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행복한 일보다는 불행을 당해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톨스토이(Leo Tolstoy, 1828~1910)가 『안나카레리나』에서 썼듯이,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각 다르다.” 이것이 인간이 행복한 이야기보다는 불행한 이야기를 통해서 더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이유다. (146쪽)
남북이 통일되어 대륙 문명과 해양 문명이 연결될 때 한반도 문명의 진화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날 것이다. (147쪽)
‘4․19 시민혁명’이 없었다면 ‘5․16 군사정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므로 ‘4․19’는 ‘5․16’의 머머니다. 학생들이 ‘4․19 시민혁명’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 현대사에 등장할 수 없었다. 이는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관계와 유사하다.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지 않았다면 코르시카 촌놈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프랑스 혁명’의 자식이 나폴레옹이 ‘프랑스 혁명’이 구체제를 종식시키고 건설한 공화국을 해체하고 스스로 황제가 됐다는 것은 역사적 아이러니다. 그런데도 프랑스인들은 나폴레옹을 프랑스에 영광을 가져온 위인으로 숭배한다. 그는 ‘프랑스 혁명’의 반항하로 태어났지만, 법 앞에 평등, 종교적 관용, 출생이 아닌 능력에 따른 출세와 같은 근대적 사회개혁을 완성했다.
한국의 나폴레옹은 박정희다. 나폴레옹이 ‘프랑스 혁명’을 배반했듯이, 박정희는 ‘4․19 시민혁명’이 성취한 민주정부를 전복하고 스스로가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전자가 프랑스 근대적 개혁을 완수했다면, 후자는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5․16’의 빛나는 업적이면에는 ‘4․19’가 이끌어낸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독재의 긴 그림자가 있었다. 1987년의 ‘6월 항쟁’은 ‘5․16’에 대한 ‘4․19’의 역전극이다. 성자의 그늘 속에서도 민주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라서 꽃을 피웠다.(136쪽)
김기봉, 「쿠오바디스, 코리아-대한민국의 진보에서 진화로-」, 철학문화연구소, 『계간 철학과 현실』111호(2016겨울),
김기봉 : 경기대학교 사학과 교수, 계간 철학과 현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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