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선비교육의 길에서(시간-역사관)
시간의 이해가 곧 역사관이다. 인간이 어떠한 시간관을 지니고 있느냐 하는 문제는 역사이해의 열쇠이다. 역사철학은 시간의 철학이다. 서양의 주된 시간관이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직선적 시간관임을 밝힌 바 있거니와, 직선적 시간관에서 오는 그들의 삶의 특징은 변증법적 논리/분석적 사고방식/ 고립적 인간관/ 종말론적 역사관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하여 한국의 주된 시간관은 원적(圓的) 시간관으로서 과거·현재·미래가 융합된 시간관을 지녔다. 따라서 한국인의 시간관은 단절이 아니라 연속이며, 고립이 아니라 조화(調和)이다.
유가철학에 나타나는 시간관은 위에서 열가한 바와 같이 順直線型(발전론적 역사관: 역사진화관), 逆直線型(복고론적 역사관: 역사퇴화관), 循環型(순환론적 역사관: 역사순환관)의 세 가지이다. (56쪽)
우리 나라 유학자로 칭자(稱子)되는 분이 거의 없는 까닭은 반드시 겸양에서가 아니라 이러한 역직선형(逆直線型) 역사관으로서의 문화적 말세론에 젖은 결과이기도 하다. (역사의 황금시대는 이미 지나간 삼대(三代)에 있었고 문화의 표준 역시 지나간 주대(周代)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는 동안 선주유학(先奏儒學)은 삶의 이상을 과거회귀에서 찾고자 하였다. 이것은 인간성의 고향회귀운동이고 왕패(王覇) 사상에서 정의의 실현자만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복고주의이다. 따라서 성인의 실현은 「불가기(不可期)」이다.) (57쪽)
주자가 역사의 필연법칙으로서 순환론을 주장한 데는 그의 강한 민족의식이 개재되어 있었다. 그에 의하면 유구한 중원(中原)의 역사에 있어서 일치일란(一治一亂)은 있었으며 때로는 이적(夷狄)의 지배 아래 놓인 바도 있었으나 결국은 이적 또한 마침내 중원문화(中原文化)에 동화흡수되고 말았다는 주장이다. 이민족의 침노로 송(宋)나라가 남천(南遷)하여 재조(再造)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역사적 현실에서 나온 역사관이라 할 수 있다.(57쪽)
퇴계 역시 그의 역사인식은「지나간 시간」(과거)에 있는 것이 아니라「기금」그리고 「다가올 날」(미래)에 있다고 보았다. 우리는 고인을 봇 봐도 그들이 가던 길은 언제나 <앞에> 있고, 후세를 기다려야 한다고 하였다.(57쪽)
“만일 여기에 정할 수가 없다면 후세의 주문공(朱文公)을 기다린 뒤에야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게 될 것입니다.)
흔히 유학은 과거지향성과 보수성의 학문이라고 하지만「계왕개래(繼往開來)」이기 때문에 계왕(繼往)은 개래(開來)를 위힌 빈사(賓辭)이고 온고(溫故)는 지신(知新)을 위한 것이며 己發은 미발(未發)의 현현(現顯)에 지나지 않는다.)(57쪽)
도덕이란 말은 길을 얻었다는 말이다. 길이란 무엇인가. 발자국이 모인(印처진) 것이 길이다. 道라는 글자는 머리(首)와 가는 것(走:착)이 합쳐서 만들어졌다. 머리는 이상이고 원리이고 본질이다. 그리고 가는 것(走)은 현상이고 방법이고 실천이다. 그러므로 道라는 글자는 유학사상의 핵심을 드러낸다. 서양의 Logos와는 다른 이론과 실천의 조화를 가리킨다. 공자는 교육적 인간상인 군자의 길을 가리켜서「문질빈빈(文質彬彬)」이라고 하였는데 이를 도(道)와 결부시키면 文 (삶의 형식, 곧 走)과 質(삶의 내용, 곧 首)이 잘 어울어진 것이 군자의 길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도의 목적지향성은 인간의 그리움에 의하여 표상된다. 머리에 그림(그리움의 준 말이다)이 없이는 생물적 차원이라는 일차원적 삶에 머무를 수밖에 없게 된다.(59쪽)
최대의 인격실현인 성인은 지난날의 역사적 괄호 속에 갇힌 몇 사람만이 아니라 지금, 그리고 다가올 날에 누구나 될 수 있는 가능태이다. 따라서 우주와 인간의 변화는 끊임없는 현재진행이고 그 창조이다. 그러나 최종적인 완성의 자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인간에 대한 낙관론인 이상은 아득하게 먼 곳에 있지 아니하다고 보기 때문에 나날의 삶 그 자체가 완성지향일 수 있다. 일상이 영원에 통한다. 이 길이 곧 경(敬)의 삶이다.(58쪽)
출처 丁淳睦 저, 옛 선비교육의 길, 文音社,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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