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자료

안도현, <연어>에서

가산바위 2017. 4. 7. 09:25


2017-1 연어(안도현).hwp



2017-1

안도현 <연어>(문학동네,1996)에서

 

어차피 삶이란, 시험의 연속입니다. 우리의 미래를 보장받는 길은 그 시험을 슬기롭게 통과하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폭포는 자연이 우리에게 내린 시험일 뿐입니다. 옛말에, 하면 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번에 안 되면 두 번에, 두 번에 안 되면 세 번, 네 번이라도 우리는 도전하는 연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선생님, 도전해야 한다는 건 누구나 다 압니다. 그 방법을 우리는 듣고 싶은 거에요.”

선생님의 말 사이에 끼여든 것은 은빛연어였다. 그의 당돌한 행동에 선생님은 잠시 흠칫, 하더니. 계속 말을 잇는다.

나약하고 게으른 연어는 낙오자가 됩니다. 모든 것이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 저기 저 등굽은연어를 좀 보십시오. 저 등굽은 연어는 자신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선생님!”

(중략)

등굽은 연어가 병을 앓고 있는 것은 자신의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에요. 등굽은연어는 인간이 흘려보낸 물 때문에 저렇게 된 것입니다. 둥이 굽었기 때문에 그는 지금 무척 고통스러워하고 있어요. 헤엄치고 싶은데 헤엄치지 못하는 고통보다 더 아픈 게 있어요. 그 아픔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셨나요? 남을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주지 못하는 아픔 말이에요. 그게 등굽은연어의 아픔이라구요.”

(중략)

선생님은 교훈을 받아들이는 일만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는 단풍잎들이 강을 수놓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교훈을 생각할지 모른다. 그가 만약에 이름없는 꽃을 하나 발견했다면 그는 아마 식물도감부터 뒤적일 것이다. 그 꽃이 몸에 해로운지 이로운지를 먼저 알려고 할 테니까. 그는 별을 바라보면서도 거기서 교훈이 될 만한 일을 찾을지 모른다. 꽃은 꽃대로 아름답고 별은 별대로 아름답다는 것을 그는 모르는 것이다. 등굽은연어는 비틀어진 등으로 어떻게든헤엄을 치려고 한다. 그 고통이 왜 아름다운 것인지, 그 상처가 왜 아름다운 것인지 선생님은 모른다. 선생님은 선생님이니까.’ (9294)

 

은빛연어는 눈맑은연어가 염려스럽다. 그녀도 알을 많이 품은 연어 중의 하나다. 눈맑은연어가 기어리 폭포를 뛰어오르겠다고 버틴다.

너는 알을 낳아야 하잖아?”“

나는 네가 한 말을 잊을 수가 없어. 쉬운 길은 길이 아니라고, 너는 말했지. 거슬러오르는 기쁨을 알려면 주둥이가 찢어지는 상처를 입어봐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그것을 뱃속에 있는 알들에게 가르치고 싶어.”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108)

은빛연어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연어가 알을 낳는다는 것은 기나긴 생을 마감한다는 뜻이다. 은빛연어는 밀려오는 두려운 생각 때문에 몸이 바들바들 떨리는 것을 느낀다. 그는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다.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눈맑은 연어와의 사랑이 끝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초록강과의 완전한 이별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127)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는 입을 딱 벌린 채 나란히 서서 한참을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가 이루어낸 이 세상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풍경이었다. 또한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장엄하고, 가장 슬픈 풍경이기도 하였다.

이 한 장의 풍경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오 년 전 연약한 어린 연어의 몸으로 상류에서 폭포를 뛰어내렸다. 이 한 장의 풍경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바다라는 커다란 세상 속으로 거침없이 헤엄쳐갔다. 이 한 장의 풍경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북태평양 베링 해의 거친 파도를 이겨냈다. 이 한 장의 풍경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줌음을 무릅쓰고 초록강을 찾아 돌아왔다. 바로 이 한 장의 풍경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수많은 죽음을 뛰어넘었고, 이제 그들 스스로 거룩한 죽음의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산란을 마치면 그들은 비로소 영혼이 없는 몸이 되어 물 위로 떠오를 것이다. 삶의 모든 에저지를 세상 속에 다시 돌려주고 그들은 하얗게 변한 가벼운 육체로 떠오를 것이다.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

그들은 눈을 감기 전에 서로를 마지막으로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저 알들 속에 맑은 눈이 들어 있을 거야.”

그 눈들은 벌써부터 북태평양 물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을지도 몰라.”

라고.

그리고.

초록강에는 겨울이 올 것이다.

겨울이 오면 강은 강물이 얼지 않도록 얼음장으로 만든 이불을 덮을 것이다. 강은 그 이불을 겨우내 걷지 않고 연어 알을 제 가슴 속에다 키울 것이다. 가끔 초록강의 푸른 얼음장을 보고 누군가 지나가다가 돌을 던지기도 할 것이고, 그때마다 강을 쩡쩡 소리내어 울 것이다.

봄이 올때까지는조심하라고, 가슴 깊은 곳에서 어린 연어가 자라고 있다고.(128132. <연어> 끝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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