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의 생성과 가치 - ‘불균수지약(不龜手之藥)
쩍쩍 갈라져 금이 생긴 것을 균열(龜裂)이라고 한다. 거북이 등에 있는 ‘갈라진 무늬 때문에 거북 귀(龜)자가 ‘갈라질 균’도 되는 모양이다. 《장자》에 ‘불균수지약(不龜手之藥)’ 이야기가 나온다. 손이 갈라지지 않는 약이란 말인데, 정확하게는 손 트지 않는 약이다. 날씨가 추워지고 손에 기름기가 적으면 잘 트게 된다. 2천여 년 전에도 이렇게 손 트는데 바르는 약이 있었던 모양이다.
송(宋)나라에 손이 트지 않는 약을 잘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그 집은 대대로 고운 솜을 물에 씻어 말리는 일을 해왔다. 나그네가 이 말을 듣고 그 약 만드는 비방에 1백 금에 사겠다고 하였다. 그 사람은 가족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나는 대대로 솜 빠는 일을 해왔는데, 그 수입은 불과 두어 금밖에 안 된다. 지금 이 비방(祕方)을 1백 금에 팔면 하루아침에 부자가 될 수 있다. 비방을 팔겠다.”
비방을 얻는 나그네는 오(吳)나라 왕으 찾아가 약효를 설명했다. 마침 겨울에 월나라와 전쟁이 벌어졌다. 오나라 왕은 이 사람을 장수로 삼았고, 그는 월나라 사람들과 물에서 싸워 크게 이겼다. 손이 트지 않는 약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오나라 왕은 그에게 상으로 땅을 내려 주었다.
똑같이 손 트지 않는 약을 만드는 방법을 가지고 있었으나 한 쪽은 넓은 땅을 얻었고, 다른 한 쪽은 여전히 솜 빠는 일을 면하지 못하였다. 같은 것이라도 용법이 달랐기 때문이다. (중략)
조선시대 허종(許琮, 1434~1494)은 풍채가 좋고 견문이 넓은 인물이었다. 성종 19년(1487)에 중국에서 동월(董越)과 왕창(王敞)이 사신으로 조선에 왔는데, 허종이 영접사(迎接使)로 의주(義州)까지 나갔다. 이때 명나라 사신들은 허세(虛勢)를 부리며 우리나라를 업신여겼다. 그러나 허종을 대하자 그들은 그의 풍모(風貌)에 눌려 허리를 굽혔다. 저녁에 이야기할 때 왕창이 촉(蜀)나라를 여행한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늘어놓았다. 듣고 있던 허종이 촉나라로 가는 길을 일일이 지적하여 그 근처의 지리와 산천 경지, 물길의 변화를 손바닥 보듯이 이야기하였다. 가 보지는 않았지만 책에서 읽은 것이다. 이때야 중국 사신은 허종의 손을 잡고, 만권(萬卷)의 책을 읽지 않고는 도저히 이렇게 알 수 없는 일이라 하며 칭찬하였다. 그 뒤로 명나라 사신들이 오면 허종의 안부(安否)를 물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여행을 하고 산천을 구경하지만 개인의 경험이나 추억에 그칠 뿐 유용(有用)한 정보(情報)가 되는 일이 드물다. 설악산(雪嶽山)에 한 번 갔다온 사람이 설악산 지도를 그리기란 어렵다. 정보는 경험(經驗)을 정리(整理), 분석(分析), 종합(綜合)하는 가공의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보는 실물(實物)이 아니다. 그러나 고기를 주기보다는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라는 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고기를 잡아서 팔지만 고기 잡는 ‘방법(方法)’, 그것을 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지식이나 정보의 가치(價値)를 몰랐기 때문이다. 개인적 경험이나 견문(見聞)이 정보 가치를 가질 수 있도록 가공하는 방법을 익힐 필요가 있다.
《장자莊子》<소요유逍遙遊>
이현구 지음,『고전의 품격』, 동화문고, 2014, 477~479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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