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의 자규시
이 관풍헌 빈 마당 한쪽 모퉁이 길가 쪽에는 자규루(子規樓), 강원도 유형문화재 26호)라는 2층 누각이 돌담 속에 갇혀 있다. 이는 본래 관아의 동헌 누각으로 세종 10(1428)에 영월군수 신숙근이 창건하여 매죽루(梅竹樓)라 불렀는데 단종이 이 누각에 올라 자규를 노래한 시(詩)와 사(詞)글 각기 한 수씩 지은 뒤로는 자류루라 부르게 된 것이다. 단종의「자규시」는 정말 애처롭다.
한 마리 원한 맺힌 새가 궁중에서 나와
외로운 그림자로 푸른 숲에 깃들었다
밤마다 억지로 잠들려 하나 잠 이루지 못하고
해마다 한스러움 끝나기를 기다렸지만 원한은 끝나지 않네
자규 울음 끊어진 새벽 멧부리에 조각달만 밝은데
피를 뿌린 것 같은 골짜기에 붉은 꽃이 지네
하늘은 귀머거린가 아직도 애끊는 나의 호소를 듣지 못하고
어이하여 수심 많은 이 사람 귀만 밝게 했는가
일자원금출제궁(一自寃禽出帝宮)
고신쌍영벽산중(孤身雙影碧山中)
가면야야면무가(假眠夜夜眠無假)
궁한년년한불궁(窮恨年年恨不窮)
성단효잠잔월백(聲斷曉岑殘月白)
혈류춘곡낙화홍(血流春谷落花紅)
천농상미문애소(天聾尙未聞哀訴)
호내수인이독총(胡乃愁人耳獨聰)
불과 17세의 나이에 이토록 애절한 시를 지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아픔이 그만큼 컸기 때문에 명시가 나온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본래 아픔이 승화되어야 예술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단종은 매우 냉정하고 조신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것만 같다.
단종이 자주 올랐다는 이 자류루는 1605년 큰물로 무너지고 그뒤 자취마저 사라졌는데 200년 가까이 지난 1790년이 되어서야 강원도 관찰사 윤사국이 단종의 혼이 서린 자류루가 없어진 것을 방치할 수 없다며 옛터를 찾아 새롭게 세운 것이라고 한다.
<질문> *령(岺)-재령, 잠(岑)-봉우리 : 어떻게 발음?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8』(남한강편), 창비,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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