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산문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세계사, 2008(초판16쇄)-초판1쇄 2002-
-박완서: 1931년 지금은 휴전선 이북인 경기도 개풍군 청교면 박적골이라는 시골에서 태어났다.
-「2박 3일의 남도 기행」
마침 좋은 때였다. 설악산엔 단풍이 절정기라 했지만 이곳은 어쩌다 먼저 든 단풍이 드문드문 꽃보다 요염하게 타오르고 있을 뿐 전체적으로는 아직 푸르렀다. 그냥 지나치면서 보았을 뿐인데도 어딘지 범상하지 않게 보였던 것은 월출산뿐, 수없5이 거친 산들이 그저 그만그만한 동산들이었다. 그러나 산마다 넓게 또는 수줍게 치맛자락을 펴서 평야를 거느리고 있지 않은 산이 없었다. 아무리 작은 동산도 외풍을 막아 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산이 많고 사이사이에 평야가 옹색하게 끼여 있는 것은 조금도 새로 게 없는 우리나라의 대체적인 지형이다. 곡창이라 일컫는 평야 지대라 해서 좀처럼 지평선을 볼 수가 없지만 아무리 산간 지방에서도 일굴 수 있는 밭 몇 뙈기는 있게 마련이다.
지역적인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 나라 도처에 널린 산과 들과 물의 적절한 조화가 그날따라 마음에 스미듯 아름답게 느껴졌다. 감동이라고 해도 좋았고 개안이라고 해도 좋았다. 어찌 이다지도 보기 좋을까. 평범한 시골이 마친 신이 정성을 다해 꾸민 정원처럼 보였으니 말이다.(30∼31쪽)
나는 다산이 넘었다는 크고 험한 산을 눈앞에 보는 것만으로 전율에 가까운 행복감을 느꼈다. 그리고 어제 거친 산천이 그리도 유정했던 까닭도 알 것 같았다. 어찌 위대한 영혼뿐이랴. 이름 없이 살다 간 백성들의 한 많은 사연들이 서리서리 머무는 것이 우리의 강산이다. 바로 그런 자연의 정기가 지나가는 나그네의 심금을 흔들고, 고향 떠난 이를 죽어서도 뼈골이라도 묻히고 싶도록 끌어당기는 힘이 되는 것이 아닐까.(37쪽)
이 나라에서 몸담아 사는 한은 이 나라의 자연과 더불어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나라의 자연처럼 아기자기하게 아름다운 자연은 지구상에 어디에도 없다. 신이 온갖 좋은 것을 다 모아다가 공들여 꾸민 정원 같다. 하나도 넘치게 준 게 없이 다만 조화롭게 주었을 뿐이다. 거기 몸담고 사는 사이에 인성 또한 근면 절약하지 않고는 먹고 살기 힘들게, 협동하고 배움에 힘쓰지 않으면 나라를 보전할 수 없도록 형성됐다. 이런 고상한 인품이야 말로 어떤 풍요로움보다 은혜로운 자연의 혜택이다. 가장 후졌다는 시골이 보석처럼 빛나 보였던 것도 인간과 자연의 그러한 그지없이 아름다운 조화 때문이 아니었을까.(40쪽)
라스베이거스는 누구나 알다시피 도박과 환락의 도시다. 그러나 미국은 워낙 땅덩이가 크니까 이런 환락가도 저 멀리 네바다 사막 한가운데다 격리를 시켜 놓았다. 도무지 인가가 나타날 것 같지 않게 끝도 없이 달려 라스베이거스에 당도했을 때는 밤이 이슥할 무렵이었다. 멀리서도 하늘이 온통 오렌지빛으로 물들어 보일 정도로 그 도시의 전기 불빛은 현란했다. 도시가 온통 깜박이고 돌고 춤추는 요상하고 휘황한 불빛으로 돼 있어서 정신이 돌 것 같았다. 얼이 빠진 김에 슬롯 머신에다가 25센트를 있는 대로 처넣은 짓거리까지 해보았다. 다음날 아침 맨정신으로 네온의 불빛 대신 햇빛에 드러난 이 도시를 바라보는 느낌은 참혹했다. 아무리 호화 호텔도 외부에 얽히고설킨 불꺼진 네온의 잔해 때문에 폐허처럼 보였다. 도시 둘레는 풀 한 포기 안 나는 사막이고 라스베이거스는 그 한가운데 서 있는 추악한 폐허에 불과했다. 어리둥절한 황당감이 가시자 공포감이 엄습했다. 우리가 조금 잘살게 됐다고 자본주의의 악의 꽃만 들입다 수입해다 정신없이 즐기다가 어느날 문득 불빛이 사위어 주위를 돌아보았을 때 사막화된 황무지 한가운데 서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다.(1993년)
-「언덕방은 내 방」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손님을 가장 불편하게 하는 것은 지나친 공경과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잘해주는 친척집보다는 불친절한 여관방을 차라리 편하게 여기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필요한 것이 알맞게 갖춰져 있고 홀로의 시간이 넉넉히 허락된 편안한 내 방이 언제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아릿한 향수와 깊은 평화를 누린다. (1994년)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마지막 부분.
그 전까지만 해도 나는 마라톤이란 매력 없는 우직한 스포츠라고밖에 생각 안했었다. 그러나 앞으론 그것을 좀더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그것은 조금도 속임수가 용납 안되는 정직한 운동이기 때문에.
또 끝까지 달려서 골인한 꼴찌 주자도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그 무서운 고통과 고독을 이긴 의지력 때문에.
나는 아직 그 무서운 고통과 고독의 참뜻을 알고 있지 못하다.
왜 그들이 그들의 체력으로 할 수 있는 하고많은 일들 중에서 그 일을 택했을까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날 내가 20등, 30등에서 꼴지 주자에게까지 모낸 열심스러운 박수 갈채는 몇 년 전 박신자 선수한테 보낸 환호만큼이나 신나는 것이었고, 더 깊은 감동스러운 것이었고, 더 육친애적인 것이었고, 전혀 새로운 희열을 동반한 것이었다.(1976년) (153쪽)
「보통으로 살자」
-보통으로 사는 게 가장 떳떳해
사람이란 특별한 사람 아니면 대개 자기가 사는 위치에서 가까운 범위밖에 보지 못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범위 역시 그렇다.
그러니까 부자는 자기네 부자 사회와 보통 사는 사회까지는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도 가난을 이해하긴 어렵다. 극빈자 역시 자기네의 가난과 더불어 보통 사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재벌의 생활에 대해선 이질감 내지는 복수심밖에 동원하는 게 없다.
결국 아래위를 함께 이해할 수 있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가장 폭넓게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진 층이 바로 이 보통 사람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중략)
그런 의미로도 보통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부자와 가난뱅이가 극소수여야겠고, 보통 사는 게 떳떳이 사는 거라는 줏대와 오기가 있어야겠는데 그렇지가 못하니 안타깝다. (1975년)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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