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임
삶의 모든 시도들은 지금보다 더 나아지려는 율동이다. 그러다가 궁극적으로 완벽에 도달하고자 한다. 완벽함이라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변하지 않고, 흠결이 없으며, 유한에 갖히지 않으며, 치우침이 없는 균질(均質)의 절대 균형 상태라고 말한다. 플라톤(Platon, BC427~347)은 이런 세계를 관념의 틀로 구조화하고, 거기에 ‘이데라(Idea)’라고 이름을 달아 주었다. 그래서 완벽함을 표현하기로는 기하학적 원이 적격이다.
***
사람들에게 우주는 완벽한 것이다. 따라서 그 완벽을 인식할 수 있는 인간이 사는 지구를 오래 전부터 우주의 중심으로 간주했다. 이 단계에서 완벽한 우주의 구성물인 행성들이 원운동을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진실이었다. 그러나 당시 앞선 지성의 한 명인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는 감추어진 진실을 드러나게 해주었다. 행성은 원운동을 하지 않고 타원운동을 한다. 옛날 일이지만, 원에서 타원으로의 이행은 지성의 변화를 보여준다.
원은 기하학적 관념으로만 존재하는 조작된 진실일 뿐이다. 진실은 원이 아니라 타원이다. 완벽함은 원에 있지 않고 타원에 있다. 왜 그런가? 원에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이 타원에는 의미 있다. 바로 힘이다. 평면적이고 정지된 지성에게 ‘힘’은 포착되기 어렵다. 심지어는 힘이 작용하여 동작이 일어나는 활동을 지적인 정련의 모습에서 빼버리기도 한다. 어떤 존재에나 힘이 작용하면 절대 균형이 깨지고, 뒤틀림이 가미된다. 타원이 그렇다. 우주의 진실은 힘이 작동하는 타원에 더 잘 살아 있다. (184~185쪽)
동물이든 자객이든 인간이든 삶의 완벽함은 ‘적중’에서 나온다. 이 ‘적중’은 몸을 비틀어 꼬임의 상태로 스스로 몰고 가서 ‘동작’으로 생산되어야 만날 수 있는 최종 경지이다. 움직이는 세계에서 ‘적중’이라는 완성을 이루려고 한다면, 자신도 진동의 맥을 따라 함께 움직여주어야 하낟. 움직임은 불균형이고 동작이고 힘이다.(185~186쪽)
인간 활동의 핵심 동인은 생존이다.(186쪽)
생존을 도모하는 최초의 활동은 분류로 시작된다. 원초적으로 피아를 구분하고, 먹을 것과 먹지 못할 것을 가르며, 적대적인 것과 우호적인 것을 구별한다. 효율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이다.(186쪽)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인간은 은유를 통해서 세계를 넓혀간다. 세계를 넓혀주는 자가 바로 지배자가 아니겠는가.(187쪽)
DNA 이중 나선의 꼬임으로 인류의 유전정보가 확산된다는 왓슨(James Dewey Watson, 1928~)과 크릭(Francis Crick, 1926~2004)의 말이나, 세계는 대립된 두 가닥이 새끼줄 같이 꼬여서 계속 변화 발전한다는 노자(老子)의 말도 다 여기에 닿아 있다. 노자는 말한다; “새끼줄처럼 두 가닥으로 꼬여 있구나! 이 세계에는 구분하고 구별하는 기능을 하는 개념화 작업을 할 수 없다.”(繩繩兮! 不可名, 『도덕경』 제14장) 꼬인 세ㅖ, 이것이 진실이다. 진실한 자는 평면적으로 풀어지지 않는다. 전혀 관계없었던 무엇과 꼬이고 또 꼬이며 식민지를 넓혀 확장하고 또 확장해 나간다. 힘찬 모습이다.(187~188쪽)
최진석, 「꼬임」철학문화연구소, 『계간 철학과 현실』111호(2016겨울),
최진석 :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
'독서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옛 선비교육의 길에서(시간-역사관) (0) | 2017.06.06 |
|---|---|
| 마이산 부부시비 (0) | 2017.06.02 |
| 행복한 일보다 불행을 당해서 더 많은 것을 배움 (0) | 2017.05.30 |
| 꿈속의 여인 (0) | 2017.05.27 |
| 흥일리불약제일해(興一利不若除一害)-야율초재 (0) | 2017.05.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