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자료

꿈속의 여인

가산바위 2017. 5. 27. 21:30

 

 

꿈속의 여인

 

1809년 11월 16일밤, 다산은 평소처럼 공부를 마치고, 東菴(동암)의 한 칸 방으로 건너와 잠을 청했다. 꿈에 한 여인이 찾아와 말을 걸었다. 평소 같으면 어림없었을 텐데 꿈이라 그랬던지 마음이 자꾸 이끌렸다.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다가 욕망을 누르고 그녀를 물리쳐 보내면서 시를 한 수 지어주었다. 「11월 16일 다산 동암 淸齋(청재)에서 혼자 자는데, 꿈에 한 어여쁜 여인이 찾아와 장난을 걸었다. 나 또한 마음이 동했지만, 조금 있다 사절하여 보내며 절구 한 수를 주었다. 깨고나서도 몹시 또렷했다 十一月六日 , 於茶山東菴淸齋獨宿, 夢遇一妹來而嬉之, 余亦情動, 少頃辭而遣之, 贈以絶句. 覺猶了了 」

 

눈 온 산 깊은 곳에 한 가지 꽃이 피니

붉은 깁에 둘러싸인 복사꽃보다 낫다.

이 마음은 금강의 쇳덩이로 되었나니

풍로가 있다 한들 네가 나를 어이하리.

 

 

雪山深處一枝花(설산심처일지화)

爭似緋桃謢絳紗(쟁사비도획강사)

此心已作金剛鐵(차심이작금강철)

縱有風爐奈汝何(종유풍로내여하)

 

 

꿈속 여인의 추파에 잠깐 흔들린 마음이 부끄러웠던지 크게 도리질을 했다. ‘깊은 산 쌓인 눈 속에 네가 찾아왔구나. 붉은 복사꽃이 피었다 한들 너에게 견줄 수야 있겠는가? 하지만 내 마음은 금강으로 만든 쇠공이다. 풍로로 녹인다고 녹아 흐를 내가 아니다. 저리 물러가거라. 요망하다.’ 참 멋대가리 없는 시다. 하기야 여자를 모르고 산 세월이 8년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는 아직 마흔여덟의 팔팔한 나이였다. 안쓰럽고 민망하다.

 

정민, 『삶을 바꾼 만남-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문학동네, 2011, 344∼3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