디에?// 오늘을/ 산다는 것은/ 가난한 내일을 닦는 일
-「오늘」전문
“어제는 꽃이 졌다”는 것은 상징이다. 꽃이 졌을 수도 있고 가까운 사람의 사망일 수도 있다. “급한 전갈”이란 말을 보면 후자일 가능성은 크다. 누구나 가까운 사람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 삶과 죽음이란 무엇일까 돌아보게 된다. 그만큼 충격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애착의 삶이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화자는 생명이란 “찰나의 숨”에 담긴 것으로 우리의 인생이 길다면 길지만 죽음 앞에서 ‘찰나’적인 것으로 느낀다. 그리하여 “오늘을 산다는 것은/ 가난한 내일을 닦는 일”이라고 깨닫게 된다. “닦는 일”이란 수행이 아닌가. 수행의 결과는 “가난한 내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누가복음에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라고 하고 있고, 시편에서도 “여호와여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주의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라고 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가난한 내일’이란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죽음 앞에서 경건한 깨달음은 우리들의 삶의 자세를 바꾸거나 더욱 바람직한 삶을 굳건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하여 새벽 미사를 가면서도 시간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
새벽 미사 가는 길
차오르는 어둠의 두께
초록의 시간 두드리며
그 누가 지나갔나
천지간
날개 펴놓은
쉼 없는
순례의 길
-「공전」전문
지구의 자전으로 밤낮이 생기지만, 위 시조의 제목은 ‘공전’이다. 행성들이 공전을 하듯이 우리들은 저 행성과 같이 정해진 길로 공전하는 ‘순례자’와 같다는 것이다. 절대자에 대한 순응이요 때가 될 때까지 그 순례의 길을 떠나겠다는 것이다. 마치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을 연상케 한다. 그 길은 성스러운 길이며 진리의 길이며 비움의 길인 것이다. 시인의 삶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시간에 대해서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자 불행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을 비우고 절대자에 순응하는 자라면 축복도 불행도 아니고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화엄경에서는 시간의 본질에 대해서 ‘가고 옴도 없고 또한 머무름도 없다(無去無來亦無住)’고 한다. 법성게에서는 ‘길고 긴 시간도 한 찰나 사이에 다 포함되어 있다(一念卽時無量劫)’고 한다. 한 찰나의 생각에서 온갖 행불행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찰나의 숨’을 생각하는 시인과는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는 것 같다. 한 찰나에도 무수한 생각이 오가는 우리들은 ‘순례자’처럼 고통과 번민을 이겨내고 끊임없이 ‘가난한 자’가 되겠다는 영적인 변화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 “천지간/ 날개 펴놓은”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변형묘사로 표현한 것이 돋보인다.
5. 현실문제
쪼개고 쪼개어 논/ 망루 높은 고시텔/ 벼린 저 화살촉 누구를 거냥했나/ 봄날의/ 고개 숙인 청춘/ 지하로 숨어든다
-「맨발의 청춘」부분
학교를 졸업해도 취업문에 짓눌린 오늘날의 청춘들을 애처롭게 바라본 작품이다. 이것은 어느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기성세대들은 다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그렇다고 시인들은 시로써 말해야 하고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위의 시처럼 목소리를 낮출 때 오히려 공감을 주게 된다. 이런 면에서 성공한 작품이다.「울력」에서는 서울역의 어느 노숙자가 죽게 된 것을 소재로 쓴 작품으로 양극화 시대의 그늘을 노래하였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어느 누구를 향한 분노는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위정자들이 중심을 잡고서 해결하고자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분열을 시켜서 자신들의 실정(失政)을 감추며 권력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것은 국민들을 먼저 보는 눈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념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을 위해서 이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서 이념을 고수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지지자들은 집단최면 현상으로 듣고자 하는 것만 듣고, 보고자 하는 것만 보는 세상이 되었다. 진정한 지도자가 나온다면 불가에서 말하는 중도(中道)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둘 다 아우르는 것이 중도이다. 국민들 역시 마찬가지다. 옳은 것은 옳다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해야 하는데 자신들 패거리가 하면 무조건 옳다고 하는 세상이다. 한 예로 최근 서울시장 성범죄 후 자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들만 봐도 양극화는 절정을 이루고 있다.
김임순 시인은 이러한 세상에 ‘비움’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을 먼저 성찰하고 진리와 순리를 따르는 길을 가면서 더 밝은 미래를 지향하고 있어 감동을 주고 있다.
6. 수묵화
김임순의 제2시조집『비어 있어도』를 간단히 살펴보았다. 담백한 수묵화와 같이 부드러우면서도 깊은 공감과 감동을 일으키게 하는 힘이 있다. 그것은 자신을 먼저 성찰하는 종교적인 바탕이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데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시인은 비유와 상징을 통하여 독자들에게 울림을 주려고 애쓰는 자이다. 직접 설명한다면 독자들이 생각할 여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이번 시집은 크게 성공을 거두고 있다.
연시조와 단시조에서 묘사와 진술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효과를 올리고 있다. 그런데 단시조에서 우리들의 복잡한 삶을 쉬운 이미지로 응축시켜서 많은 내용을 함축하도록 표현하는 능력은 김임순 시인의 특유한 빛깔이라 본다. 마치 비움으로 그려낸 한 폭의 수묵화와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앞으로도 “신새벽/ 억겁의 맺힌 숨결/ 물안개로 풀어내는 늪”(「우포늪」종장)처럼 끝없이 부드럽고도 신비한 생의 비밀을 물안개처럼 풀어내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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