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
안도현 <연어>(문학동네,1996)에서
“어차피 삶이란, 시험의 연속입니다. 우리의 미래를 보장받는 길은 그 시험을 슬기롭게 통과하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폭포는 자연이 우리에게 내린 시험일 뿐입니다. 옛말에, 하면 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번에 안 되면 두 번에, 두 번에 안 되면 세 번, 네 번이라도 우리는 도전하는 연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선생님, 도전해야 한다는 건 누구나 다 압니다. 그 방법을 우리는 듣고 싶은 거에요.”
선생님의 말 사이에 끼여든 것은 은빛연어였다. 그의 당돌한 행동에 선생님은 잠시 흠칫, 하더니. 계속 말을 잇는다.
“나약하고 게으른 연어는 낙오자가 됩니다. 모든 것이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 저기 저 등굽은연어를 좀 보십시오. 저 등굽은 연어는 자신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선생님!”
(중략)
“등굽은 연어가 병을 앓고 있는 것은 자신의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에요. 등굽은연어는 인간이 흘려보낸 물 때문에 저렇게 된 것입니다. 둥이 굽었기 때문에 그는 지금 무척 고통스러워하고 있어요. 헤엄치고 싶은데 헤엄치지 못하는 고통보다 더 아픈 게 있어요. 그 아픔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셨나요? 남을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주지 못하는 아픔 말이에요. 그게 등굽은연어의 아픔이라구요.”
(중략)
‘선생님은 교훈을 받아들이는 일만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는 단풍잎들이 강을 수놓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교훈을 생각할지 모른다. 그가 만약에 이름없는 꽃을 하나 발견했다면 그는 아마 식물도감부터 뒤적일 것이다. 그 꽃이 몸에 해로운지 이로운지를 먼저 알려고 할 테니까. 그는 별을 바라보면서도 거기서 교훈이 될 만한 일을 찾을지 모른다. 꽃은 꽃대로 아름답고 별은 별대로 아름답다는 것을 그는 모르는 것이다. 등굽은연어는 비틀어진 등으로 어떻게든헤엄을 치려고 한다. 그 고통이 왜 아름다운 것인지, 그 상처가 왜 아름다운 것인지 선생님은 모른다. 선생님은 선생님이니까.’ (92∼94쪽)
은빛연어는 눈맑은연어가 염려스럽다. 그녀도 알을 많이 품은 연어 중의 하나다. 눈맑은연어가 기어리 폭포를 뛰어오르겠다고 버틴다.
“너는 알을 낳아야 하잖아?”“
“나는 네가 한 말을 잊을 수가 없어. 쉬운 길은 길이 아니라고, 너는 말했지. 거슬러오르는 기쁨을 알려면 주둥이가 찢어지는 상처를 입어봐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그것을 뱃속에 있는 알들에게 가르치고 싶어.”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108쪽)
은빛연어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연어가 알을 낳는다는 것은 기나긴 생을 마감한다는 뜻이다. 은빛연어는 밀려오는 두려운 생각 때문에 몸이 바들바들 떨리는 것을 느낀다. 그는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다.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눈맑은 연어와의 사랑이 끝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초록강과의 완전한 이별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127쪽)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는 입을 딱 벌린 채 나란히 서서 한참을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가 이루어낸 이 세상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풍경이었다. 또한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장엄하고, 가장 슬픈 풍경이기도 하였다.
이 한 장의 풍경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오 년 전 연약한 어린 연어의 몸으로 상류에서 폭포를 뛰어내렸다. 이 한 장의 풍경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바다라는 커다란 세상 속으로 거침없이 헤엄쳐갔다. 이 한 장의 풍경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북태평양 베링 해의 거친 파도를 이겨냈다. 이 한 장의 풍경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줌음을 무릅쓰고 초록강을 찾아 돌아왔다. 바로 이 한 장의 풍경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수많은 죽음을 뛰어넘었고, 이제 그들 스스로 거룩한 죽음의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산란을 마치면 그들은 비로소 영혼이 없는 몸이 되어 물 위로 떠오를 것이다. 삶의 모든 에저지를 세상 속에 다시 돌려주고 그들은 하얗게 변한 가벼운 육체로 떠오를 것이다.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
그들은 눈을 감기 전에 서로를 마지막으로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저 알들 속에 맑은 눈이 들어 있을 거야.”
“ 그 눈들은 벌써부터 북태평양 물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을지도 몰라.”
라고.
그리고.
초록강에는 겨울이 올 것이다.
겨울이 오면 강은 강물이 얼지 않도록 얼음장으로 만든 이불을 덮을 것이다. 강은 그 이불을 겨우내 걷지 않고 연어 알을 제 가슴 속에다 키울 것이다. 가끔 초록강의 푸른 얼음장을 보고 누군가 지나가다가 돌을 던지기도 할 것이고, 그때마다 강을 쩡쩡 소리내어 울 것이다.
봄이 올때까지는조심하라고, 가슴 깊은 곳에서 어린 연어가 자라고 있다고.(128∼132쪽. <연어> 끝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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