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랑정기 / 유진오 (1938년 동아일보 발표)
유진오(필명 현민, 1906∼1988)는 서울 종로구 재동 출생.
고려대학교 총장(1952∼1965), 한일회담 수석대표(1960∼1961), 신민당 총재(1967∼1970)
<신동욱 평론>
-1938년에 동아일보에 발표된 「창랑정기(滄浪亭記)」도 대원군의 쇄국정책에 동조했던 서강대신과 그 쇠퇴하는 말로를 한 소년(김시근) 주인공의 추억을 회상하는 시선으로 포착하여 서정성이 높은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단편 「창랑정기」는 시대의 추이에 의하여 관직을 버린 구한말의 한 사대부의 은거생활을 중심으로 하여 지난 시대의 은성했던 삶의 아름다움이 회상되고 있다.
이야기의 핵심은 개화한 시대의 근대교육의 문제로 소년의 아버지가 서강대신의 거처인 서강에 있는 창랑정을 찾아가 그 종손 종근의 취학문제를 상담하나, 이야기의 펼침에서 신식교육을 받지 못한 종근은 서강대신이 죽은 후 갑자기 양복을 입고 가산을 탕진하고 시골로 낙향햇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내용에서 새로운 시대에 적극적으로 적응하는 자세를 지니지 못한 종근을 통해 구시대의 봉건적 인물이 걷는 한 한계가 암시되고 있다.
그러나 작품의 내용은 창랑정의 풍광과 서강대신의 생존 당시의 은성한 고전적 삶의 아름다움이 향수 어린 서정으로 회고되어 잃은 것의 고귀함을 알려주고 있다.
청랑정의 황혼의 광경과 교전비로 온 소녀 을순과의 만남에서 소년은 더할 수 없는 행복감과 지을 수 없는 인상을 갖게 되며, 두 사람의 놀이에서 발견한 장검의 이야기에서 주권국가의 당당했던 장군의 모습이 서강대신의 말 속에 간접적으로 드러나 독자로 하여 일제 강점기와 조선왕조를 대비하여 시대의 아픔을 인식케 하는 소설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 작품에서 창랑정의 황혼은 화자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소중한 그리움으로 회상되면서 동시에 조선왕조의 쇠망함의 슬픔을 은유적으로 인식하게 한다.
-「창랑정기」는 구한말의 쇠퇴해 가는 사대부 집안을 중심으로, 주권을 행사하던 시기의 흥성했던 고전적 삶의 한 자락의 아름다움이 회상적 필치로 묘사된 서정정 짙은 작품이다.
창랑정기
1
‘해만 저물면 바닷물처럼 짭조름히 향수(鄕愁)가 저려든다.’고 시인 C군은 노래하였지만 사실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란 짭짤하고도 달콤하며 아름답고도 안타까우며 기쁘고도 서러우며 제 몸 속에 있는 것이로되 정체를 잡을 수 없고 그러면서도 혹 우리가 무엇에 낙망하거나 실패하거나 해서 몸과 마음이 고달픈 때면은 그야말로 바닷물같이 오장육부 속으로 저려 들어와 지나간 기억을 분홍의 한 빛깔로 물칠해 버리고 소년시절을 보내던 시골집 소나무 우거진 뒷동산이며 한글방에서 공부하고 겨울이면 같이 닭서리 해다 먹던 수남이 복동이들이 그리워서 앉고 서도 못하도록 우리의 몸을 다을게 만드는 이상한 힘을 가진 감정이다.
향수(鄕愁)란 그러나 반드시 사람의 심사를 산란케만 해 주는 것은 아니고 우리가 그렇게 할 마음의 여유만 갖는다면 우리의 거칠 대로 거칠어진 정서의 거친 별을 다시 곱게 빗질해 줄 수도 있는 것이며 또는 갈기갈기 흩어진 어지러운 생각을 외가닥길로 인도해 주는 수도 있는 것이다.
가령 여기 젊어서 청운의 큰 뜻을 품고 만리 타향에 나갔던 사람이 있다 하자. 바람 비 거친 몇 십 년을 지난 뒤 이마에 주름살이 깊어 가고 은빛 흰 머리칼이 나날이 늘어갈 때 달 밝은 어느 밤 그가 고향을 그리는 마음에 이리 뒹굴 저리 뒹굴하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면 언뜻 생각하면 향수란 놈은 사람의 마음을 재리재리하게 좀먹어 들어가는 우수의 사자(使者)인 것 같기도 하나 다시 생각하면 그가 젊어서 품었던 청운의 뜻이 뜻대로 이루지 못했을 때 또는 처음 뜻대로 이루었다 해도 그 소위 청운의 큰 뜻이라는 것이 결국은 인생이란 것을 분홍빛 베일을 통해서만 볼 줄 알던 젊었을 때의 일시의 헛된 꿈이요 사람의 마음과 몸을 영원히 안식시켜 줄 깊고도 높고 또 튼튼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의지할 바를 잃은 그의 심정을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어 주어 위대한 안심의 길로 인도해 주는 거룩한 어머니의 손길이야말로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청운의 큰 뜻’을 이룬 사람에게나 못 이룬 사람에게나 향수란 다 같이 최후의 도착점이 아닐 것인가.
옛날 《귀거래사》의 시인은 ‘새는 날다 고달프면 돌아올 줄을 안다’고 읊었었고 《영원의 청춘》을 누리던 괴테도 서른한 살의 젊음으로써 이미 ‘모든 산봉우리에 휴식이 있느니라’고 노래했거니와 이것은 즉 그들이 남다른 직관과 감수력으로 이 향수의 구슬프고도 깊은 의미를 몸으로써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어린 시절을 경개 아름다운 시골서 보낸 사람은 이런 의미에서 대단히 행복된 사람이다. 그는 몸이나 마음이 고달픈 때마다 찾아 들어갈 따뜻한 어머니의 품속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회에서 나서 도회에서 자라고 몇 해에 한 번씩 또는 한 해에도 몇 번씩 이 고목에서 저 골목으로 이사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그리워하려도 그리워할 고향이 없으므로 대단히 불행한 사람이다. 그리워할 고향이 없으면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말고 항상 앞날만을 바라보고 나가면 그만 아니냐고 할 사람이 있을는지도 모르나 사람의 마음이란 그렇게 꺾으면 부러질 듯이 일상 꼿꼿하게 뻗쳐만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니 긴장의 뒤에는 반드시 해이가 오는 것이요, 해이는 새로운 큰 긴장의 전주곡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누구를 물론하고 다 같이 향수를 가지고 있다. 그리워할 고향이 있는 경우에는 물론이거니와 그런 것이 없는 때에도 사람은 항상 무엇인가를 그리워하며 그 때문에 슬퍼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 고향 없는 향수의 대상은 혹은 소년 시대의 어느 날 저녁 우연히 꿈에 본 산천인 수도 있는 것이요, 또는 꿈에나마 한 번도 본 적 없는 생판 공상의 소녀이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종교가는 네가 말하는 향수란 결국 거룩하신 하나님의 품을 의미하는 것이니 사람은 지혜의 열매를 따먹고 에덴의 동산을 쫓겨나올 때 벌써 숙명적으로 그런 향수를 등진 것이라고 할는지도 모르나 종교가가 무엇이라고 하든간에 사람이란 항상 무엇인가를 그리워하면서만 그의 생존의 의미를 느끼는 것임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서울서 나서 서울서 자라난 나는 남들과 같이 가끔가끔 가슴을 졸이며 그리워할 아름다운 고향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내가 나서 세 살이 될 때까지 살았었다는 가회동 꼭대기 집은 어느 생에 흔적도 없이 없어지고 지금은 낯모르는 문화주택이 들어섰을 뿐이다. 그러나 나에게도 내 마음이 고달픈 때 그 마음을 가져갈 고향의 기억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니, 하나는 여섯 살 때부터 열네 살 되던 해까지 살던 계동집의 기억이 그것이요 하나는 이곳에 기록하려는 창랑정의 기억이 그것이다.
2.
창랑정이란 대원군 집정 시대에 선전관으로 이조판서 벼슬까지 지내던 나의 삼종 증조부되는 서강대신 김종호가 세상이 뜻과 같지 않아 쇄국의 꿈이 부서지고 대원군도 세도를 잃게 되자 자기도 벼슬을 내놓고 서강-지금의 당인리 부근 강가에 있는 옛날 어떤 대관의 별장을 사 가지고 스스로 창랑정이라고 이름 붙인 후 울울한 말년을 보내던 정자 이름이다.
내가 처음 창랑정을 갔던 것은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으나 일곱 살이나 잘 해야 여덟 살 먹ᄋᅠᆻ을 적이니까 이럭저럭 스물일고여덟 해 전의 일이다.
5.
“ 너 이름이 무어지?”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묻는다.
“김시근이.”
“계동.”
“계동이 어디야?”
“여기서 아주 멀단다.”
이야기하면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포근포근한 행복을 느꼈다. 소녀하고 어디까지라도 그렇게 손을 붙들고 걸어가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소녀의 이름을 알고 싶어진다.
“넌 이름이 무어냐?”
“내 이름?”
하고 소녀는 어린애답지 않게 그런 것을 묻는 나를 의외로 생각했던지,
“을순이란다.”
하고 대답한다. 나는 소녀에 대해 좀더 알고 싶었다.
“너 이집 새아주머니 동생이냐?”
“아 - 니. 새애기씨는 우리 작은아씨란다.”
“작은아씨?”
하고 재차 물었다.
“지금은 새애기씨지만…….”
그래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이것도 나중 안 것이지만 을순이는 종근 형의 새색시가 시집 올 때 데리고 온 교전비(轎前婢)였던 것이다.
을순이는 애 옆으로 바싹 다가앉으며,
“너 몇 살이지?”
“일곱 살.”
“누님 있니?”
“웅”
“누님은 몇 살이냐?”
“열다섯 살.”
“이쁘지. 이쁘게 생겼지?”
나는 그때까지 누님을 예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으나 남 앞에 밉게 생겼다고 하기도 싫어서 “응.”라고 대답하였다.
“언니는?”
“언니도 하나 있어.”
“몇 살이냐?”
“열두 살.”
“잘 생겼니. 이렇게 너같이?”
또 “응.” 하고 대답하려는데 을순이는 별안간 내 앞으로 다가앉으며 두 손으로 내 양편볼을 꼭 끼고 바르르 떤다.
을순이의 그런 행동은 나에게도 어쩐지 몸이 자지러지게 기뻤으나 한편으로는 별안간 무서운 생각이 났다.
6
사람이란 일상 현재 눈앞에 있는 것보다는 지나간 것, 없어진 것에 이상한 애착을 느끼는 법이라 창랑정은 더 한층 내 향수를 자아내는 것이다.
7
창랑정의 몰락을 재촉한 것은 나의 형 뻘 되는 종근의 난봉이었다. 어른들이 다음 다음 돌아가시자 그때까지 들어앉아 한문 책만 읽고 있던 종근 형이 별안간 머리를 깎고 양복을 입고 기생 오입을 시작하였다. 서강대신 대상 때에는 벌써 창랑정은 집터까지 남의 손으로 넘어간 텅 비인 껍데기뿐이었다. 그때 여러 해만에 아버지를 따라 깃들인 고향을 찾아들 듯이 다시 창랑정에를 나간 나는 너무나 심한 그 변화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창랑정기> 끝부분
창랑정은 추억의 나라 구름과 연기에 싸인 꿈의 저편에만 있을 수 있는 존재였던가! 나른한 추억에 잠겼던 내 정신은 차차로 굳센 현실 앞에 잠깨 온다.
문득 강 건너 모래밭에서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가 들린다. 건너다보니 까맣게 먼 저편에 단엽쌍발동기 최신식 여객기가 지금 하늘로 날아오르려고 여의도 비행장을 활주중이다. 보고 있는 동안에 여객기는 땅을 떠나 오십 미터 백 미터 이백 미터 오백 미터 천 미터 처참한 폭음을 내며 떠 올라갔다. 강을 넘고 산을 넘고 국경을 넘어 단숨에 대륙의 하늘을 무찌르려는 전금속제(全金屬製) 최신식 여객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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